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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화 : 불곰사냥 (2)]
건일이 불곰을 발견하고 나서야 불곰 너머에 있는 레칸과 반투를 찾아냈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아르타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일은 언제든지 총을 쏠 수 있도록 방아쇠 위에 손을 올려놨다.
조정간을 단발로 놓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조준쇠를 통해 정확히 불곰의 엉덩이 쪽을 겨누었다.
천천히 방아쇠에 검지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달칵.
약간 가벼운 무게감이 한 번.
이제 여기에 한 번 더 힘을 주면 총이 발사된다.
한 방에 끝내야 된다.
레칸과 반투가 불곰에게서 너무 가깝다.
자칫 잘못하면 저 두 사람이 시선을 끄는 순간 불곰에게 당하고 말 것이었다.
저 멀리 있던 아르타가 시위에 활을 메기고 나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쐐애애액.
불곰 쪽으로 살을 날렸다.
날아간 살은 불곰을 맞추지 않고, 레칸과 반투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을 맞췄다.
불곰의 관심이 그 쪽으로 쏠렸다.
그것을 신호로, 레칸과 반투가 소리를 지르며 불곰의 시야 쪽으로 뛰쳐나왔다.
불곰이 흠칫 놀라 멈칫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카아아아악!”
놈은 입에서 진짜 불을 뿜었다.
“으앗……!”
건일이 깜짝 놀랐다.
잠깐 닿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나무를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곰같이 생긴 녀석이 저런 능력을 갖고 있다니, 이계라는 느낌이 실감이 났다.
불곰은 이제 레칸과 반투에게 달려들었다.
레칸과 반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흩어졌다.
잠시 당황하던 불곰이 레칸 쪽을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일은 불곰의 항문을 정확히 조준할 수 있게 됐다.
건일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커다란 총성과 함께, 레칸에게 달려들던 불곰이 쓰러졌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벙쪄서 가만히 건일을 바라봤다.
다섯이서 달려들어도 잡기 힘들었던 불곰을 단 일격에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마법이지?”
아르타는 반쯤 넋이 빠져 중얼거렸다.
하지만 건일에겐 그 위력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쪽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테사라가 총을 쏘기 전 그에게 알려 달라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었다.
건일은 아차 싶어서 테사라를 바라봤다.
테사라는 경악과 고통이 오묘하게 비벼진 표정으로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건일이 허허, 쓴 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네.”
건일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는 동안 레칸과 반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일을 시작했다.
코앞에서 불이 붙은지라 금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불곰이 아주 잠깐 불을 내뿜었을 뿐이었지만 그 근처는 이미 불바다였다.
그런데도 불곰의 가죽은 그을리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레칸은 정글도로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쳐내며 길을 텄다.
반투가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슬슬 오시죠! 해체해야 되는데!”
“알겠다!”
반대편에 있던 아르타가 대답하고 나무에서 내려왔다.
건일 역시 가볍게 내려와 쓰러진 불곰 쪽으로 향했다.
반투와 레칸은 그 불길 속에서 용케 불곰의 시체를 끌어낸 뒤였다.
두 사람은 힘을 합쳐서 불곰 시체를 나무에 매달았다.
“오셨어요.”
건일이 도착하자, 반투가 아는 체를 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하지만 레칸은 조금 바쁜 듯했다.
그는 짐에서 가죽을 둘둘 말아둔 단도를 꺼냈다.
검을 감싸고 있던 가죽을 풀자 무척이나 예리한 날이 드러났다.
레칸은 이리저리 칼을 살피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불곰 쪽으로 걸어갔다.
“반투, 양동이.”
“어.”
반투가 그의 짐에서 양동이를 몇 개 꺼냈다. 그가 양동이를 곰의 시체 아래쪽에 가져다놓자, 레칸이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곰의 머리 쪽에 있는 동맥을 절단했다.
양동이에 빠르게 피가 차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자란지, 레칸은 나무 위로 올라가 곰의 양 발목 부분에도 칼집을 냈다.
