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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9화)
뜻하지 않은 여정 ― (1)
십 년 전에 마주쳤던 자신보다 몇 살 위라던 친척 형이라는 녀석.
그런데 그때는 어이없을 정도로 착했는데 성격이 바뀐 모양이다.
마뜩찮음에 눈살을 찌푸려 보인 미카엘은 방문을 두드렸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들어와라.”
백작의 목소리가 무겁게 깔렸으나, 미카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유지하면서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문을 열고 마주한 트와빈 백작은 과연 목소리만큼이나 얼굴빛이 안 좋아보였고, 그 맞은편에 있는 청년은 한껏 다리를 거만하게 꼬고 앉아 있는 중이었다.
‘흠… 묘하군.’
미카엘은 청년의 얼굴을 보고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밝은 갈색머리에 얼굴 전체적으로 잔뜩 박혀 있는 주근깨. 약간은 뭉특한 코와 전체적으로 바르지 못한 이목구비 등.
아버지인 트와빈 백작의 외양과 대단히 유사하여 어떻게 보면 그가 바로 트와빈 백작의 아들 같아 보였다.
“으음… 인사하거라. 오랜만에 보지? 네 사촌 형, 헤른이란다.”
“큭! 미… 미카엘. 얼굴이… 많이 달라졌구나.”
시퍼렇게 날이 선 반응. 적대심마저 느껴질 정도니 어렸을 적 호의를 가득 품고 있던 동일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미카엘의 태도 역시 삐딱하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넌 그대로군. 그 멍청함도 똑같고 말이야!”
“미카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백작은 목소리를 높이며 주의를 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말실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똑같이 경우와 예의를 모르는군. 최초에 작위를 강탈해 간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서 얘기해라! 바로 너의 아버지인 트와빈 백작님이시다.”
“개가 개소리 참 잘하는군.”
미카엘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해대는 그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헤른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감히! 어린놈이 형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
“대우받고 싶은 사람이 감히 백작이자 손윗사람인 우리 아버지에게 그리 말한다는 말이야?”
백작은 커지는 둘의 설전에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의 머릿속에 수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까라는 한탄부터 시작해서 이런 상황을 조장한 형에 대한 원망까지.
하지만 곧 백작은 좋은 방안을 떠올렸는지, 얼굴이 조금 환하게 펴졌다.
짜악!
돌연 손뼉을 치는 백작의 행동.
설전을 했던 둘은 백작에게 시선이 집중되느라 소강상태를 이루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백작이 말을 꺼내었다.
“헤른이 이번에 에인하트 왕국에서 열리는 마물 토벌전에 참여하기로 했다는구나. 거기서 에퀘스급으로 인정받으면 나에게 작위를 양도…하라고 얘기를 꺼냈고 말이야.”
“아버지. 그런 말 들으실 이유, 하등 없으십니다.”
“아니다. 어찌되었든 헤른의 말도 일부… 일리는 있어. 너의 큰아버지를 제치고 내가 백작을 승계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런…….”
생각지 못했던 과거의 비사.
순간 말끝을 흐렸던 미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아버지를 믿지 않으면 누가 믿으랴.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버지는 야망 때문에 형제를 배신할 만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해서 내가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한다. 어찌되었든 미카엘은 우리 백작가의 후계자. 그렇다면 헤른과 똑같이 기회를 주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겠지. 어떤가? 헤른 너는 우리 미카엘과 경쟁을 해볼 생각이 있느냐?”
백작의 말에 헤른은 힐끗 미카엘을 쳐다보다니,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당연히 자신 있습니다.”
“좋다. 그럼 미카엘 너는?”
미카엘은 고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내 제안은 하나다. 마물 토벌전에서 정정당당히 겨루어 에퀘스급을 따내는 쪽이 후계자다. 물론 둘 다 에퀘스급을 획득했을 때는 마물 토벌에 좀 더 공이 있는 자가 권리의 승자가 되겠지.”
“후후후. 미카엘이 후계자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아직 열다섯에 불과한 애송이가 에퀘스 기사 자격증을 따낸다니… 가당치가 않습니다.”
헤른의 얼굴은 이미 승리를 장담하는 듯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내 제안에 대한 제약은 단 하나. 이번 마물 토벌전까지 오고가는 여정은 반드시 둘이 의지하고 같이 가도록. 그러겠느냐?”
