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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9화)


4. 걸신 들린 아이 (1)

“진짜, 진짜 저 데리고 가는 거예요?”
마치 자양강장제 같은 쾌활한 목소리.
검은 단발머리의 볼살에 젖살이라는 귀염성이 가득한 아가씨, 금비가 어김없이 염라의 뒤를 졸졸 쫓아오고 있었다.
“하, 피곤하구먼. 데려간다고 한 적 없다. 분명 가라고 했는데.”
염라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고 금비는 그런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쫓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쿨해 보이는 성격의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매달려 사는 여자가 데이트 하는 모습이리라.
“그쪽 다른 할 일 없나? 어떻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대학 같은 건 안 다녀?”
보통 안 다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염라는 분명 그녀가 대학을 다니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 며칠 째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오는 걸 보면 학교는커녕 집은 들어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었다.
“다녀요! 이거 봐요, 전공 책도 있죠!”
금비는 자신의 커다란 크로스백을 팡팡 두들기며 보여주었고, 염라는 그거 하나로는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씨, 왜 못 믿어요?”
“하루 종일 찾아오니까 못 믿지. 게다가 지금 시간은 한 시야, 한 시. 새 나라의 어린이들은 공부할 시간이라고.”
금비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도대체 이 남잔 뭐지, 하고 바라봤다. 대학생의 뜻을 모르는 사람 같아보였다. 그의 말대로 하자면 대학생들이 고등학생들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를 한단 뜻 아닌가.
“혹시 대학생이 뭔지 몰라요?”
그 말에 염라는 뜨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일 년이나 이곳에 왔지만 대학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었다. 딱히 대학 안 나와도 지장이 없다고 하는 말을 간혹 듣다 보면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곳이라 생각했기에 그저 여느 중고등학교와 똑같은 거라 생각했다.
“와, 어디 외국… 아니 무인도에서 살다오셨어요? 그러고 보니 요전부터 행색이 좀 이상해!”
그 말에 염라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뭔가 잘못 됐나 바라봤다. 거울이나 건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하나도 문제없어 보이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이상해 보이는 걸까. 그렇다고 그녀에게 어디가 잘못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때 고맙게도 금비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말투가 왜 그래요?”
“말투?”
그녀는 염라의 말투에 대해 꼬집으며 이러쿵저러쿵 설명했다.
“뭐뭐 했구먼, 뭐뭐 했나, 뭐뭐 란다, 뭐뭐 했다네… 이게 우리 나이 또래가 하는 말이라 생각해요? 뭐뭐 했지, 뭐뭐, 했네, 뭐뭐 야…가 정상이죠!”
염라는 그런가, 하며 턱을 쓸었다. 아무래도 그가 여태까지 살아온 세상 특성 때문에 좀 위엄 있고 근엄하게 말하는 법만 사용해 왔기 때문에 좀처럼 말투를 스물다섯 살의 나잇대 같은 말투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요새 애들 쓰는 말 알려줘요? 빼박캔트가 뭐게요! 버카충은 뭔지 알아요?”
금비가 지갑에서 버스 카드를 꺼내 흔들며 염라를 놀리자 그는 놀아나기 싫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으며 무시하듯 걸어갔다. 금비는 헐, 하며 충격 먹더니 그의 옆에 찰싹 붙어 쫓아와서 물었다.
“생각보다 늙은 아조씨네! 나이가 몇이에요?”
“백오십억 보다 한참…….”
“네?”
금비가 눈을 휘둥그레 뜨자 염라는 아차 했다. 순간적으로 태초의 탄생과 관련한 나이를 내뱉을 뻔 했기에 그는 재빠르게 비집고 나오려는 단어를 잘라 버리고 고쳐 말했다.
“아니. 스물다섯인데.”
“거짓말! 물론 액면가는 그보다 더 어리다고 해도 믿겠지만……하는 짓이 완전 애늙이잖아요!”
아무래도 이 실랑이는 자신이 사실을 밝히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염라는 안 들린다며 양쪽 검지로 귀를 막고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고 금비는 한 시도 조용히 하지 않고 주절주절 염라의 행동거지에 관해 떠들어 댔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아무리 그녀라도 걸으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떠들 힘은 없는 듯 추운 겨울날에도 후덥지근한 입김을 내뱉었다.
“아무튼, 저는 강의를 전부 오전으로 당겨놨어요. 뭐… 악마한테 씌어서 학교도 제대로 안 나가가지고 F는 면할 거 같지 않지만.”
아무래도 내년 대학 생활은 끝장날 거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아, 그리고 곧 방학이에요. 선생님 쫓아다닐 수 있을 듯!”
