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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8화)
물러서는 법이 없다 ― (2)
칼슨 자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사제는 의도치 않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얼굴이 벌개졌으나, 침중한 낯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전쟁의 신전. 결투는 정당하게 행해졌고, 승부는 났소. 진 쪽은 승복을. 그리고 이 대결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는 행위는 절대 금지되어 있으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이오.”
“이잇!”
칼슨 자작은 자신에게 뇌물을 받고도 이리 판결한 사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쟁의 신전은 그만큼 힘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자작은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헤메롯은 미카엘을 한참이나 노려보다 저 멀리 가고 있는 칼슨의 뒤를 어두운 낯빛으로 쫒아갔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미카엘.”
“저 사람이 생각보다 실력이 없던데요.”
엉성한 대답이나 아니라고 하기에도 상대는 너무 어이없이 졌다. 자신의 아들이 실력이 있다고 하기에는 워낙 움직임도 적었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일이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다.”
백작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상대가 아무리 국왕파이자 실세인 미트하르트 공작가의 봉신가문을 자처한다고 하지만 전쟁의 신전에서 대결한 이상 이 문제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해코지야 하겠지만.’
그러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자신의 아들은 아직 어렸고, 벌써부터 그런 어른의 짐을 씌우기는 싫었다.
트와빈 백작은 환하게 웃었다.
“자, 그럼 아들의 자랑스러운 승리를 위한 축하 파티를 해볼까?”
***
요동쳤던 트와빈 백작가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어떤 이는 생각보다 실력 있는 트와빈 백작가 후계자를 칭찬했으며, 어떤 이는 운이 억세게 좋다 평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미카엘의 온전한 실력으로 보지는 않았다.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도련님, 어떻게 하신 겁니까?”
로렌트도 전쟁의 신전에 있었기에 하는 말.
분명 미카엘은 무엇인가를 했다. 괜히 상대가 검을 떨어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가.”
미카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수련장이라는 곳의 목적에 맞게 수련을 하던 차였다.
그의 손에서는 로렌트가 보기에도 익숙한 검식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가문에서 주로 쓰이는 데베트랑 검술이었다.
트와빈가의 고유 검술은 아니지만 로우만 왕실 기초 검술로 불릴 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검술이기도 하다.
로렌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미카엘의 수련을 방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캐물었다.
“왜 헤메롯이 검을 떨어뜨린 겁니까?”
“얘기했잖아. 상대가 실력이 없었다고.”
미카엘은 한숨을 내쉬며 검식을 그만두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착! 하는 깔끔한 소리와 함께 검이 검집에 빨려 들어간다.
아마 로렌트가 조금만 주의가 깊었더라면 미카엘의 손에서 데베트랑 검술이 새롭게 재해석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나, 아쉽게도 그에게는 그런 세심함이 없었다.
“저한테는 감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렌트의 눈에는 확신이 어려 있었고, 그걸 느낀 미카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
쓸데없이 이런 쪽에 예리하다.
“어깨의 심줄을 벤 것이다.”
“예? 언제?”
“그녀석이 내 어깨를 베려할 때. 똑같이 해준 것이지.”
“아…….”
믿기지 않았지만 안 믿을 수가 없었다. 진정 그렇다면 도련님은 믿을 수 없는 쾌검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 믿음도 얼마 가지 않아 흐려졌다.
“이제 그자는 두 손을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도밖에 못 쓸 거야.”
“두… 두 손이라고요?”
로렌트의 눈에서 어이없다는 빛이 어렸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신전에 있던 기사들은 모두 소태눈깔이란 말과 같다.
이 어리디 어린 도련님이 검을 두 번이나 휘둘렀는데 아무도 보지 못했다?
“에이… 아무래도 거짓말인 것 같은데.”
“그럼 믿지 말던지.”
심드렁한 표정을 보니 오히려 더 믿음이 간다.
“아니오. 믿겠습니다. 암요, 믿어야죠.”
생각해 보니 도련님은 희대의 검술 천재 아니던가.
히죽이는 로렌트.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오고 있었다. 그럴만한 것이, 지금 그는 엉거주춤 오금을 움츠리고 있는 마보 자세다.
하지만 표정과는 달리 농담하는 까지 하는 것을 보면 꽤나 요령이 붙은 모습이기도 하다.
“좀 더 강하게 단련시켜야겠어… 그놈들이 헛짓거리를 할지도 모르니까.”
미카엘의 혼잣말을 들은 로렌트는 움찔했다. 지금 마보도 하기 힘든데 무슨 단련을…….
