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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화 : 신고식 후]
잠시 뒤 핀과 제이콥이 걸어왔다.
두 사람은 사람 팔뚝만 한 칼을 들고 왔다가, 멈칫했다.
건일과 테르핀의 표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은 탓이었다.
그걸 알아챈 마커스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들이 알아서 했다.”
제이콥이 호들갑을 떨었다.
“네??”
“끼어들 틈이 없었어. 건일 녀석, 꽤나 거물이란 말이야.”
그러고 나서 마커스는 또 웃어재꼈다.
그는 핀에게 손을 뻗었다.
핀이 허리춤에 찬 술통을 마커스에게 내밀었다.
마커스는 한 입 쭉 들이켜고, 입가로 흘러내린 술을 닦아냈다.
그는 히죽 웃었다.
“신고식에서 얼타면 얼차려를 주려고 했는데, 이거 내가 얼차려를 받게 생겼군. 빨리 해체해라. 배고프다.”
“넵!”
제이콥이 잽싸게 대답하고 핀과 함께 고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는 하는 모양이었지만, 레칸이나 반투에 비해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렸다.
다만, 생각보다 거북 늑대의 고기는 많지 않았다.
껍데기를 떼고, 내장을 벗겨내고 나니 먹을 만한 건 극히 소량.
하지만 마커스는 그렇게 나온 고기를 챙기며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자, 가자. 등딱지도 챙겨. 건일 거다.”
“네.”
일단은 챙긴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긴 등딱지는 무게가 상당해서, 테르핀과 같이 맞잡아 들었다.
그리고 마커스는 고기를 챙겨들고 야영지로 되돌아갔다.
야영지는 준비를 거의 다 마치고 슬슬 요리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마커스가 거북 늑대의 고기를 들고 오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대장! 거북 늑대를 잡은 겁니까?”
“나도 한 점 줘요!”
여기저기서 거북 늑대 고기를 달라 아우성이었다.
마커스는 킬킬대며, 뒤따라오는 건일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줄까?”
건일은 새삼스레 마커스가 달라보였다.
마커스는 이 호위병의 대장인데, 자신이 잡지 않았단 이유로 건일에게 의사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괜히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나눠 먹죠.”
“크… 신참이 통이 크구만! 얘들아! 불판 데워라!”
“와아아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30여명 정도의 호위병이 옹기종기 모였다.
그들은 짐에서 넙적한 쇠판을 꺼내 불에 달구기 시작했다.
제이콥은 자신의 짐에서 기름 비슷한 것을 달궈진 쇠판 위에 조금 뿌렸다.
기름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끓어올랐다.
마커스는 그동안 거북 늑대의 고기를 한 점 한 점, 정성스레 썰고 있었다.
마커스는 그렇게 썬 고기를 제이콥에게 내밀었고, 제이콥은 신중하게 고기를 달궈진 쇠판에 올려놨다.
치이익.
고기가 달궈진 쇠판에 닿자 먹음직한 소리가 들렸다.
마커스가 고기를 얇게 썰어놓은 덕에 쇠판에 닿은 면이 순식간에 익었다.
제이콥은 재빨리 고기를 뒤집었다.
고기는 잠깐 사이에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졌다.
제이콥은 제일 먼저 구워진 고기를 마커스가 아니라, 건일에게 내밀었다.
건일은 잠시 마커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마커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줄 뿐이었다.
건일이 조심스레 고기를 한 점 받아먹었다.
“어!”
한 입 씹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척이나 얇은데도 육즙이 고스란히 배어나와 입안 가득히 찼다.
거북 늑대라고 했는데, 거북이나 늑대보단 오히려 쇠고기에 가까운 맛이었다.
육즙을 품고 씹다보니 어느새 입 안에 감칠맛까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일을 시작으로, 거북 늑대고기가 하나둘, 다른 사람들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마커스는 껄껄 웃으며 고기와 술을 같이 들이켰다.
