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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화 : 사람이다!]
다음날.
“음…….”
건일이 눈을 떴다.
그는 나무 위에 강철 와이어로 그의 몸을 묶고 있었다.
그 덕에 자는 동안 나무 아래로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았다.
건일은 크게 기지개를 펴고, 주변을 둘러봤다.
“하… 젠장.”
건일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나무, 괴상한 모양의 나뭇잎, 그리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팔뚝만 한 지네 비슷한 괴물.
꿈이 아니다.
그는 다른 세계에 소환당했다.
어머니는 지금 뭐하고 계실지 생각이 났다.
아들이 실종됐는데 괜찮으실까 하는 생각도.
건일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어 대다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는 멍한 눈으로 건일은 어젯밤 그가 걸어온 길을 슬쩍 바라봤다.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겠지?’
일단은 와이번들이 철을 얻으려고 날아간 방향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그곳에 광산이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얼마를 걸어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건일은 더플백을 뒤져 말린 고기를 꺼냈다.
무슨 고기인지는 몰랐지만, 보존을 위해 소금을 쳐놓은 덕에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고기 한 입을 뜯어 우물거리고 도로 더플백에 집어넣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급히 물건을 챙기다보니 식량이 너무 부족하다.
짧게 한숨을 내쉬고 그의 몸을 묶고 있는 강철 와이어를 풀고 나무 아래로 내려간다.
일단은 앞으로 내딛자. 다른 걱정은 잠시 미뤄둘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되돌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먹을 것도…….’
어제 동굴에서 도망친 이후 하루 종일 걸었다.
숲을 걷는 동안 별의별 이상한 괴생명체들을 많이 봤다.
다만 아직까지 먹는 데 거부감이 들지 않는 생물은 없었다.
거의 대부분 땅을 기어다니는 지네 괴물.
그리고 역시나 팔뚝만 한 벌 비슷한 괴물.
특전사 때 극한 훈련에 나서면 벌레를 안 먹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 먹었던 건 커봤자 집게손가락만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팔뚝 크기까지 커지면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최소한 못해도 너구리나, 족제비 비슷한 생물이라도 있으면 좋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걸 바란다고 떡하니 나타나는 건 아니었다.
“응……?”
건일이 멈춰 서서 코를 킁킁댔다.
그래도 다행인 건, 물 하나는 풍부하다는 것이다.
건일은 경로에서 벗어나 물 냄새를 쫓기 시작했다.
울창한 숲을 걸어 한참을 가자, 꽤 커다란 강이 나타났다.
강은 이물질 없이 맑은 편이었다.
우선 더플백에서 다섯 개의 수통을 꺼내 물을 담았다.
뚜껑은 닫지 않고, 근처에서 불이 붙을 만한 장작을 끌어 모았다.
사이클롭스가 만들어 준 파이어 스타터로 불을 당긴 뒤,
뚜껑을 닫지 않은 수통을 나란히 불 위에 올려놓는다.
한참을 끓이면, 상식선에서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물이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건일의 상식 안에서 노는 거지만.
이곳의 물이 어떤지 짐작조차 되지 않지만 일단 오늘까지 별 이상은 없었다.
작업을 마치고 건일은 허리를 쭉 펴고 강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사냥을 좀 해볼까.’
이 세계에 사는 짐승들이 물을 먹는다면 강가에 짐승이 몰릴 것이다.
그렇다면 근처에 매복해 기다려서 먹어도 괜찮아 보이는 녀석을 사냥하면 되지 싶었다.
그런데.
“어……?”
강 상류에서 군장 가방 비슷한 것이 흘러오고 있다.
건일은 강이 허리춤까지 오는 깊이란 것을 확인하고 강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붙잡았다.
사람이 싼 것 같았다.
“이게 왜 상류에서 내려오지?”
혼잣말을 하며 상류를 바라본 건일이 멈칫했다.
상류에서 웬 남자가 떠내려 오고 있었다.
건일이 황급히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남자는 건일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다리가 부러져서 피가 흐르고 있어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위험해 보였다.
건일이 급히 그를 강가로 끌어올렸다.
“젠장, 젠장, 젠장……!”
건일이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본 사람인데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마른 땅에 남자를 놓고 상처를 다시 확인했다.
