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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화 : 화력 강화 비법]


아르타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우리 마을은 사악한 마법사에게 점령당했소. 놈은 하수인으로 50여 명 가량의 산적을 부리고 있었지.”
“산적뿐이라면 여러분들끼리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 아닙니까?”
아르타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산적만이라면 그렇겠지. 허나, 마법사가 보통 놈이 아니었소. 놈은 골렘을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오.”
“골렘이요?”
건일이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아르타가 잠시 건일을 보다가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몸통이 비정상적으로 컸고, 팔 역시 그에 맞춰 비정상적으로 긴 형태였다.
고릴라를 연상시켰다.
그림을 다 그린 아르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금속으로 된 몸체로 움직이는 괴물이라오. 고릴라를 닮았지.”
이 세계에서도 고릴라는 건일이 알고 있는 그 모습인 것 같았다.
“지금 우리 마을을 인질로 잡은 사악한 마법사가 만든 녀석이지. 놈은 우리 부족원들을 강제로 광산에서 일하게 해서 얻은 광물로 이 골렘들을 만들고 있소이다.”
“크기는요?”
“크기는 대략 5m. 몸통 한 가운데에 구동 중추가 있어서 그것만 부수면 되는데… 화살이나 투창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괴물 같은 놈이지. 현재 우리가 확인한 건 다섯 기 정도요. 더 많을 수도 있소.”
금속이면 조금 까다롭다.
5m 정도에 인간 크기. 몸통 부분의 두께가 대략 50cm는 넘어가는 것이었다.
APC의 장갑도 그 정도로 무식한 형태는 아니었다.
이 상태라면 건일의 저격총으로도 뚫기 힘들어 보였다.
건일이 생각하는 동안, 아르타가 말을 이었다.
“마법사 놈은 이 골렘과 산적 떼를 이끌고 우리 마을을 습격했소이다. 마을 남자들을 강제로 붙잡아 광산에서 일을 시키고 있지. 여자와 아이들에겐 허드렛일을 시키고. 그리고 그중 우리 같은 일부는 마을 밖을 나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사냥을 하고 있다오.”
“으음…….”
마을 밖에 머물고 있지만 도망칠 수는 없다.
도망쳤다간 마을에 있는 가족들이 살해당할 게 빤했으니까.
놈들은 적은 인원만으로 확실하게 사람들을 구속하고 있었다.
그 악랄한 방법에 건일은 치를 떨며, 골렘에 대해 다시 질문을 했다.
“골렘은 금속으로 된 괴물이랬죠? 대체 어떤 금속을 쓰는 거죠?”
“철을 기반으로 한 합금을 쓴다 들었소.”
어떤 합금인지 이 사람들이 모르는 모양이었다. 건일이 턱을 문지르다 말했다.
“그 합금 샘플이 필요합니다.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돼요. 구할 수 있을까요?”
“으음…….”
아르타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테르핀이 말했다.
“내가 갖고 있어요. 동생이 빼돌린 금속이 있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테르핀은 옆에 있던 레칸에게 금속이 있는 장소를 알려줬다.
잠시 뒤, 레칸이 테르핀의 방에서 두꺼운 합금을 갖고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크지는 않고, 딱 사람 주먹만 한 크기였다.
아르타가 부들부들 떨다가 말했다.
“테르핀, 이놈. 대체 이걸 어떻게 갖고 있던 게야?”
테르핀이 난처하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아이린이 저번 생필품 교환 때 갖고 왔어요. 시간이 나면 분석하겠다고, 나더러 잠시 맡아달라던데.”
“아이린, 고것이……!”
아르타가 분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어찌됐던 간에 건일로서는 괜찮은 일이었다.
그는 총을 쥐고 레칸에게 말했다.
“레칸, 그거 땅에 내려놔줘요.”
레칸이 고개를 끄덕이고 합금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건일은 그 주먹만 한 돌에서 가장 두꺼운 곳을 노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탄환이 금속 덩어리를 맞췄다.
그러나 탄환은 금속을 우그러뜨리며, 간신히 덩어리를 관통하기 전까지 갔을 뿐이었다.
건일이 혀를 내둘렀다.
“뭐 이런 단단한 게 다 있어?”
지금 건일이 갖고 있는 총으로는 무리였다.
건일이 당황하는 것을 본 사냥꾼들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건일이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했는데, 시도조차 못 하고 무너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건일은 다른 생각 중이었다.
화력을 더 강화시켜야만 한다.
