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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6화)
주군으로 모시겠나이다 ― (2)
“절혼검 에인하트, 비탄의 기적 르베마이로, 풍신 로우만, 아, 이분은 지금 우리나라 현 국왕님이시지요. 그리고…….”
“잠깐!”
미카엘이 로렌트를 막아 세웠다.
“그러고 보니 시녀들이 얘기한 것을 들어본 것 같군. 그런데 내가 들었던 것은 페이그랑(신화적인 이라는 뜻 고어) 신화 10웅이라는 것이었는데? 무슨 드래곤과 엘프도 막 섞여 있고 말이야.”
“아, 그건 인류 10웅보다 상위에 있는 신화적인 영웅들을 뽑은 겁니다. 전 이종족까지 통틀어서 따졌을 때 드래곤 수장 다섯, 하이 엘프 시랑바드 하이로드, 드워프 전사 세르가히랑, 그리고 제국 초대 황제인 시어러, 최고 술법사 카사베드라, 그리고 자비와 사랑의 신전 성녀인 이야스. 이렇게요.”
전생의 무림에서도 무슨 놈의 검왕, 권왕이 그렇게나 많지 않던가? 서열 놀이는 어딜 가나 있는 모양이다.
그 표정이 미카엘의 얼굴에는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아무튼 영웅들이 있다고 치고.”
“아∼니, 있다고 치다니요. 우리가 이렇게나 살 수 있는 건 다 영웅들이 해놓으신 위업 때문이라고요!”
로렌트는 영웅들에게 꽤나 빠져 있는지 떽떽거리며 말을 이어갔고, 귀가 따가워진 미카엘은 슬며시 귀를 막았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영웅찬가는 그의 입에서 계속되었다.
“영웅들께서 만들어 놓으신 신체 강화가 아니셨다면 마물과 마족으로 인해 인간들은 아마 멸족했을 겁니다.”
“잠깐! 신체 강화를 그들이 만들었다고? 흐음…….”
다시 영웅찬가를 멈춰 세운 미카엘은 생각했다. 그리고 암흑시대라는 것을 가정하니 그렇게 무리한 수법을 만들어낸 배경을 조금은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만큼, 그 정도로 힘과 내공을 증폭시키지 않았더라면 해치울 수 없을 정도로 마족이 강했던 모양이다.
신체 강화 비술의 정체는 바로 불 같이 일어난 내공으로 생명력을 태우는 것.
전생의 무림에서 쓰이는 폭혈공에 비하면 그 부작용이 경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건 쓰면 쓸수록 원천지기와 혈맥을 손상시킬 게 빤했다.
그 와중에도 입이 근질근질했던 로렌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영웅찬가를 계속했다.
“아직까지는 마물이 완전 퇴치가 된 게 아니라서 대륙 곳곳에서 소규모로 계속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테이타토르 인류 10웅 중 몇 분이 아직 살아 계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영웅 중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미카엘은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느낀 신체 강화의 비술이라면 그들이 아직 살아 있을 수가 없을 텐데…….
“테이나토르(인류 10웅) 중 여섯 명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참 다행한 일이지요. 전격왕 헤인트로, 풍왕 로우만, 암왕 오엘스크, 환염왕 헤토, 화룡왕 프라켈, 비탄의 기적 르베마이로. 이분들이야말로 인류의 희망이시지요.”
“허참… 속없는 녀석. 그래서 페이그랑인가 뭔가 하는 신화 10웅도 아직 살아 있나?”
“신화 10웅들 중 인간이신 세 분은 홀연히 사라지시고… 아, 신화 10웅 중 제일 공로자이신 시어러는 지금의 제국을 세우셨군요. 아무튼 그 외의 분들은 신비롭게 사라지시고 인류 10웅들은 종식 후 대륙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 나라씩을 맡으셨지요. 우리 나라 로우만 왕국의 국왕께서도 그분들 중 한 분이십니다.”
“쯧쯧쯧…….”
미카엘은 고소를 금치 못했다.