로렌트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입을 다물고 열심히 하는 척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굳이 손짓을 하여 중단시켰다.
“이제 마보는 그만하고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지.”
“오, 드디어입니까?”
수련이라는 말에 위기감을 잊은 로렌트의 입이 귀에 걸렸다.
미카엘은 혀를 찼다.
“그렇게 좋아할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뭐, 어쨌든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 비정상적으로 망가진 네 몸을 원상태로 돌리는 방법이니 말이다.”
“아… 그 혈맥 치료법인가 뭔가 그거 말입니까?”
“그래. 그거 말이다.”
미카엘은 떨떠름해하는 로렌트를 가부좌로 앉혔다.
“아휴, 이거 자세가 묘한데요? 왜 이렇게 힘듭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네 몸은 혈맥이 갈갈이 찢어져 있는데 이 정도 작은 수고도 참지 못하면 무엇을 하겠나?”
혹여 칼슨 자작가가 헛짓을 할지도 모르니 자신뿐만 아니라 가신들도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미카엘의 태도는 단호했다.
“아… 알겠습니다.”
“내가 움직이는 경로를 잘 기억하도록 해라.”
우드드드득.
로렌트의 얼굴이 고통으로 물들었다.
“으아아아악!”
“그래, 고통은 입으로 토해내라. 입으로 탁기를 뱉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로렌트는 고통을 참느라 귀에 담아내지 못했다. 때로는 개미가 기어가듯이 미친 듯이 간지러웠으며, 어쩔 때는 그야말로 신체 여기저기를 쥐어짜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악!”
그러기를 삼십 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세상에 그런 고통이 있을 줄이야!
로렌트는 핏발이 선 눈으로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그게 뭡니까?”
“으응? 뭐냐니, 네 치료법이지.”
우드드득. 로렌트는 주먹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으으… 도련님! 도대체 무슨 치료법이 그.렇.게 극악합니까? 그 이름, 한 번 들어봅시다!”
움찔.
찔리는 구석이 있었던 미카엘의 몸이 살짝 반응했고,
작지만 짧은 이 경직을 로렌트는 용케 눈치챘다.
“설마… 치료법 이름도 없는 겁니까?”
“아니야. 로… 로비츠 연공법이다.”
당황하는 것하며, 급조한 티가 팍팍 난다…….
로렌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왠지 수상하긴 하지만… 로비츠라는 말의 어원이 대륙어로 회복이라는 뜻이니… 뭐 그럴 듯은 합니다.”
“그… 그렇지?”
소 뒷걸음질에 뭐 걸린다더니 얻어걸렸다.
하지만 로렌트는 다시 생각해 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두 번 다시는 못하겠습니다. 너무 고통이 심합니다. 얼마나 아프냐면, 지금 팔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흐음… 그래? 손 한 번 이리 줘봐.”
미카엘은 로렌트의 몸 여기저기를 매만져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만져본 그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확실히 거짓은 아니다.
한순간에 과도한 부하를 받아서인지 근골 여기저기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이것이 지속되면 결국 골병이 들 것.
“지속 시간은 이십 분… 그리고 이것보다는 조금 고통을 줄여야겠군.”
“마… 맙소사. 설마 지금 조정하는 겁니까?”
미카엘은 로렌트의 눈을 피했다.
“음,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으아아악! 말도 안 돼!”
로렌트는 비명을 터트렸지만 이미 유능한 수하 만들기에 꽂힌 미카엘이 들을 리 만무했다.
***
그로부터 삼 일 뒤.
“이 정도면 되겠군.”
미카엘은 희대의 혈맥 근골 개선 강화법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
“헉헉, 헉헉, 이 악마!”
덕분에 실험 대상이 된 로렌트.
그의 눈은 잡아먹을 것처럼 쌍심지가 켜져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몸에 무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지만 그 고통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효과는 좋잖아!”
움찔. 이번에는 로렌트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확실히 로비츠 연공법을 하고 나서는 몸이 달라졌다.
전에 마나 역류 때문에 시도 못했던 신법마저 근래에는 조심스럽게 따라할 수 있을 정도.
“그게 정말 슬픈 일이죠. 계속해야 한단 얘기니까요. 그런데 이건 진짜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다 나을 때까지. 아마 2년은 족히 해야 할 걸?”
“말도 안 돼!”
로렌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만약 2년간 이 로비츠 연공법을 꾸준히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그는 몰랐다.
미카엘이 노리는 것은 단순한 혈맥 회복이 아니었다.
