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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화 : 나는 연금술사로소이다]
그래도 그는 용기를 쥐어짜 내 아이린에게 물었다.
“어디 가.”
“구경 좀 하게.”
이미 아이린은 반말이 입에 붙은 듯 했다.
그녀는 주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어제 구동 중추를 봤을 때처럼 집중해 부품들을 훑기 시작했다.
건일은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 구동 중추에 눈이 닿았다.
분명히 어제는 완전히 해체된 상태였는데, 오늘은 절반쯤 조립된 상태였다.
처음 본 기계 장치를 하룻밤 새 여기까지 조립한 것이다.
건일은 아이린을 바라봤다.
‘재능이 있는데?’
분명 건일이 있는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뛰어난 엔지니어가 됐을 터였다.
그 얘기는, 혹시라도 아이린이 총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저걸 이해하게 되면, 건일이 마법사가 아닌 게 들통이 나고 만다.
건일은 어떻게든 아이린이 부품을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기회가 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골렘을 갖고 대장간으로 왔다.
하루 종일 골렘을 화로 안에 넣어 녹였다.
꽤나 단단했지만 하루 종일 푹 익혀 버린 탓에 그날 저녁 즈음엔 쇳물이 되어버렸다.
주물을 만드는 작업도 거의 다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녹인 쇳물을 주물에 붓기 시작했다.
이제 주물 안에서 쇳물이 굳기를 기다렸다가 조립을 하면 된다.
대장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끝이 났다.
생각 외로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린이 도와준 덕에 빨리 끝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총기 부품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 보였다.
건일의 등가로 식은땀이 흘렀다.
건일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위해, 대장장이들에게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르켈은 보람찬 얼굴로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마을을 구해줬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지. 필요한 건 다 끝난 건가?”
“…네.”
건일이 대답했다. 마르켈은 허허 웃다가 건일에게 말했다.
“그럼 한잔하겠나?”
“아뇨.”
건일이 거절했다.
아직 저번 전투로 인한 환자들이 낫지 않았다.
그 혼자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뭔가 눈치를 챈 듯한 아이린을 여기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간 건일이 마법사가 아니란 게 들통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모면하려면 그녀 옆에 있으면서 사태가 돌아가는 걸 살펴야 했다.
마르켈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건일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알겠네. 그럼 우린 철수하지. 아이린은 여기 남아 있을테고.”
마르켈이 아이린을 바라봤다.
이미 그녀는 남은 구동 중추 절반을 조립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마르켈이 건일을 보며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건일은 주물을 보며 대답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다.
“저도 여기 남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리고 대장장이들과, 테르핀이 집으로 되돌아갔다.
건일은 주물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린은 열심히 구동 중추를 조립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단은 주물은 관심 밖인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건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물을 살폈다.
주물들이 적당히 굳었기에, 주물 안에 있던 부품들을 빼내 조립을 시작했다.
그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건일과 아이린의 손이 거의 동시에 멈췄다.
아이린이 벌써 조립을 끝냈나 하고 돌아보다, 아이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불쑥 물었다.
“당신, 마법사 아니지?”
“응??”
갑작스런 질문에 건일이 당황해했다.
그는 급히 표정을 숨기고 아이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무척이나 확고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뱉은 말에 믿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총기 부품에 대해 이해를 한 모양이었다.
건일이 대체 어떻게 위기를 모면해야 할지 생각하는 동안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 마을에 마법사가 찾아 온 적이 있었어. 그 사람은 우리에게 마법을 가르치려고 했지. 근데,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그나마 나만 재능이 있었어. 그래서 마법을 아주 조금 배울 수 있었지. 그마저도 재능이 없는 거라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마법의 기초는 알아. 당신은 마법사가 아냐.”
아이린은 진짜 마법사를 본 모양이었다.
건일이 진땀을 빼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진짜 마법사라니. 내가 마법사인데…….”
“아니.”
아이린은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마나 포션이 뭔지도 몰라. 게다가 마법사는 최소한 하루에 한 번, 늦어도 이틀에 한 번 명상을 해서 마력을 갈무리해. 근데 당신은 그런 명상을 단 한 번도 안 했어.”
마력을 모으는 과정을 거친다고.
건일이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아이린을 바라봤다.
아이린은 이제 건일의 총을 가리켰다.
“이것도 사실 마법이 아니잖아. 이건 무척 잘 만든… 음… 여튼! 마법은 아냐!”
아이린의 반응을 보니 총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건일은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이들이 총을 모른다는 사실로 이 위기를 벗어나야만 했다.
아이린이 말을 이었다.
“당신,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냐. 마법은 모르면서, 골렘의 구동 중추에 대해선 빠삭하고. 대체 정체가 뭐야?”
