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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10화)


4. 걸신 들린 아이 (2)

“읍.”
토할 것만 같은 지독한 냄새에 금비는 좀 전에 했던 말과 생각을 취소하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다. 조금만 맡아도 토할 것만 같은 지독한 냄새.
“무슨… 냄새에요? 음식물?”
“음식물 썩은 내와 유황 냄새가 섞였어.”
딸깍 하고 문이 닫히며 문고리가 걸리자 컴컴해진 방 안에서는 침과 음식이 섞이고 저작운동을 하는 께름칙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탁―!
방에 불이 켜지며 방이 밝아지자 주변의 모습이 한 눈에 정확하게 들어왔다.
“우웁.”
음식물들이 마치 토사물 마냥 여기저기에 널브러지고 뒤섞여 있었다. 당장 비위 상하는 모습과 역한 냄새에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벽 구석에 몸을 기대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우웁… 콜록, 콜록!”
염라는 그 모습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지 팔짱을 낀 채 연신 음식을 쏟아내며 먹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 있었다. 음식과 함께 케첩을 마치 피처럼 얼굴에 잔뜩 묻히고 있었고, 입에는 다 삼키지 않은 음식물들이 쏟아져 내리며 손에 들고 있는 음식을 삼키고 있었다.
“생각보다 심각하네. 어린아이라서 그런가, 의지도 없고 자제력도 없어서 쉽게 먹혀 버렸군. 허접한 악마라 입맛대로 다루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이건 시간문제고…….”
“먹히…다뇨? 죽은 거예요?”
“그건 아니야. 내 말은… 그냥 씌었다는 거야. 그쪽처럼 운이 좋은 케이스랄까, 악마 중에서도 좀 지능 떨어지는 놈이 들어가 있을 뿐이지.”
염라가 아이에게 다가가려 하자 염라 바로 아래에 있는 음식물 찌꺼기를 본 금비가 외쳤다.
“아, 선생님, 아래……!”
바스락―!
“…어?”
무슨 일인지 염라가 밟은 찌꺼기가 재로 변해 버렸다. 그가 가는 길목을 마치 터주듯 밟기도 꺼려지는 음식물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발이 닿기도 전에 재로 변해 바스러져 갔다.
“꼬마야.”
염라가 아이의 뒤에 다가와 어깨에 손을 척 올렸다.
우적…….
아이는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입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바라봤다.
“아저씨는 누구에요? 엄마랑 또 무슨 관계에요?”
“널 도와주러 온 사람이다. 네 엄마가 불렀어.”
“또 엄마가 뭐 해준데요? 같이 자요?”
금비는 충격적인 표정을 짓고 입을 막았다. 도무지 아이의 입에서 나올 단어는 아니었다. 혹시 저 애도 자신처럼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말을 내뱉는 건 아닐까.
“엄마는 아빠도 아닌 사람을 불러서 침대에 다 벗고 잠을 자요. 가끔씩 엄마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아픈 줄 알았어요. 근데 아픈 게 좋은가 봐요. 계속…….”
“그, 그만.”
금비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듯 귀를 막았다. 얼마나 끔찍한 말이란 말인가. 아이의 가정 형편, 가족 등이 저절로 떠오르고 아이가 바라본 가족의 생활이 마치 영화 필름을 감듯 떠오르고 있었다.
“엄마가 네 걱정을 하고 있단다. 그만 정신 차리려무나.”
“난 정신 차려야지 했는데 그게 안 돼요. 우리 엄마는 다른 집 아줌마들이랑 너무 달라서 내가 사실 다른 세상에 있는 거 같아요.”
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염라는 아이 같지 않은 말투에 속으로 감탄하며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악마에게만 씌지 않았으면 의젓한 아이가 됐을 텐데…….”
금비가 조심스럽게 염라에게 다가왔다.
“이, 이제 어떻게 해요? 아이가 스스로 정신 차리게 해야 하는 거 같은데…….”
염라는 손을 들어 올리며 금비가 말하는 것을 제지했다.
“아빠는 어디 계시니?”
“몰라요. 우리 아빠는 여러 명이니까 그중 하나겠죠. 아저씨도 우리 아빠잖아요.”
