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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23화)
가정맹어마 ― (3)
“그런 내용은 처음 들어봤는데.”
“금서에요. 그 말을 남긴 주인공은 암흑시대 종전 후 영웅에 의한 왕국 형성 초기에 그런 얘기를 설파하다 교수형을 당해서 죽었죠.”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놀려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미카엘.
“아, 그런 불온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현시대에도 교수형 당할지도 몰라. 조심하라고. 나 무려 귀족인 남자야.”
“만약 그랬다면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거겠죠. 그리고 제 속을 드러낸 첫 번째 남자에게 배신당한 게 되구요.”
“아, 그럼 내가 그 비밀 지켜줄게.”
“영광이군요.”
한차례 장난스러운 말이 오고간 후 문득 옴므트리체가 말을 꺼냈다.
“고마워요. 배덕자의 마을이라 불리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비참한 곳으로 와 줘서. 그리고 구해줘서.”
그 말을 들은 미카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그런 것에 무슨 감사 인사를 해. 난 그저 멜핀이 안 되어서 왔을 뿐이야. 그리고 그걸 왜 트리체가 감사해? 인사를 하려면 마을 사람들이 해야지.”
“저도…….”
잠시 말을 끊은 옴므트리체가 조그맣게 얘기했고, 그녀의 말을 들은 미카엘의 눈은 더없이 커졌다.
“가죠. 도련님이 도중에 뛰쳐나와서 기다리겠어요.”
“으응, 그래. 가지, 트리체 양.”
“정말 이러실 거예요? 저는 옴므트리체. 남자라고요.”
“남자라고 하기에는 머리가 긴데. 두건 또 벗겨졌어.”
“꺄악∼’
옴므트리체와 미카엘은 투닥거리며 다시 멜핀의 숙소로 걸어갔고, 그 와중에 미카엘은 방금 전 들었던 옴므트리체의 말을 떠올렸다.
‘저도… 저도 배덕자 마을 출신이거든요.’
맨 처음 봤을 때보다 표정이 많이 밝아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미카엘은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다. 그리고 하늘은 여전히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었다.
***
다시 멜핀의 집으로 돌아온 미카엘은 자신이 행한 응징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꼴좋다고 박수를 쳐대는 로렌트와 헤른과는 달리 사네가는 믿기지 않아했다.
얼마 전까지 절대자로 군림했던 사내였는데 그렇게나 비참한 최후라니.
“자자.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일단은 이 마을의 안정이 최우선이야.”
현실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니 모두의 얼굴에 막막함이 떠올랐다.
어떻게 안정을 시킬 수가 있을까.
악행을 행하긴 했지만 에퀘스 상급과 하급 전사인 트위드와 어렌이 마물들의 침입에 대한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그 버팀목을 잘라낸 것이다.
“사네가는 에퀘스 하급이니 그런대로 되었고.”
“예… 하지만 이 마물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면이 있습니다. 거기다 헤사다의 영향력이 워낙 짙게 깔려 있어서 통제도 쉽지 않을 겁니다.”
사네가의 말에 미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 문제는 내가 생각해 둔 바가 있어. 이따가 사네가는 나를 따라오고, 로렌트와 헤른은 내가 말해주는 규격으로 나무를 좀 구해와.”
“무슨 나무? 여기 나무가 어디 있어?”
헤른이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투정하는 말에 로렌트도 동조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카엘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사네가. 아까 헤르헤 나무가 이 근처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 그렇긴 한데, 워낙 단단해서 웬만한 도끼질로는 잘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마을 장벽으로 사용된 거긴 하지만요. 두 분만으로는 아마 무리일 겁니다.”
“걱정 마라. 여기 로렌트는 무려 에퀘스 중급의 기사니까.”
“아… 그러십니까?”
사네가의 선망에 찬 눈을 바라본 로렌트는 늪에 걸려들고 말았다.
“험험! 도련님도 참, 사람 앞에서 민망하게 대놓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하.”
