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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19화)
배덕자의 마을 ― (3)
로렌트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마 그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어느새 지근거리로 다가온 어렌이 아직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을 건냈다.
“귀족으로 보이시는데, 이런 누추한 곳에 머무실 수 있겠습니까?”
“그, 그렇다. 비록 누추하지만 특별히 내가 머물러 주겠다. 우리 일행들이 올 때까지만 말이다”
이건 속을 수밖에 없다.
실생활의 말과 다름없는 헤른이 말을 했으니 말이다.
“여기로 일행들이 오긴 합니까?”
안심한 어렌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 그게… 반드시 올 것이다.”
헤른은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물론 연기지만 어렌은 그 표정을 믿었다. 그리고 확신하였다. 이들을 처리해도 후환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멜핀. 이렇게 먹이감을 물어오다니 아주 큰일을 했구나. 진작에 너처럼 너희 아비가 파테르께 순응했더라면 그런 꼴은 안 당했을 텐데.”
미카엘이 자신의 뒤에 숨어 있는 멜핀을 돌아보니, 그녀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그녀의 아버지는 그냥 병으로 쓰러진 게 아니었다.
“그 얘기, 좀 자세하게 해줄까?”
미카엘의 말에 어렌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허참∼ 지금 본인이 어떤 처지인지나 알고 끼어드는 거야? 역시나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답구만. 생긴 건 아주 그냥 고생 한 번 안하게 미…끈하게 생겨… 뭐… 뭐야!! 뭔 놈의 얼굴이 저렇게 잘생겼어? 아니, 그것도 둘이나!”
체구가 큰 쪽이 조금 더 남자답고 잘생기긴 했지만 체구가 좀 조그만 쪽도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이쪽은 좀 더 여린 얼굴선을 지녀 남자지만 절로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어렌은 보물을 발견한 느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파테르는 요새 들어 아주 어린 여아나 미동 등 특이 취향에 맛을 들였기 때문이다.
“요새 파테르의 심기가 불편하셨는데 잘되었어. 신은을 입게 된 것을 영광인 줄 알아라.”
뜬금없는 어렌의 말에 영문을 몰라 하던 미카엘과 옴므트리체. 하지만 마치 물건을 품평하는 듯한 그 표정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 설마.”
그래도 혹시나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어렌의 말은 미카엘의 의심을 확신시켰다.
“흐흐흐. 미동들이 둘이니 파테르께서 더욱 흡족해하시겠구나.”
옴므트리체의 얼굴은 분노로 와락 구겨졌고, 미카엘의 입은 충격으로 벌어졌다. 정신을 차린 미카엘은 얼굴이 벌게져 소리쳤다.
“이… 이런 개자식이. 감히. 어디서.”
미카엘이 열이 뻗쳐 있는데, 로렌트가 옆에서 그의 화를 돋았다…….
“흐흐흐. 도련님, 어떻게 할까요? 아직도 기다릴까요?”
“뭘 기다려. 잡아서 족쳐야지.”
눈이 돌아간 미카엘에게 그 순간 눈에 띈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였다.
미카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손바닥에 한 움큼 움켜쥐었다.
“크크크. 돌멩이 가지고 뭐하시게? 아… 검이 안 되니 던질라고? 크크크. 아이고, 무서워라.”
비웃는 어렌의 모습에 미카엘은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흐흐. 우스워? 그런데 이 조그만 돌멩이가 좀 무서워.”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손가락 각각에 돌멩이를 빠르게 튕겨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파공성. 이미 그것은 작은 돌멩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퍼버버버벅!
땅콩을 볶는 듯한 격타음.
“커억.”
“크케케켁.”
“거… 거기는.”
“크칵!! 안돼∼∼”
왠지 비명성이 이상하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은 분노, 그리고 절망을 담고 있다.
“뭐… 뭐야?”