그러자 목 부분에서 흘러나온 피가 더욱 더 빠르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양동이가 피로 가득 차자, 반투는 새 양동이를 갖다놓았다.
가득 찬 양동이에는 소금을 뿌렸다.
천천히 피가 선지처럼 굳어져갔다.
반투는 그걸 한 대접 떠서 건일에게 내밀었다.
“드시죠.”
“아.”
건일이 대접을 받아들었다.
그는 피가 담긴 대접을 내려다봤다.
예전에 특전사 훈련 때 산 속에서 살며 피를 받아 마신 이후로 처음이었다.
건일은 별 거리낌 없이 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약간 뜨뜻한 피에 적당히 간이 배어 있어 먹을 만했다.
한 대접을 비워 반투에게 내밀자 반투도 한 대접을 떠서 마셨다.
그는 이제 레칸에게도 피를 권했다.
팔짱을 낀 채 피를 빼던 작업을 지켜보던 레칸이 천천히 말했다.
“대장이 늦는데.”
“그러게.”
반투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레칸은 반투에게서 피를 받아 마셨다. 입가에 피가 조금 흘렀지만 괘념치 않고, 팔로 스윽 닦아냈다.
반투는 두 번째 양동이를 치우고 세 번째 양동이를 갖다 댔다.
그는 건일을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좀 찾아봐 주시겠어요? 저흰 일을 해야 돼서…….”
“아. 네.”
건일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르타가 있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껏해야 500m 거리인데 아직까지 오지 않은 건 분명히 이상했다.
오는 도중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흐음…….”
건일이 난처하게 뒷머리를 긁적이고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아얏!”
테사라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건일이 깜짝 놀라 급히 비명이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가까운 곳이었다. 그리고 이내 테사라와 아르타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건일이 소리치며 다가섰다.
테사라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발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르타가 난처한 표정으로 건일을 바라봤다.
“테사라가 방금 나무에서 내려오다 발을 삐었소. 혼자 여기까지 오다가 많이 아파진 모양이오.”
“발을요?”
“그렇소.”
건일이 잠시 아르타를 바라봤다.
나무에서 이곳까지 꽤 거리가 된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오게 시킨 모양이었다.
건일이 말했다.
“업어줄 수도 있잖아요.”
“안 됩니다. 마을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오.”
건일은 그놈의 규율에 짜증이 났다.
그는 툴툴거리는 말을 애써 삼키고, 테사라에게 다가갔다.
“상처 좀 보자.”
건일은 상처를 살피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얼마나 아픈지 테사라는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아르타의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건일에게 발목을 보여줬다.
왼쪽 발목이었는데, 삔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슬슬 붓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도 꽤 복잡하다.
건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우, 이거 좀 심하게 붓겠는데…….”
“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저 멀리서 비명을 듣고 레칸과 반투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르타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별거 아니다. 테사라가 발목을 삐었어.”
“네?”
레칸이 놀라 물었다.
“많이 다쳤어요?”
아르타가 테사라의 상처를 살폈다.
“아니. 괜찮아 보인다.”
괜찮다는 말에 건일이 발끈해 뒤를 돌아봤다.
“괜찮다뇨. 이거 제대로 못 걸…….”
그러나 아르타가 또다시 기백 있는 목소리로, 건일의 말을 잘라냈다.
“그나저나 니들. 불곰을 해체할 때 기도는 드렸냐.”
레칸과 반투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건일은 그들이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바로 해체 작업에 들어간 걸 봤으니까.
아르타가 재차 말했다.
“기도를 드렸냐고 물었다.”
레칸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저, 시간이 없어서 일단 해체부터 했는데요.”
“시간이 얼마가 들든! 생명을 빼앗았는데 기도를 드리지 않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아르타가 호통을 쳤다. 어마어마한 호통 소리에 건일의 귀가 먹먹해질 것 같았다.
레칸은 잠시 움츠렸다 말했다.
“하지만 대장님. 오늘 내로 끝내서 출발하려면 기도할 시간 없습니다. 대장님도 시간이 없다는 걸…….”