“그럼 도끼질 가능한 거지?”
“그… 그렇지요.”
말하고 보니 승낙한 꼴이 된 로렌트는 울상을 지었다.
“저는 약초를 활용하여 마을 사람들의 진료를 돕도록 하죠. 치료 마법은 못하지만 그런 건 배웠으니까요.”
옴므트리체는 알아서 할 일을 찾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도우려고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잘되었군. 그럼 각자 역할을 하도록 하지. 사네가는 나를 따라와.”
미카엘은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사네가가 그 뒤를 바삐 쫒아가니, 어느새 마을의 식량 창고로 쓰이는 건물 앞에 당도했다.
“미카엘 님. 이곳은 왜 오셨습니까?”
“이들에 대한 처리 때문이지.”
미카엘은 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그 앞에는 밧줄로 꽁꽁 묶여 있는 친위대와 어렌이 있었다.
친위대는 공통적으로 눈에 원독이 어려 있었다. 그런데 어렌의 눈빛은 좀 더 복잡했다.
그 속에는 물론 원독도 있었지만, 혼란의 감정도 드러나 있었다.
사네가는 안타까운 표정을 드러냈다.
“어렌. 참 아까운 친구입니다. 마을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마을 안의 가치가 절대적인 줄 아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죠. 그리고 이건 친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을 들은 친위대와 어렌의 눈빛이 커졌다. 하지만 아혈이 봉해져 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맨 처음에는 이들을 전부 죽여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중에서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은 바로 너 같군.”
“아…….”
몸을 구속하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 어렌은 짧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미카엘이 말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라.”
어렌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말인가? 신의 대리자가 꺾여버린 걸 인정하라는 건가? 아니면 불경하게도 나의 신심이 흔들리는 걸 말하라는 건가.”
“네가 신의 대리자라고 말하는 자는 그냥 인간이다. 그것도 인격이 망가진 인간. 너는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군.”
“허튼소리!”
어렌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 외침은 마치 벽에 대고 얘기한 것인 양 공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가 말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좋아.”
미카엘은 뒤로 물러섰다.
어렌은 앞으로 나선 사네가에게 침을 뱉었다.
“이 더러운 배신자 놈. 퇫!”
피가 섞인 침이 사네가의 뺨에 붙었다.
하지만 화내는 기색 없이 그저 묵묵히 침을 닦아낸 사네가는 담담한 신색만큼이나 조용한 어조로 과거의 비사를 꺼내 들었다.
아까 미카엘 일행에게 얘기했던 마을이 생겨났던 이유, 그리고 변해버린 헤사다 트위드의 이야기.
어느새 그의 입에선 유일하게 살아남은 1세대 정착민으로써의 경험담이 끝을 맺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마을이 생겨나게 된 연혁을 아는 자는 나밖에 없게 되었다. 헤사다 트위드가 트집을 잡아 다 죽이고 나만 남게 된 거지. 아마 내가 쓸 만한 에퀘스급 전사가 아니었다면 여태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테지.”
“미…믿을 수 없다.”
어렌은 머리를 잡아 뜯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친위대의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똑같이 떠올라 있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었으니, 현실을 직접 보는 게 맞겠지.”
미카엘은 친위대의 나머지 스무 명의 점혈을 모두 해혈하였다.
하지만 어느 한 명도 반항하는 이는 없었고, 미카엘이 이끄는 대로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따라갔다.
그들의 행렬에 마을 사람들도 자철에라도 붙은 것처럼 죄다 동참했다.
그렇게 마을 사람 모두가 몰려든 행보는 센트럴 파테르에 이르러서 끝이 났다.
이곳은 헤사다의 비위를 거스르는 사람을 공개 처형하는 용도로 쓰이던 마을의 광장.
그곳엔 한 남자가 짐승마냥 쓰러져 있다.
“자, 봐라. 이게 너희들이 믿던 신의 대리자다.”
