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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이게 뭐야?!]
미국 워싱턴.
펜타곤.
미국 국방부 앞에서 한건일이 멈춰 섰다.
그러자 그를 호위하는 경호원들도 움찔하고 제자리에 섰다.
건일은 웃는 얼굴로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화 한 통화만 할게요.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요.”
그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경호원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은 재킷 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부적 삼아 갖고 다니는 그의 첫 저격총 설계도 뭉치와 그 옆에 있는 핸드폰이 만져졌다.
그중 핸드폰을 꺼내 국제전화를 걸었다.
한국에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얼마간 통화음이 흐른 뒤에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아, 어머니.”
어머니는 약간 놀란 목소리로 숨을 들이켰다가 천천히 물었다.
― 갑자기 웬일이니. 안 하던 전화를 다 하고.
“어…….”
건일은 다음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숨을 멈췄다.
지난 날, 그가 살아왔던 일들이 휙휙 지나갔다.
건일에게나 어머니에게나 썩 좋은 기억들은 아니었다.
얼굴에 저절로 쓴 웃음이 배어 나왔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 이번에 계약 따내면 한국으로 돌아갈게요. 그럼 돈 많이 벌게 되니까… 이제 어머니 고생 안 하셔도 돼요. 둘이 편하게 살아요.”
그 말에 어머니가 소녀처럼 웃더니 말했다.
― 이 녀석이 철들었네.
“네. 끊을게요.”
건일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인간관계, 동료 관계 같은 것들.
되찾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나 이번 거래만 끝내면 시간이 많아진다.
건일은 거래를 끝내고 천천히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는 천천히 경호원들과 함께 펜타곤을 들어갔다. 그의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무기 시연장이었다. 건일이 시연장 옆 관람대로 들어갔다.
관람대는 물론이거니와 시연장에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상석에 앉아 있는 국방부 장관.
가슴팍에 박혀 있는 약장이 눈에 띈다.
그 휘하로 해서 무기개발과에 속해 있는 사람들, 야전 사령관, 기타 등등 꽤나 굵직한 인사들이 관람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건일은 이곳에서 그가 만든 무기를 시연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섰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이 건일을 쫓고 있었지만 긴장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흥분감이 그의 몸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세계에 인정받았다는 생각,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홀어머니를 혼자 한국에 놔두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이번 계약으로 그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레일건은 무시무시하도록 효율적인 무기입니다. 기존 무기 체계에 비해 탄환이 싸고, 훨씬 더 위력적이죠. 그러나 이 레일건은 사람이 들 수 있는 크기로 소형화할 수 없다는 게 정론이었습니다.”
여기서 건일이 잠시 말을 끊었다.
건일은 사람들을 훑어봤다.
“그러나 오늘. 저는 그 정론을 깨보려고 합니다.”
건일이 손을 튕겼다.
관람대 너머 시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일의 부하가 사람이 들 수 있는 크기의 레일건을 들고 나타났다.
관람대에 있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건일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영업 기밀인 티타늄 합금을 통해 소형 전지의 충전율을 높이고, 마찬가지로 티타늄 합금을 이용해 총신의 강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켰습니다. 열전도율은 낮추고요.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건일이 부하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부
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레일건을 견착한 후, 목표를 겨누었다.
목표는 방탄복을 씌운 돼지고기.
부하가 방아쇠를 당기자,
타앙.
굉음과 함께 레일건에서 탄도가 발사돼 목표를 맞췄다.
그리고 마하 7을 넘는 탄환에 맞은 돼지고기는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오오……!!”
실험실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건일은 눈을 감고 이 카타르시스를 즐겼다.
드디어 세계가 건일을 인정해줬다.
실험실의 환희가 가라앉자, 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시연은 여기까지입니다. 계약하실 분 빠르게 연락 바랍니다. 그럼 무기 시연은 이 정도만 보여드리고, 잠시 쉬었다 가죠.”
