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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환생기 (2화)
미랑이 대수냐. 안 되면 만들어주마 ― (1)
어느 따스한 봄날.
아름답게 꾸며진 소정원에서 벌어진 사소한 다툼.
“미카엘.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재미있는 놀이하자.”
“시끄럽다, 꼬맹이 녀석아!”
“도련님. 그런 말은 나쁜 말이에요. 세 살이나 나이 많은 형님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시녀 복색의 젊은 여성이 짐짓 화가 난 표정으로 뒷짐을 지어 보인다.
기사들은 그 광경이 못내 우스운 듯 킥킥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미카엘이라 불린 아이는 나이답지 않게 싸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 아이가 버릇없이 흙장난을 하자고 하기에 타이른 것이다.”
“아이참, 도련님은 흙장난하시고 노실 나이세요.”
그녀는 짐짓 엄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입꼬리에 살짝 미소가 어린 것을 보니 귀엽다는 것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중.
조그마한 입으로 어른스러운 말을 옹알거리는 것도 꽤나 귀여워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미카엘이라 불린 소년의 얼굴에는 불만이 한가득했다.
‘휴… 마음에도 없는 아이 흉내라니…….’
미카엘은 한숨과 함께 앞의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뭐가 좋은지 그를 보고 히죽 웃는 소년.
그렇게 타박했음에도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는 걸 보면 엔간히 속없는 녀석이다.
괜스레 솟은 심술궂은 마음에 툭하고 말을 던졌다.
“이 녀석은 못생겨서 싫다!”
“…우엥. 미카엘 너무해…….”
세 살이나 많은 주제에 서러움에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하지만 정작 미카엘은 그저 아이답지 않은 냉막함을 보일 뿐.
“도련님, 헤른 도련님을 울리시면 어떡해요?”
마데리나의 얼굴에 당황함이 어렸다.
안 그래도 미카엘의 큰아버지인 트와빈헤츠 남작은 괴팍한 성미 때문에 트와빈 백작마저 한 수 접어주고 있었기 때문.
“냅둬. 애들은 울면서 크는 거야.”
미카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명색이 대송제국 대장군이었던 자신인데 애를 달랠쏘냐. 하지만 무심한 표정을 짓는 미카엘의 태도에 그의 사촌 형 헤른의 울음보가 터지고야 말았다.
“미… 미카엘… 나빴어… 훌쩍.”
눈물 콧물까지 다 빼는 그 모습을 바라보니 조금은 측은해지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을 보자니 다시 짜증이 밀려왔다. 왠지 친근하게 생긴 모습. 자유분방하게 생긴 것이 전생의 자신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이 녀석과 자신이 사촌이라는 것이고, 자신의 얼굴도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게 문제다.
결국 커가면서 이 녀석의 못생김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미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낯선 이계에 겨우 마음 붙인 지 삼 년.
이곳이 송이든 아니든 이제는 상관없다.
무슨 마법이라는 기묘한 술법이 있거나 드래곤이라는 이상한 용새끼가 있는 것도 상관없다.
하지만 못생긴 것만큼은 용서 못한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저기 후원 너머 영주 집무실 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고얀 놈. 감히 백작위를 강탈한 주제에 나를 이리 대하다니!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는 꽤나 뚱뚱한 사내였는데, 헤른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자 안 그래도 살기등등하던 표정이 더욱 살벌하게 변했다.
“네가 여기서 왜 울고 있느냐. 거기 시녀. 설마 네년이 울린 것이냐?”
“아니옵니다. 남작 나리.”
마데리나는 사색이 되었다. 트와빈헤츠 남작은 손속이 잔인하기로 악명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헤른의 표정 역시 일변했다.
“아… 아니야. 아버지.”
어린 나이이지만 아버지의 무서운 일면을 알고 있던 헤른은 아닌 척하며 적극적으로 말렸지만 이는 트와빈헤츠 남작의 화를 더욱 더 북돋았을 뿐이었다.
“닥쳐라, 이놈! 네놈은 나 트와빈헤츠 남작… 아니, 백작위에 오를 나의 혈육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꼴을 해? 이러니 미천한 놈들까지 나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
남작은 쌓인 화를 엄한 곳에서 풀어내려는 듯 마데리나의 뺨을 갈기기 위한 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겁에 질린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꺄, 꺄악! 제발 용서를…….”
하지만 무자비한 손은 이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그저 충격을 덜 받기 위해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울린 작은 타격음.
따악.
하지만 워낙 작은 소리였기에 남작 외에는 들은 사람이 없었다.
“크헉!”