“사냥을 한 뒤 기도를 드리는 건 규율 아니더냐!”
아르타가 다시 일갈했다.
옆에 서 있던 반투가 마지못해 레칸을 툭툭 건드렸다.
레칸은 이를 깨물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도부터 드리겠습니다. 근데 대장님. 테사라에게 고기를 들게 할 생각입니까?”
아르타가 테사라를 힐끗 바라봤다.
건일이 생각하건대, 절대 무거운 걸 짊어 메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짊어 메고 간다.”
아르타가 그렇게 확고하게 대답했다. 건일이 놀라 아르타를 바라봤다.
그러나 레칸이 반발했다.
“애 발목 다쳤다면서요. 거기에 고기를 더 메면 발목 부수는 일 아닙니까.”
“괜찮아. 내가 더 짊어 메고 간다.”
“대장님. 그러지 말고… 건일 님께 부탁을 드리는 게…….”
레칸이 건일을 바라봤다.
그러나 아르타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된다. 우린 드릴 게 많이 없어. 지금 테사라의 몫의 은혜도 갚아야 된다.”
레칸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아르타를 보다가 짜증스레 말했다.
“하… 그럼 불곰 고기랑 가죽은 어쩝니까. 넷이서 들어야 되는데.”
“일단…….”
건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단검을 꺼내 근처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베어냈다.
그런 다음, 테사라에게 다가갔다.
“옷 좀 찢으마.”
테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은 테사라의 웃옷에서 조금 남는 부분을 뜯어냈다.
그는 부목과 천으로 테사라의 발목을 고정시켰다.
아르타는 레칸과 반투에게 말했다.
“일단 작업해. 내가 2인분을 짊어 메마.”
반투가 난처하게 말했다.
“하, 하지만 대장님. 기도까지 드리고, 2인분까지 짊어 메면 저희 제 시간에 못 갑니다. 테르핀의 짐이랑 테르핀도 생각하셔야죠.”
“어떻게든 하면 돼.”
“어떻게, 라고 하셔도…….”
반투가 말끝을 흐리며 건일을 바라봤다.
건일 역시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타가 무거운 목소리로 전환했다.
“반투, 레칸. 작업을 재개해라.”
레칸과 반투는 마뜩찮은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 이상 별 말을 하지 않고 되돌아갔다.
아르타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건일은 테사라의 발목에 부목을 대는 작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내 쭈구려 앉아 테사라에게 등을 보였다.
“업혀.”
“네? 괘, 괜찮아요!”
테사라가 손을 내저었지만, 아르타가 말했다.
“고기를 해체하는 곳까지 업혀가거라. 건일 님. 대신 고기를 더 많이 드리겠소. 괜찮으시오?”
테사라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건일의 등에 업혔다.
건일은 생각보다 테사라가 무겁다는 것과,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근육질이란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업고 가지 못할 무게는 아니다.
건일은 테사라를 업고 나서 대답했다.
“네. 그게 편하시다면요.”
그리고 테사라를 업은 채 레칸과 반투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 절반쯤 갔을 때, 테사라가 천천히 말했다.
“건일 씨. 저희를 도와주세요.”
“으음…….”
건일은 난감했다.
아르타가 이 사람들의 대장인 듯한데, 이 사람이 건일을 마을로 못 오게 막고 있다.
여기서 건일이 넙죽 다른 사냥꾼들의 의견을 들어 마을로 간다면,
아르타의 권위가 무너질 게 빤했다.
건일의 시선을 느낀 아르타가 건일을 바라봤다.
그는 약간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테사라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테르핀은 완전히 짐인 상황에서 남은 세 명이 마을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느새 세 사람은 고기를 해체하는 장소까지 왔다.
레칸과 반투는 불곰 앞에 불을 피워두고 연신 절을 올리고 있었다.
아르타는 레칸과 반투에게 걸어가는가 싶더니 건일 쪽으로 돌아섰다.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건일 씨. 마을로 가는 걸 도와주시겠소? 내 대접은 최대한으로 해드리리라.”
건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얼마든지요.”
