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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6화)


2. 찰거머리 (3)

자신을 시험했다는 듯 말하자 금비는 이를 빠득 갈며 한 대 칠 기세로 바라봤다.
“저기요. 저 지금 기분이 진짜 별로거든요. 전 그쪽한테 더 이상 용건 없고, 그쪽도 저한테 더 이상 용건 없는 거 같고, 이제 가도 되죠?”
가라 하겠지. 그의 성격이 어떤지 대강 파악한 금비는 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을 홱 돌렸다.
“퇴마사가 왜 되고 싶은데요?”
“……!”
의외의 말에 금비는 그를 향한 기분 나빴던 감정이 눈 녹듯 사르르 내려가며 흥분에 찬 얼굴로 염라를 바라봤다.
“도,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쉽게 넘어가는 여자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고, 또한 너무 앞서 갔나 하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염라는 그녀의 행동에 관심이 없는 듯 제 말만 하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보통 퇴마사와는 달라요. 이야기나 한 번 들어보려는 거죠. 우선 제 집으로 가죠. 그곳은 당신이 소리쳐도 흉 볼 사람은 없으니까.”
염라가 발길을 돌리며 걸어가자 금비는 좀 전에 인상 찡그린 얼굴은 어디가고 그를 졸졸 따라 걸어갔다.
분명히 아까 왔던 길이지만 갈 때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쾌활한 표정으로 걸었다. 누가 보면 감정 기복이 왔다 갔다 하는 피곤한 사람이라 생각했을 정도였다.
“저기요, 염라 씨.”
어느새 그를 친근하게 부르며 쫓아오자 염라는 괜히 들어준다 했나 벌써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왜 이름이 염라에요? 아,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을 욕되게 하는 건 아니고요. 보통은 안 쓰는 이름이니까…….”
“이건 태초부터 붙여진…….”
“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염라는 아차, 하며 농담이라고 어물쩍 넘어갔다.
“아닙니다. 딱히 의미를 붙이자면 등잔 밑이 어둡다는 식이 되겠네요.”
“…뭐예요, 그게? 그 이름에 그런 뜻이 있어요?”
금비가 수상하단 표정으로 바라봤으나 염라는 더 변명할 생각은 없는 듯 귀찮은 얼굴이었다.
“대놓고 수상하면 오히려 수상한 걸 못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알쏭달쏭한 말에 금비는 뭔가 좀 더 물어보고 싶었으나 염라가 더 이상 답할 것 같지 않은 표정을 띠자 치, 하고 입을 삐쭉 내밀었다.
서로 더 이상 아무런 대화 없이 염라의 집에 도착하자 금비는 그의 집에 들어가기를 머뭇거렸다.
일단 남의 집인데다가 더군다나 혼자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그는 남자. 혹시나 무슨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싶어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것이었다. 혹시 어떤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들어오기 싫으면 말아요. 굳이 들려주고 싶지 않다는데 억지로 들어오게 하진 않아요.”
“아니, 그 들려주기 싫다는 건 아니고, 그… 남의 집에… 그것도 남자의 집에…….”
염라는 잠시 그녀의 표정을 보더니 현관문을 끽 열며 곧 그녀의 자존심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말을 내뱉었다.
“전 그쪽 몸에 관심 없는데요.”
뿌득―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는 게 이런 건가. 이 남자의 말이 이 정도로 신뢰가 갈 수 있나 싶었다. 정말로 이 남자의 집에 들어가 혹 자고 있어도 안전하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끼익―
그의 집 안으로 들어온 금비는 상상 외의 풍경에 조금 놀란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살기에 적합한 원룸. 흔한 색상의 나무 바닥, 깨끗한 하얀 벽지. 하얀 침대 위에 푸른색과 하늘색 스트라이프로 장식된 이불. 잘 정돈된 옷걸이와 하얀색으로 칠해진 나무 책상.
잡티 하나 없이 굉장히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었다.
부엌의 설거지통에는 접시 몇 개만 가지런하게 정렬해 있었고, 그 외에 설거지거리는 전혀 만들어 놓지 않은 듯 깨끗했다.
남자의 집이 어떻게 자신이 방보다 이리 깔끔하게 느껴지는지 집안일 잘하는 남자 같아 보였다.
패딩을 벗어 의자에 걸어놓은 염라는 의자에 털썩 앉아 침대 쪽을 가리켰다.
이 남자가 자신을 어찌하지 않으리란 걸 알지만 남자의 침대에 앉는 건 어색한지 조금 머뭇거렸다.
이내 조심스럽게 앉자 그녀의 몸무게에 맞춰 그 부분만 살짝 내려앉았다.
염라는 팔짱을 낀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들어봅시다, 왜 퇴마사가 하고 싶은지.”
그녀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그녀는 양손의 엄지 손톱을 가지고 놀 듯 위아래로 서로 교차하고 맞부딪치며 자신의 일생을 한참 동안 정리했다.
의외로 염라는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는 걸 도와주듯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전…….”
한참동안 고민한 그녀가 드디어 운을 뗐다.
“좋은 집 안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왔어요.”
그녀의 말과 함께 염라는 언제 들고 있던 건지 고풍스러운 손거울을 꺼내 그녀에게 비추었다.
평범했던 그녀의 삶, 좋은 집안에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아왔지만 자신의 일생이라곤 하나도 없던 삶. 누구나 부러워했을 삶이었을 수도 있다. 뭔가를 하는데 부족한 게 하나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그녀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은 그녀도, 그녀의 부모도 꿈도 꾸지 못했다.
