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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화 : 싱거운 신고식]
“이야, 안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순딩이처럼 생긴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난 제이콥. 제이콥 헨더스야. 그리고…….”
제이콥을 시작으로 그가 마차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시켜 주기 시작했다.
덩치의 이름은 핀 마쿨이었다.
핀은 이름이 불리자, 덩치에 걸맞지 않게 수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녀석의 이름은 니콜라스 베이지. 줄여서 닉이었다.
닉은 주머니에서 카드 덱을 꺼내 마치 마술사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다, 건일과 테르핀에게 내밀었다.
스페이드 에이스와 스페이드 2였다.
이제 제이콥은 마지막에 있던 전사를 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사는 몸을 일으켜서 손을 내저었다.
“내가 하지.”
제이콥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봐선, 이 사람이 이 마차에서 제일 선임인 듯 보였다.
건일은 그 남자를 찬찬히 살피며, 그의 자기소개를 들었다.
“난 막시밀리안의 아들, 마커스다. 리 님의 호위병 장을 맡고 있지.”
그가 건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건일이 조심스레 그의 악수를 받았다.
그의 아귀힘은 꽤나 강렬했다.
건일이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아귀힘에 자연스럽게 밀렸다.
마커스는 호탕하게 웃었다.
상대를 놀리는 게 아니라, 그저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살핀 것이었다.
다만 그것도 건일에겐 기분이 나빴다.
건일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문질렀다.
이제 마커스는 테르핀에게 악수를 권했다.
하지만 테르핀은 건일과는 달리 마커스의 아귀힘에 지지 않았다.
아니, 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커스의 표정을 조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마커스는 손을 떼고 나서 호탕하게 웃었다.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군. 체격에 비해 힘이 세다는 게. 이거, 이거. 굉장한 녀석이 들어왔구만!”
자신이 졌다는 것보다, 자신보다 힘이 센 녀석이 들어왔다는 걸 진심으로 반기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건일의 마음엔 들지 않는다.
대뜸 힘자랑을 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하지만 테르핀은 마커스에게 인정을 받았기에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테르핀이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자네들 특기를 보고 싶네만.”
마커스가 어떻게 두 사람의 실력을 볼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뿌우우우.
커다란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마커스는 뿔피리 소리를 듣고 별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출발 신호군. 자네들 실력은 이따 저녁에 야영지에서 보도록 할까.”
“뭐, 상관은 없습니다.”
건일이 마커스에게 잡힌 손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는 손을 이렇게 아프게 만든 마커스의 콧대를 어떻게든 꺾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다.
곧이어 상단 행렬이 출발했다.
제이콥은 생긴 대로 이 무리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맡고 있는 듯, 연신 조잘거렸다.
닉과 핀은 너무나 오래 들은 얘기라서 그런지 관심이 없었다.
건일은 마커스를 노려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테르핀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제이콥의 얘기를 경청했다.
테르핀에게 있어서 제이콥의 얘기는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뿐이었다.
제이콥은 먼 이웃나라에서 나오는 희귀한 동물에 대해 얘기를 죽 늘어놨다.
그가 말한 동물의 종류는 건일이 언뜻 들어도 족히 100종은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그가 101종째 동물에 대해 얘기를 할 즈음, 행렬이 멈춰 섰다.
어느새 밤이 된 것이었다.
달이 밝은 듯, 밤이 됐어도 주변은 환했다.
“으아, 이거 벌써 밤인가?”
제이콥이 생글생글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테르핀은 더 듣지 못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닉과 핀은 제이콥의 얘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정말로 다행인 듯 했다.
두 사람은 급히 마차에서 내려 야영 준비를 했다.
마커스는 느지막이 일어나 건일과 테르핀에게 말했다.
“이제 식량을 조달할 생각인데. 자네들, 사냥 잘 하나?”
테르핀이 자신만만하게 팔을 걷어붙이고 말했다.
“이래봬도 사냥꾼입니다. 사냥은 자신 있어요!”
