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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11화)


4. 걸신 들린 아이 (3)

놀라서 놓칠 법도 하건만 그녀는 라이터를 꾹 쥐고 있었고 아이가 눈알 없이 입에 검은 먹물 같은 걸 흘리며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녀는 다급하게 부싯돌을 돌리고 종이에 불을 붙였다.
화아악―!
너무 놀라서 감각을 잃은 듯 자기 손이 데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눈을 꾹 감은 채 종이를 힘껏 태워 버렸다.
쿵―
무형의 기운이 퍼져 나가며 그녀의 입술까지 와 닿은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묵직한 건 그대로였으나 안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
조심스럽게 눈을 뜬 그녀는 이내 자기가 라이터 자기 손을 태우고 있단 걸 느꼈다.
“앗 씨, 뜨거!”
하마터면 욕이 먼저 나올 뻔했다. 나름 조신한 콘셉트를 유지하려던 그녀는 최대한 욕의 완성형은 내뱉지 말자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으으, 뜨거워.”
뜨거운 건 손뿐만이 아니었다. 이게 마치 뱃속에 아이가 있는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잠깐 내가 무슨 생각을……!’
설마 악마가 몸에 들어온 건가 싶은 그녀는 놀라서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
“…힉.”
얼굴에 음식을 덕지덕지 붙인 아이가 기절한 듯 그녀의 몸에 기대고 자고 있는 것이었다.
창백한 피부는 아이와 같은 부드럽고 생기 넘치는 피부로 돌아왔고, 비록 얼굴에 있는 이물질에 옷을 다 버려서 속상했지만 천사 같이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나니 속상한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좋아, 생각보다는 잘 했네.”
“아, 선생님!”
어두운 구덩이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기분이었다. 염라가 여유롭게 방으로 들어와 주변을 휙휙 바라봤다.
“그, 악마? 그거는요?”
금비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염라는 좀 전 아이가 음식을 먹고 있던 구석을 가리켰다.
“히이익.”
“키야아아악!”
보랏빛 피부에 반라의 악마. 다른 곳은 앙상하게 뼈만 있고, 목은 기린처럼 길었으며 배는 아래로 축 쳐진 괴이한 생명체. 그 악마는 혓바닥이 목 길이 마냥 긴 듯 바닥에 늘어뜨렸다.
염라가 써준 부적 덕분에 악마는 무형의 기운에 막힌 채 구석에서 발버둥 치고 굉음을 지르고 있었다.
“빠, 빨리 퇴치를……!”
금비가 놀라서 일어난 순간 그녀의 중심으로 퍼져 있던 무형의 기운이 좁아지며 다시 그녀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숙주를 잃어버린 악마는 눈앞의 숙주를 다시 되찾기 위해 콧김을 내뿜으며 그녀와 아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꺄아악!”
콱―!
악마가 그녀를 덮치기 일보 직전, 악마는 그녀를 덮치려는 그 자세로 딱딱하게 굳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만족스럽네. 적절하게 끝났어.”
하급 악마답게 자제력도 없고, 제대로 된 지성을 갖추지도 못했다. 어린아이를 숙주로 삼은 시도는 좋았으나 급조한 주술에 튕겨나갈 정도면 그리 강력한 악마는 아니었다.
‘뭐, 저쪽의 도움이 크긴 했지만.’
염라는 어느새 악마의 뒤에 서서 한 손으로는 악마가 앞으로 뛰쳐나가지 못하게 잡고 한 손으로는 악마의 입을 향해 손을 넣었다.
으직―!
턱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며 악마의 입속을 넘어 목구멍으로 손이 쑥 들어갔다.
악마도 숨을 쉬는가. 목구멍이 턱 막히니 식도와 기도가 뒤틀리는 고통을 받으며 발버둥 쳤고 염라는 입 속에 있는 손으로 악마의 혀를 꽉 잡았다.
“우우우, 끄으으!”