호위병들은 오랜만에 먹는 신선한 고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에 끼어 허겁지겁 고기를 먹던 건일이 문득 아이린 생각이 났다.
그는 제이콥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한 여섯 명 것만 좀 빼주면 안 될까? 일행이 있는데.”
“되지, 그럼.”
제이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잘 익은 고기 여섯 점을 그릇에 담아 건일에게 내밀었다.
건일은 정신없이 먹고 있는 테르핀을 발로 툭툭 건드려 일으켜 세웠다.
테르핀은 얇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무슨 일이냐는 듯 건일을 바라봤다.
건일이 아이린 쪽을 가리켰다.
“아이린한테… 메르시도 가져다 줘야지.”
메르시는 덤이지만.
그제야 테르핀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건일이 들고 있는 건 아이린과 그 일행의 몫뿐이었다.
건일은 잠시 그의 그릇을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메르시 몫 좀 받아 올게.”
그는 제이콥에게 다시 부탁해 고기 여섯 명분을 추가로 받아왔다.
테르핀은 여전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고 말했다.
“가자. 내가 살려준 줄 알아.”
“응. 고마워.”
테르핀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건일과 테르핀은 곧장 여자들의 행렬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이린의 마차는 건일의 마차로부터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자들끼리 옹기종기 앉아 솥을 걸어놓고 음식을 만들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중심엔 활짝 웃고 있는 아이린이 있었다.
여자들과 함께 웃던 아이린은 문득, 건일이 다가오고 있단 걸 발견했다.
그녀가 급히 일어나 건일을 바라봤다.
“오빠? 무슨 일 있어?”
건일은 고개를 가로젓고, 아이린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별일 아니고. 사냥을 했는데, 고기가 맛있길래.”
“와, 챙겨준 거야?”
아이린이 짐짓 감동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건일은 대꾸 없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이린은 그릇을 받고 활짝 웃어보였다.
“고마워. 잘 먹을게.”
“응. 근데, 아이린. 메르시는 어딨는지 알아?”
“메르시 언니?”
아이린이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다 천천히 대꾸했다.
“리 님이랑 같이 있다는데?”
“흐음.”
건일이 숨을 내쉬었다.
리랑 같이 있다면, 고기를 전해주기 민망하다.
아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테니까.
잠시 뺨을 긁적이던 건일이 결정을 내렸다.
“그럼 메르시한테는 다음 기회에.”
얘기를 들은 테르핀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금세 표정을 풀고 어깨를 으쓱였다.
건일은 이제 호위병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이린에게 인사했다.
“그럼, 내일 봐.”
“응!”
아이린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건일은 테르핀과 함께 호위병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이미 거북 늑대 고기를 다 끝장내고 나서 각자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다만 거북 늑대 고기로 충분히 배를 채운 상태라, 식사보다는 후식 느낌이 강했다.
건일은 마커스 일행이 앉아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커스 일행도 후식을 준비 중이었다.
닉이 단검으로 파인페어를 말끔하게 깎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는 건일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덕분에 포식했다. 고마워. 실력은 출중하네.”
“에이, 파르크 님 호위병을 단숨에 제압했다고 하잖아. 그럼 실력이야 확실하지.”
제이콥이 호들갑을 떨며 끼어들었다.
닉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며 파인페어 하나를 끝장내고, 다른 파인페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가만히 누워있던 마커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후식을 먹고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난 잔다. 불침번 알아서들 세워라. 아, 오늘 신참 둘은 거북 늑대를 잡아왔으니 불침번 빼두고.”
“네!”
후식을 먹던 호위병들이 크게 대답했다.
마커스는 손을 내저어 대답을 대신하고, 그의 마차로 들어갔다.
그렇게 길드에 들어온 첫날밤이 저물었다.
다음날.