건일이 특전사 시절 배웠던 응급처치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범위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도구가 없다.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건일은 급히 남자의 군장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군장 가방 안에는 꽤 괜찮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붕대, 연고, 텐트용 천막, 말린 고기, 말린 야채, 비스킷, 그리고 작은 솥.
건일은 붕대를 꺼내고 남자에게 말했다.
“이봐, 제발 살아나라고!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
***
건일은 강 근처에 텐트를 쳤다.
그는 텐트 앞에서 작은 솥에 군장에서 꺼낸 말린 고기와 말린 야채, 그리고 비스킷을 넣고 끓이고 있었다.
간 역시 군장에서 나온 소금을 넣었다.
특전사 시절 훈련에 나갔을 때 먹는 꿀꿀이죽을 연상시켰다.
그래도 위안인 건 생각보다는 먹을 만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 번 간을 보고나서 뒤에 있는 텐트를 바라봤다.
남자의 다리뼈를 맞추고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았다.
텐트를 쳐서 우선 찬바람을 맞지 않게 했다.
덕분에 한나절을 고스란히 버렸지만 전부 군대에서 그가 한번쯤 해봤던 경험 덕분에 그나마 손쉽게 끝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전부 그 군장 안에 들어 있는 물품들 덕이었다.
이 정도로 단단하게 준비를 한 걸 보니 여행자나 사냥꾼 같아 보였다.
“그나저나 정신을 차리는 게 늦는데…….”
건일이 혀를 차고 꿀꿀이죽을 먹기 시작했다.
짭짤한 것이 생각 외로 손이 가는 맛이었다.
그 꿀꿀이죽을 한 절반쯤 비웠을 때, 텐트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악!”
건일이 비명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깨어나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는 식은땀에 절은 몸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다 건일과 눈이 마주쳤다.
“다, 당신은……?”
다행히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이클롭스가 말한 대로였다.
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것저것 처치하느라 당신 가방에 있는 걸 좀 썼어요. 밥을 했는데 좀 먹을래요?”
건일이 밖에 있는 꿀꿀이죽을 가리켰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은 솥에 남아 있는 꿀꿀이죽을 남자에게 가져다줬다.
남자는 허겁지겁 그 꿀꿀이죽을 먹기 시작했다.
꽤나 맛있어보였다.
건일이 생각했다.
‘역시 꿀꿀이죽은 대단해.’
“후우…….”
남자는 순식간에 남아 있던 꿀꿀이죽을 비웠다.
건일은 이제 본격적으로 남자에게 묻기 위해 자세를 편히 잡았다.
그는 남자에게 물었다.
“통성명부터 합시다. 이름이?”
남자는 곧장 대꾸했다.
“케일의 아들, 테르핀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이곳에선 자신을 소개할 때 누군가의 아들이라 말하는 게 관례인 듯 보였다.
하지만 건일은 아버지의 이름을 몰랐다.
잠시 고민하던 건일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건일이요. 성은 한. 한건일.”
테르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의 아들, 건일이군요.”
‘그게 아닌데.’
테르핀이 멋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듯해서 넘겨둔다.
그것보다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건일이 다음 질문을 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상류에서 떠내려 왔어요?”
테르핀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듯 보였다.
건일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뒤, 테르핀이 말했다.
“동료들과 사냥을 하다 불곰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전 절벽에서 떨어졌고요.”
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는 불곰은 아마 건일이 알고 있는 그 불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말고도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이었다.
건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테르핀 역시 생각을 하다 되물었다.
“여긴 어딥니까. 강 근처입니까?”
건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테르핀이 말했다.
“그렇다면 동료들이 강을 따라 절 찾을 겁니다. 동료들과 합류해서 불곰을 사냥해야…….”
“……?”
건일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테르핀은 지금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리가 부러졌다.
부목을 대놓긴 했지만 그리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냥을 계속하겠다는 말을 하는 걸 건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건일이 조심스레 말했다.
“테르핀 씨, 당신은 다리가 부러졌어요. 사냥하기 힘듭니다. 동료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가는 게…….”
테르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통증 때문이 아니다.
건일은 뭔가 사연이 많은 얼굴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테르핀은 수많은 생각 끝에 조용히 말했다.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입니까.”
그 말에 건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이란 말에 건일은 어머니 생각이 났다.
