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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20화)

배덕자의 마을 ― (5)


헤르마트 검식 3검식, 다미버트리마(연쇄 칼날)

프슛.
시간이 멈춘 것처럼, 땅바닥에 있던 모래 알갱이가 빗방울이 땅에 떨어질 때 비산하듯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흩어진 모래처럼 그의 신형 역시 로렌트의 시야에서 벗어나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로렌트는 당황했지만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큰 기술을 사용한 만큼 분명 틈도 있을 것이다.
“어디냐…….”
푸슛.
바로 오른쪽에서 들린 파공성에 로렌트는 왼쪽으로 신형을 돌렸다.
“후후, 그쪽이었더냐.”
그 순간 환청처럼 미카엘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보야! 뭐 하는 거야? 정신 안 차리고. 왼쪽이잖아, 왼쪽!!]
로렌트가 생각할 것도 없이 재빨리 검을 역날로 쥐어 바깥쪽으로 튕기자 검첨끼리 부딪쳤다.
“크아아악!”
로렌트는 술 취한 사람처럼 비칠비칠 튕겨나갔다.
흔들린 오러 코어.
이것은 이틀은 꼬박 정양해야 할 내상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냥 졌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아니, 졌다. 도련님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이놈!”
분노한 로렌트의 검에는 전에 없이 큰 검기가 불타올랐다.
“아… 아니, 어떻게 신의 숨결을…….”
어렌은 믿기지 않는지 눈빛이 흔들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해를 꿰뚫는 듯한 기세로 검이 내쏘아졌다.
카지지직.
상대의 검날에 찔러진 검 끝.
하지만 오러 메핑된 절삭력은 어렌의 검을 그대로 부수고 지나갔다.
“허헉!”
어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느새 상대의 검 끝이 자신의 목젖을 건드리고 있는 것.
“이, 이럴수가…….”
“허억… 허억…….”
로렌트의 입에선 연신 가쁜 숨이 내쉬어졌다. 그만큼 온 힘을 다한 혼신의 일격이었다.
“내, 내가… 자랑스런 휘페리온의 전사인 내가 지다니!”
“후우… 정확하게는 이긴 게 아니지.”
“이놈, 그게 무슨 소리냐!”
하지만 로렌트는 낯빛이 어두웠다. 미카엘의 전음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지금 죽은 목숨이었기 때문이다.
명예를 아는 기사라 자부했기에 로렌트는 차마 상대의 목숨을 거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죽여라, 이놈!”
“후우… 이긴 게 아니니 내가 죽일 수는 없지.”
검을 내리고 서서히 물러나는 로렌트.
미카엘은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것은 그에게 또 다른 발판이 될 것이다.
어렌의 얼굴에는 굴욕이 어렸다.
휘페리온의 성지를 더럽힌 자들을 막지도 못했으며 그들에게 목숨을 구걸당했다.
“이놈… 감히! 휘페리온의 대전사인 나에게 동정을 해!”
무작정 눈이 뒤집혀 달려드는 어렌.
미카엘은 그런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퍼억!
“크… 크헉!”
어렌은 그대로 어딘가를 부여잡고 엎어졌다.
“도련님!”
“이놈은 이 정도는 해야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 테지.”
원망의 빛을 띄운 로렌트를 향해 미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런.”
“광신을 우습게 보지마라. 그리고 진짜는 지금 오고 있다…….”
미카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로렌트는 미카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 진짜라니요? 제가 지금 배덕자의 마을 수괴를 절단 내어 놓은 게 아닙니까?”
“저기 진짜가 있어.”
미카엘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한 지점. 그 끝에는 마을의 망루가 위치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체구가 당당한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왔군. 이질감의 정체.”
로렌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배덕자의 마을이 이래? 에퀘스급이 있지 않나, 근데 그 위에 또 있다고?”
“커허헉. 파테르께서 오셨다. 파테르시여, 신군을 지키지 못한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어렌이 신성을 부르짖는 모습을 보자니 로렌트의 마음속에는 왠지 모르게 불안함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태양을 가린 구름은 사방을 어둡게 해 그 마음을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휘페리온의 신성을 침범하는 자. 용서치 않으리라.”