혹시 방학을 모르는 건 아니죠, 하며 그녀가 염라를 무시하는 태도로 묻자 염라는 그 정도는 알고 있다며 맞받아쳤다. 이 이상 가다간 자신이 정체가 탄로 나진 않더라도 이상하게 볼게 뻔했기에 길거리에서 파는 호떡을 하나 입에 물려줬다.
“근데 왜 자꾸 저를 그쪽, 그쪽 해요? 제가 어느 표지판도 아니고… 이쪽, 저쪽, 그쪽 썩 기분 좋은 호칭은 아닌데…….”
“그냥, 사람 이름 부르는 게 입에 익지 않으니까.”
“……?”
진짜 무인도에서 살다 온 건가, 금비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염라는 딱히 친해질 필요가 없는 사람의 이름까지도 말해야 하나 싶어 불편했다. 어차피 인간은 염라가 살아온 세월의 티끌만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간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기껏 부른다면 이 자리에 없을 때 ‘누구누구, 어디에 있느냐’ 정도.
“언제까지 걸어요? 꽤 멀리 온 거 같은데.”
걸어서 가기에 얼마 안 걸릴 줄 알았던 그녀는 염라가 계속 정처 없이 걷자 약간은 지친기색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쫓아오지 말라고 했잖아.”
“에에, 온 만큼 더 걸릴 거면 택시타고 가요, 네?”
“택시비는 그쪽이 내고?”
금비는 윽, 하고 마음에 강펀치를 맞은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 대학생이 택시에 쓸 돈이 어디 있다고 이리 뽑아 먹는 건가. 금비는 웃고 있지만 미간을 찌푸린 표정으로 속으로 염라를 두어 번 욕했다.
“쫌생이 새끼라고 생각했지? 맞으니까 집에나 가.”
말도 안 했는데 자신의 마음을 알아맞히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헐. 어떻게 알았어요?”
표정만 봐도 다 알지만 이야기 해주기 너무 귀찮았던 그는 눈살 찌푸리고 말을 돌렸다.
“오 분만 더 가면 돼. 우선 쫓아오는 거니까 말해주는 건데 그쪽은 내가 퇴마할 때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전에도 말했듯 그쪽은 귀신이나 악마에게는 진수성찬만큼 귀한 거니까.”
“으…….”
괜히 음식 취급 받자 오싹해진 그녀는 창백해진 표정으로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이 근처엔 귀신은 잘 안 보이고 괴물도 없네요.”
“산 사람들의 기운이 강해서 그래. 기가 세다는 말 들어본 적 있지? 사람 백 명 정도가 모이면 대부분의 귀신은 근처에 다가오지도 못해. 악령조차도 힘을 못 쓰고. 참고로 기가 센 사람은 혼자서 백 명 분의 기를 낸다고 해.”
“아, 그래서 귀신이 혼자 있는 사람 노리고, 기가 센 사람은 귀신이 피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군요.”
그녀는 어디 영화나 책에서 보고 들은 것 같다며 덧붙였다.
점점 상가에서 벗어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자 그녀는 드디어 도착한 건가, 하며 퇴마를 할 것도 아닌데 혼자서 굳센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둘은 목표 층에 도달할 때까지 전광판에 나타나는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히 좁은 공간에 둘만 있자 적적해진 금비가 물었다.
“선생님은 유명해요?”
“일반적인 사람보다 실력은 좋아. 특이한 건 나는 나를 제대로 알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오더라고. 이게 사회 네트워크인가.”
“대학생 생활이 어떤 건지는 모르면서 요상한 언어는 잘 알고 계시네요.”
띵 소리와 함께 목표층에 도착하자 염라는 그녀의 말을 가볍게 씹으며 엘리베이터를 나섰고 금비는 쳇, 하며 그의 뒤를 쫓았다.
집 앞에 멈춰선 그는 초인종을 꾹 눌렀다.
“네!”
택배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처럼 다급한 목소리로 문이 벌컥 열리는 순간 염라는 뒤로 슬쩍 물러섰다. 금비는 갑자기 그의 이상한 행동에 의문을 품고 물었다.
“왜 피하시는……!”
꽝―!
“억!”
말이 끝마치기도 전에 철문에 정확하게 얼굴을 맞은 금비는 얼굴을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났고 안에 있던 여성은 놀라서 금비의 상태를 보고 있었다.
“어머, 어떡해!”
“아씨… 아파.”
약간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고 염라를 바라봤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이봐요, 선생님!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알려줘야지!”
“어이쿠, 이런. 항상 혼자만 하다 보니 신경을 못 썼네.”
짜증날 정도로 알기 쉬운 연기 톤으로 말하자 금비는 당장 한 대 치고자 싶었으나 사람이 보는 앞이라 그럴 수도 없어서 요동치는 마음을 꾹꾹 참아냈다.