“그래? 그럼 한 번 실력을 볼까나. 닉, 핀, 제이콥. 오늘은 나와 신참 둘이 사냥을 하러 가마.”
마커스는 부하들에게 그렇게 외치고, 자신의 짐에서 뭔가를 꺼냈다.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떡밥 비슷한 것이었다.
아마 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짐승을 잡기 위한 미끼로 쓸 생각인 듯 보였다.
야영 준비를 하던 닉이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건일과 테르핀에게 말했다.
“대장님이 신고식을 할 모양이다. 고생 좀 하고 와라.”
“신고식이라.”
건일이 콧방귀를 뀌며 노리쇠를 후퇴시켜 약실을 살폈다.
약실이 깨끗한 것을 확인한 뒤, 탄창을 삽입해 노리쇠를 전진시켰다.
조정간은 단발로 놓았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마커스에게 말했다.
“거 뭐가 나오든 잡을 테니 이왕이면 큰 걸로 준비해 주시죠.”
당당한 건일의 태도에 마커스가 호쾌하게 웃어재꼈다.
“이거, 이거, 이번 신참은 거물이구만! 신고식할 재미가 있겠어!”
마커스는 언월도를 꼬나 쥐고 마차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들고 있는 무기는 머리에 거대한 날이 있는데다 자루까지 철로 된 것이었다.
자신만만해 하던 건일이 보기만 해도 육중한 무기에 질려 버렸다.
하지만 마커스는 아무렇지 않게 창을 들고 나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붕붕 휘둘렀다.
봉이 돌때마다 어마어마한 바람 소리가 고막에 박혔다.
“이야…….”
테르핀이 눈을 반짝이며 마커스를 바라봤다.
건일은 그 광경을 보기 전까지 마커스를 얕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커스가 저 육중한 무기를 마치 파 돌리듯 돌리는 광경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어느 정도 뻐길 만한 실력자였다.
날 부분이 아니라 자루 부분으로 얻어맞기만 해도 저승행 티켓을 예매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후우.”
건일이 숨을 가다듬고 총을 세게 쥐었다.
건일의 총이 훨씬 더 세다.
마커스는 언월도를 돌리는 준비운동을 마치고나서 건일과 테르핀을 바라봤다.
테르핀도 이미 활과 화살로 단단히 준비를 마친 뒤였다.
마커스는 두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호오, 한쪽은 궁수로군. 그쪽은 어떻게 쓰는 건가? 원거리 계열인가?”
건일이 답했다.
“원거리 계열입니다.”
“그렇군. 어디 한 번 위력을 보겠어. 가자.”
그리고 마커스가 앞장 서서 숲으로 들어갔다.
마커스는 앞을 가로막는 넝쿨을 단숨에 베어내며 걸어갔다.
레칸이 정글도로 베어냈을 때보다 훨씬 더 호쾌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숲으로 향하던 마커스는 적당한 곳에 도착한 듯 멈춰 섰다.
그는 무시무시하게 언월도를 꼬나쥐고, 건일과 테르핀에게 말했다.
“둘 다 원거리계라고 했지. 적당한 곳에 위치를 잡아라. 신고식을 할 거다.”
“네.”
테르핀이 재깍 대꾸하고 적당한 나무를 찾아 올라갔다.
건일은 천천히 테르핀의 반대편 나무에 올랐다.
그가 나무에 올라 편하게 자리를 잡을 즈음, 마커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마구잡이로 언월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언월도가 닿을 때마다, 사람 몸통만 한 나무가 말 그대로 뜯겨져 나갔다.
“와…….”
나무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건일이 탄성을 내뱉었다.
정말 어마무시한 괴력이었다.
잠깐 사이에 마커스는 그가 서 있던 숲을 빈 공터로 만들어 버렸다.
저 무거운 언월도를 격렬하게 휘둘렀는데 약간 숨이 거칠어졌을 뿐이었다.
건일이 마른 침을 삼켰다.