어렌과 친위대의 얼굴이 굳었다. 사지가 잘린 채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트위드는 어디를 봐도 신의 대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는 잘린 팔과 다리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거… 거짓말이다. 트위드시여… 어서 일어나서 신벌을 행하여 주소서!”
신심이 가득한 한 남자의 절규에도 아혈이 봉쇄된 트위드에게는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친위대와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아득해졌다.
“만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그의 팔과 다리는 붙지 않았지.”
“그… 그건…….”
“하루가 짧은가? 이틀, 사흘도 기다려 주지. 하지만! 결국 인정해야 할 것이다. 눈앞의 저자는 추악한 욕심을 지닌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야. 만약에 그 후에도 계속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에게 말해라. 그 신심을 인정하여 직접 순교시켜 주지.”
미카엘의 말에 정말 거짓말 같게도 선뜻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걸 보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트위드. 보았는가? 네가 구축한 세계가 겨우 이 정도다. 네가 거짓으로 꾸민 세상은 이렇게 조그마한 균열에도 깨지는 것이다.”
아혈이 짚어져 있는 헤사다 트위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을 보는 미카엘은 쓴 웃음을 지었다.
“권력이란 영원할 것 같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이지.”
***
“도련님 뜻을 이제 알겠습니다. 하지만 꼭 관도를 놔두고 이렇게 가셔야겠습니까?”
“맞아, 미카엘. 아무리 뜻이 좋아도 이건 아니라고 봐.”
배덕자의 마을을 나서는 로렌트와 헤른의 얼굴은 불만으로 퉁퉁하게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옴무트리체가 있었고, 놀랍게도 어렌과 친위대라 불렸던 이십 명의 궁수가 뒤따르고 있었다.
“자, 마을 안정시키는 데 무려 사흘을 써버렸어. 그리고 관도까지 다시 가서 에인하트 왕국까지 가려면 늦잖아. 그러니 워툼데세로 구역을 관통하는 수밖에.”
“안 돼. 절대 안 돼.”
“맞습니다. 도련님 이건 절대적. 아니, 신계적으로 안 되는 일이에요. 저 아직 장가도 못 갔습니다.”
로렌트와 헤른이 울고불고 난리를 쳤으나, 미카엘의 뜻은 단호했다.
“자, 우리는 워툼데세로 구역을 관통한다! 마침 우리에겐 지도도 있으니까.”
“크허헉!”
“도… 도련님!! 이러려고 지도를 도적들에게 빼앗았군요.”
두 명의 비명성을 뒤로 하고 미카엘은 지난 사흘간의 마을에서 있던 일을 떠올렸다.
지난 사흘 동안 미카엘은 마을 주변에 구궁팔괘진을 설치했다.
진법을 설치한 후에 주변에 서식하는 아라네아와 라이레거를 직접 잡아와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그 효용성을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마물은 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안정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리고 더 고무적인 것은, 마물을 걱정하지 않고 식량을 수확할 수 있는 비옥한 토지까지 덤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위험에서 벗어난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트위드가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무서웠다. 트위드는 시체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남은 일은 사네가가 얼마나 질서를 잡아가느냐. 그게 관건이지.’
사네가에게 사흘 동안 전수한 오러 연공법과 로비츠 연공에 의한 환골탈태술, 그리고 검술은 그를 강하게 해줄 것이다. 물론 그도 후에 타락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그것도 인간이니까. 하지만 믿고 싶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살벌한 마을이 아니라 조금 더 인간적인 가치관을 가진 마을을 만들 것을 말이다.
“미∼∼카엘… 제∼∼발. 응? 관도로 가자.”
“시끄러워. 자꾸 그러면 친위대가 메고 있는 아라네아 등껍질, 너보고 다시 끌라고 한다.”
“아냐. 나 아무 말 안 했어.”
“그럼 가자. 워툼데세로 구역이고 뭐시고 관통하자고!”
지금은 에인하트 왕국 마물 퇴치전이 벌어나기 불과 삼십여 일 전이다.
