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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14화)
드러난 정체 ― (1)
미카엘은 그런 그를 내버려둔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 족적의 앞에는 의문을 가득 담은 용병단 단장… 아니, 도적단의 대장이 있었다.
“네…가 진정 내 칼을 부러뜨린 거냐??”
“물론.”
“거짓말하지 마라.”
“진심을 얘기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무조건 부정하는 경향이 있지.”
“네가 한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우린 다섯이니까.”
“우리는 완벽히 악당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니 내 마음이 아주 가벼워지는군.”
톰핸슨은 한마디도 지지 않고 깐족이는 저 입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그러지 못하는 건 저놈에겐 지금 무엇인가 있어 보였다.
그게 무엇일까?
순간 톰핸슨은 깨달았다.
저 여유.
적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전혀 긴장이라곤 없다.
“너…….”
“너는 이따가. 그전에 자세가 너무 거만해.”
빠각.
“으악!”
톰핸슨은 순간 밀려온 고통에 눈이 돌아갔다. 어느새 얻어맞았는지, 하박 한쪽이 꺾여 덜렁이고 있었다.
“대, 대장!”
“말도 안 돼!”
충격 속에 빠진 용병대.
하지만 이미 미카엘은 살심이 돈 상태였다.
“그 눈들. 아주 거슬렸지. 너무 익숙하거든.”
그 차가운 안광이 칼날처럼 꽂히자 르벤은 오한이 들었다.
“죽어!”
발작적으로 휘두른 검.
나름대로 검풍이 일어 자못 사나웠다.
하지만 미카엘은 살짝 허리를 비켜낸 후 오히려 거리를 좁혔다.
겨우 한 걸음을 움직였을 뿐인데 바로 앞.
르벤의 눈에는 공포가 떠올랐다.
“안 돼!”
“안 되긴. 잘 가라. 살인마.”
공포에 질린 눈.
하지만 이미 망막에는 철각이 들어차 있었다.
퍼억!
두발로 뛰어올라 찬 원앙퇴.
목 위에 있던 물체가 산산조각 나고.
사람들은 그 끔찍한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르벤!!”
그중에 죽은 용병과 꽤나 친분이 있었는지, 한 사내가 울부짖으며 달려든다.
보기 드문 쌍검술.
현란하게 교차되는 검식이기에 처음 상대해 보는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쌍검술. 검이 두 자루 있으면 더 세질 거 같지. 하지만 사람들이 왜 보통 한 자루만 가지고 연마하는 지 알아?”
미카엘에겐 그것은 다른 얘기다. 그의 권역에 들어간 이상 쌍검술은 이미 무용지물로 변해 있었던 것.
오른쪽의 검날은 밟에 밟혀 뺄 수도 없었고, 다른 한쪽은 교묘하게 낚아채는 금나수법에 뺏겨버렸다.
“둘 다 노리다간 둘 다 놓치기 십상이거든”
미카엘은 공수탈백인의 수로 뺏은 검과 발끝으로 차올린 검을 번개같이 동시에 박아 넣었다.
크르르르르.
피거품을 물며 넘어가는 몸.
그 눈엔 원독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보지 마. 살인마 주제에. 나도 사람 많이 죽여 봐서 알거든.”
미카엘은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덤덤하게 말하며 하나씩 격살해 나갔다.
얼마나 무덤덤했던지 보는 주위사람… 특히 헤른은 금방이라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우웩!! 저렇게 잔인할 수가…….”
“…….”
마법사는 아예 말도 못하고 얼굴이 탈색이 된 듯 새하얗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어린 소녀를 보호하려는 듯 눈을 한 손으로 가려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학살극.
남아 있는 용병단원들의 얼굴에 공포감이 어렸다.
***
때마침 스산하게 부는 바람에 혈향이 날리니 안 그래도 살벌한 현장이 더욱 을씨년스러워졌다.
“살려주십시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용병 중의 하나가 간절한 눈빛으로 간청하였다.
이미 상황은 기울어졌다.
불과 일 분여 동안 두 사람은 사망. 가장 강한 두목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뭘 잘못했는데?”
“그, 그야… 욕심 때문에 돈을 탈취하려고…….”
