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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화 : 더블 오 길드]


“건일 오빠!!”
아이린이 다급하게 외치고 나서야 건일이 고개를 들었다.
대머리는 부서진 둔기로 건일을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건일은 대머리의 일격을 최대한 안 아프게 막아내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다.
퍼억.
대머리의 일격이 건일을 맞추기 전, 테르핀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테르핀의 주먹이 대머리의 턱에 꽂히는가 싶더니, 대머리가 처참하게 옆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선술집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놀라 테르핀을 바라봤다.
“이, 이……!!”
안대남이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테르핀에게 달려들었다.
건일은 총을 뒤집어 총구를 손잡이처럼 잡고, 안대를 하고 있는 쪽을 향해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빠악.
안대남이 갑작스런 일격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제 남은 건 일행 하나.
안대남이나 대머리보다 훨씬 덩치가 큰 돼지 녀석이었다.
돼지 놈은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살폈다.
건일은 한숨을 쉬며 테르핀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쩔 수 없지?”
테르핀은 주먹에서 으드득 소리를 내며 대꾸했다.
“어쩔 수 없지.”
건일과 테르핀은 고개를 끄덕이고 돼지 놈에게 일격을 날리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뭣들 하는 짓이야!!”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에 건일과 테르핀이 멈춰 섰다.
선술집 밖에는 이 소란을 듣고 출동한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건일이 허탈하게 웃었다.
“일진 사납네…….”
몰려든 군인들 중, 백부장으로 보이는 자가 주변 상황을 살피더니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이놈들을 유치장으로 끌고 가라!”
“튈까……?”
테르핀이 건일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저씨, 좀 봐줘요.”
메르시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백부장과 구면인 듯 꽤 친근하게 굴고 있었다.
백부장은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다시 말했다.
“유치장으로 끌고 가.”
방금 전처럼 목소리에 위엄은 없었지만, 내용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건일 일행과 싸움이 붙었던 일행은 군인들에게 잡혀 도시 내에 있는 군사 주둔지의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그 과정에서 건일 일행은 짐 대부분을 압수당하고 말았다.
건일의 총마저도.
“젠장!!”
총을 빼앗긴 건일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메르시를 노려봤다.
이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총뿐이었는데, 그걸 빼앗긴 것이었다.
그러나 메르시는 무척이나 태평한 얼굴이었다.
건일은 그게 무척이나 얄미워 금방이라도 후려치고 싶었지만, 문득 그녀가 뭔가 다른 수가 있는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태평스런 얼굴이 증명하듯 건일 일행은 싸움이 붙은 일행과는 다른 유치장에 갇히게 됐다.
심지어 꽤나 깔끔한 곳이었다. 구석엔 간이침대에 짚단까지 놓여있었으니까.
메르시는 그 침대에 드러누워 느긋하게 뭐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린은 바닥이 차서 유치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건일이 짜증을 내며 메르시에게 말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여기 갇혔는데, 왜 이렇게 태평해?”
“아아… 시끄러워.”
메르시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건일과 메르시가 서로를 노려봤다.
테르핀이 끼어들어 중재를 했지만, 여전히 건일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욕지기를 내뱉으려다 뒤로 돌아섰다.
메르시가 짜증을 내고나서 말했다.
“그렇게 짜증 안 내도 되거든? 이제 곧 알아서 풀려날 거야.”
“뭘 믿고?”
건일이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메르시는 다시 느긋한 표정으로 돌아와 어깨를 으쓱였다.
“백부장 아저씨랑 우리 노인네랑 친해. 얼마 있다가 풀어 줄…….”
문득,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갑옷이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메르시가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잠시 뒤 그들 앞에 백부장이 나타났다.
투구를 벗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갈색 머리에 갈색 수염이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백부장은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유치장 안에 있는 메르시를 바라봤다.
메르시는 활짝 웃으며 백부장에게 말했다.
“아저씨. 우리 좀 풀어줘요. 술집에서 걔네가 먼저 시비를 걸었단 말이에요.”
“안 돼.”
백부장이 칼로 베듯 확고하게 대답했다.