“미카엘이랑 둘이요? 어쩔 수 없군요. 그러겠습니다.”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알았다. 헤른은 그만 나가 보거라.”
헤른은 원하던 결실을 얻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갔다.
백작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가 나가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카엘은 백작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왜 그런 제안을 하셨습니까?”
“…나의 형 페르판 때문이다. 사실 형은 내 친형이지만… 솔직히 참으로 인성이 안 좋았지. 툭하면 사람을 때리기 일쑤였고, 성정 또한 잔인했으니 말이다.”
“아… 그렇다면 할아버지께서…….”
“그래. 나에게 백작위를 물려주신 건 아버지. 그러니까 너의 할아버지의 뜻이었다. 물론 명분은 있었지. 에퀘스급 기사 자격을 딴 사람에게 물려주겠다 공언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없는 무재에도 죽어라고 노력해서 에퀘스 기사 자격을 딴 것이다. 그걸 형님은 내가 야망에 눈이 멀어 자기 자리를 빼앗았다 오해한 것이고 말이야.”
“그렇군요…….”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하다. 정정당당히 겨루어 에퀘스 기사 자격을 쟁취해라. 뒷말이 안 나오도록.”
“알겠습니다.”
아들이 납득한 듯하자 백작은 피곤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보였다.
“그만 나가 보거라.”
“예.”
아들이 꾸벅하고 나가는 모습을 본 백작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참 자기 자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영특하니 어떻게든 자기 자리는 지킬 놈이다.
거기다 에인하트 왕국까지 가면서 서로 간에 의지할 것이니, 없는 우정도 생겨날 것이다.
“후후후, 형님은 잘못하셨소. 이제 우리 아랫대에서는 화해를 하게 될 것이오.”
백작은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잠시 억눌러 두었던 불쾌한 감정은 아버지의 시선을 벗어나자 점점 고개를 들었다.
미카엘은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눈으로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아마 지금 헤른과 마주친다면 다리 하나쯤은 부러뜨릴 기세.
그만큼 화도 났을 뿐더러 그렇게 된다면 굳이 자신이 에인하트 왕국을 안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곧 보상을 받았다.
“저기 있군.”
미카엘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빠르게 다가서는 발걸음이 자못 사나워 금방이라도 사달을 낼 듯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다가서던 기세만큼이나 재빨리 모습을 감춰야만 했다.
“저기… 아메린 양. 오랜만입니다… 이곳에서… 이리 마주칠 줄은 몰랐습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말하고 있는 헤른.
“뭐야, 상황 애매하게.”
미카엘은 혀를 찼다. 아무래도 고백 비스무리한 정황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상대측 여자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말 걸지 말랬죠? 아유, 재수 없어. 내가 못생긴 사람은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예쁘게 생긴 모습과는 달리 꽤나 표독한 어투.
미카엘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여자의 정체를 깨닫고는 내심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과 안면이 있는 어느 귀족가의 영애였는데, 자신을 볼 때마다 조신하게 미소를 흘려 꽤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 그게 아니고. 나는 왜 당신이 여기 있는지 궁금해서…….”
“궁금? 참나, 신경 끄시고 본인 할 일이나 하세요. 난 잘생긴 미카엘 공자 보러 온 거니까.”
“그… 그놈이 잘생긴 게 그렇게 좋소?”
“흥, 당신처럼 못생긴 사람은 모르겠죠. 암요.”
“나…는… 아메린 양을…….”
“그런 소리 듣기 싫어요. 어서 갈 길이나 가시지요.”
헤른은 비아냥거리는 그녀의 말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미카엘의 망막에 크게 투영되었다.
“하아…….”
미카엘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내뱉어졌다.
과거의 겪었던 자신의 상황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공교롭게 그녀가 들었던 모양이다.
“저… 저기, 미카엘 트와빈 공자님?”
“으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메린이 아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앞에서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몇 번 파티장에서 마주쳤는데, 저 아시지요? 하멜 자작가의 아메린이에요.”
더없이 깜찍한 모습. 아마 평소였다면 그런대로 흐뭇하게 여겼을 지도 모르지만 조금 전 모습을 봤던 미카엘은 그 모습이 가식적이고 역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미카엘은 아무 말 없이 뒤를 돌았다. 아메린은 이 상황이 황당하면서도 마음이 급해졌다.
