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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13화)
뜻하지 않은 여정 ― (5)
미카엘은 소녀를 향해 재빨리 손짓을 하였다.
“소녀. 빨리 내 등 뒤로 와.”
이정도로 정밀한 합격이 가능한 생명체라면 뒤를 돌아 소녀를 위해할 수도 있기에 자신의 지근에 놓고 보호하기로 한 것이다.
“네에? 그, 그래도…….”
소녀는 겁에 잔뜩 질렸으면서도 웬일인지 머뭇머뭇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카엘의 등 뒤에 위치했다.
소녀가 자신의 뒤로 안전하게 온 것을 확인한 미카엘은 검을 들어 공격을 시작했다.
크콰콰콰쾅!
“케헤헤헥.”
힘들이지 않고 쭉쭉 뽑아내는 검기에 저절로 몸을 대는 것처럼 나자빠지는 아라네아 무리.
과연 검기를 가미한 공격은 달랐다.
그 예리하게 정제된 검기가 아라네아의 갑각을 예리하게 가르며 그 속살을 뭉개놓은 것.
아마 아라네아를 상대해 봤던 기사라면 기가 막힐 장면이었다.
하지만 미카엘의 안색은 다소 찌푸려져 있었다.
“내공이 꽤 많이 소모되는군.”
생각보다 단단한 외피 덕에 검기에 소요되는 내공이 많이 들어갔고, 이 상태로라면 전부를 해치우기에는 조금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다 보니 너무 외모에 욕심을 부렸나 하는 생각이 든 미카엘은 새삼스레 얼굴을 매만졌다.
“내공을 풀어야 하나.”
이렇게 최후의 수단까지 고민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소녀를 보호하면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곧 생각을 접었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힘든 방법을 택하는가.
그냥 소녀를 들춰 업고 후퇴하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외모를 조금이라도 훼손시키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소녀. 업혀.”
“감, 감히 천한 제가 어찌…….”
소녀는 당연히 기겁을 하였다.
예의상 거절하는 게 아닌 것이, 손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다.
하지만 미카엘은 안심을 시켰다.
“괜찮아. 너 안전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그냥 업혀.”
검으로 아라네아를 내찌르며 손으로 소녀를 잡아갔다.
“괜찮습니다. 나리”
의외로 완강하게 버티는 소녀.
덕분에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가 된 미카엘이 난색을 떠올리던 그때…….
“비… 빙결의 힘이여.”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
뒤를 돌아본 미카엘은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의 그 마법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뭐라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옆에는 언제 왔는지 로렌트가 서 있었다.
“잘됐군. 로렌트에게 꼬맹이를 맡기고 여기를 정리해야겠어.”
미카엘은 반색을 하였다.
소녀만 아니라면 고전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내공이 달린다고 해도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물론 마법사는 전력으로 치지 않았다. 그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모습만 가지고 볼 때 그는 무용지물이었으니까.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를 마나의 힘으로 얼려주소서.”
하지만 그새 긴 영창이 끝났는지, 손끝에 마나를 응집하는 마법사.
“아… 아니!”
미카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막대한 힘이 마법사의 손끝에 응집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스 미사일!”
쿠오오오오오… 쩌저저저적!
“허헐.”
미카엘은 헛웃음을 삼켰다. 마법 한 방에 한 열. 그러니까 무려 다섯 마리를 얼려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얼음 동상으로 변해 버렸는데, 그 모습이 가히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었다.
“생각보다 세네?”
놀라운 표정과는 달리 단순한 감상평
하지만 로렌트의 평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말도 안 돼! 1서클 마법으로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다고?”
“…1서클?”
아무리 마법적 지식이 없다지만 이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새삼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니, 마법사는 힘을 다 소진하였는지 정작 사색이 되어서 숨을 헥헥거리고 있었다.
“뭐야? 한 방에 힘을 다 쓴 건가?”
다시 평소의 엉터리 마법사로 돌아온 것 같은 모습, 미카엘은 어떤 면이 그의 진짜 모습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덕분에 수월해 졌으니 좋군.”
마법사 덕분에 이제 아라네아는 스물 대여섯 마리 정도. 거기다 꼬맹이를 안전하게 맡길 곳도 생기지 않았던가.
“자, 받아.”
기겁하는 꼬맹이를 가볍게 들어 올린 미카엘은 마법사에게 인계해 주었다. 그러자 마법사는 순간 움찔하였으나, 미카엘이 짐짓 웃음을 보여주었다.
“자, 이 꼬맹이 데리고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이 정도는 가능하겠지?”
