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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19화)


7. 흉터 아가씨 (2)

“염라 씨!”
덜컹―!
다음 날, 금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염라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자신이 문 열쇠를 줬던가. 어떻게 초인종도 없이 제집 드는 것 마냥 들어오는 금비를 보며 염라는 머리를 부여잡았고, 금비는 문을 열자마자 머리에 망치를 두들겨 맞은 듯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제 갑자기 저희 집에 와 있고, 심지어 오늘 아침까지 잤는데 도대체… 뭐…….”
금비는 아주 잠깐 동안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웬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염라의 침대에 앉아 있는 것 아닌가. 검고 긴 머리, 인형 같은 외모에 자신보다 하얀 피부. 얼굴에는 눈에 긴 상처가 나 있는 여성. 문제는 여성의 몸에 두르고 있는 이불보처럼 생긴 긴 망토였다.
망토자락 사이로 보이는 여성의 신체. 망토면 뭐든지 다 된다는 듯 흔한 속옷, 아니 몸 가리개 하나 입지 않은 모습. 누가 봐도 갑자기 사람이 들이닥치자 다급하게 이불보로 몸을 가린 상황이었다.
“뭐예요! 염라 씨, 저 여자는 대체 누구고, 왜 저런 차림에, 심지어 속옷도 없고, 무슨……!”
온갖 망상의 나래에 빠진 금비가 집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쳤고 염라는 그제야 사라의 차림새를 보고 아차 했다. 저승에서부터 원래 저런 차림새였기에 너무 익숙했던 나머지, 게다가 그녀와 그간 일 년 동안의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차림새에 대해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설마 어제 저 먼저 돌려보낸 게 저 여자 때문이었어요? 하, 그렇죠! 저렇게 예쁘니까 나한테는 관심이 없다는 둥 했겠지!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염라는 자신이 왜 변명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제멋대로 상상하는 여자다웠지만 막상 자신이 이 일의 주범이 되고 나니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사라는 가만히 앉아 현관문 앞에 서서 염라를 향해 외치는 여자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듣고 있는 염라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 제가 너무 좋은 순간에 와버렸군요! 미안하네요! 볼 일 끝나면 연락주세요!”
쾅―!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 나간 금비는 나는 이만큼 화가 났다는 듯 바닥을 찍어 누르며 멀어져갔다.
“…….”
집 안에 다시 고요가 돌아오자 염라는 막혀 있던 숨을 내쉬며 기가 빠져 나간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여자는 뭡니까? 인간 주제에 염라 님께 저렇게 말하다니… 죽여도 되는 겁니까?”
그녀의 섬뜩한 말에 염라는 손을 흔들었다.
“어제 말했던 보험이야. 그나저나 너 옷을… 입어야겠다.”
사라는 싫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꼭 입어야 합니까? 이렇게 몸에 뭐 두르고 있는 것도 염라 님께서 명령하셨기에 하고 있는 건데… 또 뭔가를 둘러야 합니까?”
옷을 입기 싫은 듯 온갖 불만을 토로하자 염라는 왜 주변에 아는 녀석들이 이리 따지는 게 많은지 싶었다.
“저승에서도 내가 옷을 입으라고 했잖아. 남자나 여자나 몸을 드러내놓고 다니면 안 된다고. 끙, 기다려봐, 속옷은 몰라도 대충 입을만한 옷 하나 찾아볼게.”
“찾는다고요? 만들면 되지 않으십니까?”
사라의 말에 염라는 옷장을 열고 그녀가 입을 만한 옷들을 고르고 있었다.
“그렇게 만든 옷이 수십 벌이 넘어. 입고 다시 없애기에는 너무 아깝기도 하고.”
저승에서는 옷 갈아입을 일이 없이 한 벌 밖에 입지 않았지만 이곳 인간들은 옷이 매일매일 바뀌어야 했다. 티비에서 보면 어제랑 같은 옷 입으면 밖에서 잤느니, 밤을 샜느니 하며 귀찮게 굴었기 때문에 새로운 옷을 만들고 원래 입던 옷은 나중에 다시 입기 위해 옷장에 넣어두고 하는 식으로 옷을 만들어냈다.
“이거 입어봐. 크기는 맞으려나 모르겠다.”
염라가 대충 무슨 글씨인지 모를 푸른색 로고가 박힌 하얀 면티와 통이 넓은 팔부 바지를 건넸다.
“허리가 안 맞는데요?”
그녀는 불편한 표정으로 흘러내려간 바지를 바라보며 말하자 염라는 눈 뜨고는 못 볼꼴이라며 벨트를 던졌다.
“허리 꽉 쫌매.”
