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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24화)
뜻밖의 행운 ― (1)
“미친 거 아냐?”
정말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헤른.
그 옆에서 걸음을 재촉하던 로렌트 역시 맞장구를 쳤다.
“제가 도련님한테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진짜 미친 것 같습니다!”
그 고생을 하고 마을을 떠나온 것이 불과 몇 시간 전.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미카엘 님, 제가 볼 때도 아라네아의 집단 서식지로 가신다는 계획은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그 순한 옴므트리체까지 말릴 정도.
하지만 미카엘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지도에 표기된 아라네아 서식지라 되어 있는 부분과 실제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가늠해 볼 뿐.
이윽고 그의 입에서 본심이 흘러나왔다.
“그곳을 토벌해야 마을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건 오지랖입니다. 그들은 알아서 살겠죠. 거기다 진법이라는 것도 설치해 주지 않았습니까?”
“맞아. 알아서 살겠지. 하지만 최소한 자생하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건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잖아. 아라네아는 군집 마물이라며. 다른 마물은 모르겠지만 그 마물이라면 혹여 진법을 뚫어낼지도 몰라.”
만약 그리된다면 약화된 마을 전력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엔 수백 마리의 아라네아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체인 아라고네스가 있습니다. 마물 도감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는 무시무시한 마물이라고요!”
로렌트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아라고네스라는 말에 일행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걱정 마. 그래 봐야 아라고네스는 왕거미 암컷에 불과하잖아. 그리고 그 녀석을 죽여야 번식을 못하는 거 아니야? 거기다 돈 되는 마물을 그대로 두고 간다는 게 조금 손해처럼 느껴져서 말이지.”
사실 이게 좀 더 본심에 가까운 이유.
기왕이면 돈도 벌면서 좋은 일도 하자는 것.
거기다 로렌트에겐 얘기 안 했지만 지금 그가 새로 익힌 검술이 형을 갖추기 위해서는 실전 같은 연습이 필요했다.
“아이고, 답답해 죽겠네.”
로렌트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을 팍팍 쳤다. 아라고네스를 겨우 왕거미 암컷이라고 치부하다니. 아라고네스는 발록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버금가게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다.
로렌트는 드디어 최후의 수단으로 배를 쨌다.
“저는 못 갑니다. 이건 자살행위라고요.”
“거미가 뭐가 무섭다고 그래?”
“아라네아, 그 마물의 특징이 뭡니까. 군집 마물 아닙니까! 분명 서식지에는 최소 몇 백 마리가 있을 게 분명하다니까요?”
“잘됐네. 그 얘기는 돈 될 만한 게 많이 있다는 얘기잖아. 그리고 여기에 나만 있냐? 에퀘스 중급 기사에 무지하게 센 빙계 마법사도 있잖아.”
“아… 그, 세다는 말은 틀린데요…….”
옴므트리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가지 말까? 놔두면 마을 위험해지는데도?”
“저… 저는 괜찮아요. 마을이 안전하게 된다면요.”
“아, 진짜. 마법사님까지 왜 그러세요?”
자기편이 한 명 없어지자 로렌트는 다수를 차지하는 어렌과 친위대를 바라봤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라는 무언의 압력.
하지만…….
“마을을 위해 헌신하시는 미카엘 님의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역시 미카엘 님은 정의의 사도이십니다.”
어렌과 친위대는 로렌트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고 미카엘을 향해 존경의 염을 드러냈다.
그렇게 되자 왠지 소외받는 기분이 된 로렌트와 헤른은 서로를 쳐다봤다.
역시나 눈빛에서부터 공감되는 느낌.
로비츠 연공법으로 묶인 끈끈한 사이였다.
잠시 후.
칼마흘(지저 거미)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도달한 일행들.
미카엘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숨 쉬는 것도 조심하며 기척을 죽였다.
우글우글 거리는 까만색 갑주.
석회암 동굴 안에 새까맣게 보이는 것이 죄다 아라네아.
이러니 겁이 날 만하다.
“끄…헉… 왜 이렇게 많아. 족히 이백은 넘어 보이는데.”
“저 안에는 두 배가 넘게 있을 겁니다.”
어렌과 로렌트의 소곤거림.
미카엘은 잠시 무엇인가를 고심하더니, 친위대에게 짊어지고 있던 장대를 내려놓도록 했다.
그러고는 하나하나씩 꼽기 시작했다.
“아, 그… 진법이라는 겁니까?”
“음, 나도 무작정 쳐들어가는 건 아니야.”
