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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화 : 마법학개론]
아이린이 건일이 마법사가 아니란 걸 알아챘지만, 비밀로 해주기로 한 이상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진짜로 마법을 배우면 진짜 마법사가 되는 게 아니던가.
건일이 그녀에게 부탁했다.
“나한테 마법을 알려줄래?”
아이린이 배운 마법의 기초를 알면, 진짜 마법사로 활동할 수 있었다.
건일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힘을 기르기로 했다.
육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총기의 화력도.
거기에 더해 마법까지 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아이린은 부탁을 듣고 나서 조금 망설이는 듯 했다.
건일은 아이린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아이린이 건일을 보며 말했다.
“난 진짜 기초 중의 기초만 배웠어. 내가 재능이 없어서 마법사는 그것만 가르쳐 주고 떠났거든.”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일단은.”
그것만 해도 얼마인가.
최소한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좋아. 그럼 대신.”
아이린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그녀는 건일을 유심히 바라보다, 골렘의 구동 중추를 가리켰다.
“저거 조립하는 것 좀 도와줘. 오빠가 부숴먹어서 제대로 조립을 할 수가 없잖아. 조립이 끝난 뒤에 마법의 기초를 알려줄게.”
“음… 알았어.”
별 수 없이 승낙했다.
건일은 아이린을 도와 구동 중추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린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도시에 나가면 마법을 배울 수 있을까?”
아이린은 구동 중추를 조립하다 귀찮은 듯 무심하게 대꾸했다.
“응, 아마.”
여전히 대답이 짧다. 건일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집중을 하고 있는데도 대답을 할 정도면 그래도 꽤나 성의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워서, 골렘의 구동 중추를 조립하는 걸 끝마쳤다.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건일은 밤을 새워 버린 탓에 눈이 퀭했지만, 아이린은 아니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건일은 그녀가 뭘 하는지 찬찬히, 그녀를 바라봤다.
산 위로 떠오른 해를 따라 햇빛이 점점 대장간 안으로 들어왔다.
대장간 안에 해가 들어오자, 건일은 아이린이 눈부시다 생각했다.
아이린이 천천히 눈을 떴다가, 건일을 보고 기겁했다.
“표, 표정이 뭐 그래?”
건일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얼굴을 가렸다.
“내 얼굴이 뭐!”
“되게 변태 같았거든??”
“벼, 변태는 무슨!”
건일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런 모습에 아이린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얼이 빠졌네, 빠졌어. 내가 그렇게 이뻤어?”
“윽…….”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건일은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아이린이 폭소를 터뜨리며 건일의 어깨를 쳤다.
그녀는 한참을 웃고 나서 건일에게 말했다.
“숲으로 가자. 마법을 알려줄게.”
“아, 응!”
건일은 아이린을 따라서 숲으로 들어갔다.
숲으로 들어 온 아이린은 적당히 트인 장소로 건일을 안내했다.
그녀는 건일을 숲 한가운데에 책상다리로 앉혔다.
아이린은 그를 보며 말했다.
“눈을 감아 봐.”
건일이 그녀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 점점 더 어려워질 거야. 머릿속에 정사각형을 떠올려 봐.”
뭐가 어렵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건일은 그녀의 말대로 정사각형을 상상했다.
아이린이 재차 말했다.
“그 정사각형 여섯개를 이용해서 한 면에 꼭지점 세개를 만나게 해봐.”
정육면체다. 일반적인 상자 모양.
건일이 거기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린이 말했다.
“이제 마지막이야. 이게 제일 어려운데, 그 정육면체 여덟개를 이용해서 빈틈없이 이어봐.”
“하아?”
건일이 한쪽 눈을 떴다.
그녀의 말이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육면체의 한쪽 꼭지점에 세개의 정육면체를 만나게 하라니.
아이린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러, 니, 까…….”
그녀도 설명을 잘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녀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인상을 쓰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봐봐.”
그녀는 땅바닥에 막대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십자가 모양이었다.
“자. 이게 정육면체의 전개도야. 그리고…….”
그녀는 옆에 정육면체 전개도와 비슷하게, 여덟개의 정육면체가 모인 그림을 그렸다.
“이걸 4차원으로 생각해서…….”
“…아.”
4차원 하니 생각났다.
테서랙트. 정팔포체.
2차원이 정사각형, 3차원이 정육면체라면 그걸 4차원으로 확장시킨 것이 정팔포체, 테서랙트로 불리는 것이었다.