건일은 화장실로 향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꽤 좋은 가격에 입찰될 듯 보였다.
건일은 세면대에서 세수를 한 번 하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무척이나 날카로운 눈매를 가져 웃는 게 어색한 얼굴이 거울에 있었다.
그는 괜시리 눈매를 만지작거렸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전사로 근무를 하다가 총기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수많은 총을 분해하고, 조립하고, 부품을 만드느라 열을 올렸다.
그리고 지금 세계 최초로 개인용 레일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씁쓸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건일은 괜히 안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방금 전 통화 때 보지 못한 문자가 와 있는 걸 깨달았다.
그의 동료에게서 온 문자였다. 별생각 없이 문자를 읽는다.
[레일리 암즈가 당신을 노리고 있어. 오늘 시연장에 가지 마.]
별 시덥지도 않은 문자였다.
아마 질투 때문에 이럴 것이다.
건일이 쓴 웃음을 지었다.
‘연구실에서 그게 잘난 척으로 보였으려나…….’
집중하면 다른 모든 상황을 무시하게 된다.
그게 건일의 버릇이었다.
그 탓에 인간관계를 제대로 쌓지 못했다.
건일이 잃은 것 중 하나였다.
어머니한테 미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제 계약을 마치고 여유가 생기면 슬슬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칠 생각이었다.
다시 거울을 바라보고, 억지로 웃어보였다.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여전히 웃음이 낯설다.
어색한 웃음은 이내 쓴웃음이 되어버렸다.
건일은 한숨을 내쉬고 화장실 출입구로 몸을 돌렸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건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건일은 계약 때문에 왔겠거니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계약에 관해선 일단 관람대로 돌아간 뒤에…….”
그러나 양복을 입은 남자는 협상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건일이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남자는 품에서 소음기가 끼워진 권총을 꺼내더니, 건일의 심장을 쏘았다.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
건일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다.
건일은 몸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몸을 통제할 수가 없다.
‘왜?’
건일이 생각했다.
이제 겨우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자 했는데……!
이렇게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아……!’
건일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몸 끝자락에서 점점 감각이 사라져만 갔다.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날 살려…….’
그리고.
의식이…….
끊어졌다.
***
‘…아.’
생각이 되는 걸 보니 죽진 않은 모양이다.
아니, 통증이 없는 걸 보니 죽은 건가.
아마 천국이거나 그런 거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눈을 감고 있어서란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건일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뭔가 환한 빛이 비추는 곳이라거나…….
“으엉……?”
그러나 눈을 뜨자 보인 건 예상을 뒤엎은 것이었다.
“사, 사람……??”
건일은 단어를 내뱉고 딸꾹질을 쏟아냈다.
단순히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대략 3m 크기의 키를 가진, 외눈박이 거인이었다.
그리고 그 외눈박이 거인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깨어나길 기다린 것처럼.
혹시 이것이 꿈이 아닐까, 하고 볼을 꼬집어봤다.
그러나 분명히 감각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면 여기가 천국이고, 저 외눈박이 거인이 천사일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 무렵에,
외눈박이 거인이 입을 열었다.
“이쪽 세계에 넘어온 걸 환영한다, 다른 세계의 인간이여.”
[001화 : 이계 진입]
“말했다?!”
무슨 말인지 보다, 저 외눈박이 거인이 말을 한 것이 더 놀라웠다.
진짜로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외눈박이 거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말했다.
“내 말이 제대로 들리는 모양이군. 하긴, 주인님이 널 살리기 위해…….”
외눈박이 거인이 말을 쏟아냈지만, 건일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건일은 기겁을 하며 외눈박이 거인의 반대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외눈박이 거인이 크게 호통을 쳤다.
“거기 서지 못해!!”
사자후에 가까운 고성에 건일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천장 쪽에서 날개 길이가 5m는 되어 보이는 익룡 비스무리한 괴물 네 마리가 내려왔다.
