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005화 : 불곰 사냥]
건일의 실력과 총의 위력을 본 아르타는 테르핀의 텐트로 갔다.
아르타는 텐트 앞에서 말했다.
“애들과 얘기를 하고 오겠소.”
그렇게 말한 뒤, 건일을 남겨두고 텐트로 들어갔다.
하지만 별다른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잠시 뒤 아르타와 동료들은 자신들의 장비를 챙겨들고 텐트에서 걸어 나왔다.
아르타는 건일을 보며 물었다.
“시간이 많이 없소이다. 지금 당장 잡으러 가야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이죠. 잠시만요.”
건일은 텐트로 들어가, 그의 더플백에서 탄창 몇 개를 챙겼다.
탄환 보급이 안 되는 상황에서 탄창을 소모만 하니 슬슬 불안해졌다.
건일은 잠시 남아 있는 탄창의 수를 세고 나서 텐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불곰이 무엇이든 간에 최소한의 탄만으로 잡기로 다짐했다.
아르타는 건일이 밖으로 나오자, 그의 동료들을 소개시켜 주기 시작했다.
“이쪽은 레마의 아들, 레칸.”
얼굴은 순박했지만, 몸은 흉기급으로 우락부락한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켈테르의 아들, 반투.”
날렵한 인상의 젊은이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리고 제르바의 아들, 테사라요.”
마지막으로 일행 중 제일 어린 아이가 고개를 꾸벅였다.
아르타는 이제 강가 상류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한의 아들, 건일. 시간이 없으니 걸으면서 설명해도 되겠소?”
질문을 하긴 했지만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건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레칸이 맨 앞에 서서 뭉툭한 정글도로 휙휙,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넝쿨들을 치워내고 있었다.
아르타가 말했다.
“우리는 불곰을 잡을 거요. 드래곤을 빼면 이 지역 생태계의 왕이라 불리는 놈이지.”
불곰, 불곰 하는데 건일은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러시아의 불곰이 생각이 났다.
잠시 얼굴을 찡그리던 건일이 물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놈입니까?”
아르타가 고민을 하다 말했다.
“음… 일단 4족 보행에… 육식이고, 덩치가 무지막지하게 큰 녀석이오. 주둥이가 툭 튀어나와 있는데, 무시무시하지.”
여기까지는 건일이 알고 있는 불곰 같았다.
그러나.
“그런데 놈은 입에서 불을 뿜어 내오. 그래서 불곰이라오.”
“하아……?”
아르타의 입에서 꽤나 직관적인 설명이 나왔다.
불을 뿜어내서 불곰. 이만큼 단순명료한 설명이 있을까.
아르타가 말을 이었다.
“놈이 불을 뿜어서인지는 몰라도, 불곰의 가죽은 상당한 내열성을 가지고 있소이다. 고기도 고기지만, 일단 가죽이 필요하다오.”
“가죽이 주군요. 그럼 머리를 쏴서 한 방에 죽여야겠군요.”
그러지 않으면 귀한 가죽이 상하고 마니까.
머리 미간을 정확히 꿰뚫는다면 다른 부위의 가죽이 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르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리를 쏘면 안 되오.”
“왜죠?”
“머리 가죽도 필요하오.”
“귀찮군요.”
건일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건일을 바라봤다.
힘들겠다가 아니라 귀찮다라는 감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건일이 잡고 있는 총을 보자, 다른 말을 내뱉지는 못 했다.
건일은 어디를 쏴야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 혼자서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결국 아르타에게 묻기로 했다.
“그럼 어디를 쏴야 합니까?”
“겨드랑이. 혹은 꼬리 쪽.”
“흐음…….”
둘 다 치명적인 급소다.
건일이 겨드랑이를 쏘는 건 무리다.
자칫 가죽 채로 꿰뚫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꼬리 쪽이다.
“항문 쪽을 쏴야겠군요. 내장은 안 먹습니까?”
아르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곰의 내장은 너무 구린내가 심해서 먹을 수가 없소.”
구린내란 말에 건일은 문득 마늘을 생각했다.
소 내장도 마늘 없이 먹으면 잡내가 꽤나 난다는 게 떠올랐다.
그는 불쑥 막창이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막창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괜히 입맛만 다셨다.
“그렇군요.”
건일의 반응에 아르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건일의 표정은 맛있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타가 물었다.
