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판타지 환생기 (7화)
물러서는 법이 없다 ― (1)
우드드득.
이가 부르질 정도로 앙다문 토드 칼슨은 씹어먹을 듯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소원이라니 죽여주마. 이 애송이 새끼, 증인은 여기 시녀가 있으니 결투에 이의는 없겠지?”
정신없이 전개되는 급박한 상황에 사건의 발단이 된 헤이나의 얼굴이 창백하게 일그러졌다. 아무리 그녀가 검술을 모른다지만 딱 봐도 상대가 안 된다. 상대는 20대 중반. 도련님은 이제 검술 배운지 얼마 안 되는 15세다.
“어, 어떡하면 좋아.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도련님이 죽게 생겼어.”
발만 동동 구르던 헤이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바로 백작님 한 분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도, 도련님. 잠깐만 계세요. 제가, 제가 백작님을 모셔올게요!”
서둘러 뛰어가는 헤이나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던 토드 칼슨이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백작님이 오시기 전에 만져줘야겠군. 걱정 마. 아무리 그래도 백작님 자제인데 내가 목숨을 해하지는 않아.”
“그래? 네 생각이 그러하다면 나도 네 목숨은 살려주지. 단 당분간 숟가락 들 힘도 없을 만큼 자근자근 밟아줄 테지만 말이다.”
미카엘은 검을 뽑아드는 대신 적수공권으로 응했다.
하지만 그런 태도에 차드는 모욕을 느꼈던 모양이다.
“얼굴만 믿고 까부는 녀석이 감히! 네 이놈, 그 얼굴을 아주 아작 내주마!”
검이 분노만큼 섬전처럼 휘둘러진다. 상단으로 뻗어지다가 몸통으로 내뻗어지는 것을 보니 변초가 섞여 있는 환검 계열의 검식.
차드의 눈에 득의의 감정이 깃들었다.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겁을 먹었다 생각한 것.
하지만 이질감 느껴지는 기음에 차드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투웅.
어찌 피륙으로 된 손에 검이 튕겨진단 말인가.
경악으로 물든 상대의 눈을 일견한 미카엘은 손날로 쳐낸 검등의 간격을 손끝으로 잡아 흘려버리고는 적의 몸체를 향해 손바닥부터 손등, 그리고 팔꿈치까지 삼 격을 동시에 터트려 버렸다.
바로 황궁무공 패황권.
퍼버버벅.
“크으으악.”
몸체에 작렬한 가슴 부분이 움푹 들어간 것을 보니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 분명하다. 덤벼든 것보다 더 빨리 튕겨져 나간 토드였으나, 미카엘은 그를 온전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 튕겨져 나가는 그를 보법으로 따라잡은 후 양쪽 오금을 각법으로 후려쳤다.
“끄으으으악!”
양다리가 평소라면 절대 굽혀질 수 없는 각도로 구부러진 채 입에 피거품을 문 토드.
눈이 돌아간 것을 보니 극심한 고통으로 정신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자신만만하던 것과는 달리 별 볼 일 없군.”
미카엘이 차갑게 일갈하였다.
하지만 정신을 이미 잃은 그가 들을 리 만무했고, 미카엘은 그런 토드를 흔들어 깨우려 다가설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아! 아들아! 괜찮으냐! 대결을 중지하라!”
트와빈 백작은 얼마나 급했는지 실내용 클리거를 신고 있는 상태였다. 그 옆에는 헤이나가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에도 땀이 한가득이었다. 거기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는 토드와 닮은 얍삽하게 생긴 인사가 빙글빙글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하하하. 우리 토드가 그래도 손속이 과하지 아니하여…….”
칼슨 자작은 말을 제대로 끝낼 수 없었다. 가까이 와서 보니 쓰러져 있는 남자가 백작가 자제인 미카엘이 아니고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울부짖는 칼슨 자작. 이렇게 되자 어안이 벙벙해진 건 트와빈 백작이다.