궁극적인 목적은 인위적인 환골탈태를 행하고자 하는 것.
이 연공법의 태생 자체가 그에 목적이 있다.
과거 송 황실에서 다수의 무공 고수 양성을 위해 ‘검은 두드릴수록 강해진다’는 발상에 착안. 분골착근의 수를 응용하여 혈도와 근골에 지속적인 자극을 가함으로써 단련시키고, 이를 통해 임독양맥까지 타통하겠다는 것이 주 골자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다수의 피해자만 남기고 실용성 없는 무공 이론으로서만 황궁서고에 처박히게 된 것인데, 미카엘이 결국 이것을 현실에서 가능하도록 개선한 것이다.
“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니 열심히 하도록 해. 안 그러면 검술 전수는 없다.”
채찍과 당근을 같이 제시하니 버틸 재간이 없다. 로렌트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휴… 알겠습니다. 하지요. 예, 합니다.”
“그럼 쉬는 동안 마보를 열심히 하고 있도록 해. 난 잠깐 아버지가 부르신다 하니 갔다 올게.”
“도련님! 어떻게 마보가 쉬는 겁니까?”
“그래도 로비츠 연공법보다는 낫잖아?”
“그렇죠. 마보가 훨씬 좋습니다. 하하하하.”
미카엘은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반응은 저래도 일단 시키면 열심히 한다.
“속임이 없고 사람이 성실하니 빠르게 성장하겠군.”
미카엘은 그렇게 지하 공동 계단을 올라갔고, 지하에는 끙끙거리는 로렌트의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트와빈 백작의 집무실 바로 앞.
“백작님, 제가 이번 토벌전에서 공을 세워 에퀘스급으로 인정받으면 백작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작위를 빼.앗.아. 간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올바른 이치 아니겠습니까?”
무심코 문을 열고자 했던 미카엘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어쩐지 문 앞을 지키고 선 시녀가 자신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더라니…….
“누구지?”
친절하기 짝이 없던 도련님의 입에서 전에 없던 차가움이 실리자 시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 그게…….”
그때, 시녀의 난처함을 구원해주는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헤른아! 네 말이 조금 심하구나!”
“헤른?”
미카엘은 그 이름을 입 안에서 되뇌어 보았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은 느낌.
“아… 그 녀석인가?”
물러서는 법이 없다 ― (2)
칼슨 자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사제는 의도치 않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얼굴이 벌개졌으나, 침중한 낯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전쟁의 신전. 결투는 정당하게 행해졌고, 승부는 났소. 진 쪽은 승복을. 그리고 이 대결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는 행위는 절대 금지되어 있으니 잊지 말아야 할 것이오.”
“이잇!”
칼슨 자작은 자신에게 뇌물을 받고도 이리 판결한 사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쟁의 신전은 그만큼 힘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자작은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헤메롯은 미카엘을 한참이나 노려보다 저 멀리 가고 있는 칼슨의 뒤를 어두운 낯빛으로 쫒아갔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미카엘.”
“저 사람이 생각보다 실력이 없던데요.”
엉성한 대답이나 아니라고 하기에도 상대는 너무 어이없이 졌다. 자신의 아들이 실력이 있다고 하기에는 워낙 움직임도 적었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일이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다.”
백작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상대가 아무리 국왕파이자 실세인 미트하르트 공작가의 봉신가문을 자처한다고 하지만 전쟁의 신전에서 대결한 이상 이 문제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해코지야 하겠지만.’
그러나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자신의 아들은 아직 어렸고, 벌써부터 그런 어른의 짐을 씌우기는 싫었다.
트와빈 백작은 환하게 웃었다.
“자, 그럼 아들의 자랑스러운 승리를 위한 축하 파티를 해볼까?”
***
요동쳤던 트와빈 백작가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어떤 이는 생각보다 실력 있는 트와빈 백작가 후계자를 칭찬했으며, 어떤 이는 운이 억세게 좋다 평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미카엘의 온전한 실력으로 보지는 않았다.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도련님, 어떻게 하신 겁니까?”
로렌트도 전쟁의 신전에 있었기에 하는 말.
분명 미카엘은 무엇인가를 했다. 괜히 상대가 검을 떨어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가.”
미카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수련장이라는 곳의 목적에 맞게 수련을 하던 차였다.
그의 손에서는 로렌트가 보기에도 익숙한 검식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가문에서 주로 쓰이는 데베트랑 검술이었다.
트와빈가의 고유 검술은 아니지만 로우만 왕실 기초 검술로 불릴 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검술이기도 하다.