테르핀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불곰을 잡아가지 않으면 가족이 위험합니다. 꼭 잡아가야 해요.”
테르핀은 절박해 보였다.
그 눈을 본 건일이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테르핀의 모습에서 건일의 모습을 발견했다.
가족을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관계마저 끊어가며 필사적으로 달려왔던 자신을.
하지만 테르핀은 아직 건일만큼은 아니었다.
건일만큼 막장에 다다르진 않았다.
건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대로 사냥을 나가면 당신 죽을 겁니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불곰한테 밀렸는데, 다리가 부러진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하지만……!”
테르핀이 분한 표정이었다.
건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내가 돕겠습니다.”
“네……?”
테르핀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건일을 바라봤다.
그는 떠듬떠듬 말했다.
“아니, 당신은…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입니다. 은인에게 또다시…….”
건일이 생긋 웃으며 테르핀의 말을 잘라냈다.
“아, 나도 당신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요.”
테르핀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다리에 닿자 멈춰 섰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나서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주먹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가 물었다.
“뭡니까, 필요한 게. 할 수 있는 만큼 해드리겠습니다.”
건일이 친절하게 대꾸했다.
“맛있는 밥이요. 당신의 가족이 해준 밥.”
“아…….”
테르핀은 방금 전보다 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건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게 밥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혹시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건일이 큰 실수를 한 것이었다.
건일이 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거 실례가 된…….”
“아뇨. 제가 죄송합니다.”
테르핀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건일은 묵묵히 테르핀을 바라봤다.
사연이 너무 많은 사람인 것 같았다.
테르핀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당신은, 너무 좋은 사람이네요.”
“음…….”
건일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테르핀이 몸을 뒤척였다.
건일이 말리려 했지만, 테르핀의 의지 때문에 멈칫했다.
테르핀은 그 불편한 다리로 간신히 움직여 건일에게 절을 올렸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가족이 해드린 밥은 조금 힘들지라도, 제가 정성껏 밥을 지어 올리겠습니다. 불곰을 잡는 걸 도와주십시오.”
건일이 인사를 받고 황급히 테르핀을 뉘였다.
테르핀은 절을 하느라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지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건일이 테르핀에게 말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테르핀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다음날.
“음…….”
건일이 눈을 떴다.
그는 나무 위에 강철 와이어로 그의 몸을 묶고 있었다.
그 덕에 자는 동안 나무 아래로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았다.
건일은 크게 기지개를 펴고, 주변을 둘러봤다.
“하… 젠장.”
건일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나무, 괴상한 모양의 나뭇잎, 그리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팔뚝만 한 지네 비슷한 괴물.
꿈이 아니다.
그는 다른 세계에 소환당했다.
어머니는 지금 뭐하고 계실지 생각이 났다.
아들이 실종됐는데 괜찮으실까 하는 생각도.
건일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어 대다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는 멍한 눈으로 건일은 어젯밤 그가 걸어온 길을 슬쩍 바라봤다.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겠지?’
일단은 와이번들이 철을 얻으려고 날아간 방향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그곳에 광산이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얼마를 걸어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건일은 더플백을 뒤져 말린 고기를 꺼냈다.
무슨 고기인지는 몰랐지만, 보존을 위해 소금을 쳐놓은 덕에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고기 한 입을 뜯어 우물거리고 도로 더플백에 집어넣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급히 물건을 챙기다보니 식량이 너무 부족하다.
짧게 한숨을 내쉬고 그의 몸을 묶고 있는 강철 와이어를 풀고 나무 아래로 내려간다.
일단은 앞으로 내딛자. 다른 걱정은 잠시 미뤄둘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되돌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먹을 것도…….’
어제 동굴에서 도망친 이후 하루 종일 걸었다.
숲을 걷는 동안 별의별 이상한 괴생명체들을 많이 봤다.
다만 아직까지 먹는 데 거부감이 들지 않는 생물은 없었다.
거의 대부분 땅을 기어다니는 지네 괴물.
그리고 역시나 팔뚝만 한 벌 비슷한 괴물.
특전사 때 극한 훈련에 나서면 벌레를 안 먹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 먹었던 건 커봤자 집게손가락만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팔뚝 크기까지 커지면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최소한 못해도 너구리나, 족제비 비슷한 생물이라도 있으면 좋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걸 바란다고 떡하니 나타나는 건 아니었다.
