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16화)


6. 보디가드 (2)

금비는 염라를 보더니 장난기가 발동한 듯 히히 하고 웃었다.
“정말 끔찍했어요. 그거 알아요? 제가 변기에 토하는데 토사물이 다 보이고 그게 그때 아이가 씹다가 뱉은 것들 같이…….”
“…그거 꼭 내가 뭐 먹고 있는데 말해야 하나?”
점심을 직접 차리기 귀찮았던 염라는 배달 음식으로 햄버거를 시켰고, 염라는 침대에 앉아서 햄버거와 콜라를 흡입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상상하려니 씹던 걸 뱉을 거 같아서 당장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러게 제 것도 좀 시켜주지!”
“아, 먹었다면서. 그 이상 더 먹으면 돼지 된다.”
그 말에 금비가 발끈하며 외쳤다.
“제가 돼지라뇨! 이래봬도 몸무게가 몇인 줄 아세요? 완전 여자들이 꿈꾸는 황금 비율과 같다고요!”
“네이, 네이. 그중 일 할은 상체의 살덩어리가 쥐고 있겠지.”
염라는 생각 없이 대충 집어던진 말이었으나, 금비는 충격 먹은 표정으로 가슴을 가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일 할이라뇨! 봤어요? 봤냐구요! 진짜 이거 보여줄 수도 없고!”
염라의 생각은 이미 딴 나라에 가 있는 듯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뱉었다.
“보여줘 봐.”
“…네?”
그러자 둘 사이에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염라는 조용히 햄버거를 씹고 있다가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자 정신이 돌아온 그는 눈알만 돌려 금비를 바라봤다.
“…왜 그래?”
금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염라를 기피하는 눈치였다.
“저, 저번부터… 갑자기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하고, 관심 없다고 하더니 방금… 뭐라고요?”
방금 뭐라 했지. 염라는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봤다. 별로 관심 없던 대화라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대화였던 듯싶었다.
“그, 저… 물론 염라 씨가 그렇게 싫다고는 안 해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염라는 햄버거를 먹다 말고 지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알을 굴렸다. 저 반응은 아무래도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뿐만 아니라 약간 염라가 무슨 짓을 할까봐 겁에도 질려 있었다. 그에 결론이 닿자 염라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뭐라 했는지 모르지만 그쪽이 내가 아는 친구보다 여러모로 스펙이 더 떨어져서…….”
“…뭐요?”
그녀의 눈이 도끼처럼 변하며 매섭게 째려봤다. 질투인가, 자존심이 상한 건가. 둘 다라고 봐도 될 듯싶었다.
“그 친구… 여자인가 봐요?”
“어. 뭐, 암컷… 아니, 여자 맞아.”
염라는 말을 잘라내고는 정정해서 말했다.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다, 암컷이라니. 염라는 자꾸 딴 데로 새는 생각을 간신히 부여잡긴 했으나, 생각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대로 못하고 별의별 것들로 스트레스가 쌓이자 영 불편해서 살 수가 없었다.
“하, 그렇죠! 하긴 그 나이에 여자 친구 없다는 게 말이 좀 안 돼요. 어어어엄청 예쁜가 봐요! 제가 여러모로 스펙이 떨어진다니!”
그녀는 정말로 자신의 얼굴에 자신 있는 듯 자존심 상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인간 주제에 인간이 아닌 것한테 질투를 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며, 생각한 염라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멋대로 결론을 지으니 한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예쁘긴 하지, 그 친구가. 얼굴에 흉만 없으면 괜찮았을 텐데…….”
“흉? 흉이 있어요?”
염라는 그 친구를 상상하는 듯 회상에 빠졌다.
“일단 얼굴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야. 대부분 인형 같은 외모라고 하더라고. 난 자주 봐서 잘 모르겠지만…….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에 얼굴은 되게 작은데 표정이 없어. 무뚝뚝해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본 적이 없어. 진짜 말 그대로 인형. 그 와중에 양쪽 눈에는 눈썹 바로 위에서부터 광대뼈 부분까지 세로로 길게 상처가 나 있는데 다들 안타까워해.”