미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 궁수. 거짓말하지 마. 돈도 돈이지만 처음부터 여기로 유인해서 저기 헤른 놈 죽이려고 했잖아”
그러자 헤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것들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네가 눈치가 없는 거야.”
궁수 용병은 더욱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상대는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일단 질문부터. 여기 어디야?”
“여… 여기는 폐쇄된 테세라 관도입니다.”
미카엘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헤른과 마법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미카엘의 눈빛이 스산해지는 것을 본 궁수는 다급하게 말했다.
“다, 다른 말로 워툼데세로(‘희망이 사라진’이라는 뜻) 구역이라고 합니다. 왕실에서 출입을 폐쇄한…….”
“워툼데세로 구역!!”
헤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또한 마법사의 얼굴은 오묘하게 변했다.
“미카엘, 빨리 여기서 나가야 돼. 어쩐지 마물이 수도 없이 나오더라.”
“그게 무슨 소리지?”
궁금해 하는 미카엘에게 헤른이 다급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종전 후 오십 년 동안 많은 마물을 척살했지만, 대륙 전 지역이 그런 건 아니야. 특히나 워툼데세로 구역은 마물들의 소굴이라고.”
“왜 그런 건데?”
미카엘의 의문에 마법사가 대신 답했다.
“그건 아무래도 마물이 돈이 안 되기 때문이죠. 돈이 되는 마물은 별로 많지가 않으니까요. 마물을 잡는데 목숨을 걸어야 되는데, 대가는 없다면 누가 그것을 자발적으로 할까요.”
그 말에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왕실 주관으로 마물 토벌전을 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마물은 소탕이 안 될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하고 에인하트하고 가깝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
“아, 아닙니다. 맞긴 맞습니다. 관도가 끊어진 방향으로 약400마일만 더 가면 에인하트 왕국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그 정도 거리라면 서둘러 이동하면 일주일이면 갈 거리다.
“그… 그럼 저희를 살려주시는 겁니까?”
궁수 사내의 말에 워해머를 들고 있던 사내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하지만…….
“아니. 미안!”
미카엘은 다른 말 하지 않고 손날로 궁수 사내의 목을 후려치고, 이어서 워해머를 든 사내의 턱을 팔꿈치로 돌려 쳐 가격했다.
꾸르르르륵.
궁수 사내의 목뼈는 일격에 부러졌는지 고개가 덜렁거리며 툭 하고 떨어졌는데, 입에서는 피거품이 계속 새어져 나오는 것이 딱 봐도 한방에 절명했다. 워해머 사내의 목은 숫제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으… 으악!”
“너무 잔인합니다!”
헤른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고, 마법사 사내는 못마땅한 눈으로 말했다.
미카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이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너희들이 죽었다. 그리고 마법사, 너는 지금도 그들에게 화살을 맞아 매달고 있는데 그런 말이 하고 싶나?”
“제가 검술은 잘 모르지만, 미카엘 님께서는 지금 저들을 압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꼭 죽이지 않으셔도 되셨을 겁니다.”
“그런 안일한 사고방식은 해본 적이 없다.”
그 말에 마법사의 얼굴은 와락 하고 구겨졌다.
마법사는 무엇인가 말하려고 몇 번이나 입을 움찔거렸으나,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성격이 참 소심하군. 또 말하려다 만 것 같은데.’
고개를 가로 저은 미카엘이었고, 그 순간 지평선 저 멀리에서 누군가가 미카엘을 부르며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도련님!! 혼자 가시면 어떡해요, 도련님!”
바로 마지막 남은 아라네아를 신체 강화 없이 해치운 역전의 용사인 아라네아 슬레이어, 로렌트였다.
잠시 후.
로렌트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도련님. 그러면 저들이 도적 떼였다는 말이에요? 에이, 믿을 수 없어요.”
“넌 그것도 모르고 저들이 주는 음식 먹으려고 안달을 하더라구.”
“그 음식이요? 마… 말도 안 됩니다!”
“맞는지 안 맞는지 한 번 확인해 보자고.”