화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많았지만, 정작 건일이 당장 쓸 수 있는 방법은 제한됐다.
잠시 생각을 하던 건일이 말했다.
“혹시, 여기에 대장간이 있어요?”
아르타가 대꾸했다.
“여기엔 없네만…….”
여기에 없다는 건 다른 곳에는 있다는 소리다.
건일이 재차 물었다.
“어디에 있어요?”
“저기. 우리 가족이 있는 곳.”
테르핀이 끼어들었다. 건일이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대장간이 있어야 되는데…….”
건일이 분해서 중얼거렸다.
그는 땅바닥을 주먹으로 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테르핀이 물었다.
“건일 님. 대장간은 왜요.”
건일이 테르핀을 보곤, 그의 총 중 총신을 두드렸다.
“이 총신을 조금 더 길게만 만들면 화력이 훨씬 더 강해지거든요. 저 금속 덩어리를 꿰뚫을 수 있도록.”
“총신 말입니까. 그 둥근 막대기를 말씀하시는군요. 그거라면…….”
테르핀이 뭔가 묘수가 있는 듯 했다. 건일은 거기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왜 그래요, 뭔가 생각이 있어요?”
“네.”
테르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저쪽 마을에서 요리한 고기를 가져올 겁니다. 아이린이 가져올 거예요. 그때 귀뜸을 주면, 마을 대장간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린이 다시 식량을 보급하러 올 때 몰래 숨겨서 가져오면 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건일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성경에서 그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내로 설계도를 만들게요. 그 총신만 있으면, 저 금속 덩어리 따위 금방 뚫어버릴 수 있습니다.”
건일의 목소리에 다시 자신감이 깃들었다.
그걸 금세 알아챈 사냥꾼들의 얼굴에도 희망이 서렸다.
건일은 급히 사냥꾼들로부터 파피루스와 흑연을 받아 총신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총몸에 딱 맞으면서도 화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그가 원래 있던 세계에서 총을 만들 때 썼던 지식을 총동원했다.
작업은 다른 사람이 잠든 새벽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마땅히 좋은 방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단순히 총신을 개조한다고 해서 화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잠시 파피루스에서 눈을 떼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잘 돼갑니까?”
근처에서 테르핀의 목소리가 들렸다. 건일이 테르핀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 자고 뭐해요.”
“어차피 다리가 이 모양이라 내일 일찍 일어나도 할 일이 없습니다. 그냥 당신이 하는 걸 지켜보고 싶어서요.”
“음...”
건일이 별 말 없이 재차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테르핀은 목발을 짚고 건일 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건일의 예상대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금 되게 고마웠어요. 대장님은 좋은 사람이지만, 너무 고리타분하거든요. 그 고지식함에 당신이 떠날까봐 되게 조마조마했어요.”
“아아…….”
건일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나 여기선 그의 생각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지식한 거 제일 싫어해요, 내가.”
“그럴 거 같았어요. 그리고 정말 호구같이 착해요. 그러지 않으면 혼자 총 들고 쳐들어가겠단 소리는 안 하겠죠.”
테르핀이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건일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차 싶었다.
저 합금으로 만든 골렘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르타가 잡지 않았다면, 지금쯤 테르핀에게 감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고 있었을 터였다.
테르핀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대장님은 내 동생 아이린을 싫어해요.”
보나마나 뻔했다.
건일이 끼어들었다.
“맞춰볼까요.”
테르핀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이린이란 사람, 규율 싫어하죠.”
테르핀이 낄낄거리며 대꾸했다.
“네. 엄청 싫어해요. 아이린은 여잔데, 대장장이가 되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그것도 대놓고.”
“음… 여자가 대장장이라…….”
하긴, 이 정도 문명 수준에 이 정도 인식이라면 여자는 사회 활동이 제한돼 있을 것이다.
대장장이도 여자가 제한된 직종 중 하나였을 테고.
그런데 그런 제한된 직종을 하고 싶다고 대놓고 말하는 여자다.
꽤나 깡다구가 있는 여자일 것이다.
“대장님은 죽도록 싫어했죠. 규율을 어기는 거라고. 하지만 아이린은 굽히지 않았어요. 대장간에 몰래 들어가서 대장장이들이 하는 일들을 어깨너머로 살폈죠.”
“엄청 혼났겠네요.”
“엄청 혼났죠.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이린이 마음껏 하게 내버려 두셨어요. 대장님만 길길이 날뛰었죠. 그래도 어떻게든 대장간으로 기어들어가서 이것저것 배워왔어요.”