건일이 불곰을 발견하고 나서야 불곰 너머에 있는 레칸과 반투를 찾아냈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아르타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일은 언제든지 총을 쏠 수 있도록 방아쇠 위에 손을 올려놨다.
조정간을 단발로 놓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조준쇠를 통해 정확히 불곰의 엉덩이 쪽을 겨누었다.
천천히 방아쇠에 검지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달칵.
약간 가벼운 무게감이 한 번.
이제 여기에 한 번 더 힘을 주면 총이 발사된다.
한 방에 끝내야 된다.
레칸과 반투가 불곰에게서 너무 가깝다.
자칫 잘못하면 저 두 사람이 시선을 끄는 순간 불곰에게 당하고 말 것이었다.
저 멀리 있던 아르타가 시위에 활을 메기고 나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쐐애애액.
불곰 쪽으로 살을 날렸다.
날아간 살은 불곰을 맞추지 않고, 레칸과 반투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을 맞췄다.
불곰의 관심이 그 쪽으로 쏠렸다.
그것을 신호로, 레칸과 반투가 소리를 지르며 불곰의 시야 쪽으로 뛰쳐나왔다.
불곰이 흠칫 놀라 멈칫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카아아아악!”
놈은 입에서 진짜 불을 뿜었다.
“으앗……!”
건일이 깜짝 놀랐다.
잠깐 닿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나무를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곰같이 생긴 녀석이 저런 능력을 갖고 있다니, 이계라는 느낌이 실감이 났다.
불곰은 이제 레칸과 반투에게 달려들었다.
레칸과 반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흩어졌다.
잠시 당황하던 불곰이 레칸 쪽을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일은 불곰의 항문을 정확히 조준할 수 있게 됐다.
건일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커다란 총성과 함께, 레칸에게 달려들던 불곰이 쓰러졌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벙쪄서 가만히 건일을 바라봤다.
다섯이서 달려들어도 잡기 힘들었던 불곰을 단 일격에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마법이지?”
아르타는 반쯤 넋이 빠져 중얼거렸다.
하지만 건일에겐 그 위력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쪽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테사라가 총을 쏘기 전 그에게 알려 달라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었다.
건일은 아차 싶어서 테사라를 바라봤다.
테사라는 경악과 고통이 오묘하게 비벼진 표정으로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건일이 허허, 쓴 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네.”
건일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는 동안 레칸과 반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일을 시작했다.
코앞에서 불이 붙은지라 금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불곰이 아주 잠깐 불을 내뿜었을 뿐이었지만 그 근처는 이미 불바다였다.
그런데도 불곰의 가죽은 그을리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레칸은 정글도로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쳐내며 길을 텄다.
반투가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슬슬 오시죠! 해체해야 되는데!”
“알겠다!”
반대편에 있던 아르타가 대답하고 나무에서 내려왔다.
건일 역시 가볍게 내려와 쓰러진 불곰 쪽으로 향했다.
반투와 레칸은 그 불길 속에서 용케 불곰의 시체를 끌어낸 뒤였다.
두 사람은 힘을 합쳐서 불곰 시체를 나무에 매달았다.
“오셨어요.”
건일이 도착하자, 반투가 아는 체를 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하지만 레칸은 조금 바쁜 듯했다.
그는 짐에서 가죽을 둘둘 말아둔 단도를 꺼냈다.
검을 감싸고 있던 가죽을 풀자 무척이나 예리한 날이 드러났다.
레칸은 이리저리 칼을 살피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불곰 쪽으로 걸어갔다.
“반투, 양동이.”
“어.”
반투가 그의 짐에서 양동이를 몇 개 꺼냈다. 그가 양동이를 곰의 시체 아래쪽에 가져다놓자, 레칸이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곰의 머리 쪽에 있는 동맥을 절단했다.
양동이에 빠르게 피가 차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자란지, 레칸은 나무 위로 올라가 곰의 양 발목 부분에도 칼집을 냈다.
그러자 목 부분에서 흘러나온 피가 더욱 더 빠르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양동이가 피로 가득 차자, 반투는 새 양동이를 갖다놓았다.