분명 진정 공을 세운 것은 신화 10웅일 테지만 인류 10웅이라는 사람들이 대신 공을 탐하고 왕이 된 것이리라.
하지만 로렌트의 어리석음을 탓할 것도 없다. 정작 자신도 전생에 송 황제에게 이용만 당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전생에 낙향한 후 황제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송나라의 기틀을 닦은 다른 무신들도 모두 내쳤다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전부 문신들을 그 중심에 세웠다.
그러다 보니 전장에서 문신들이 장군으로 나서는 웃지 못 할 사태도 벌어졌고, 당연히 전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 결과 제1의 위협이었던 요와의 전쟁에서 번번이 졌고, 위협을 느낀 황제는 요와 굴욕적인 전연의 맹약(화친조약)을 맺었다 들었다.
결국 매년 요나라에게 바쳐야 하는 막대한 금액의 공납은 고스란히 백성의 부담으로 돌아간 것이다.
“결국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고소를 머금긴 했지만 그렇다고 위선자인 영웅들을 탓할 생각도 없다. 내 가족, 내 것을 건드리지 않는 한 그들과 상관할 일은 없는 것이다.
“내 가족, 내 신하가 우선이겠지.”
그러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니, 로렌트가 무슨 일인가 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저기… 도련님. 저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응. 내가 가르쳐준 신법… 아니, 퀵스텝은 당분간 사용하지 말아라. 아, 그리고 그 신체 강화도.”
“예… 알겠습니다.”
시무룩해진 로렌트.
아무래도 그 신묘한 퀵스텝을 못 쓴다 하니 못내 아쉬워서이리라.
“걱정 마라. 내가 대신 신체 강화를 대신할 만한 것을 연구… 아니, 과거에 서책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려 적당한 것을 찾아봐 주지!”
“아, 정말입니까?”
“그래. 그 대체 방안을 만들 동안 시간이 좀 남으니 약소한 것 하나 해보고 있는 게 좋겠군.”
잠시 후 미카엘은 로렌트에게 마보를 전수하였고, 로렌트는 이계에서 최초로 마보를 수련하는 최초의 기사가 되었다.
“아이고…….”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
로렌트는 요새 죽을 맛이었다.
마보라는 것을 우습게보았다가 그 고생을 톡톡히 하는 중이었는데, 마보를 하도 하다 보니 이제는 식사할 때도 의자에 편히 앉아서 먹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로렌트…….”
“옙! 도련님!!”
마보를 하는 그 힘든 와중에서도 대답은 즉각 했다. 자신이 몰랐던 도련님의 성격.
그것은 이 미려하게 생긴 남자가 은근히 성격이 있는데다, 대충하는 것 같으면 체벌이 가차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왜 나보고 갑자기 마물 토벌전에 가는 것을 고려 해 보라는 걸까?”
‘허업!!’
로렌트는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도련님의 무력에 대해서 오러 유저 중급이라고 한 것 때문에 그에 자신감을 얻은 백작님이 경험 삼아 나가 보라고 권유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이른 결정이긴 하다. 물론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나이. 어려도 너무 어리다.
왜냐하면 보통은 스물다섯은 넘어야 오러 유저 상급 정도에 이르는 지라, 열다섯에 마물 토벌전… 그러니까 에퀘스 승급전을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시피 했다.
“흐음, 이 사태의 원인이 누구 덕분인 거 같은데 말야!”
“아, 아닙니다! 저는 최대한 도련님의 무력을 줄여서 말씀드렸습니다. 심지어 저보다 더 약하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래?”
환생한 덕에 무력 기준을 전생으로 잡은 미카엘은 당연히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열다섯인 것은 생각지 않고 아버지가 유난하시다고 여긴 것.
“어찌되었든, 나 이번에는 안 간다고 딱 잘라 말씀드렸으니까… 행여 아버님이 또 내 무력에 대해 말씀하시면 아주 못한다고 말씀드려. 알았어?”
“예… 예.”
로렌트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일 계속된 마보 단련에 기사의 명예와 자존심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인 것.
순순히 납득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미카엘은 지하 공동 연무실에 마련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에인하트 왕국으로 가라니, 말이나 돼?’