미카엘은 톰 핸슨이 쓰러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슴뼈가 함몰되어 있어 꽤나 상세가 중해 보였지만, 이미 깨어난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일어나. 쥐새끼처럼 눈치 보지 말고.”
“흐…으으으.”
“셋 셀 동안 안 일어나면, 소명할 기회 없이 그냥 죽여주마.”
“으으윽……. 이, 일어났습니다.”
더없이 재빨리 일어난 톰핸슨.
미카엘의 얼굴에 찬바람이 일었다.
“똑바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거야. 도적 두목.”
“예… 예, 예.”
순순히 시인하는 모습,
그러자 로렌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인 미카엘은 톰핸슨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도 내놔!”
“예… 예? 무슨 지도요?”
톰핸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심 ‘왜 그런 도적질을 하느냐’ 이런 걸 물어볼 줄 알고 변명거리를 잔뜩 생각했던 터다. 하지만 미카엘은 그런 것은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다른 놈들은 뒤져 보니 지도 없더라. 여기서 주로 활동하니 지도는 가지고 다닐 거 아냐.”
“그… 그것이…….”
말끝을 흐리는 톰핸슨.
그 와중에도 눈알을 굴리는 것이, 살아날 궁리를 하는 게 분명했다.
“헛수작하지 말고 내놔!”
톰핸슨은 그대로 몸이 굳었다. 눈빛이 얼마나 살벌한지, 그대로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신히 용기를 내었다.
“지… 지도를 받고 살려주신다 약조하시면 그리하겠습니다.”
“흠… 그래?”
살짝 말꼬리를 늘이자 더 애가 탄 표정이 된 톰핸슨.
미카엘은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좋아. 지도가 쓸 만하면 살려주지.”
“가… 감사합니다. 영예로운 귀족이시니 꼭 약속을 지키시리라고 믿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민 지도 한 장. 그것을 보고 지금의 위치를 대략 확인해 본 미카엘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한편 불안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톰핸슨은 재차 다짐을 받았다.
“약조하신 대로 살려주십시오.”
“알았다. 살려주마.”
생각보다 선선히 승낙한 것과는 달리 미카엘은 검을 굳게 쥐었다.
톰핸슨의 얼굴은 이제 백지장처럼 변했다.
“도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살려주려고 그런다.”
퍄슛.
허공을 수놓는 몇 번의 칼놀림.
톰핸슨의 팔과 다리가 격랑이라도 맞은 듯 부들부들 떨리다 잦아들었다.
“으아아아악! 이 악마 새끼!”
톰핸슨은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이미 그의 사지가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약속은 지켰다. 그러나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온.전.히.라고는 하지 않았어.”
“이 위선자 귀족 놈아! 끄… 끄억!”
“부인은 안 하마. 하지만 여기까지 동행하면서 살인으로 점철된 네놈들의 썩은 눈깔을 보자니 역겨워서 죽는 줄 알았다.”
그 말을 끝으로 미카엘은 모멸차게 돌아섰고, 그 시퍼런 기세에 사람들은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끄아아악! 이 악마새끼!”
이제는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로렌트는 저도 모르게 돌아보았다.
지금은 저리 살아 있지만 곳이 워툼데세로 구역임을 감안한다면 그 최후는 얼마 안 남았다고 해도 될 것이다.
복잡한 심경의 로렌트만큼이나 일행들 역시 말이 없었다.
그렇게 오다 보니 다시 처음에 아라네아를 만난 곳까지 이르렀다.
“꼬마야. 여기까지 왔으니 알려줘야 하지 않겠니? 왜 이 위험한 워툼데세로 구역 안에서 이렇게 홀로 쫓기고 있었는지 말이야.”
미카엘이 마법사의 손을 꼭 쥐고 있는 꼬마 소녀를 향해 말하자…….
“워툼데세로 구역!!”
나중에 오느라 이곳이 어디인지는 정작 못 들었던 로렌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카엘은 눈빛으로 소녀에게 대답하기를 종용했다.
“그, 그게… 살려주십시오. 귀족님!”
소녀는 털썩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심연보다 더 깊은 눈빛을 마주하니 아까 보았던 잔인한 손속이 떠올랐던 것.
공포감에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본 미카엘은 머리를 긁적였다.