“그쪽은 내장을 먹는 것이오?”
건일은 표정이 훤히 드러나고 있단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 먹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아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 곳에서 왔다더니, 문화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오.”
“그렇죠.”
건일이 키득였다.
하지만 잡담은 그걸로 끝이었다.
레칸이 걷는 속도를 더욱 더 높였다.
그는 정글도로 넝쿨을 뚫고 가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사냥꾼들도 그에 맞춰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건일은 슬슬 뒤쳐지기 시작했다.
사냥꾼들 모두 건일보다 훨씬 많은 짐을 짊어 메고 있었지만, 건일이 쫓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특전사 때 완전군장 급속 행군을 할 때도 이렇게 빨리 걷진 않았다.
심지어 급속 행군은 이런 험지가 아니라 아스팔트 도로 위였다.
그런데 사냥꾼들은, 그 당시 건일보다 훨씬 더 무거운 군장을 메고 험지를 내달리듯 걷고 있었다.
심지어 나이가 배는 많은 거 같은 아르타마저도.
무시무시한 체력이었다.
건일은 악에 받쳐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세 건일의 체력이 바닥이 나고 말았다.
“잠깐… 잠깐만요……!”
결국 하다 못한 건일이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사냥꾼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건일을 쳐다봤다.
막내인 테사라도 힘든 내색이 없었는데, 건일만 거의 죽어가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창피한 것보다 너무 힘들었다.
건일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좀, 쉬었다, 갑시다.”
레칸이 아르타를 바라봤다. 아르타는 마뜩찮은 표정을 짓긴 했지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시 휴식.”
그 말에 다들 적당한 나무에 몸을 기댔다. 건일은 제일 가까운 나무에 쓰러져서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 정도 숨이 고르게 되자, 짐에서 물통을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벌컥벌컥이 아니라, 조금씩 입을 축여가면서.
그걸 보던 아르타가 말했다.
“행군의 기본은 아는 모양이오.”
건일이 천천히 목을 축이고 말했다.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아르타는 마뜩찮은 표정이다.
“그런데 체력이 영…….”
‘당신들이 무식하게 튼튼한 겁니다’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삼켰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괜히 말하면 자존심만 상할 것 같았다.
건일이 뚱한 표정으로 목만 축이자, 아르타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테르핀의 가방에 있던 보존 식량과는 뭔가 다른 것이었다.
아르타는 검지 손가락만 한 그것을 건일에게 내밀었다.
건일은 차마 받아들지 못하고 그것과 아르타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그래도 설명이 없자 건일이 물었다.
“이게……?”
아르타가 말했다.
“보르차라오.”
“보르차……?”
“힘이 없을 때 먹으면 힘이 나는 거요.”
건일이 마지못해 보르차를 받고 한 입 조금 베어 물었다.
엄청난 양의 돼지기름 맛과, 사이사이에 견과류 맛이 느껴졌다.
식은 기름이다.
건일의 표정이 금세 안 좋아졌다.
“이, 이건…….”
아르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돼지기름에 돼지고기 조금, 그리고 견과류를 넣은 거요.”
그 설명에 더욱 더 속이 안 좋아졌다.
이 사람들은 용케 이런 걸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돼지기름에 견과류 기름.
따뜻해서 액체 상태라면 모를까, 이렇게 허옇게 굳은 걸 먹는 건 고역이다.
돼지고기를 넣었다는데 돼지고기 맛은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건일은 아르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장난이 아니라 선의로 그에게 이 맛대가리 없는 걸 내민 모양이었다.
건일은 눈알을 굴리며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물과 함께 보르차를 먹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름이 물에 섞이자 더욱 더 먹기 힘든 맛이 났다.
하지만 최소한, 보르차만 먹을 때와는 달리 최소한 목 너머로 넘길 수는 있었다.
건일이 보르차와 씨름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쉬면서 장비를 정비하고 있었다.
레칸은 헝겊으로 정글도를 깨끗이 닦아내고 있었다.
넝쿨들을 베느라 칼에 묻어 있던 찌꺼기들을 제거하자, 정글도가 더욱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헝겊으로 닦아낸 뒤에 정글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테사라는 눈을 감은 채였다.
그는 숨까지 최대한 억제해서 마치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눈을 치켜떴다.
“근처에 불곰이 있어요.”
“응?”
건일은 테사라가 초능력자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장비를 점검했다.