잠시 후 진 주위에 뿌연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일행들의 얼굴에선 감탄이 일었고, 특히 어렌과 친위대의 얼굴에는 신봉 비슷한 표정이 드러났다.
“미카엘 님,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 진법이라는 건 도대체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거죠?”
트리체는 마법사인 탓에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자연의 기운을 비틀고 가두는 거라고 해두지.”
그러면서 미카엘은 환영미로진의 생로를 열며 말했다.
“일단 친위대와 헤른은 이 안에 들어가 있는다.”
“저기, 친위대라는 이름은 이제 싫습니다. 수호대라고 해주십시오.”
“뭐, 이름이야 어쨌든 상관은 없지만… 알았어. 그렇게 하지.”
허락을 맡은 수호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미카엘이 말했다.
“너희들은 여기에 놔두고 가는 이유는 아라네아를 잡는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강해지면 된다. 이곳에서 로비츠 연공법을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수호대는 강한 의지를 다졌다.
어서 빨리 강해져서 미카엘의 옆을 수호하는 수호대로서 거듭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거기다 로비츠 연공법을 대성하면 남자의 자존심이 회복될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그 의욕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덩달아 하게 된 헤른은 불만이었다.
“난 회복할 것도 없는데.”
미카엘은 헤른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그들을 환영미로진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쨌든 지금 그들의 실력 가지고는 아라네아를 상대할 수 없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게 최선이다.
이렇게 되니 남아 있는 이들은 어렌, 로렌트, 옴므트리체까지 세 명이었다.
각자 미카엘이 정하는 대로 역할을 부여받았다. 먼저 행동에 나선 이는 마법사인 옴므트리체였다.
“빙결의 힘이여,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를 마나의 힘으로 얼려주소서.”
영창이 끝나자 엄청난 마나의 힘이 그녀에게 집결되었다.
“아이스 볼트.”
빙결의 힘은 언덕 아래에 있는 아라네아에게 꽂혔다.
퍼서석!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아라네아가 밀집되어 있긴 했지만 마법 한방에 열 마리 가까운 아라네아가 그대로 얼어붙어 놀란 것이다.
“헉, 헉헉헉.”
하지만 이 마법 한 방에 모든 힘을 다 쏟아버렸으니, 이것으로 그녀의 역할은 끝났다.
“수고했어. 들어가 있어.”
“죄송해요.”
“별말을.”
1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그녀가 아라네아를 잡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쉬이이이익.
빙계 마법이 아라네아의 흉폭성을 자극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아라네아의 물결.
심지어 동굴 안쪽에 있던 아라네아까지 죄다 몰려나왔다.
“마… 맙소사!”
“난 죽었다.”
어렌과 로렌트는 침음성을 삼켰다.
족히 오백은 넘어 보이는 숫자.
피식.
하지만 미카엘은 웃음을 보였다.
저들이 무서운 것은 군집 행동을 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차단하면 된다.
손에 극양지력을 끌어올린 후 삼매진화의 수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저 앞에 위치한 땅에서 가운데 부분만 빼고 양 끝단이 불길로 높게 치솟았다.
앞쪽에 아라네아 모르게 뿌려놓은 라이네거 사체 기름에 불씨가 옮겨 붙은 것.
화르르르르.
불길이 미치지 않는 가운데 부분만 길처럼 변한 상황
갑자기 변한 환경에 멈칫하던 아라네아는 그 길을 따라 길게 줄을 늘어서서 다가왔다.
“좋아, 와라.”
라이레거의 기름은 워낙 지속성이 부족히지만 주위에 있는 수목들이 어느 정도 화력을 지속해 줄 것이다.
그그그극.
좁다란 길에 많은 아라네아가 엉키니 군집 마물이란 특성이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었다.
미카엘의 손이 검의 손잡이에 올라갔다.
눈동자에서는 숨김없는 투기가 피어올랐다.
“도련님!”
“거기 있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은 미카엘이 득달같이 튀어나갔다.
파가가가가각.
거칠게 갈리는 소리.
아라네아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하지만 곧 그 입에서 찢어지는 기음이 새어 나왔다.
“키아아아악!”
앞 열에 있던 아라네아가 다리를 잃고 무너진 것.
그러다 보니 뒤의 열에 있던 아라네아는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푸푸푸푸푹.
미카엘은 앞 열을 뛰어넘으며 검을 쓰러진 아라네아의 등에 박아 넣었다.
“와라!”
주춤거리는 후열의 아라네아를 보고 한 말.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마물이건만, 쭉 뻗어 나온 입에서 기음을 흘렸다.