비명성 들려온 뒤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데리고 나온 이십여 명의 전사들 중에 벌써 십여 명이 쓰러져 땅을 뒹굴고 있었고, 어딘가를 강하게 맞았는지 죄다 엎어져 있었는데 부여잡고 있는 부위가 하나같이 똑같았다.
“두, 두렵다. 저 잔혹함… 어떻게 같은 남자로서…….”
로렌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옆에 있던 헤른 역시 목울대로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잔인한 놈이야.”
이 표정은 이곳에 서 있는 사람. 특히 남자라면 공통적으로 짓고 있었다. 무려 한 방에 십여 명을, 그것도 하나같이 남자의 소중한 곳만 노려서 때린 잔혹함.
하지만 눈이 돌아간 미카엘은 다시 땅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올렸다.
“아… 안 돼!!”
어렌을 비롯한 전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동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소중한 곳을 손으로 가리는 필사적인 몸부림.
그것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의 이격은 거침없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닥. 퍼버버버벅!
“크케케켁.”
“아… 안 돼!!”
“허억, 허억.”
전멸. 어렌을 제외한 궁수 전멸. 하나같이 남자의 소중한 곳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소중한 곳을 가린 손을 먼저 때리고, 시간차로 다시 소중한 곳을 때린 그 집요함.
마을의 소중한 자원인 전사들은 이미 거품을 입에 물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잔혹한 시, 심볼 파괴자.”
“꿀꺽…….”
로렌트의 말에 헤른은 마른 침을 삼켰다.
“헤른 도련님. 저 이제 미카엘 도련님께는 일체의 반항도 안해야겠어요. 거기를 터치다니… 크흑…….”
로렌트의 굳은 다짐. 헤른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이런 악마인 줄도 모르고 감히 백작위를 뺏느니 마느니 소리를 했다니…….’
어렌은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등골이 시린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귓가에 들리는 신음성. 역시나 꿈이 아니다.
파테르의 소중한 신군들이 하나같이 망가져서 뒹굴고 있다.
어렌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 이… 감히 신군에게.”
“지랄하네. 신군은 개뿔. 이런 개자식들한테 우리 멜핀을 어떻게 안심하고 맡겨.”
어렌은 처음부터 자신이 속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너… 너희들. 일부러 노리고 이쪽으로 온 거였어. 길을 잃어 버린 게 아니고.”
“당연한 것을 묻다니… 머리가 상당히 나쁘군.”
이죽거리며 말하는 미카엘. 어렌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리 나와! 이 어린놈의 귀족 새끼. 돌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나오란 말야! 정정당당히 검으로 승부하자!”
“그럴까?”
미카엘은 피식 웃으며 나서려는데, 그를 막는 이가 있었다.
“아까 그 말. 진심입니까? 저치가 저와 수준이 비슷하다는 것 말입니다.”
“응, 그래. 비슷하지.”
“그 말, 취소하게끔 해드리겠습니다.”
로렌트가 눈을 빛내며 나섰다.
“좋아. 그렇다면 신체 강화하지 마. 너를 생각해서 말하는 거니까.”
“압니다. 알아요. 지금 신체 강화하면 몸이 다시 망가진다는 거. 그리고 저딴 녀석은 신체 강화는 안 써도 이깁니다.”
“흐음 좋아. 좋은데 결코 만만하지 않을 거야.”
로렌트는 자신 있게 검을 뽑아 올렸다.
“저에게는 주군이 전수해 준 데베트랑 검술과 퀵스텝이 있잖습니까.”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로렌트. 미카엘은 그런 그에게 안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신법과 검술을 새로 전수받은 것을 감안해서 말한 거야. 비슷하다는 건 말이야”
하지만 로렌트는 그 말을 미처 못 들었고, 어렌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배덕자에게 죽음을 내려주지.”
“이곳은 신성한 휘페리온의 성지다! 귀족의 개인 네가 입에 함부로 담을 만한 그런 곳이 아니란 말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이 배덕자 놈아!”
때 아닌 설전. 듣고 있던 미카엘은 얼굴이 굳었다.