한 때 연구소에서 얘기가 나왔던 것이었다.
건일이 뭔가 떠오른 눈치이자, 아이린이 입을 닫았다.
건일은 다시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정육면체 여덟개를 십자가 모양으로 늘어놨다.
4차원에서만 가능한, 일반적으로 3차원에서 인식하기 힘든 도형이었다.
잠시 집중을 해서, 천천히 여덟 개의 정육면체를 빈틈없이 상상으로 이어 붙였다.
“……?!”
이상한 느낌에 건일이 퍼뜩 눈을 떴다.
앞에서 아이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오빠. 설마 단번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한 거야?”
건일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방금 머릿속으로 정팔포체를 상상한 순간, 몸의 모든 부분에서 뭔가가 빨려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건일은 몸을 두리번거렸다.
대체 뭐가 들어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린이 허탈하게 웃어버리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축하해. 당신, 이제 마법사야.”
“뭐?”
건일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아이린을 바라봤다.
아이린이 한숨을 내쉬고 설명을 이어갔다.
“마나란 것은 자연 에너지야.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 자연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도 이용할 수도 없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생겨먹었거든. 하지만 명상을 통해 정신을 한 순간 4차원으로 보내면 그 자연 에너지를 몸에 흡수해서 일시적으로나마 사용할 수 있게 되지. 4차원으로 보내는 매개체가 바로 이 도형 상상이야.”
“아.”
그럼 방금 건일이 온몸에서 뭔가를 빨아들이는 느낌을 받은 게 마력을 흡수하는 과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 소름 돋는데.”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몸이 뭐랄까,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돼서 먼지를 빨아들이는 느낌이었으니.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이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그 과정까지 가는 데 여섯 달이나 걸렸다고. 대체 뭐야, 당신. 하루 만에 그게 가능하다니.”
“으음…….”
문득 이 곳에 소환됐을 때 드래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배에 난 구멍을 메우려고 자신의 세포를 가져다 썼다고.
아마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잠시 제쳐둔다.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 말야. 이렇게 마나를 흡수해서,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그건 마법서에 적혀 있어. 간단하게 말하면 명상을 통해 마나를 흡수해서 주변 마나를 이용할 수 있게 시동을 걸어놓고, 자기 주변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거지. 역량에 따라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달라져. 보통 체력에 좌지우지 돼.”
“그렇구나…….”
“대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그 도형을 생각해야 돼. 그걸 상상하지 못하면, 몸이 더 이상 마나를 다룰 수 없게 되니까.”
“꽤 어려운데. 마법은 어떻게 쓰는 거야?”
“이제부터 설명할 거야.”
아이린이 건일의 말을 잘라냈다.
“일단 10분 정도 명상해. 그렇게 몸에 시동을 거는 거야. 매일 정신이 깰 때마다. 그 다음에 집으로 가자.”
“아, 응. 알았어.”
건일이 다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정팔포체를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온몸이 진공청소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으로 주변에서 먼지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먼지처럼 불쾌한 것이 아니다.
무척이나 작은, 숨결 같은 것들.
그 숨결 같은 것들이 빠르게 건일의 몸에 차올랐다.
약간의 고양감이 느껴졌다. 몸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오빠, 오빠!”
아이린이 건일을 흔들었다.
건일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아이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하면 이렇다니까… 너무 편해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아.”
“아…….”
건일은 잠시 얼이 빠져 멍하니 아이린을 바라봤다.
웅얼웅얼, 그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건일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이린은 건일의 머리를 퉁퉁 두드리고 나서 말했다.
“가자. 밥 먹으러 가야지. 덤으로 마법도 알려주고.”
멀리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이제야 제대로 들렸다.
건일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 가자.”
건일이 비척비척 일어났다.
보다 못한 아이린이 그를 부축했다.
“어휴… 손이 많이 가네, 진짜.”
“아, 고마워.”
건일은 아이린에게 부축을 받아가며 아이린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선 테르핀의 어머니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어제 남았던 고깃국을 다시 끓이는 데 더해, 말 젖으로 만든 치즈를 썰어 불에 지글지글 녹이고 있었다.
“어머, 건일. 왜 그렇게 힘이 빠졌어?”
테르핀의 어머니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이린이 대충 대꾸했다.
“밤 샜더니 정신을 못 차리네.”
“뭐? 아이린, 너 또 무슨 짓 했어!”