“크으으으으으.”
다시 한 번 아라네아의 군열이 밀려든다.
미카엘은 이번에는 비룡번신의 수로 몸을 뒤집었다.
그러고는 뒤집힌 상태로 검을 배 위에 놓고 그대로 내리그었다.
“크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배가 갈려 쓰러지는 마물들. 그 수가 무려 십여 마리가 넘는다.
이 단 두 수에 이십여 마리가 죽거나 다쳤다.
이러다 보니 어렌과 로렌트는 신이 났다.
그들은 그저 뒤에서 부상당한 마물을 상대로 검을 꼽고 다니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라네아란 게 이렇게 쉬운 마물이던가.”
“역시 주군이시다.”
“야. 도련님이 왜 네 주군이야?”
여유가 생기니 말다툼까지 한다.
미카엘은 검에서 줄기줄기 검술을 풀어냈다.
현천검.
총 9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문 검술.
노도와 같은 검기가 순간 뻗어 나와 아라네아의 몸체를 강타한다.
쿠아아아아앙.
“크퀘헤헤헥!”
일순간에 사십여 마리가 배를 뒤집고 쓰러진 상황.
미카엘은 한순간 단전이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고비용, 고효율.
현천검은 그런 검이다.
위력은 강하나 후반 검식으로 갈수록 소모되는 내공이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후반 검식 중 두 초식은 그 자신조차 써본 적이 없었을까.
“후퇴.”
미카엘은 미련을 버리고 환영미로진으로 후퇴를 명했다.
그러자 신이 나서 쓰러진 아라네아를 잡고 있던 로렌트와 어렌이 허겁지겁 진법이 펼쳐진 쪽으로 후퇴했다.
생로를 열어 로렌트와 어렌까지 받아들인 환영미로진은 다시 안개를 뿜어내며 자취를 감추었다.
“키에에에엑!”
눈앞에서 적을 놓친 아라네아는 기를 쓰고 적을 알아내러 애썼다. 일부는 그 뒤쪽으로 일부는 그 앞쪽으로.
“잠깐은 괜찮겠지. 뒷일을 부탁해”
“걱정 마세요, 미카엘 님. 마나가 조금은 돌아왔어요.”
옴므트리체의 장담에 미카엘은 가부좌를 틀고 운기를 시작했다.
잠시 후.
“휴우…….”
약 한 시간여의 운기를 하니 대부분의 공력이 회복되어 있었다.
“아니, 조금 더 늘어났군.”
사네가의 폭주한 내공을 조금 흡수한 게 도움이 되었다. 이질적인 내공이기에 겉돌고 있었는데, 이번에 내공을 바닥까지 쓰면서 이질적인 내공까지 융화가 된 것.
“오 년 정도 늘었나.”
미카엘은 미소를 흘렸다.
벌떡 일어나니 초조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로렌트 등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행입니다.”
그들이 겁을 먹을 만한 것이, 앞에 진이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아라네아는 진 앞에 대거 포진하고 있었고, 일부는 진 안에 들어와 사방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확실히 진이 약해졌군.”
아라네아가 다른 마물에 비해 영악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미카엘은 우선 진 안에 들어와 있던 아라네아부터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별 대수롭지 않게 휘둘러지는 검이나 마물들은 분분히 죽어나가고.
미카엘은 쓰러진 아라네아를 진 밖으로 내던지며 약해진 진축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파탄을 드러내고 있던 진이 다시 진세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카엘은 다시 백여 마리를 잡은 후 소진된 내공을 채우고 싸우기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서식지에 나와 있던 오백여 마리의 아라네아를 전부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렌. 이해가 안 되는 게… 도련님은 싸우실 때마다 점점 강해지시는 것 같지 않아?”
“흐흐흐, 주군이시니까 당연한 겁니다.”
“아, 진짜… 너 주군 바보냐?”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아직 죽지 않은 아라네아의 숨통을 끊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수호대와 헤른은 아라네아의 등껍질 벗기는 것을 전담했다.
그야말로 잘 돌아가는 협업체계.
미카엘은 소진된 내공을 채우기 위해 운기 중이었다.
‘총 10년 정도 늘었나.’
내공을 소진시키고 채우기를 반복하니 겉돌고 있던 사네가의 내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미카엘의 상념은 조금 더 길어졌다.
40년의 내공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아라고네스는 왠지 느낌상 만만치 않은 격전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걸 한 번 써먹어 봐야겠군.”
