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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15화)


6. 보디가드 (1)

“바오르 신부님, 어디 계십니까!”
바티칸시국, 로마 교황청.
대리석으로 잘 깔린 거대한 성전 안에 관리하기 불편해 보일 정도로 여기저기 굽어 있는 머리를 가진 긴 금발의 남자가 홀로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다가 조용한 예배당을 시끌시끌하게 만드는 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스르르 들어올렸다.
덜컹―!
“바오르 신부님!”
커다랗고 둥그런 녹색 눈이 눈에 띄는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고 정갈한 수녀복을 입은 여성이 머리에 이고 있던 베일을 흩날리며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는 남자, 바오르에게 다가왔다.
“경거망동하십니다, 수녀님. 예배당에서 소란을 피우시다뇨.”
바오르가 질책하듯 말하자 수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신부님께서 바로 대답하셨으면 이런 일도 없습니다.”
“기도 중에 대답하라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본인의 잘못이 없다 말씀하시는지요?”
바오르가 섬뜩할 정도로 매섭게 노려보자 수녀는 한 발자국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급한 일이라 저도 모르게…….”
바오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당을 걸어 나가자 수녀가 뒤를 따라 걸었다.
곱게 잘 깔린 정원으로 나온 둘은 서로 말없이 걷고 있다가 이러다간 정원 구경만 하고 끝날 것 같다는 생각에서인지 수녀가 입을 뗐다.
“한국 지부에서 신부님께 구마 의식에 관한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무슨 일이랍니까. 요 근래 한 번도 요청하지 않은 곳에서.”
한국이라면 꽤 자주 듣던 국가였다. 작은 나라 수준으로 꽤 뛰어난 퇴마사들이 많이 있다는 곳. 게다가 다른 나라처럼 한 종파가 힘을 차지하는 것과 달리 종파도 굉장히 많아서 다양한 종파를 만나볼 수 있는 만남의 광장이라는 느낌이었다.
불교의 법사들은 물론이고 사제들, 거기에 도사라고 불리는 무당들까지… 퇴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동네이기도 했다.
“그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실력 좋은 퇴마사 한 명이 있었는데 사고를 너무 많이 쳐서 근신하고 있답니다.”
“사고?”
바오르는 우뚝 멈춰서 수녀를 바라봤다.
“예, 그게… 한국에서 가장 실력 좋은 퇴마사가 있는데 그 자가 악령에 씐 많은 이들을 자폐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퇴마 협회에서도 그것을 좋지 않게 보고 근신에 처했다고 합니다.”
“흐음.”
가끔씩 일어나는 경우였다. 악령이나 악마들을 과격하게 처리하다 보면 영혼까지 통째로 파괴돼서 죽는 경우도 있었으니 별로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녀의 말을 듣고 보면 가끔이 아니라 그 남자가 맡으면 대부분의 의식의 결과가 다 그랬다는 것이었다.
“그래요? 그놈… 악마의 탈을 쓴 퇴마사라도 되나?”
수녀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바라봤다.
“악마의 탈을 쓰다니요? 악마가 악마를 퇴치도 합니까?”
그녀의 말에 바오르는 그녀를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순진한 말을 하십니다, 수녀님. 사람도 사람끼리 해치지 않습니까?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악마라고 동족을 안 해치는 건 아닙니다.”
바오르는 검지를 까딱까딱 흔들며 공부 좀 더하라는 듯 말하고는 앞서 걸어갔다.
수녀는 그를 배웅하듯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이더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섬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푹―!
“컥!”
바오르가 느끼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부신 은빛의 창이 등을 관통해 바오르의 배 밖으로 훤히 나와 있었다.
언월도 같이 끝이 검처럼 되어 있는 바오르의 피를 머금은 은빛의 창에 태양이 눈부시게 반사되고 있었다.
“크… 이게 뭔… 왜 이런 짓을……!”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피를 흘리며 바오르는 영문을 모르겠단 눈빛으로 자신을 찌른 수녀를 향해 고개를 덜덜 떨며 바라봤다.