“아, 엄마는 왜 맨날 나만 갖고 뭐라 해!”
늘 있는 친한 모녀간의 싸움이다.
건일은 솥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옆에서 테르핀이 고깃국을 떠 권했다.
건일이 고깃국을 받아 마시자, 뜨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몸 안으로 들어와 돌기 시작했다.
한결 나아졌다.
아이린은 어머니와 한바탕 벌인 뒤에, 불에 녹인 치즈를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깃국을 들이킨 뒤, 건일에게 말했다.
“따라와. 마법서 보여줄 테니까.”
건일은 고깃국을 먹다 말고 아이린을 따라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아이린의 방은 여자 방에 대한 환상을 완벽하게 깨줬다.
테르핀의 방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가구는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옷가지에 덮여 있었고, 바닥엔 여기저기 잡동사니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침대 위가 제일 깨끗했는데, 이 방에서 자주 사용하는 유일한 가구여서인 듯했다.
아이린은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있는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도 엄청난 잡동사니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녀는 상자 안에 있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밑바닥에 다다랐을 때쯤, 그녀가 두꺼운 책을 한 권 꺼내들었다.
“자, 받아. 마법서야.”
건일이 별생각 없이 마법서를 펴들었다.
그러나 거기엔 의미 없는 문자들과 기호들만 있을 뿐이었다.
건일은 잠시 심장에 있는 드래곤의 세포가 글자는 번역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진짜 큰일이었다.
그는 아이린을 바라봤다.
“마법서는 그렇게 읽는 거 아냐.”
아이린이 딴죽을 걸어왔다.
건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읽는 게 아니면, 대체 책을 어떻게 읽는지 건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린이 말했다.
“마나를 모으면서 책을 읽어야 돼.”
“아.”
아이린의 말대로 건일이 머릿속으로 테서랙트를 떠올리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이해할 수 없던 글자들이 이제는 읽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머릿속에 테서랙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첫머리가 ‘헤이스트’인 것을 빼면.
“윽… 이거 읽을 수가 없잖아.”
건일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책을 내려놓았다.
아이린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머릿속에 딴 생각을 하며 어려운 책을 읽으라니. 일반적으로는 무리지. 그런데 그걸 읽어야 마법사인 거야.”
아이린의 말에 건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기초적인 지식도 모른 채 마법사 흉내를 내면 엄청 위험한 일을 겪었을 게 뻔하다.
이 마을에 들어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이린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오빠는 나보다 나아. 난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는걸. 하지만 오빠는 하루 만에 했으니. 금방 읽을 수 있게 될 거야.”
“아아.”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는 좀 더 강해질 수 있게 됐다.
아이린은 침대에 앉아 건일을 올려다봤다.
“대신. 이 이상 마나를 모으는 건 안 돼. 연습하지 마. 오늘 한도를 넘겼어. 밤에 자서 마나를 환원시키고, 내일 다시 시도하도록 해.”
건일이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마법서를 읽으려면 마나를 모아야 된다.
그렇다면 그냥 처음부터 책을 읽으며 마나를 모으면 되는 일이 아닐까.
“아, 그럼 내일 마법서부터 읽으면 되는 거 아냐?”
“응, 안 돼.”
아이린이 확답했다.
“마법서를 읽는 것 역시 마법을 쓰는 행위야. 마나가 없는 상태에서 마법을 발동할 수 없거든.”
“아아.”
건일이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은 별 수 없이 책을 내려놓았다. 마나를 많이 모으면 몸이 버티질 못하니까.
마음이 급하지만, 무리를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아이린이 잠시 건일을 보다 물었다.
“이제 뭐하게?”
건일이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는 슬슬 탄환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일은 히죽 웃으며 총을 두드렸다.
“연금술을 해야지.”
그 말에 아이린이 눈을 반짝였다.
“구경해도 돼?”
“응. 근데 마을에, 목면이 있나?”
화약을 만드려면 목면이 필수적이다.
니트로셀룰로오스를 만들어야 하니까.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많아.”
“그럼 목면이 필요해. 대량으로.”
아이린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좋아! 마을 사람들한테 말해놓을게!”
아이린이 급히 방을 나섰다.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여러분! 건일 오빠가 목면이 필요하대요!!”
그녀의 방에서 아이린을 지켜보던 건일이 피식, 웃어버렸다.
“목에 화통이라도 심었나…….”