미카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뜻밖의 행운 ― (1)
“미친 거 아냐?”
정말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헤른.
그 옆에서 걸음을 재촉하던 로렌트 역시 맞장구를 쳤다.
“제가 도련님한테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진짜 미친 것 같습니다!”
그 고생을 하고 마을을 떠나온 것이 불과 몇 시간 전.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미카엘 님, 제가 볼 때도 아라네아의 집단 서식지로 가신다는 계획은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그 순한 옴므트리체까지 말릴 정도.
하지만 미카엘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지도에 표기된 아라네아 서식지라 되어 있는 부분과 실제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가늠해 볼 뿐.
이윽고 그의 입에서 본심이 흘러나왔다.
“그곳을 토벌해야 마을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건 오지랖입니다. 그들은 알아서 살겠죠. 거기다 진법이라는 것도 설치해 주지 않았습니까?”
“맞아. 알아서 살겠지. 하지만 최소한 자생하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건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잖아. 아라네아는 군집 마물이라며. 다른 마물은 모르겠지만 그 마물이라면 혹여 진법을 뚫어낼지도 몰라.”
만약 그리된다면 약화된 마을 전력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엔 수백 마리의 아라네아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체인 아라고네스가 있습니다. 마물 도감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는 무시무시한 마물이라고요!”
로렌트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아라고네스라는 말에 일행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걱정 마. 그래 봐야 아라고네스는 왕거미 암컷에 불과하잖아. 그리고 그 녀석을 죽여야 번식을 못하는 거 아니야? 거기다 돈 되는 마물을 그대로 두고 간다는 게 조금 손해처럼 느껴져서 말이지.”
사실 이게 좀 더 본심에 가까운 이유.
기왕이면 돈도 벌면서 좋은 일도 하자는 것.
거기다 로렌트에겐 얘기 안 했지만 지금 그가 새로 익힌 검술이 형을 갖추기 위해서는 실전 같은 연습이 필요했다.
“아이고, 답답해 죽겠네.”
로렌트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을 팍팍 쳤다. 아라고네스를 겨우 왕거미 암컷이라고 치부하다니. 아라고네스는 발록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버금가게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다.
로렌트는 드디어 최후의 수단으로 배를 쨌다.
“저는 못 갑니다. 이건 자살행위라고요.”
“거미가 뭐가 무섭다고 그래?”
“아라네아, 그 마물의 특징이 뭡니까. 군집 마물 아닙니까! 분명 서식지에는 최소 몇 백 마리가 있을 게 분명하다니까요?”
“잘됐네. 그 얘기는 돈 될 만한 게 많이 있다는 얘기잖아. 그리고 여기에 나만 있냐? 에퀘스 중급 기사에 무지하게 센 빙계 마법사도 있잖아.”
“아… 그, 세다는 말은 틀린데요…….”
옴므트리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가지 말까? 놔두면 마을 위험해지는데도?”
“저… 저는 괜찮아요. 마을이 안전하게 된다면요.”
“아, 진짜. 마법사님까지 왜 그러세요?”
자기편이 한 명 없어지자 로렌트는 다수를 차지하는 어렌과 친위대를 바라봤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라는 무언의 압력.
하지만…….
“마을을 위해 헌신하시는 미카엘 님의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역시 미카엘 님은 정의의 사도이십니다.”
어렌과 친위대는 로렌트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고 미카엘을 향해 존경의 염을 드러냈다.
그렇게 되자 왠지 소외받는 기분이 된 로렌트와 헤른은 서로를 쳐다봤다.
역시나 눈빛에서부터 공감되는 느낌.
로비츠 연공법으로 묶인 끈끈한 사이였다.
잠시 후.
칼마흘(지저 거미)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도달한 일행들.
미카엘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숨 쉬는 것도 조심하며 기척을 죽였다.
우글우글 거리는 까만색 갑주.
석회암 동굴 안에 새까맣게 보이는 것이 죄다 아라네아.
이러니 겁이 날 만하다.
“끄…헉… 왜 이렇게 많아. 족히 이백은 넘어 보이는데.”
“저 안에는 두 배가 넘게 있을 겁니다.”
어렌과 로렌트의 소곤거림.
미카엘은 잠시 무엇인가를 고심하더니, 친위대에게 짊어지고 있던 장대를 내려놓도록 했다.
그러고는 하나하나씩 꼽기 시작했다.
“아, 그… 진법이라는 겁니까?”
“음, 나도 무작정 쳐들어가는 건 아니야.”