그냥 자국 내에서 하는 거라면 까짓 거 눈 딱 감고 가겠지만 머나먼 타국까지 가라니.
미카엘의 얼굴에 귀찮음이 어렸다.
언젠가 에퀘스 승급전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타국이 아닌 자국 내에서 할 때 가면 그만이다.
오전에 아버지와 괜한 심력 싸움을 했던 미카엘은 로렌트의 수련을 봐주는 거고 뭐고 다 귀찮아졌다.
“로렌트. 오늘은 귀찮다. 그만하자.”
“예? 예… 이제 마보 끝나고 검법 할 차례인데… 아, 알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오전에는 마보, 오후에는 점창파의 사일검법 일부를 전수받는 로렌트였다.
그로서는 지옥 같은 마보를 견뎌내는 것은 검법을 전수받기 위한 필사적인 마음이었는데, 그것을 빼앗기니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카엘은 로렌트를 내버려두고 지하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그런 후 그가 향한 곳은 성내 소정원에 있는 커다란 그스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워낙 수령이 오래되어 그 위에 누우면 쉬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다닥.
한걸음에 나무 맨 위까지 올라간 미카엘은 널찍한 나뭇가지에 등을 누였다.
“후우우우…….”
미카엘은 팔베개를 하고 하늘에 떠도는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도도히 흘러가는 구름. 그리고 그것에 맞춘 듯 부는 싱그러운 바람.
더없이 평화로운 나머지 시간마저 느리게 가는 느낌.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부모님도 건강히 생존해 계시고, 얼굴은 잘생겨졌고, 충성스러운 부하까지 있으니 모든 것이 완벽하군.”
이런 것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닐까.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낮잠을 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를 어지럽히는 불협화음이 끼어들었다.
“감히 내 청을 뿌리쳐? 겨우 백작가 시녀 따위가?”
미카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누구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 영지를 방문했다던 칼슨 자작가의 일원 중 한명이리라.
“나… 나리, 천한 년이지만 그래도 저는 백작가의 시녀이옵니다. 어찌 저를 욕보이려 하십니까?”
“백작가라도 다 같은 백작가가 아니다. 중도파에 불과한 별 볼 일 없는 백작가보다는 국왕파에 속해 있는 우리 칼슨 자작가가 더 힘이 세단 말이다. 그런데 감히 나 칼슨 자작가 후계자인 내 청을 거절해?”
미카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몸을 일으켰다.
그냥 누워서 자기에는 개소리가 너무 컸다.
훌쩍.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미카엘.
황금빛 머릿결이 춤을 추듯 펄럭였다.
“뭐냐, 너는?”
가까이서 보니 트와빈 백작가에 대해 막말을 한 남자는 이십대 중반 정도. 입술이 얄팍하여 다소 얍삽하게 보이는 청년이었다.
“내가 바로 트와빈 백작가의 장남, 미카엘이다.”
“아… 아니…….”
칼슨 자작가의 장남 토드 칼슨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아무리 트와빈 백작가가 정치적으로 힘이 없다지만 명색이 백작가이다. 대놓고 이렇게 모욕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그로서도 좋을 것은 없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청년을 슬쩍 노려본 미카엘은 더 이상 답을 듣지 않고 품속에 있던 손수건을 던졌다.
타악!
“뭐냐, 이건?”
토드 칼슨의 눈이 커졌다.
“아, 장갑이 없어서. 장갑 대신이다. 결투 신청이란 얘기지. 명목은 우리 백작가를 모욕한 죄. 그리고…….”
미카엘의 눈이 시녀, 헤이나를 향했다.
“우리 헤이나를 희롱한 죄에 대해 나 미카엘 트와빈이 결투를 신청한다.”
토드 칼슨의 눈빛에 어린 감정은 처음에는 당황이었지만 곧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내가 누구인 줄 모르는 모양인데 말이야. 나 토드 칼슨이야. 토드 칼슨. 백작…님에게 못 들었나 보군.”
“못 들었다. 어디 가의 개새끼인가?”