메르시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건일은 손쉽게 빠져나갈 거라 생각했다가 일이 틀어지자, 조그맣게 혀를 찼다.
백부장은 헛기침을 하고 설명을 이어갔다.
“니들이 건드린 애들, 군인이 아니야.”
그 말에 메르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더 쉽게 내보낼 수 있는 거 아녜요?”
“응. 그 녀석들 더블 오 길드의 호위병이야.”
“더블 오요?”
메르시가 적잖이 놀랐다.
건일의 표정이 난처하게 바뀌었다.
그 길드에 들어가야 하는데, 호위병이랑 싸움이 붙다니.
최악의 상황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었다.
“젠장…….”
건일이 짜증을 냈다.
메르시는 그제야 미안한 표정으로 건일을 바라봤다.
잠시 입술을 깨물던 메르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안. 너, 거기 들어가야 된다면서.”
“아, 그건.”
불쑥 백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걱정 안 해도 될걸?”
모두의 시선이 백부장에게 쏠렸다.
메르시가 백부장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그건 이따가 알려주지. 일단 대기해라.”
그때, 백부장의 부하가 유치장으로 들어와 백부장에게 소근거렸다.
백부장은 보고를 듣고 나서 메르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그 간부가 온 모양이라 건일이 생각했다.
“메르시, 간부가 왔단다.”
건일의 예상대로 간부가 도착했다.
백부장은 유치장의 문을 열고, 네 사람의 양손을 밧줄로 묶었다.
메르시도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구속당했다.
백부장은 네 명을 끌고 사무실 쪽으로 데려갔다.
사무실에선 그 간부란 사람이 호통을 치는 듯,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리고 있었다.
백부장은 메르시에게 눈치를 주고, 조용히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선 건일 일행과 싸웠던 남자 세 명이 한 남자에게 호통을 듣고 있었다.
“이 자식들이!! 그냥 클로드 잡화점에서 딸을 모시고 오는 게 뭐가 그리 힘들어서 문제를 일으켜?!”
“…으엉?”
간부의 호통 소리에 메르시가 벙 쪘다.
그녀는 자신이 들은 게 제대로 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테르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 분명히 클로드 잡화점이라고…….”
“응. 클로드 잡화점이라 그랬어.”
테르핀 대신, 건일이 꼿꼿하게 대꾸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방금 백부장이 했던,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이 이것인 듯 했다.
그들이 메르시를 찾고 있다는 것.
건일은 최대한 이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아.”
건일의 목소리에 간부가 시선을 돌렸다.
대략 30대 중반의 남성.
얼굴은 순둥이 같아 보였지만, 눈만큼은 날카롭게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는 건일 일행을 보자마자 급히 고개를 숙였다.
“더블 오 길드 간부 고이진 킨이라 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부하들이 소란을 일으켰죠.”
하지만, 그의 사과보다 궁금한 게 있었다.
메르시가 앞으로 치고 나가며 물었다.
“우리 잡화점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우리… 잡화점이요?”
고이진이 눈을 굴리며 메르시가 한 말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고이진이 깜짝 놀라 외쳤다.
“클로드 잡화점의 따님이십니까?”
메르시가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어… 네. 장 클로드의 딸, 메르시 클로드입니다.”
고이진은 메르시를 훑다, 그녀의 왼쪽 손에 있는 반지를 확인했다.
그는 다시 버럭, 남자들에게 소리쳤다.
“이 자식들이!!”
상황을 보던 건일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안 혼내셔도 됩니다. 우리 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거든요. 사과를 드려야할 건 저희 쪽입니다.”
사실이 그랬다.
저 남자들 이렇게 혼날 만할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시비는 메르시 쪽이 먼저 걸기 시작한 거였다.
이 참에 확실히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메르시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은 듯했다.
“뭐라구요?!”
메르시가 건일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녀의 편은 없었다.
테르핀과 아이린도 건일의 말에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메르시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도 그렇게 멍청한 편은 아닌 듯 했다.
메르시는 금세 표정을 바꾸고 남자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술 먹고 실수를 했습니다.”
