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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12화)


5. 발설지옥(拔舌地獄) (1)

구름 한 점 없이 드높게 펼쳐진 끝없는 푸른 하늘 아래, 황량한 사막 언덕.
드센 바람에 따라 언덕의 모래 가루가 황사 먼지처럼 흩날리며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흡기를 괴롭혔다.
사박― 사박―
모래사막을 맨발로 밟고 가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 도무지 존재할 거 같지 않은 뽀얗고 하얀 다리를 가진 여성이 긴 흑발을 종아리까지 늘어뜨리며 지독한 모래 먼지에 색이 바란 망토를 몸에 두르고 물통 하나 없이 사막을 홀로 횡단하고 있었다.
지독한 모래 가루를 막아내기 위해 입과 코까지 망토로 가린 그녀는 블랙홀처럼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눈동자로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그때 저 멀리서 사막 연기를 흩날리며 커다란 지프차 두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부우웅―!
그녀 앞에 멈춰선 지프차에서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근육질 남자가 담배를 뻑뻑 피며 창문을 내렸다.
“어이, 아가씨. 어디까지가? 우리가 데려다 줄게!”
성매매를 주력으로 하던 그들은 봉 잡았다는 듯 낄낄낄 거리며 그녀에게 친절하게 물었다. 군말 없이 타면 아무 일 없을 거고, 행여나 거절하거나 도망갈 낌새가 보이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듯 총과 칼을 슬며시 끄집어냈다.
그런 남자들을 보며 여성은 흥미 없다는 듯 공허한 눈동자로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휙 돌리고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어, 야, 잡아!”
“오케이!”
남자 넷이 차에서 내리며 발자국을 남기고 가는 여자를 다급하게 다가가 붙잡았다.
“와 씨, 팔 얇은 거 봐. 밥은 먹고 다니나?”
“그게 문제야? 완전 하얘! 미친 어디서 살다왔기에 이래?”
그녀의 몸을 하나씩 감별하듯 그들은 그녀의 팔부터 시작해서 뱀처럼 스멀스멀 기어 올라갔다.
“미친, 맨발이야! 발바닥은 안녕한가?”
아래 둘, 위에 둘. 하나씩 왼쪽 오른쪽을 맡고서 위에 둘은 팔에서 어깨로, 아래 둘은 발에서 허벅지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갔다.
“어디, 몸은 좀 어떤가.”
“겁먹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거봐!”
오랜만에 괜찮은 여자를 붙잡았다는 듯 웃으며 아래에 둘은 발에서 종아리로, 종아리에서 허벅지로, 그리고 허벅지에서 그 위로 올라가는 순간 콧김을 내뿜으며 흥분에 가득 찼다.
“원주민인가? 그러기엔 모습이… 아무튼 제대로 건졌네! 캬하하!”
한껏 기분이 업된 그들은 그녀를 붙잡은 채 비릿한 미소를 지었으나, 이내 그녀의 얼굴을 보곤 기분이 상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근데 뭐야, 표정 하나 변하는 게 없네?”
그녀가 아무런 저항도, 아무런 반응도 없자 급격하게 흥미가 떨어지고 있던 한 명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씩 웃었다.
“좋아, 우선 얼굴부터 내리고 우리랑 잠깐 차에서 좀 볼까?”
한 명이 손을 뻗어 입을 가리고 있던 망토 자락을 확 내렸다.
화장기 없는 깨끗하고 하얀 얼굴에 얇지만 짙은 눈썹과 동글동글한 눈, 얼굴 중심에 작게 나온 완만하게 굴곡진 코, 립글로스를 바른 것 마냥 붉고 윤기 나는 입술. 구체 관절의 예쁜 인형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지만 그녀의 두 눈덩이에 세로로 길게 새겨진 상처가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덩이에 세로로 길게 그어진 스크래치를 보고는 당황한 남자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예쁘긴 하지만 이런 흉터면 가치가 상당히 떨어진다.
