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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7화)


3. 카드 패 (1)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염라는 부스스한 얼굴로 침대에서 잠을 깨며 현관문을 바라봤다.
띵동― 띵동―!
밖에 있는 사람은 참을성이 없는 건지 연신 초인종을 눌러댔고, 염라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고 힘껏 열었다.
“앗!”
아예 현관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려고 한 건지 단발머리의 귀염성 가득한 아가씨가 조막만한 주먹을 꾹 쥐고 문이 열린 그 자리에 동상처럼 굳어서 서 있었다.
“…뭡니까?”
염라는 낯익은 그 여성을 보며 얼굴을 구기자 그녀는 들고 있던 주먹을 조심스레 다른 손으로 가리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염라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며칠째에요. 사람 자고 있는데 방해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쪽은 재능 없다니까!”
한금비, 그녀는 포기를 모르는 여성이었다. 그녀에게 퇴마의 재능이 없다는 게 밝혀진 이후로도 그녀는 끈덕지게 붙어 염라에게 뭔가를 알아내려고 노력했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퇴마에 관련된 언어를 줄줄줄 읊기도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훼방을 놓는 그녀를 보며 염라는 아예 거칠게 밀치고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인내심을 당기는 고무줄이 곧 끊어질 듯 팽팽해졌다.
“헤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귀엽고, 헤픈 웃음을 지으며 마치 상대를 귀여움으로 유혹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염라는 무심하게 현관문을 쾅 닫았다.
“아아! 아씨, 뭐 남자가 그래! 이렇게 귀엽게 웃어줬으면 이야기라도 들어야 할 거 아녜요!”
본인이 귀엽다고 스스로 말한다. 염라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귀를 막았다.
항상 문전박대하면 현관문 앞에서 온종일 떠들어 대고, 그러다가 주변에 민원이 들어오고, 결국 그녀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고 차나 대접한 뒤 다시 쫓아내는 식이 반복이었다.
덜컹―!
“오? 오늘은 빨리 열어줬네요.”
이번에도 크게 한 소리를 해보려고 했던 찰나 염라가 마치 그녀의 수를 읽은 듯 잽싸게 문을 열었고, 금비는 드디어 먹혀들었다는 표정으로 방긋 웃었다.
그녀와의 기 싸움에서 진 염라는 그녀를 방으로 들어오게 한 뒤 익숙하게 차를 끓여 그녀에게 내밀었다.
“도대체 뭐가 궁금한 건데요?”
그녀가 매일 같이 이 집을 들락날락 했으나 결국 염라에게 퇴마에 관련한 걸 알려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단지 혼자서 염라의 책을 보고,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글씨를 프린트해서 내민다던가, 이상한 주문을 외워놓고 퇴마할 때 이렇게 하는 거냐는 등 염라는 전혀 모르는 것만 말하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이야기를 들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염라가 물어볼 때 마다 늘 그런 식으로 말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염라의 책상을 뒤졌다.
“제 책상 뒤져봐야 그쪽이 원하는 거 없거든요. 그냥 나한테 말해요! 빨리 해결하고 이 집 나가주길 원하니까!”
그의 책장에서 책을 꺼내 대강 훑어보고 있던 그녀는 결의를 다진 굳센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저 포기 안 하려고요! 재능이 없더라도 노력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퇴마는 재능이 없으면 노력으로 커버가 안 돼요. 걸음마도 못하는데 달리기를 어떻게 하겠어요, 글을 모르는데 책을 어떻게 읽겠어요.”
염라가 직설적으로 쏘아 말하자 금비는 책을 읽던 걸 멈추고 입술 꾹 물었다.
“그쪽이 너무 평탄한 삶을 살아서 꿈이 없고 재능을 발견 못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그쪽만 그런 거 아니에요. 게다가 그쪽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당신의 그런 생각조차 배부르다고 생각할걸요.”
“…….”
조심스레 책을 탁 덮은 금비는 왜인지 화를 내지도, 얼굴을 구기지도 않고 괜찮은 척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울 듯 떨리고 있었다.
“알아요, 제가 얼마나 병신 같은지. 그래도 처음으로 이렇게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어요. 아무런 재능도 없고, 열정도 없던 제가 드디어 뭔가를 하고 싶다고 느꼈어요. 그것만으론 안 되는 걸까요?”