금비는 적당히 그리는 그림 실력으로 염라가 준 빈 종이에 염라가 말한 여성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인형 같은데 긴 흉터가 있다니. 말만 들어선 상상은 안 가지만 좀 안타까울 것 같긴 했다.
“성형하면 되지 않아요? 요새 기술이 좋아서 티도 안 나게 말끔하게 지워준다는데.”
“그러게. 성형으로 바뀔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염라는 자신의 피부를 바라보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금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형이 안 되는 얼굴인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나. 비밀이 많은 남자였지만 금비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왜인지 그걸 물어보면 더 이상 여기 올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염라가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염라는 자신의 피부를 바라보고 피식 웃고는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그거 빨리 외워. 그래야 진도를 나가지. 그거 끝나면 간단한 퇴마 의식을 해볼 거야.”
“정말요?”
그녀가 상기된 표정으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드디어 직접적인 퇴마를 할 수 있는 걸까. 금비는 좋았어, 하며 무아지경에 빠진 듯 종이에 불이 나도록 글씨를 따라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쪽은 친구 없어?”
그의 말에 그녀는 글씨를 쓰다 말고 딱 멈췄다.
“…네, 뭐.”
금비의 말에는 쓸쓸함이 묻혀 있었다.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친구 관계가 원만한 편이에요. 근데… 베프랄까, 그런 게 없어요.”
“왜?”
“그러게요, 너무 원만한 탓일까… 악마한테 씐 이후로 다 절교당했거든요. 뭔 짓을 했던 걸까요.”
염라는 콜라를 쭉 빨며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일이었다. 악마 혹은 악령한테 몸을 내준 자들의 말로였다. 악마에게 몸을 맡기고 자신의 욕망을 해결하면서 발생하는 일종의 대가. 일단 친구 관계는 대부분 단절당한다. 악령일 때는 감정싸움부터 시작해서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경우, 악마일 때는 오히려 그 반대로 욕망에 지독할 정도로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사람들이 꺼려한다.
아마 악마가 들어갔던 금비의 모습은 본래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어서 기피했으리라. 아마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정말 친한 친구들이라면 그런 문제에도, 그리고 그녀가 회복된 직후에 한번쯤은 연락이 올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연락을 하는 친구 하나 없었다. 원만한 관계가 오히려, 모든 게 적당 적당하게 살았던 그녀에게 친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한 것이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착 가라앉자 금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먹을 꾹 쥐었다.
“에잇, 어차피 친구 금방 만들면 되죠! 제가 얼마나 사교성이 밝은데!”
염라는 자화자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네 그러세요, 하고 식사를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비는 글씨를 따라 쓰다 멈추고 문득 뭔가가 떠오른 듯 염라에게 물었다.
“염라 씨, 퇴마사들이 악마를 굳이 천국으로 보내는 이유가 뭐예요?”
그 말에 염라는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봤다.
“못된 짓을 하니까 그렇지. 직접 당해놓고도 그런 소리 해?”
금비는 그때의 일이 언뜻 떠오르는 듯 몸서리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악마는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예요? 구체적인 이유 같은 건…….”
“악마는 욕망에 충실하니까. 칠대죄악이라고 알아?”
“으음, 아마… 식욕, 성욕, 수면욕… 맞나?”
“그건 생물의 삼대 욕구고.”
퇴마에 대해 그렇게 많이 배웠는데도 그새 까먹은 건지 금비는 눈살을 찌푸리며 연신 음, 하고 머리만 굴렸다.
“칠대죄악은 성욕, 식욕, 탐욕, 나태, 분노, 교만, 질투야.”
“아, 맞아요! 나 말하려고 했어요!”
염라는 그 말에 잠시 풋, 하고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자 금비는 예의 말버릇을 내며 인상을 구겼다.
