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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8화)


3. 카드 패 (2)

“이어서 설명할게. 혼령과 악령에 대해선 대충 알고 있지? 흔히 말하는 귀신들이야. 이곳에 미련이 남아 저승사자의 인도에서 일탈한, 뭐 일종의 탈옥수들이지. 저승사자 혼자서 약 만 개 이상의 혼을 옮기는데 그 중에 탈출한 혼을 잡는 게 쉽지 않거든.”
“엑?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죽어요?”
흔히들 혼을 옮긴다 하면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염라는 그녀의 말에 이미 준비된 대답인 듯 즉각 답했다.
“세상에 혼을 가진 생물이 사람만 있는 건 아니야. 동식물도 혼이 있지. 도망가는 혼들은 대부분이 인간들이 가진 혼이지만.”
저승사자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푸념 소리를 들었다. 왜 이리 인간들은 욕심이 많고 이 세상에 미련이 남는지 모르겠다며, 복수 수준의 집념이 강한 혼이 아닌 이상 죽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탈출해서 일을 이렇게 꼬는지 모르겠다며, 염라조차 어떻게 할 수 없음에도 그들을 어떻게 좀 해달라며 울며불며 매달렸었다.
“되게 잘 아시네요.”
아무런 적의가 없는 말이었으나 염라는 제 발에 저려 뜨끔하고 횡설수설처럼 들리듯 빠르게 변명했다.
“아, 퇴마사들과 저승사자들은 긴밀한 관계라서 그래. 탈출하는 혼들을 다시 저승으로 보내는 게 퇴마사들의 일이기 때문이지.”
“아아, 그렇구나!”
“혼령은 대부분 집념이 강하지 않아 금방 성불해. 지나가는 저승사자에게 잡혀 끌려가기도 하고. 하지만 복수 같은 원한으로 가득 찬 악령은 그렇지 않아. 사람 몸속에 빙의하며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한 도구로 삼고, 교묘하게 저승사자의 눈을 피해가. 그놈들을 잡는 게 퇴마사고, 이게 대다수 우리가 알고 있는 엑소시즘… 퇴마(退魔)야.”
퇴마사는 굉장히 정의로운 직업이구나, 하며 그녀는 무슨 상상에 빠진 건지 헤픈 웃음을 흘리며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염라가 바닥을 탕 두드리며 그녀를 환상 속에서 꺼내고 엄중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잘 들어, 문제는 지금부터야. 악령도 물론 퇴마를 하면 목숨이 위험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탐(貪)과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들이야.”
생소한 단어에 그녀는 메모지에다가 탐을 끄적이며 눈알을 굴렸다.
“탐? 악마는 들어봤지만 탐은 뭐죠?”
그는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탐 또한 악마로 치부되는 존재들이야. 모든 생물들에게 있는 혼… 흔히 영혼이라 부르는 게 존재해. 아까 말한 백과 영혼을 합쳐서 혼백이라 하는데 그것을 주식으로 하는 녀석들이지.”
“주식이라 하면…….”
“혼을 먹고 산다는 뜻이야. 악마 또한 혼백이 주식이지. 즉, 탐이 수많은 혼백을 먹고 큰 게 악마야.”
“헐.”
그녀는 흥미로우면서도 충격 먹은 얼굴로 메모지에 그의 설명을 가득 채웠다.
여태까지는 대부분 언뜻언뜻 들어본 단어들이었지만 탐이라는 단어는 무척 생소했고, 심지어 그들이 악마가 되기 직전의 상태라고 한다. 말의 새끼를 망아지라고 부르고 소의 새끼를 송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했다.
“원래 퇴마를 하다보면 귀신을 더 많이 만났을 텐데 요새는 왜인지 탐이 더 많아져서, 그 녀석들을 더 자주 볼 거야.”
염라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굳이 그녀에게 그걸 설명할 이유는 없었거니와, 그걸 밝히면 자신이 일반인이 아니란 걸 들킬 수 있었다.
“어떻게 생겼는데요?”
“그쪽도 미리 봤을 거야. 이 일대 주변에 제법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머리의 절반이 가로로 잘려있고 인간처럼 생겼는데 짐승처럼 네발로 기는 괴물들.”