익룡을 닮은 그 괴물들은 금방이라도 건일을 집어삼킬 듯이 기다란 주둥이를 벌렸다.
외눈박이 거인들이 다시 한 번 일갈했다.
“와이번들! 그 녀석은 주인님의 장난감이다! 건드리면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그 소리에 와이번이라 불린 괴물들은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한 번 천장으로 올라갔다.
놈들은 마치 박쥐처럼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맛있는 먹잇감을 보는 눈빛으로 건일을 바라봤다.
건일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벌벌 떨면서 외눈박이 거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그나마 얘기가 통하는 건, 저 외눈박이 거인밖에 없는 듯했다.
외눈박이 거인이 입을 열었다.
“좋아, 인간이여.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를 테니 내가 설명을 해주겠다.”
그래도 상식이 통하는 녀석인 듯 했다.
건일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눈박이 거인의 얘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외눈박이 거인이 우선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사이클롭스. 사이클롭스 님이라고 불러라. 네놈의 이름은 나중에 주인님이 지어주실 거다.”
“전 이름이 있는데요.”
불쑥, 건일도 모르게 딴지를 걸고 말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온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사이클롭스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건일을 쏘아보다, 침을 뱉듯 말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그 주둥아리부터 어떻게 해보거라.”
건일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래. 그럼 네놈이 어떻게 여기로 소환됐는지가 궁금하겠지.”
사이클롭스의 말에 건일은 이것저것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랐다.
화장실에서 분명히 심장 언저리를 총에 맞았는데…….
그는 황급히 자신의 가슴팍을 문질러 봤다.
총에 맞은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이클롭스가 말했다.
“가슴에 난 구멍은 주인님께서 메워주셨다. 꽤 지독한 상처여서 주인님께서 직접 자신의 살 일부를 떼어주시기까지 했지. 그 덕에 네 놈은 장난감 주제에 모든 언어를 통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됐어. 영광으로 알아라.”
건일이 장난감이란 말에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저 와이번들을 쫓아낼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나저나 주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살을 떼어주다니.
세포 이식을 했단 소리 같다.
그런데 건일의 몸엔 거부 반응이 없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이클롭스가 말을 이었다.
“주인님께선, 이 세계를 무척이나 심심해 하셨다. 그래서 이 세계엔 없는 지식을 얻기 위해 네놈을 소환하신 거다. 아주 훌륭한 장난감이지.”
다시 한 번 장난감 얘기가 나왔다.
확인해야만 했다.
건일이 조심스레 물었다.
“장난감… 이라뇨?”
“아앙??”
사이클롭스가 아주 가벼운 농처럼 되물었다.
그 말에 건일이 얼어붙어 버렸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살기 때문이었다.
건일은 특전사 시절, 멧돼지와 홀로 마주쳤던 기억이 났다.
거기에 한 만 배 정도를 곱하면 지금 느낌과 비슷할 것 같았다.
건일은 마른 침을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 그 주인님이란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에요. 돌려보내 주세요.”
그러자 사이클롭스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건일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를 받아버렸다.
건일은 엄청난 통증에 머리를 감싸 쥐고 쓰러졌다.
사이클롭스가 일갈했다.
“까불지 마라, 인간. 사람이라니! 주인님이 대체 어떤 분인지 알고 떠드는 게냐!”
그 살기에 사지가 저려왔다.
건일은 이를 깨물었다.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놈이 지껄여 댔다.
“주인님은 위대한 드래곤이시다! 젊은 나이에 거의 모든 마법을 통달하셔서 세상사에 흥미를 잃어버리신 분이란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니!”
놈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낸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건일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란 것이었다.
사이클롭스가 이토록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라니.
“널 소환한 직후에 다른 레어에 일이 생겨 가신 게 아쉽구나! 네놈이 주인님의 위대한 모습을 봐야 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 그 주인이라는 존재가 이곳에 없다는 것이었다.