“아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정당한 대결이었고, 그 결과물일 뿐입니다.”
“이게 정당한 대결이었다고?”
칼슨 자작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감히 내 아들을 이리 만들고 무사할 줄 알았더냐? 어디 기사를 숨겨놓고 내 아들을 피습한 것이겠지.”
“칼슨 자작. 말씀이 심하시오!”
트와빈 백작이 당황하여 소리쳤으나, 이미 뵈는 게 없는 칼슨 자작은 거침없이 말하였다.
“정당한 대결이었다면 내 이 일에 대해 두 번 다시 말을 하지 않겠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결코 그냥 좌시하지 않겠소.”
“끄응…….”
백작의 얼굴은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토드 칼슨은 인성하고는 상관없이 천재 검사로 불릴 만큼 수준급 검사였으니 아들이 온전한 자기 실력으로 이겼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 아마도 로렌트 경이나 누가 도와주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바로 그때.
“증명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토드 칼슨과 실력이 비슷한 자를 내세우면 다시 대결을 하겠습니다.”
“아들, 그게 무슨 말이냐!”
백작은 미카엘의 말에 대경하여 소리를 쳤다. 지금 이 일은 사죄하고 금전 등으로 보상하고 끝낼 일이다. 대결을 한다면 속 좁은 칼슨 자작은 결코 미카엘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요? 아, 그 방법 좋군요. 백작님. 아드님이 아주 정의롭고 용감하시네요. 이 칼슨, 감복하여 쾌히 승낙하겠습니다.”
“아니… 칼슨 자작. 내 말을 들어보시게!”
“승부는 바로 모레. 우리 쪽 기사를 통해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절대, 그 어떠한 대리 기사도 허용치 않습니다. 반드시 미카엘 공자를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칼슨 자작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선언하듯 말하고는 토드 칼슨을 데리고 사라졌다.
폭풍전야.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트와빈 영지에 불안한 태풍이 몰아닥쳤다.
“어… 어찌하여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이 일을 어찌 할까!”
트와빈 백작은 불안한 시선을 미카엘에게서 로렌트에게로 옮겼다.
미카엘 검술 스승인 그에게서 답을 얻으려는 것이다.
“별일 없을 것이옵니다. 백작 전하…….”
연무장에서 얼떨결에 불려 나온 로렌트는 벌어진 사태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기사단에서 손꼽히는 자신을 어렵지 않게 제압한 도련님이니 자작가의 기사단에서 감히 도련님을 능가할 이는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아비 된 입장인 백작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들아, 대결에 들어가면 검을 던지고 졌다고 해라.”
“그래, 아들. 아버지 말대로 해라. 명예 따위는 생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두고두고 겁쟁이라 낙인찍힐 방법이었지만 백작부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는 아들의 목숨이 소중했으니 말이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지.”
하나 정작 당사자는 태연자약.
트와빈 백작의 지옥 같은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트와빈 백작. 기다렸소이다.”
칼슨 자작은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전쟁의 신전 앞에서 백작과 미카엘을 노려보았다.
그의 옆에는 공증인으로 나선 전쟁의 신전 사제가 대동해 있었다.
전쟁의 신전에서 대결한다는 것은 그 대결의 결과에 절대적으로 승복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
겉보기에는 꽤나 정당해 보이지만.
“아… 아닛! 지금 대결에 나서는 자는 칼슨 기사단의 단장인 헤메롯 경 아니오! 이게 말이 되오? 헤메롯 경은 에퀘스 중급을 바라보지 않습니까? 어디 에퀘스에도 아직 미치지 못한 토드 칼슨 공자의 경지와 비슷하단 말이오?”
“어허, 백작님. 우리 아들이 얼∼마나 검술의 천재였는데요. 헤메롯 경은 되어야 겨우 경지가 맞습니다.”
“이이이이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제님, 이게 말이 됩니까?!”
