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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 : 소울 콜렉터 1권 (3화)


1. 저승에서 온 퇴마사 (3)

“싫어, 오지 마! 제발, 부탁이에요! 가라고오오오!”
점점 악마가 그녀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숨결이 바로 코앞에서 뿜어지고 있었고, 그게 느껴지지 않든 느껴지든 별로 알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새끼야, 당장 멈춰!”
그녀의 아버지는 뭘 멈춰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딸이 얼른 안정을 되찾길 원하며 그에게 화풀이하듯 외치고 있었다.
여기서 당장 뿌리치고 악마를 잡을 수 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을 도우러 온 건데 치한 취급을 하지를 않나, 사이비라며 쫓아내려고 하지를 않나, 심지어 퇴마 의식을 진행할 땐 끼어들지 않는 게 원칙이거늘 이 사람들은 기본의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짜증이 확 미친 그는 아예 엿먹어보라며 그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결국 악마는 그녀의 몸에 히죽 거리며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했고, 금비 아빠가 그를 후드려 패려는 순간 주먹을 딱 멈췄다.
“웁.”
갑자기 방 안에서 역한 유황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의 아빠는 염라를 패지 못하고 곧장 입과 코를 막고 방을 뛰쳐나갔다.
얼마나 독한 냄새인지 방 근처에서 멀리 떨어진 가족들은 아예 1층으로 내려갔는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아.”
염라는 가벼워진 몸을 일으키며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 악마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저승의 지배자, 염라대왕이었다. 감히 인간들은 쳐다도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신이었다.
그런데 이런 꼴이라니. 세상사 어떻게 돌아갈지 모른다는 걸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느꼈다.
“크흐흐, 불쌍해서 어쩌나? 염라대왕님? 고작 인간 따위에게 휘둘리는 꼴이라니.”
악마가 금비의 몸을 빌어 기분 나쁜 미소를 짓자 염라는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게나 말이다. 기껏 적어놓은 주술도 필요가 없어졌네. 애가 정신이 강해서 널 쫓아낸 줄 알았는데.”
“감히 인간 따위가? 날 너무 하급으로 취급하는 모양인데, 이래봬도 굉장히 등급 높은 악마란 걸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대악마보다 낮은 수준인데다가 악마들 사이에서 나온 놈도 아닌데 네까짓 게 높아봐야.”
악마는 끅끅끅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아, 염라대왕인 걸 모른 척했으면 당신과 무척이나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이 여자도 좀 아쉬울 거야.”
“헛소리. 아무튼, 귀찮게 됐네. 가벼운 주술로 쫓아내려고 했는데 결정을 번복해야 한다니.”
그러자 악마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눈을 빛내며 그의 뒷말을 쫓아했다.
“결정을 번복해야 한다니. 크흐흐흐흐! 그러고 보니 우리 염라대왕님은 결정을 번복했다가 통수를 맞으셨지?”
“…….”
그의 약점인 것 마냥 방금 전까지 여유 있던 염라의 표정이 악마의 손에 벗겨져 나간 듯 그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왜 말이 없으실까? 네 입으로 말해보지 그래! 천박한 동생년 때문에 저승에서 쫓겨나 이렇게 인간처럼 퇴마사 신세를 맡게 됐다고 말이야!”
드디어 약점을 잡았다는 듯 얼굴이 싹 변한 그를 바라보며 악마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던 염라는 이내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미친 것 마냥 키득키득 웃었다.
“아, 업계의 소문 같은 건가? 어떻게 지옥에 살아본 적도 없는 네 녀석도 알고 있는 거지.”
지옥에 살아본 적도 없다는 말에 이번엔 악마가 씁쓸한 표정으로 얼굴을 구겼다.
“내가 지옥에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어떻게 알아?”
“멍청하긴. 너처럼 현계 사는 악마는 내가 만든 게 아니야. 너희 스스로… 아니, 이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뭐?”
“참나, 자기네 종족 탄생 설화도 몰라. 내가 악마들의 선조 격이라는 건 알고 있나 모르겠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악마의 선조가 신이라니? 금비의 몸속에 들어간 악마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쓸데없는 이야긴 됐고. 굳이 주저리주저리 네 까짓 것한테 떠벌릴 생각은 없어.”