‘괴물이냐, 저거.’
저런 놈과는 절대 접근전을 벌이지 않겠다, 건일이 다짐했다.
마커스는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 공터 가운데에 미끼를 내려놓았다.
지금와서 보니 떡밥은 꽤 공을 들여 만든 듯 보였다.
그리고 마커스는 그 떡밥에 조그맣게 불을 당겼다.
떡밥이 느릿느릿하게 타들어가면서, 무척이나 맛있는 냄새를 사방에 풍겼다.
냄새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자 마커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꽤 무시무시한 놈이 나타날 테니, 긴장해라!”
마커스는 소리치고 나서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건일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마커스가 말한 무시무시한 놈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크르르르…….”
근처에서 낯선 울음소리가 들렸다.
건일은 일단 테르핀을 바라봤다.
사냥에 이골이 난 테르핀도 이 소리는 처음 듣는 듯, 처음엔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피에 들어 있는 사냥꾼의 본능은, 금세 시위에 살을 매기게 만들었다.
건일도 천천히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기다리고 있던 마커스가 천천히 일어났다.
“신참 녀석들이 굉장한 녀석이라서 그런가. 오늘은 반응이 빠른데?”
그는 언월도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잠시 뒤, 숲 속에서 놈이 나타났다.
‘뭐냐, 저거.’
건일이 긴장했다.
일단은 거북이 비슷한 놈이었다.
등껍질이 어마어마하게 단단해 보이는 놈이었다.
하지만, 등껍질 밖으로 튀어나온 건 거북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 머리는 바로.
“거북 늑대다.”
마커스가 놈의 이름을 친절하게 불러줬다.
거북이의 등껍질에 늑대를 억지로 쑤셔 넣고, 그대로 한 7m까지 확대시켜 놓은 듯한 녀석이었다.
거기에 더해, 늑대를 닮은 부분의 외피도 놈이 뒤집어쓴 등껍질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단단해 보였다.
놈은 늑대를 닮은 대가리를 흔들거리면서 조심스레 마커스에게 다가왔다.
건일은 숨을 몰아쉬며 놈의 대가리를 겨누었다.
마커스는 히죽 웃으며 언월도를 휘두를 준비를 했다.
“오늘은 월척이군. 이만큼 커다란 놈은 처음 보는데.”
마커스가 거북 늑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숨을 가다듬던 건일은 주변 상황에서 완전히 신경을 껐다.
모든 것이 조용히 내려앉은 건일의 눈엔 거북 늑대의 대가리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방아쇠에 올려놓은 검지 손가락에 힘을 줬다.
타앙.
총성과 함께, 거북 늑대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거북 늑대가 순식간에 고꾸라지고, 마커스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건일은 자세를 잡고 거북 늑대가 미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노려봤다.
마커스가 한참 동안 건일을 보다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이거, 진짜 거물이 들어왔는데!! 엄청난 놈이구만!”
건일의 입가에 만족스런 웃음이 걸렸다.
그는 나무에서 내려와 마커스에게 다가갔다.
마커스는 시원스레 웃으며 건일의 등을 후려쳤다.
“으악!”
불의의 기습에 건일은 눈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그는 등에 여래신장을 맞은 듯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굴렀다.
마커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건일을 내려다보다, 또다시 웃음을 쏟아냈다.
“체력은 영 저질이구만! 체력 단련을 좀 해둬야겠어! 으핫하하하!!”
“당신이 무식하게 센 거거든요!!”
건일이 발끈해 소리쳤다.
그러나 마커스는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웃어재낄 뿐이었다.
건일은 그대로 쭈그려 앉아 등을 문질렀다.
이거 보나마나 엄청나게 부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젠장…….”
건일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한참을 웃던 마커스가 웃음을 그치고 나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높고 시끄러운 소리라,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건일을 보며 말했다.
“이제 핀이랑 제이콥이 올 거야. 두 사람에게 해체를 맡기자고.”
그는 연신 싱글벙글해 하고 있었다.
