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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4화)

미랑이 대수냐. 안 되면 만들어주마 ― (3)


“경의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사심을 가르침에 적용하는 것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정말 이치에 닿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말을 자신이 질투하는 사내이자 자신보다 이십여 세 어린 남자에게 들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저는 그런 마음이 아니란 말입니다. 검을 드십시오. 제가 그동안의 태만에 대해 따끔하게 가르침을 내려드리겠습니다.”
“말로는 안 되겠군요.”
수련용 검을 빼든 미카엘은 로렌트를 보며 손짓을 하였다.
“오십시오!”
로렌트는 그 말에 천천히 검을 빼들었다.
“조심하십시오. 검에는 눈이 없는 법입니다.”
그렇게 대치한 두 사람.
로렌트의 눈에 살짝 이채가 어렸다.
평소 빈둥빈둥했던 행태와는 다르게 검을 쥔 모습이 제법 틀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법입니다. 도련님.”
“나를 어찌 생각했기에 그렇지?”
“그냥 놀고먹는 도련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카엘은 살짝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그 말투에 문득 호감이 갔기 때문이다.
“장래의 백작한테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장래 제 검을 맡길 분이라면 더욱 이런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식.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불현듯 소유욕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런 마음이라면 두들겨서 제대로 내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미카엘이 살짝 발을 굴렀다.
쿠웅!
단순한 발구름일 뿐인데 그 울림이 로렌트의 귀에 꽂혔다.
“무슨… 발구름이…….”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피슉.
“으악! 이게 뭐야!”
어느새 전면으로 육박한 미카엘이 빠르게 검을 발출했기 때문이었다. 빗살처럼 뻗어 나오는 검.
빠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섯 방향으로 검이 짓쳐들어오자 로렌트는 순간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몰라 허둥댔다.
채앵!
겨우 뿌리친 검.
그러나 로렌트의 얼굴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수련용 검의 뭉툭한 부분이 벌써 자신의 팔뚝과 허벅지에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법이군요.”
하지만 미카엘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기사단원들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봐왔기에 이 정도라면 꽤나 수위에 들어가는 실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노… 놀리지 마십시오. 도련님.”
“뒷말을 들어야지요. ‘이계 치고는’ 입니다. 중원으로 치면 형편없습니다.”
로렌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중원 어쩌고 하는 말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형편없다는 말은 더욱 크게 와 닿았다.
“우와… 도련님 뭐 한 거 같은데…….”
“에엥? 난 검도 제대로 못 봤는데?”
“도련님 의외로 실력자 아니야?”
미카엘의 실력을 알아보기에는 시녀들과 귀족 영애들의 안목이 너무 떨어졌다. 그 소리를 듣자니 로렌트는 더욱 비참해졌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실력을 몰라봤군요. 그래서 말인데, 조금 실례를 하겠습니다.”
원래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로렌트는 믿을 수 없는 마음과 무너진 자존심 때문에 오러 코어에 내재된 힘을 풀었다.
오러 에퀘스급.
보통은 신체 강화가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는가의 차이로 오러 유저와 에퀘스급을 나눈다.
그리고 지금 로렌트에게선 그 신체 강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퍼엉.
로렌트의 가벼운 발구름에 땅거죽이 밀려나면서 순식간에 미카엘에게 육박한다.
채앵.
미카엘은 자신의 검에 맞닿은 힘의 크기에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놀랍군.”
아까의 힘이 1이라면 지금은 거의 4에서 5에 해당하는 힘이다.
“잠력을 폭발시키는 원리인가?”
눈으로 식별하기에도 어려운 검을 일일이 튕겨내며 하는 말에 로렌트의 눈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자신은 말할 새도 없이 공격하기에 바쁜데 미카엘은 일일이 그 거력을 튕겨내면서도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로부터 십여 분 동안 검을 휘두른 로렌트는 저도 모르게 힘이 빠져 검을 거두어 들였다.
“졌습니다.”
“아니, 무승부라 하지요.”
미카엘은 그저 현생에는 조용히 살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튀지 않기 위해 이기지 않고 끝내려 했다.
하지만 로렌트는 인정하지 않았다.
“도련님께서는… 강하십니다.”
그의 눈에 비친 미카엘은 분명 신체 강화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종 자신을 여유롭게 밀어붙였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검술의 천재.
로렌트가 잠시간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있는 그때.
“도련님이 이겼나 봐.”
“트와빈령 열폭기사가 검을 늘어뜨렸는데?”
“어머, 도련님은 얼굴도 잘생겼는데 검술도 잘하시는 거야?”
“그럼 로렌트 경이 잘하는 건 뭐야?”
“어머, 얘, 듣겠다.”
화를 낼 법도 하건만 로렌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놀라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도련님은 검술의 천재이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앞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봐들. 로렌트는 훌륭한 기사이다. 어찌 그의 외모를 가지고 평가한단 말인가. 험담하려거든 여기서 썩 물러나도록.”
로렌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분이야말로 자신의 주군이다!
어리지만 이미 자신보다 거인인 것이다.
“도… 도련님.”
“로렌트 경. 일단 경과 비겼으니 검술 수업은 당분간 빼주라고.”
이것이 미카엘의 노림수였건만 로렌트의 고개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당연합니다. 그보다 어찌 제가 도련님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태도가 확 바뀌어 선선히 수긍하는 로렌트를 보자 미카엘은 좀 더 좋은 해결 방안이 생각났다.
“로렌트 경. 나하고 거래 하나 하지 않겠나?”
“무슨 거래 말입니까?”
“경은 오러 량은 좋은데, 검술에 약간 문제가 있단 말이지. 그리고 나는 지금 중요한 깨달음의 경지에 있는데, 자꾸 기초 검술을 누가 배우라고 하면 귀찮고 말이야.”
“아… 그러시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버님께는 경이 계속 가르친다고 얘기를 해. 대신 나는 당신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지.”
그 말을 들은 로렌트의 눈빛이 흔들렸다.
열다섯에 불과한 아이에게 검을 배운다?
스승이었던 자가 얼마 전까지 제자였던 이에게?
“왜, 싫습니까?”
하지만 싱글싱글 웃는 미카엘을 보니 그런 쪽팔림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그만큼 아까 전의 검술은 환상적이었다.
“하겠습니다!”
로렌트는 미카엘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고,
“잘 생각했습니다.”
거래를 성사시킨 미카엘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 웬일이니. 로렌트 경이 이제 우리 미카엘 님에게 흑심을 드러내고 있어.”
“안 돼요, 미카엘 님!!”
아까 한소리 듣고 조용했던 시녀들과 귀족 영애들이 광분하며 소리친다.
“크흠, 앞으로 연무장은 따로 마련해야겠군요.”
“그… 그러니까요. 그 문제는 제가 어떻게 해결하겠습니다.”
둘 사이에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