“예… 예?”
자신에게 이런 임무를 맡길 것이라곤 생각 못했는지 크게 당황하는 모습.
그런 그가 못미더워진 미카엘은 다시금 확인을 받았다.
“설마… 이 꼬맹이 버리고 혼자 도망가지는 않겠지?”
“말도 안 됩니다.”
순간 발끈하고 소리를 지른 후, 그런 자신이 민망한지 고개를 푹 숙이는 마법사.
미카엘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법사의 눈빛에 선량함이 어려 있기에 믿음이 갔다.
“자, 빨리 가. 네가 여기서 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니까 주의하고.”
“예,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마법사는 서둘러 꼬맹이의 손을 꼭 부여잡고 저 뒤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 미카엘은 그 미소를 아라네아에게 보여 주었다.
“이제 좀 싸워 볼 만하구만. 각오하라고.”
극강의 냉기 공격에 잠시 뒤로 물러섰던 아라네아는 다시금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미카엘은 그들을 향해 번개 같이 검을 내질렀다.
그 검 끝에서 행해지는 반월참 형태의 검기.
일파참해라는 그 검식 명칭처럼 검기가 범위에 있던 아라네아들을 분분히 가르기 시작한다.
크케헤헤헥!
지축을 뒤흔드는 파괴음. 마음의 짐을 덜은 검 끝은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리했다. 일 검에 네 마리나 갈라진 것.
“이… 이게 말이 됩니까?”
로렌트의 눈에는 불신이 담겼다. 여기까지 쫓아오긴 했지만 일단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굳이 자신이 검을 뽑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하하하. 그래도 한 마리 정도는!”
위험도 없어 보이고 얼마나 부담이 없는가. 하지만 그때 난이도를 확 높이는 미카엘의 말이 들려왔다.
“싸우는 것은 좋지만 신체 강화 쓰면 안 돼.”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거 쓰면 그간 로비츠 연공법으로 몸 회복시킨 거 죄다 물거품 되니까 알아서 하라고.”
“그거 안 쓰면 당장 죽겠는데요.”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미카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검을 휘두르는데 열중했고, 그 서슬에 로렌트는 어쩔 수 없이 신체 강화 없이 아라네아를 상대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십여 분 후.
땅 위에 서 있는 아라네아라곤 로렌트가 아직도 붙들고 서 있는 한 마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미카엘은 검을 다시 집어넣고 땅에 널려진 아라네아의 사체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강하긴 하군. 못해도 중원의 일류 무사 수준은 뛰어 넘겠는데.”
거기다 아라네아 특유의 그 합격진은 결코 미물이라고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여기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 미카엘은 아직도 아라네아를 붙들고 있는 로렌트를 향해 말하였다.
“로렌트. 이제 마무리하자.”
“헥헥, 신체 강화 허락해 주시면요.”
“그건 안 돼.”
“그럼 저도 안 돼요.”
거친 남자처럼 생긴 얼굴답지 않게 죽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여간 우스워 보이지 않았다.
피식 웃음을 흘린 미카엘. 그러다 문득 무엇인가 빼먹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로렌트. 헤른 어디 갔어?”
분명 아까 용병단이 떠나갔을 때만 해도 자신들과 남겨졌던 헤른인데, 지금은 안 보인다.
“아, 용병단 따라간다고 뒤로 물러났습니다.”
“이런 병신새끼.”
이거야말로 입 벌리고 있는 맹수에게 스스로 목욕재계하고 들어가는 꼴 아니던가.
“야, 그거 처리하고 와.”
현무비뢰신보를 밟은 미카엘이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홀로 남게 된 로렌트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저는 어쩌라고요!”
하지만 그 대답을 들어야 하는 이는 벌써 오백여 미터는 넘게 멀리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귀엽지 않은 녀석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친척인데, 기왕이면 구하는 게 좋지 않은가.
“모… 목숨만 살려줘. 응? 돈은 다 줄게.”
“흐흐흐. 미안하다, 꼬마야. 우리가 나름 완벽주의라, 목격자를 안 남겨둬.”
미카엘은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아직 진행 중이었군. 그래도 다행이야.”
물론 당하고 있는 당사자의 심정은 그게 아니다.
그간 꽤나 얻어터졌는지, 헤른의 얼굴은 이미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사에 비하면 약과였다.
“저… 저놈…….”
미카엘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멀쩡했던 그가 어깨에 화살이 관통당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소녀를 보호하고 있으니 그의 올곧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마법사 놈. 혹시나 대비책으로 데리고 왔더니 우리 일을 망치려고 들어?”