“저… 저기! 공자님!”
“왜 잡는 거지!”
손목이 잡힌 미카엘이 으르렁대는 음성으로 엄포를 놓았다.
그녀의 눈은 격랑을 맞은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그 심연에 찬 푸른 눈빛은 금방이라도 그녀의 심장을 얼려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고… 공자님을 만나러 멀리서 여기까지 왔으니 잠시라도 얘기를…….”
“난 못생긴 자가 싫다. 그리고 마음이 못생긴 자는 더욱더 싫다.”
“어… 어찌 그런 심한 말을…….”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는 그녀.
미카엘은 악당이 되기로 마음먹고 상관하지 않았다.
“의외로 에인하트 왕국까지 가는 여정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군.”
그의 눈은 흑요석을 박은 듯 빛나고 있었다.
***
헤토 왕국 특산품인 고급 대리석이 깔린 바닥.
그 위를 수놓은 화려한 르베마이로산 융단.
그리고 방 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장식까지.
단순한 응접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극도의 화려함과 웅장함이 살아 숨 쉬는 공간.
“정말 당신 말대로 하면 대륙을 삼킬 수가 있는 것이오?”
침묵을 깨는 말은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원탁에 앉은 몇 사람 중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
“물론. 나를 믿으시오.”
“하긴, 당신이 하는 일이니…….”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들도 없었다.
“그래도 제국이 건재한데…….”
한사람이 다소 자신 없어 하는 태도를 보이자 또 다른 자가 발끈하여 말을 하였다.
“근본 없는 놈이 세운 나라를 두려워하다니요.”
“그 근본 없는 시어러를 두려워하여 우리는 여태 50년간을 숨죽여 지낸 겁니다. 제국이 후계자 문제로 어지러운 이때가 절호의 기회.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아무튼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군. 너무 오래 기다려서 좀이 쑤셔.”
호전적으로 생긴 자가 하는 말에,
“후후후. 명분 쌓기로 이미 일을 진행 중입니다.”
맨 가운데서 회의를 주재하는 자가 웃음을 흘리며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바로 여기가 바로 그 역사적인 시발점이 될 것이오.”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바로 에인하트 왕국이었다.
뜻하지 않은 여정 ― (1)
십 년 전에 마주쳤던 자신보다 몇 살 위라던 친척 형이라는 녀석.
그런데 그때는 어이없을 정도로 착했는데 성격이 바뀐 모양이다.
마뜩찮음에 눈살을 찌푸려 보인 미카엘은 방문을 두드렸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들어와라.”
백작의 목소리가 무겁게 깔렸으나, 미카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유지하면서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문을 열고 마주한 트와빈 백작은 과연 목소리만큼이나 얼굴빛이 안 좋아보였고, 그 맞은편에 있는 청년은 한껏 다리를 거만하게 꼬고 앉아 있는 중이었다.
‘흠… 묘하군.’
미카엘은 청년의 얼굴을 보고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밝은 갈색머리에 얼굴 전체적으로 잔뜩 박혀 있는 주근깨. 약간은 뭉특한 코와 전체적으로 바르지 못한 이목구비 등.
아버지인 트와빈 백작의 외양과 대단히 유사하여 어떻게 보면 그가 바로 트와빈 백작의 아들 같아 보였다.
“으음… 인사하거라. 오랜만에 보지? 네 사촌 형, 헤른이란다.”
“큭! 미… 미카엘. 얼굴이… 많이 달라졌구나.”
시퍼렇게 날이 선 반응. 적대심마저 느껴질 정도니 어렸을 적 호의를 가득 품고 있던 동일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미카엘의 태도 역시 삐딱하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넌 그대로군. 그 멍청함도 똑같고 말이야!”
“미카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백작은 목소리를 높이며 주의를 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말실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똑같이 경우와 예의를 모르는군. 최초에 작위를 강탈해 간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서 얘기해라! 바로 너의 아버지인 트와빈 백작님이시다.”
“개가 개소리 참 잘하는군.”
미카엘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해대는 그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헤른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감히! 어린놈이 형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
“대우받고 싶은 사람이 감히 백작이자 손윗사람인 우리 아버지에게 그리 말한다는 말이야?”
백작은 커지는 둘의 설전에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의 머릿속에 수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까라는 한탄부터 시작해서 이런 상황을 조장한 형에 대한 원망까지.