트와빈 백작은 분통을 참지 못하고 대결을 주관하고 있는 전쟁의 신전 사제를 향해 토로했지만, 그 역시 자작의 입김이 들어간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신전은 공정한 대결을 관장하오. 어서 빨리 대결을 속행하시오!”
백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있으니 이렇게 수세에 몰리는 것이다.
분을 참지 못하는 트와빈 백작의 어깨를 미카엘이 살포시 감쌌다.
“아버지. 아들의 작은 성취에 큰 기쁨을 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미카엘이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를 가소롭게 바라보고 있는 헤메롯을 향해 손으로 가리켰다.
“오라!”
헤메롯은 기가 막혔다.
상대는 겨우 열다섯이라 들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서른다섯. 완연한 에퀘스 경지. 중급을 바라보는 경지였다.
“공자는 겁이 없군.”
헤메롯은 미카엘의 태도에 마음 한편에 있던 꺼림칙함을 벗어던졌다.
그래서 자작의 요청대로 잔인하게 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두 팔로 끝내도록 하지. 네가 자초한 것이다.’
두 팔을 끊어놓으면 자작으로서도 그리 손해인 장사는 아닐 것이다. 자작의 아들은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겠지만 두 팔이 날아가면 아무리 사제가 있다 해도 이어붙일 수가 없다.
헤메롯이 살기를 드러내며 검을 들이대자 트와빈 백작의 마음은 급해졌다.
“아들, 뭐하느냐! 어서 졌다 하거라!”
“…이런.”
헤메롯은 백작의 의도를 깨달았다.
설마 항복할 의도였을 줄이야.
귀족이라면 절대 안 할 행동이지만 당장은 사회적 지탄을 받더라도 아직 어린 열다섯임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용납이 될지도…….
“간닷!”
헤메롯은 상대에게서 항복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검을 내뻗었다.
프슝.
예리한 검날이 빛살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어느샌가 신체 강화를 한 것.
목표는 명확했다. 오른쪽 어깨. 사선으로 내리 그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왼손 어깨를 그을 것이다.
상대는 제대로 반응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검날에 반사된 햇빛 반사광이 시야를 가릴 테니까.
초심자들은 종종 이 수에 당하곤 한다. 괜히 자신이 해를 등진 것이 아니다.
그렇게 전면까지 육박한 헤메롯의 눈에 상대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모습.
그러나…….
‘웃고 있어?’
분명 입꼬리가 웃고 있다. 겁에 질려서 미친 것일까?
그 입이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똑같이 해주지.”
헤메롯은 두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검이 빗나갔다.
마치 처음부터 빗나가야 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당황한 그는 비껴치기를 행했다.
이대로 가르면 상체가 두 동강 날 터였다.
“아차!”
너무 당황해서 실기했다.
검에 힘을 빼기에는 너무 많이 갔다. 헤메롯은 힘을 빼는 대신 힘을 더하였다. 아예 깨끗하게 베어버리는 게 그나마 고통을 덜어준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검날은 허무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하아… 이런 미친.”
너무 당황해서 헤메롯은 신성한 전쟁의 신전에서 욕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무례를 탓하지 않았다. 보고 있는 사람들 역시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미카엘은 슬슬 끝내야 함을 느꼈다. 너무 길거나 짧게 끝내도 안 되었다. 적당히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것을 보이면서 이기는 것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
약간은 투박하게 내찔러진 검날.
헤메롯은 막을 수 있다 생각했다. 아니 막았다.
하지만 왜 자신은 검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있는가.
절그락!
“아… 아니! 이런 실수를.”
서둘러 검을 주워 올리려는데, 어느새 미카엘의 검이 자신의 목 위에 가 있었다.
“당신이 졌습니다.”
트와빈 백작가 쪽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면서도 기쁨의 표정을, 칼슨 자작가에서는 숨길 수 없는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이 대결, 다시 해야 하오!”