악마는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온갖 분비물을 뿜어대며 더 격렬하게 발버둥쳤고 염라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금비의 귀에는 들리지 않게 악마의 귓가에 그들의 언어로 속삭였다.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싶나?」
그의 말에 악마는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눈이 충혈 되듯 핏대를 세우고 몸을 떨었다.
「너, 너 뭐야? 어떻게 우리말을……!」
염라는 그 질문 지겹네, 하고 한숨을 쉬더니 혓바닥을 쥔 손에 힘을 꽉 넣었다. 악마는 자신의 혓바닥이 터질 것 같이 압박이 가해지자 몸을 흔들며 염라의 손을 떼어내기 위해 그의 팔을 힘껏 물기도, 할퀴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몸에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안타깝구나, 나약한 너 따위가 상처를 낼 만한 몸은 아니라서 말이지. 다시 한 번 물어보겠다.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나?」
「닥쳐. 뭐야, 네놈! 곱상하게 생긴 사내새끼 주제에, 저 암컷 년하고 침대에서나 뒹굴지 그래! 비명 소리를 들어보니 신음 소리도 죽여줄 것 같구만!」
그래, 어느 악마들이나 다 저 소리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면서 오로지 본능에 가득 찬 놈들. 염라는 자신이 이런 놈들을 만들어냈다니 새삼 자괴감이 들고 있었다.
「발설지옥은 죄를 지은 자의 혓바닥을 뽑는 지옥이다. 뽑아 몽둥이로 부풀게 한 뒤 날붙이로 혀를 잘게 쪼개거나 갈아엎는 지옥이지.」
염라대왕을 포함한 시왕이라 불리는 대왕들이 관할하는 지옥. 이곳은 악마들이 거주하는 팔대지옥과는 달리, 대왕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었다. 그리고 그 지옥을 만든 이답게 각자의 죄의 처벌에 대해서는 아주 능숙했다.
「발설…지옥?」
발설지옥이 뭔지는 아는 건지 악마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드디어, 자신을 백 허그한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무언가를 하기엔 이미 늦은 뒤였다.
꽈아악―!
염라는 악마의 혓바닥과 혀뿌리를 단숨에 쥐고 호리호리한 팔에 근육이 부풀어 오르듯 힘을 주고 당기고 있었다.
「쟁기질은 하지 않겠지만 말이야……그 날름거리는 혓바닥은 보기 싫으니 뽑아주마.」
“끄으, 끄아아아!”
악마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금비는 염라의 행동에 대해 겁을 먹듯 눈을 크게 뜨고 기절해 있는 아이를 꼭 안으며 이내 고개를 휙 돌렸다.
질긴 밧줄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악마의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고 염라의 손에 분홍빛 혓바닥이 긴 끈처럼 늘어져 끊어진 혓바닥에서 진득한 피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쏴아아아.
이내 비명은 끊기고 입에서 피를 한 움큼 쏟아내며 마치 옷가지 마냥 염라의 팔에 축 늘어졌다. 진득하고 비릿한 냄새가 가득한 피가 방 안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그와 그녀, 그리고 방 안에 묻은 피들이 재로 변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 우웩.”
어느새 돌렸던 고개를 다시 틀어 피가 재로 변해 사라지는 걸 보며 감탄하고 있던 금비는 피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역한 냄새를 맡자 헛구역질을 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냄새도 사라지는 것 같았으나 너무 역하고 독한 냄새여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스스스―
재들이 자아를 갖고 있는 듯 스스로 움직이며 뭉치더니 이내 염라의 품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보면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특이한 장면이었지만 벽을 보며 헛구역질 하고 있던 금비는 그 장면을 전혀 보지 못했다.
“끝.”
염라는 쥐고 있던 혓바닥까지 재가 되어 사라지자 손을 탈탈 털며 상쾌한 듯 말했고, 금비는 온갖 음식물 쓰레기와 피, 유황 냄새 덕분에 부글거리는 속을 가슴을 두드리며 가라앉혔다.
“…되게 과격한 방법이네요.”