하지만 곧 백작은 좋은 방안을 떠올렸는지, 얼굴이 조금 환하게 펴졌다.
짜악!
돌연 손뼉을 치는 백작의 행동.
설전을 했던 둘은 백작에게 시선이 집중되느라 소강상태를 이루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백작이 말을 꺼내었다.
“헤른이 이번에 에인하트 왕국에서 열리는 마물 토벌전에 참여하기로 했다는구나. 거기서 에퀘스급으로 인정받으면 나에게 작위를 양도…하라고 얘기를 꺼냈고 말이야.”
“아버지. 그런 말 들으실 이유, 하등 없으십니다.”
“아니다. 어찌되었든 헤른의 말도 일부… 일리는 있어. 너의 큰아버지를 제치고 내가 백작을 승계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런…….”
생각지 못했던 과거의 비사.
순간 말끝을 흐렸던 미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아버지를 믿지 않으면 누가 믿으랴.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버지는 야망 때문에 형제를 배신할 만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해서 내가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한다. 어찌되었든 미카엘은 우리 백작가의 후계자. 그렇다면 헤른과 똑같이 기회를 주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겠지. 어떤가? 헤른 너는 우리 미카엘과 경쟁을 해볼 생각이 있느냐?”
백작의 말에 헤른은 힐끗 미카엘을 쳐다보다니,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당연히 자신 있습니다.”
“좋다. 그럼 미카엘 너는?”
미카엘은 고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내 제안은 하나다. 마물 토벌전에서 정정당당히 겨루어 에퀘스급을 따내는 쪽이 후계자다. 물론 둘 다 에퀘스급을 획득했을 때는 마물 토벌에 좀 더 공이 있는 자가 권리의 승자가 되겠지.”
“후후후. 미카엘이 후계자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아직 열다섯에 불과한 애송이가 에퀘스 기사 자격증을 따낸다니… 가당치가 않습니다.”
헤른의 얼굴은 이미 승리를 장담하는 듯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내 제안에 대한 제약은 단 하나. 이번 마물 토벌전까지 오고가는 여정은 반드시 둘이 의지하고 같이 가도록. 그러겠느냐?”
“미카엘이랑 둘이요? 어쩔 수 없군요. 그러겠습니다.”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알았다. 헤른은 그만 나가 보거라.”
헤른은 원하던 결실을 얻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갔다.
백작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가 나가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카엘은 백작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왜 그런 제안을 하셨습니까?”
“…나의 형 페르판 때문이다. 사실 형은 내 친형이지만… 솔직히 참으로 인성이 안 좋았지. 툭하면 사람을 때리기 일쑤였고, 성정 또한 잔인했으니 말이다.”
“아… 그렇다면 할아버지께서…….”
“그래. 나에게 백작위를 물려주신 건 아버지. 그러니까 너의 할아버지의 뜻이었다. 물론 명분은 있었지. 에퀘스급 기사 자격을 딴 사람에게 물려주겠다 공언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없는 무재에도 죽어라고 노력해서 에퀘스 기사 자격을 딴 것이다. 그걸 형님은 내가 야망에 눈이 멀어 자기 자리를 빼앗았다 오해한 것이고 말이야.”
“그렇군요…….”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하다. 정정당당히 겨루어 에퀘스 기사 자격을 쟁취해라. 뒷말이 안 나오도록.”
“알겠습니다.”
아들이 납득한 듯하자 백작은 피곤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보였다.
“그만 나가 보거라.”
“예.”
아들이 꾸벅하고 나가는 모습을 본 백작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참 자기 자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영특하니 어떻게든 자기 자리는 지킬 놈이다.
거기다 에인하트 왕국까지 가면서 서로 간에 의지할 것이니, 없는 우정도 생겨날 것이다.
“후후후, 형님은 잘못하셨소. 이제 우리 아랫대에서는 화해를 하게 될 것이오.”
백작은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잠시 억눌러 두었던 불쾌한 감정은 아버지의 시선을 벗어나자 점점 고개를 들었다.
미카엘은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눈으로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아마 지금 헤른과 마주친다면 다리 하나쯤은 부러뜨릴 기세.
그만큼 화도 났을 뿐더러 그렇게 된다면 굳이 자신이 에인하트 왕국을 안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곧 보상을 받았다.
“저기 있군.”