“…….”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염라는 금비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고 염라가 멀어지자 아이는 하나의 본능처럼 다시 고개를 돌려 손에 든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다.
“뭐, 뭐예요? 왜 물러나요?”
“이 이상 자극시키면 안 되니까. 어떤 상황인지는 대충 알 거 같네.”
염라가 아이의 등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하자 금비는 애써 깨끗한 벽에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바람이 난 거죠? 아빠가 없을 때…….”
“아니. 엄마가… 음, 아무튼 아빠는 원래 없었어. 엄마 쪽이 나름 모성애를 갖고 키우고 있던 거지.”
“…….”
그저 배가 닿아서 어쩔 수 없이 나은 아이. 벌이도 좋지 않을 텐데 여태 버리지 않고 키운 걸 보면 엄마로서는 나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하필 상황이 좋지 않았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야. 억지로 안에 있는 악마를 빼내거나, 아이의 정신을 돌아오게 해서 안에 있는 악마를 밀어내거나.”
“어떤 게 쉬운데요?”
“당연히 억지로 빼내는 거지. 십 초면 끝나. 다만 아이의 몸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
자폐아가 될 수도 있단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이제 막 퇴마사가 될 꿈을 잡은 애한테 그런 거친 내용을 말하면 안 하겠다 할 수 있었다. 그래선 안 됐다. 얼마나 귀중한 카드 패인데.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 그럼 아이의 정신을 돌아오게 해요!”
“그게 쉽다면 이 생각을 안 하겠지. 이건 아이의 정신이 강해야 해. 그쪽처럼 도와주세요, 하고 말해야 한다고. 참고로 악마가 그쪽의 경우처럼 스스로 빠져나온 척해서 속일 수가 있어. 뭐, 그쪽은 머리 돌아가는 악마였기에 그게 가능하긴 했지만.”
금비는 그 날에 정확한 기억은 없었지만 아주 잠깐 정신이 있을 때가 떠올랐다.
분명 자신이 뭔가 잘못된 걸 알고 살려주세요, 라고 외쳤던 것. 아마 그걸 뜻하는 거라면 아이 또한 아이가 정신을 차리게 할 만한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빠를 데리고 올까요?”
“누군 줄 알고? 저 아이는 지금 여기에 오는 모든 남자가 아빠이기에 아빠를 데리고 오는 건 의미 없어. 시간도 그렇게 많지도 않고.”
염라는 눈알을 돌리며 아이의 책상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공책 몇 개와 부러진 연필 하나 정도가 있었다.
종이와 연필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옆에서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아이를 걱정하고 있는 마음씨 고운 여성을 지켜봤다.
“최후의 방법이 있긴 한데 내가 사용할 순 없고… 그쪽이 해보는 게 좋겠군.”
“뭔데요?”
염라가 책상으로 다가가 뭔가를 끄적였다.
“말했다시피 그쪽이 탐과 귀신들에게 별미라 했지. 그쪽을 미끼로 쓸 거야.”
“미…끼요?”
“저 아이보다 맛있는 게 있으니 바로 이끌리겠지.”
자꾸 음식에 비유하자 금비는 불쾌한 기분을 느끼며 등을 돌리고 음식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금비의 시선을 느낀 듯 쩝쩝 거리는 소리를 멈추더니 등을 꼿꼿이 폈다.
드드득―!
“히이익!”
머리가 순간적으로 180도가 돌아가며 흉측해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놀란 금비는 비명과 함께 못 본 척 고개를 숙이며 염라 곁으로 숨었다.
“……?”
염라는 금비가 왜 이러나 싶어 아이를 바라봤다.
금비가 본 게 환상인 냥 아이는 좀 전과 같이 등을 보이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쩝쩝 씹고 있을 뿐이었다. 금비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듯 기겁한 표정으로 염라의 팔을 꽉 쥐며 고개를 흔들었다.
“꼭… 꼭 제가 남아야 해요?”
“난 소용이 없어. 저놈이 날 노리기엔 힘이 부치거든. 약하면서도 양질의 힘을 갖고 있는 그쪽이 적절하지.”
노트 한 페이지를 찢어낸 염라는 그녀의 손에 넘겨주고는 방을 열었다.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던 집주인 여성은 걱정된 표정으로 염라에게 다가왔다.