드러난 정체 ― (1)
미카엘은 그런 그를 내버려둔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 족적의 앞에는 의문을 가득 담은 용병단 단장… 아니, 도적단의 대장이 있었다.
“네…가 진정 내 칼을 부러뜨린 거냐??”
“물론.”
“거짓말하지 마라.”
“진심을 얘기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무조건 부정하는 경향이 있지.”
“네가 한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우린 다섯이니까.”
“우리는 완벽히 악당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니 내 마음이 아주 가벼워지는군.”
톰핸슨은 한마디도 지지 않고 깐족이는 저 입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그러지 못하는 건 저놈에겐 지금 무엇인가 있어 보였다.
그게 무엇일까?
순간 톰핸슨은 깨달았다.
저 여유.
적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전혀 긴장이라곤 없다.
“너…….”
“너는 이따가. 그전에 자세가 너무 거만해.”
빠각.
“으악!”
톰핸슨은 순간 밀려온 고통에 눈이 돌아갔다. 어느새 얻어맞았는지, 하박 한쪽이 꺾여 덜렁이고 있었다.
“대, 대장!”
“말도 안 돼!”
충격 속에 빠진 용병대.
하지만 이미 미카엘은 살심이 돈 상태였다.
“그 눈들. 아주 거슬렸지. 너무 익숙하거든.”
그 차가운 안광이 칼날처럼 꽂히자 르벤은 오한이 들었다.
“죽어!”
발작적으로 휘두른 검.
나름대로 검풍이 일어 자못 사나웠다.
하지만 미카엘은 살짝 허리를 비켜낸 후 오히려 거리를 좁혔다.
겨우 한 걸음을 움직였을 뿐인데 바로 앞.
르벤의 눈에는 공포가 떠올랐다.
“안 돼!”
“안 되긴. 잘 가라. 살인마.”
공포에 질린 눈.
하지만 이미 망막에는 철각이 들어차 있었다.
퍼억!
두발로 뛰어올라 찬 원앙퇴.
목 위에 있던 물체가 산산조각 나고.
사람들은 그 끔찍한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르벤!!”
그중에 죽은 용병과 꽤나 친분이 있었는지, 한 사내가 울부짖으며 달려든다.
보기 드문 쌍검술.
현란하게 교차되는 검식이기에 처음 상대해 보는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쌍검술. 검이 두 자루 있으면 더 세질 거 같지. 하지만 사람들이 왜 보통 한 자루만 가지고 연마하는 지 알아?”
미카엘에겐 그것은 다른 얘기다. 그의 권역에 들어간 이상 쌍검술은 이미 무용지물로 변해 있었던 것.
오른쪽의 검날은 밟에 밟혀 뺄 수도 없었고, 다른 한쪽은 교묘하게 낚아채는 금나수법에 뺏겨버렸다.
“둘 다 노리다간 둘 다 놓치기 십상이거든”
미카엘은 공수탈백인의 수로 뺏은 검과 발끝으로 차올린 검을 번개같이 동시에 박아 넣었다.
크르르르르.
피거품을 물며 넘어가는 몸.
그 눈엔 원독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보지 마. 살인마 주제에. 나도 사람 많이 죽여 봐서 알거든.”
미카엘은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덤덤하게 말하며 하나씩 격살해 나갔다.
얼마나 무덤덤했던지 보는 주위사람… 특히 헤른은 금방이라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우웩!! 저렇게 잔인할 수가…….”
“…….”
마법사는 아예 말도 못하고 얼굴이 탈색이 된 듯 새하얗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어린 소녀를 보호하려는 듯 눈을 한 손으로 가려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학살극.
남아 있는 용병단원들의 얼굴에 공포감이 어렸다.
***
때마침 스산하게 부는 바람에 혈향이 날리니 안 그래도 살벌한 현장이 더욱 을씨년스러워졌다.
“살려주십시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용병 중의 하나가 간절한 눈빛으로 간청하였다.
이미 상황은 기울어졌다.
불과 일 분여 동안 두 사람은 사망. 가장 강한 두목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뭘 잘못했는데?”
“그, 그야… 욕심 때문에 돈을 탈취하려고…….”