가득 찬 양동이에는 소금을 뿌렸다.
천천히 피가 선지처럼 굳어져갔다.
반투는 그걸 한 대접 떠서 건일에게 내밀었다.
“드시죠.”
“아.”
건일이 대접을 받아들었다.
그는 피가 담긴 대접을 내려다봤다.
예전에 특전사 훈련 때 산 속에서 살며 피를 받아 마신 이후로 처음이었다.
건일은 별 거리낌 없이 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약간 뜨뜻한 피에 적당히 간이 배어 있어 먹을 만했다.
한 대접을 비워 반투에게 내밀자 반투도 한 대접을 떠서 마셨다.
그는 이제 레칸에게도 피를 권했다.
팔짱을 낀 채 피를 빼던 작업을 지켜보던 레칸이 천천히 말했다.
“대장이 늦는데.”
“그러게.”
반투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레칸은 반투에게서 피를 받아 마셨다. 입가에 피가 조금 흘렀지만 괘념치 않고, 팔로 스윽 닦아냈다.
반투는 두 번째 양동이를 치우고 세 번째 양동이를 갖다 댔다.
그는 건일을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좀 찾아봐 주시겠어요? 저흰 일을 해야 돼서…….”
“아. 네.”
건일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르타가 있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껏해야 500m 거리인데 아직까지 오지 않은 건 분명히 이상했다.
오는 도중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소리라도 들렸을 텐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흐음…….”
건일이 난처하게 뒷머리를 긁적이고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아얏!”
테사라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건일이 깜짝 놀라 급히 비명이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가까운 곳이었다. 그리고 이내 테사라와 아르타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건일이 소리치며 다가섰다.
테사라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발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르타가 난처한 표정으로 건일을 바라봤다.
“테사라가 방금 나무에서 내려오다 발을 삐었소. 혼자 여기까지 오다가 많이 아파진 모양이오.”
“발을요?”
“그렇소.”
건일이 잠시 아르타를 바라봤다.
나무에서 이곳까지 꽤 거리가 된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오게 시킨 모양이었다.
건일이 말했다.
“업어줄 수도 있잖아요.”
“안 됩니다. 마을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오.”
건일은 그놈의 규율에 짜증이 났다.
그는 툴툴거리는 말을 애써 삼키고, 테사라에게 다가갔다.
“상처 좀 보자.”
건일은 상처를 살피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얼마나 아픈지 테사라는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그는 잠시 아르타의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건일에게 발목을 보여줬다.
왼쪽 발목이었는데, 삔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슬슬 붓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도 꽤 복잡하다.
건일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우, 이거 좀 심하게 붓겠는데…….”
“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저 멀리서 비명을 듣고 레칸과 반투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르타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별거 아니다. 테사라가 발목을 삐었어.”
“네?”
레칸이 놀라 물었다.
“많이 다쳤어요?”
아르타가 테사라의 상처를 살폈다.
“아니. 괜찮아 보인다.”
괜찮다는 말에 건일이 발끈해 뒤를 돌아봤다.
“괜찮다뇨. 이거 제대로 못 걸…….”
그러나 아르타가 또다시 기백 있는 목소리로, 건일의 말을 잘라냈다.
“그나저나 니들. 불곰을 해체할 때 기도는 드렸냐.”
레칸과 반투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건일은 그들이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바로 해체 작업에 들어간 걸 봤으니까.
아르타가 재차 말했다.
“기도를 드렸냐고 물었다.”
레칸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저, 시간이 없어서 일단 해체부터 했는데요.”
“시간이 얼마가 들든! 생명을 빼앗았는데 기도를 드리지 않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아르타가 호통을 쳤다. 어마어마한 호통 소리에 건일의 귀가 먹먹해질 것 같았다.
레칸은 잠시 움츠렸다 말했다.
“하지만 대장님. 오늘 내로 끝내서 출발하려면 기도할 시간 없습니다. 대장님도 시간이 없다는 걸…….”
