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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18화)


7. 흉터 아가씨 (1)

“사라메야? 정말 너냐?”
염라는 구세주라도 내려온 듯한 눈으로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메야라니… 그러고 보니 어디 갔나 했었습니다.”
트릭은 그녀를 잘 알고 있는 듯 카드를 부채삼아 흙먼지를 날려 보내며 염라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라메야는 염라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경호원으로 염라가 저승에서 쫓겨날 때 그가 잘 도망갈 수 있게 해준 존재였다.
염라가 옥새를 통해 저승에서 쫓겨나다시피 인간세계로 도망 나올 때 사라메야도 같이 내려왔지만 인간세계로 추락하는 와중에 사라메야와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녀를 찾을 방법도 없었거니와 힘이 얼마 없던 그는 저승사자들에게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찾을 바에야 차라리 숨어서 지내기로 했고, 사라메야는 그녀 혼자서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감정이 없는 텅 빈 눈동자로 염라를 보고 있던 사라메야는 염라의 목에 있는 상처를 보고 아주 잠깐 눈동자가 떨리더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염라를 위협한 트릭을 노려봤다.
“감히 대왕님의 옥체를 손상시키다니. 그 죗값은 소멸로 갚아라.”
사라메야가 맨발로 땅을 밟으며 트릭에게 다가오자 사라메야가 밟은 땅이 쩍쩍 갈라지고, 돌가루들이 마치 그녀의 전의에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며 중력을 무시하고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트릭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느껴지는 그녀의 기운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식은땀을 흘렸다.
한참 약해진 염라라면 또 모를까 저승에서 육탄전만으로 염라가 도망갈 때 혼자서 저승사자 백여 명을 상대한 그녀를 감히 트릭 혼자서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차피, 대왕님이 여기 계신단 걸 알았으니 이 이상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겠죠! 그럼, See you!”
트릭이 펑 소리와 함께 연막을 뿌리며 사라지자 염라는 이를 빠득 갈며 앞에 있는 사라메야에게 외쳤다.
“사라메야, 쫓아!”
“예.”
그의 말과 함께 사라메야는 어떤 도약도 없이 갑자기 눈앞에서 흙먼지만 뿌리고 사라졌다.
어느새 염라와는 수 킬로미터 떨어져 달려온 트릭은 검붉은 색으로 물든 세상, 음의 세계에서 당장 저승으로 가기 위해 서쪽으로 뛰어갔다.
저승사자들이 저승과 인간세계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음의 세계에서 서쪽으로 달려가면 지옥의 강이라 불리는 삼도천이 나타나며, 그곳을 넘는 순간 저승의 세계로 오게 되는데 최소 하루는 꼬박 가야 삼도천을 볼 수 있었다.
트릭의 속도로 달린다면 아마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저승에 도착하는 순간 염리와 연락을 해 염라의 소재를 알려야 했다.
훅―!
눈앞에 거대한 짐승의 발이 덮쳐왔다.
“큭!”
조금만 반응이 늦었더라도 머리가 날아갈 뻔한 상황. 트릭은 숨을 헐떡이며 옆을 바라봤다. 그와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 사라메야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눈에는 적의만 담긴 채 트릭을 바라보고 있었다.
“Shit! 염라 놈의 졸개 같은 게……!”
“감히 그 분을 존칭하지 않고 내려깎다니. 어차피 죽을 놈이지만 곱게 죽이진 않겠다.”
사라메야가 순식간에 트릭을 앞질러 가며 발로 땅을 꽉 찍고 트릭을 향해 가냘픈 체구에 꼭 맞는 조막만한 손을 휘둘렀다.
빡―!
사라메야의 주먹질에 정확하게 명치를 맞은 트릭은 억 소리를 냈다. 트릭의 속도와 함께 반대로 날아온 주먹은 그 가냘픈 몸을 부서뜨릴 만도 하건만 트릭은 마치 벽에 부딪친 것 마냥 사라메야를 밀쳐내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쓰러지며 나뒹굴었다.