언제나 그렇듯이, 건일은 마법을 쓰기 위해 시동을 거는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10분 명상 뒤, 총을 한 번 분해한다.
지난밤에 총을 쏜 탓에 총열에 때가 끼어 있다.
이런 걸 빠르게 제거하지 않으면 나중에 불발탄이 나오고 만다.
기름으로 총열을 씻어내고, 최대한 깔끔하게 닦아낸다.
총기 수입이 끝난 뒤에 슬슬 마법서를 읽기 시작한다.
이제 헤이스트는 어느 정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 다음 장으로 넘겼다.
다음 장의 내용은 어떻게 자신의 속성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법의 속성은 총 7가지.
지, 수, 화, 풍, 뢰, 생, 허.
이는 마나를 저장하는 심장에 따라 달라지며, 한 번 정해진 속성은 웬만한 방법으로는 바꿀 수 없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필요한 건,
‘마나 포션.’
한 컵 분량의 마나 포션과 종이.
건일은 유심히 속성 확인법을 보고나서 책을 덮었다.
머릿속에서 테서랙트를 걷어내고, 최대한 빨리 마나 포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고이진을 통해 길드 내 마법사에게 구해볼까.
하지만 아이린은 마나 포션이 마법사의 필수품이라고 했다.
그걸 갖고 있지 않은 건일이 자칫 마법사가 아니란 걸 들킬…….
“아.”
아이린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골렘을 해체했을 때 대량의 마나 포션을 얻었다.
혹시 그녀가 챙겨두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일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들의 야영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부터 여자들이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간단한 과일과 야채, 그리고 샐러드.
건일은 조금 멀찍이서 헛기침을 해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
아이린이 놀란 눈이 되어 건일에게 다가왔다.
건일이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린, 혹시 마나 포션 있어?”
“응. 있는데, 왜?”
다행이었다.
건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아이린에게 말했다.
“속성을 알아보려고.”
“속성? 벌써?”
아이린의 눈에는 뭐든 빠른 모양이다.
그녀는 별말 없이 마차로 돌아가, 그녀의 짐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건일에게 내밀었다.
딱 한 컵 분량이었다.
거기에 덤으로 그녀는 종이까지 챙겨줬다.
“응, 그럼.”
볼일이 끝나자 건일은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린이 건일을 붙잡았다.
아이린이 뭔가 할 말이 있나 싶어서 건일이 돌아봤다.
아이린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나 오빠 속성 보고 싶어. 여기서 해.”
“뭐?”
건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여기 사람들한테 초보 마법사란 걸 들키기가 싫은데.”
“흐음… 알았어. 잠깐만.”
아이린이 다시 그녀들의 동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뭔가를 말하고, 건일에게 되돌아왔다.
그녀는 건일을 잡아 끌고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응, 숲속이라면 볼 사람도 없고 괜찮겠지.”
“기어이 보겠다는거냐…….”
건일이 아이린에게 끌려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린은 헤헤 웃을 뿐이었다.
적당히 숲으로 들어온 뒤에 아이린이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 정도 나무가 가려줘서 사람들에게 쉽게 들키지 않을 곳이었다.
건일은 아이린이 멈추자 속성 확인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마나 포션의 뚜껑을 열고, 그 위에 종이를 올려 놓았다.
건일은 다시 명상에 들어가 마나를 끌어 모으면서 자신의 몸에 헤이스트를 시전했다.
거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헤이스트로 순환시키고 있는 마나를 손끝을 통해 마나 포션에 방출한다.
이제 속성에 따라 종이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 속성이라면 종이가 먼지가 될 것이다.
수 속성이라면 종이가 젖을 것이다.
화 속성이라면 종이가 재가 될 것이다.
풍 속성이라면 종이가 갈라질 것이다.
뢰 속성이라면 종이가 구겨질 것이다.
생명 속성이라면 종이가 커질 것이다.
허무 속성이라면 종이가 사라질 것이다.