“배덕자 운운하지 말고 그냥 싸워. 듣는 멜핀 마음 상하니까.”
“예? 예!”
로렌트는 대답은 했으나 표정은 떨떠름했다. 자신도 멜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꽤나 귀염성 있고 똑똑한 아이다.
하지만 이들과 자신은 사는 세계가 다르다. 바로 눈앞의 이자도 포함해서 말이다.
“제대로 된 기사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로렌트는 단칼에 꿰뚫을 기세로 내찔렀다.
데베트랑 검식 중 하나인데, 사일검법의 초식과 조화를 이룬 것이다.
파시싯.
신체 강화가 없음에도 만만치 않은 극속의 쾌검.
“아닛!”
깜짝 놀란 어렌은 분분히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한 번 승기를 잡은 로렌트는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천풍신법을 최근에 몇 보 정도는 펼칠 수 있었기에 중간중간에 그 묘리를 섞었다.
생각보다 절묘한 순간에 펼쳐냈기에 곧 어렌의 손발은 어지러워졌다.
“후후후. 보십시오, 도련님!”
광소를 토해내는 로렌트.
하지만 그 기쁨은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쿠우우우.
갑자기 바닥에 있던 모래가 나선형을 그리면서 천천히 회오리처럼 올라오기 시작하고, 불길한 공명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로렌트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어렌의 중심에 옅은 푸른빛이 어리고 있는데다 소와류가 줄기줄기 흐르고 있었다.
로렌트가 이 현상을 모를 리가 없다.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신체 강화를!”
설마하니 배덕자의 마을 녀석이 에퀘스급이라니. 로렌트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파삭!
어렌의 발끝에서 돌멩이가 바스러진다.
폭풍 같은 질주.
로렌트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며 검을 놀렸다.
파카카카카캉.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검날에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빌어먹을! 신체 강화 하나 때문에…….”
로렌트는 패색에 몰렸다. 아마도 퀵스텝을 일부 익히지 못했더라면 그냥 졌을 것이다.
한편 어렌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놈, 수습 기사 주제에 제법이구나.”
분명 검 끝에 어린 힘은 자신에게 미치지 못하는데 그 검식과 피하는 방법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광신자 놈. 내가 신체 강화만 쓸 수 있었다면 금방이라도 이길 수 있었어. 이 힘만 강한… 놈아…….”
로렌트는 말하다 보니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힘만 강한 자. 이건 얼마 전의 자신을 뜻하는 것 같지 않은가.
“도련님이 왜 막상막하라고 했는지 알겠군.”
분명 자신이 이 상태에서 신체 강화를 쓸 수 있다면 백전백승이다. 그런데 막상막하라고 한 것은 자신이 신체 강화를 쓰지 않고도 상대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 난 이제 달라.”
로렌트는 눈을 빛내며 어렌을 주시하였다.
하지만 미카엘은 오히려 그런 자신감을 경계하였다.
“상대는 야생의 들짐승 같은 자다.”
그 점을 보지 못한다면 잡아먹히는 것은 로렌트가 될 것이다.
어렌은 대검으로 찍어내리듯 훑어갔다. 거친 듯하면서도 정교한 일식.
로렌트는 바싹 엎드리면서 한 바퀴 돌아 내찔렀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내찔러진 검식에 어쩔 수 없이 검과 검을 맞댈 수밖에 없었다.
쩌엉.
“크윽!”
로렌트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단 한 번의 기회만 잡으면 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
여기서 단 하나의 기회란 오러 메핑.
그 절삭력이라면 반전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퍼카카카캉.
하지만 상대는 전혀 그 틈을 주지 않았다. 빠르게 이어지는 맹공에 오러를 끌어올릴 틈이 없었다.
번쩍.
상대의 눈에서 정광이 토해졌다.
어렌 역시 생각보다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자 신체 강화를 한층 끌어올린 것.
그런 그에게서 절초가 뻗어져 나왔다.
