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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22화)

가정맹어마 ― (2)


알 수 없는 말에 그는 답을 찾아 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멜핀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아빠. 미카엘 님이 트위드를 징벌했어요.”
“하하하하…….”
그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이것을 믿어야 할지 말지… 믿기지 않아서다.
미카엘은 답을 풀어주는 대신 그의 완맥을 잡았다.
그러자 당연히 멜핀의 아비는 기겁을 하였다.
“귀하신 분 같으신데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할 게 있어서 그러니 잠시 가만히 있도록. 그나저나 이름이 뭐지?”
“예? 예예, 사네가라고 합니다.”
사네가는 더없이 귀하게 생긴, 누가 봐도 왕족쯤으로 보이는 미카엘이 무려 자신의 이름을 묻자 너무 당황하였다.
하지만 정답을 주어야 하는 자신의 딸은 그저 괜찮다는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고 싶으나 자리보전을 한 터라 몸을 채 일으키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을 수밖에.
한편 미카엘은 기를 불어넣어 사네가의 내부를 살폈다.
“역시…….”
미카엘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의 기력이 너무나 탈진 되었다는 것.
미카엘은 옆에 있는 죽 그릇을 가리켰다.
“비록 멀건 죽이지만 그래도 먹었다면 이렇게 탈진되지는 않았을 텐데, 왜 그러지?”
“예? 아… 이 죽 말입니까…….”
사네가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사실 이건 죽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합니다. 왜냐하면 원재료가 저것이기 때문이죠.”
그의 손끝을 따라간 미카엘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끝이 가리킨 곳은 바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집 자체였기 때문이다.
“서, 설마… 집을 먹었다는 건가.”
어지간한 미카엘조차 질린 얼굴이 되었다.
사네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집이 아니라, 집을 세우는데 쓰인 르와벡 나무 속껍질을 벗겨서 먹은 겁니다요.”
그 말에 모두의 얼굴은 질려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은 헤른이 제일 컸다.
비록 하급 귀족가이나 평민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요함을 누렸다.
그러다 보니 지금 보는 건 감히 상상도 못했던 참혹함이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있던 집들이 그렇게 구멍이 뻥 뚫려 있었던 것이군요.”
옴므트리체는 그제야 마을의 비밀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사네가는 그 말에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힐 뿐이다.
“아빠, 이거 드세요.”
그사이 멜핀이 낡디 낡은 나무그릇에 새하얀 것을 담아왔다.
바로 테테였는데, 나름 채를 썰어 먹기 좋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속에 담긴 쓴맛이 덜해질 리는 없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가 가져온… 음식…….”
말리려는 옴므트리체의 어깨를 누군가가 잡았다. 놀라 바라보니, 고개를 젓는 미카엘이었다.
“지금의 그에겐 저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군.”
과연 그 말대로 사네가는 눈물을 흘리면서 테테를 먹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고, 심지어 그 헤른마저 눈물을 훔칠 정도였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그가 가진 지위의 고하가 아니지.”
헤른은 미카엘이 중얼거리는 말에 흠칫하였다. 그래서일까, 반발심에 욱하여 말하였다.
“네가 어떻게 알지? 지위는 네가 더 높잖아? 무려 백작의 아들 말이야.”
“그래 난 백작의 외아들이지. 하지만 나는 저들을 적어도 인간으로 바라본다. 너는 그저 배덕자로만 바라보려 했지.”
입술을 꽉 깨문 헤른. 하지만 그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를 보고 슬쩍 미소를 흘린 미카엘은 사네가를 향해 말했다.
“다 먹었으면 치료부터 하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원래의 자네로 돌아가 보자는 말이야. 전직 에퀘스급 전사!”
사네가의 표정에서 경악의 표정이 떠올랐다.