주군으로 모시겠나이다 ― (2)
“절혼검 에인하트, 비탄의 기적 르베마이로, 풍신 로우만, 아, 이분은 지금 우리나라 현 국왕님이시지요. 그리고…….”
“잠깐!”
미카엘이 로렌트를 막아 세웠다.
“그러고 보니 시녀들이 얘기한 것을 들어본 것 같군. 그런데 내가 들었던 것은 페이그랑(신화적인 이라는 뜻 고어) 신화 10웅이라는 것이었는데? 무슨 드래곤과 엘프도 막 섞여 있고 말이야.”
“아, 그건 인류 10웅보다 상위에 있는 신화적인 영웅들을 뽑은 겁니다. 전 이종족까지 통틀어서 따졌을 때 드래곤 수장 다섯, 하이 엘프 시랑바드 하이로드, 드워프 전사 세르가히랑, 그리고 제국 초대 황제인 시어러, 최고 술법사 카사베드라, 그리고 자비와 사랑의 신전 성녀인 이야스. 이렇게요.”
전생의 무림에서도 무슨 놈의 검왕, 권왕이 그렇게나 많지 않던가? 서열 놀이는 어딜 가나 있는 모양이다.
그 표정이 미카엘의 얼굴에는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아무튼 영웅들이 있다고 치고.”
“아∼니, 있다고 치다니요. 우리가 이렇게나 살 수 있는 건 다 영웅들이 해놓으신 위업 때문이라고요!”
로렌트는 영웅들에게 꽤나 빠져 있는지 떽떽거리며 말을 이어갔고, 귀가 따가워진 미카엘은 슬며시 귀를 막았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영웅찬가는 그의 입에서 계속되었다.
“영웅들께서 만들어 놓으신 신체 강화가 아니셨다면 마물과 마족으로 인해 인간들은 아마 멸족했을 겁니다.”
“잠깐! 신체 강화를 그들이 만들었다고? 흐음…….”
다시 영웅찬가를 멈춰 세운 미카엘은 생각했다. 그리고 암흑시대라는 것을 가정하니 그렇게 무리한 수법을 만들어낸 배경을 조금은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만큼, 그 정도로 힘과 내공을 증폭시키지 않았더라면 해치울 수 없을 정도로 마족이 강했던 모양이다.
신체 강화 비술의 정체는 바로 불 같이 일어난 내공으로 생명력을 태우는 것.
전생의 무림에서 쓰이는 폭혈공에 비하면 그 부작용이 경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건 쓰면 쓸수록 원천지기와 혈맥을 손상시킬 게 빤했다.
그 와중에도 입이 근질근질했던 로렌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영웅찬가를 계속했다.
“아직까지는 마물이 완전 퇴치가 된 게 아니라서 대륙 곳곳에서 소규모로 계속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테이타토르 인류 10웅 중 몇 분이 아직 살아 계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영웅 중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고?”
미카엘은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느낀 신체 강화의 비술이라면 그들이 아직 살아 있을 수가 없을 텐데…….
“테이나토르(인류 10웅) 중 여섯 명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참 다행한 일이지요. 전격왕 헤인트로, 풍왕 로우만, 암왕 오엘스크, 환염왕 헤토, 화룡왕 프라켈, 비탄의 기적 르베마이로. 이분들이야말로 인류의 희망이시지요.”
“허참… 속없는 녀석. 그래서 페이그랑인가 뭔가 하는 신화 10웅도 아직 살아 있나?”
“신화 10웅들 중 인간이신 세 분은 홀연히 사라지시고… 아, 신화 10웅 중 제일 공로자이신 시어러는 지금의 제국을 세우셨군요. 아무튼 그 외의 분들은 신비롭게 사라지시고 인류 10웅들은 종식 후 대륙을 안정시키기 위해 한 나라씩을 맡으셨지요. 우리 나라 로우만 왕국의 국왕께서도 그분들 중 한 분이십니다.”
“쯧쯧쯧…….”
미카엘은 고소를 금치 못했다.