로렌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미카엘의 수련을 방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캐물었다.
“왜 헤메롯이 검을 떨어뜨린 겁니까?”
“얘기했잖아. 상대가 실력이 없었다고.”
미카엘은 한숨을 내쉬며 검식을 그만두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착! 하는 깔끔한 소리와 함께 검이 검집에 빨려 들어간다.
아마 로렌트가 조금만 주의가 깊었더라면 미카엘의 손에서 데베트랑 검술이 새롭게 재해석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나, 아쉽게도 그에게는 그런 세심함이 없었다.
“저한테는 감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렌트의 눈에는 확신이 어려 있었고, 그걸 느낀 미카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
쓸데없이 이런 쪽에 예리하다.
“어깨의 심줄을 벤 것이다.”
“예? 언제?”
“그녀석이 내 어깨를 베려할 때. 똑같이 해준 것이지.”
“아…….”
믿기지 않았지만 안 믿을 수가 없었다. 진정 그렇다면 도련님은 믿을 수 없는 쾌검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 믿음도 얼마 가지 않아 흐려졌다.
“이제 그자는 두 손을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도밖에 못 쓸 거야.”
“두… 두 손이라고요?”
로렌트의 눈에서 어이없다는 빛이 어렸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신전에 있던 기사들은 모두 소태눈깔이란 말과 같다.
이 어리디 어린 도련님이 검을 두 번이나 휘둘렀는데 아무도 보지 못했다?
“에이… 아무래도 거짓말인 것 같은데.”
“그럼 믿지 말던지.”
심드렁한 표정을 보니 오히려 더 믿음이 간다.
“아니오. 믿겠습니다. 암요, 믿어야죠.”
생각해 보니 도련님은 희대의 검술 천재 아니던가.
히죽이는 로렌트.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오고 있었다. 그럴만한 것이, 지금 그는 엉거주춤 오금을 움츠리고 있는 마보 자세다.
하지만 표정과는 달리 농담하는 까지 하는 것을 보면 꽤나 요령이 붙은 모습이기도 하다.
“좀 더 강하게 단련시켜야겠어… 그놈들이 헛짓거리를 할지도 모르니까.”
미카엘의 혼잣말을 들은 로렌트는 움찔했다. 지금 마보도 하기 힘든데 무슨 단련을…….
로렌트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입을 다물고 열심히 하는 척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굳이 손짓을 하여 중단시켰다.
“이제 마보는 그만하고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지.”
“오, 드디어입니까?”
수련이라는 말에 위기감을 잊은 로렌트의 입이 귀에 걸렸다.
미카엘은 혀를 찼다.
“그렇게 좋아할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뭐, 어쨌든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 비정상적으로 망가진 네 몸을 원상태로 돌리는 방법이니 말이다.”
“아… 그 혈맥 치료법인가 뭔가 그거 말입니까?”
“그래. 그거 말이다.”
미카엘은 떨떠름해하는 로렌트를 가부좌로 앉혔다.
“아휴, 이거 자세가 묘한데요? 왜 이렇게 힘듭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네 몸은 혈맥이 갈갈이 찢어져 있는데 이 정도 작은 수고도 참지 못하면 무엇을 하겠나?”
혹여 칼슨 자작가가 헛짓을 할지도 모르니 자신뿐만 아니라 가신들도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미카엘의 태도는 단호했다.
“아… 알겠습니다.”
“내가 움직이는 경로를 잘 기억하도록 해라.”
우드드드득.
로렌트의 얼굴이 고통으로 물들었다.
“으아아아악!”
“그래, 고통은 입으로 토해내라. 입으로 탁기를 뱉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로렌트는 고통을 참느라 귀에 담아내지 못했다. 때로는 개미가 기어가듯이 미친 듯이 간지러웠으며, 어쩔 때는 그야말로 신체 여기저기를 쥐어짜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악!”
그러기를 삼십 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세상에 그런 고통이 있을 줄이야!
로렌트는 핏발이 선 눈으로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그게 뭡니까?”
“으응? 뭐냐니, 네 치료법이지.”
우드드득. 로렌트는 주먹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으으… 도련님! 도대체 무슨 치료법이 그.렇.게 극악합니까? 그 이름, 한 번 들어봅시다!”
움찔.
찔리는 구석이 있었던 미카엘의 몸이 살짝 반응했고,
작지만 짧은 이 경직을 로렌트는 용케 눈치챘다.
“설마… 치료법 이름도 없는 겁니까?”
“아니야. 로… 로비츠 연공법이다.”