배덕자의 마을 ― (3)
로렌트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마 그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어느새 지근거리로 다가온 어렌이 아직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을 건냈다.
“귀족으로 보이시는데, 이런 누추한 곳에 머무실 수 있겠습니까?”
“그, 그렇다. 비록 누추하지만 특별히 내가 머물러 주겠다. 우리 일행들이 올 때까지만 말이다”
이건 속을 수밖에 없다.
실생활의 말과 다름없는 헤른이 말을 했으니 말이다.
“여기로 일행들이 오긴 합니까?”
안심한 어렌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 그게… 반드시 올 것이다.”
헤른은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물론 연기지만 어렌은 그 표정을 믿었다. 그리고 확신하였다. 이들을 처리해도 후환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멜핀. 이렇게 먹이감을 물어오다니 아주 큰일을 했구나. 진작에 너처럼 너희 아비가 파테르께 순응했더라면 그런 꼴은 안 당했을 텐데.”
미카엘이 자신의 뒤에 숨어 있는 멜핀을 돌아보니, 그녀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그녀의 아버지는 그냥 병으로 쓰러진 게 아니었다.
“그 얘기, 좀 자세하게 해줄까?”
미카엘의 말에 어렌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허참∼ 지금 본인이 어떤 처지인지나 알고 끼어드는 거야? 역시나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답구만. 생긴 건 아주 그냥 고생 한 번 안하게 미…끈하게 생겨… 뭐… 뭐야!! 뭔 놈의 얼굴이 저렇게 잘생겼어? 아니, 그것도 둘이나!”
체구가 큰 쪽이 조금 더 남자답고 잘생기긴 했지만 체구가 좀 조그만 쪽도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이쪽은 좀 더 여린 얼굴선을 지녀 남자지만 절로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어렌은 보물을 발견한 느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파테르는 요새 들어 아주 어린 여아나 미동 등 특이 취향에 맛을 들였기 때문이다.
“요새 파테르의 심기가 불편하셨는데 잘되었어. 신은을 입게 된 것을 영광인 줄 알아라.”
뜬금없는 어렌의 말에 영문을 몰라 하던 미카엘과 옴므트리체. 하지만 마치 물건을 품평하는 듯한 그 표정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 설마.”
그래도 혹시나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어렌의 말은 미카엘의 의심을 확신시켰다.
“흐흐흐. 미동들이 둘이니 파테르께서 더욱 흡족해하시겠구나.”
옴므트리체의 얼굴은 분노로 와락 구겨졌고, 미카엘의 입은 충격으로 벌어졌다. 정신을 차린 미카엘은 얼굴이 벌게져 소리쳤다.
“이… 이런 개자식이. 감히. 어디서.”
미카엘이 열이 뻗쳐 있는데, 로렌트가 옆에서 그의 화를 돋았다…….
“흐흐흐. 도련님, 어떻게 할까요? 아직도 기다릴까요?”
“뭘 기다려. 잡아서 족쳐야지.”
눈이 돌아간 미카엘에게 그 순간 눈에 띈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였다.
미카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손바닥에 한 움큼 움켜쥐었다.
“크크크. 돌멩이 가지고 뭐하시게? 아… 검이 안 되니 던질라고? 크크크. 아이고, 무서워라.”
비웃는 어렌의 모습에 미카엘은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흐흐. 우스워? 그런데 이 조그만 돌멩이가 좀 무서워.”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손가락 각각에 돌멩이를 빠르게 튕겨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파공성. 이미 그것은 작은 돌멩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퍼버버버벅!
땅콩을 볶는 듯한 격타음.
“커억.”
“크케케켁.”
“거… 거기는.”
“크칵!! 안돼∼∼”
왠지 비명성이 이상하다.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은 분노, 그리고 절망을 담고 있다.
“뭐… 뭐야?”