고이진이 손을 내저으며 메르시 쪽으로 다가왔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진짜 클로드 잡화점 장 클로드의 따님입니까?”
“네… 그런데요.”
고이진은 대답을 듣자마자 백부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분들 보석금을 제가 내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백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고이진이 건일 일행의 보석금까지 지불했다.
백부장은 건일 일행을 구속하고 있던 오랏줄을 풀어줬다.
고이진은 건일 일행이 압수된 물건을 돌려받고 나서 그들과 함께 군사주둔지를 나섰다.
남자들은 고이진에게 마지못해 인사를 하고, 다른 길로 걸어갔다.
고이진은 그들이 다른 길로 가는데도 별말이 없었다.
메르시는 오랏줄에 묶인 탓에 슬슬 저려오는 양손을 문지르며 고이진에게 물었다.
“더블 오에서 절 왜 찾는 거예요?”
“자세한 건 모릅니다. 다만 제 상관께서 데려오라 부탁을 하셨거든요.”
“상관 이름이 누군데요?”
“제이미 리. 더블 오 길드의 장이십니다.”
메르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건일은 메르시가 제이미 리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것으로 보였다.
고이진은 걸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저 호위병 녀석들을 저렇게 떡으로 만든 게 두 분이십니까?”
건일이 대꾸했다.
“네.”
“대단하시군요. 저 녀석들은 남쪽에서 한 가닥 하는 호위병들인데…….”
“대단할 것 까지야…….”
테르핀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내며 짐짓 엄숙하게 얘기했다.
그러나 옆에서 그를 보는 건일과 아이린은, 금방이라도 테르핀의 광대가 승천할 거란 걸 깨달았다.
아이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고이진이 말을 이었다.
“저, 두 분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요.”
“케일의 아들 테르핀입니다.”
“한의 아들 건일이요.”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은 고이진이 잠시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위병들의 얘기를 듣자 하니, 한 분은 생긴 거에 비해 힘이 센 편이고, 다른 한 분은 처음 보는 마법을 쓴다고 들었는데요.”
역시 이 사람들 눈에도 건일의 총은 마법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린의 예상과는 달리 도시로 와도, 총이 마법이 아니란 것을 들키지 않은 것 같았다.
건일이 그렇다, 라고 말을 하려는데,
“저희 길드 마법사님께서 그 마법이 뭔지 궁금해하시거든요.”
고이진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 말에 아이린이 키득이며 건일을 바라봤다.
마법사에게 총을 보여주면 당연히 들통나고 만다.
아이린의 예상이 맞았다. 건일은 머리를 굴리다 말했다.
“그건 마법이 아닙니다.”
“마법이 아니다?”
고이진이 놀란 표정으로 건일을 바라봤다.
“이건, 연금술이라는 겁니다. 전 이것을 총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건일이 등에 매고 있는 총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소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 완전히 다른 힘을 내는 거죠.”
“호오.”
고이진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총을 바라봤다.
“그럼, 일종의 마도구 비슷한 겁니까?”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재밌네요.”
고이진은 테르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쪽 분이 체격에 비해 힘이 센 분이군요.”
고이진이 상황 정리가 끝나자, 곧장 입을 열었다.
“두 분, 상당한 실력자신 거 같은데 이번 기회에 저희 길드에서 호위병으로 일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갑자기 들어온 영입 제의에 임계점에 달하고 있던 테르핀의 광대가 승천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아이린이 순간적으로 테르핀의 발을 꽉 밟았다.
건일이 한 박자 늦게 테르핀의 입을 막으려다, 아이린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은 마저 테르핀의 입을 틀어막고 조용히 말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조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고이진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외로 상황이 술술 풀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이득을 취할 수 있으면 취할 생각이었다.
그는 테르핀이 촐싹대지 않게, 확실히 입을 막았다.
고이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네. 그러시죠. 저흰 이 도시에 3일 정도 머무를 예정입니다.”
그러다 고이진의 발걸음이 3층 선술집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메르시 쪽을 돌아보며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환영합니다. 더블 오 길드가 머물고 있는 선술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