미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 궁수. 거짓말하지 마. 돈도 돈이지만 처음부터 여기로 유인해서 저기 헤른 놈 죽이려고 했잖아”
그러자 헤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것들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네가 눈치가 없는 거야.”
궁수 용병은 더욱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상대는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일단 질문부터. 여기 어디야?”
“여… 여기는 폐쇄된 테세라 관도입니다.”
미카엘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헤른과 마법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미카엘의 눈빛이 스산해지는 것을 본 궁수는 다급하게 말했다.
“다, 다른 말로 워툼데세로(‘희망이 사라진’이라는 뜻) 구역이라고 합니다. 왕실에서 출입을 폐쇄한…….”
“워툼데세로 구역!!”
헤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또한 마법사의 얼굴은 오묘하게 변했다.
“미카엘, 빨리 여기서 나가야 돼. 어쩐지 마물이 수도 없이 나오더라.”
“그게 무슨 소리지?”
궁금해 하는 미카엘에게 헤른이 다급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종전 후 오십 년 동안 많은 마물을 척살했지만, 대륙 전 지역이 그런 건 아니야. 특히나 워툼데세로 구역은 마물들의 소굴이라고.”
“왜 그런 건데?”
미카엘의 의문에 마법사가 대신 답했다.
“그건 아무래도 마물이 돈이 안 되기 때문이죠. 돈이 되는 마물은 별로 많지가 않으니까요. 마물을 잡는데 목숨을 걸어야 되는데, 대가는 없다면 누가 그것을 자발적으로 할까요.”
그 말에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왕실 주관으로 마물 토벌전을 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마물은 소탕이 안 될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하고 에인하트하고 가깝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
“아, 아닙니다. 맞긴 맞습니다. 관도가 끊어진 방향으로 약400마일만 더 가면 에인하트 왕국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그 정도 거리라면 서둘러 이동하면 일주일이면 갈 거리다.
“그… 그럼 저희를 살려주시는 겁니까?”
궁수 사내의 말에 워해머를 들고 있던 사내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하지만…….
“아니. 미안!”
미카엘은 다른 말 하지 않고 손날로 궁수 사내의 목을 후려치고, 이어서 워해머를 든 사내의 턱을 팔꿈치로 돌려 쳐 가격했다.
꾸르르르륵.
궁수 사내의 목뼈는 일격에 부러졌는지 고개가 덜렁거리며 툭 하고 떨어졌는데, 입에서는 피거품이 계속 새어져 나오는 것이 딱 봐도 한방에 절명했다. 워해머 사내의 목은 숫제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으… 으악!”
“너무 잔인합니다!”
헤른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고, 마법사 사내는 못마땅한 눈으로 말했다.
미카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이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너희들이 죽었다. 그리고 마법사, 너는 지금도 그들에게 화살을 맞아 매달고 있는데 그런 말이 하고 싶나?”
“제가 검술은 잘 모르지만, 미카엘 님께서는 지금 저들을 압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꼭 죽이지 않으셔도 되셨을 겁니다.”
“그런 안일한 사고방식은 해본 적이 없다.”
그 말에 마법사의 얼굴은 와락 하고 구겨졌다.
마법사는 무엇인가 말하려고 몇 번이나 입을 움찔거렸으나,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성격이 참 소심하군. 또 말하려다 만 것 같은데.’
고개를 가로 저은 미카엘이었고, 그 순간 지평선 저 멀리에서 누군가가 미카엘을 부르며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도련님!! 혼자 가시면 어떡해요, 도련님!”
바로 마지막 남은 아라네아를 신체 강화 없이 해치운 역전의 용사인 아라네아 슬레이어, 로렌트였다.
잠시 후.
로렌트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도련님. 그러면 저들이 도적 떼였다는 말이에요? 에이, 믿을 수 없어요.”
“넌 그것도 모르고 저들이 주는 음식 먹으려고 안달을 하더라구.”
“그 음식이요? 마… 말도 안 됩니다!”
“맞는지 안 맞는지 한 번 확인해 보자고.”