분명 진정 공을 세운 것은 신화 10웅일 테지만 인류 10웅이라는 사람들이 대신 공을 탐하고 왕이 된 것이리라.
하지만 로렌트의 어리석음을 탓할 것도 없다. 정작 자신도 전생에 송 황제에게 이용만 당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전생에 낙향한 후 황제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송나라의 기틀을 닦은 다른 무신들도 모두 내쳤다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전부 문신들을 그 중심에 세웠다.
그러다 보니 전장에서 문신들이 장군으로 나서는 웃지 못 할 사태도 벌어졌고, 당연히 전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 결과 제1의 위협이었던 요와의 전쟁에서 번번이 졌고, 위협을 느낀 황제는 요와 굴욕적인 전연의 맹약(화친조약)을 맺었다 들었다.
결국 매년 요나라에게 바쳐야 하는 막대한 금액의 공납은 고스란히 백성의 부담으로 돌아간 것이다.
“결국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고소를 머금긴 했지만 그렇다고 위선자인 영웅들을 탓할 생각도 없다. 내 가족, 내 것을 건드리지 않는 한 그들과 상관할 일은 없는 것이다.
“내 가족, 내 신하가 우선이겠지.”
그러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니, 로렌트가 무슨 일인가 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저기… 도련님. 저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응. 내가 가르쳐준 신법… 아니, 퀵스텝은 당분간 사용하지 말아라. 아, 그리고 그 신체 강화도.”
“예… 알겠습니다.”
시무룩해진 로렌트.
아무래도 그 신묘한 퀵스텝을 못 쓴다 하니 못내 아쉬워서이리라.
“걱정 마라. 내가 대신 신체 강화를 대신할 만한 것을 연구… 아니, 과거에 서책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려 적당한 것을 찾아봐 주지!”
“아, 정말입니까?”
“그래. 그 대체 방안을 만들 동안 시간이 좀 남으니 약소한 것 하나 해보고 있는 게 좋겠군.”
잠시 후 미카엘은 로렌트에게 마보를 전수하였고, 로렌트는 이계에서 최초로 마보를 수련하는 최초의 기사가 되었다.
“아이고…….”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
로렌트는 요새 죽을 맛이었다.
마보라는 것을 우습게보았다가 그 고생을 톡톡히 하는 중이었는데, 마보를 하도 하다 보니 이제는 식사할 때도 의자에 편히 앉아서 먹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로렌트…….”
“옙! 도련님!!”
마보를 하는 그 힘든 와중에서도 대답은 즉각 했다. 자신이 몰랐던 도련님의 성격.
그것은 이 미려하게 생긴 남자가 은근히 성격이 있는데다, 대충하는 것 같으면 체벌이 가차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왜 나보고 갑자기 마물 토벌전에 가는 것을 고려 해 보라는 걸까?”
‘허업!!’
로렌트는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도련님의 무력에 대해서 오러 유저 중급이라고 한 것 때문에 그에 자신감을 얻은 백작님이 경험 삼아 나가 보라고 권유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이른 결정이긴 하다. 물론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나이. 어려도 너무 어리다.
왜냐하면 보통은 스물다섯은 넘어야 오러 유저 상급 정도에 이르는 지라, 열다섯에 마물 토벌전… 그러니까 에퀘스 승급전을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시피 했다.
“흐음, 이 사태의 원인이 누구 덕분인 거 같은데 말야!”
“아, 아닙니다! 저는 최대한 도련님의 무력을 줄여서 말씀드렸습니다. 심지어 저보다 더 약하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래?”
환생한 덕에 무력 기준을 전생으로 잡은 미카엘은 당연히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열다섯인 것은 생각지 않고 아버지가 유난하시다고 여긴 것.
“어찌되었든, 나 이번에는 안 간다고 딱 잘라 말씀드렸으니까… 행여 아버님이 또 내 무력에 대해 말씀하시면 아주 못한다고 말씀드려. 알았어?”
“예… 예.”
로렌트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일 계속된 마보 단련에 기사의 명예와 자존심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인 것.
순순히 납득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미카엘은 지하 공동 연무실에 마련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에인하트 왕국으로 가라니, 말이나 돼?’