“어, 어떻게 됐나요? 우리 아이는?”
“아직 입니다. 혹시 라이터 있으신가요? 아니면 성냥이라도.”
“아……”
여성은 자신의 주머니를 두드리더니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 내밀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건 아닌 듯 라이터 전면에는 섹시한 포즈를 하고 있는 여성의 그림이 있었다.
불이 잘 나오나 두어 번 정도 부싯돌을 돌려 불을 지핀 그는 잠깐 빌리겠다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구석에서 종이를 보물단지 마냥 안고 쭈그리고 있던 금비를 향해 라이터를 내밀었다.
“난 이제 방에서 나가볼 테니 혼자서 저 아이를 잘 보고 있다가 악마가 나오면 주저 하지 말고 종이를 태워. 심심하면 그 종이 읽어봐. 아마 읽어보는 게 퇴마할 때 도움이 될 거야.”
“이, 이게 어떤 건데요?”
“보호 부적 같은 거라 보면 돼.”
염라가 그 말을 마치고 나가려고 하자 금비가 그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자, 잠깐만요. 꼭 나가야 해요?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무, 무섭단 말이에요. 전 처음이기도 하고. 그, 곁에서 지켜준다면서요.”
“그러게 억지로 꺼낼 때 그러자고 했으면 될 걸. 그쪽이 저 아이를 구하고 싶어서 선택한 거다. 난 그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해주는 거지. 그리고 내가 있으면 안 나올 거야. 자기보다 강한 놈이 있으면 몸을 숨기는 게 상책이니까. 혹시나 하는 걱정은 마. 방 앞에서 지키고 있을 테니까.”
염라가 옷자락을 거칠게 빼내며 빠르게 방 밖으로 나갔다.
“앗.”
너무 순식간에 나간지라 잡을 수도,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쩝쩝―
불이 켜져 있었지만 어두운 커튼이라도 친 것 마냥 불빛이 안 들어오는 느낌이었고, 방음벽이라도 있는 건지 다른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쩝쩝, 으적으적 게걸스럽게 먹는 소리만 가득했다.
금비는 이를 딱딱딱 맞부딪치며 한 손에는 염라가 준 부적 같은 종이를, 다른 손에는 분위기에 맞지 않는 섹시한 포즈를 하고 있는 여자가 찍힌 라이터를 꾹 쥐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녀가 경계하는 걸 알고 있기는 한 걸까, 아이는 방에서 쉼 없이 음식물을 입에 집어넣고 쩝쩝쩝 씹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음식이 많이 나오는가 싶었더니 자신의 입에서 나온 음식물을 다시 쥐고 씹고 있었다.
‘윽.’
저걸 보고 있다간 미칠 것 같은 마음에 금비는 시선을 돌려 염라가 준 종이를 바라봤다.
그의 말로는 데바나가리라는 문자로 쓰여진 언어. 어떻게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에서는 마치 번역기가 돌아가는 듯 그 문자들이 저절로 해석돼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저리 꺼져라… 라고? 뭐야 이게!’
뭔가 굉장히 심오하며 주술 같은 느낌의 글귀인 줄 알았으나 굉장히 직설적이며, 속된 말로 굉장히 저급한 느낌이었다.
‘부적들이 죄다 이런 건가?’
한자도 쓰여 있고 막 멋있을 것 같았으나 이렇게 실체를 보니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종이를 꾹 쥐고 바닥에 내렸다.
“캬아아아아아!”
“꺄아아악!”
종이를 내린 순간 어느새 와있던 건지 창백한 피부의 아이가 온갖 음식물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인 채 자신을 보며 소리를 질렀고 금비는 깜짝 놀라서 종이를 들고 덜덜덜 흔들었다.
아이는 종이를 갸웃 거리며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그녀의 품으로 사자가 덮치는 것 마냥 힘껏 달려들었다.
“꺄아아아!”
품으로 파고든 아이는 침을 질질 흘리며 그녀의 옷을 적시고, 뱀이 몸을 타고 기어 올라오듯 그녀의 머리를 향해 기어 올라오려고 하고 있었다. 금비는 질겁하면서 왜 부적이 안 먹히는지 애꿎은 염라를 욕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불을 붙여야 한다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불! 맞아,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