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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화 : 이계 진입 (2)]


하지만, 건일은 화로의 온도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이클롭스가 어이가 없어 건일을 바라봤다.
“뭐 하는 거냐, 인간.”
“그게…….”
건일이 할 말을 잃었다.
대장간만 있으면 된다는 건 그 혼자의 착각이었다.
주물을 만드는 건커녕, 불의 온도조차 못 맞췄다.
생각 이상으로 기술과 힘이 필요한 작업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건일이 깝죽였다.
사이클롭스는 살기 넘치는 표정으로 건일을 노려봤다.
건일은 이를 깨물었다.
대장간 일은 그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도와주십시오.”
사이클롭스에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건일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사이클롭스는 여전히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건일이 조용히 말했다.
“전 본래 대장장이가 아닙니다. 대장간에서 만든 부품을 조립하는 사람이죠. 그러니 이 대장간 일을 도와주시면…….”
“점점 더 기어오르는군.”
사이클롭스가 화가 잔뜩 나서 말했다.
건일은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사이클롭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장난감 주제에 감히 이 몸에게 부탁하는 게 너무 많아. 그 대가를 받아야겠다.”
건일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건일은 숨을 몰아쉬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네 눈을 바쳐라.”
건일은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이내 이해했다.
건일이 갖고 있는 건 몸뚱이뿐.
사이클롭스가 가져갈 수 있는 건 그의 신체밖에 없었다.
사이클롭스는 진짜 눈을 후벼 팔 기세로 건일에게 다가왔다.
건일이 이를 깨물었다.
눈을 빼앗기면 끝이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죄송하지만…….”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위기의 순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눈을 뽑아 가시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갑니다. 눈이 없으면 저는 총을 만들 수 없습니다. 주인님께서 실망하실 겁니다. 눈은 재미를 보여드린 뒤, 가져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건일의 말을 들은 사이클롭스가 우뚝 멈췄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살기는 여전했지만 사이클롭스가 멈췄다는 게 중요하다.
건일은 조용히 사이클롭스를 살폈다.
사이클롭스가 히죽 웃었다.
“얕은 수를 쓰는군. 좋아. 눈은 나중에 가져가마. 하나.”
사이클롭스가 건일을 일으켜 세웠다.
건일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건일이 사이클롭스의 눈을 바라봤을 때, 그의 몸은 완전히 얼어붙어 오금이 저려왔다.
이때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에 건일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맛은 보여줘야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이클롭스가 건일의 배를 걷어차 버렸다.
건일은 배를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그 뒤로 사이클롭스는 그 거구를 이용해 마구잡이로 건일을 짓밟아댔다.
일방적인 폭력이 이어진 뒤에 사이클롭스가 멈춰섰다.
건일은 온몸에 멍이 든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사이클롭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건일은 이를 깨물었다.
저 시선에 닿으면 어찌 된 이유에선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이 외줄 타기란 것이 실감이 났다.
까딱 잘못해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죽는다.
사이클롭스가 코웃음을 치고 화로로 걸어갔다.
놈이 능숙하게 화로 안에 불을 당기자 순식간에 온도가 치솟았다.
사이클롭스가 건일을 바라봤다.
“일어나라, 인간. 내 대장장이 마법을 보여주마.”
“…네, 네!”
건일이 숨을 몰아쉬며, 급히 일어났다.
마법이 뭔지는 모르지만, 사이클롭스의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쇳물을 만들기 위해 화로 안에 쇠를 집어넣었다.
화로의 온도가 어마어마해서 철이 금세 쇳물로 변했다.
“꺼내라, 인간.”
쇳물이 되자 사이클롭스가 명령했다.
건일이 조심스레 화로에서 쇳물을 꺼냈다.
사이클롭스가 쇳물 쪽으로 양팔을 뻗었다.
쇳물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허공에 떠올라 몽글몽글 뭉치기 시작했다.
사이클롭스가 건일에게 말했다.
“어떻게 만들지 말해라.”
건일은 사이클롭스에게 설계도를 보여줬다.
부적 삼아 갖고 있던 설계도는, 건일이 처음 설계했던 대물저격총의 설계도였다.