가정맹어마 ― (3)
“그런 내용은 처음 들어봤는데.”
“금서에요. 그 말을 남긴 주인공은 암흑시대 종전 후 영웅에 의한 왕국 형성 초기에 그런 얘기를 설파하다 교수형을 당해서 죽었죠.”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놀려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미카엘.
“아, 그런 불온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현시대에도 교수형 당할지도 몰라. 조심하라고. 나 무려 귀족인 남자야.”
“만약 그랬다면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거겠죠. 그리고 제 속을 드러낸 첫 번째 남자에게 배신당한 게 되구요.”
“아, 그럼 내가 그 비밀 지켜줄게.”
“영광이군요.”
한차례 장난스러운 말이 오고간 후 문득 옴므트리체가 말을 꺼냈다.
“고마워요. 배덕자의 마을이라 불리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비참한 곳으로 와 줘서. 그리고 구해줘서.”
그 말을 들은 미카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그런 것에 무슨 감사 인사를 해. 난 그저 멜핀이 안 되어서 왔을 뿐이야. 그리고 그걸 왜 트리체가 감사해? 인사를 하려면 마을 사람들이 해야지.”
“저도…….”
잠시 말을 끊은 옴므트리체가 조그맣게 얘기했고, 그녀의 말을 들은 미카엘의 눈은 더없이 커졌다.
“가죠. 도련님이 도중에 뛰쳐나와서 기다리겠어요.”
“으응, 그래. 가지, 트리체 양.”
“정말 이러실 거예요? 저는 옴므트리체. 남자라고요.”
“남자라고 하기에는 머리가 긴데. 두건 또 벗겨졌어.”
“꺄악∼’
옴므트리체와 미카엘은 투닥거리며 다시 멜핀의 숙소로 걸어갔고, 그 와중에 미카엘은 방금 전 들었던 옴므트리체의 말을 떠올렸다.
‘저도… 저도 배덕자 마을 출신이거든요.’
맨 처음 봤을 때보다 표정이 많이 밝아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미카엘은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다. 그리고 하늘은 여전히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었다.
***
다시 멜핀의 집으로 돌아온 미카엘은 자신이 행한 응징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꼴좋다고 박수를 쳐대는 로렌트와 헤른과는 달리 사네가는 믿기지 않아했다.
얼마 전까지 절대자로 군림했던 사내였는데 그렇게나 비참한 최후라니.
“자자.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일단은 이 마을의 안정이 최우선이야.”
현실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니 모두의 얼굴에 막막함이 떠올랐다.
어떻게 안정을 시킬 수가 있을까.
악행을 행하긴 했지만 에퀘스 상급과 하급 전사인 트위드와 어렌이 마물들의 침입에 대한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그 버팀목을 잘라낸 것이다.
“사네가는 에퀘스 하급이니 그런대로 되었고.”
“예… 하지만 이 마물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면이 있습니다. 거기다 헤사다의 영향력이 워낙 짙게 깔려 있어서 통제도 쉽지 않을 겁니다.”
사네가의 말에 미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 문제는 내가 생각해 둔 바가 있어. 이따가 사네가는 나를 따라오고, 로렌트와 헤른은 내가 말해주는 규격으로 나무를 좀 구해와.”
“무슨 나무? 여기 나무가 어디 있어?”
헤른이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투정하는 말에 로렌트도 동조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카엘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사네가. 아까 헤르헤 나무가 이 근처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 그렇긴 한데, 워낙 단단해서 웬만한 도끼질로는 잘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마을 장벽으로 사용된 거긴 하지만요. 두 분만으로는 아마 무리일 겁니다.”
“걱정 마라. 여기 로렌트는 무려 에퀘스 중급의 기사니까.”
“아… 그러십니까?”
사네가의 선망에 찬 눈을 바라본 로렌트는 늪에 걸려들고 말았다.
“험험! 도련님도 참, 사람 앞에서 민망하게 대놓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하.”