비명성 들려온 뒤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데리고 나온 이십여 명의 전사들 중에 벌써 십여 명이 쓰러져 땅을 뒹굴고 있었고, 어딘가를 강하게 맞았는지 죄다 엎어져 있었는데 부여잡고 있는 부위가 하나같이 똑같았다.
“두, 두렵다. 저 잔혹함… 어떻게 같은 남자로서…….”
로렌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옆에 있던 헤른 역시 목울대로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잔인한 놈이야.”
이 표정은 이곳에 서 있는 사람. 특히 남자라면 공통적으로 짓고 있었다. 무려 한 방에 십여 명을, 그것도 하나같이 남자의 소중한 곳만 노려서 때린 잔혹함.
하지만 눈이 돌아간 미카엘은 다시 땅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올렸다.
“아… 안 돼!!”
어렌을 비롯한 전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동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소중한 곳을 손으로 가리는 필사적인 몸부림.
그것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의 이격은 거침없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닥. 퍼버버버벅!
“크케케켁.”
“아… 안 돼!!”
“허억, 허억.”
전멸. 어렌을 제외한 궁수 전멸. 하나같이 남자의 소중한 곳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소중한 곳을 가린 손을 먼저 때리고, 시간차로 다시 소중한 곳을 때린 그 집요함.
마을의 소중한 자원인 전사들은 이미 거품을 입에 물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잔혹한 시, 심볼 파괴자.”
“꿀꺽…….”
로렌트의 말에 헤른은 마른 침을 삼켰다.
“헤른 도련님. 저 이제 미카엘 도련님께는 일체의 반항도 안해야겠어요. 거기를 터치다니… 크흑…….”
로렌트의 굳은 다짐. 헤른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이런 악마인 줄도 모르고 감히 백작위를 뺏느니 마느니 소리를 했다니…….’
어렌은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등골이 시린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귓가에 들리는 신음성. 역시나 꿈이 아니다.
파테르의 소중한 신군들이 하나같이 망가져서 뒹굴고 있다.
어렌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 이… 감히 신군에게.”
“지랄하네. 신군은 개뿔. 이런 개자식들한테 우리 멜핀을 어떻게 안심하고 맡겨.”
어렌은 처음부터 자신이 속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너… 너희들. 일부러 노리고 이쪽으로 온 거였어. 길을 잃어 버린 게 아니고.”
“당연한 것을 묻다니… 머리가 상당히 나쁘군.”
이죽거리며 말하는 미카엘. 어렌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리 나와! 이 어린놈의 귀족 새끼. 돌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나오란 말야! 정정당당히 검으로 승부하자!”
“그럴까?”
미카엘은 피식 웃으며 나서려는데, 그를 막는 이가 있었다.
“아까 그 말. 진심입니까? 저치가 저와 수준이 비슷하다는 것 말입니다.”
“응, 그래. 비슷하지.”
“그 말, 취소하게끔 해드리겠습니다.”
로렌트가 눈을 빛내며 나섰다.
“좋아. 그렇다면 신체 강화하지 마. 너를 생각해서 말하는 거니까.”
“압니다. 알아요. 지금 신체 강화하면 몸이 다시 망가진다는 거. 그리고 저딴 녀석은 신체 강화는 안 써도 이깁니다.”
“흐음 좋아. 좋은데 결코 만만하지 않을 거야.”
로렌트는 자신 있게 검을 뽑아 올렸다.
“저에게는 주군이 전수해 준 데베트랑 검술과 퀵스텝이 있잖습니까.”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로렌트. 미카엘은 그런 그에게 안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신법과 검술을 새로 전수받은 것을 감안해서 말한 거야. 비슷하다는 건 말이야”
하지만 로렌트는 그 말을 미처 못 들었고, 어렌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배덕자에게 죽음을 내려주지.”
“이곳은 신성한 휘페리온의 성지다! 귀족의 개인 네가 입에 함부로 담을 만한 그런 곳이 아니란 말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이 배덕자 놈아!”
때 아닌 설전. 듣고 있던 미카엘은 얼굴이 굳었다.