그 설계도는 초등학생이 봐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총기 부품의 모습과 치수가 묘사되어 있었다.
사이클롭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 만드는 모양이군. 이거, 꽤 재밌겠는데.”
몽글몽글 떠있던 쇳물이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쇳물들은 차례대로 총기 부품이 되어갔다.
그것들을 보던 건일이 마른 침을 삼켰다.
저것이 마법.
건일이 보기엔 초능력에 가까웠다.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저런 괴물을 상대로 도망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이클롭스의 마법이 멈췄다.
사이클롭스가 혀를 찼다.
“쇠가 식었군. 식으면 주형을 할 수 없는데.”
건일이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신기하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몇 가지를 더 확인해 봐야 했다.
건일은 식은 철들을 다시 녹이며 확인해야 될 부분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 완성됐다!”
설계도에 나와 있는 그림대로 부품이 완성됐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정밀했다.
마법의 힘 덕이었다.
거기에 더해, 수통과 건일의 손에 알맞는 도구, 그리고 강철 와이어도 같이 만들어 달라 부탁했다.
사이클롭스는 의심조차 없이 그것들을 만들어줬다.
건일은 이제 사이클롭스가 만든 부품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부품까지 철로 만든 탓에 무게는 조금 늘어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이클롭스가 건일이 총을 조립하는 동안 옆에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호오… 꽤나 손재주가 좋은걸.”
사이클롭스가 킬킬거리다, 갑자기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도와줬는데 주인님의 흥미를 끌지 못하기만 해봐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변덕이 죽 끓듯 하다.
건일이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이런 놈이 건일이 되돌아갈 방법을 찾아줄 리 없었다.
탈출하지 않으면 어차피 주인님의 노리개가 될 것이다.
건일은 조용히 총기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날 밤, 총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탄환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탄환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제일 처음은 화약을 만드는 작업.
다행히 이 모든 작업은 사이클롭스에게 있어서 나쁘지 않은 유희거리인 듯 보였다.
그는 건일의 옆에 바짝 다가와 건일이 화약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으아악!!”
무연화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량의 암모니아가 발생하자, 사이클롭스는 코를 쥐어 막고 뒷걸음질 쳤다.
“이, 이게 무슨 냄새냐!”
놈은 질겁했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와이번들도 악취에 비명을 내질러 대고 있었다.
놈들의 약점 하나를 확보했다.
건일은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화약을 만드려면요.”
“으윽… 재미만 없어봐라!”
사이클롭스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대장간을 걸어 나갔다.
와이번들은 꽉꽉, 시끄럽게 짖어대며 악취를 피해 동굴 밖으로 피신했다.
놈이 사라지자, 건일은 암모니아를 채취해 작은 병에 집어넣었다.
남은 목면도 버리지 않고 그것을 얼기설기 엮어 더플백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음 날.
건일은 이제 화약을 만들어 탄환을 만들기 시작했다.
암모니아 냄새가 사라지자, 사이클롭스는 또다시 대장간으로 들어와 건일을 구경했다.
건일은 탄환을 만들면서, 힐끗 사이클롭스를 살폈다.
“이거, 위험합니다.”
그 말에 건일이 코웃음을 쳤다.
“위험하다고 해봐야 얼마나 위험하다고.”
“조금 떨어져 있는 게 낫지 싶은데…….”
“…흥.”
그러나 떨어질 기미가 없다.
건일은 화약을 만지작댔다.
퍼엉.
갑자기 건일의 손에서 화약이 폭발했다.
탄두가 사이클롭스에게 날아갔다.
“으악!!”
탄두가 정확히 사이클롭스의 왼팔에 맞았다.
놈은 무척이나 괴로운 표정으로 왼팔을 쓰다듬었다.
확실하게 피해를 입혔다.
건일이 난처한 표정으로 사이클롭스에게 다가갔다.
“그러니 제가 멀리 떨어지라 했지 않습니까.”
사이클롭스가 이를 깨물었다.
하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
건일이 분명히 경고를 했으니까.
그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사이클롭스는 씩씩거리다가, 대장간을 나가 버렸다.
건일은 다시 탄환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약점을 하나 더 확보했다.

그리고 다음날.