“아, 아아!”
염라가 머리를 가로로 휙 그으며 설명하자 금비는 본 적이 있는 듯 탄성을 질렀다.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라 악마라고 생각했는데 그 악마의 새끼들이라니. 게다가 그들은 마치 그녀를 먹잇감으로 삼은 듯 그녀 주위에서만 맴돌고 있는 걸 기억했다.
“왜, 왜 저만 쫓아오는 걸까요? 얼마 전에 악마한테 당해서 그런 건가?”
“그런 것도 있지만, 사람 속에 기생하는 악령이나 악마와는 다르게 탐은 아무 인간에게 기생하지 못해. 이걸 설명하려면 좀 더 설명이 필요한데…….”
염라는 빈 종이를 들어 딱 중간 지점에 선을 일직선으로 그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양의 세계, 오른쪽에는 음의 세계라고 적었다.
“양의 세계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야. 모든 혼백이 뭉쳐 있는 세계. 그리고 음의 세계는 양의 세계의 대칭되는 일종의 그림자세계. 생물이 죽으면 가장 처음 보는 세상이며, 탐은 음의 세계의 주민과 같아. 음의 세계에서 저승사자의 인도를 받지 않고 돌아다니는 혼들을 마치 사바나의 짐승들처럼 노리고 있지.”
그는 음의 세계 쪽에 악마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악마는 탐이 혼을 먹고 크면 악마가 되는데 이 악마는 음의 세계와 양의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람의 몸속에 기생해 혼백을 빼먹는 악독한 놈들이야.”
“…이거 소설이에요? 그럴싸하게 지어내셨네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인 듯 그녀는 메모지에다가 적다 말고 불신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괜히 입 아프게 설명했나. 생각해보니 너무 장황하게 설명한 감이 없지 않아 싶었던 염라는 음의 세계를 찍찍 그었다.
“아무튼, 탐들이 그쪽을 쫓아다니는 건 그쪽이 양쪽 세계에 걸쳐져 있어서야. 영안을 튼 사람들은 전부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지. 음의 세계에도 살아가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니 그쪽만큼 별미인 것도 없거든.”
염라가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입맛을 다시자 금비는 힉, 하며 온 몸을 움츠리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장난. 게다가 난 그쪽 몸에 관심 없다니까.”
“…허.”
그녀는 자존심이 온갖 농락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래봬도 여자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아마 조금만 더 지나면 음의 세계와 이곳을 구분할 수 있을 거야. 그때 보면 내 말이 뻥인지 아닌지 알겠지. 음의 세계에 대한 자세한 건 그때 가서 설명해 줄게.”
낙서가 된 종이를 곱게 접은 그는 쓰레기통에 던져 정확하게 골인시키고는 설명이 끝난 듯 지친 숨을 내쉬었다.
“잠깐, 질문! 탐이나 악마는 대충 알겠는데 악령은 어떻게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와요? 그들은 음의 어쩌구…에 있는 거 아니에요?”
“아, 그 이야기를 안 했네. 흔히들 기가 허해진다고 하지? 보통은 그럴 일이 없지만 기가 약해지면 생명체가 죽었다고 판단해서 음의 세계로 이동하게 돼. 그럼 산 사람은 귀신을 보게 되고 악령은 그 허약해진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거고. 악마도 비슷하게 사람의 약해진 마음으로 들어오고.”
“아… 그럼 건장한 사람이 폐가에 갔다가 빙의 되거나 붙는 건요?”
“폐가는 음기가 엄청 강해. 양의 세계임과 동시에 그곳은 귀신의 세계, 즉 음의 세계인 거야. 음의 세계는 귀신들이나 탐들이 떠돌아다니는 곳이니 그 중 한 명이 붙어오는 거란다.”
그녀는 연신 흥미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피곤해 보이는 그에게 하나 더 물었다.
“강령술 같은 건 진짜 되는 거예요? 어떻게 이쪽 세계로 불러오는 거예요?”