트와빈헤츠 남작은 자신의 손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손등이 강한 타격이라도 받았는지, 금세 부풀어 올랐다.
“으… 으윽! 누구냐! 감히 누가 나를 때렸느냐?!”
남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럴 만한 이가 없었다. 그저 자신 앞에는 겁에 질려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여자와 동생의 자식인 미카엘뿐.
“이놈! 감히 내가 백작위를 내어 놓으라고 하니, 이리 암습을 한단 말이지? 좋다. 나도 이제 너를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으마!”
자기 멋대로 판단을 해버린 그는 암살자가 겁이 났는지 부리나케 마차가 있는 쪽으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아… 아버지, 같이 가요… 미카엘, 다음에 봐. 안녕.”
황급히 트와빈헤츠 남작을 뒤따라가던 헤른은 그 사이에도 미카엘에 대한 작별인사를 잊지 않았다.
“하아… 살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마데리나.
힘이 풀린 그녀의 다리는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을 땅바닥에 주저앉게 만들었다.
잘못하면 멍이라도 들 것 같았지만 지금 그녀는 그 잔인한 트와빈헤츠 남작에게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설마 3살배기 어린아이인 미카엘이 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녀.
그런 그녀의 옆구리를 미카엘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마데리나, 가지. 배고프군.”
“아, 예. 도련님. 가요. 아유∼ 우리 도련님 배고프시겠다.”
식사시간에 늦었다고 생각한 그녀가 발길을 서두르자 그 뒤를 아이답지 않게 성큼성큼 내딛던 미카엘은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도련님, 많이 놀라셨죠? 아유∼ 저는 어떻게 저런 무서운 분이 우리 백작님과 같은 형제인지 정말 궁금하다니까요? 아참, 이건 백작님께 비밀이에요? 헤헤.”
“응.”
그저 고개를 끄덕인 미카엘은 아까 전 보았던 트와빈헤츠 남작을 떠올렸다.
전생 같으면 아마 걸어서 그렇게 멀쩡하게 돌아가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상한 곳에 오게 되면서 자신의 인격에 무슨 변화라도 생긴 것인지…….
‘그리 마음에는 들지 않는군.’
피식하고 웃는 그에게 마데리나가 앞서가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러자 그의 발걸음은 어린아이가 종종걸음을 치는 것처럼 꽤나 귀여운 장면을 연출하였다.
“어서 오너라. 우리 아들.”
대연회장에 도착하자마자 한 뚱뚱한 남자가 미카엘을 격하게 반겼다. 그의 생김새는 아까 마주한 트와빈헤츠 남작과 아주 흡사했기에 누구인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착하고 귀여운 우리 아들. 어서 오세요.”
별 볼 일 없는 생김새의 백작과는 달리 현숙하고 아름답게 생긴 미부인 역시 미카엘을 반겼다.
“아버지, 어머니. 저… 왔습니다.”
조금은 낯간지러웠지만 미카엘은 기쁜 마음으로 아침인사를 해내었다. 이상한 것은 전생을 살았음에도 현생에서의 부모는 진실한 부모로 느껴졌다.
아마 전생에는 고아였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까 싶었다.
“어서 먹어라.”
인자한 미소를 짓는 백작의 말과 함께 가족끼리의 단출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한참을 먹는데 집중하던 백작이 갑자기 스푼을 내려놓았다.
아까 전 다녀간 형의 불같은 모습이 내내 걸렸기 때문이었다.
“형님의 억지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구려.”
백작이 딴에는 아들이 못 듣게끔 얘기한 것이지만 발달된 미카엘의 귀에는 그것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도 당신의 형인데…….”
“헤른이 저런 아버지를 닮아갈까 무섭소. 지금은 저리 착한 아이인데 말이요.”
미카엘은 칼질을 하며 내외간의 대화에 집중하였다. 그런데 너무 집중하다 보니 평소 안하던 실수를 하고 말았다.
너무나 가지런히 잘린 스테이크 고기.
그걸 문득 발견한 백작 부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 우리 미카엘이 언제부터 저렇게 나이프를 잘 쓰게 되었죠?”
평소에는 자신이 항상 먹기 좋게 잘라 주었기 때문이다.
“허허허. 나를 닮아서 그렇지 않소. 검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게 분명하오.”
아버지의 마음이란 게 다 똑같다지만… 백작은 특히나 팔불출이었다. 그는 시름을 잠시 벗어던지고는 아들을 보며 연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렴요. 당신 아들 아니겠어요?”
“그렇소? 허허허!”
“얼굴도 당신 닮아서 저렇게 귀여운 것 보세요.”