그가 시키는 대로 쭉 입자 이제 사람 꼴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불편한 표정으로 옷을 만지고 있지만 이제 이 상태로 밖으로 데려가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쾅―!
“깜짝이야!”
좀 전에 화를 내고 나갔던 금비가 인상을 찌푸리며 들어왔다. 염라는 뒤로 물러나며 한층 화가 나 보이는 금비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나간 지 십 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염라 씨, 볼 일은 마치셨어요?”
그녀가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으나 그녀의 표정에 겁을 먹을 리 없던 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옆에 있는 사라를 가리켰다.
“친구야. 어제 한 번 말한 기억이 있는 거 같은데.”
그 말에 금비는 아, 하며 사라를 바라봤다.
염라가 어제 말했던 대로 눈에 긴 상처가 나 있는 인형 같은 외모의 소유자.
“이름은 사라. 외국에서 와가지고 잘 모르는 게 많은 편이지만 퇴마사 중에서는 꽤 뛰어난 실력이니 그쪽도 알아두는 게 좋아.”
퇴마사란 말에 금비는 윽, 하며 만나긴 싫지만 사업상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됐단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사라가 금비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금비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같이 고개를 숙였다.
“하, 한금비입니다. 반가워요… 아니, 외국어로 해야 하나?”
“아니요, 이 나라 말 할 줄 압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승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온갖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최소 10개 국어는 가볍게 할 수 있었다.
둘의 미묘한 기류는 가시지 않았지만 어찌 됐건 나름 소강상태가 되자 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비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왜 다시 왔어?”
염라의 말에 금비는 시선을 땅으로 돌리고 중얼거렸다.
“여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자존심은 무슨 자존심. 염라는 문득 잘 됐단 생각에 사라를 금비 옆에 붙였다.
“잘 됐다. 얘가 먼 외국에 살다 와서 기본적인 지식이 없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차라리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를까. 설명하기 귀찮던 염라는 금비의 손목을 잡고 사라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힉, 이게 무슨……!”
금비가 당황해 하며 다급하게 손을 떼고는 방금 전에 촉감을 느낀 듯 창백해진 표정으로 사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좀 도와줘. 난 여자들에 관해 잘 모르니까.”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금비는 염라와 사라를 다시 한 번 보고는 사라의 가슴 쪽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뭔가 느낀 바가 있는 듯 핫, 하고 놀라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녀는 혼란스러운 듯 창백해진 얼굴로 비틀비틀 거리고 있었다. 사라는 자신 왜 이런 불편한 옷을 입고 인간처럼 행세를 하며, 더군다나 속옷이라는 걸 또 왜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 상황에 멀뚱히 서 있었다.
“우선은… 알겠어요. 이, 일단 기다려요. 안 쓰는 거 가져올 테니까…….”
그녀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일단 사라부터 어떻게 해야겠단 생각이 들은 건지 집에 갔다 오겠다고 말하며 다급하게 뛰어갔다.
“…저게 보험입니까?”
사라의 기준으로 굉장히 느리게 뛰어가는 여성을 보며 물건처럼 지칭하자 염라는 그렇다며 말을 받았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인간 아닙니까? 딱히 어떤 특이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신체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신과 인간의 피가 반반 섞인 반신도 아니지 않습니까.”
“뭐어… 표면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특이한 힘이라서. 두고 보면 알아.”
염라는 우선 그녀가 올 때까지 방으로 들어가 기다리자고 했다.
이제부터 같이 지내야 할 테니 염라는 자신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설명하며, 이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줬다.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자 사라는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한숨을 쉬었다.
저승에서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염라의 곁을 따르며 이불보만 걸치고 움직여도 아무도 그 모습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저것도 안 되고, 이것도 안 된다며 여러 가지 규정을 말하는 것에 사라는 당장이라도 저승으로 돌아가 다 박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염라는 이해는 하지 말고 머릿속으로 알아두라며 반복해 말했고 사라는 마지못해 알겠다며 그의 말을 따랐다.
“왔어요!”
뛰어 갔다 온 건지 금비가 핏기가 가신 얼굴로 헉헉 거리며 쇼핑백을 들고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와 사라 앞에 턱 놓았다.
“사이즈는 잘 몰라서 스포츠 브라랑 몇 개 정도 가져왔어요. 그리고…….”
금비가 염라를 지그시 노려보자 염라는 아, 하며 베란다로 나갔다.
사라는 금비를 보며 염라를 단순히 눈빛으로 쫓아낸 것에 신기해하며 바라봤다. 저승에서는 그 누구도 그를 이런 식으로 쫓아내지 못했다. 혹, 이것도 이곳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 중 하나였던 것일까. 사라는 잘 모르겠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기만 했다.
“입는 방법은 알아요? 혹시 염라 씨랑 똑같이 어디 무인도에서 오신 건가?”