“뭐야, 그 상처.”
그녀의 몸을 음흉하게 훑어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고 있던 그의 동료들은 그의 말에 놀라 얼굴을 바라봤다.
“상처가 있네. 아, 이러면 좀 안 되는데.”
“일단 차 안으로 데리고 가서 살펴보자. 몸 상태는 제법 죽여주는데.”
“아직, 아직. 한 곳 못 봤어.”
그녀의 몸을 가장 열심히 매만지던 남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무릎 꿇고 앉아서 그녀가 가리고 있는 망토 자락을 마치 보물 상자를 여는 것 마냥 아주 조심스럽게 열어젖히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다.”
“응?”
멍하니 보고 있던 그녀의 입에서 낮고 조용하지만 청량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정확하게 꽂혔다.
그들은 모두 서로를 한 번씩 보더니 여자를 바라봤다. 지금 우리가 잘못 들은 건가, 우리말을 한 거 아닌가. 도대체 우리들이 누군 줄 알고 우리나라 말을 하는 건가. 그냥 아랍어로 찍은 건가.
“아니, 그보다 목소리도 괜찮네. 발정난 놈들이 좋아하겠어, 이 정도면.”
그녀가 자신들의 말을 하건 말건 관심 없었다. 좀 놀라긴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어차피 이 황량한 사막에서, 무장한 장정 넷을, 그것도 옷도 제대로 없는 여자가 빠져나갈 구멍 따위는 없었다.
남자는 다시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위해 그녀의 망토 자락을 조심스럽게 열어갔다.
“좋아, 어디…….”
“사막에서 나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그녀의 말에 남자는 흥분에 찬 상태로 이제 거의 다 열린 그 보물 상자를 눈이 빠져라 바라보려고 했다.
“못 나가, 이년아.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봐. 좀 보……!”
뻐억―!
“크헉!”
“뭐야!”
“……!”
연신 가만히 있던 그녀가 무릎으로 망토 자락을 열고 있던 남자의 안면을 찍어버리자,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남자들은 당황하며 총을 빼들었다.
“가만히 있어! 이년아, 너 좋으라고 하는 건데!”
“얼굴 말고도 스크래치 생기면 골치 아프다고! 돈도 두둑하게 쥐어주고, 매일매일 천국 보내준다니까!”
누가 들으면 굉장한 곳에 취업시키는 것 같은 말에 그녀는 관심 없는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자신 앞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으으으!”
코가 함몰됐고, 앞니 두 개가 전부 나갔다. 어떤 준비 동작도 없이 가볍게 쳤을 뿐인데도 정면으로 나무 기둥에 힘차게 들이박은 것과 같은 피해였다.
아무런 감정조차 없던 그녀의 눈동자가 한심하단 눈빛으로 바뀌며 쓰러진 남자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세 명을 바라봤다.
“다시 물어보겠다. 바다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그냥, 뒈져 이년아!”
그 순간 한 명이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자신의 동료가 눈앞에 쓰러져 있는데도 그녀를 향해 힘껏 총을 갈겼다.
“으악, 뭐야!”
얼굴을 부여잡고 있던 남자는 피범벅이 된 얼굴로 놀라서 뒤로 기어가듯 움직였고 그녀를 향해 총을 갈기던 남자들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사, 사라졌어.”
총이 발사되는 순간 눈앞에 있던 여자가 사라진 것이었다.
여성은 어느새 세 남자들의 뒤에 서서 머리카락을 휘황찬란하게 휘날리며 망토 자락에서 두 팔을 꺼내 들었다.
투둑―
여자의 두 팔에서 피부를 뚫고 종양이 생기듯 뭔가가 불룩불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뭐, 뭐……!”
팔에는 잡초가 자라듯 검은 털들이 무성하게 자라며 가늘던 손가락이 두꺼워지고, 손끝에서는 갈퀴보다도 길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손톱이 생겨났으며, 사람의 얼굴 네 개 정도가 들어갈 정도로 손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인간의 손이라 할 수 없는, 마치 짐승의 팔처럼 변하자 남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달달 떨었다.