잠시 후 진 주위에 뿌연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일행들의 얼굴에선 감탄이 일었고, 특히 어렌과 친위대의 얼굴에는 신봉 비슷한 표정이 드러났다.
“미카엘 님,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 진법이라는 건 도대체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거죠?”
트리체는 마법사인 탓에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자연의 기운을 비틀고 가두는 거라고 해두지.”
그러면서 미카엘은 환영미로진의 생로를 열며 말했다.
“일단 친위대와 헤른은 이 안에 들어가 있는다.”
“저기, 친위대라는 이름은 이제 싫습니다. 수호대라고 해주십시오.”
“뭐, 이름이야 어쨌든 상관은 없지만… 알았어. 그렇게 하지.”
허락을 맡은 수호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미카엘이 말했다.
“너희들은 여기에 놔두고 가는 이유는 아라네아를 잡는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강해지면 된다. 이곳에서 로비츠 연공법을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수호대는 강한 의지를 다졌다.
어서 빨리 강해져서 미카엘의 옆을 수호하는 수호대로서 거듭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거기다 로비츠 연공법을 대성하면 남자의 자존심이 회복될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그 의욕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덩달아 하게 된 헤른은 불만이었다.
“난 회복할 것도 없는데.”
미카엘은 헤른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그들을 환영미로진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쨌든 지금 그들의 실력 가지고는 아라네아를 상대할 수 없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게 최선이다.
이렇게 되니 남아 있는 이들은 어렌, 로렌트, 옴므트리체까지 세 명이었다.
각자 미카엘이 정하는 대로 역할을 부여받았다. 먼저 행동에 나선 이는 마법사인 옴므트리체였다.
“빙결의 힘이여,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를 마나의 힘으로 얼려주소서.”
영창이 끝나자 엄청난 마나의 힘이 그녀에게 집결되었다.
“아이스 볼트.”
빙결의 힘은 언덕 아래에 있는 아라네아에게 꽂혔다.
퍼서석!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아라네아가 밀집되어 있긴 했지만 마법 한방에 열 마리 가까운 아라네아가 그대로 얼어붙어 놀란 것이다.
“헉, 헉헉헉.”
하지만 이 마법 한 방에 모든 힘을 다 쏟아버렸으니, 이것으로 그녀의 역할은 끝났다.
“수고했어. 들어가 있어.”
“죄송해요.”
“별말을.”
1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그녀가 아라네아를 잡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쉬이이이익.
빙계 마법이 아라네아의 흉폭성을 자극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아라네아의 물결.
심지어 동굴 안쪽에 있던 아라네아까지 죄다 몰려나왔다.
“마… 맙소사!”
“난 죽었다.”
어렌과 로렌트는 침음성을 삼켰다.
족히 오백은 넘어 보이는 숫자.
피식.
하지만 미카엘은 웃음을 보였다.
저들이 무서운 것은 군집 행동을 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차단하면 된다.
손에 극양지력을 끌어올린 후 삼매진화의 수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저 앞에 위치한 땅에서 가운데 부분만 빼고 양 끝단이 불길로 높게 치솟았다.
앞쪽에 아라네아 모르게 뿌려놓은 라이네거 사체 기름에 불씨가 옮겨 붙은 것.
화르르르르.
불길이 미치지 않는 가운데 부분만 길처럼 변한 상황
갑자기 변한 환경에 멈칫하던 아라네아는 그 길을 따라 길게 줄을 늘어서서 다가왔다.
“좋아, 와라.”
라이레거의 기름은 워낙 지속성이 부족히지만 주위에 있는 수목들이 어느 정도 화력을 지속해 줄 것이다.
그그그극.
좁다란 길에 많은 아라네아가 엉키니 군집 마물이란 특성이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었다.
미카엘의 손이 검의 손잡이에 올라갔다.
눈동자에서는 숨김없는 투기가 피어올랐다.
“도련님!”
“거기 있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은 미카엘이 득달같이 튀어나갔다.
파가가가가각.
거칠게 갈리는 소리.
아라네아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하지만 곧 그 입에서 찢어지는 기음이 새어 나왔다.
“키아아아악!”
앞 열에 있던 아라네아가 다리를 잃고 무너진 것.
그러다 보니 뒤의 열에 있던 아라네아는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푸푸푸푸푹.
미카엘은 앞 열을 뛰어넘으며 검을 쓰러진 아라네아의 등에 박아 넣었다.
“와라!”
주춤거리는 후열의 아라네아를 보고 한 말.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마물이건만, 쭉 뻗어 나온 입에서 기음을 흘렸다.