“응……?”
건일이 멈춰 서서 코를 킁킁댔다.
그래도 다행인 건, 물 하나는 풍부하다는 것이다.
건일은 경로에서 벗어나 물 냄새를 쫓기 시작했다.
울창한 숲을 걸어 한참을 가자, 꽤 커다란 강이 나타났다.
강은 이물질 없이 맑은 편이었다.
우선 더플백에서 다섯 개의 수통을 꺼내 물을 담았다.
뚜껑은 닫지 않고, 근처에서 불이 붙을 만한 장작을 끌어 모았다.
사이클롭스가 만들어 준 파이어 스타터로 불을 당긴 뒤,
뚜껑을 닫지 않은 수통을 나란히 불 위에 올려놓는다.
한참을 끓이면, 상식선에서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물이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건일의 상식 안에서 노는 거지만.
이곳의 물이 어떤지 짐작조차 되지 않지만 일단 오늘까지 별 이상은 없었다.
작업을 마치고 건일은 허리를 쭉 펴고 강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사냥을 좀 해볼까.’
이 세계에 사는 짐승들이 물을 먹는다면 강가에 짐승이 몰릴 것이다.
그렇다면 근처에 매복해 기다려서 먹어도 괜찮아 보이는 녀석을 사냥하면 되지 싶었다.
그런데.
“어……?”
강 상류에서 군장 가방 비슷한 것이 흘러오고 있다.
건일은 강이 허리춤까지 오는 깊이란 것을 확인하고 강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붙잡았다.
사람이 싼 것 같았다.
“이게 왜 상류에서 내려오지?”
혼잣말을 하며 상류를 바라본 건일이 멈칫했다.
상류에서 웬 남자가 떠내려 오고 있었다.
건일이 황급히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남자는 건일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다리가 부러져서 피가 흐르고 있어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위험해 보였다.
건일이 급히 그를 강가로 끌어올렸다.
“젠장, 젠장, 젠장……!”
건일이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본 사람인데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마른 땅에 남자를 놓고 상처를 다시 확인했다.
건일이 특전사 시절 배웠던 응급처치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범위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도구가 없다.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건일은 급히 남자의 군장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군장 가방 안에는 꽤 괜찮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붕대, 연고, 텐트용 천막, 말린 고기, 말린 야채, 비스킷, 그리고 작은 솥.
건일은 붕대를 꺼내고 남자에게 말했다.
“이봐, 제발 살아나라고!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건일은 강 근처에 텐트를 쳤다.
그는 텐트 앞에서 작은 솥에 군장에서 꺼낸 말린 고기와 말린 야채, 그리고 비스킷을 넣고 끓이고 있었다.
간 역시 군장에서 나온 소금을 넣었다.
특전사 시절 훈련에 나갔을 때 먹는 꿀꿀이죽을 연상시켰다.
그래도 위안인 건 생각보다는 먹을 만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 번 간을 보고나서 뒤에 있는 텐트를 바라봤다.
남자의 다리뼈를 맞추고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았다.
텐트를 쳐서 우선 찬바람을 맞지 않게 했다.
덕분에 한나절을 고스란히 버렸지만 전부 군대에서 그가 한번쯤 해봤던 경험 덕분에 그나마 손쉽게 끝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전부 그 군장 안에 들어 있는 물품들 덕이었다.
이 정도로 단단하게 준비를 한 걸 보니 여행자나 사냥꾼 같아 보였다.
“그나저나 정신을 차리는 게 늦는데…….”
건일이 혀를 차고 꿀꿀이죽을 먹기 시작했다.
짭짤한 것이 생각 외로 손이 가는 맛이었다.
그 꿀꿀이죽을 한 절반쯤 비웠을 때, 텐트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악!”
건일이 비명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깨어나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는 식은땀에 절은 몸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다 건일과 눈이 마주쳤다.
“다, 당신은……?”
다행히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이클롭스가 말한 대로였다.
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것저것 처치하느라 당신 가방에 있는 걸 좀 썼어요. 밥을 했는데 좀 먹을래요?”
건일이 밖에 있는 꿀꿀이죽을 가리켰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은 솥에 남아 있는 꿀꿀이죽을 남자에게 가져다줬다.
남자는 허겁지겁 그 꿀꿀이죽을 먹기 시작했다.