잠시 후.
사네가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이었다니…….”
“운이 좋았어.”
아까 자신이 관조한 사네가의 내부는 오러 코어가 깨지기 직전 폭주하는 소용돌이였다.
아예 차라리 오러 코어가 깨졌다면 그저 정양하는 것으로 족했을 테지만, 오러 코어가 충격을 받아 폭주하였기에 몸이 과부하를 받았던 것이다.
미카엘이 한 것은 그 폭주하고 있는 기운을 일부 흡수하여 가라앉히고 올바른 길로 이끈 것뿐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됩니다. 저와 제 딸을 살려주신 은혜, 평생토록 종처럼 갚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그저 나는 한 가지를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너를 구했을 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구심점. 헤사다를 대신할 구심점을 찾기 위해 너를 택했을 뿐이다.”
“구심점 말입니까?”
커지는 동공 앞에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들을 내가 영지로 데려갈 수도 없으니 누군가가 이곳에서 저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돼. 그 역할을 네가 했으면 좋겠다.”
“제가 과연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헤사다 트위드도 처음부터 저랬던 것은 아니니까요.”
“뭐어?”
미카엘의 놀란 눈빛 앞에 사네가는 한숨을 터트리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죽어라, 죽어! 이 개 호로 새끼야!”
“으으으읍!”
쉴새없이 움직이는 눈동자가 애처롭기 그지없지만 미카엘은 손을 멈출 생각을 안했다.
벌써 이십 분째.
아마 그를 아직도 신의 사자쯤으로 믿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은신을 풀고 그 목을 비틀었을 것이다.
이렇게 은밀하게 은신한 상태로 패는 이유는 그만큼 사네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미카엘을 열받게 하였기 때문이다.
몸뚱이만 남은 헤사다는 마혈이 봉해진 탓에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는 와중에도 생존본능으로 버둥거렸다.
“으…으읍읍.”
“이 개자식. 뭐? 네가 신이야? 뭐? 너는 호의호식하고 네 비위를 거스르는 사람은 벌레처럼 죽이고 일반 주민들에게 그걸 양식이라고 사람 고기를 먹여?”
“으…으…으.”
“너 말야, 네 아버지가 착취당하는 마을 사람들이 불쌍해서 탈출한 거라며? 명색이 기사 아들놈이면 제대로 살아야지. 마물보다 무서운 영주를 피해온 사람들을 착취하고 네가 그보다 더한 짓을 해? 이 새꺄? 네가 가정맹어호 알아? 모르지. 무식하니까. 아 여기는 가정맹어마인가. 암튼 너는 마물보다 못한 새끼야.”
“크르르르.”
몸이 마구 짓밟히는 충격으로 입에서는 계속 피거품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한 번 시작된 폭력은 그칠 줄을 몰랐다.
“죽어, 이 새꺄. 파테르 좋아하시네. 넌 그냥 사라져 주는 게 진리다.”
한참을 패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흐흐흐. 아이고, 내가 이런 실수를. 깔끔하게 잘라드렸어야 되는데 가운데 소∼중한 곳을 까먹었네?”
“읍읍읍!”
그 와중에도 그게 뭐라고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듯 몸부림을 쳤고. 그러니 더욱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작별 인사라도 해.”
바삭.
즈려밟은 발끝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
“으으으. 흐…흐.”
기묘한 비음과 함께 고꾸라지는 트위드를 보니 더러웠던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후우…….”
트위드에게서 떨어져 나와 하늘을 보고 잠시 탁했던 숨을 토해내는데, 저기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옴므트리체의 모습이 보였다.
왠지 모르게 누구라도 사생결단 낼 것 같은 모습. 미카엘은 생각해 볼 것 없이 은신술을 풀고 그녀의 어깨부터 붙잡았다.
“옴므트리체! 어디 가!”
“아… 미카엘 님. 헉헉헉.”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을 한껏 몰아쉬는 그녀
“왜 나왔어?”
“그 자식, 얼려버리려고요.”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오는 모습을 보니 당장이라도 빙계 마법을 구현할 기세다.
안 말렸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니 순간 아찔해진다.
“얼음 조각상 만들 참이야? 그놈은 그래도 싸지만 지금 그랬다간 마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날지도 모른다구.”
“아… 아! 그렇군요! 미,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미카엘은 머리를 짚었다. 그녀를 보자니 이성과 냉철을 중시 여기는 마법사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응징을 가했으니까 진정하고 이리 와.”
“무슨 응징을 가했는데요?”
궁금해 하는 그녀에게 미카엘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후.
“그, 그렇군요. 조금은 화가 가라앉네요. 흠흠…….”
그녀의 얼굴은 벌게져 있었다.
미카엘은 그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다 눈이 살짝 커졌다.
얼마나 빨리 뛰어왔던지, 두건이 벗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두건이…….”
“어머나, 이런 실수를.”
옴므트리체가 서둘러 삼단 같은 머릿결을 두건 속으로 사라지게 하자 미카엘의 눈에서 아쉬움이 번졌다.
“뭐 그렇게 빨리…….”
“예? 뭐라고요?”
“아냐. 하늘이 맑다고.”
툴툴거리는 미카엘.
옴므트리체는 그의 말을 진담으로 여겼는지,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 맑네요.”
“아, 진짜 그렇군.”
미카엘도 하늘을 바라봤다.
마침 구름도 없을뿐더러 하늘은 높고 파랬다. 거기다 시원한 바람까지 부니 옴므트리체는 아까 전 흥분했던 것이 더욱 민망해졌다. 그래서 슬며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미카엘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영광이군. 잘생긴 남자 옆에 앉아주다니.”
“흠흠, 그… 그러게요. 큰 영광인 줄 아세요. 이건 정말 특별한 대우거든요.”
웃다 보니 조금 전 어색했던 상황은 좀 가신 듯, 그녀에게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번져 나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쉽게 나온 질문에 비해 미카엘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왜 그랬을까. 그냥 뭐, 꼴 보기가 싫어서일까.”
사실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어디에나 있는 흔한 얘기 아닌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 착취하는 얘기란.

***

“도련님에겐 조금 충격이었을지도 모르죠. 영주가 소작농이 농지를 경작하는 것보다 광산에서 마나석을 캐는 것이 돈이 된다는 이유로 영지민을 죄다 광산으로 몰아넣고, 조금이라도 불만을 보이는 사람들은 발목을 잘라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죽을 때까지 부려먹고. 그래서 암흑시대 전쟁의 영향으로 불구가 된 몰락 기사와 그 일행이 영지민들을 구원하기 위해 몰래 영지를 빠져나온 이야기.”
“아니, 내가 놀란 건 그 기사의 후손이 마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신을 믿는 주민들을 배신하고 권력에 잠식당해 본래 영주였던 귀족보다 더 심하고 가혹한 지배자가 된 것이 더 충격적이었지.”
“제가 예전에 읽은 책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권력이 가지는 폭력성은 권력자가 가지고 있는 크기보다 그 권력을 통제할 만한 수단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래도 마을 주변에 마물만 있고 외부로부터 격리되어 있으니, 타락할 환경이 주어진 거죠.”
그 말을 들은 미카엘을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자신이 세상사에 관심이 없었기로서니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