어머니의 말에 미카엘은 내심 혀를 끌끌 찼다.
인품이나 외모나 뭐 하나 뒤처지지 않는 자신의 어머니이건만 단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심미안만큼은 최악이었다.
자신 또한 아버지를 좋아한다지만, 그 외모만큼은 결코 아까의 트와빈헤츠 남작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아들. 꼭 커서 아버지처럼 멋진 남자가 되거라.”
“휴우…….”
“허허허. 우리 미카엘이 날 닮으면 어떡하오?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암요, 아버지. 저는 외모만큼은 일취월장하겠습니다.’
이미 계획은 세워져 있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지만… 이 아들, 뜯어고쳐서라도 미남이 되겠습니다!
미카엘은 마음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
혼탁한 기운을 구분하여 받아들이되 탁한 기운은 아래로 가라앉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의념으로서 기를 도인하는 운기법.
강호에서는 운기토납법, 다른 말로 삼재심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후우…….
짧은 날숨을 끝으로 미카엘은 아이답지 않은 심유한 눈빛을 눈썹 아래로 드러냈다.
“드디어 10년인가.”
전생에 절대무인으로 군림했던 그의 성취에 비한다면 소소하다고 할 수 있으나 운기토납법만으로 행한 것을 감안한다면 3년 만에 10년의 적공을 쌓았다는 것은 경악할 만한 성과였다.
눈빛에 어린 짧은 망설임.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면 지금 그의 방안에는 고가의 물품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헤인트로 공국 산 르푸로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
하나에 100골드 이상을 호가할 만큼 꽤나 값비싼 것이다.
이계에 왔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1년간은 꽤나 방황했으니, 그것이 아이답지 않은 행동으로 비춰졌던지라 부모는 놀라고 걱정하며 무엇이든 챙겨주려는 마음으로 채워 넣어 주신 것이다.
‘사치라곤 모르는 분들인데.’
아마 본인을 위해서라면 절대 안 쓰실 분들이다.
그만큼 귀족치고는 검소한 분들.
그냥 이대로 살까?
오전에 마음먹었던 결심이 살짝 흐트러진다. 그런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부모님이 주신 얼굴을 바꾸려니 조금은 마음에 걸리는 것.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오전에 보았던 사촌 형의 얼굴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미랑이 대수냐. 안 되면 만들어주마 ― (1)
어느 따스한 봄날.
아름답게 꾸며진 소정원에서 벌어진 사소한 다툼.
“미카엘.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재미있는 놀이하자.”
“시끄럽다, 꼬맹이 녀석아!”
“도련님. 그런 말은 나쁜 말이에요. 세 살이나 나이 많은 형님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시녀 복색의 젊은 여성이 짐짓 화가 난 표정으로 뒷짐을 지어 보인다.
기사들은 그 광경이 못내 우스운 듯 킥킥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미카엘이라 불린 아이는 나이답지 않게 싸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 아이가 버릇없이 흙장난을 하자고 하기에 타이른 것이다.”
“아이참, 도련님은 흙장난하시고 노실 나이세요.”
그녀는 짐짓 엄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입꼬리에 살짝 미소가 어린 것을 보니 귀엽다는 것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중.
조그마한 입으로 어른스러운 말을 옹알거리는 것도 꽤나 귀여워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미카엘이라 불린 소년의 얼굴에는 불만이 한가득했다.
‘휴… 마음에도 없는 아이 흉내라니…….’
미카엘은 한숨과 함께 앞의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뭐가 좋은지 그를 보고 히죽 웃는 소년.
그렇게 타박했음에도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는 걸 보면 엔간히 속없는 녀석이다.
괜스레 솟은 심술궂은 마음에 툭하고 말을 던졌다.
“이 녀석은 못생겨서 싫다!”
“…우엥. 미카엘 너무해…….”
세 살이나 많은 주제에 서러움에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하지만 정작 미카엘은 그저 아이답지 않은 냉막함을 보일 뿐.
“도련님, 헤른 도련님을 울리시면 어떡해요?”
마데리나의 얼굴에 당황함이 어렸다.
안 그래도 미카엘의 큰아버지인 트와빈헤츠 남작은 괴팍한 성미 때문에 트와빈 백작마저 한 수 접어주고 있었기 때문.
“냅둬. 애들은 울면서 크는 거야.”
미카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명색이 대송제국 대장군이었던 자신인데 애를 달랠쏘냐. 하지만 무심한 표정을 짓는 미카엘의 태도에 그의 사촌 형 헤른의 울음보가 터지고야 말았다.