미카엘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빠르게 다가서는 발걸음이 자못 사나워 금방이라도 사달을 낼 듯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다가서던 기세만큼이나 재빨리 모습을 감춰야만 했다.
“저기… 아메린 양. 오랜만입니다… 이곳에서… 이리 마주칠 줄은 몰랐습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말하고 있는 헤른.
“뭐야, 상황 애매하게.”
미카엘은 혀를 찼다. 아무래도 고백 비스무리한 정황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상대측 여자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말 걸지 말랬죠? 아유, 재수 없어. 내가 못생긴 사람은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예쁘게 생긴 모습과는 달리 꽤나 표독한 어투.
미카엘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여자의 정체를 깨닫고는 내심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과 안면이 있는 어느 귀족가의 영애였는데, 자신을 볼 때마다 조신하게 미소를 흘려 꽤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 그게 아니고. 나는 왜 당신이 여기 있는지 궁금해서…….”
“궁금? 참나, 신경 끄시고 본인 할 일이나 하세요. 난 잘생긴 미카엘 공자 보러 온 거니까.”
“그… 그놈이 잘생긴 게 그렇게 좋소?”
“흥, 당신처럼 못생긴 사람은 모르겠죠. 암요.”
“나…는… 아메린 양을…….”
“그런 소리 듣기 싫어요. 어서 갈 길이나 가시지요.”
헤른은 비아냥거리는 그녀의 말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미카엘의 망막에 크게 투영되었다.
“하아…….”
미카엘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내뱉어졌다.
과거의 겪었던 자신의 상황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공교롭게 그녀가 들었던 모양이다.
“저… 저기, 미카엘 트와빈 공자님?”
“으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메린이 아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앞에서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몇 번 파티장에서 마주쳤는데, 저 아시지요? 하멜 자작가의 아메린이에요.”
더없이 깜찍한 모습. 아마 평소였다면 그런대로 흐뭇하게 여겼을 지도 모르지만 조금 전 모습을 봤던 미카엘은 그 모습이 가식적이고 역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미카엘은 아무 말 없이 뒤를 돌았다. 아메린은 이 상황이 황당하면서도 마음이 급해졌다.
“저… 저기! 공자님!”
“왜 잡는 거지!”
손목이 잡힌 미카엘이 으르렁대는 음성으로 엄포를 놓았다.
그녀의 눈은 격랑을 맞은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그 심연에 찬 푸른 눈빛은 금방이라도 그녀의 심장을 얼려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고… 공자님을 만나러 멀리서 여기까지 왔으니 잠시라도 얘기를…….”
“난 못생긴 자가 싫다. 그리고 마음이 못생긴 자는 더욱더 싫다.”
“어… 어찌 그런 심한 말을…….”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는 그녀.
미카엘은 악당이 되기로 마음먹고 상관하지 않았다.
“의외로 에인하트 왕국까지 가는 여정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군.”
그의 눈은 흑요석을 박은 듯 빛나고 있었다.
***
헤토 왕국 특산품인 고급 대리석이 깔린 바닥.
그 위를 수놓은 화려한 르베마이로산 융단.
그리고 방 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장식까지.
단순한 응접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극도의 화려함과 웅장함이 살아 숨 쉬는 공간.
“정말 당신 말대로 하면 대륙을 삼킬 수가 있는 것이오?”
침묵을 깨는 말은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원탁에 앉은 몇 사람 중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
“물론. 나를 믿으시오.”
“하긴, 당신이 하는 일이니…….”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들도 없었다.
“그래도 제국이 건재한데…….”
한사람이 다소 자신 없어 하는 태도를 보이자 또 다른 자가 발끈하여 말을 하였다.
“근본 없는 놈이 세운 나라를 두려워하다니요.”
“그 근본 없는 시어러를 두려워하여 우리는 여태 50년간을 숨죽여 지낸 겁니다. 제국이 후계자 문제로 어지러운 이때가 절호의 기회.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아무튼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군. 너무 오래 기다려서 좀이 쑤셔.”
호전적으로 생긴 자가 하는 말에,
“후후후. 명분 쌓기로 이미 일을 진행 중입니다.”
맨 가운데서 회의를 주재하는 자가 웃음을 흘리며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바로 여기가 바로 그 역사적인 시발점이 될 것이오.”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바로 에인하트 왕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