아이린이 따져 묻고 있었지만 건일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린에게 마법사가 아니란 사실을 들켰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에게 있어서 총은 특이한 물건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들이 마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골렘의 구동 중추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마법사가 아닌데도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을 바로 이 자리에서 지어내야만 했다.
건일이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아…….”
한 가지 있었다.
건일의 세계에서 마법이 없이 신비한 일을 벌이는 사람을 부르는 단어가.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면 구리를 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쌓아 온 그 수많은 헛짓거리가 지금 건일이 총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난 연금술사야.”
“……??”
아이린은 처음 들어본 단어에 당황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연… 뭐?”
다행히 그녀가 모르는 단어였다.
건일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재차 말했다.
“…연금술사.”
“그, 그게 뭐야?”
“마력 없이 신비한 일을 벌이는 거지. 이거처럼.”
건일이 그의 총을 가리켰다.
아이린이 당황한 사이 건일은 빠르게 몰아붙였다.
“아무 의미 없는 물건들을 조합해 새롭게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게 바로 연금술이야.”
건일 스스로도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감 가득한 표정과 말투를 유지했다.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했던 연기가 지금 이 순간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이린이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건일이 더욱 더 밀어붙일 생각으로 총의 부품을 집어 들었다.
“자, 봐봐. 이건 그냥 평범한 금속이야. 이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하지만. 내가 이렇게 조합해 총을 만드는 걸로…….”
그는 잽싸게 방아쇠를 당겼다.
시끄러운 총성이 울렸다.
아이린이 흠칫 놀라 움찔거렸다.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팔부능선은 족히 넘어온 듯 했다.
건일이 말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는 거지.”
“어… 마력 없이?”
“그래. 마력 없이.”
“우와…….”
아이린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먹혀들었다.
건일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건일이 마력을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은 들켰지만, 최소한 여전히 아이린에겐 신비한 일을 벌이는 사람쯤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아이린은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헤벌린 채 건일을 보다 말했다.
“그럼, 그럼! 당신은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거야??”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에 꽂힌 모양이었다.
건일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아이린이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망치를 건일에게 내밀었다.
건일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럼 여기에 의미를 부여해 봐!”
“윽…….”
뭐라고 회피를 해야 할까.
눈알을 굴리던 건일이 생각을 마치고 말했다.
“의미를 부여해서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 내가 알아야 돼!”
“무슨 소리야, 그게?”
아이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는 터라 건일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얘기를 하지 않으면 끝이다.
건일은 한숨을 내쉬고, 마음 가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도, 적용할 수 있는 의미는 한정돼 있어. 이 금속이 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야. 내가 이 망치에 의미를 부여할 순 있지만, 이 망치에 부여할 수 있는 의미는 한정돼 있어. 다만 내가 그 한정된 의미를 모르니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거야.”
건일은 꽤 그럴 듯하게 얘기했다고 여겼다.
아이린이 시무룩해서 그녀의 망치를 내려다봤다.
건일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아이린을 바라봤다.
아이린이 망치와 건일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말야. 내가 이 망치에 부여할 수 있는 의미를 알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거야? 나도 마력이 없어도?”
“물론!”
건일이 호쾌하게 대답했다.
아이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뭔가 불안불안한 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좋아! 그럼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알려줘! 이 망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윽…….”
산 넘어 산이다.
대체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빠르게 생각한다.
적당히 철학적인 대답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그것도 건일이 제대로 모르는 것 위주로.
건일은 그가 알고 있는 지식 중, 제일 애매모호 했던 고등학교 윤리 시간을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동양 철학.
아마 그쯤에서 괜찮은 것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러자 입은 이미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사물엔 의미가 있어. 오랜 시간 관찰을 해서 그 쓰임새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본질에 닿으면 의미를 알 수 있지. 거기서부터 시작이야. 그게 되면, 그 뒤에 알려줄게.”
아마 이율곡의 이기이원론이던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됐든, 건일이 생각해도 꽤나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다.
아이린이 파악하는 데 시간을 꽤나 잡아먹을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일단 이 위기를 벗어난 듯 보였다.
아이린은 풀 죽은 표정이었으니까.
그녀는 망치를 내려다보다 천천히 중얼거렸다.
“쉬운 게 하나도 없네.”
“인생이 그래.”
건일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속으로 진땀을 닦아내고 천천히 아이린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마을 사람들한텐, 연금술사란 걸 비밀로 해줄래?”
아이린이 퍼뜩 고개를 들어 건일을 바라봤다.
“왜??”
“연금술사란 게 생소하잖아. 어차피 그 사람들에겐 내가 마법사처럼 보이는데, 굳이 이렇게 어려운 설명을 할 필요가 있나 해서.”
잠시 고민하던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머리가 깨지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리고…….”
건일이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로 했다.