“미… 미카엘… 나빴어… 훌쩍.”
눈물 콧물까지 다 빼는 그 모습을 바라보니 조금은 측은해지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을 보자니 다시 짜증이 밀려왔다. 왠지 친근하게 생긴 모습. 자유분방하게 생긴 것이 전생의 자신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이 녀석과 자신이 사촌이라는 것이고, 자신의 얼굴도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게 문제다.
결국 커가면서 이 녀석의 못생김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미카엘은 고개를 흔들었다.
낯선 이계에 겨우 마음 붙인 지 삼 년.
이곳이 송이든 아니든 이제는 상관없다.
무슨 마법이라는 기묘한 술법이 있거나 드래곤이라는 이상한 용새끼가 있는 것도 상관없다.
하지만 못생긴 것만큼은 용서 못한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저기 후원 너머 영주 집무실 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고얀 놈. 감히 백작위를 강탈한 주제에 나를 이리 대하다니!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는 꽤나 뚱뚱한 사내였는데, 헤른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자 안 그래도 살기등등하던 표정이 더욱 살벌하게 변했다.
“네가 여기서 왜 울고 있느냐. 거기 시녀. 설마 네년이 울린 것이냐?”
“아니옵니다. 남작 나리.”
마데리나는 사색이 되었다. 트와빈헤츠 남작은 손속이 잔인하기로 악명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헤른의 표정 역시 일변했다.
“아… 아니야. 아버지.”
어린 나이이지만 아버지의 무서운 일면을 알고 있던 헤른은 아닌 척하며 적극적으로 말렸지만 이는 트와빈헤츠 남작의 화를 더욱 더 북돋았을 뿐이었다.
“닥쳐라, 이놈! 네놈은 나 트와빈헤츠 남작… 아니, 백작위에 오를 나의 혈육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꼴을 해? 이러니 미천한 놈들까지 나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
남작은 쌓인 화를 엄한 곳에서 풀어내려는 듯 마데리나의 뺨을 갈기기 위한 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겁에 질린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꺄, 꺄악! 제발 용서를…….”
하지만 무자비한 손은 이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고, 그녀는 그저 충격을 덜 받기 위해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울린 작은 타격음.
따악.
하지만 워낙 작은 소리였기에 남작 외에는 들은 사람이 없었다.
“크헉!”
트와빈헤츠 남작은 자신의 손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손등이 강한 타격이라도 받았는지, 금세 부풀어 올랐다.
“으… 으윽! 누구냐! 감히 누가 나를 때렸느냐?!”
남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럴 만한 이가 없었다. 그저 자신 앞에는 겁에 질려 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여자와 동생의 자식인 미카엘뿐.
“이놈! 감히 내가 백작위를 내어 놓으라고 하니, 이리 암습을 한단 말이지? 좋다. 나도 이제 너를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으마!”
자기 멋대로 판단을 해버린 그는 암살자가 겁이 났는지 부리나케 마차가 있는 쪽으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아… 아버지, 같이 가요… 미카엘, 다음에 봐. 안녕.”
황급히 트와빈헤츠 남작을 뒤따라가던 헤른은 그 사이에도 미카엘에 대한 작별인사를 잊지 않았다.
“하아… 살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마데리나.
힘이 풀린 그녀의 다리는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을 땅바닥에 주저앉게 만들었다.
잘못하면 멍이라도 들 것 같았지만 지금 그녀는 그 잔인한 트와빈헤츠 남작에게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설마 3살배기 어린아이인 미카엘이 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녀.
그런 그녀의 옆구리를 미카엘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마데리나, 가지. 배고프군.”
“아, 예. 도련님. 가요. 아유∼ 우리 도련님 배고프시겠다.”
식사시간에 늦었다고 생각한 그녀가 발길을 서두르자 그 뒤를 아이답지 않게 성큼성큼 내딛던 미카엘은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도련님, 많이 놀라셨죠? 아유∼ 저는 어떻게 저런 무서운 분이 우리 백작님과 같은 형제인지 정말 궁금하다니까요? 아참, 이건 백작님께 비밀이에요? 헤헤.”
“응.”
그저 고개를 끄덕인 미카엘은 아까 전 보았던 트와빈헤츠 남작을 떠올렸다.
전생 같으면 아마 걸어서 그렇게 멀쩡하게 돌아가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상한 곳에 오게 되면서 자신의 인격에 무슨 변화라도 생긴 것인지…….
‘그리 마음에는 들지 않는군.’
피식하고 웃는 그에게 마데리나가 앞서가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러자 그의 발걸음은 어린아이가 종종걸음을 치는 것처럼 꽤나 귀여운 장면을 연출하였다.