“컥… 이, 암 년이…….”
트릭이 주저앉아 명치를 잡고 이를 뿌득뿌득 갈며 사라메야를 노려봤다.
“되도 않는 영어는 끝났나 봐.”
사라메야가 손을 털면서 다가오자 트릭은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피를 닦아내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다.
“네년… 염리 님께 충성을 맹세하면 편할 걸, 왜 저 따위 망해 버린 자식한테…….”
“말이 험하구나. 기왕이면 대왕님께 넘겨드리려고 했는데 입버릇이 고약해서 안 되겠어.”
사라메야의 손이 트릭의 얼굴을 붙잡고는 바닥으로 밀 듯 내려쳤다.
터엉―!
바닥에 정확하게 머리를 박으며 쓰러진 트릭은 입과 코로 피를 내뿜으며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었다.
“커어어…….”
쓰러진 트릭을 밟고 있던 사라메야는 트릭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집 앞에서 눈을 감고 있던 염라는 무언가를 느끼는 듯 스르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멀리서 사라메야가 망토로 입을 닦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먹어버린 거냐?”
염라의 말에 사라메야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정보라도 좀 얻으려 했건만… 어쩔 수 없지. 내가 잡아오라는 명령은 안 내렸으니까.”
“잡아오려 했습니다만, 워낙 입이 걸어서 듣는 만 못했습니다.”
“그건 네가 판단할 건 아니지만… 그래, 뭐… 너라도 만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겠지. 들어와라, 내 집이니까.”
염라가 집으로 들어가자 사라메야는 입을 닦고 옷매무새를 점검한 뒤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룻바닥에 털썩 앉은 염라는 사라메야를 보고도 앉으라며 손짓했다.
사라메야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자 염라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래… 어떻게 지냈느냐?”
어린 얼굴로 근엄하게 말하자 굉장히 괴리감이 느껴졌지만 사라메야는 염라의 그 모습에 개의치 않은 듯 즉각 답했다.
“대왕님을 찾아 헤맸습니다. 어딘지 모를 섬에 떨어졌다가 바다를 건너서 사막이라고 불리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저승사자들과 탐, 그리고 악마를 먹으며 허기를 채우고 대왕님에 대한 모든 것을 수소문했습니다.”
염라의 경호원, 사라메야. 그녀는 신들을 제외한 유일하게 지옥의 악마들과 싸워도 지지 않는 강력한 존재였다. 악마와 탐, 저승사자들을 주식으로 삼는 그녀는 악마처럼 끝없이 강해지는 존재였기에 현재 그녀의 힘은 어지간한 신들과도 비견이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더군다나 저승사자와 악마를 먹을 수 있는 그 특성은 저승의 거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함부로 그녀에게 까불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유럽이란 대륙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퇴마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사라메야는 퇴마사들이 악마들과 대치하는 것을 보며 혹여나 염라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수소문했다고 한다.
다만 옷차림이 옷차림이었던지라 다들 거지로 알거나 창녀로 알고 되도 않는 대가를 내밀어서 찾기가 힘들었고, 그러다가 한 퇴마사에게서 퇴마사들이 모이는 한국이란 곳을 알게 되고 그곳이라면 혹시라도 염라의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옮겨왔다고 말했다.
“그래. 고생이 많았겠구나.”
“대왕님께서는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사실 지금 보이는 모습에선 느껴지는 기운이 미미해 대왕님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도대체 그 모습은…….”
염라가 평소 지내온 모습이 아니었기에 사라메야는 그의 모습을 요리보고 조리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저승사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었지. 하지만 이제 이것도 이젠 무리일 것 같구나. 트릭인지 뭔지 하는 놈이 염리에게 이미 보고를 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잡아왔어야 하는 건데… 그럼 최소한 대비 정돈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사라메야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자 염라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어. 너와도 만났으니 상황도 꽤 좋아진 편이고. 문제는 염리에게 기백이 봉인 당한 터라 내가 아직 약하다는 건데… 이대로 저승에 돌아가기엔 역부족이지.”