공부는 그럭저럭 하고, 완만한 대인 관계에 집안도 부족함이 없이 살았던 그녀. 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자신보다 좀 못살아도 꿈을 좇는 사람들이 아름다웠다. 뭔가 의지를 갖고 하고자 하는 모습을, 그 열정을 갖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런 마음이 들어찬 그녀의 말은 어떤 사람이 들어도 심금을 울릴 만한 정도였다.
문제는 염라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네, 안 돼요.”
그런 말에도 절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쳇.”
나름 감동받기 좋은 타이밍에, 감동받기 좋은 말을 내뱉은 것 같은데 통하지 않자 금비는 입을 내밀며 다시 책을 폈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뭔가 떠오른 듯 의자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
“참, 막 만화 같은데서 보면 귀신을 보는 눈을 다른 사람한테 기증하면 그 이식받은 사람이 귀신을 볼 수 있는데, 그럼 눈 안에 귀신을 보는 어떤 장치가 있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눈만 다른 사람한테 준다고 그게 보이는 건 아니에요. 뇌도 같이 줘야지.”
귀신을 보는 건 정신에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뇌와 눈을 준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닐 테지만, 어차피 그걸 입증할 방법도 없고 염라 또한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리듯 이야기했다.
그녀는 그렇구나, 하며 그걸 또 순진하게 믿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책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퇴마에 관련된 책은 없는데.”
“아, 이거요!”
금비가 책을 펼쳐 보여주자 염라는 멀뚱멀뚱 그녀가 보여준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쓰여진 자신의 일기를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면 안 되는 자신의 개인 생활이 적힌 일기였지만 어차피 인간은 알아볼 수도 없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뒀다.
“염리… 이름인가? 동생이 있었군요!”
“네, 뭐. 잘 따르던 동생이었는데… 음?”
익숙한 이름에 굉장히 무덤덤하게 묻자 염라 또한 무덤덤하게 받아치려고 하다가 뒤늦게 머리가 회전하며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아아, 뭐해요!”
그녀에게서 책을 뺏은 염라는 무슨 일이지 하며 자신의 일기장을 쭉 읽어봤다.
모두 신계의 언어였다. 그녀가 보고 있는 페이지는 물론, 다른 페이지들 전부 그녀가 읽을 수 없는 언어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 이 걸 보고 읽은 것이었다. 심지어 어디 어눌한 해석이 있는 게 아니라 완벽하게.
“…이걸 어떻게 알아봤어요?”
“어떻게라뇨? 그냥 보이는 걸요?”
“…….”
그럴 리가. 그녀는 어딜 봐도 천성 인간이었다. 악마에게 씌어 영안이 트고 귀신을 보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들이 그렇다고 신들이 쓰는 언어를 읽을 수 있지는 않았다.
“아니, 원래 못 봤잖아요.”
일전에 그녀에게 적성에 관한 주술을 썼을 때를 떠올리며 묻자 그녀는 음, 하며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 특이한 글씨라서 알아보기는 힘들었는데 집중하고 보니까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염라 씨는 악필이네요!”
“…….”
이런 일이 없었기에 염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건지 차차 되짚어 나갔다. 원래 인간이라면 모를 문자를 어느 순간 알게 된,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악마에게 씌었을 때 생긴 능력이리라.
왜 이 여자에게만 이런 능력이 생긴 것일까.
‘혹시…….’
그는 뭔가 짐작이 간 듯 일기장을 빠르게 넘기더니 한 구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읽어봐요.”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으음…….”
눈에 힘을 주고, 가늘게 뜨고, 고개를 이리 돌리고, 끙끙 거리며 보고 있었으나 이내 눈이 아픈 듯 시선을 떼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하네요. 이건 왜 안 보이지?”
특정 언어에는 보이지 않는 점에서 그는 그녀의 문제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기억나요? 그쪽 집에 온갖 글씨로 도배됐던 거.”
“네. 벽지는 아예 뜯어버리고 새로 칠해서 없지만 바닥은 아직도 남아 있죠.”
그래서 바닥만 보면 몸서리 쳐진다며 뒷말을 붙였지만 염라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가 당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그들의 문자를 쓴 적이 있어요. 짧은 시간일 테지만 그게 머리에 각인된 거죠.”
“…엑?”