수녀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그의 등에 꽂았던 창을 쑥 빼고는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창에 묻은 피를 슥 닦아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이느냐, 미천한 악마야. 이곳은 무려 삼중의 신성한 기운으로 둘러싸인 바티칸 시국, 로마 교황청이다. 악마 주제에 예배당까지 들어가 물을 흐려놓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좀 전까지 크고 둥그런 눈이 어느새 날카롭고 반쯤 가라앉은 눈으로 변해 있었고 몸에서는 섬뜩할 정도로 푸르고 신성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바오르는 입에서 피를 쏟으며 주저앉고는 뚫린 배를 꾹 누르며 수녀를 씹어 먹을 듯 노려봤다.
“크으으, 무슨 소리 하는……!”
“…너, 아까부터 참았는데 유황 냄새 너무 독해. 그리고 바오르 신부님은 여자 자매님들을 수녀님이라 부르지 않고, 자매님이라 부르거든.”
수녀가 코를 톡톡 두들기며 싱긋 웃었다.
“뭐!”
서걱―!
창끝을 따라 붉은 물결이 비단처럼 흘러 나갔다. 수녀는 주저 없이 바오르의 목을 잘라 버리고는 품속에서 성경책을 꺼내 들었다.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늘의 계신 아버님.”
그때 잘려 나간 머리 안에서 보랏빛으로 물든 손가락이 구멍을 조금씩 열고 뭔가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크으, 설마 같은 신도를 이렇게 매정하게 죽여 버릴 줄이야.”
목이 날아갔음에도 바오르 신부의 신체에서 쇠를 긁는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성대와 식도 부분이 찢어질 듯 활짝 열리며 단단하고 굵은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냄새로 알아본 바로는 바오르 신부님은 죽었어. 이미 구원해 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거든.”
수녀는 한 손에는 창을,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눈을 감고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바오르 신부의 몸속에 있던 악마는 이미 바오르 신부의 영혼을 완전히 갉아먹고 껍데기만 남은 몸으로 그의 행세를 하고 있던 것이다.
차라리 악령이 들어갔다면 가볍게 엑소시즘을 통해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상대가 영혼을 먹는 악마라면 차라리 완전히 먹혀서 구원조차 불가능할 땐 차라리 편하게 갈 수 있게 해줘야 했다.
악마는 바오르 신부의 목을 완전히 찢고 이마 한 쪽이 종양처럼 불룩불룩 자라 뿔처럼 보이는 얼굴을 드러냈다.
“크흐, 그래… 신의 창부답게 냄새는 귀신같군.”
보랏빛 피부의 머리에 종양을 가진 악마가 키득키득 웃으며 바오르의 목에서 머리와 팔만 쑥 내밀고 바오르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였다.
“하, 그 창 조금 아팠는데… 너도 한 번 꽂아보지 그래? 특히 네 다리 사이에다가 말이야. 너희들이 원하는 천국에 가까워질걸?”
악마는 바오르의 몸에 구멍이 난 부분을 만지며 낄낄 웃기 시작했다. 수녀는 관심이 없는 듯 그의 말에 답하지 않자 악마는 무시당했단 생각에 고개를 까딱 거리며 교육 좀 시켜줘야겠다고 중얼거렸다.
그가 위협적으로 다가오자 수녀는 눈을 감은 그대로 성경책과 창을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문을 빠르게 외우기 시작했다.
“제 기도를 들어 주사, 불쌍한 신도를 구원하시옵고, 그 안에 잠재된 악을 벌해 주시옵고…….”
그녀의 앞에 도착한 악마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바람을 가르며 날카로운 손톱을 힘차게 휘둘렀다.
“죽어버려라!”
“아멘.”
파아앗―!
눈부신 빛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반원으로 넓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힘껏 뻗었던 악마의 팔은 빛에 감싸여 강한 산성을 맞은 것 마냥 피부가 흐물흐물 녹기 시작했고 점점 반원형의 기운에 밀려 나가기 시작하자 악마는 고통을 내지르며 뒤로 슬금 슬금 물러났다.
“크으으! 뭐냐! 한낱 인간 주제에 어디서 저런 힘을……!”
철컹―!
“윽?”
자신의 온몸을 옥죄는 기운에 악마는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바오르의 팔과 다리, 그리고 악마의 두 팔과 목에 빛나는 족쇄가 채워졌고, 그 족쇄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듯 긴 사슬의 꼬리가 구름에 매달려 있었다.
“이, 이건……!”
악마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난 수녀는 은빛의 창을 꾹 쥐고 창끝을 악마의 머리를 향했다.