이제, 종이에 변화가 일어났다.
잠시 뒤 핀과 제이콥이 걸어왔다.
두 사람은 사람 팔뚝만 한 칼을 들고 왔다가, 멈칫했다.
건일과 테르핀의 표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은 탓이었다.
그걸 알아챈 마커스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들이 알아서 했다.”
제이콥이 호들갑을 떨었다.
“네??”
“끼어들 틈이 없었어. 건일 녀석, 꽤나 거물이란 말이야.”
그러고 나서 마커스는 또 웃어재꼈다.
그는 핀에게 손을 뻗었다.
핀이 허리춤에 찬 술통을 마커스에게 내밀었다.
마커스는 한 입 쭉 들이켜고, 입가로 흘러내린 술을 닦아냈다.
그는 히죽 웃었다.
“신고식에서 얼타면 얼차려를 주려고 했는데, 이거 내가 얼차려를 받게 생겼군. 빨리 해체해라. 배고프다.”
“넵!”
제이콥이 잽싸게 대답하고 핀과 함께 고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는 하는 모양이었지만, 레칸이나 반투에 비해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렸다.
다만, 생각보다 거북 늑대의 고기는 많지 않았다.
껍데기를 떼고, 내장을 벗겨내고 나니 먹을 만한 건 극히 소량.
하지만 마커스는 그렇게 나온 고기를 챙기며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자, 가자. 등딱지도 챙겨. 건일 거다.”
“네.”
일단은 챙긴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긴 등딱지는 무게가 상당해서, 테르핀과 같이 맞잡아 들었다.
그리고 마커스는 고기를 챙겨들고 야영지로 되돌아갔다.
야영지는 준비를 거의 다 마치고 슬슬 요리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마커스가 거북 늑대의 고기를 들고 오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대장! 거북 늑대를 잡은 겁니까?”
“나도 한 점 줘요!”
여기저기서 거북 늑대 고기를 달라 아우성이었다.
마커스는 킬킬대며, 뒤따라오는 건일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줄까?”
건일은 새삼스레 마커스가 달라보였다.
마커스는 이 호위병의 대장인데, 자신이 잡지 않았단 이유로 건일에게 의사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괜히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나눠 먹죠.”
“크… 신참이 통이 크구만! 얘들아! 불판 데워라!”
“와아아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30여명 정도의 호위병이 옹기종기 모였다.
그들은 짐에서 넙적한 쇠판을 꺼내 불에 달구기 시작했다.
제이콥은 자신의 짐에서 기름 비슷한 것을 달궈진 쇠판 위에 조금 뿌렸다.
기름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끓어올랐다.
마커스는 그동안 거북 늑대의 고기를 한 점 한 점, 정성스레 썰고 있었다.
마커스는 그렇게 썬 고기를 제이콥에게 내밀었고, 제이콥은 신중하게 고기를 달궈진 쇠판에 올려놨다.
치이익.
고기가 달궈진 쇠판에 닿자 먹음직한 소리가 들렸다.
마커스가 고기를 얇게 썰어놓은 덕에 쇠판에 닿은 면이 순식간에 익었다.
제이콥은 재빨리 고기를 뒤집었다.
고기는 잠깐 사이에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졌다.
제이콥은 제일 먼저 구워진 고기를 마커스가 아니라, 건일에게 내밀었다.
건일은 잠시 마커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마커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줄 뿐이었다.
건일이 조심스레 고기를 한 점 받아먹었다.
“어!”
한 입 씹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척이나 얇은데도 육즙이 고스란히 배어나와 입안 가득히 찼다.
거북 늑대라고 했는데, 거북이나 늑대보단 오히려 쇠고기에 가까운 맛이었다.
육즙을 품고 씹다보니 어느새 입 안에 감칠맛까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일을 시작으로, 거북 늑대고기가 하나둘, 다른 사람들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마커스는 껄껄 웃으며 고기와 술을 같이 들이켰다.
