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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5화)

주군으로 모시겠나이다 ― (1)


“영주 전용 연무장이 이런 곳이었군.”
중원에 있는 폐관 수련동과는 차원이 다른 쾌적함이다.
폐관 수련이라 하면 무릇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환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여기 지하에 마련된 연무장은 지하임에도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마나석으로 환히 밝혀져 있는데다가 공기도 쾌적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환풍도 잘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숙식이 가능하도록 침대도 있었고, 간단한 식사가 가능하도록 음식마저 갖추어져 있었다.
거기다 더 좋은 것은 이곳이 좀 더 자연지기가 풍부하다는 점.
“앞으로는 여기서 연공법을 해야겠어.”
마음에 든 미소를 지어 보이던 미카엘은 돌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나저나 그 녀석, 무공 다듬으려면 고생 꽤나 하겠는데…….”
즉 그 말은 써먹을 수 있을 만큼 만들려면 앞으로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기에 미카엘이 바라는 상황과는 당분간 정반대로 갈 수 밖에 없음이다.
물론 이것은 로렌트만의 문제점은 아니다.
영지 밖을 벗어난 적이 없어 트와빈령의 기사단밖에 보지를 못했으나, 대체로 보면 동작이 크고 과장됨이 있었다.
중원의 기준으로 볼 때는 효율성과는 동떨어진 군더더기가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경신법 위주로 수련시키는 것이 낫겠군.”
경신법이란 아무래도 내공을 정교하게 운용해야 하고 용천혈은 몸의 균형을 잡는데 특화되어 있다 보니 경신법을 단련하다 보면 조금 더 효율적인 움직임이 가능할 것이다.
“도련님, 도련님! 다녀왔습니다! 헉헉!”
그사이 로렌트는 한시라도 빨리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인지, 뛰어와서는 숨을 몰아쉬었다.
“로렌트 경. 아버지로부터 허락은 받았겠지?”
“네. 그리고 백작님께서는 도련님께서 검의 성취가 뛰어남을 아시고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요?”
반문한 미카엘은 트와빈 백작이 기뻐했다는 말에 조금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기회에 능력을 더 드러내야겠군.”
혼잣말을 한 미카엘은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는 로렌트를 향해 시선을 맞추었다.
“로렌트 경. 이제 경에게 검술… 아니, 몸을 쓰는 법을 전수하려 합니다.”
“저기… 도련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 이제는 제가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니 제발 말씀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로렌트의 청에 미카엘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이치에 합당함을 느끼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부터는 편하게 하도록 하지.”
“네, 감사합니다. 헤헤헤.”
말뿐만이 아니라 진짜 마음 편하게 웃는 로렌트였다.
그의 웃는 모습이 어찌나 천진해 보였던지, 미카엘은 아까의 귀찮음을 잊고 덩달아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곧 헛기침을 한 미카엘은 짐짓 목소리를 바로하고는 본격적으로 무공 강의를 시작하였다.
“흠흠, 너에게 전수하려는 것은 경신법… 음, 그러니까 발을 빨리 놀리는 법이다.”
“아, 그럼 퀵스텝인가 보군요.”
로렌트는 검술이 아니란 말에 다소 실망한 표정을 보였으나 퀵스텝도 기사단마다 고유의 전승이 이루어질 만큼 비전이라면 비전이었으니 다시 기대에 찬 눈빛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사실을 확연히 깨달았다.
“아니,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그러한 수법을 어찌 아셨습니까? 아까 그 범상치 않은 몸놀림도 그렇고요.”
아까는 그냥 검의 천재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완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미카엘은 로렌트의 눈치를 살짝 보면서 생각해 두었던 바대로 둘러대기 시작했다.
“흐흠, 그것이… 예전에 서가의 책에서 보았다.”
“앗! 그렇다면 말로만 듣던 비전 중의 비전 아닙니까? 그럼 그것은 지금 어디에…….”