“어서 오너라. 우리 아들.”
대연회장에 도착하자마자 한 뚱뚱한 남자가 미카엘을 격하게 반겼다. 그의 생김새는 아까 마주한 트와빈헤츠 남작과 아주 흡사했기에 누구인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착하고 귀여운 우리 아들. 어서 오세요.”
별 볼 일 없는 생김새의 백작과는 달리 현숙하고 아름답게 생긴 미부인 역시 미카엘을 반겼다.
“아버지, 어머니. 저… 왔습니다.”
조금은 낯간지러웠지만 미카엘은 기쁜 마음으로 아침인사를 해내었다. 이상한 것은 전생을 살았음에도 현생에서의 부모는 진실한 부모로 느껴졌다.
아마 전생에는 고아였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까 싶었다.
“어서 먹어라.”
인자한 미소를 짓는 백작의 말과 함께 가족끼리의 단출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한참을 먹는데 집중하던 백작이 갑자기 스푼을 내려놓았다.
아까 전 다녀간 형의 불같은 모습이 내내 걸렸기 때문이었다.
“형님의 억지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구려.”
백작이 딴에는 아들이 못 듣게끔 얘기한 것이지만 발달된 미카엘의 귀에는 그것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도 당신의 형인데…….”
“헤른이 저런 아버지를 닮아갈까 무섭소. 지금은 저리 착한 아이인데 말이요.”
미카엘은 칼질을 하며 내외간의 대화에 집중하였다. 그런데 너무 집중하다 보니 평소 안하던 실수를 하고 말았다.
너무나 가지런히 잘린 스테이크 고기.
그걸 문득 발견한 백작 부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 우리 미카엘이 언제부터 저렇게 나이프를 잘 쓰게 되었죠?”
평소에는 자신이 항상 먹기 좋게 잘라 주었기 때문이다.
“허허허. 나를 닮아서 그렇지 않소. 검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게 분명하오.”
아버지의 마음이란 게 다 똑같다지만… 백작은 특히나 팔불출이었다. 그는 시름을 잠시 벗어던지고는 아들을 보며 연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렴요. 당신 아들 아니겠어요?”
“그렇소? 허허허!”
“얼굴도 당신 닮아서 저렇게 귀여운 것 보세요.”
어머니의 말에 미카엘은 내심 혀를 끌끌 찼다.
인품이나 외모나 뭐 하나 뒤처지지 않는 자신의 어머니이건만 단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심미안만큼은 최악이었다.
자신 또한 아버지를 좋아한다지만, 그 외모만큼은 결코 아까의 트와빈헤츠 남작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아들. 꼭 커서 아버지처럼 멋진 남자가 되거라.”
“휴우…….”
“허허허. 우리 미카엘이 날 닮으면 어떡하오?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암요, 아버지. 저는 외모만큼은 일취월장하겠습니다.’
이미 계획은 세워져 있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지만… 이 아들, 뜯어고쳐서라도 미남이 되겠습니다!
미카엘은 마음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
혼탁한 기운을 구분하여 받아들이되 탁한 기운은 아래로 가라앉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의념으로서 기를 도인하는 운기법.
강호에서는 운기토납법, 다른 말로 삼재심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후우…….
짧은 날숨을 끝으로 미카엘은 아이답지 않은 심유한 눈빛을 눈썹 아래로 드러냈다.
“드디어 10년인가.”
전생에 절대무인으로 군림했던 그의 성취에 비한다면 소소하다고 할 수 있으나 운기토납법만으로 행한 것을 감안한다면 3년 만에 10년의 적공을 쌓았다는 것은 경악할 만한 성과였다.
눈빛에 어린 짧은 망설임.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면 지금 그의 방안에는 고가의 물품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헤인트로 공국 산 르푸로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
하나에 100골드 이상을 호가할 만큼 꽤나 값비싼 것이다.
이계에 왔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1년간은 꽤나 방황했으니, 그것이 아이답지 않은 행동으로 비춰졌던지라 부모는 놀라고 걱정하며 무엇이든 챙겨주려는 마음으로 채워 넣어 주신 것이다.
‘사치라곤 모르는 분들인데.’
아마 본인을 위해서라면 절대 안 쓰실 분들이다.
그만큼 귀족치고는 검소한 분들.
그냥 이대로 살까?
오전에 마음먹었던 결심이 살짝 흐트러진다. 그런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부모님이 주신 얼굴을 바꾸려니 조금은 마음에 걸리는 것.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오전에 보았던 사촌 형의 얼굴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