“그럼 도끼질 가능한 거지?”
“그… 그렇지요.”
말하고 보니 승낙한 꼴이 된 로렌트는 울상을 지었다.
“저는 약초를 활용하여 마을 사람들의 진료를 돕도록 하죠. 치료 마법은 못하지만 그런 건 배웠으니까요.”
옴므트리체는 알아서 할 일을 찾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도우려고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잘되었군. 그럼 각자 역할을 하도록 하지. 사네가는 나를 따라와.”
미카엘은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사네가가 그 뒤를 바삐 쫒아가니, 어느새 마을의 식량 창고로 쓰이는 건물 앞에 당도했다.
“미카엘 님. 이곳은 왜 오셨습니까?”
“이들에 대한 처리 때문이지.”
미카엘은 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그 앞에는 밧줄로 꽁꽁 묶여 있는 친위대와 어렌이 있었다.
친위대는 공통적으로 눈에 원독이 어려 있었다. 그런데 어렌의 눈빛은 좀 더 복잡했다.
그 속에는 물론 원독도 있었지만, 혼란의 감정도 드러나 있었다.
사네가는 안타까운 표정을 드러냈다.
“어렌. 참 아까운 친구입니다. 마을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마을 안의 가치가 절대적인 줄 아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죠. 그리고 이건 친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을 들은 친위대와 어렌의 눈빛이 커졌다. 하지만 아혈이 봉해져 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맨 처음에는 이들을 전부 죽여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중에서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은 바로 너 같군.”
“아…….”
몸을 구속하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 어렌은 짧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미카엘이 말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라.”
어렌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말인가? 신의 대리자가 꺾여버린 걸 인정하라는 건가? 아니면 불경하게도 나의 신심이 흔들리는 걸 말하라는 건가.”
“네가 신의 대리자라고 말하는 자는 그냥 인간이다. 그것도 인격이 망가진 인간. 너는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군.”
“허튼소리!”
어렌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 외침은 마치 벽에 대고 얘기한 것인 양 공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가 말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좋아.”
미카엘은 뒤로 물러섰다.
어렌은 앞으로 나선 사네가에게 침을 뱉었다.
“이 더러운 배신자 놈. 퇫!”
피가 섞인 침이 사네가의 뺨에 붙었다.
하지만 화내는 기색 없이 그저 묵묵히 침을 닦아낸 사네가는 담담한 신색만큼이나 조용한 어조로 과거의 비사를 꺼내 들었다.
아까 미카엘 일행에게 얘기했던 마을이 생겨났던 이유, 그리고 변해버린 헤사다 트위드의 이야기.
어느새 그의 입에선 유일하게 살아남은 1세대 정착민으로써의 경험담이 끝을 맺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마을이 생겨나게 된 연혁을 아는 자는 나밖에 없게 되었다. 헤사다 트위드가 트집을 잡아 다 죽이고 나만 남게 된 거지. 아마 내가 쓸 만한 에퀘스급 전사가 아니었다면 여태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테지.”
“미…믿을 수 없다.”
어렌은 머리를 잡아 뜯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친위대의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똑같이 떠올라 있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었으니, 현실을 직접 보는 게 맞겠지.”
미카엘은 친위대의 나머지 스무 명의 점혈을 모두 해혈하였다.
하지만 어느 한 명도 반항하는 이는 없었고, 미카엘이 이끄는 대로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따라갔다.
그들의 행렬에 마을 사람들도 자철에라도 붙은 것처럼 죄다 동참했다.
그렇게 마을 사람 모두가 몰려든 행보는 센트럴 파테르에 이르러서 끝이 났다.
이곳은 헤사다의 비위를 거스르는 사람을 공개 처형하는 용도로 쓰이던 마을의 광장.
그곳엔 한 남자가 짐승마냥 쓰러져 있다.
“자, 봐라. 이게 너희들이 믿던 신의 대리자다.”
