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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10화)

뜻하지 않은 여정 ― (2)


“도련님, 제발 몸조심하세요.”
드디어 에인하트 왕국으로 가는 날이 왔다.
“제발 무리하시면 안 돼요. 그 고운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안 되실 텐데…….”
“미카엘 님. 제발 여기 한 번만 봐주세요.”
뭇 여성들의 눈물 겨운 환송에도 미카엘의 얼굴은 찡그려져 있었다.
“저 녀석과 당분간 함께라 생각하니 조금은 짜증나는군.”
결국 백작은 많은 인원이 호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카엘에게는 그저 로렌트 하나가 붙었을 뿐, 헤른은 심지어 한술 더 떠 기사 한 명도 데려가지 않았다.
졸지에 둘의 보모 역할을 맡게 된 로렌트만 죽상이었다.
“아, 내 신세야. 상전이 둘이라니. 그런데 도련님, 설마… 여행 중에 그 빌어먹을 로비츠 연공법 설마… 안 시키겠죠?”
“이동하기에도 바쁜데 어떻게 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낸 로렌트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후후, 그렇다면 기분 좋게 갈 수 있겠네요.”
“그래도 휴식 중에는 해야지. 자기 전에 하면 좋으려나?”
워낙 작게 말했기에 콧노래를 부르고 있던 로렌트는 못 듣고 넘어갔다.
미카엘의 눈이 로렌트를 지나 조금 떨어진 곳을 향했다.
일행 같으나 어떻게 보면 일행 같지 않게 조금 떨어져서 오는 일단의 무리들.
소지한 무기는 각양각색으로 개성이 넘쳤다.
미카엘의 궁금증을 눈치챈 로렌트가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용병이군요.”
“용병?”
“돈 주면 뭐든지 하는 작자들이지요. 헤른 도련님이 기사 대신 용병을 고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뭐, 음유시인들이 용병과 함께하는 여정에 대해 뭐라도 되는 양 부풀려 놓는데, 사실 그리 대단할 건 없지요. 하지만 헤른 도련님은 그에 넘어간 것 같군요.”
미카엘의 시야가 용병을 지나 헤른에게 닿았다. 어제 일 때문에 술이라도 진탕 마신 건지,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였다.
‘자식, 겁나 못생겼군.’
하지만 그래서일까.
헤른에 대한 미카엘의 비호감은 조금 흐려져 있었다.
“부디 어렸을 때 보았던 그 선함이 조금은 남아 있으면 좋겠군.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내가 파묻고 올지도 모르니 말이야.”
그걸 알 리 없는 헤른은 숙취에 절은 얼굴로 말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그렇게 미카엘 일행은 영지를 나섰다.
하지만 조그마한 영지에서 출발한 이 행로가 훗날 대륙을 뒤흔든 광폭 행보의 첫발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