당황하는 것하며, 급조한 티가 팍팍 난다…….
로렌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왠지 수상하긴 하지만… 로비츠라는 말의 어원이 대륙어로 회복이라는 뜻이니… 뭐 그럴 듯은 합니다.”
“그… 그렇지?”
소 뒷걸음질에 뭐 걸린다더니 얻어걸렸다.
하지만 로렌트는 다시 생각해 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두 번 다시는 못하겠습니다. 너무 고통이 심합니다. 얼마나 아프냐면, 지금 팔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흐음… 그래? 손 한 번 이리 줘봐.”
미카엘은 로렌트의 몸 여기저기를 매만져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만져본 그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확실히 거짓은 아니다.
한순간에 과도한 부하를 받아서인지 근골 여기저기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이것이 지속되면 결국 골병이 들 것.
“지속 시간은 이십 분… 그리고 이것보다는 조금 고통을 줄여야겠군.”
“마… 맙소사. 설마 지금 조정하는 겁니까?”
미카엘은 로렌트의 눈을 피했다.
“음,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으아아악! 말도 안 돼!”
로렌트는 비명을 터트렸지만 이미 유능한 수하 만들기에 꽂힌 미카엘이 들을 리 만무했다.
***
그로부터 삼 일 뒤.
“이 정도면 되겠군.”
미카엘은 희대의 혈맥 근골 개선 강화법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
“헉헉, 헉헉, 이 악마!”
덕분에 실험 대상이 된 로렌트.
그의 눈은 잡아먹을 것처럼 쌍심지가 켜져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몸에 무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지만 그 고통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효과는 좋잖아!”
움찔. 이번에는 로렌트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확실히 로비츠 연공법을 하고 나서는 몸이 달라졌다.
전에 마나 역류 때문에 시도 못했던 신법마저 근래에는 조심스럽게 따라할 수 있을 정도.
“그게 정말 슬픈 일이죠. 계속해야 한단 얘기니까요. 그런데 이건 진짜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다 나을 때까지. 아마 2년은 족히 해야 할 걸?”
“말도 안 돼!”
로렌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만약 2년간 이 로비츠 연공법을 꾸준히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그는 몰랐다.
미카엘이 노리는 것은 단순한 혈맥 회복이 아니었다.
궁극적인 목적은 인위적인 환골탈태를 행하고자 하는 것.
이 연공법의 태생 자체가 그에 목적이 있다.
과거 송 황실에서 다수의 무공 고수 양성을 위해 ‘검은 두드릴수록 강해진다’는 발상에 착안. 분골착근의 수를 응용하여 혈도와 근골에 지속적인 자극을 가함으로써 단련시키고, 이를 통해 임독양맥까지 타통하겠다는 것이 주 골자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다수의 피해자만 남기고 실용성 없는 무공 이론으로서만 황궁서고에 처박히게 된 것인데, 미카엘이 결국 이것을 현실에서 가능하도록 개선한 것이다.
“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니 열심히 하도록 해. 안 그러면 검술 전수는 없다.”
채찍과 당근을 같이 제시하니 버틸 재간이 없다. 로렌트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휴… 알겠습니다. 하지요. 예, 합니다.”
“그럼 쉬는 동안 마보를 열심히 하고 있도록 해. 난 잠깐 아버지가 부르신다 하니 갔다 올게.”
“도련님! 어떻게 마보가 쉬는 겁니까?”
“그래도 로비츠 연공법보다는 낫잖아?”
“그렇죠. 마보가 훨씬 좋습니다. 하하하하.”
미카엘은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반응은 저래도 일단 시키면 열심히 한다.
“속임이 없고 사람이 성실하니 빠르게 성장하겠군.”
미카엘은 그렇게 지하 공동 계단을 올라갔고, 지하에는 끙끙거리는 로렌트의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트와빈 백작의 집무실 바로 앞.
“백작님, 제가 이번 토벌전에서 공을 세워 에퀘스급으로 인정받으면 백작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작위를 빼.앗.아. 간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올바른 이치 아니겠습니까?”
무심코 문을 열고자 했던 미카엘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어쩐지 문 앞을 지키고 선 시녀가 자신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더라니…….
“누구지?”
친절하기 짝이 없던 도련님의 입에서 전에 없던 차가움이 실리자 시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 그게…….”
그때, 시녀의 난처함을 구원해주는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헤른아! 네 말이 조금 심하구나!”
“헤른?”
미카엘은 그 이름을 입 안에서 되뇌어 보았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은 느낌.
“아… 그 녀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