그녀는 자신의 머리와 눈을 한 번 만지고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럼……염라 씨가 쓴 그것도 악마의 언어라는 거예요?”
그럼 그쪽도 악마? 하며 겁을 먹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염라는 일기를 탁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오해할 법도 한 상황이지만 자신이 신이란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낱 떠들기를 좋아하는 인간이었고, 인간에게 있어서 비밀이란 짧은 수명만큼 오래 지켜지지 못하는 얇디얇은 실이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이 사실에 대해 뻥긋하면 저승사자들에 의해 고문을 받고 자신의 소재지를 그대로 알려줄 게 뻔했다.
우선은 대충 얼버무려 볼까 생각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전 퇴마사고, 악마는 아니에요. 말하자면 복잡한데… 후우, 원랜 읽을 수 없는 건데…….”
착한건지 순진한 건지 그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비치자 금비는 알겠다며 이해한다는 듯 끄덕였다.
염라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단 생각이 들었다.
퇴마의 재능은 없는데 하필이면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 신들의 문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 정확히는 그녀는 악마의 문자를 읽은 것이지만, 신계의 문자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조금만 가르치면 읽을 수 있고, 아마 언어를 가르치면 언어 또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말을 배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코미디인가. 영광스럽게 여겨야 할 수도 있겠지만 신들의 언어는 신들만 쓸 수 있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문자와 언어, 그 하나하나가 세상의 질서를 뒤바꿀 수 있으며 더하면 파괴하거나 창조까지도 가능한, 인간에게 주기엔 너무 위험한 힘이었다.
‘잠깐만, 이걸 잘만 이용하면…….’
염라는 그녀가 이런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그를 위해 이런 운명을 선사해 줬다고 믿을 정도로 그녀는 아주 귀중한 카드 패였다.
인간으로서는 전무후무한 신의 힘 사용자. 그의 조력자가 될 수 있고, 그의 계획을 앞당길 수 있는 아주 귀중한 패였다.
“퇴마가 배우고 싶다 했죠?”
갑자기 염라가 본 적도 없는 서늘한 눈빛으로 묻자 그녀는 갑자기 온몸에 피가 굳는 느낌을 받으며 입술을 떨었다.
“아, 아… 네, 네!”
“좋아요. 그쪽에게 새로운 재능이 발견됐어요. 이건 기존 퇴마를 뒤엎을 정도로 엄청난…….”
아주 구미가 당기는 미끼를 선사하자.
그녀가 자신을 믿을 수 있게, 이 힘의 리스크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고 염라를 위해, 그리고 본인의 만족을 위해 쓸 수 있게 해주자.
염라는 오싹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보이지 않게 책으로 가렸다.
“퇴마를… 알려준다는 거예요?”
“네. 뭐 비슷해요. 좀 전까지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외의 힘을 가지고 있었네요.”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일을 찾았다고 생각하자 눈을 빛냈다. 신에게 생명이라도 내줄 수 있을 정도로 간절히 소망하던 그녀는 손깍지를 끼고 터져 나오는 쾌재를 애써 꾹꾹 참아냈다.
“어, 언제 할까요, 전 지금도 배울 자신 있어요!”
그녀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본 염라는 책꽂이에 일기장을 쑥 꽂았다.
‘일기장은 앞으로 숨겨놔야겠군. 위험하겠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글 따위는 일기장에 있을 리 없으니 염라를 진짜 염라대왕이라고 생각할 순 없겠지만 그 외 저승이라던가, 신계라던가에 대한 설명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최대한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간단한 테스트부터 할게요. 일기장을 읽을 수 있으니까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질서가 뒤엎일 만한 힘은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기본만 알려줘도 이 인간은 무궁한 영광과 힘을 지니는 것이다. 아마 최소한 지금 세상에선 그녀와 대적할 수 있는 퇴마사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는 종이에 지렁이 같은 글자를 써내려가며 금비에게 내밀었다.
“읽어봐요.”
“으음… 본인, 한금비는 이것을 읽을 수 있단 것을 제 심장을 담보 삼아 죽을 때까지 함구하겠습니다. 응?”
마치 무언가 계약서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던 금비는 종이를 이리저리 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그쪽의 능력은 퇴마계에서도 금기시 되는 거예요. 이단이라고 치부되는 그런 거죠.”