“이야, 안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순딩이처럼 생긴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난 제이콥. 제이콥 헨더스야. 그리고…….”
제이콥을 시작으로 그가 마차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시켜 주기 시작했다.
덩치의 이름은 핀 마쿨이었다.
핀은 이름이 불리자, 덩치에 걸맞지 않게 수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녀석의 이름은 니콜라스 베이지. 줄여서 닉이었다.
닉은 주머니에서 카드 덱을 꺼내 마치 마술사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다, 건일과 테르핀에게 내밀었다.
스페이드 에이스와 스페이드 2였다.
이제 제이콥은 마지막에 있던 전사를 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사는 몸을 일으켜서 손을 내저었다.
“내가 하지.”
제이콥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봐선, 이 사람이 이 마차에서 제일 선임인 듯 보였다.
건일은 그 남자를 찬찬히 살피며, 그의 자기소개를 들었다.
“난 막시밀리안의 아들, 마커스다. 리 님의 호위병 장을 맡고 있지.”
그가 건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건일이 조심스레 그의 악수를 받았다.
그의 아귀힘은 꽤나 강렬했다.
건일이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아귀힘에 자연스럽게 밀렸다.
마커스는 호탕하게 웃었다.
상대를 놀리는 게 아니라, 그저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살핀 것이었다.
다만 그것도 건일에겐 기분이 나빴다.
건일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문질렀다.
이제 마커스는 테르핀에게 악수를 권했다.
하지만 테르핀은 건일과는 달리 마커스의 아귀힘에 지지 않았다.
아니, 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커스의 표정을 조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마커스는 손을 떼고 나서 호탕하게 웃었다.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군. 체격에 비해 힘이 세다는 게. 이거, 이거. 굉장한 녀석이 들어왔구만!”
자신이 졌다는 것보다, 자신보다 힘이 센 녀석이 들어왔다는 걸 진심으로 반기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건일의 마음엔 들지 않는다.
대뜸 힘자랑을 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하지만 테르핀은 마커스에게 인정을 받았기에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테르핀이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자네들 특기를 보고 싶네만.”
마커스가 어떻게 두 사람의 실력을 볼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뿌우우우.
커다란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마커스는 뿔피리 소리를 듣고 별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출발 신호군. 자네들 실력은 이따 저녁에 야영지에서 보도록 할까.”
“뭐, 상관은 없습니다.”
건일이 마커스에게 잡힌 손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는 손을 이렇게 아프게 만든 마커스의 콧대를 어떻게든 꺾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다.
곧이어 상단 행렬이 출발했다.
제이콥은 생긴 대로 이 무리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맡고 있는 듯, 연신 조잘거렸다.
닉과 핀은 너무나 오래 들은 얘기라서 그런지 관심이 없었다.
건일은 마커스를 노려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테르핀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제이콥의 얘기를 경청했다.
테르핀에게 있어서 제이콥의 얘기는 신기하고 놀라운 이야기뿐이었다.
제이콥은 먼 이웃나라에서 나오는 희귀한 동물에 대해 얘기를 죽 늘어놨다.
그가 말한 동물의 종류는 건일이 언뜻 들어도 족히 100종은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그가 101종째 동물에 대해 얘기를 할 즈음, 행렬이 멈춰 섰다.
어느새 밤이 된 것이었다.
달이 밝은 듯, 밤이 됐어도 주변은 환했다.
“으아, 이거 벌써 밤인가?”
제이콥이 생글생글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테르핀은 더 듣지 못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닉과 핀은 제이콥의 얘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정말로 다행인 듯 했다.
두 사람은 급히 마차에서 내려 야영 준비를 했다.
마커스는 느지막이 일어나 건일과 테르핀에게 말했다.
“이제 식량을 조달할 생각인데. 자네들, 사냥 잘 하나?”
테르핀이 자신만만하게 팔을 걷어붙이고 말했다.
“이래봬도 사냥꾼입니다. 사냥은 자신 있어요!”