그렇게 말을 하는 테르핀의 눈빛이 촉촉해졌다.
감상에 잠겨 있던 테르핀이 문득, 소매로 눈가를 닦아내고 건일을 바라봤다.
“당신, 당신도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있다면서요. 어떤 분이셨어요?”
갑작스런 질문에 건일이 당황했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사실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여기와는 다른 세계에서 드래곤에게 소환당했다고 하면 믿어줄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머리를 굴리다, 최대한 이 세계에 맞게 각색해서 말을 꺼냈다.
“사실 어머니랑 추억이 별로 없어요.”
“아…….”
“아버지가 없었죠. 그래서 어머니는 홀로 날 키우려고 늘 일을 나갔어요. 그래도 무척이나 가난해서 난 나이가 차자마자 군인이 됐어요. 그리고 우연히 전쟁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됐죠.”
테르핀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군인이 아니라 이곳저곳이란 말에 반응한 것이었다.
테르핀이 조심스레 물었다.
“군인이었군요. 군대에서 마법을 배운 건가요?”
“음…….”
건일은 군대에서 사격술을 배웠다.
다만 총기 제작을 배운 건 또 다른 곳이다.
어찌됐든 그들이 생각하는 마법 중 하나는 군대에서 배운 것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군대에서 배웠죠.”
“그렇구나… 그럼 어디어디를 다녀왔어요?”
사실 테르핀이 가장 궁금해했던 건 아마 건일이 돌아다닌 곳이었을 거다.
실제로 그는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건일이 뺨을 긁적였다.
일단 전쟁터였기 때문에 당연히 관광지로 추천할 만한 곳은 없거니와, 그가 있는 세계는 이 세계와는 또 달랐다.
건일은 최대한으로 머리를 굴려 각색했다.
건일이 생각을 쥐어짜내면서 말하기 위해 느리게 말했다.
“처음은 건조한 고지대였습니다. 공기가 맑아서 봉우리에 서면, 다른 쪽 봉우리가 훤히 보일 정도였어요. 그 곳은 저격의 천국이었습니다. 공기가 맑아서 비거리도 괜찮았고, 뭣보다 은폐물이 생각보다 없었어요. 난 거기에 저격수로 파병됐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얘기였다.
그곳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저격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군을 죽인 테러리스트를 죽였단 쾌감과,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공존했던 때였다.
“나쁘진 않았어요. 사람들이 테러리스트에 쫄아 있는 것을 빼면, 그럭저럭 우리와 나쁘지 않게 지냈습니다. 거긴 고산지대라서 가끔씩 숨이 안 쉬어지는데…….”
건일은 슬쩍 테르핀을 봤다.
테르핀은 겪어보지 않은 곳에 대해 얘기를 듣는 것이 정말 좋은 모양이었다.
설령 그게 전쟁 얘기같이 삭막하고 인간미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물론 지금 건일은 전쟁 얘기보다는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얘기 위주로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사람 관계 이야기는 그리 많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이내 그는 다른 장소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다음은 사막이었어요.”
이라크 얘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적을 많이 올린 덕에, 이라크 전진기지에서 총기를 테스트하는 회사 경호 인력으로 파견됐다.
그게 짧은 시간 내에 군인에서 건 스미스로 전직하게 된 계기였다.
“사막인지라 비거리도 안 나고, 시야도 안 보였죠. 문제는 적들 대부분이 생각 외로 단단한 장갑을 갖추고 있단 거였어요. 비거리가 안 나오니 화력이라도 높여보자고 이것저것 끌어다 썼는데…….”
총기 테스트 도중 처음으로 건일이 의견을 냈다.
기술자들이 알아먹질 못하자, 건일이 직접 펜을 들고 설계도로 저격총을 개조했다.
그게 지금까지 건일이 품에 품고 있던 설계도였다.
그리고 지금 업계로 들어오게 된 계기였고.
그 생각이 나자 건일은 슬슬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관통력을 증가시켜보자 해서 나온 게…….”
문득, 건일이 멈춰 섰다.
건일은 자신이 넋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화력보다 관통력을 높이면 되는 일이었다.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까먹고 있었다.
그는 이마를 쳤다.
“젠장! 아주 단순한 걸……!”
총신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급히 설계도를 집어 들었다.
그는 그가 설계한 총신에 더해, 그 옆에 뭔가를 휘갈겨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