염라는 빈 종이에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며 칠대죄악에 속한 대악마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 일곱 개의 욕망을 필두로 악마들은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려고 해.”
“왜요?”
“창세기 때부터 줄곧 악마는 신들을 없애려는 계획을 하고 있어. 그리고 그 원료가 이곳에 사는 모든 생물의 영혼이라고도 알고 있고.”
“……?”
갑자기 창세기가 나오자 금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자신이 알던 세계관보다 스케일이 커졌으니 무리는 아니었다. 염라는 이걸 어떻게 쉽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괜히 말 한 번 잘못하면 자신이 사람이 아니란 게 들통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마는 혼을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져. 강대해진 힘으로 신계와 전쟁을 벌이려고 하지.”
이는 악마에 국한된 게 아니라 신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금비에게 말해봐야 오히려 신들을 더 무서워하게 될 것 같고, 오로지 화살을 악마에게 보내야만 했다.
“그러면서 악마들이 가진 욕망을 인간에게 투영시켜 세상을 혼란하게 만들어.”
“이를테면요?”
“가깝게 성욕과 식욕, 탐욕을 예로 들어 볼게. 길거리에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친 순간 그 자리에서 옷 벗고 뒹굴지도 모르지. 강간은 당연한 일일 테고.”
서로 갑자기 만나서 뒹굴고, 강간을 당연하게 여긴다. 끔찍하기 그지없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염라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음식이란 음식은 모두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입속에 욱여넣을 거야. 그렇게 해도 배가 안 차서 추후엔… 아마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할 테지. 그러면서 금품을 훔치고 돈을 훔치고, 서로의 애인을, 옷을, 나중에는 신체를 훔쳐 갈지도 모르고.”
고작 세 가지 밖에 안 나왔는데도 벌써부터 눈앞에 지옥이 보이는 듯싶었다.
금비는 입을 벌린 채 손에 쥐고 있던 펜을 툭 떨어뜨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게는 사람 대 사람으로, 크게는 국가 대 국가로 전쟁이 일어날 거야. 지금도 뉴스에서는 비슷하게 악마들에게 정신을 꿰인 사람들이 많아. 그 사람들은 현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지. 대기업 사장이라거나 국가기관의 일부, 국회의원, 대통령 등…….”
“믿어지지 않아요. 그게 전부 악마들이 소행이라고요?”
“전부는 아니야. 다만 악마의 입김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
“인간들은 그렇게 혼란하게 놔두고 악마들은 신계로 쳐들어가는 건가요?”
“맞아. 악마들에게 혼이 완전히 빨린 인간들은 혼 없이 껍데기만 남은 악마의 하수인들이야. 지상에서는 신을 숭배하거나 악마의 하수인들이 아닌 놈들을 없애기 위해 움직이고, 그 사이 힘을 모은 악마들은 신계를 덮치러 가지.”
금비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더니 믿을 수 없단 눈초리로 물었다.
“…그 소설 언제 나와요?”
“…….”
남은 지금 복잡한 심경으로 역사 이야기를 해주는데 소설이라니. 능력이고 뭐고 확 갖다 버릴까도 싶었다. 금비는 농담이라며 헤헤 하고 웃었다.
“악마와 신이 싸운다는 이야기는 너무 뜬구름 잡는 거 같아서… 그래도 악마가 많아지면 위험해질 거 같은 생각은 드네요.”
전혀 와 닿지 않는 듯 금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신들의 일은 신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며 그저 악마가 많아졌을 때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해해. 나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으니까.”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금비는 염라가 단지 인간들끼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염라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인간들이 어떻게 되든 염라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인간의 생명을 중요시 여긴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나, 단순히 인간을 소중히 여겨서가 아니라 그들의 혼이 탐, 악마, 그리고 저승사자에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염라대왕이었을 때만큼은 악마들이 들고 일어나지 못하게, 그리고 저승사자들이 허튼 생각을 품지 못하게 했는데, 그는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