창공을 찢는 고성.
망루에서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들리니…….
“파테르.”
“파테르.”
“신의 대리자시여.”
이에 여타의 소리가 호응한다.
어느샌가 성문 어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어 있었다.
“이거…….”
안 좋은 기억이 순간 미카엘의 뇌리를 스쳤다.
과거 황제의 명으로 천년마교의 무리를 척결할 때 교주와 신녀를 지키기 위해 육탄으로 목숨을 내던진 일반 마교도인들. 그들과 눈빛과 닮았다.
“감히 신군을 해한 자, 용서할 수 없다!”
“…대략 이 갑자 정도인가?”
목소리에 담긴 힘에서 어느 정도 경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에퀘스 상급이라고 보면 맞을까?”
“에퀘스 상급이요? 저기 저놈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에퀘스 상급은 최소 후작가 기사단에서도 단장급이라구요!”
“그저 오러만 따진다면 그렇다는 얘기야.”
“젠장. 무슨… 배덕자 마을에 실력자들이 이렇게 많아?”
로렌트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구시렁구시렁 거렸다.
미카엘은 상대와 자신의 힘을 견주어 보았다.
표피에 고정되어 있어 쓸 수 없는 내공이 180년.
가용할 수 있는 내공 30년.
그에 반해 상대는 내공만 120년 이상인데다 여차하면 신체 강화까지 쓸 수 있다.
“확실히 순수한 힘으로는 차이가 좀 나는군.”
“도련님. 이제 어떡하죠?”
로렌트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불안함을 눈치챈 미카엘은 피식 웃었다.
“걱정 마. 이기는 데는 문제없으니까.”
“상대는 오러 에퀘스 상급인데요?”
“오러만 강하면 강하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야.”
“진짜로 에퀘스 상급을 혼자서 상대하시게요?”
“물론.”
“아, 진짜.”
로렌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제 겨우 열다섯 애송이가 왕국에도 얼마 없는 에퀘스 상급을 상대하려 한다.
자신은 호위 기사이니 같이 상대하거나 말려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왜 이렇게 믿음이 가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말이 안 되는 것도 안다. 하지만 무엇인가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이 미카엘에게는 있었다.
로렌트는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무조건 개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렌트는 머뭇거리는 일행을 뒤쪽으로 잡아끌었다.
헤른은 끌려가는 와중에도 우물쭈물 말을 건넸다.
“야… 기왕이면 이겨. 마음에 안 들지만 네가 이겨야 우리가 사니까.”
미카엘은 눈꼬리에 호선을 그렸다.
“당연한 소리.”
짐짓 큰소리로 화답한 이유는 뒤쪽에서 연신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옴므트리체를 안심시키기 위함도 있었다.
쿠웅.
그때, 땅 속까지 깊이 울리는 충격음이 모두의 귓가를 울렸다.
놀라 바라보니 어느샌가 거구의 사내가 미카엘의 앞에 당도해 있었다.
무려 망루에서부터 뛰어내린 것이다.
분노에 찬 목소리가 그에게서 들려왔다.
“감히 신성한 성지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신군을 해하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뒤쪽으로 물러나 있던 일행들은 기가 질렸다.
눈앞에 나타난 자는 가까이서 보니 그야말로 장대한 체구를 가진 거인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7피트에 달하는 거구.
그뿐만이 아니었다. 등에는 거의 6피트의 길이에 육박하는 그레이트 소드를 가로 맸는데, 그 위용이 거구와 어우러져 위압감을 더하고 있었다.
“으으… 이거 너무 무지막지한데. 로렌트 경, 그렇지 않아?”
“끄으응……”
난리가 난 뒤쪽과 달리 정작 상대하는 당사자는 무심한 표정. 이윽고 미카엘의 입에서 칼바람 같은 냉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용서라는 말, 웃기는군.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이지? 네가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
“무…어라?”