아이린이 건일이 마법사가 아니란 걸 알아챘지만, 비밀로 해주기로 한 이상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진짜로 마법을 배우면 진짜 마법사가 되는 게 아니던가.
건일이 그녀에게 부탁했다.
“나한테 마법을 알려줄래?”
아이린이 배운 마법의 기초를 알면, 진짜 마법사로 활동할 수 있었다.
건일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힘을 기르기로 했다.
육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총기의 화력도.
거기에 더해 마법까지 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아이린은 부탁을 듣고 나서 조금 망설이는 듯 했다.
건일은 아이린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아이린이 건일을 보며 말했다.
“난 진짜 기초 중의 기초만 배웠어. 내가 재능이 없어서 마법사는 그것만 가르쳐 주고 떠났거든.”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일단은.”
그것만 해도 얼마인가.
최소한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좋아. 그럼 대신.”
아이린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그녀는 건일을 유심히 바라보다, 골렘의 구동 중추를 가리켰다.
“저거 조립하는 것 좀 도와줘. 오빠가 부숴먹어서 제대로 조립을 할 수가 없잖아. 조립이 끝난 뒤에 마법의 기초를 알려줄게.”
“음… 알았어.”
별 수 없이 승낙했다.
건일은 아이린을 도와 구동 중추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린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도시에 나가면 마법을 배울 수 있을까?”
아이린은 구동 중추를 조립하다 귀찮은 듯 무심하게 대꾸했다.
“응, 아마.”
여전히 대답이 짧다. 건일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집중을 하고 있는데도 대답을 할 정도면 그래도 꽤나 성의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워서, 골렘의 구동 중추를 조립하는 걸 끝마쳤다.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건일은 밤을 새워 버린 탓에 눈이 퀭했지만, 아이린은 아니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건일은 그녀가 뭘 하는지 찬찬히, 그녀를 바라봤다.
산 위로 떠오른 해를 따라 햇빛이 점점 대장간 안으로 들어왔다.
대장간 안에 해가 들어오자, 건일은 아이린이 눈부시다 생각했다.
아이린이 천천히 눈을 떴다가, 건일을 보고 기겁했다.
“표, 표정이 뭐 그래?”
건일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얼굴을 가렸다.
“내 얼굴이 뭐!”
“되게 변태 같았거든??”
“벼, 변태는 무슨!”
건일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런 모습에 아이린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얼이 빠졌네, 빠졌어. 내가 그렇게 이뻤어?”
“윽…….”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건일은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아이린이 폭소를 터뜨리며 건일의 어깨를 쳤다.
그녀는 한참을 웃고 나서 건일에게 말했다.
“숲으로 가자. 마법을 알려줄게.”
“아, 응!”
건일은 아이린을 따라서 숲으로 들어갔다.
숲으로 들어 온 아이린은 적당히 트인 장소로 건일을 안내했다.
그녀는 건일을 숲 한가운데에 책상다리로 앉혔다.
아이린은 그를 보며 말했다.
“눈을 감아 봐.”
건일이 그녀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어. 점점 더 어려워질 거야. 머릿속에 정사각형을 떠올려 봐.”
뭐가 어렵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건일은 그녀의 말대로 정사각형을 상상했다.
아이린이 재차 말했다.
“그 정사각형 여섯개를 이용해서 한 면에 꼭지점 세개를 만나게 해봐.”
정육면체다. 일반적인 상자 모양.
건일이 거기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린이 말했다.
“이제 마지막이야. 이게 제일 어려운데, 그 정육면체 여덟개를 이용해서 빈틈없이 이어봐.”
“하아?”
건일이 한쪽 눈을 떴다.
그녀의 말이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육면체의 한쪽 꼭지점에 세개의 정육면체를 만나게 하라니.
아이린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러, 니, 까…….”
그녀도 설명을 잘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녀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인상을 쓰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봐봐.”
그녀는 땅바닥에 막대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십자가 모양이었다.
“자. 이게 정육면체의 전개도야. 그리고…….”
그녀는 옆에 정육면체 전개도와 비슷하게, 여덟개의 정육면체가 모인 그림을 그렸다.
“이걸 4차원으로 생각해서…….”
“…아.”
4차원 하니 생각났다.
테서랙트. 정팔포체.
2차원이 정사각형, 3차원이 정육면체라면 그걸 4차원으로 확장시킨 것이 정팔포체, 테서랙트로 불리는 것이었다.