물러서는 법이 없다 ― (1)
우드드득.
이가 부르질 정도로 앙다문 토드 칼슨은 씹어먹을 듯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소원이라니 죽여주마. 이 애송이 새끼, 증인은 여기 시녀가 있으니 결투에 이의는 없겠지?”
정신없이 전개되는 급박한 상황에 사건의 발단이 된 헤이나의 얼굴이 창백하게 일그러졌다. 아무리 그녀가 검술을 모른다지만 딱 봐도 상대가 안 된다. 상대는 20대 중반. 도련님은 이제 검술 배운지 얼마 안 되는 15세다.
“어, 어떡하면 좋아.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도련님이 죽게 생겼어.”
발만 동동 구르던 헤이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바로 백작님 한 분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도, 도련님. 잠깐만 계세요. 제가, 제가 백작님을 모셔올게요!”
서둘러 뛰어가는 헤이나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던 토드 칼슨이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백작님이 오시기 전에 만져줘야겠군. 걱정 마. 아무리 그래도 백작님 자제인데 내가 목숨을 해하지는 않아.”
“그래? 네 생각이 그러하다면 나도 네 목숨은 살려주지. 단 당분간 숟가락 들 힘도 없을 만큼 자근자근 밟아줄 테지만 말이다.”
미카엘은 검을 뽑아드는 대신 적수공권으로 응했다.
하지만 그런 태도에 차드는 모욕을 느꼈던 모양이다.
“얼굴만 믿고 까부는 녀석이 감히! 네 이놈, 그 얼굴을 아주 아작 내주마!”
검이 분노만큼 섬전처럼 휘둘러진다. 상단으로 뻗어지다가 몸통으로 내뻗어지는 것을 보니 변초가 섞여 있는 환검 계열의 검식.
차드의 눈에 득의의 감정이 깃들었다.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겁을 먹었다 생각한 것.
하지만 이질감 느껴지는 기음에 차드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투웅.
어찌 피륙으로 된 손에 검이 튕겨진단 말인가.
경악으로 물든 상대의 눈을 일견한 미카엘은 손날로 쳐낸 검등의 간격을 손끝으로 잡아 흘려버리고는 적의 몸체를 향해 손바닥부터 손등, 그리고 팔꿈치까지 삼 격을 동시에 터트려 버렸다.
바로 황궁무공 패황권.
퍼버버벅.
“크으으악.”
몸체에 작렬한 가슴 부분이 움푹 들어간 것을 보니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 분명하다. 덤벼든 것보다 더 빨리 튕겨져 나간 토드였으나, 미카엘은 그를 온전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 튕겨져 나가는 그를 보법으로 따라잡은 후 양쪽 오금을 각법으로 후려쳤다.
“끄으으으악!”
양다리가 평소라면 절대 굽혀질 수 없는 각도로 구부러진 채 입에 피거품을 문 토드.
눈이 돌아간 것을 보니 극심한 고통으로 정신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자신만만하던 것과는 달리 별 볼 일 없군.”
미카엘이 차갑게 일갈하였다.
하지만 정신을 이미 잃은 그가 들을 리 만무했고, 미카엘은 그런 토드를 흔들어 깨우려 다가설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아! 아들아! 괜찮으냐! 대결을 중지하라!”
트와빈 백작은 얼마나 급했는지 실내용 클리거를 신고 있는 상태였다. 그 옆에는 헤이나가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에도 땀이 한가득이었다. 거기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는 토드와 닮은 얍삽하게 생긴 인사가 빙글빙글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하하하. 우리 토드가 그래도 손속이 과하지 아니하여…….”
칼슨 자작은 말을 제대로 끝낼 수 없었다. 가까이 와서 보니 쓰러져 있는 남자가 백작가 자제인 미카엘이 아니고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울부짖는 칼슨 자작. 이렇게 되자 어안이 벙벙해진 건 트와빈 백작이다.