“시, 신이시여…….”
“신 같은 소리… 아까 내가 어디서 살다 왔냐고 궁금해 했지?”
여성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까딱 거리며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렸다.
“저승에서 왔다.”

* * *

“우웁!”
염라의 방, 그의 화장실에서 금비가 변기를 잡고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있던 걸신이 들린 것처럼 먹는 아이의 퇴마 장면을 목격한 이후, 금비는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으면 속에 있는 걸 전부 게워냈다.
게워내는 것도 모자라서 더 이상 나올 게 없는데도 계속 구역질을 해서 더 이상 토할 기운조차 없어보였다.
쏴아아아―
제대로 먹은 게 없기에 쏟아낸 게 없지만 그래도 입에 남아 있는 위액 때문에 입을 세척한 그녀는 힘겹게 밖으로 나왔다.
염라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만 벌써 다섯 번째.’
거의 30분 간격으로 저렇게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이었다.
귀염성 있던 젖살은 빠졌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뺨이 푹 파여 있었고,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채 토악질만 해댄 덕분에 그녀의 두 눈은 퀭해져 있었다.
“죄송…해요.”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염라가 알려주는, 그녀에겐 데바나가리라는 문자로 속인 신계 언어를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진척이 없었다. 제대로 알려줄라 치면 토하러 가고, 뭔가를 해보려고 하면 또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는 금비가 왜 그 상태인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원인은 하나.
악마의 형태를 제대로 대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것. 염라야 저승에서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악마의 모습은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유령을 보는 편이 훨씬 더 나을 정도였다.
“뭐 먹을 때마다 자꾸 생각나서…….”
“이해한다.”
“염라 씨도… 막 토했어요?”
그럴 리가. 악마는 애초에 염라가 창조한 생명체였다. 현계에 있는 악마들이 설령 염라가 창조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기본 베이스는 똑같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봐도 인간 보는 것처럼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물론이지. 볼 때마다 속이 니글니글 한걸.”
“헤헤… 다행이다. 만약 아니라 했으면 저 정말로 퇴마에 재능 없나 싶을 거예요.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몰라요.”
그녀는 바보처럼 웃으며 염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녀는 퇴마에 재능이 없는 게 확실했다. 최소한 악마나 악령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보면 겁먹고, 토한다. 설령 그녀가 퇴마에 대한 능력이 있더라도 퇴마사가 되기 그른 그릇이었다.
그런 그녀가, 퇴마에 대한 능력도, 귀신을 볼 담력도 없는 그녀가 퇴마사를 꿈꾸다니. 웃길 따름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만 아니라면 벌써 내쳤을 것이다.
우웅―
그때, 책상 위에 올려뒀던 염라의 휴대폰에서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부? 이 사람이 웬일이지.”
그가 작게 중얼 거리는 걸 들은 금비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신부? 교회 사람이랑도 친한 건가. 문득 금비는 염라가 어떤 종파인지 모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무속인이라면 모시는 신한테 대한 제사상 같은 걸 올리는 걸로 아는데 그런 건 보이지 않았고, 교회 사람이라면 보통 검은 사제복을 입는다는 걸로 아는데 방에는 십자가도 없기에 그것도 아니었다. 불교 퇴마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지만 별로 불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 같지도 않았다.
“네, 네. 알겠어요. 보수는?”
보수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퇴마를 의뢰하는 걸까, 신부가 연락을 하다니 금비는 신기한 표정으로 그의 통화를 대놓고 엿듣고 있었다.
“아아, 알았어요. 거, 나는 기독교 사람도 아닌데 왜 교리를 설파하려고 해요. 끊어요.”
하나님의 무슨 놈의 하나님.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핸드폰을 탁 닫은 그는 자신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금비를 바라봤다. 숨길 만한 통화도 아니었기에 그녀를 한 번 보고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린 코트를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