건일이 보르차를 거의 끝장내고, 테사라에게 물었다.
“어떻게 안 거니?”
테사라는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말했다.
“들려요.”
테사라가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조용히 있으면, 사방에 있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 중에서 불곰 특유의 숨소리를 들었어요.”
“숨소리를 들을 정도면 꽤 가까운 데 있다는 건데…….”
건일이 불안감에 총을 꼬나 쥐었다.
하지만 아르타가 고개를 가로젓고 화살을 확인하며 말했다.
“한 1㎞ 정도 거리가 있을 거요.”
“1㎞요?”
이 곳에서도 ㎞단위를 쓰는 것에 놀랐다.
꽤나 편리한 세계였다.
하지만 그보다 놀란 건…….
“1㎞ 밖에 있는 소리가 들린단 말야?”
테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타가 대신 말을 해줬다.
“그 아인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소. 남들이 듣지 못한 소리를 듣고, 어떤 소리라도 구별할 수 있었다네. 천부적인 추격꾼이라오.”
“과연…….”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력이 무지막지하게 좋은 꼬마였다.
하지만, 문득 그가 자신의 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력이 좋다면 걱정되는 게 있다.
건일이 천천히 말했다.
“이거, 쏠 때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가 나는데…….”
“알아요.”
테사라가 건일의 말을 잘라냈다.
“대장님이랑 나갈 때 난 소리가, 그거죠?”
새를 쏠 때 난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쏘기 전에, 알려줄 수 있으면 알려주세요. 소리가 너무 커서 괴로워요.”
역시, 이 아이에게 총소리는 고역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러지.”
“다 쉬었소?”
아르타가 끼어들었다.
건일은 자신의 다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느꼈다.
오래 걸은 탓에 슬슬 욱신욱신하지만, 방금 전보다는 좋았다.
건일이 대답했다.
“네.”
“그럼 일어나시오. 불곰이 근처에 있소이다. 테사라, 레칸 뒤에 붙어서 소리를 듣거라. 우리가 엄호하마.”
“네!”
테사라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행군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번엔 근처에 불곰이 있단 테사라의 말 때문인지 속도가 한 풀 꺾여나갔다.
선두에서 정글도로 길을 내던 레칸 역시 호쾌하게 길을 내기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딱딱 넝쿨을 베어내고 있었다.
소음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였다.
레칸의 뒤를 따라가던 테사라는 온 신경을 다해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갑자기 테사라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다른 사냥꾼들이 멈춰 섰다.
아마 저것이 멈추라는 수신호인 듯 보였다.
테사라가 아르타를 돌아보고 말했다.
“300m 앞에 불곰이 있어요.”
아르타는 살을 시위에 메기고 고개를 끄덕이고 속삭이듯 말했다.
“레칸, 보이나?”
“아뇨.”
“레칸, 반투와 같이 정면으로 가라. 내가 신호를 주면 불곰의 주의를 끌어. 건일, 당신은우회해서 불곰의 꽁무니로 돌아갑시다. 400m 정도 움직이면 될 거요. 항문을 쏘는 걸 잊지 마시오. 테사라, 너는 날 따라와라.”
“네.”
사냥꾼들이 빠르게 대답했다.
건일은 대답 대신 총을 꼬나 쥐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레칸과 반투가 앞서 걸었다.
테사라와 아르타는 좌측으로, 그리고 건일은 우측으로 우회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400m 가량을 돌아 적당한 나무를 찾았다. 건일이 총을 뒤로 메고 잽싸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대략 5m정도 올라간 뒤에 나뭇가지 위에서 최대한 편하게 자세를 잡고 주변을 둘러 봤다.
건일의 반대편에서 아르타가 나무에 오른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건일은 레칸과 반투가 있을 만한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레칸과 반투를 찾기 전, 불곰이 먼저 보였다.
건일이 알고 있는 곰과 비슷하고도 달랐다.
몸체는 곰과 비슷했지만, 앞다리가 훨씬 더 길어 고릴라가 네 다리로 걷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털도 그가 알고 있는 불곰과는 달리 사람의 머리칼처럼 윤기 있는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놈의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바닥에서 어깨까지 대략 2m는 되어 보이는 녀석은, 주둥이에서 꼬리까지 5m는 족히 되어 보였다.
‘무식하게 크구만.’