“아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정당한 대결이었고, 그 결과물일 뿐입니다.”
“이게 정당한 대결이었다고?”
칼슨 자작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감히 내 아들을 이리 만들고 무사할 줄 알았더냐? 어디 기사를 숨겨놓고 내 아들을 피습한 것이겠지.”
“칼슨 자작. 말씀이 심하시오!”
트와빈 백작이 당황하여 소리쳤으나, 이미 뵈는 게 없는 칼슨 자작은 거침없이 말하였다.
“정당한 대결이었다면 내 이 일에 대해 두 번 다시 말을 하지 않겠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결코 그냥 좌시하지 않겠소.”
“끄응…….”
백작의 얼굴은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토드 칼슨은 인성하고는 상관없이 천재 검사로 불릴 만큼 수준급 검사였으니 아들이 온전한 자기 실력으로 이겼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 아마도 로렌트 경이나 누가 도와주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바로 그때.
“증명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토드 칼슨과 실력이 비슷한 자를 내세우면 다시 대결을 하겠습니다.”
“아들, 그게 무슨 말이냐!”
백작은 미카엘의 말에 대경하여 소리를 쳤다. 지금 이 일은 사죄하고 금전 등으로 보상하고 끝낼 일이다. 대결을 한다면 속 좁은 칼슨 자작은 결코 미카엘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요? 아, 그 방법 좋군요. 백작님. 아드님이 아주 정의롭고 용감하시네요. 이 칼슨, 감복하여 쾌히 승낙하겠습니다.”
“아니… 칼슨 자작. 내 말을 들어보시게!”
“승부는 바로 모레. 우리 쪽 기사를 통해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절대, 그 어떠한 대리 기사도 허용치 않습니다. 반드시 미카엘 공자를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칼슨 자작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선언하듯 말하고는 토드 칼슨을 데리고 사라졌다.
폭풍전야.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트와빈 영지에 불안한 태풍이 몰아닥쳤다.
“어… 어찌하여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이 일을 어찌 할까!”
트와빈 백작은 불안한 시선을 미카엘에게서 로렌트에게로 옮겼다.
미카엘 검술 스승인 그에게서 답을 얻으려는 것이다.
“별일 없을 것이옵니다. 백작 전하…….”
연무장에서 얼떨결에 불려 나온 로렌트는 벌어진 사태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기사단에서 손꼽히는 자신을 어렵지 않게 제압한 도련님이니 자작가의 기사단에서 감히 도련님을 능가할 이는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아비 된 입장인 백작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들아, 대결에 들어가면 검을 던지고 졌다고 해라.”
“그래, 아들. 아버지 말대로 해라. 명예 따위는 생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두고두고 겁쟁이라 낙인찍힐 방법이었지만 백작부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는 아들의 목숨이 소중했으니 말이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지.”
하나 정작 당사자는 태연자약.
트와빈 백작의 지옥 같은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트와빈 백작. 기다렸소이다.”
칼슨 자작은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전쟁의 신전 앞에서 백작과 미카엘을 노려보았다.
그의 옆에는 공증인으로 나선 전쟁의 신전 사제가 대동해 있었다.
전쟁의 신전에서 대결한다는 것은 그 대결의 결과에 절대적으로 승복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
겉보기에는 꽤나 정당해 보이지만.
“아… 아닛! 지금 대결에 나서는 자는 칼슨 기사단의 단장인 헤메롯 경 아니오! 이게 말이 되오? 헤메롯 경은 에퀘스 중급을 바라보지 않습니까? 어디 에퀘스에도 아직 미치지 못한 토드 칼슨 공자의 경지와 비슷하단 말이오?”
“어허, 백작님. 우리 아들이 얼∼마나 검술의 천재였는데요. 헤메롯 경은 되어야 겨우 경지가 맞습니다.”
“이이이이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제님, 이게 말이 됩니까?!”