한 때 연구소에서 얘기가 나왔던 것이었다.
건일이 뭔가 떠오른 눈치이자, 아이린이 입을 닫았다.
건일은 다시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정육면체 여덟개를 십자가 모양으로 늘어놨다.
4차원에서만 가능한, 일반적으로 3차원에서 인식하기 힘든 도형이었다.
잠시 집중을 해서, 천천히 여덟 개의 정육면체를 빈틈없이 상상으로 이어 붙였다.
“……?!”
이상한 느낌에 건일이 퍼뜩 눈을 떴다.
앞에서 아이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오빠. 설마 단번에 마력을 모으기 시작한 거야?”
건일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방금 머릿속으로 정팔포체를 상상한 순간, 몸의 모든 부분에서 뭔가가 빨려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건일은 몸을 두리번거렸다.
대체 뭐가 들어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린이 허탈하게 웃어버리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축하해. 당신, 이제 마법사야.”
“뭐?”
건일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아이린을 바라봤다.
아이린이 한숨을 내쉬고 설명을 이어갔다.
“마나란 것은 자연 에너지야.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 자연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도 이용할 수도 없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생겨먹었거든. 하지만 명상을 통해 정신을 한 순간 4차원으로 보내면 그 자연 에너지를 몸에 흡수해서 일시적으로나마 사용할 수 있게 되지. 4차원으로 보내는 매개체가 바로 이 도형 상상이야.”
“아.”
그럼 방금 건일이 온몸에서 뭔가를 빨아들이는 느낌을 받은 게 마력을 흡수하는 과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꽤 소름 돋는데.”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몸이 뭐랄까,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돼서 먼지를 빨아들이는 느낌이었으니.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이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그 과정까지 가는 데 여섯 달이나 걸렸다고. 대체 뭐야, 당신. 하루 만에 그게 가능하다니.”
“으음…….”
문득 이 곳에 소환됐을 때 드래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배에 난 구멍을 메우려고 자신의 세포를 가져다 썼다고.
아마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잠시 제쳐둔다.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럼 말야. 이렇게 마나를 흡수해서,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그건 마법서에 적혀 있어. 간단하게 말하면 명상을 통해 마나를 흡수해서 주변 마나를 이용할 수 있게 시동을 걸어놓고, 자기 주변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거지. 역량에 따라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달라져. 보통 체력에 좌지우지 돼.”
“그렇구나…….”
“대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그 도형을 생각해야 돼. 그걸 상상하지 못하면, 몸이 더 이상 마나를 다룰 수 없게 되니까.”
“꽤 어려운데. 마법은 어떻게 쓰는 거야?”
“이제부터 설명할 거야.”
아이린이 건일의 말을 잘라냈다.
“일단 10분 정도 명상해. 그렇게 몸에 시동을 거는 거야. 매일 정신이 깰 때마다. 그 다음에 집으로 가자.”
“아, 응. 알았어.”
건일이 다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정팔포체를 생각했다.
다시 한 번, 온몸이 진공청소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으로 주변에서 먼지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먼지처럼 불쾌한 것이 아니다.
무척이나 작은, 숨결 같은 것들.
그 숨결 같은 것들이 빠르게 건일의 몸에 차올랐다.
약간의 고양감이 느껴졌다. 몸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오빠, 오빠!”
아이린이 건일을 흔들었다.
건일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아이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하면 이렇다니까… 너무 편해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아.”
“아…….”
건일은 잠시 얼이 빠져 멍하니 아이린을 바라봤다.
웅얼웅얼, 그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건일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이린은 건일의 머리를 퉁퉁 두드리고 나서 말했다.
“가자. 밥 먹으러 가야지. 덤으로 마법도 알려주고.”
멀리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이제야 제대로 들렸다.
건일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 가자.”
건일이 비척비척 일어났다.
보다 못한 아이린이 그를 부축했다.
“어휴… 손이 많이 가네, 진짜.”
“아, 고마워.”
건일은 아이린에게 부축을 받아가며 아이린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선 테르핀의 어머니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어제 남았던 고깃국을 다시 끓이는 데 더해, 말 젖으로 만든 치즈를 썰어 불에 지글지글 녹이고 있었다.
“어머, 건일. 왜 그렇게 힘이 빠졌어?”
테르핀의 어머니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이린이 대충 대꾸했다.
“밤 샜더니 정신을 못 차리네.”