드디어 총과 탄환이 완성되었다.
“다 만들었습니다!”
건일이 신이 나 소리쳤다.
그러나 건일보다 사이클롭스가 더욱 더 신나 했다.
“오오, 드디어!!”
사이클롭스는 눈을 반짝이며 건일을 바라봤다.
건일은 능숙하게 탄창을 총에 박아 넣고 견착을 했다.
“이제 아주 재밌어질 겁니다. 주인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그러고 나서 사이클롭스의 하나 뿐인 눈에 총구를 겨누었다.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이클롭스에게 건일이 씹어뱉듯 말했다.
“죽어라, 외눈박이 새끼야.”
단숨에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방아쇠는 아주 가벼웠다.
총성이 동굴 안에 울려 퍼지면서 메아리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총성의 메아리는 금세 표효에 가려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사이클롭스가 눈을 움켜쥐었다.
방아쇠를 당긴 직후 눈치를 챈 녀석이 몸을 피한 덕에,
총알은 사이클롭스의 눈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하나 뿐인 눈은 이제 제 역할을 못하게 됐다.
“이 인간 새끼가!!”
사이클롭스가 비명을 질러 대자, 천장에 매달려 있던 와이번들이 꽉꽉 소리를 내며 강하한다.
눈이 멀어버린 사이클롭스보다, 저 녀석들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일단 건일은 가방에 들어있던 암모니아 병을 바닥에 내던져 깨뜨렸다.
악취가 사방에 퍼졌지만, 와이번들은 속도가 조금 느려졌을 뿐 여전히 건일에게 날아들었다.
건일은 무릎 쏴 자세로 천장에서 급강하하는 와이번들을 겨누었다.
타앙.
가장 빠르게 날아오던 와이번 한 마리의 머리가 총알에 맞아 터져 버렸다.
그러나 살아남은 와이번들이 건일을 향해 쇄도해 왔다.
건일이 급히 몸을 날려 와이번의 발톱을 피해내고, 다시 한 번 총을 쐈다.
제대로 조준하지 못 한 탓에, 와이번의 날개를 맞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지 와이번은 땅에 떨어져 날개를 퍼덕거렸다.
“끄아아아아악!!”
그러는 동안에도 마치 배경 음악처럼 사이클롭스의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
건일은 우선 와이번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날개를 맞아 땅에 떨어진 녀석을 빼고도 두 마리.
놈들은 크게 날개를 퍼덕이며 빠른 속도로 건일을 쫓아왔다.
와이번의 발톱이 건일의 어깨를 낚아채기 직전.
건일은 쓰러지면서 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렇게 와이번 한 마리를 처리했지만, 남은 한 마리가 더 있었다.
놈은 그대로 건일의 어깨를 낚아채 하늘로 솟구쳤다.
“아악!!”
놈의 발톱이 어깨를 파고들어 건일이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정신을 바로 차리고, 손을 움직여 와이번의 날개를 쏘아 맞췄다.
날개를 잃은 와이번은 건일과 함께 처참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건일이 추락의 충격으로 온 몸을 뒤틀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몸에 멍이 들었을 뿐, 어디 뼈가 부러진 곳은 없었다.
건일이 비틀비틀 일어나 사이클롭스를 찾았다.
놈은 완전히 멀어버린 눈으로 거대한 도끼를 든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인간 놈아!! 네놈이 이러고도, 주인님이 용서할 거라 생각했느냐아아아아!!”
거의 발악에 가까운 고함 소리였다.
건일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정확히 사이클롭스의 몸통을 겨누었다.
놈은 건일을 찾지 못 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인간 놈아아아아아!!”
발악을 해대는 놈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한 순간의 총성이 들리고 나자, 침묵이 내렸다.
건일이 비척비척 일어났다.
목면으로 만든 가방에 귀금속과 탄환, 암모니아, 그리고 식량으로 쓸 만한 고기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이클롭스가 만들어준 철제 와이어를 절벽 아래로 늘어뜨렸다.
건일은 이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사이클롭스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웃기지 말라 이거야! 누가 그 주인님 녀석의 장난감으로 있겠대? 난 살아서 돌아갈 거다!”
그는 와이어를 타고, 절벽을 하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