건일이 마른 침을 삼켰다.
건일의 실력과 총의 위력을 본 아르타는 테르핀의 텐트로 갔다.
아르타는 텐트 앞에서 말했다.
“애들과 얘기를 하고 오겠소.”
그렇게 말한 뒤, 건일을 남겨두고 텐트로 들어갔다.
하지만 별다른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잠시 뒤 아르타와 동료들은 자신들의 장비를 챙겨들고 텐트에서 걸어 나왔다.
아르타는 건일을 보며 물었다.
“시간이 많이 없소이다. 지금 당장 잡으러 가야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이죠. 잠시만요.”
건일은 텐트로 들어가, 그의 더플백에서 탄창 몇 개를 챙겼다.
탄환 보급이 안 되는 상황에서 탄창을 소모만 하니 슬슬 불안해졌다.
건일은 잠시 남아 있는 탄창의 수를 세고 나서 텐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불곰이 무엇이든 간에 최소한의 탄만으로 잡기로 다짐했다.
아르타는 건일이 밖으로 나오자, 그의 동료들을 소개시켜 주기 시작했다.
“이쪽은 레마의 아들, 레칸.”
얼굴은 순박했지만, 몸은 흉기급으로 우락부락한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켈테르의 아들, 반투.”
날렵한 인상의 젊은이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리고 제르바의 아들, 테사라요.”
마지막으로 일행 중 제일 어린 아이가 고개를 꾸벅였다.
아르타는 이제 강가 상류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한의 아들, 건일. 시간이 없으니 걸으면서 설명해도 되겠소?”
질문을 하긴 했지만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건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레칸이 맨 앞에 서서 뭉툭한 정글도로 휙휙,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넝쿨들을 치워내고 있었다.
아르타가 말했다.
“우리는 불곰을 잡을 거요. 드래곤을 빼면 이 지역 생태계의 왕이라 불리는 놈이지.”
불곰, 불곰 하는데 건일은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러시아의 불곰이 생각이 났다.
잠시 얼굴을 찡그리던 건일이 물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놈입니까?”
아르타가 고민을 하다 말했다.
“음… 일단 4족 보행에… 육식이고, 덩치가 무지막지하게 큰 녀석이오. 주둥이가 툭 튀어나와 있는데, 무시무시하지.”
여기까지는 건일이 알고 있는 불곰 같았다.
그러나.
“그런데 놈은 입에서 불을 뿜어 내오. 그래서 불곰이라오.”
“하아……?”
아르타의 입에서 꽤나 직관적인 설명이 나왔다.
불을 뿜어내서 불곰. 이만큼 단순명료한 설명이 있을까.
아르타가 말을 이었다.
“놈이 불을 뿜어서인지는 몰라도, 불곰의 가죽은 상당한 내열성을 가지고 있소이다. 고기도 고기지만, 일단 가죽이 필요하다오.”
“가죽이 주군요. 그럼 머리를 쏴서 한 방에 죽여야겠군요.”
그러지 않으면 귀한 가죽이 상하고 마니까.
머리 미간을 정확히 꿰뚫는다면 다른 부위의 가죽이 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르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리를 쏘면 안 되오.”
“왜죠?”
“머리 가죽도 필요하오.”
“귀찮군요.”
건일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건일을 바라봤다.
힘들겠다가 아니라 귀찮다라는 감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건일이 잡고 있는 총을 보자, 다른 말을 내뱉지는 못 했다.
건일은 어디를 쏴야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 혼자서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결국 아르타에게 묻기로 했다.
“그럼 어디를 쏴야 합니까?”
“겨드랑이. 혹은 꼬리 쪽.”
“흐음…….”
둘 다 치명적인 급소다.
건일이 겨드랑이를 쏘는 건 무리다.
자칫 가죽 채로 꿰뚫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꼬리 쪽이다.
“항문 쪽을 쏴야겠군요. 내장은 안 먹습니까?”
아르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곰의 내장은 너무 구린내가 심해서 먹을 수가 없소.”
구린내란 말에 건일은 문득 마늘을 생각했다.
소 내장도 마늘 없이 먹으면 잡내가 꽤나 난다는 게 떠올랐다.
그는 불쑥 막창이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막창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괜히 입맛만 다셨다.
“그렇군요.”
건일의 반응에 아르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건일의 표정은 맛있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타가 물었다.