죽은 존재가 인간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 제법 잔인한 광경이었음에도 금세 마음을 진정시킨 금비는 눈을 가늘게 뜨며 환상이 부서진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한을 풀어주고 가족 관계를 완만하게 해서 해결할 줄 알았던 금비는 왠지 기운 빠지는 듯 이제 또 이 가족 환경에서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고 마음이 아파왔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방 앞에서 서성이고 있던 여성은 그의 말에 황급하게 들어오며 구석에서 금비의 몸을 침대 삼아 자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우리 애 괜찮은 건가요?”
“자고 있습니다. 걱정 마시고… 저기 저 주렁주렁 매달린 거나 다 치우세요. 하등 쓸모도 없는 것들이니까.”
염라는 금비에게 나가자며 방을 빠져 나갔고 금비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옮겨주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의 엄마는 자고 있는 아이를 꼭 껴안은 채 방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던 금비는 염라에게 물었다.
“이렇게 끝내도 되요?”
“뭐가?”
“해결한 건 겨우 괴물 쫓는 일이었는데…….”
염라는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갔고, 금비는 왠지 무시당했단 생각에 얼굴을 찡그리며 그의 뒤를 쫓으려고 했다.
“엄마, 난 아빠들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아이의 방에서 정신을 차린 듯 아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응… 엄마가… 안 할… 미안해.”
몇 개의 단어가 울먹이는 소리에 먹혀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들리는 말들을 유추해 볼 때 나름 문제가 해결됐단 생각이 들었다.
금비는 마음속으로 다행이라며 웃음을 띠우고 단발머리를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끼익―
집을 나와 문을 닫은 금비는 어느새 저 멀리 가고 있는 염라를 따라 뛰어갔다. 자신을 따라 나란히 서서 걷고 있는 금비를 보며 말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퇴마사지, 심리 상담사도 자원 봉사자도 아니야. 가정의 불화는 그쪽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란 말이지. 영화의 해피 엔딩 따위를 원한다면 심리 상담사를 해.”
“…….”
“악을 쫓아내는 게 내 일이야. 무자비함. 자비를 베풀어 봐야 일만 골치 아파져.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판결할 수 있어야 해.”
그의 의미심장한 표현에 금비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슬픔, 분노 등이 묻어 있는 표정. 그러고 보면 그녀는 염라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왜 퇴마사가 된 건지 모르며, 하물며 좋고 싫어하는 게 뭔지조차 몰랐다. 기껏 해야 하나 알고 있는 점은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 자신보다 다섯 살 많다는 것 정도.
“선생님.”
“선생님이라 부르지 좀 말래, 닭살 돋으니까.”
차갑고 무감정한 표정에서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아주 살짝 부끄럽다는 마음이 묻어 나왔다. 그 미세한 감정을 캐치한 금비는 씩 웃으며 그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떨어지시지.”
그녀가 달라붙자 불쾌해진 그는 매섭게 째려봤고 금비는 그럼에도 넝쿨줄기 마냥 억세게 달라붙었다.
“오늘 무섭긴 했지만 저 마음 굳혔어요. 퇴마사가 꼭 될 거예요!”
“떨어지라고, 좀.”
“뭐부터 할까요? 제가 기초가 부족하니까… 주문? 부적? 전 뭐든 좋아요! 하물며 분신사바도 해볼게요!”
금비는 자신의 말을 가볍게 씹으며 자신의 말만 하자 염라는 팔을 흔들며 그녀를 떨어뜨리려고 애를 썼다.
“다 됐고, 옷에 묻은 거나 좀 털라고!”
“그럼 도와주는 건 염라 씨가? 혹시 재료 필요하면 사주는 거죠?”
그 말과 함께 염라가 그녀의 품에서 힘껏 팔을 빼내며 소매를 툭툭 털고 혼자 앞서 걸어갔다.
“아씨, 알았어요! 내가 살게요! 진짜 돈도 없는 대학생한테 별걸 다 뜯어가네!”
그녀는 짜증부리는 척 소리치더니 무시하고 쌩하니 가는 그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짓고 졸졸 뒤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