미카엘은 톰 핸슨이 쓰러진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슴뼈가 함몰되어 있어 꽤나 상세가 중해 보였지만, 이미 깨어난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일어나. 쥐새끼처럼 눈치 보지 말고.”
“흐…으으으.”
“셋 셀 동안 안 일어나면, 소명할 기회 없이 그냥 죽여주마.”
“으으윽……. 이, 일어났습니다.”
더없이 재빨리 일어난 톰핸슨.
미카엘의 얼굴에 찬바람이 일었다.
“똑바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거야. 도적 두목.”
“예… 예, 예.”
순순히 시인하는 모습,
그러자 로렌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인 미카엘은 톰핸슨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도 내놔!”
“예… 예? 무슨 지도요?”
톰핸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심 ‘왜 그런 도적질을 하느냐’ 이런 걸 물어볼 줄 알고 변명거리를 잔뜩 생각했던 터다. 하지만 미카엘은 그런 것은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다른 놈들은 뒤져 보니 지도 없더라. 여기서 주로 활동하니 지도는 가지고 다닐 거 아냐.”
“그… 그것이…….”
말끝을 흐리는 톰핸슨.
그 와중에도 눈알을 굴리는 것이, 살아날 궁리를 하는 게 분명했다.
“헛수작하지 말고 내놔!”
톰핸슨은 그대로 몸이 굳었다. 눈빛이 얼마나 살벌한지, 그대로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신히 용기를 내었다.
“지… 지도를 받고 살려주신다 약조하시면 그리하겠습니다.”
“흠… 그래?”
살짝 말꼬리를 늘이자 더 애가 탄 표정이 된 톰핸슨.
미카엘은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좋아. 지도가 쓸 만하면 살려주지.”
“가… 감사합니다. 영예로운 귀족이시니 꼭 약속을 지키시리라고 믿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민 지도 한 장. 그것을 보고 지금의 위치를 대략 확인해 본 미카엘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한편 불안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톰핸슨은 재차 다짐을 받았다.
“약조하신 대로 살려주십시오.”
“알았다. 살려주마.”
생각보다 선선히 승낙한 것과는 달리 미카엘은 검을 굳게 쥐었다.
톰핸슨의 얼굴은 이제 백지장처럼 변했다.
“도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살려주려고 그런다.”
퍄슛.
허공을 수놓는 몇 번의 칼놀림.
톰핸슨의 팔과 다리가 격랑이라도 맞은 듯 부들부들 떨리다 잦아들었다.
“으아아아악! 이 악마 새끼!”
톰핸슨은 세상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이미 그의 사지가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약속은 지켰다. 그러나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온.전.히.라고는 하지 않았어.”
“이 위선자 귀족 놈아! 끄… 끄억!”
“부인은 안 하마. 하지만 여기까지 동행하면서 살인으로 점철된 네놈들의 썩은 눈깔을 보자니 역겨워서 죽는 줄 알았다.”
그 말을 끝으로 미카엘은 모멸차게 돌아섰고, 그 시퍼런 기세에 사람들은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끄아아악! 이 악마새끼!”
이제는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로렌트는 저도 모르게 돌아보았다.
지금은 저리 살아 있지만 곳이 워툼데세로 구역임을 감안한다면 그 최후는 얼마 안 남았다고 해도 될 것이다.
복잡한 심경의 로렌트만큼이나 일행들 역시 말이 없었다.
그렇게 오다 보니 다시 처음에 아라네아를 만난 곳까지 이르렀다.
“꼬마야. 여기까지 왔으니 알려줘야 하지 않겠니? 왜 이 위험한 워툼데세로 구역 안에서 이렇게 홀로 쫓기고 있었는지 말이야.”
미카엘이 마법사의 손을 꼭 쥐고 있는 꼬마 소녀를 향해 말하자…….
“워툼데세로 구역!!”
나중에 오느라 이곳이 어디인지는 정작 못 들었던 로렌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카엘은 눈빛으로 소녀에게 대답하기를 종용했다.
“그, 그게… 살려주십시오. 귀족님!”
소녀는 털썩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심연보다 더 깊은 눈빛을 마주하니 아까 보았던 잔인한 손속이 떠올랐던 것.
공포감에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본 미카엘은 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