“그쪽은 내장을 먹는 것이오?”
건일은 표정이 훤히 드러나고 있단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 먹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아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 곳에서 왔다더니, 문화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오.”
“그렇죠.”
건일이 키득였다.
하지만 잡담은 그걸로 끝이었다.
레칸이 걷는 속도를 더욱 더 높였다.
그는 정글도로 넝쿨을 뚫고 가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사냥꾼들도 그에 맞춰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건일은 슬슬 뒤쳐지기 시작했다.
사냥꾼들 모두 건일보다 훨씬 많은 짐을 짊어 메고 있었지만, 건일이 쫓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특전사 때 완전군장 급속 행군을 할 때도 이렇게 빨리 걷진 않았다.
심지어 급속 행군은 이런 험지가 아니라 아스팔트 도로 위였다.
그런데 사냥꾼들은, 그 당시 건일보다 훨씬 더 무거운 군장을 메고 험지를 내달리듯 걷고 있었다.
심지어 나이가 배는 많은 거 같은 아르타마저도.
무시무시한 체력이었다.
건일은 악에 받쳐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세 건일의 체력이 바닥이 나고 말았다.
“잠깐… 잠깐만요……!”
결국 하다 못한 건일이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사냥꾼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건일을 쳐다봤다.
막내인 테사라도 힘든 내색이 없었는데, 건일만 거의 죽어가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창피한 것보다 너무 힘들었다.
건일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좀, 쉬었다, 갑시다.”
레칸이 아르타를 바라봤다. 아르타는 마뜩찮은 표정을 짓긴 했지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시 휴식.”
그 말에 다들 적당한 나무에 몸을 기댔다. 건일은 제일 가까운 나무에 쓰러져서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 정도 숨이 고르게 되자, 짐에서 물통을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벌컥벌컥이 아니라, 조금씩 입을 축여가면서.
그걸 보던 아르타가 말했다.
“행군의 기본은 아는 모양이오.”
건일이 천천히 목을 축이고 말했다.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아르타는 마뜩찮은 표정이다.
“그런데 체력이 영…….”
‘당신들이 무식하게 튼튼한 겁니다’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삼켰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괜히 말하면 자존심만 상할 것 같았다.
건일이 뚱한 표정으로 목만 축이자, 아르타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테르핀의 가방에 있던 보존 식량과는 뭔가 다른 것이었다.
아르타는 검지 손가락만 한 그것을 건일에게 내밀었다.
건일은 차마 받아들지 못하고 그것과 아르타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그래도 설명이 없자 건일이 물었다.
“이게……?”
아르타가 말했다.
“보르차라오.”
“보르차……?”
“힘이 없을 때 먹으면 힘이 나는 거요.”
건일이 마지못해 보르차를 받고 한 입 조금 베어 물었다.
엄청난 양의 돼지기름 맛과, 사이사이에 견과류 맛이 느껴졌다.
식은 기름이다.
건일의 표정이 금세 안 좋아졌다.
“이, 이건…….”
아르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돼지기름에 돼지고기 조금, 그리고 견과류를 넣은 거요.”
그 설명에 더욱 더 속이 안 좋아졌다.
이 사람들은 용케 이런 걸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돼지기름에 견과류 기름.
따뜻해서 액체 상태라면 모를까, 이렇게 허옇게 굳은 걸 먹는 건 고역이다.
돼지고기를 넣었다는데 돼지고기 맛은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건일은 아르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장난이 아니라 선의로 그에게 이 맛대가리 없는 걸 내민 모양이었다.
건일은 눈알을 굴리며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 물과 함께 보르차를 먹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름이 물에 섞이자 더욱 더 먹기 힘든 맛이 났다.
하지만 최소한, 보르차만 먹을 때와는 달리 최소한 목 너머로 넘길 수는 있었다.
건일이 보르차와 씨름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쉬면서 장비를 정비하고 있었다.
레칸은 헝겊으로 정글도를 깨끗이 닦아내고 있었다.
넝쿨들을 베느라 칼에 묻어 있던 찌꺼기들을 제거하자, 정글도가 더욱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헝겊으로 닦아낸 뒤에 정글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테사라는 눈을 감은 채였다.
그는 숨까지 최대한 억제해서 마치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눈을 치켜떴다.
“근처에 불곰이 있어요.”
“응?”
건일은 테사라가 초능력자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장비를 점검했다.