“하늘의 쇠사슬. 신께서 내려주신 위대한 힘이다.”
“크으으……!”
악마는 어떻게든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온 몸을 흔들었지만 사슬이 출렁이기만 할뿐 앞뒤좌우 그 어디도 움직일 수 없었다.
“성실하고 착했던 바오르 신부님의 몸을 갉아먹은 죄. 천국에서… 그 죄를 갚아라.”
“자, 자, 잠깐… 기, 기다려! 아, 아까 한국에서 사고를 일으킨 놈의 정체……!”
“닥쳐라.”
투웅―!
악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녀는 창을 쏘듯 그의 머리를 향해 날렸고, 창에 머리가 꿰뚫리는 순간 바오르 신부의 몸과 악마의 몸이 유체이탈 하듯 분리되어 악마는 하늘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
은빛의 창이 푸르고 신성한 기운을 내뿜으며 악마와 함께 빠르게 하늘을 향해 사라졌다.
머리 없는 바오르의 몸은 이내 썩은 피부를 흩뿌리며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수녀는 눈을 지그시 감고 손에 깍지를 끼며 바오르의 생명에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린 수녀는 머리에 이고 있던 베일을 훅 벗자 갈색의 비단결 같은 웨이브를 탄 머리카락이 그녀의 허리까지 길게 내려왔다.
그녀는 눈을 반쯤 뜨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의 신을 향해 외쳤다.
“퇴마 수녀, 스텔라. 한국으로 가서 악마와 그 악마의 탈을 쓴 퇴마사까지… 전부 퇴마하고 돌아오겠습니다.”

* * *

아이는 자폐아가 됐다고 한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기에 염라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퇴마 일을 중단하고 근신하라는 말이 떨어졌다.
염라에게 전화를 한 늙은 신부가 전한 것이었다. 교황청에서도 분개했고 다른 퇴마사들도 그의 행동에 대해 퇴마사에서 퇴출시키자 소리쳤지만, 염라의 실력은 국내외를 통틀어 손꼽히는 퇴마사였고, 요새 늘어난 강력한 악마들의 대응책이었기에 차마 염라가 퇴마 일을 못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염라는 오랜만에 강제적으로 주어진 휴가를 잘 써보려고 했다. 금비 때문에 이래저래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방해 받는 일도 있었고, 그리고 이제 슬슬 저승사자들이 찾아올 때가 됐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위기감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건 저승사자들이 염라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염라가 저승에서 사용하던 인간의 모습은 백발의 금안을 가진 구릿빛 피부의 남자. 더군다나 염라의 집은 그가 초대한 사람이 아니면 이곳에 대한 인식을 흐려지게 만드는 주술로 뒤덮여 있었다.
염라라는 이름조차도 저승사자들의 허를 노렸다고 볼 수 있었다. 설마 염라대왕이 진짜로 염라라는 이름을 쓰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역이용한 것이었다.
근신이 끝날 때까지 금비를 앞세워 주변 악령이나 탐 등을 퇴치하면서 저승사자를 직접 대면했을 때를 대비해 맞서는 방법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오늘도 저 데려다줘요?”
금비가 책상에 앉아 마치 알파벳을 따라 쓰듯 염라가 쓴 글씨를 따라 쓰며 오늘도 염라가 데려다줘야 하냐고 묻자 염라는 잠시 금비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녀의 기운이 안정돼 있었다. 일전처럼 갑자기 속이 안 좋아지며 화장실에 달려가지도 않았다.
“아니, 기가 안정된 거 같네. 며칠 동안 고생했어. 집 갈 때는 늦은 밤에 가지 말고, 사람들 많은 곳으로 가도록 해. 아니면 탐들한테 쫓길 테니까.”
여느 때와 같은 충고로 돌아오자 금비는 약간 시원섭섭한 기분을 느꼈다. 그간 틱틱 거렸지만 워낙 잘 지켜줬기에 마치 남자친구가 데려다 주는 든든함을 느낀 것이었다.
‘어쩔 수 없겠지.’
그의 성격 상 데려다 주는 것도 귀찮았을 텐데 이 정도 해주면 많은 걸 해줬다 생각했다.
그녀의 몸은 원래의 리듬으로 돌아와 있었고, 애교 포인트인 젖살도 다시 생겨났으며 표정도 생기 있게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