“배덕자 운운하지 말고 그냥 싸워. 듣는 멜핀 마음 상하니까.”
“예? 예!”
로렌트는 대답은 했으나 표정은 떨떠름했다. 자신도 멜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꽤나 귀염성 있고 똑똑한 아이다.
하지만 이들과 자신은 사는 세계가 다르다. 바로 눈앞의 이자도 포함해서 말이다.
“제대로 된 기사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로렌트는 단칼에 꿰뚫을 기세로 내찔렀다.
데베트랑 검식 중 하나인데, 사일검법의 초식과 조화를 이룬 것이다.
파시싯.
신체 강화가 없음에도 만만치 않은 극속의 쾌검.
“아닛!”
깜짝 놀란 어렌은 분분히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한 번 승기를 잡은 로렌트는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천풍신법을 최근에 몇 보 정도는 펼칠 수 있었기에 중간중간에 그 묘리를 섞었다.
생각보다 절묘한 순간에 펼쳐냈기에 곧 어렌의 손발은 어지러워졌다.
“후후후. 보십시오, 도련님!”
광소를 토해내는 로렌트.
하지만 그 기쁨은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쿠우우우.
갑자기 바닥에 있던 모래가 나선형을 그리면서 천천히 회오리처럼 올라오기 시작하고, 불길한 공명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로렌트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어렌의 중심에 옅은 푸른빛이 어리고 있는데다 소와류가 줄기줄기 흐르고 있었다.
로렌트가 이 현상을 모를 리가 없다.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신체 강화를!”
설마하니 배덕자의 마을 녀석이 에퀘스급이라니. 로렌트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파삭!
어렌의 발끝에서 돌멩이가 바스러진다.
폭풍 같은 질주.
로렌트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며 검을 놀렸다.
파카카카카캉.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검날에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빌어먹을! 신체 강화 하나 때문에…….”
로렌트는 패색에 몰렸다. 아마도 퀵스텝을 일부 익히지 못했더라면 그냥 졌을 것이다.
한편 어렌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놈, 수습 기사 주제에 제법이구나.”
분명 검 끝에 어린 힘은 자신에게 미치지 못하는데 그 검식과 피하는 방법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광신자 놈. 내가 신체 강화만 쓸 수 있었다면 금방이라도 이길 수 있었어. 이 힘만 강한… 놈아…….”
로렌트는 말하다 보니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힘만 강한 자. 이건 얼마 전의 자신을 뜻하는 것 같지 않은가.
“도련님이 왜 막상막하라고 했는지 알겠군.”
분명 자신이 이 상태에서 신체 강화를 쓸 수 있다면 백전백승이다. 그런데 막상막하라고 한 것은 자신이 신체 강화를 쓰지 않고도 상대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 난 이제 달라.”
로렌트는 눈을 빛내며 어렌을 주시하였다.
하지만 미카엘은 오히려 그런 자신감을 경계하였다.
“상대는 야생의 들짐승 같은 자다.”
그 점을 보지 못한다면 잡아먹히는 것은 로렌트가 될 것이다.
어렌은 대검으로 찍어내리듯 훑어갔다. 거친 듯하면서도 정교한 일식.
로렌트는 바싹 엎드리면서 한 바퀴 돌아 내찔렀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내찔러진 검식에 어쩔 수 없이 검과 검을 맞댈 수밖에 없었다.
쩌엉.
“크윽!”
로렌트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단 한 번의 기회만 잡으면 되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
여기서 단 하나의 기회란 오러 메핑.
그 절삭력이라면 반전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퍼카카카캉.
하지만 상대는 전혀 그 틈을 주지 않았다. 빠르게 이어지는 맹공에 오러를 끌어올릴 틈이 없었다.
번쩍.
상대의 눈에서 정광이 토해졌다.
어렌 역시 생각보다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자 신체 강화를 한층 끌어올린 것.
그런 그에게서 절초가 뻗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