“이… 이 나쁜 놈들.”
딱 보니 각이 나온다.
본색을 드러낸 악당과 그 속에서 정의를 지키려는 착한 놈.
하지만 현실은 악당이 이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안 만났을 때까지의 얘기다.
“잘 가라, 꼬맹아. 흐흐흐, 네가 가지고 있던 돈은 이 어르신께서 잘 써주마.”
“안 돼!”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일격을 감당치 못하고 눈을 질끈 감은 헤른.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 눈을 살며시 떴다.
“허헙! 너… 어… 어떻게.”
“착각하지 마. 너 예뻐서 살려주는 거 아니니까. 저기 저놈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야.”
미카엘은 톰핸슨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까 전의 그 당당했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톰핸슨은 반토막 난 바스타드 소드를 든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걸 눈으로 봤음에도 헤른은 설마설마했다.
“진정… 네가 한 거야?”
“그럼 설마 유령이 했겠냐? 네가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좀 세다.”
상당히 재수 없어 보이는 발언. 그러나 헤른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듬직하게 느껴졌다.
“너… 나 구해주러 온 거구나.”
“내가 왜? 나 저 소녀 구해주러 온 거야.”
“무, 무슨 소리야? 나 네 친척 형이잖아!”
“그렇지. 우리 아버지에게 버릇없이 구는 친척 형. 그리고 작위 뺏으려고 하는 친척 형.”
“아, 아니. 그게…….”
“이런 걸 두고 남보다 못한 사이라고들 하지. 잘해 봐. 난 저기 저 소녀하고 마법사만 구해 가지고 갈 테니.”
진짜로 갈 기세.
헤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었다.
다급해진 음성으로 미카엘을 붙든다.
“그, 그러지 말자. 우리… 내, 내가 잘못했어. 응?”
“가장 못 믿을 게 사람 마음이라고 하더라. 구해주고 나면 또 건방 떨겠지.”
“절대, 절대 안 그럴 거야.”
“그래. 절대 그래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내가 너를 정말 용납 못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헤른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방금 전 그 말은 갓 열다섯인 애송이가 했다고 하기엔 온몸을 얼려버릴 듯 오싹한 데가 있었다.
뜻하지 않은 여정 ― (5)
미카엘은 소녀를 향해 재빨리 손짓을 하였다.
“소녀. 빨리 내 등 뒤로 와.”
이정도로 정밀한 합격이 가능한 생명체라면 뒤를 돌아 소녀를 위해할 수도 있기에 자신의 지근에 놓고 보호하기로 한 것이다.
“네에? 그, 그래도…….”
소녀는 겁에 잔뜩 질렸으면서도 웬일인지 머뭇머뭇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카엘의 등 뒤에 위치했다.
소녀가 자신의 뒤로 안전하게 온 것을 확인한 미카엘은 검을 들어 공격을 시작했다.
크콰콰콰쾅!
“케헤헤헥.”
힘들이지 않고 쭉쭉 뽑아내는 검기에 저절로 몸을 대는 것처럼 나자빠지는 아라네아 무리.
과연 검기를 가미한 공격은 달랐다.
그 예리하게 정제된 검기가 아라네아의 갑각을 예리하게 가르며 그 속살을 뭉개놓은 것.
아마 아라네아를 상대해 봤던 기사라면 기가 막힐 장면이었다.
하지만 미카엘의 안색은 다소 찌푸려져 있었다.
“내공이 꽤 많이 소모되는군.”
생각보다 단단한 외피 덕에 검기에 소요되는 내공이 많이 들어갔고, 이 상태로라면 전부를 해치우기에는 조금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다 보니 너무 외모에 욕심을 부렸나 하는 생각이 든 미카엘은 새삼스레 얼굴을 매만졌다.
“내공을 풀어야 하나.”
이렇게 최후의 수단까지 고민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소녀를 보호하면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곧 생각을 접었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힘든 방법을 택하는가.
그냥 소녀를 들춰 업고 후퇴하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외모를 조금이라도 훼손시키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소녀. 업혀.”
“감, 감히 천한 제가 어찌…….”
소녀는 당연히 기겁을 하였다.
예의상 거절하는 게 아닌 것이, 손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다.
하지만 미카엘은 안심을 시켰다.
“괜찮아. 너 안전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그냥 업혀.”
검으로 아라네아를 내찌르며 손으로 소녀를 잡아갔다.