호위병들은 오랜만에 먹는 신선한 고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에 끼어 허겁지겁 고기를 먹던 건일이 문득 아이린 생각이 났다.
그는 제이콥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한 여섯 명 것만 좀 빼주면 안 될까? 일행이 있는데.”
“되지, 그럼.”
제이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잘 익은 고기 여섯 점을 그릇에 담아 건일에게 내밀었다.
건일은 정신없이 먹고 있는 테르핀을 발로 툭툭 건드려 일으켜 세웠다.
테르핀은 얇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무슨 일이냐는 듯 건일을 바라봤다.
건일이 아이린 쪽을 가리켰다.
“아이린한테… 메르시도 가져다 줘야지.”
메르시는 덤이지만.
그제야 테르핀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건일이 들고 있는 건 아이린과 그 일행의 몫뿐이었다.
건일은 잠시 그의 그릇을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메르시 몫 좀 받아 올게.”
그는 제이콥에게 다시 부탁해 고기 여섯 명분을 추가로 받아왔다.
테르핀은 여전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고 말했다.
“가자. 내가 살려준 줄 알아.”
“응. 고마워.”
테르핀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건일과 테르핀은 곧장 여자들의 행렬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이린의 마차는 건일의 마차로부터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자들끼리 옹기종기 앉아 솥을 걸어놓고 음식을 만들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중심엔 활짝 웃고 있는 아이린이 있었다.
여자들과 함께 웃던 아이린은 문득, 건일이 다가오고 있단 걸 발견했다.
그녀가 급히 일어나 건일을 바라봤다.
“오빠? 무슨 일 있어?”
건일은 고개를 가로젓고, 아이린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별일 아니고. 사냥을 했는데, 고기가 맛있길래.”
“와, 챙겨준 거야?”
아이린이 짐짓 감동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건일은 대꾸 없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이린은 그릇을 받고 활짝 웃어보였다.
“고마워. 잘 먹을게.”
“응. 근데, 아이린. 메르시는 어딨는지 알아?”
“메르시 언니?”
아이린이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다 천천히 대꾸했다.
“리 님이랑 같이 있다는데?”
“흐음.”
건일이 숨을 내쉬었다.
리랑 같이 있다면, 고기를 전해주기 민망하다.
아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테니까.
잠시 뺨을 긁적이던 건일이 결정을 내렸다.
“그럼 메르시한테는 다음 기회에.”
얘기를 들은 테르핀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금세 표정을 풀고 어깨를 으쓱였다.
건일은 이제 호위병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이린에게 인사했다.
“그럼, 내일 봐.”
“응!”
아이린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건일은 테르핀과 함께 호위병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이미 거북 늑대 고기를 다 끝장내고 나서 각자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다만 거북 늑대 고기로 충분히 배를 채운 상태라, 식사보다는 후식 느낌이 강했다.
건일은 마커스 일행이 앉아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커스 일행도 후식을 준비 중이었다.
닉이 단검으로 파인페어를 말끔하게 깎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는 건일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덕분에 포식했다. 고마워. 실력은 출중하네.”
“에이, 파르크 님 호위병을 단숨에 제압했다고 하잖아. 그럼 실력이야 확실하지.”
제이콥이 호들갑을 떨며 끼어들었다.
닉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며 파인페어 하나를 끝장내고, 다른 파인페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가만히 누워있던 마커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후식을 먹고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난 잔다. 불침번 알아서들 세워라. 아, 오늘 신참 둘은 거북 늑대를 잡아왔으니 불침번 빼두고.”
“네!”
후식을 먹던 호위병들이 크게 대답했다.
마커스는 손을 내저어 대답을 대신하고, 그의 마차로 들어갔다.
그렇게 길드에 들어온 첫날밤이 저물었다.
다음날.
언제나 그렇듯이, 건일은 마법을 쓰기 위해 시동을 거는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10분 명상 뒤, 총을 한 번 분해한다.