꽤나 맛있어보였다.
건일이 생각했다.
‘역시 꿀꿀이죽은 대단해.’
“후우…….”
남자는 순식간에 남아 있던 꿀꿀이죽을 비웠다.
건일은 이제 본격적으로 남자에게 묻기 위해 자세를 편히 잡았다.
그는 남자에게 물었다.
“통성명부터 합시다. 이름이?”
남자는 곧장 대꾸했다.
“케일의 아들, 테르핀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이곳에선 자신을 소개할 때 누군가의 아들이라 말하는 게 관례인 듯 보였다.
하지만 건일은 아버지의 이름을 몰랐다.
잠시 고민하던 건일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건일이요. 성은 한. 한건일.”
테르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의 아들, 건일이군요.”
‘그게 아닌데.’
테르핀이 멋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듯해서 넘겨둔다.
그것보다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건일이 다음 질문을 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상류에서 떠내려 왔어요?”
테르핀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듯 보였다.
건일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뒤, 테르핀이 말했다.
“동료들과 사냥을 하다 불곰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전 절벽에서 떨어졌고요.”
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는 불곰은 아마 건일이 알고 있는 그 불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말고도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이었다.
건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테르핀 역시 생각을 하다 되물었다.
“여긴 어딥니까. 강 근처입니까?”
건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테르핀이 말했다.
“그렇다면 동료들이 강을 따라 절 찾을 겁니다. 동료들과 합류해서 불곰을 사냥해야…….”
“……?”
건일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테르핀은 지금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리가 부러졌다.
부목을 대놓긴 했지만 그리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냥을 계속하겠다는 말을 하는 걸 건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건일이 조심스레 말했다.
“테르핀 씨, 당신은 다리가 부러졌어요. 사냥하기 힘듭니다. 동료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가는 게…….”
테르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통증 때문이 아니다.
건일은 뭔가 사연이 많은 얼굴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테르핀은 수많은 생각 끝에 조용히 말했다.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입니까.”
그 말에 건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이란 말에 건일은 어머니 생각이 났다.
테르핀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불곰을 잡아가지 않으면 가족이 위험합니다. 꼭 잡아가야 해요.”
테르핀은 절박해 보였다.
그 눈을 본 건일이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테르핀의 모습에서 건일의 모습을 발견했다.
가족을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관계마저 끊어가며 필사적으로 달려왔던 자신을.
하지만 테르핀은 아직 건일만큼은 아니었다.
건일만큼 막장에 다다르진 않았다.
건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대로 사냥을 나가면 당신 죽을 겁니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불곰한테 밀렸는데, 다리가 부러진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하지만……!”
테르핀이 분한 표정이었다.
건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내가 돕겠습니다.”
“네……?”
테르핀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건일을 바라봤다.
그는 떠듬떠듬 말했다.
“아니, 당신은…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입니다. 은인에게 또다시…….”
건일이 생긋 웃으며 테르핀의 말을 잘라냈다.
“아, 나도 당신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요.”
테르핀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다리에 닿자 멈춰 섰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나서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주먹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가 물었다.
“뭡니까, 필요한 게. 할 수 있는 만큼 해드리겠습니다.”
건일이 친절하게 대꾸했다.
“맛있는 밥이요. 당신의 가족이 해준 밥.”
“아…….”
테르핀은 방금 전보다 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건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게 밥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혹시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건일이 큰 실수를 한 것이었다.
건일이 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거 실례가 된…….”
“아뇨. 제가 죄송합니다.”
테르핀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건일은 묵묵히 테르핀을 바라봤다.
사연이 너무 많은 사람인 것 같았다.
테르핀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당신은, 너무 좋은 사람이네요.”
“음…….”
건일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테르핀이 몸을 뒤척였다.
건일이 말리려 했지만, 테르핀의 의지 때문에 멈칫했다.
테르핀은 그 불편한 다리로 간신히 움직여 건일에게 절을 올렸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가족이 해드린 밥은 조금 힘들지라도, 제가 정성껏 밥을 지어 올리겠습니다. 불곰을 잡는 걸 도와주십시오.”
건일이 인사를 받고 황급히 테르핀을 뉘였다.
테르핀은 절을 하느라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지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건일이 테르핀에게 말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테르핀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