“크으으으으으.”
다시 한 번 아라네아의 군열이 밀려든다.
미카엘은 이번에는 비룡번신의 수로 몸을 뒤집었다.
그러고는 뒤집힌 상태로 검을 배 위에 놓고 그대로 내리그었다.
“크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배가 갈려 쓰러지는 마물들. 그 수가 무려 십여 마리가 넘는다.
이 단 두 수에 이십여 마리가 죽거나 다쳤다.
이러다 보니 어렌과 로렌트는 신이 났다.
그들은 그저 뒤에서 부상당한 마물을 상대로 검을 꼽고 다니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라네아란 게 이렇게 쉬운 마물이던가.”
“역시 주군이시다.”
“야. 도련님이 왜 네 주군이야?”
여유가 생기니 말다툼까지 한다.
미카엘은 검에서 줄기줄기 검술을 풀어냈다.
현천검.
총 9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문 검술.
노도와 같은 검기가 순간 뻗어 나와 아라네아의 몸체를 강타한다.
쿠아아아아앙.
“크퀘헤헤헥!”
일순간에 사십여 마리가 배를 뒤집고 쓰러진 상황.
미카엘은 한순간 단전이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고비용, 고효율.
현천검은 그런 검이다.
위력은 강하나 후반 검식으로 갈수록 소모되는 내공이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후반 검식 중 두 초식은 그 자신조차 써본 적이 없었을까.
“후퇴.”
미카엘은 미련을 버리고 환영미로진으로 후퇴를 명했다.
그러자 신이 나서 쓰러진 아라네아를 잡고 있던 로렌트와 어렌이 허겁지겁 진법이 펼쳐진 쪽으로 후퇴했다.
생로를 열어 로렌트와 어렌까지 받아들인 환영미로진은 다시 안개를 뿜어내며 자취를 감추었다.
“키에에에엑!”
눈앞에서 적을 놓친 아라네아는 기를 쓰고 적을 알아내러 애썼다. 일부는 그 뒤쪽으로 일부는 그 앞쪽으로.
“잠깐은 괜찮겠지. 뒷일을 부탁해”
“걱정 마세요, 미카엘 님. 마나가 조금은 돌아왔어요.”
옴므트리체의 장담에 미카엘은 가부좌를 틀고 운기를 시작했다.
잠시 후.
“휴우…….”
약 한 시간여의 운기를 하니 대부분의 공력이 회복되어 있었다.
“아니, 조금 더 늘어났군.”
사네가의 폭주한 내공을 조금 흡수한 게 도움이 되었다. 이질적인 내공이기에 겉돌고 있었는데, 이번에 내공을 바닥까지 쓰면서 이질적인 내공까지 융화가 된 것.
“오 년 정도 늘었나.”
미카엘은 미소를 흘렸다.
벌떡 일어나니 초조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로렌트 등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행입니다.”
그들이 겁을 먹을 만한 것이, 앞에 진이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아라네아는 진 앞에 대거 포진하고 있었고, 일부는 진 안에 들어와 사방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확실히 진이 약해졌군.”
아라네아가 다른 마물에 비해 영악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미카엘은 우선 진 안에 들어와 있던 아라네아부터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엑!”
별 대수롭지 않게 휘둘러지는 검이나 마물들은 분분히 죽어나가고.
미카엘은 쓰러진 아라네아를 진 밖으로 내던지며 약해진 진축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파탄을 드러내고 있던 진이 다시 진세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카엘은 다시 백여 마리를 잡은 후 소진된 내공을 채우고 싸우기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서식지에 나와 있던 오백여 마리의 아라네아를 전부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렌. 이해가 안 되는 게… 도련님은 싸우실 때마다 점점 강해지시는 것 같지 않아?”
“흐흐흐, 주군이시니까 당연한 겁니다.”
“아, 진짜… 너 주군 바보냐?”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아직 죽지 않은 아라네아의 숨통을 끊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수호대와 헤른은 아라네아의 등껍질 벗기는 것을 전담했다.
그야말로 잘 돌아가는 협업체계.
미카엘은 소진된 내공을 채우기 위해 운기 중이었다.
‘총 10년 정도 늘었나.’
내공을 소진시키고 채우기를 반복하니 겉돌고 있던 사네가의 내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미카엘의 상념은 조금 더 길어졌다.
40년의 내공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아라고네스는 왠지 느낌상 만만치 않은 격전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걸 한 번 써먹어 봐야겠군.”
미카엘의 눈이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