“엑?”
그녀는 자신의 입을 딱 닫고는 어쩌지 하며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혹시나 이 남자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은 아닐까 온갖 무서운 상상에 빠져들었다.
“걱정 마요. 거기에 쓰여 진대로 그걸 읽을 수 있단 걸 알리지만 않으면 큰 위험은 없어요. 특히 거리를 걷다가 떠들고 다니지 마세요.”
그가 또다시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압박하자 그녀는 온 몸이 짓눌린 기분에 속이 들끓는 것 같았다.
“네, 넵!”
그녀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간신히 뱉어냈고 그녀에게서 동의를 받아내자 염라는 만족한 듯 싱긋 웃었다.
“좋아요. 그쪽도 이제 퇴마에 몸을 담갔으니 이쪽 세상에 대한 설명을 할게요. 그리고 그쪽한테 말을 놓도록 할게요,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니.”
“네, 선생님!”
그녀가 굳센 의지를 가진 표정으로 힘차게 말하자 염라는 선생님 소리 넣어두라며 불편한 표정을 짓고 손사래를 쳤다.
그녀가 반짝반짝 거리는 눈으로 염라를 바라보자 그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지, 중얼 거리며 턱을 잡고 머릿속에서 정리를 차곡차곡 해나갔다.
자신이 저승에 있을 때 사자들에게서 퇴마사와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들은 기억이 있으며, 수명이 다해 저승으로 온 퇴마사들에게도 저승사자와 어떤 관계로 지내는지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좋아, 우선 그쪽에게 천국이니 지옥이니 혼이니 뭐니 하는 것 복잡하니까 설명하지는 않을게.”
염라가 단숨에 말을 놓자 금비는 살짝 놀라더니 이내 그는 되게 쿨한 성격이구나 하는 걸 깨닫고 어디서 난 건지 모를 작은 메모지와 펜을 꾹 쥐고 그의 입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원랜 영혼과 관련해서 설명해야 하는데 다 건너뛰고 인간에 몸엔 백(魄)이라는 게 존재해. 그쪽 이름, 성격, 정신, 기운, 더 크게 나가선 그쪽의 체형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걸 전부 백이라고 불러.”
백은 생물의 죽게 되면 육신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며 혼이 환생하면 백이 생성돼 몸을 감싸게 된다.
“중요한 건 퇴마사가 사용하는 힘은 전부 백에서 오는 기운이라는 거야. 이걸 기백(氣魄)이라고 불러.”
기백을 이용해 주술을 사용해도 백은 소멸되었다가 다시 원상태로 회복하게 된다. 인간이 몸에 상처가 나도 재생하는 것처럼 백이 줄어들면 다시 시간이 지나며 재생되는 것이었다.
다만 염라는 기백의 최대치가 봉인당한 상태였기에 시간이 지나도 회복이 안 된다. 그렇기에 그는 직접적으로 백을 흡수하는 방법을 통해 힘을 모아야 했다.
“퇴마사뿐만이 아니라 악마들이나 저승사자들, 뭐 세간에는 신들 또한 백을 통해 힘을 사용한다고 해. 신은 혼이 없기 때문에 다른 생물체의 백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그냥 힘과 같은 거지만.”
금비는 그의 설명에 메모지를 끄적이지 않고 멍하니 바라봤다. 그냥 귀신 퇴치하는 수준일 줄 알았는데 기백이니, 뭐니 하며 온갖 전문용어가 튀어나오자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중 퇴마사가 할 일은 악령, 혼령, 악마를 성불시키거나 쫓아내는 거야. 이게 굉장히 위험한 일인데, 잘못되면 본인이 죽을 수도 있어.”
“아아, 영화에서 봤어요. 막 악령이 몸속에 있는데 엑소시즘을 하는데 실패하면 그 사람에게도 감기처럼 옮고, 막 주변 물건도 움직이죠!”
“맞아. 퇴마 의식이란 게 시술자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악에게 이쪽으로 오라며 유혹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악이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그 순간을 붙잡아서 쫓아내는 거고. 공부는 열심히 했나 보네.”
염라에게 칭찬받자 금비는 갑자기 볼이 상기되며 귀엽게 웃어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칭찬받는다는 게 이리 기쁜 일이었던가. 부모님께 공부 잘했다며 칭찬받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