“그게… 워낙 어릴 때인지라 귀한지 모르고 훼손시켰다.”
“아이고, 안타까워라.”
의심하지 않고 그저 안타까워만 하는 모습에 그의 둔함을 다행으로 여긴 미카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더 의심할까 싶어 본론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무릇 발을 쓰는 법을 천시여기고 검부터 무작정 휘두르려는 검사가 간혹 있는데, 이는 상리에 맞지 않는 법이다. 검술에는 그와는 맞는 보법… 아니 스텝이 있는데, 내가 지금 너에게 전수하려 하는 스텝은 그 성질이 바람처럼 유하여 억세기만 한 너의 검술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로렌트는 스텝은 무시하고 검을 무턱대고 쓰려하는 자가 자신임을 깨닫고 무안함에 얼굴이 벌게졌다.
하지만 미카엘은 로렌트가 그러든 말든 강론을 이어 나갔다.
“자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하는 것이 효과적이니, 지금 한 번 해보도록.”
그렇게 말한 미카엘은 석암으로 이루어진 바닥에 깊은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걸 본 로렌트의 눈이 평소보다 두 배는 크게 확장되었다.
“아… 아니, 바닥이 원래 그렇게 무른 겁니까?”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에 로렌트도 미카엘을 따라 연신 발을 굴러댔으나 바닥은 일절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힘이 얼마나 센 거야?’
혀를 내두르는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카엘은 새겨진 족적 위로 신형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쉬시시시시식.
“아, 아닛!”
로렌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움직임.
미카엘의 신형이 마치 유령이 움직이듯 너무나 신묘했던 것이다.
“천풍신법이라 한다.”
“처… 천풍신법?”
전혀 익숙하지 않은 발음에 로렌트가 몇 번이고 입에 되새기고 있는데, 미카엘은 다시 한 번 족적을 옮기는 시범을 보이더니 따라 해보기를 권하였다.
“자 한 번 해보도록.”
“네, 시키니까 일단 해보기는 해보겠는데요…….”
로렌트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그의 발이 이상하게 꼬였기 때문이다.
“하면 할수록 발이 이상하게 꼬입니다.”
“처음에는 그게 당연한 것이다.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로렌트가 남궁세가의 천풍신법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미카엘은 정좌하고 앉아 천지조화심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낑낑거리는 신음성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깊은 숨결이 공동을 울렸다.
“후우…….”
약 한 시진 동안의 소주천을 마친 후 눈을 뜬 미카엘
왜인지 주위가 너무 조용하였기에 로렌트 쪽을 째려보았다.
“벌써부터 농땡이를… 아닛!”
미카엘은 급하게 뛰쳐나갔다. 왜냐하면 로렌트가 팔다리를 비비 꼬며 엎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화입마.’
마음이 급한 와중에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주화입마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주화입마가 된 것이다.
맥문을 움켜쥔 미카엘은 곧 그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럴 수가! 혈맥이 마치 육십 노인마냥 가닥가닥 끊겨 있지 않은가?”
이런 혈맥으로 답답한 마음에 오러를 운용하였으니 천풍신법의 족적에 숨겨져 있는 심결과 상충되어 혈맥이 꼬인 것이리라.
‘원래대로 했으면 족적대로 움직이면서 저절로 오러의 효율적인 운용법을 깨닫게 되었을 텐데.’
혀를 쯧쯧 찬 미카엘은 추궁과혈을 하기 시작했다.
“으으윽.”
막혔던 혈이 풀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육신의 아픔이 돌아오는지, 고통을 호소하는 로렌트였다.
“에라이, 이 녀석아. 나 편하자고 말 잘 듣는 녀석 하나 키우려다가 귀찮은 일만 더 하는구나…….”
한탄을 하며 한참을 주무르다 보니 맺힌 혈맥이 풀렸다. 그러자 로렌트가 눈을 뜨며 멀뚱멀뚱 미카엘을 쳐다보았다.