그래도 그는 용기를 쥐어짜 내 아이린에게 물었다.
“어디 가.”
“구경 좀 하게.”
이미 아이린은 반말이 입에 붙은 듯 했다.
그녀는 주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어제 구동 중추를 봤을 때처럼 집중해 부품들을 훑기 시작했다.
건일은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 구동 중추에 눈이 닿았다.
분명히 어제는 완전히 해체된 상태였는데, 오늘은 절반쯤 조립된 상태였다.
처음 본 기계 장치를 하룻밤 새 여기까지 조립한 것이다.
건일은 아이린을 바라봤다.
‘재능이 있는데?’
분명 건일이 있는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뛰어난 엔지니어가 됐을 터였다.
그 얘기는, 혹시라도 아이린이 총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저걸 이해하게 되면, 건일이 마법사가 아닌 게 들통이 나고 만다.
건일은 어떻게든 아이린이 부품을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기회가 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골렘을 갖고 대장간으로 왔다.
하루 종일 골렘을 화로 안에 넣어 녹였다.
꽤나 단단했지만 하루 종일 푹 익혀 버린 탓에 그날 저녁 즈음엔 쇳물이 되어버렸다.
주물을 만드는 작업도 거의 다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녹인 쇳물을 주물에 붓기 시작했다.
이제 주물 안에서 쇳물이 굳기를 기다렸다가 조립을 하면 된다.
대장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끝이 났다.
생각 외로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린이 도와준 덕에 빨리 끝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총기 부품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듯 보였다.
건일의 등가로 식은땀이 흘렀다.
건일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위해, 대장장이들에게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르켈은 보람찬 얼굴로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마을을 구해줬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지. 필요한 건 다 끝난 건가?”
“…네.”
건일이 대답했다. 마르켈은 허허 웃다가 건일에게 말했다.
“그럼 한잔하겠나?”
“아뇨.”
건일이 거절했다.
아직 저번 전투로 인한 환자들이 낫지 않았다.
그 혼자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뭔가 눈치를 챈 듯한 아이린을 여기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간 건일이 마법사가 아니란 게 들통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모면하려면 그녀 옆에 있으면서 사태가 돌아가는 걸 살펴야 했다.
마르켈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건일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알겠네. 그럼 우린 철수하지. 아이린은 여기 남아 있을테고.”
마르켈이 아이린을 바라봤다.
이미 그녀는 남은 구동 중추 절반을 조립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마르켈이 건일을 보며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건일은 주물을 보며 대답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다.
“저도 여기 남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리고 대장장이들과, 테르핀이 집으로 되돌아갔다.
건일은 주물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린은 열심히 구동 중추를 조립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단은 주물은 관심 밖인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건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물을 살폈다.
주물들이 적당히 굳었기에, 주물 안에 있던 부품들을 빼내 조립을 시작했다.
그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건일과 아이린의 손이 거의 동시에 멈췄다.
아이린이 벌써 조립을 끝냈나 하고 돌아보다, 아이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불쑥 물었다.
“당신, 마법사 아니지?”
“응??”
갑작스런 질문에 건일이 당황해했다.
그는 급히 표정을 숨기고 아이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무척이나 확고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뱉은 말에 믿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총기 부품에 대해 이해를 한 모양이었다.
건일이 대체 어떻게 위기를 모면해야 할지 생각하는 동안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 마을에 마법사가 찾아 온 적이 있었어. 그 사람은 우리에게 마법을 가르치려고 했지. 근데,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그나마 나만 재능이 있었어. 그래서 마법을 아주 조금 배울 수 있었지. 그마저도 재능이 없는 거라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마법의 기초는 알아. 당신은 마법사가 아냐.”
아이린은 진짜 마법사를 본 모양이었다.
건일이 진땀을 빼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진짜 마법사라니. 내가 마법사인데…….”
“아니.”
아이린은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마나 포션이 뭔지도 몰라. 게다가 마법사는 최소한 하루에 한 번, 늦어도 이틀에 한 번 명상을 해서 마력을 갈무리해. 근데 당신은 그런 명상을 단 한 번도 안 했어.”
마력을 모으는 과정을 거친다고.
건일이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아이린을 바라봤다.
아이린은 이제 건일의 총을 가리켰다.
“이것도 사실 마법이 아니잖아. 이건 무척 잘 만든… 음… 여튼! 마법은 아냐!”
아이린의 반응을 보니 총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건일은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이들이 총을 모른다는 사실로 이 위기를 벗어나야만 했다.
아이린이 말을 이었다.
“당신,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냐. 마법은 모르면서, 골렘의 구동 중추에 대해선 빠삭하고. 대체 정체가 뭐야?”