건일이 보르차를 거의 끝장내고, 테사라에게 물었다.
“어떻게 안 거니?”
테사라는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말했다.
“들려요.”
테사라가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조용히 있으면, 사방에 있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 중에서 불곰 특유의 숨소리를 들었어요.”
“숨소리를 들을 정도면 꽤 가까운 데 있다는 건데…….”
건일이 불안감에 총을 꼬나 쥐었다.
하지만 아르타가 고개를 가로젓고 화살을 확인하며 말했다.
“한 1㎞ 정도 거리가 있을 거요.”
“1㎞요?”
이 곳에서도 ㎞단위를 쓰는 것에 놀랐다.
꽤나 편리한 세계였다.
하지만 그보다 놀란 건…….
“1㎞ 밖에 있는 소리가 들린단 말야?”
테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타가 대신 말을 해줬다.
“그 아인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소. 남들이 듣지 못한 소리를 듣고, 어떤 소리라도 구별할 수 있었다네. 천부적인 추격꾼이라오.”
“과연…….”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력이 무지막지하게 좋은 꼬마였다.
하지만, 문득 그가 자신의 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력이 좋다면 걱정되는 게 있다.
건일이 천천히 말했다.
“이거, 쏠 때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가 나는데…….”
“알아요.”
테사라가 건일의 말을 잘라냈다.
“대장님이랑 나갈 때 난 소리가, 그거죠?”
새를 쏠 때 난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쏘기 전에, 알려줄 수 있으면 알려주세요. 소리가 너무 커서 괴로워요.”
역시, 이 아이에게 총소리는 고역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러지.”
“다 쉬었소?”
아르타가 끼어들었다.
건일은 자신의 다리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느꼈다.
오래 걸은 탓에 슬슬 욱신욱신하지만, 방금 전보다는 좋았다.
건일이 대답했다.
“네.”
“그럼 일어나시오. 불곰이 근처에 있소이다. 테사라, 레칸 뒤에 붙어서 소리를 듣거라. 우리가 엄호하마.”
“네!”
테사라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행군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번엔 근처에 불곰이 있단 테사라의 말 때문인지 속도가 한 풀 꺾여나갔다.
선두에서 정글도로 길을 내던 레칸 역시 호쾌하게 길을 내기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딱딱 넝쿨을 베어내고 있었다.
소음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였다.
레칸의 뒤를 따라가던 테사라는 온 신경을 다해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갑자기 테사라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다른 사냥꾼들이 멈춰 섰다.
아마 저것이 멈추라는 수신호인 듯 보였다.
테사라가 아르타를 돌아보고 말했다.
“300m 앞에 불곰이 있어요.”
아르타는 살을 시위에 메기고 고개를 끄덕이고 속삭이듯 말했다.
“레칸, 보이나?”
“아뇨.”
“레칸, 반투와 같이 정면으로 가라. 내가 신호를 주면 불곰의 주의를 끌어. 건일, 당신은우회해서 불곰의 꽁무니로 돌아갑시다. 400m 정도 움직이면 될 거요. 항문을 쏘는 걸 잊지 마시오. 테사라, 너는 날 따라와라.”
“네.”
사냥꾼들이 빠르게 대답했다.
건일은 대답 대신 총을 꼬나 쥐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레칸과 반투가 앞서 걸었다.
테사라와 아르타는 좌측으로, 그리고 건일은 우측으로 우회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400m 가량을 돌아 적당한 나무를 찾았다. 건일이 총을 뒤로 메고 잽싸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대략 5m정도 올라간 뒤에 나뭇가지 위에서 최대한 편하게 자세를 잡고 주변을 둘러 봤다.
건일의 반대편에서 아르타가 나무에 오른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건일은 레칸과 반투가 있을 만한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레칸과 반투를 찾기 전, 불곰이 먼저 보였다.
건일이 알고 있는 곰과 비슷하고도 달랐다.
몸체는 곰과 비슷했지만, 앞다리가 훨씬 더 길어 고릴라가 네 다리로 걷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털도 그가 알고 있는 불곰과는 달리 사람의 머리칼처럼 윤기 있는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놈의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바닥에서 어깨까지 대략 2m는 되어 보이는 녀석은, 주둥이에서 꼬리까지 5m는 족히 되어 보였다.
‘무식하게 크구만.’
건일이 마른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