금비가 잘 포장된 속옷 하나를 꺼내 사라를 향해 내밀며 묻자 사라는 입을 다물고 고개만 위아래로 흔들었다.
“염라 씨도 좀 이상했지만 사라 씨는 더 이상하네요. 아까 입은 옷차림도…….”
그러다 금비는 우뚝 손을 멈추며 재잘거렸던 입도 같이 멈췄다. 설마 벌건 대낮에 그런 일을 벌였을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면 사라는 왜 옷을 다 벗고 이불보로만 몸을 감추고 있던 것일까. 자꾸 쓸데없는 망상의 떠오르자 금비는 고개를 재빠르게 흔들었다.
“아무튼 비용은 염라 씨한테서 다 받아낼 거야. 이건 제가 나중에 입으려고 했던 건데…….”
금비는 잠시 사라의 하체를 눈으로 흘겨보고는 맞을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체형은 비슷한 거 같지만 금비보다 좀 더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넉넉한 거 있나, 하며 그녀는 쇼핑백을 뒤져 몇 개를 찾아냈다.
“좋아요, 입어 봐요!”
금비가 붙임성 좋게 배시시 웃으며 내밀자 사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에서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으악! 뭐, 뭐해요!”
비록 염라가 베란다 밖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녀는 부끄러움도 없는 건가, 옷을 훌렁 벗어 던지자 놀란 금비는 재빠르게 몸으로 가리고 사라를 화장실 쪽으로 안내했다.
“후우.”
화장실로 쫓아내듯 집어넣은 금비는 혹시 안 맞는 사이즈면 그 안에 있는 거 하나씩 입어 보라고 이야기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는 걸까. 태어나고 자라기를 무인도에서 자라기라도 한 건가. 금비는 화장실 문 앞에서 등을 기댄 채, 베란다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는 염라의 등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사라와 염라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했다. 친한 친구라더니, 사라는 염라 앞에서도 이렇게 옷을 벗는 걸까. 그렇다면…….
“아씨, 자꾸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이상한 여자 때문에 자신도 이상해 진건가. 금비는 답답한 자신을 향해 화를 내며 염라가 있는 베란다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얼굴과 몸에 훅 들어오며 온 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으, 추워. 염라 씨는 안 추워요?”
“안 추워. 이것보다 추운 곳에 있던 적도 있어서…….”
사악한 영혼이 가는 곳이자 악마들의 거주지 팔대지옥 중 한 곳, 몸이 얼어 터져서 큰 붉은 연꽃처럼 된다는 팔한지옥의 대홍연화지옥에서도 유희 차 들렸던 그였기에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라 씨는 도대체 뭐예요? 염라 씨보다 더 이상하던데.”
올 것이 왔나. 당연히 사라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일 년 동안 이곳 사회에 물들기 위해 공부했는데도 이상하단 소리를 들었는데 한 번도 공부 받지 않은 사라는 오죽할까.
“이 업계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워낙 사회와 단절돼 지내다 보니 보통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잘 보이지 않아.”
“아, 하긴. 다른 세상을 보는 분들이니까 좀 이상행동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왠지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보니 납득은 되네요.”
적당히 잘 넘어간 건가. 워낙 순진하다 보니 무슨 말을 해도 믿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던 그녀는 염라가 이용하기 딱 좋은 인간이었다.
“그나저나 공부는 잘 돼가?”
그녀가 빨리 뭔가 진척이 있어야 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 저승사자들이 자신의 소재지를 찾아내고도 남았을 상황이기에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없던 염라는 그녀에게 물었다.
“네, 대충! 쓰라고 하면 어느 정도 쓸 순 있을 거 같아요. 눈으론 읽어지는데 쓸 수가 없으니 답답해 죽을 뻔했어요.”
“좋아. 그럼 우선 영혼들을 성불시키는 것부터 해야겠지. 이제 시작해 볼까, 그쪽의 퇴마를.”
금비의 동공이 떨렸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슬픈 감정이 아닌 기쁨, 혹은 감동. 드디어 자신이 뭔가를 시작했다는, 드디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염라의 방에서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입는 건가요?”
그녀가 속옷을 입고 걸어오자 금비는 감동에 젖었던 감정은 어디가고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사라에게 달려갔다.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속옷만 입고 오면 어떻게 해요!”
자기가 더 부끄러워지는 이 순간, 금비는 얼굴을 붉히고 다시 사라를 화장실로 밀어 붙이며 얼른 옷을 입고 나오라고 당부했다.
갑자기 시끌벅적해진 방을 보며 염라는 다시 고개를 돌려 평화로운 하늘을 바라봤다.
“참… 여자 몸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있는 것도 웃기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