트와빈 백작은 분통을 참지 못하고 대결을 주관하고 있는 전쟁의 신전 사제를 향해 토로했지만, 그 역시 자작의 입김이 들어간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신전은 공정한 대결을 관장하오. 어서 빨리 대결을 속행하시오!”
백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있으니 이렇게 수세에 몰리는 것이다.
분을 참지 못하는 트와빈 백작의 어깨를 미카엘이 살포시 감쌌다.
“아버지. 아들의 작은 성취에 큰 기쁨을 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미카엘이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를 가소롭게 바라보고 있는 헤메롯을 향해 손으로 가리켰다.
“오라!”
헤메롯은 기가 막혔다.
상대는 겨우 열다섯이라 들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서른다섯. 완연한 에퀘스 경지. 중급을 바라보는 경지였다.
“공자는 겁이 없군.”
헤메롯은 미카엘의 태도에 마음 한편에 있던 꺼림칙함을 벗어던졌다.
그래서 자작의 요청대로 잔인하게 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두 팔로 끝내도록 하지. 네가 자초한 것이다.’
두 팔을 끊어놓으면 자작으로서도 그리 손해인 장사는 아닐 것이다. 자작의 아들은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겠지만 두 팔이 날아가면 아무리 사제가 있다 해도 이어붙일 수가 없다.
헤메롯이 살기를 드러내며 검을 들이대자 트와빈 백작의 마음은 급해졌다.
“아들, 뭐하느냐! 어서 졌다 하거라!”
“…이런.”
헤메롯은 백작의 의도를 깨달았다.
설마 항복할 의도였을 줄이야.
귀족이라면 절대 안 할 행동이지만 당장은 사회적 지탄을 받더라도 아직 어린 열다섯임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용납이 될지도…….
“간닷!”
헤메롯은 상대에게서 항복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검을 내뻗었다.
프슝.
예리한 검날이 빛살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어느샌가 신체 강화를 한 것.
목표는 명확했다. 오른쪽 어깨. 사선으로 내리 그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왼손 어깨를 그을 것이다.
상대는 제대로 반응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검날에 반사된 햇빛 반사광이 시야를 가릴 테니까.
초심자들은 종종 이 수에 당하곤 한다. 괜히 자신이 해를 등진 것이 아니다.
그렇게 전면까지 육박한 헤메롯의 눈에 상대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모습.
그러나…….
‘웃고 있어?’
분명 입꼬리가 웃고 있다. 겁에 질려서 미친 것일까?
그 입이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똑같이 해주지.”
헤메롯은 두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검이 빗나갔다.
마치 처음부터 빗나가야 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당황한 그는 비껴치기를 행했다.
이대로 가르면 상체가 두 동강 날 터였다.
“아차!”
너무 당황해서 실기했다.
검에 힘을 빼기에는 너무 많이 갔다. 헤메롯은 힘을 빼는 대신 힘을 더하였다. 아예 깨끗하게 베어버리는 게 그나마 고통을 덜어준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검날은 허무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하아… 이런 미친.”
너무 당황해서 헤메롯은 신성한 전쟁의 신전에서 욕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무례를 탓하지 않았다. 보고 있는 사람들 역시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미카엘은 슬슬 끝내야 함을 느꼈다. 너무 길거나 짧게 끝내도 안 되었다. 적당히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것을 보이면서 이기는 것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
약간은 투박하게 내찔러진 검날.
헤메롯은 막을 수 있다 생각했다. 아니 막았다.
하지만 왜 자신은 검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있는가.
절그락!
“아… 아니! 이런 실수를.”
서둘러 검을 주워 올리려는데, 어느새 미카엘의 검이 자신의 목 위에 가 있었다.
“당신이 졌습니다.”
트와빈 백작가 쪽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면서도 기쁨의 표정을, 칼슨 자작가에서는 숨길 수 없는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이 대결, 다시 해야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