“사냥을 한 뒤 기도를 드리는 건 규율 아니더냐!”
아르타가 다시 일갈했다.
옆에 서 있던 반투가 마지못해 레칸을 툭툭 건드렸다.
레칸은 이를 깨물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도부터 드리겠습니다. 근데 대장님. 테사라에게 고기를 들게 할 생각입니까?”
아르타가 테사라를 힐끗 바라봤다.
건일이 생각하건대, 절대 무거운 걸 짊어 메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짊어 메고 간다.”
아르타가 그렇게 확고하게 대답했다. 건일이 놀라 아르타를 바라봤다.
그러나 레칸이 반발했다.
“애 발목 다쳤다면서요. 거기에 고기를 더 메면 발목 부수는 일 아닙니까.”
“괜찮아. 내가 더 짊어 메고 간다.”
“대장님. 그러지 말고… 건일 님께 부탁을 드리는 게…….”
레칸이 건일을 바라봤다.
그러나 아르타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된다. 우린 드릴 게 많이 없어. 지금 테사라의 몫의 은혜도 갚아야 된다.”
레칸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아르타를 보다가 짜증스레 말했다.
“하… 그럼 불곰 고기랑 가죽은 어쩝니까. 넷이서 들어야 되는데.”
“일단…….”
건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단검을 꺼내 근처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베어냈다.
그런 다음, 테사라에게 다가갔다.
“옷 좀 찢으마.”
테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은 테사라의 웃옷에서 조금 남는 부분을 뜯어냈다.
그는 부목과 천으로 테사라의 발목을 고정시켰다.
아르타는 레칸과 반투에게 말했다.
“일단 작업해. 내가 2인분을 짊어 메마.”
반투가 난처하게 말했다.
“하, 하지만 대장님. 기도까지 드리고, 2인분까지 짊어 메면 저희 제 시간에 못 갑니다. 테르핀의 짐이랑 테르핀도 생각하셔야죠.”
“어떻게든 하면 돼.”
“어떻게, 라고 하셔도…….”
반투가 말끝을 흐리며 건일을 바라봤다.
건일 역시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타가 무거운 목소리로 전환했다.
“반투, 레칸. 작업을 재개해라.”
레칸과 반투는 마뜩찮은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 이상 별 말을 하지 않고 되돌아갔다.
아르타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건일은 테사라의 발목에 부목을 대는 작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내 쭈구려 앉아 테사라에게 등을 보였다.
“업혀.”
“네? 괘, 괜찮아요!”
테사라가 손을 내저었지만, 아르타가 말했다.
“고기를 해체하는 곳까지 업혀가거라. 건일 님. 대신 고기를 더 많이 드리겠소. 괜찮으시오?”
테사라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건일의 등에 업혔다.
건일은 생각보다 테사라가 무겁다는 것과,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근육질이란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업고 가지 못할 무게는 아니다.
건일은 테사라를 업고 나서 대답했다.
“네. 그게 편하시다면요.”
그리고 테사라를 업은 채 레칸과 반투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 절반쯤 갔을 때, 테사라가 천천히 말했다.
“건일 씨. 저희를 도와주세요.”
“으음…….”
건일은 난감했다.
아르타가 이 사람들의 대장인 듯한데, 이 사람이 건일을 마을로 못 오게 막고 있다.
여기서 건일이 넙죽 다른 사냥꾼들의 의견을 들어 마을로 간다면,
아르타의 권위가 무너질 게 빤했다.
건일의 시선을 느낀 아르타가 건일을 바라봤다.
그는 약간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테사라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테르핀은 완전히 짐인 상황에서 남은 세 명이 마을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느새 세 사람은 고기를 해체하는 장소까지 왔다.
레칸과 반투는 불곰 앞에 불을 피워두고 연신 절을 올리고 있었다.
아르타는 레칸과 반투에게 걸어가는가 싶더니 건일 쪽으로 돌아섰다.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건일 씨. 마을로 가는 걸 도와주시겠소? 내 대접은 최대한으로 해드리리라.”
건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얼마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