“괜찮습니다. 나리”
의외로 완강하게 버티는 소녀.
덕분에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가 된 미카엘이 난색을 떠올리던 그때…….
“비… 빙결의 힘이여.”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
뒤를 돌아본 미카엘은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의 그 마법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뭐라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옆에는 언제 왔는지 로렌트가 서 있었다.
“잘됐군. 로렌트에게 꼬맹이를 맡기고 여기를 정리해야겠어.”
미카엘은 반색을 하였다.
소녀만 아니라면 고전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내공이 달린다고 해도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물론 마법사는 전력으로 치지 않았다. 그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모습만 가지고 볼 때 그는 무용지물이었으니까.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를 마나의 힘으로 얼려주소서.”
하지만 그새 긴 영창이 끝났는지, 손끝에 마나를 응집하는 마법사.
“아… 아니!”
미카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막대한 힘이 마법사의 손끝에 응집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스 미사일!”
쿠오오오오오… 쩌저저저적!
“허헐.”
미카엘은 헛웃음을 삼켰다. 마법 한 방에 한 열. 그러니까 무려 다섯 마리를 얼려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얼음 동상으로 변해 버렸는데, 그 모습이 가히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었다.
“생각보다 세네?”
놀라운 표정과는 달리 단순한 감상평
하지만 로렌트의 평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말도 안 돼! 1서클 마법으로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다고?”
“…1서클?”
아무리 마법적 지식이 없다지만 이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새삼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니, 마법사는 힘을 다 소진하였는지 정작 사색이 되어서 숨을 헥헥거리고 있었다.
“뭐야? 한 방에 힘을 다 쓴 건가?”
다시 평소의 엉터리 마법사로 돌아온 것 같은 모습, 미카엘은 어떤 면이 그의 진짜 모습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덕분에 수월해 졌으니 좋군.”
마법사 덕분에 이제 아라네아는 스물 대여섯 마리 정도. 거기다 꼬맹이를 안전하게 맡길 곳도 생기지 않았던가.
“자, 받아.”
기겁하는 꼬맹이를 가볍게 들어 올린 미카엘은 마법사에게 인계해 주었다. 그러자 마법사는 순간 움찔하였으나, 미카엘이 짐짓 웃음을 보여주었다.
“자, 이 꼬맹이 데리고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이 정도는 가능하겠지?”
“예… 예?”
자신에게 이런 임무를 맡길 것이라곤 생각 못했는지 크게 당황하는 모습.
그런 그가 못미더워진 미카엘은 다시금 확인을 받았다.
“설마… 이 꼬맹이 버리고 혼자 도망가지는 않겠지?”
“말도 안 됩니다.”
순간 발끈하고 소리를 지른 후, 그런 자신이 민망한지 고개를 푹 숙이는 마법사.
미카엘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법사의 눈빛에 선량함이 어려 있기에 믿음이 갔다.
“자, 빨리 가. 네가 여기서 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니까 주의하고.”
“예,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마법사는 서둘러 꼬맹이의 손을 꼭 부여잡고 저 뒤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 미카엘은 그 미소를 아라네아에게 보여 주었다.
“이제 좀 싸워 볼 만하구만. 각오하라고.”
극강의 냉기 공격에 잠시 뒤로 물러섰던 아라네아는 다시금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미카엘은 그들을 향해 번개 같이 검을 내질렀다.
그 검 끝에서 행해지는 반월참 형태의 검기.
일파참해라는 그 검식 명칭처럼 검기가 범위에 있던 아라네아들을 분분히 가르기 시작한다.
크케헤헤헥!
지축을 뒤흔드는 파괴음. 마음의 짐을 덜은 검 끝은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리했다. 일 검에 네 마리나 갈라진 것.
“이… 이게 말이 됩니까?”
로렌트의 눈에는 불신이 담겼다. 여기까지 쫓아오긴 했지만 일단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굳이 자신이 검을 뽑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하하하. 그래도 한 마리 정도는!”
위험도 없어 보이고 얼마나 부담이 없는가. 하지만 그때 난이도를 확 높이는 미카엘의 말이 들려왔다.
“싸우는 것은 좋지만 신체 강화 쓰면 안 돼.”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거 쓰면 그간 로비츠 연공법으로 몸 회복시킨 거 죄다 물거품 되니까 알아서 하라고.”
“그거 안 쓰면 당장 죽겠는데요.”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미카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검을 휘두르는데 열중했고, 그 서슬에 로렌트는 어쩔 수 없이 신체 강화 없이 아라네아를 상대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십여 분 후.