이내 악마는 그럴 거면 왜 말한 거냐며 중얼거리더니 이내 침대 위에 편안하게 풀썩 누웠다.
“아무튼 퇴마를 하러 온 거 같은데 네가 아무리 염라대왕이라도 힘들 걸. 이 여자의 몸을 죽이지 않는 이상 말이야.”
그러자 염라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앳된 얼굴로 날카롭게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느낀 악마는 기분 나쁘게 왜 쪼개냐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잘 아네. 내가 널 어떻게 쫓아내야 하는 건지 말이야.”
“…미친! 나 하나를 없애겠다고 여자를 죽인다고?”
“뭐야, 내가 저승에서 쫓겨난 것은 업계 소문으로 잘 알고 있더니 네 동지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나 보구나?”
그는 바닥에 떨어졌던 종이를 집어 들더니 펜으로 뭔가를 더 끄적여 쓰기 시작했다.
“인간의 혼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새끼들, 그 좋아하는 인간과 함께 날려버렸어.”
정확히는 반병신으로 만든 거였지만 어찌됐든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긴 글렀으니 굳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
정말 이 자가 신이 맞는 걸까. 악마는 신이 이렇게 무덤덤하고 인간에 대한 생명을 하찮게 여길 줄은 전혀 몰랐던 건지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너… 도대체 인간을 뭐라고…….”
“악마한테 그 따위 소리 들으니 웃기네. 뭐 알다시피 난 인간의 생명을 좀 귀하게 여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일 때의 이야기고. 악마 하나 소멸시켜 버리는데 인간 하나의 혼쯤이야.”
그가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란 걸 느낀 듯 악마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미친 듯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미쳤군! 네놈을 경배하는 인간들이 불쌍하지 않느냐!”
“글쎄, 악마 따위가 그딴 소리를 왜 해?”
종이에 글자를 추가한 그는 다 된 듯 펜을 집어 던지고 종이를 들어올렸다.
“잡담 끝낼 시간이다. 쓸데없이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어.”
그가 그녀의 위로 다시 올라오며 종이를 그녀의 머리 위에 착 올려놨다.
종이에 덮인 그녀의 얼굴은 두려움에 떨며 헉헉 하고 숨소리를 내뱉었고, 종이에 침이 묻어 입모양 그대로 적셔 들어갔다.
“기, 기다려. 내가,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아.”
“지금 나한테 죽던, 이 여자 혼 다 빨아먹고 새로운 숙주 찾아다니러 다닐 때 저승사자한테 발견돼서 죽던 넌 어차피 여기서 오래 못 산다. 아직까지 저승사자들이 널 살려둔 게 의문이군.”
그에게 더 이상 기다려 줄 인내심도 자비도 없는 듯 그녀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을 꾹 누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사이 악마는 조금이라도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
“내가, 내가 알아! 그 녀석들은 날 일부러 살려뒀어!”
그는 이제 악마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이 오로지 그를 제거하려는데 생각을 집중했다.
그의 손에서부터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뜨거운 물에 피부가 데인 듯한 느낌에 악마는 고통에 겨워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보통 퇴마사들은 이런 거 할 때 주님 어쩌고, 보살님이 어쩌고 하더구나. 난 딱히 기도해야 할 신은 없으니까 어떤 대사를 읊어야 할지 모르겠군.”
고통에 겨워하는 악마를 보면서도 어떻게 보면 그가 오히려 더 악독한 악마처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한 생명과 함께 악마를 죽이고 있었다.
“으아아아! 염리, 염리가 저승사자들에게 시켰어어어어어!”
악마의 외침과 동시에 ‘염리’란 단어에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염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했다.
이내 그는 짓누르고 있던 열기를 확 떼어내고 물었다.
“다시 말해봐. 염리가 뭘 했다고?”
땀과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악마는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내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끄, 끄윽… 염리… 네 동생년이 저승사자들에게 악마들을 잡지 말라고 시켰다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넌 지옥에서 태어나지도, 하물며 악마일 때는 단 한 번도 저승으로 온 적도 없는 녀석이.”
염라는 그 악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말하자 악마는 숨을 헐떡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실토했다.