백작은 오전에 자신의 아들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한 일로 기분이 영 좋지를 못했다.
“후우… 괜한 말을 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군.”
검술에만 조금 취미를 안 붙일 뿐이지 심성이며 외모며 세상 어디에 내놔도 잘난 아들이 아니던가.
“칼슨 자작이 아들 자랑만 하지 않았어도…….”
칼슨 자작은 미트하르트 공작령에 줄을 대고 있는 가문으로, 백작가이긴 하지만 중도파에다가 그저 그런 영향력밖에 없는 자신에 비해서는 한 끗발 날리는 가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다 그의 장남은 겨우 이십여 세에 지나지 않는데도 에퀘스 하급을 바라볼 만큼 검에 재능이 있다 들었다.
“재능 있으면 재능 있는 것이지, 아들 자랑을 왜 한단 말이야!”
여기에 없는 칼슨 자작의 욕을 괜스레 하고는 덮어두었던 영지 관리 서류를 억지로 편 백작.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조심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백작님. 충성스러운 검, 로렌트이옵니다. 들어가도 되겠는지요?”
“들어오시게!”
출입을 허하면서도 백작은 덜컥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침에 아들에게 너무 세게 얘기했던 것이 역효과를 나타낸 것인가.
그래서 들어오는 순간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억누르고 로렌트의 얼굴을 주시하였으나,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백작은 조금은 안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래, 왜 오셨는가?”
“도련님에게 비밀 연무장이 필요할 듯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미카엘이 수업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하여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던가?”
의아해하는 백작을 향해 로렌트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미리 미카엘과 입을 맞추었던 것을 그대로 읊어대었다.
“아, 그것이… 저의 오해가 다소 있었습니다. 도련님께서 그간 검술 수업에 다소 태만하셨던 것은 워낙 검재가 뛰어나시어 이미 검술 실력이 경지에 달해 있었는데 수업은 기초 수련에 머물러 있으니 만족을 못하시는 통에 수업에 집중을 못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고급 수련으로 넘어가야 해서 비밀 연무장이 필요하옵니다.”
“허어…….”
믿기지 않는 말을 듣자 백작은 다른 말을 더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그가 고개를 흔들며 말하였다.
“내가 아무래도 잘못 들었나보군… 지금 미카엘이 검재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맞사옵니다. 출중한 검사의 재능이 있으십니다.”
“출중하다면 어느 정도나?”
로렌트는 백작의 말에 ‘가히 대륙급의 천재이십니다’라고 말하려다 미카엘의 당부를 떠올리고는 겨우 입 안으로 집어삼켰다.
“지금… 거의 오러 유저 중급이시니까…….”
“오러 중급!!”
“아니, 지금 보니 오러 상급 정도 되십니다!”
로렌트는 일갈하는 백작의 음성에 저도 모르게 한 단계를 더 올려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백작의 마음을 지금 몰랐기에 실수를 한 것이었다.
‘허허허. 겨우 열여섯에 오러 유저 중급이라…….’
로렌트가 오러 유저 상급이라고 한 말은 들었지만 그대로 반대쪽 귀로 흘러가 버렸다. 오러 유저 중급이라고 해도 감지덕지였기 때문이다.
“저, 저기… 그래서 영주 전용 수련장을 쓰는 문제는 허락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쓰시게. 아니, 영주 할아비 것이라도 쓰시게. 허허허, 그 동안 로렌트 경이 고생 많았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주시게.”
자신의 두 손을 꼭 부여잡는 영주의 모습에 로렌트는 차마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다.
‘제, 제가 배우려고 빌리는 건데요…….’
“가… 감사하옵니다!”
거짓말한 게 괜히 찔렸던 로렌트가 후다닥 나가자 혼자 남은 백작은 히죽히죽 웃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흐흐흐, 칼슨 자작에게 우리 아들 자랑을 좀 해야겠군. 열다섯에 오러 유저 중급이면 자작 아들놈 성취에 비해서도 늦은 것은 아니란 말이지.”
집무실을 울리는 백작의 득의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온 로렌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기분이 좋으신 것 같군. 그나저나 도련님이 사실은 에퀘스 하급 이상이신 것을 알면 아주 기겁을 하시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로렌트는 비밀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미 미카엘이 그곳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렌트보다 먼저 영주 전용 수련관에 온 미카엘.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살짝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