아이린이 따져 묻고 있었지만 건일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린에게 마법사가 아니란 사실을 들켰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에게 있어서 총은 특이한 물건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들이 마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골렘의 구동 중추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마법사가 아닌데도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을 바로 이 자리에서 지어내야만 했다.
건일이 필사적으로 눈을 굴렸다.
“아…….”
한 가지 있었다.
건일의 세계에서 마법이 없이 신비한 일을 벌이는 사람을 부르는 단어가.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면 구리를 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쌓아 온 그 수많은 헛짓거리가 지금 건일이 총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난 연금술사야.”
“……??”
아이린은 처음 들어본 단어에 당황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연… 뭐?”
다행히 그녀가 모르는 단어였다.
건일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재차 말했다.
“…연금술사.”
“그, 그게 뭐야?”
“마력 없이 신비한 일을 벌이는 거지. 이거처럼.”
건일이 그의 총을 가리켰다.
아이린이 당황한 사이 건일은 빠르게 몰아붙였다.
“아무 의미 없는 물건들을 조합해 새롭게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게 바로 연금술이야.”
건일 스스로도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감 가득한 표정과 말투를 유지했다.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했던 연기가 지금 이 순간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이린이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건일이 더욱 더 밀어붙일 생각으로 총의 부품을 집어 들었다.
“자, 봐봐. 이건 그냥 평범한 금속이야. 이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하지만. 내가 이렇게 조합해 총을 만드는 걸로…….”
그는 잽싸게 방아쇠를 당겼다.
시끄러운 총성이 울렸다.
아이린이 흠칫 놀라 움찔거렸다.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팔부능선은 족히 넘어온 듯 했다.
건일이 말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는 거지.”
“어… 마력 없이?”
“그래. 마력 없이.”
“우와…….”
아이린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먹혀들었다.
건일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건일이 마력을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은 들켰지만, 최소한 여전히 아이린에겐 신비한 일을 벌이는 사람쯤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아이린은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헤벌린 채 건일을 보다 말했다.
“그럼, 그럼! 당신은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거야??”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에 꽂힌 모양이었다.
건일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아이린이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망치를 건일에게 내밀었다.
건일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럼 여기에 의미를 부여해 봐!”
“윽…….”
뭐라고 회피를 해야 할까.
눈알을 굴리던 건일이 생각을 마치고 말했다.
“의미를 부여해서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 내가 알아야 돼!”
“무슨 소리야, 그게?”
아이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는 터라 건일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얘기를 하지 않으면 끝이다.
건일은 한숨을 내쉬고, 마음 가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도, 적용할 수 있는 의미는 한정돼 있어. 이 금속이 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야. 내가 이 망치에 의미를 부여할 순 있지만, 이 망치에 부여할 수 있는 의미는 한정돼 있어. 다만 내가 그 한정된 의미를 모르니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거야.”
건일은 꽤 그럴 듯하게 얘기했다고 여겼다.
아이린이 시무룩해서 그녀의 망치를 내려다봤다.
건일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아이린을 바라봤다.
아이린이 망치와 건일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말야. 내가 이 망치에 부여할 수 있는 의미를 알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거야? 나도 마력이 없어도?”
“물론!”
건일이 호쾌하게 대답했다.
아이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뭔가 불안불안한 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좋아! 그럼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알려줘! 이 망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윽…….”
산 넘어 산이다.
대체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빠르게 생각한다.
적당히 철학적인 대답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그것도 건일이 제대로 모르는 것 위주로.
건일은 그가 알고 있는 지식 중, 제일 애매모호 했던 고등학교 윤리 시간을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동양 철학.
아마 그쯤에서 괜찮은 것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러자 입은 이미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사물엔 의미가 있어. 오랜 시간 관찰을 해서 그 쓰임새를 파악하고, 더 나아가 본질에 닿으면 의미를 알 수 있지. 거기서부터 시작이야. 그게 되면, 그 뒤에 알려줄게.”
아마 이율곡의 이기이원론이던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됐든, 건일이 생각해도 꽤나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다.
아이린이 파악하는 데 시간을 꽤나 잡아먹을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일단 이 위기를 벗어난 듯 보였다.
아이린은 풀 죽은 표정이었으니까.
그녀는 망치를 내려다보다 천천히 중얼거렸다.
“쉬운 게 하나도 없네.”
“인생이 그래.”
건일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속으로 진땀을 닦아내고 천천히 아이린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마을 사람들한텐, 연금술사란 걸 비밀로 해줄래?”
아이린이 퍼뜩 고개를 들어 건일을 바라봤다.
“왜??”
“연금술사란 게 생소하잖아. 어차피 그 사람들에겐 내가 마법사처럼 보이는데, 굳이 이렇게 어려운 설명을 할 필요가 있나 해서.”
잠시 고민하던 아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머리가 깨지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리고…….”
건일이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