“그래? 그럼 한 번 실력을 볼까나. 닉, 핀, 제이콥. 오늘은 나와 신참 둘이 사냥을 하러 가마.”
마커스는 부하들에게 그렇게 외치고, 자신의 짐에서 뭔가를 꺼냈다.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떡밥 비슷한 것이었다.
아마 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짐승을 잡기 위한 미끼로 쓸 생각인 듯 보였다.
야영 준비를 하던 닉이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건일과 테르핀에게 말했다.
“대장님이 신고식을 할 모양이다. 고생 좀 하고 와라.”
“신고식이라.”
건일이 콧방귀를 뀌며 노리쇠를 후퇴시켜 약실을 살폈다.
약실이 깨끗한 것을 확인한 뒤, 탄창을 삽입해 노리쇠를 전진시켰다.
조정간은 단발로 놓았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마커스에게 말했다.
“거 뭐가 나오든 잡을 테니 이왕이면 큰 걸로 준비해 주시죠.”
당당한 건일의 태도에 마커스가 호쾌하게 웃어재꼈다.
“이거, 이거, 이번 신참은 거물이구만! 신고식할 재미가 있겠어!”
마커스는 언월도를 꼬나 쥐고 마차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들고 있는 무기는 머리에 거대한 날이 있는데다 자루까지 철로 된 것이었다.
자신만만해 하던 건일이 보기만 해도 육중한 무기에 질려 버렸다.
하지만 마커스는 아무렇지 않게 창을 들고 나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붕붕 휘둘렀다.
봉이 돌때마다 어마어마한 바람 소리가 고막에 박혔다.
“이야…….”
테르핀이 눈을 반짝이며 마커스를 바라봤다.
건일은 그 광경을 보기 전까지 마커스를 얕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커스가 저 육중한 무기를 마치 파 돌리듯 돌리는 광경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어느 정도 뻐길 만한 실력자였다.
날 부분이 아니라 자루 부분으로 얻어맞기만 해도 저승행 티켓을 예매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후우.”
건일이 숨을 가다듬고 총을 세게 쥐었다.
건일의 총이 훨씬 더 세다.
마커스는 언월도를 돌리는 준비운동을 마치고나서 건일과 테르핀을 바라봤다.
테르핀도 이미 활과 화살로 단단히 준비를 마친 뒤였다.
마커스는 두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호오, 한쪽은 궁수로군. 그쪽은 어떻게 쓰는 건가? 원거리 계열인가?”
건일이 답했다.
“원거리 계열입니다.”
“그렇군. 어디 한 번 위력을 보겠어. 가자.”
그리고 마커스가 앞장 서서 숲으로 들어갔다.
마커스는 앞을 가로막는 넝쿨을 단숨에 베어내며 걸어갔다.
레칸이 정글도로 베어냈을 때보다 훨씬 더 호쾌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숲으로 향하던 마커스는 적당한 곳에 도착한 듯 멈춰 섰다.
그는 무시무시하게 언월도를 꼬나쥐고, 건일과 테르핀에게 말했다.
“둘 다 원거리계라고 했지. 적당한 곳에 위치를 잡아라. 신고식을 할 거다.”
“네.”
테르핀이 재깍 대꾸하고 적당한 나무를 찾아 올라갔다.
건일은 천천히 테르핀의 반대편 나무에 올랐다.
그가 나무에 올라 편하게 자리를 잡을 즈음, 마커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마구잡이로 언월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언월도가 닿을 때마다, 사람 몸통만 한 나무가 말 그대로 뜯겨져 나갔다.
“와…….”
나무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건일이 탄성을 내뱉었다.
정말 어마무시한 괴력이었다.
잠깐 사이에 마커스는 그가 서 있던 숲을 빈 공터로 만들어 버렸다.
저 무거운 언월도를 격렬하게 휘둘렀는데 약간 숨이 거칠어졌을 뿐이었다.
건일이 마른 침을 삼켰다.