“강령술은 최대한 주변을 음기가 가득하게 만드는 주술이야. 아주 일시적으로 음의 세계로 만들어 끌어들이는 거지. 그 사이에 양질의 혼백이 끼어 있으니 귀신들은 몸을 차지하려고, 악마나 탐은 혼백을 먹으려고 좋다고 달려드는 거지. 난 안 해봐서 모르겠네.”
퇴마사가 강령술을 안 하다니 의외라고 하며, 자신은 해볼까 싶었으나 지나다니는 귀신만 봐도 무서운데 자신에게 달려드는 귀신을 보면 까무러칠 것 같아 금방 마음을 접었다.
그녀는 또 다른 질문으로 공포 영화에 보면 막 사람이 사는 집에도 귀신이 나타나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 보려고 했으나, 염라가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그녀가 묻기도 전에 답했다.
“묘지나 강한 원한을 갖고 죽은 사람이 있는 건물, 혹은 물건도 똑같이 음기가 강해 양의 세계와 음의 세계의 통로가 돼. 공포 영화에서 사람 살고 있는 집에 귀신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라 보면 되겠네.”
“오… 이렇게 보니 진짜 퇴마사군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소리에 염라는 코웃음 한 번만 치고는 설명하느라 지친 목을 물을 통해 부드럽게 적셨다.
“질문은 끝?”
“음, 마땅히 떠오르는 건 이제 없어요.”
드디어 길고 긴 설명이 끝났다 싶었던 염라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그 사이 금비는 염라가 장황하게 설명해준 것을 노트에다 정리했고 복습하듯 몇 번이고 되뇌며 읽어보고 있었다.
“그게 기본적인 지식이야. 퇴마하는 방법은 나중에 알려줄게. 그쪽이 나 자는데 깨워서 피곤하거든.”
“알겠어요, 오늘 고맙습니다, 선생님!”
어느새 호칭이 선생님으로 바뀌었고, 염라는 그 호칭 쓰지 말라고 하려 했으나 너무 푹신한 침대와 자신을 꽉 감싸는 아늑한 기분에 금방 잠에 빠져 들어버렸다.

해가 내려앉은 늦은 저녁 시간, 주택가.
금비는 곤히 자는 염라를 굳이 깨우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갔다.
낮부터 여태까지 그가 알려준 것들을 되새기고 공부하며 그의 집을 몰래 뒤지고 있던 것이었다.
‘결국 못 찾았네.’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방을 뒤진 건 그의 일기를 보기 위해서. 남의 일기장은 보면 안 되는 건 알고 있지만 너무 궁금했다. 앞부분 밖에 읽지 못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염리라는 동생이 그에게 어떤 큰 상처를 입힌 건 틀림이 없었다.
그 큰 상처가 뭔지 알고 싶었는데 왜인지 그의 일기장이 사라진 것이었다.
‘꽂아놨던 자리까지 눈여겨봤는데…….’
염라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손에 닿지 않게 감춘 것이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초현실적인 힘은 믿지 않는 듯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더 이상 집을 함부로 뒤지면 염라가 일어날 것 같고, 그러면 겨우 만들어 낸, 습자지보다도 얇은 얄팍한 신뢰는 산산조각 나서 퇴마는 물론이고 아마 상대조차 안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너무 늦었다.’
침대에서 몸져누웠다가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늦게까지 돌아다니냐며 잔소리 한 움큼 들을 것이다. 그녀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며 메모지를 꺼내 다시 한 번 더 복습했다.
어려운 말도 있고, 자신의 머리로는 전혀 이해 못할 내용도 있지만 무턱대고 머릿속에 우겨넣고 있었다.
스스스―
“……?”
일순간 갑자기 정면에서 차가운 바람처럼 오싹한 기운이 느껴지자 금비는 발걸음을 멈추고 창백해진 표정으로 메모지에 집중했다. 갑자기 나타난 오싹한 기운이라면 십중팔구 귀신. 하필이면 메모장에는 자신을 다그치는 글귀가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

『탐이 나를 노리고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할 것!』

자신이 이렇게 위험한 걸 알았으면 차라리 염라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을 것이리라.
아직 차가운 한기는 그녀를 힘껏 덮치고 있지 않았다. 먹잇감이 눈치 못 채게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되돌아간다고 해도 괜히 자극만 시킬 것 같아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았고, 앞을 보면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오면서 놀래킬 것 같아 무조건 숙이고 그들을 자극시키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집에 잘 도착할 수 있기를 빌며 발을 내딛었다.