그냥 자국 내에서 하는 거라면 까짓 거 눈 딱 감고 가겠지만 머나먼 타국까지 가라니.
미카엘의 얼굴에 귀찮음이 어렸다.
언젠가 에퀘스 승급전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타국이 아닌 자국 내에서 할 때 가면 그만이다.
오전에 아버지와 괜한 심력 싸움을 했던 미카엘은 로렌트의 수련을 봐주는 거고 뭐고 다 귀찮아졌다.
“로렌트. 오늘은 귀찮다. 그만하자.”
“예? 예… 이제 마보 끝나고 검법 할 차례인데… 아, 알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오전에는 마보, 오후에는 점창파의 사일검법 일부를 전수받는 로렌트였다.
그로서는 지옥 같은 마보를 견뎌내는 것은 검법을 전수받기 위한 필사적인 마음이었는데, 그것을 빼앗기니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카엘은 로렌트를 내버려두고 지하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그런 후 그가 향한 곳은 성내 소정원에 있는 커다란 그스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워낙 수령이 오래되어 그 위에 누우면 쉬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다닥.
한걸음에 나무 맨 위까지 올라간 미카엘은 널찍한 나뭇가지에 등을 누였다.
“후우우우…….”
미카엘은 팔베개를 하고 하늘에 떠도는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도도히 흘러가는 구름. 그리고 그것에 맞춘 듯 부는 싱그러운 바람.
더없이 평화로운 나머지 시간마저 느리게 가는 느낌.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부모님도 건강히 생존해 계시고, 얼굴은 잘생겨졌고, 충성스러운 부하까지 있으니 모든 것이 완벽하군.”
이런 것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닐까.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낮잠을 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를 어지럽히는 불협화음이 끼어들었다.
“감히 내 청을 뿌리쳐? 겨우 백작가 시녀 따위가?”
미카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누구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 영지를 방문했다던 칼슨 자작가의 일원 중 한명이리라.
“나… 나리, 천한 년이지만 그래도 저는 백작가의 시녀이옵니다. 어찌 저를 욕보이려 하십니까?”
“백작가라도 다 같은 백작가가 아니다. 중도파에 불과한 별 볼 일 없는 백작가보다는 국왕파에 속해 있는 우리 칼슨 자작가가 더 힘이 세단 말이다. 그런데 감히 나 칼슨 자작가 후계자인 내 청을 거절해?”
미카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몸을 일으켰다.
그냥 누워서 자기에는 개소리가 너무 컸다.
훌쩍.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미카엘.
황금빛 머릿결이 춤을 추듯 펄럭였다.
“뭐냐, 너는?”
가까이서 보니 트와빈 백작가에 대해 막말을 한 남자는 이십대 중반 정도. 입술이 얄팍하여 다소 얍삽하게 보이는 청년이었다.
“내가 바로 트와빈 백작가의 장남, 미카엘이다.”
“아… 아니…….”
칼슨 자작가의 장남 토드 칼슨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아무리 트와빈 백작가가 정치적으로 힘이 없다지만 명색이 백작가이다. 대놓고 이렇게 모욕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그로서도 좋을 것은 없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청년을 슬쩍 노려본 미카엘은 더 이상 답을 듣지 않고 품속에 있던 손수건을 던졌다.
타악!
“뭐냐, 이건?”
토드 칼슨의 눈이 커졌다.
“아, 장갑이 없어서. 장갑 대신이다. 결투 신청이란 얘기지. 명목은 우리 백작가를 모욕한 죄. 그리고…….”
미카엘의 눈이 시녀, 헤이나를 향했다.
“우리 헤이나를 희롱한 죄에 대해 나 미카엘 트와빈이 결투를 신청한다.”
토드 칼슨의 눈빛에 어린 감정은 처음에는 당황이었지만 곧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내가 누구인 줄 모르는 모양인데 말이야. 나 토드 칼슨이야. 토드 칼슨. 백작…님에게 못 들었나 보군.”
“못 들었다. 어디 가의 개새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