둘의 만담을 보고 있던 집주인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있었다.
“들어가시죠.”
염라가 현관문을 활짝 열며 말하자 집주인은 이상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염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따라 들어갔고 괜히 자기만 열 내고 있단 생각에 더 화가 치밀어 오른 금비가 씩씩 거리며 마지막에 들어갔다.
“…….”
금비는 집 안을 보면서 자기 방이 이랬던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적, 마늘 등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돈 꽤나 썼다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불상들이 집 안 곳곳에 자리를 가득 꿰차고 있었다.
“이, 이쪽으로…….”
집주인 여성이 염라를 이끌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꽉 닫힌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적우적―
안에서는 쩝쩝 거리며 뭔가를 먹고 있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고 금비는 혈색이 사라진 얼굴로 염라의 옷을 꽉 잡았다.
끼이이이―
염라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컴컴한 방 안에서 방보다도 더 진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체구는 아직 어린아이. 방에는 알파벳 문자로 된 방음 매트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온갖 소스들과 음식물의 잔해가 묻고 널브러져 있었다.
작은 체구의 아이로부터 쩝쩝 거리며 음식물을 씹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염라는 다시 천천히 문을 닫았고, 금비는 어느새 그 광경을 보고 있기 힘들었던 건지 그의 옷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해요? 아이는…….”
“괜찮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여기에 있어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방으로 들어오지 말고요. 아니면 아이를 절대 구하지 않겠습니다.”
염라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옷에 얼굴을 묻고 벌벌 떠는 금비를 바라봤다.
금비의 부모가 비명을 지르자마자 그녀에게 달려오며 그의 퇴마 의식을 방해했던 것처럼 자식에게 극성인 부모들은 아이의 비명 소리가 나면 목숨을 걸고 뛰어 들어올 것이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퇴마 의식을 할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니 일이 복잡해지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 선생님… 저는요?”
그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묻자 염라는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무서워하는데 같이 들어가도 될까, 아니면 여기서 기다리게 할까.
퇴마사가 될 거라고 했으니 보여주면 그녀 나름대로 공부도 될 것이다. 악령이 뭐고 탐이 어떤 놈들인지 알 수 있을 테니 좀 더 진로를 결정할 때 신중해질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곁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반대로 악령 혹은 탐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들의 행동을 제3자의 눈으로 보게 되면 그것이 자신의 몸속에 있었다는 걸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도 이렇게 겁에 질려 있는데 만일 제대로 보게 된다면 도망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그녀를 이용해 저승으로 돌아가는데 큰 차질이 생긴다.
차라리 처음부터 쫓아오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면 일이 복잡해질 일은 없는데 왜 이리 상황이 안 따라주는 건지, 아무래도 행운의 신인 가네샤, 포르투나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그녀의 절박함을 한 번 이용해 보고자 했다.
“아마 여기서 그쪽은 악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면 무서워서 도망갈 거야. 퇴마 따위는 무서워서 안 하려고 할 테고, 그쪽은 그쪽이 원했던 게 얼마나 왜곡된 상상이었단 걸 깨닫게 되겠지.”
“아…….”
평생 재능이 없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게 막히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그녀의 트라우마였다. 염라는 그녀의 트라우마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그녀의 성격상 자신이 찾아낸 재능, 설령 그것이 거짓된 재능이라 하더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리라.
“못하면 됐어. 여기 있던가, 도망가던가.”
그녀가 빠르게 답을 내지 못하자 염라는 그녀의 조급함까지 이용해 보려고 문고리를 잡았다.
겁에 질려 아주 잠깐 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염라가 홀로 방에 들어가기 전에 그의 옷을 덥썩 잡으며 간신히 입술을 뗐다.
“도…….”
그녀는 자신이 뭘 주저하는 건지 생각했다. 퇴마사가 될 거라면 이미 각오한 일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귀신, 오싹한 괴물들을 보면서 사람들을 구원하리라는 꿈. 추악한 오물을 처리하며 사람들에게 깨끗한 세상을 보여주는 청소부 역할을 한다고 마음먹지 않았던가.
스스로를 다그치며 결의를 다진 그녀는 눈에 힘을 주고 외쳤다.
“도망 안 가요! 같이 들어가요!”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을 본 염라는 보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미소를, 스스로에게는 철저한 가면과 같은 미소를 띠우며 문을 열었다.
“말했지, 그쪽은 위협 받고 있다고. 내 곁에만 있으면 안전하니까 꼭 곁에 있어.”
마치 고백과 같은 말에 겁에 질려 있던 마음은 어디가고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