땅 위에 서 있는 아라네아라곤 로렌트가 아직도 붙들고 서 있는 한 마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미카엘은 검을 다시 집어넣고 땅에 널려진 아라네아의 사체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강하긴 하군. 못해도 중원의 일류 무사 수준은 뛰어 넘겠는데.”
거기다 아라네아 특유의 그 합격진은 결코 미물이라고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여기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 미카엘은 아직도 아라네아를 붙들고 있는 로렌트를 향해 말하였다.
“로렌트. 이제 마무리하자.”
“헥헥, 신체 강화 허락해 주시면요.”
“그건 안 돼.”
“그럼 저도 안 돼요.”
거친 남자처럼 생긴 얼굴답지 않게 죽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여간 우스워 보이지 않았다.
피식 웃음을 흘린 미카엘. 그러다 문득 무엇인가 빼먹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로렌트. 헤른 어디 갔어?”
분명 아까 용병단이 떠나갔을 때만 해도 자신들과 남겨졌던 헤른인데, 지금은 안 보인다.
“아, 용병단 따라간다고 뒤로 물러났습니다.”
“이런 병신새끼.”
이거야말로 입 벌리고 있는 맹수에게 스스로 목욕재계하고 들어가는 꼴 아니던가.
“야, 그거 처리하고 와.”
현무비뢰신보를 밟은 미카엘이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홀로 남게 된 로렌트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저는 어쩌라고요!”
하지만 그 대답을 들어야 하는 이는 벌써 오백여 미터는 넘게 멀리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귀엽지 않은 녀석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친척인데, 기왕이면 구하는 게 좋지 않은가.
“모… 목숨만 살려줘. 응? 돈은 다 줄게.”
“흐흐흐. 미안하다, 꼬마야. 우리가 나름 완벽주의라, 목격자를 안 남겨둬.”
미카엘은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아직 진행 중이었군. 그래도 다행이야.”
물론 당하고 있는 당사자의 심정은 그게 아니다.
그간 꽤나 얻어터졌는지, 헤른의 얼굴은 이미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사에 비하면 약과였다.
“저… 저놈…….”
미카엘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멀쩡했던 그가 어깨에 화살이 관통당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소녀를 보호하고 있으니 그의 올곧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마법사 놈. 혹시나 대비책으로 데리고 왔더니 우리 일을 망치려고 들어?”
“이… 이 나쁜 놈들.”
딱 보니 각이 나온다.
본색을 드러낸 악당과 그 속에서 정의를 지키려는 착한 놈.
하지만 현실은 악당이 이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안 만났을 때까지의 얘기다.
“잘 가라, 꼬맹아. 흐흐흐, 네가 가지고 있던 돈은 이 어르신께서 잘 써주마.”
“안 돼!”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일격을 감당치 못하고 눈을 질끈 감은 헤른.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 눈을 살며시 떴다.
“허헙! 너… 어… 어떻게.”
“착각하지 마. 너 예뻐서 살려주는 거 아니니까. 저기 저놈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야.”
미카엘은 톰핸슨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까 전의 그 당당했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톰핸슨은 반토막 난 바스타드 소드를 든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걸 눈으로 봤음에도 헤른은 설마설마했다.
“진정… 네가 한 거야?”
“그럼 설마 유령이 했겠냐? 네가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좀 세다.”
상당히 재수 없어 보이는 발언. 그러나 헤른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듬직하게 느껴졌다.
“너… 나 구해주러 온 거구나.”
“내가 왜? 나 저 소녀 구해주러 온 거야.”
“무, 무슨 소리야? 나 네 친척 형이잖아!”
“그렇지. 우리 아버지에게 버릇없이 구는 친척 형. 그리고 작위 뺏으려고 하는 친척 형.”
“아, 아니. 그게…….”
“이런 걸 두고 남보다 못한 사이라고들 하지. 잘해 봐. 난 저기 저 소녀하고 마법사만 구해 가지고 갈 테니.”
진짜로 갈 기세.
헤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었다.
다급해진 음성으로 미카엘을 붙든다.
“그, 그러지 말자. 우리… 내, 내가 잘못했어. 응?”
“가장 못 믿을 게 사람 마음이라고 하더라. 구해주고 나면 또 건방 떨겠지.”
“절대, 절대 안 그럴 거야.”
“그래. 절대 그래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내가 너를 정말 용납 못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헤른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방금 전 그 말은 갓 열다섯인 애송이가 했다고 하기엔 온몸을 얼려버릴 듯 오싹한 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