염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평화로운 풍경의 창밖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에 느릿하게 움직이는 뭉게구름, 그 아래로 날아다니는 참새 무리. 평화로운 일상의 분위기는 눈앞에 닥칠 일을 전혀 모르는 듯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보험 비슷한 걸 들어둔 게 있다. 그 보험을 통해 백을 모으고, 요새는 악마들이 많이 돌아다니니 운이 좋다면 악마보다도 더한 놈을 만날 수도 있겠어.”
“악마보다 더한 놈이라면…….”
사라메야가 눈을 빛내자 그녀가 생각하는 게 맞다는 듯 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사라메야는 무모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놈들은 대왕님께서 상대하기엔…….”
“아, 걱정 마. 저승사자는 상대하기 힘들어도 그놈들 정도야 뭐… 너만큼 큰 약점이 있으니까.”
사라메야는 자신도 그 약점이 뭔지는 인지하는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우선 그러기 위해선 일단 너도 이곳에서 살아야해.”
그 말에 사라메야는 염라의 원룸을 슥슥 바라보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좀 좁네요.”
“맨날 큰 곳에서만 사니까 안 익숙하다 이거냐.”
사라메야는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책상, 침대, 베란다의 창문 등을 훑으며 지나갔다.
“결계입니까?”
단지 만지는 것만으로도 염라가 쳐놓은 결계를 느낀 듯 말하자 염라는 당연하다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최소한 내가 자고 있을 때 습격당하면 안 되니까. 이런 거라도 쳐둬야지. 그나저나 너 계속 날 대왕님이라고 부를 거야?”
근엄했던 목소리와 말투는 어디가고 평소대로 돌아온 염라의 말에 사라메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부르길 원하십니까? 아, 주인님으로… 해야 합니까?”
“아니, 아니야. 그건 더 이상해.”
주인님이라니. 차라리 대왕님이라고 부르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러울 것만 같았다.
“차라리 이름으로 불러. 뭐, 염라 씨나 아니면 그냥 염라라고 불러도 되고.”
“그럴 수는 없습니다. 대왕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
이상한 곳에 고지식한 성격이 있는 그녀를 보며 염라는 으음, 하고 답답한 신음을 흘렸다. 이제부터는 사라메야와 같이 움직여야 할 텐데 갈 때마다 대왕님, 대왕님 하면 주변 시선도 그렇고 염라대왕이 여기 있는 걸 알리는 꼴 아닌가.
“다른 거 없어? 굳이 꼭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야?”
염라가 불만을 토하자 사라메야는 아랫입술을 매만지며 눈동자를 굴리고 고민에 빠졌다.
“…염라 님… 어떠십니까?”
또 ‘님’인가. 대왕님이나 주인님보다 나쁜 건 아니지만 굳이 님이라 붙여야 하나 싶었다. 사라메야는 그 호칭을 포기할 생각 없는 듯 지그시 바라보자 그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인정했다.
“그래, 그럼… 나는 너를 ‘사라’라고 부를게. 너는 외국인이고, 나랑은 제법 안면이 있는 친구야. 알았지?”
“친구는…….”
또다시 그녀의 고지식한 성격이 나오기 시작하자 염라는 재빠르게 그녀의 말을 잘라먹었다.
“아, 그럼 사업 파트너라고 하던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퇴마사고 너도 어쨌든 악마를 퇴치할 수 있으니까. 알았지?”
사라메야, 아니 사라는 알겠다며 염라의 의견을 존중했다. 어차피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주인공은 염라고 그녀는 곁에서 도와주는 수밖에 없으니 그가 어떤 계획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더라도 무조건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염라와 사라는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