만 하루.
그것이 로렌트와 미카엘이 트와빈령부터 로엠시까지 말을 몰고 간 시간이었다. 그 정도로 말을 몰았으니 어지간한 장사라도 피곤할 법했고, 실제 그들은 빨리 숙소를 잡아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힘들게 당도한 로엠시의 관문에서 뜻밖의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많지?”
미카엘의 눈이 관문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가리켰다. 이것이 다 관문을 통과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하지만 로렌트도 어깨를 으쓱하고 추어올릴 뿐이었다.
“저도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에인하트로 통하는 관문 교역 도시답게 사람들이 많군요.”
그러면서 ‘이렇게 되면 숙소 잡기가 어려울 텐데……’라고 중얼거렸지만, 미카엘은 다른 것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도시가 잘 정비되어 있는 모양이군.”
“그런 것보다도 저것 때문이죠.”
로렌트의 손가락이 관문 한복판에 나 있는 길을 가리켰다.
“저제 바로 크나르 관도입니다. 로우만의 젖줄이라 불릴 만큼 교역망의 중심이 되고 있지요. 즉, 이 관도만 이용하면 안전하게 에인하트 왕국과 쿤 왕국을 오갈 수 있지요. 그러니 이 관도를 끼고 있는 로엠시는 항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그래?”
“도련님, 그나저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도시까지 와서 야숙할지도 모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숙소를 잡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 헤른 일행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것이, 앞질러 성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같이 다니라는 백작님의 말씀을 벌써부터 어기시다니…….”
혀를 차는 로렌트의 말에도 미카엘은 무심한 눈길을 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삼십여 분 뒤.
로렌트와 미카엘은 간신히 인파를 헤치고 성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로렌트의 우려대로 도시 내 숙객 시설은 손님들로 이미 꽉 차버린 후였다.
“난감하군요.”
로렌트의 눈이 외성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한 숙박 시설에 닿아 있었다.
나그네의 숙소.
작명 센스가 영 없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바람에 삐거덕거리며 볼품없이 흔들리는 명패는 내부에 들어가 보지 않았음에도 그 수준이 어떠한지 능히 예측하게 만들었다.
“어찌되었든 하루 머물면 그만 아닌가? 여기도 안 된다면 노숙밖에 답이 없으니 그냥 들어가는 게 낫지.”
미카엘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밀었고, 그걸 본 로렌트는 혀를 내둘렀다.
이럴 때 보면 귀족가의 자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털털하였다.
그런데 안은 궁벽한 외관과는 달리 훌륭했다.
1층은 공용 식당, 2층은 숙소를 겸하고 있는 전형적인 성내의 숙객 시설이었는데, 조금 낡아 보이는 것만 빼면 그런대로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게다가 식탁에 앉아 먹을 것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그들도 그런대로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이런 궁벽한 곳에서 식사를 해야 하다니.”
미카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알 만한 사람, 아니 아버지가 정해 준 동행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었군.”
헤른은 음식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식당이 울릴 정도로 신경질적으로 나이프 질을 했고,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는 헤른이 고용한 용병들이 음식을 시켜놓고 먹는 중이었다.
“미카엘, 이놈, 네놈이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그제야 미카엘을 발견한 헤른은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우리 아버지가 같이 다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카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응대할 뿐.
순간 할 말이 없어진 헤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익!”
“여기로 하지. 나는 마음에 드는데.”
미카엘은 헤른이 폭발하기 전 절묘하게 로렌트에게 말을 하였고, 헤른은 화를 낼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생각 잘하셨습니다, 도련님.”
“네 이놈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헤른은 뒤늦게 펄펄 날뛰었으나 둘은 들은 척도 않았고, 주인의 안내로 2층을 향해 걸어갔다.
“여기입니다.”
방문을 젖혀 열어 보이는 객점 주인을 향해 로렌트는 불만을 토로했다.
“정녕 이 방밖에 없는가? 이건 너무… 작고 누추하지 않은가?”
하지만 주인은 힐난에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안 그래도 이곳 로엠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에인하트 왕국 마물 토벌전 때문에 로엠시를 찾는 사람들이 더 늘었습니다요. 이나마도 지금 결정 안 하시면 없을 겁니다.”
마음대로 하라는 듯한 주인의 태도에 로렌트는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흔히 볼 수 있는 장사치의 배짱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실제로 자신들도 숙소가 없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던가.
“여기로 하지.”
그때 결정을 내려주는 미카엘.
로렌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자신은 괜찮으나, 혹여라도 도련님이 뭐라고 할까 봐 주인에게 말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잘 결정하신 겁니다. 식사는 1층에서 시키시거나 아니면 방 안에서도 가능하십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마치고 내려가는 주인을 뒤로하고 미카엘은 침상 위로 몸을 눕혔다.
“좋군.”
하지만 미카엘의 좋다는 말과는 달리 방 안에는 별다른 것도 없이 침상 두 개만이 덜렁 있었다.
“생각 외로 소박하시네요. 도련님.”
로렌트는 솔직히 놀랐다. 미카엘은 그 나이대. 그러니까 방금 전 헤른이 보인 철없는 귀족가 자제가 보일 수 있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정도만 되어도 훌륭하지.”
과거 전장을 떠돌던 때를 생각해 보면 그저 과장만은 아니었다.
“도련님. 일단 이곳에서 식사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곳으로 식사를 시킬까요?“
배가 고픈지 식사부터 권유하는 소리에 미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가서 먹자. 여기서 먹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좁아 보이는군.”
“그러면 1층으로 내려가시지요.”
사람의 체중을 이기지 못해 마구 소리를 질러대는 낡은 나무계단을 지나 식당에 다시 내려간 두 사람.
빈 탁자에 앉고 보니, 아까 보았던 용병 무리들은 아직 식탁에 앉아 있는 중이었다.
“아… 헤른 도련님께선 방 안으로 가셨…….”
용병 무리의 수장인 듯한 사내가 먹다 말고 일어나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미카엘은 팔을 들어올려 막았다.
“그놈이 뭘하든 나하곤 상관없으니 식사나 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용병 대장인 듯한 남자는 멋쩍은 표정만큼이나 어정쩡한 자세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로렌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가 봐 온 도련님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아… 정말 먹음직한 스튜로군.”
로렌트는 의문을 잠시 접어두었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미카엘은 로렌트가 게걸스럽게 먹는 소리를 뒤로 하고 아까 들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래서… 크나르 관도가 아니라 폐쇄된 테크라 관도로 유인하자고… 여기서는 이목이…….’

‘보통의 용병은 아니야.’
지금은 아닌 척 입을 닫고 있으나 용병들은 정말 수상했다.
헤른이 용병과 함께하는 여행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던 것 같은데 하필 만나도 저 모양이다.
하지만 곧 입에서 곧 쓴 미소가 지어졌다.
개입할 바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도 같이 다니라는 백작의 말을 어기고 있는데다 자기가 뿌린 씨는 자기가 거두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건 괜찮군.”
미카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별생각 않고 스푼으로 떠먹어 본 스튜의 맛이 상상 이상이었던 것.
로렌트는 벌써 스튜를 다 먹은 후 랑구트(조린 메조리 고기 요리 일종) 요리로 넘어가 코를 처박고 먹는 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인가.”
나름 흡족함을 표시하는 미카엘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병들이었는데, 자신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하니 못 듣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른 척하려 했는데, 그중 흥미를 끄는 말이 들려왔다.
“…테크라 관도 쪽은 아무래도 마물이 많으니까…….”
“마물이라…….”
그러고 보니 마물이라는 것, 트와빈령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뜻하지 않은 기회인가?”
낯선 곳에서 맛본 맛있는 음식은 낯선 환경에 대한 흥미를 돋구었다.
“미리 보는 것도 좋으려나?”
“도련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구아구… 우와, 이것도 맛있네.”
“쯧…….”
눈살을 찌푸린 미카엘은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이크, 저 녀석 오네. 여기까지 얘기하지.”
좀 더 말을 들어보려 했는데 용병 일행 중 체구는 좀 작지만 얼굴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생긴 남자가 탁자로 다가오자 이상하게도 말문을 닫는 용병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