“뭐? 아이린, 너 또 무슨 짓 했어!”
“아, 엄마는 왜 맨날 나만 갖고 뭐라 해!”
늘 있는 친한 모녀간의 싸움이다.
건일은 솥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옆에서 테르핀이 고깃국을 떠 권했다.
건일이 고깃국을 받아 마시자, 뜨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몸 안으로 들어와 돌기 시작했다.
한결 나아졌다.
아이린은 어머니와 한바탕 벌인 뒤에, 불에 녹인 치즈를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깃국을 들이킨 뒤, 건일에게 말했다.
“따라와. 마법서 보여줄 테니까.”
건일은 고깃국을 먹다 말고 아이린을 따라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아이린의 방은 여자 방에 대한 환상을 완벽하게 깨줬다.
테르핀의 방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가구는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옷가지에 덮여 있었고, 바닥엔 여기저기 잡동사니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침대 위가 제일 깨끗했는데, 이 방에서 자주 사용하는 유일한 가구여서인 듯했다.
아이린은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있는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도 엄청난 잡동사니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녀는 상자 안에 있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밑바닥에 다다랐을 때쯤, 그녀가 두꺼운 책을 한 권 꺼내들었다.
“자, 받아. 마법서야.”
건일이 별생각 없이 마법서를 펴들었다.
그러나 거기엔 의미 없는 문자들과 기호들만 있을 뿐이었다.
건일은 잠시 심장에 있는 드래곤의 세포가 글자는 번역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진짜 큰일이었다.
그는 아이린을 바라봤다.
“마법서는 그렇게 읽는 거 아냐.”
아이린이 딴죽을 걸어왔다.
건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읽는 게 아니면, 대체 책을 어떻게 읽는지 건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린이 말했다.
“마나를 모으면서 책을 읽어야 돼.”
“아.”
아이린의 말대로 건일이 머릿속으로 테서랙트를 떠올리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이해할 수 없던 글자들이 이제는 읽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머릿속에 테서랙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첫머리가 ‘헤이스트’인 것을 빼면.
“윽… 이거 읽을 수가 없잖아.”
건일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책을 내려놓았다.
아이린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머릿속에 딴 생각을 하며 어려운 책을 읽으라니. 일반적으로는 무리지. 그런데 그걸 읽어야 마법사인 거야.”
아이린의 말에 건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기초적인 지식도 모른 채 마법사 흉내를 내면 엄청 위험한 일을 겪었을 게 뻔하다.
이 마을에 들어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이린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오빠는 나보다 나아. 난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는걸. 하지만 오빠는 하루 만에 했으니. 금방 읽을 수 있게 될 거야.”
“아아.”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는 좀 더 강해질 수 있게 됐다.
아이린은 침대에 앉아 건일을 올려다봤다.
“대신. 이 이상 마나를 모으는 건 안 돼. 연습하지 마. 오늘 한도를 넘겼어. 밤에 자서 마나를 환원시키고, 내일 다시 시도하도록 해.”
건일이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마법서를 읽으려면 마나를 모아야 된다.
그렇다면 그냥 처음부터 책을 읽으며 마나를 모으면 되는 일이 아닐까.
“아, 그럼 내일 마법서부터 읽으면 되는 거 아냐?”
“응, 안 돼.”
아이린이 확답했다.
“마법서를 읽는 것 역시 마법을 쓰는 행위야. 마나가 없는 상태에서 마법을 발동할 수 없거든.”
“아아.”
건일이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은 별 수 없이 책을 내려놓았다. 마나를 많이 모으면 몸이 버티질 못하니까.
마음이 급하지만, 무리를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아이린이 잠시 건일을 보다 물었다.
“이제 뭐하게?”
건일이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는 슬슬 탄환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일은 히죽 웃으며 총을 두드렸다.
“연금술을 해야지.”
그 말에 아이린이 눈을 반짝였다.
“구경해도 돼?”
“응. 근데 마을에, 목면이 있나?”
화약을 만드려면 목면이 필수적이다.
니트로셀룰로오스를 만들어야 하니까.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많아.”
“그럼 목면이 필요해. 대량으로.”
아이린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좋아! 마을 사람들한테 말해놓을게!”
아이린이 급히 방을 나섰다.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여러분! 건일 오빠가 목면이 필요하대요!!”
그녀의 방에서 아이린을 지켜보던 건일이 피식, 웃어버렸다.
“목에 화통이라도 심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