그녀의 부모는 당당하게 꿈을 이뤄 이만큼 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꿈을 이룬 부모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꿈에 대해선 하나도 생각해주지 않았다. 말로는 밀어 주겠다 했으나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몰랐으며, 그녀가 재능을 발견하기도 전에 모든 싹은 전부 잘라내고 오로지 공부, 공부, 공부.
친구들이 남자 친구들을 만들 때도 공부, 노래방을 갈 때도 공부, 분식점을 갈 때도 공부. 그녀가 자고, 밥 먹는 등의 시간을 제외하고 주어지는 자유 시간이라면 오로지 시험이 끝나고 학원가기 불과 몇 시간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지도 않았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으로 왔더니 이제 꿈을 스스로 좇으라 하신다. 여태 끌어와 놓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그저 밀고만 계신 그들에 금비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회의감을 느꼈다.
결국 그 감정은 커지고, 커지고 이제 와서 마음껏 살고 싶다는 마음이 극대화되며 결국 그녀의 몸속으로 악마가 들어왔다. 당시 악마가 들어오고 난 후 기억은 드문드문 했으나 부모님께 상처를 주고 자신의 몸에도 상처를 줬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사들이 그녀를 진찰해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퇴마사들은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지만 혀를 내두르거나 돈만 먹고 튀었다.
그리고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남자. 앳된 얼굴이지만 듬직한 느낌이 들었으며 목소리에 기절할 것 같은 그 남자는 부모에게 오랜 골칫거리였으며 자신에겐 암과도 같은 악마를 쫓아냈다.
이후 그녀는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했으나 어째서인지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가로로 반 잘려나간 짐승 같은 괴물, 머리에 갓인지 중절모인지 쓰고 다니는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저승사자 같은 사람들, 그리고 벽을 관통해 다니는 특이하고 반투명한 사람들까지.
그게 귀신이고 악령이고 저승사자인 걸 인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평범하게 살아오던 그녀는 이제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구나 느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기쁘기도 했다. 남들처럼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생겼구나. 내가 내 아픔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사람들을 구원해 보고 싶다. 너무 이상한 이유였지만 이런 조그마한 거라도 생겨서 너무 기뻤기에 그녀는 퇴마사가 되고 싶어 했다.
“……”
그녀가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착 하고 손거울을 닫은 그는 손거울을 책상 위에 던져놓고 의자를 돌려 빈 종이에 뭔가를 써 내려갔다.
“솔직히 그쪽이 퇴마사가 가능할 거 같진 않아요. 난 제대로 가르쳐 줄 선생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가능성 정도라면 확인이 가능해요.”
염라는 뭔가 도형을 그리며 반도체의 글씨 마냥 조그마한 글씨를 도형 안에 가득 집어넣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금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처음 보는 언어들로 가득 찬 종이를 보고 묻자 염라가 이상한 언어들로 빽빽하게 채운 종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굳이 말하자면 데바나가리(Davanaagarii)라고 불리는 문자입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면 끝도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만 알아둬요.”
종이를 받아 든 금비는 어디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거지, 하며 가로로 뉘어보고 거꾸로 세워보고 하며 최대한 자신이 읽을 수 있게끔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어차피 그쪽은 못 읽어요. 실제 데바나가리도 아니거든.”
그녀에게 준 것은 사실 신계에 사는 신들만이 읽을 수 있는 신들의 문자였다. 신들의 문자가 변형돼 데바나가리라던가, 그 기원이 되는 아람 문자(Aramaic alphabet)가 탄생할 수 있었다.
신계의 언어는 인간의 발음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언어이며, 굳이 비슷하게라도 따라해 본다면 산스크리트어 정도만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요?”
금비가 난감한 표정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들고만 있자 염라는 어디 보자, 하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뭘 찾아요?”
“불이요. 라이터나 성냥이나…….”
그가 직접 손으로 태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걸 보여줬다간 무슨 난리가 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는 애써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그거 일종의 부적 같은 거거든요. 부적도 태워야 효험이 있듯이 그것도 태워야 그쪽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알 수 있어요.”
서랍을 이 잡듯 뒤졌으나 라이터는커녕 성냥 하나 없자 염라는 고개를 슥 돌려 가스레인지 쪽으로 걸어갔다.
화악―
가스불이 연소되며 버너에 고열의 불꽃이 올라왔다.
“여기에다가 태워요.”
“미, 미쳤어요?”
하지만 염라는 진심이라는 듯 턱짓으로 가리켰고 금비는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종이를 불 위에 휙 던졌다.
후우우욱―!
잘 타는 종이인지 불이 종이를 잡아먹듯 타고 올라가며 순식간에 재조차 남지 않고 태워 버렸다.
종이가 완전히 연소되자 불을 탁 끈 염라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의 두 손과 몸을 바라보며 혹여나 생길 변화를 관찰하고 있었다.
“…….”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금비는 지레 겁을 먹은 눈빛으로 염라를 바라봤다.
무덤덤한 그의 눈빛. 그 뜻을 알아차린 금비는 두 팔을 툭 떨어뜨리며 실망한 듯 울상을 지었다.
“수고했어요.”
염라가 그녀의 옆을 지나가며 어깨를 툭 두드렸다.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니구나.’
너무 기대한 탓일까, 여태까진 초자연적인 현상 한 번 믿은 적 없는 사람의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어깨가 떨렸고 여태 살아온 것에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염라가 떨리는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는 감흥도 없는 듯 그녀의 옆을 슥 지나가며 작은 베란다로 나갔고, 염라의 배려로 방에 혼자 있게 된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