“저승사자들이 악마를 잡지 않으니까,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 같은 게 생긴 거야. 그중 한 녀석이 저승사자와 좀 안면이 있는지 왜 자신을 안 잡냐고 물었어. 그러더니 저승에서 우리들을 사냥하는 걸 멈췄대.”
“그게 염리가 시킨 거라고?”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대부분 저승사자들이 그렇게 알고 있어. 네가 이곳으로 퇴출당한 일 년 전부터 그런 명령이 내려왔다고.”
염라는 아주 잠깐 동안 이게 거짓말일지 아닐지 고민에 빠진 얼굴을 짓더니 이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좀 더 정보를 얻어내려는 듯 물었다.
“너네들을 사냥하는 게 저승사자 뿐만은 아니잖나. 퇴마사들도 너희를 사냥하고 있고. 퇴마사와 저승사자는 오래전부터 협력해온 사이다. 만약 저승사자들이 악마를 잡지 않는 모습을 보면 퇴마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의심 가지 않게 가끔씩 잡긴 할 거라고 해. 우리들은 네 동생년이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 눈을 가리는 용도라고 말하더군! 나도 정확하게 뭘 하려는지 몰라! 저승사자가 우리를 거의 안 잡겠다고 했으니 마음껏 활개 치는 것뿐이라고!”
악마의 말이었다. 한 점 믿을 만한 가치도 없었으나 염라는 악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의 말들 대부분은 그가 이미 확인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염라대왕의 누이동생 염리가 염라를 쫓아낸 뒤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염라가 쫓겨난 그날부터 인간세계에서 혼을 먹는 악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것.
“혓바닥을 뽑으려 했는데… 좋아. 믿도록 하지.”
그의 대답에 악마는 생명 연장의 목소리를 들은 것 마냥 드디어 저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단 생각을 품고 끅끅 웃었다. 하지만 염라는 그 생각과 반대로 가느다란 금비의 목을 짓눌렀다.
“크, 켁, 커헉! 왜, 왜……!”
염라는 있는 힘껏 그녀의 목을 조르면서 코트 안에 있던 금칠이 된 도장을 꺼내들었다.
“걱정 마라. 죽이진 않겠다. 네가 그토록 염원하던 너만의 천국으로 보내주지.”
“뭐, 뭐……!”
그가 쥐고 있던 도장에 힘을 불어넣자 금색으로 칠해진 도장이 눈부시게 빛나더니, 갑자기 방이 후덥지근하게 변하기 시작하며 역한 유황 냄새조차 불길의 연소되는 하나의 장작처럼 쓰이는 듯 공기 중으로 뜨거운 불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전혀 느껴본 적도 없는 지독하고 뜨거운 열기. 얼굴에 붙여뒀던 종이가 연소되며 악마의 얼굴이 드러났고, 악마는 자신의 온 몸에 맞닿는 뜨거운 열기에 고통에 겨워 소리쳤다.
“끄아아아아아!”
거센 불길이 방 전체를 감싸자 일순간 주변의 풍경이 그녀의 방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침대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어느새 뜨거운 불꽃이 치솟아 오르는 불 속, 악마들의 거주지이자 사악한 영혼들만 떨어진다는 지옥(地獄)이었다.
“지옥으로 꺼져! 그리고 악마 새끼들한테, 염리한테 전해! 반드시… 반드시 내가 돌아간다고 말이야!”
“크아아아!”
그의 외침과 함께 악마는 불에 타는 고통을 온 몸으로 느끼며 금비의 몸에서 떨어져 땅이 없는 불길 속으로 내던져졌다.
스스스스―
그녀의 몸에서 악마가 떨어지자 주변을 모두 태웠던 불꽃이 금세 사그라지며 어느새 그녀의 방은 유황 냄새 없이 온갖 낙서만 도배된 평화로운 분위기의 방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짓누르고 있던 여성은 좀 전까지의 모습은 어디가고 어느새 생기 도는 피부로 숨을 쌕쌕 거리며 편안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그녀의 위에서 내려온 염라는 금칠이 된 도장을 품에 집어넣고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힘이 또 왕창 줄었군, 하고 얼굴을 구긴 그는 남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잘 자는 여성의 모습을 한 번 보고는 휙 하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