지난밤에 총을 쏜 탓에 총열에 때가 끼어 있다.
이런 걸 빠르게 제거하지 않으면 나중에 불발탄이 나오고 만다.
기름으로 총열을 씻어내고, 최대한 깔끔하게 닦아낸다.
총기 수입이 끝난 뒤에 슬슬 마법서를 읽기 시작한다.
이제 헤이스트는 어느 정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 다음 장으로 넘겼다.
다음 장의 내용은 어떻게 자신의 속성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법의 속성은 총 7가지.
지, 수, 화, 풍, 뢰, 생, 허.
이는 마나를 저장하는 심장에 따라 달라지며, 한 번 정해진 속성은 웬만한 방법으로는 바꿀 수 없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필요한 건,
‘마나 포션.’
한 컵 분량의 마나 포션과 종이.
건일은 유심히 속성 확인법을 보고나서 책을 덮었다.
머릿속에서 테서랙트를 걷어내고, 최대한 빨리 마나 포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고이진을 통해 길드 내 마법사에게 구해볼까.
하지만 아이린은 마나 포션이 마법사의 필수품이라고 했다.
그걸 갖고 있지 않은 건일이 자칫 마법사가 아니란 걸 들킬…….
“아.”
아이린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골렘을 해체했을 때 대량의 마나 포션을 얻었다.
혹시 그녀가 챙겨두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일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들의 야영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부터 여자들이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간단한 과일과 야채, 그리고 샐러드.
건일은 조금 멀찍이서 헛기침을 해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
아이린이 놀란 눈이 되어 건일에게 다가왔다.
건일이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이린, 혹시 마나 포션 있어?”
“응. 있는데, 왜?”
다행이었다.
건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아이린에게 말했다.
“속성을 알아보려고.”
“속성? 벌써?”
아이린의 눈에는 뭐든 빠른 모양이다.
그녀는 별말 없이 마차로 돌아가, 그녀의 짐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건일에게 내밀었다.
딱 한 컵 분량이었다.
거기에 덤으로 그녀는 종이까지 챙겨줬다.
“응, 그럼.”
볼일이 끝나자 건일은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린이 건일을 붙잡았다.
아이린이 뭔가 할 말이 있나 싶어서 건일이 돌아봤다.
아이린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나 오빠 속성 보고 싶어. 여기서 해.”
“뭐?”
건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여기 사람들한테 초보 마법사란 걸 들키기가 싫은데.”
“흐음… 알았어. 잠깐만.”
아이린이 다시 그녀들의 동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뭔가를 말하고, 건일에게 되돌아왔다.
그녀는 건일을 잡아 끌고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응, 숲속이라면 볼 사람도 없고 괜찮겠지.”
“기어이 보겠다는거냐…….”
건일이 아이린에게 끌려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린은 헤헤 웃을 뿐이었다.
적당히 숲으로 들어온 뒤에 아이린이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 정도 나무가 가려줘서 사람들에게 쉽게 들키지 않을 곳이었다.
건일은 아이린이 멈추자 속성 확인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마나 포션의 뚜껑을 열고, 그 위에 종이를 올려 놓았다.
건일은 다시 명상에 들어가 마나를 끌어 모으면서 자신의 몸에 헤이스트를 시전했다.
거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헤이스트로 순환시키고 있는 마나를 손끝을 통해 마나 포션에 방출한다.
이제 속성에 따라 종이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 속성이라면 종이가 먼지가 될 것이다.
수 속성이라면 종이가 젖을 것이다.
화 속성이라면 종이가 재가 될 것이다.
풍 속성이라면 종이가 갈라질 것이다.
뢰 속성이라면 종이가 구겨질 것이다.
생명 속성이라면 종이가 커질 것이다.
허무 속성이라면 종이가 사라질 것이다.
이제, 종이에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