“으으으… 도련님, 제가 갑자기 어떻게 된 겁니까? 몸이 갑자기 비비 꼬이던데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 말이다, 왜 이렇게 혈맥이 노화되어 있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꼭 혈맥이 과중한 압력을 받은 것처럼…….”
순간 말을 멈춘 미카엘.
확연히 깨닫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 자신과 겨룰 때 갑자기 힘이 증폭되지 않았던가.
“로렌트. 아까 나와 겨룰 때 갑자기 힘이 증폭한 것은 무슨 수법이지?”
“그것은 에퀘스급이 되면 할 수 있는 신체 강화법 아닙니까?”
“그것, 다시 한 번 해보도록!”
“예? 도련님, 이렇게 갑자기요?”
“그래. 지금.”
재촉하는 말에 로렌트는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면서도 별수 없이 신체 강화법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변화가 로렌트의 맥문을 움켜쥔 미카엘에게도 확연히 느껴졌다.
“이…것은…….”
미카엘의 눈빛이 침잠하게 가라앉으며 로렌트의 얼굴을 주시하였다.
하지만 로렌트는 그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신체 강화의 힘에 취해 있는 상태였다.
두드드드득.
부풀어 오른 근육과 폭발적인 오러.
로렌트의 눈에는 조금 득의한 빛이 담겨 있었다.
“어떻습니까?”
“되었다. 이제 거둬도 된다.”
“예? 예… 알겠습니다.”
로렌트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미카엘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별수 없이 신체 강화를 거두자 부풀어 올랐던 근육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로렌트, 너 이거 하지 마라”
미카엘에게서 처음 들은 말은 이렇게나 청천벽력이었다.
당연히 로렌트는 강하게 반발하였다.
“아니, 왜요?”
“그 수법은 절체절명의 위기 시에나 한 번 할까 말까한 비법이지. 평소에 할 만한 수법이 아니다.”
“말도 안 됩니다. 신체 강화를 못하는 기사는 반쪽짜리 기사로 밖에 취급을 못 받는다구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반발하는 그를 향해 미카엘은 혀를 쯧쯧 찼다.
“이대로 있다가는 너는 50도 안 되어 단명한단 말이다.”
“50이면… 예전 같으면 장수하는 건데요?”
미카엘의 얼굴이 놀람으로 굳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예전… 그러니까 암흑시대에는 워낙 평균수명이 짧았기에 50이면 장수라고 한 것입니다.”
“암흑시대라…….”
말투에서 잘 모르겠다는 것이 느껴지자 로렌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 암흑시대를 모르십니까?”
“모른다.”
“말도 안 됩니다!”
어찌 상식을 모른단 말인가. 아마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것을.
로렌트는 계몽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침을 튀기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암흑시대 ― 이리오스계(중간계)를 침탈한 마족들과의 10년간 항전 시대.
그 전쟁의 서막에 대해서는 역사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지만, 마왕 베알제르를 숭배하는 다크 메이지(암흑 마법사)가 차원 간섭을 일으켜 고위 마족들의 중간계 침탈을 가능하게 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암흑시대 때 중간계를 침탈한 마물과 마족이라는 존재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거력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뿐만 아니라 드래곤, 엘프, 드워프 등 모든 종족이 연합하지 않으면 감히 상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존재였다고 한다.
그 결과 암흑시대 전까지만 해도 알브레도 대륙에는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유사인종이 살고 있었으나, 20년간의 항쟁 끝에 인간을 제외한 유사인종은 거의 멸족되다시피 했고, 인간도 원래 인구의 5분의 1만 살아남는 최악의 참사를 겪었다.
로렌트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 그게 바로 약 50여 년 전에 있던 일이고.”
“그렇습니다. 도련님. 그리고 그때 나온 분들이 바로 테이나토르, 인류 10웅이십니다.”
“테이나토르?”
“이건 진짜 아셔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들이거든요.”
로렌트는 이들을 꽤나 존경하는지, 열을 올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