모래알을 씹은 표정이 된 헤사다.
살기를 참지 못하고 등에 맨 검을 강하게 뽑아 올렸다.
위잉.
불현듯 떨쳐진 벼락같은 일격.
“크크크, 죽어랏!”
헤사다는 득의에 찬 광소를 터트렸다.
어느샌가 검이 적의 상체를 쪼갤 것처럼 맞닿아 있었고, 귀족 애송이는 그걸 보면서도 반응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닛?!”
순간 헤사다의 동공이 촛불처럼 흔들렸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
언제 벗어났는지, 미카엘의 몸이 어느새 검격에서 한 치정도 벗어나 있었다!
미카엘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별것 없군.”
“감히!”
평소라면 미남자의 미색에 성욕이 동하기라도 할 텐데 분노가 그의 눈을 멀게 했다.
“죽여주마!”
헤사다는 신체 강화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쿠우웅…….
신체 강화가 그의 육신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신체는 부풀어 오르고 발밑에선 청석이 그대로 깨져 나간다.
그리고 주변의 공기는 물을 끓인 듯 들끓는다.
미카엘은 혀를 찼다.
“폭발력만 따진다면 마교주 혁위천보다 셀지도 모르겠는데…….”
그만큼 그 힘의 크기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퍼캉.
“죽…여…주마.”
신체 강화를 받아 고속으로 움직이는 헤사다 트위드.
어찌나 빠른지, 소리가 띄엄띄엄 끊어져 들려온다.
신체 강화까지 받은 검격은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크쾌애액.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검이 한순간에 미카엘의 검을 덮쳤다.
트위드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맞부딪친 이상 끝이다. 검은 물론이고 그 뒤에 위치한 몸까지 한꺼번에 갈라버릴 것이다.
하지만…….
바가가가가각.
“아닛?!”
헤사다의 동공은 금방이라도 터질듯 크게 부풀었다.
감히 자신의 검과 맞서고 있다.
그것도 검과 검이 정면으로 마주쳐서 말이다.
“어, 어떻게… 내 검은 오러 메핑이 되어 있는데.”
“내 것도 되어 있다.”
비록 삼십 년에 불과하지만 검기를 내뿜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워낙 오러 량이 적었기에 그 깊이가 옅긴 했지만, 트위드의 검을 막아서기에는 충분했다.
“이… 이놈!”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더욱 힘을 가하는 트위드.
하지만 방어하는 쪽은 오히려 태연하였다.
“그 정도가 전부인가. 이것 참, 실망스럽기 짝이 없군.”
기묘한 대치.
미카엘은 대결 전에 가졌던 자신의 생각을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놈은 강자와 겨루어 본 경험이 거의 없음이 분명하다.
정저지와.
우물 속의 개구리인 것이다.
아마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실전 경험까지 갖추었더라면 자신을 조금 더 힘들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저자는 그저 큰 힘을 가진 애송이에 불과했다.
미카엘은 손을 자연스럽게 휘저었다. 그러자 경로를 벗어난 검은 스스로의 힘에 못 이겨 땅으로 내리꽂혔다.
쿠웅.
명백한 실기.
순간적으로 미카엘과 트위드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이 존재 하지 않았다.
미카엘이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하얀 실선을 그린 듯 득달같이 파고든다.
“으악!”
트위드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스왁!
무엇인가 스쳤고, 시뻘건 것이 트위드의 망막에 튀었다.
“크으으으윽”
신음 소리와 함께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 트위드.
물러서자마자 재빨리 고개부터 숙였다.
가슴 언저리에서 뒤늦게 격통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 이럴 수가…….”
조금만 깊었더라면 죽었다.
전광석화처럼 발출된 검이 상체를 가른 것이다.
신체 강화는 순간적으로 육체를 쇠보다도 강하게 하건만 눈앞의 남자에게는 그런 것이 장애가 되지 않았다.
공포가 갑자기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비록 신체 강화로 팽창된 근육이 출혈 부위를 막아 더 이상의 출혈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패배’, 아니 ‘죽음’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새겨 놓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