‘괴물이냐, 저거.’
저런 놈과는 절대 접근전을 벌이지 않겠다, 건일이 다짐했다.
마커스는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 공터 가운데에 미끼를 내려놓았다.
지금와서 보니 떡밥은 꽤 공을 들여 만든 듯 보였다.
그리고 마커스는 그 떡밥에 조그맣게 불을 당겼다.
떡밥이 느릿느릿하게 타들어가면서, 무척이나 맛있는 냄새를 사방에 풍겼다.
냄새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자 마커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꽤 무시무시한 놈이 나타날 테니, 긴장해라!”
마커스는 소리치고 나서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건일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마커스가 말한 무시무시한 놈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크르르르…….”
근처에서 낯선 울음소리가 들렸다.
건일은 일단 테르핀을 바라봤다.
사냥에 이골이 난 테르핀도 이 소리는 처음 듣는 듯, 처음엔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피에 들어 있는 사냥꾼의 본능은, 금세 시위에 살을 매기게 만들었다.
건일도 천천히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기다리고 있던 마커스가 천천히 일어났다.
“신참 녀석들이 굉장한 녀석이라서 그런가. 오늘은 반응이 빠른데?”
그는 언월도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잠시 뒤, 숲 속에서 놈이 나타났다.
‘뭐냐, 저거.’
건일이 긴장했다.
일단은 거북이 비슷한 놈이었다.
등껍질이 어마어마하게 단단해 보이는 놈이었다.
하지만, 등껍질 밖으로 튀어나온 건 거북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 머리는 바로.
“거북 늑대다.”
마커스가 놈의 이름을 친절하게 불러줬다.
거북이의 등껍질에 늑대를 억지로 쑤셔 넣고, 그대로 한 7m까지 확대시켜 놓은 듯한 녀석이었다.
거기에 더해, 늑대를 닮은 부분의 외피도 놈이 뒤집어쓴 등껍질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단단해 보였다.
놈은 늑대를 닮은 대가리를 흔들거리면서 조심스레 마커스에게 다가왔다.
건일은 숨을 몰아쉬며 놈의 대가리를 겨누었다.
마커스는 히죽 웃으며 언월도를 휘두를 준비를 했다.
“오늘은 월척이군. 이만큼 커다란 놈은 처음 보는데.”
마커스가 거북 늑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숨을 가다듬던 건일은 주변 상황에서 완전히 신경을 껐다.
모든 것이 조용히 내려앉은 건일의 눈엔 거북 늑대의 대가리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방아쇠에 올려놓은 검지 손가락에 힘을 줬다.
타앙.
총성과 함께, 거북 늑대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거북 늑대가 순식간에 고꾸라지고, 마커스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건일은 자세를 잡고 거북 늑대가 미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 노려봤다.
마커스가 한참 동안 건일을 보다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이거, 진짜 거물이 들어왔는데!! 엄청난 놈이구만!”
건일의 입가에 만족스런 웃음이 걸렸다.
그는 나무에서 내려와 마커스에게 다가갔다.
마커스는 시원스레 웃으며 건일의 등을 후려쳤다.
“으악!”
불의의 기습에 건일은 눈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그는 등에 여래신장을 맞은 듯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굴렀다.
마커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건일을 내려다보다, 또다시 웃음을 쏟아냈다.
“체력은 영 저질이구만! 체력 단련을 좀 해둬야겠어! 으핫하하하!!”
“당신이 무식하게 센 거거든요!!”
건일이 발끈해 소리쳤다.
그러나 마커스는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웃어재낄 뿐이었다.
건일은 그대로 쭈그려 앉아 등을 문질렀다.
이거 보나마나 엄청나게 부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젠장…….”
건일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한참을 웃던 마커스가 웃음을 그치고 나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높고 시끄러운 소리라,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건일을 보며 말했다.
“이제 핀이랑 제이콥이 올 거야. 두 사람에게 해체를 맡기자고.”
그는 연신 싱글벙글해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