어렌과 친위대의 얼굴이 굳었다. 사지가 잘린 채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트위드는 어디를 봐도 신의 대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는 잘린 팔과 다리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거… 거짓말이다. 트위드시여… 어서 일어나서 신벌을 행하여 주소서!”
신심이 가득한 한 남자의 절규에도 아혈이 봉쇄된 트위드에게는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친위대와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아득해졌다.
“만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그의 팔과 다리는 붙지 않았지.”
“그… 그건…….”
“하루가 짧은가? 이틀, 사흘도 기다려 주지. 하지만! 결국 인정해야 할 것이다. 눈앞의 저자는 추악한 욕심을 지닌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야. 만약에 그 후에도 계속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에게 말해라. 그 신심을 인정하여 직접 순교시켜 주지.”
미카엘의 말에 정말 거짓말 같게도 선뜻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걸 보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트위드. 보았는가? 네가 구축한 세계가 겨우 이 정도다. 네가 거짓으로 꾸민 세상은 이렇게 조그마한 균열에도 깨지는 것이다.”
아혈이 짚어져 있는 헤사다 트위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것을 보는 미카엘은 쓴 웃음을 지었다.
“권력이란 영원할 것 같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이지.”
***
“도련님 뜻을 이제 알겠습니다. 하지만 꼭 관도를 놔두고 이렇게 가셔야겠습니까?”
“맞아, 미카엘. 아무리 뜻이 좋아도 이건 아니라고 봐.”
배덕자의 마을을 나서는 로렌트와 헤른의 얼굴은 불만으로 퉁퉁하게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옴무트리체가 있었고, 놀랍게도 어렌과 친위대라 불렸던 이십 명의 궁수가 뒤따르고 있었다.
“자, 마을 안정시키는 데 무려 사흘을 써버렸어. 그리고 관도까지 다시 가서 에인하트 왕국까지 가려면 늦잖아. 그러니 워툼데세로 구역을 관통하는 수밖에.”
“안 돼. 절대 안 돼.”
“맞습니다. 도련님 이건 절대적. 아니, 신계적으로 안 되는 일이에요. 저 아직 장가도 못 갔습니다.”
로렌트와 헤른이 울고불고 난리를 쳤으나, 미카엘의 뜻은 단호했다.
“자, 우리는 워툼데세로 구역을 관통한다! 마침 우리에겐 지도도 있으니까.”
“크허헉!”
“도… 도련님!! 이러려고 지도를 도적들에게 빼앗았군요.”
두 명의 비명성을 뒤로 하고 미카엘은 지난 사흘간의 마을에서 있던 일을 떠올렸다.
지난 사흘 동안 미카엘은 마을 주변에 구궁팔괘진을 설치했다.
진법을 설치한 후에 주변에 서식하는 아라네아와 라이레거를 직접 잡아와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그 효용성을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마물은 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안정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리고 더 고무적인 것은, 마물을 걱정하지 않고 식량을 수확할 수 있는 비옥한 토지까지 덤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위험에서 벗어난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트위드가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무서웠다. 트위드는 시체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남은 일은 사네가가 얼마나 질서를 잡아가느냐. 그게 관건이지.’
사네가에게 사흘 동안 전수한 오러 연공법과 로비츠 연공에 의한 환골탈태술, 그리고 검술은 그를 강하게 해줄 것이다. 물론 그도 후에 타락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그것도 인간이니까. 하지만 믿고 싶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살벌한 마을이 아니라 조금 더 인간적인 가치관을 가진 마을을 만들 것을 말이다.
“미∼∼카엘… 제∼∼발. 응? 관도로 가자.”
“시끄러워. 자꾸 그러면 친위대가 메고 있는 아라네아 등껍질, 너보고 다시 끌라고 한다.”
“아냐. 나 아무 말 안 했어.”
“그럼 가자. 워툼데세로 구역이고 뭐시고 관통하자고!”
지금은 에인하트 왕국 마물 퇴치전이 벌어나기 불과 삼십여 일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