“조심, Lady.”
푹 하고 머리에 누군가가 맞닿자 금비는 히익, 하고 한 번 떨더니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라?”
차가운 기운은 그새 어디 가고 요새는 보기 힘든 영국 신사의 모습처럼 정장을 쫙 빼입은 큰 키에 용모가 깔끔한 미남자가 머리에 이고 있는 중절모를 까딱 거리며 그녀를 내려다 봤다.
정말로 외국인이라도 되는 건지 금발 벽안에 딱 봐도 서양 얼굴의 남자가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순식간에 몽롱한 기분을 받으며 눈빛이 흐려졌다.
“핫.”
그의 품에 안기려는 순간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잽싸게 남자에게서 떨어지며 자신이 뭘 하려 했던 건지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남자는 금비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좁히더니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띠웠다.
“괜찮습니까? 갑자기 여기에 멈춰서 어디 아픈 건가 했습니다.”
“아, 괜찮아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그를 지나가는 순간 남자는 파란 눈알을 굴리며 지나가는 그녀에게 건네듯 말을 걸었다.
“혹시 이 일대에 불그스름한 피부에 백발의 금안을 가진 남자를 본 적 있습니까?”
갑자기 말을 건네서 화들짝 놀란 그녀는 몸을 천천히 꺾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발 금안…이요? 글쎄요, 그렇게 특이한 사람이면 SNS에 바로 올라왔을 거 같은데……한 번도 본 적 없어요.”
“흐음,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Lady.”
남자가 중절모를 까딱거리자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종종 걸음으로 멀어졌다.
‘불그스름이면…….’
남자의 말을 되뇌고 있던 그녀는 순간적으로 염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지웠다. 그런 피부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염라 하나뿐은 아니라 생각했고, 심지어 염라는 백발 금안이라면 염라와는 너무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탈색해서 백발이면 또 모를까, 눈까지 금색이면 어떤 코스프레 같은 걸 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아, 그러네. 저 사람 옷차림새도 그렇고, 코스프레 하던 사람이구나.’
사진이라도 찍을 걸 그랬나.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는 뒤를 홱 돌아봤다.
“…아, 갔나 보다.”
어느새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자신이 지나온 자리와 시원하게 뻥 뚫린 길목만이 있었다.
꽤 잘생긴 남자였기에 사진이라도 찍어두면 두고두고 눈 정화 정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녀는 아쉬움 마음을 접고 행여 더 늦을까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
마치 감시하듯 골목에 등을 대고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남자의 손에는 검붉고 진득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키에에…….”
그의 손에 있는 곳에는 짐승 소리인지 무엇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남자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에 붙잡힌 머리의 절반이 가로로 잘린 흉측한 얼굴의 괴물을 바라봤다.
“저승사자도 못 알아보나, 한심한 것들…….”
꾸드득―
남자의 손에는 무슨 장치라도 한 건지, 아니면 원래 악력이 센 건지 괴물의 머리가 종이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괴물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의 팔을 긁고, 발로 있는 힘껏 찼으나 남자는 꿈쩍도 안하고 괴물의 얼굴을 더욱 세게 쥐었다.
퍼석―!
진득하고 검붉은 피가 그의 얼굴에 후두둑 튀어 오르며 괴기한 모습을 연출해냈다.
머리가 터진 괴물은 더 이상 자의가 없는 듯 발버둥거리던 몸을 멈추며 바닥에 피를 흩뿌리고 쓰러졌다.
“여자는 미혹술이 안통하고, 주변에는 탐이 들끓는다…라…….”
골목길 안에는 대략 다섯 마리의 괴물들이 바닥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져 있었다. 남자는 가슴에 꽂아둔 행커치프를 꺼내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바닥에서 시신 하나 남지 않고 하얀 재로 날아가는 괴물들을 익숙한 듯 바라봤다.
“…드디어 꼬리를 잡은 거 같습니다, 염리님.”
의미심장한 말을 흘리던 그는 어느새 수평선 너머로 머리 하나만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