말하는 것을 보니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놓을 것 같았다.
그러다 불쑥 사이클롭스가 중얼거렸다.
“난 돌아갈 방법을 모른다. 다만, 주인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널 대신할 만한 재밌는 장난감을 만든다면, 주인님께서 생각을 바꾸실 수도 있지.”
사이클롭스의 말에 건일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사이클롭스가 살기를 조금 거두고 말했다.
“주인님을 재밌게 해줄 수 있다면, 네놈이 돌아갈 방법을 찾아달라 청하마.”
건일은 사이클롭스의 눈을 살폈다.
방법을 모른다는 말이 진짠지 가짠지 모르겠다.
하지만 되돌려 보내주겠다는 말이 거짓말인 건 알 수 있었다.
그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저 괴물의 입장에서 건일은 한낱 주인님이란 존재의 장난감일 뿐.
건일 입장에서도 사온 장난감을 순순히 반품하진 않을 것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숙였다.
참다못한 사이클롭스가 입을 열었다.
“이봐, 인간. 이렇게 재미없게 굴면 죽여 버린다? 장난감이 쓸모없으면 폐기 처분해야지.”
이제야 확실히 실감이 났다.
건일은 고개를 숙인 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로 끌려온 것도 더럽게 말이 안 되고 불합리한데, 또 죽을 수는 없다.
머리를 굴려라, 머리를 굴려라.
어떻게든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아니,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재밌게만 하는 건 그저 연명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퍼뜩, 좋은 수가 떠올랐다.
그는 그의 안주머니를 만지작댔다.
박살난 핸드폰과 종이 뭉치가 느껴졌다.
건일이 고개를 치켜들고 사이클롭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다.
“총이라고… 아십니까?”
“호오. 이계의 물건인가.”
사이클롭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도박이 먹혀들었다.
놈은 꽤나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총이라고? 그게 뭔데?”
건일은 최대한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그가 무기 시연회를 위해 피나도록 연습한 덕분이었다.
“제 세계에 있는 재미난 물건입니다. 설명 대신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이클롭스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보여줘? 어떻게?”
“재료를 모아다 주시면 총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뭐?”
사이클롭스가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놈으로선 이런 부탁이 처음인 듯 보였다.
“감히 인간 나부랭이 주제에, 주인님의 시종인 내게 재료를 모아다 달라?”
여기서 쫄아선 안 된다. 도박을 할 땐 강하게 밀어붙여야만 했다.
건일이 히죽 웃어 보였다.
“어차피 총을 만들 수 없는 저는 죽는걸요. 거, 마지막에 도박 한 번 해보자, 해서 말하는 겁니다.”
잃을 게 없는 건 건일 쪽.
그렇기에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다행히 건일의 생각대로 일이 흘러갔다.
그 말에, 사이클롭스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웃음을 멈추고 호탕하게 소리쳤다.
“좋다, 인간 주제에 발칙하군! 필요한 물건들을 말해봐라!”
첫 번째 도박이 통했다.
건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주 잠깐 사이에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고 곧장 내뱉었다.
“첫 번째로, 대장간이 필요합니다.”
대장간은 이런 동굴이 아니라 바깥에 있을 것이다.
건일은 그곳에서 기회를 노릴 참이었다.
하지만 건일의 예상과는 달리 사이클롭스가 동굴 한 쪽 구석을 가리켰다.
“대장간은 저기 있다. 주인님께서 젊었을 적에 드워프 몇몇을 불러다 만든 대장간이지.”
건일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동굴 안에 대장간이 있다니, 그의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대장간이 밖에 있다는 조건은 부차적인 것이다.
제일 필요한 건 대장간이었다.
건일이 힐끗, 대장간을 바라봤다.
잠깐 봤는데도 대장간은 생각 이상으로 장비가 잘 갖춰진 것처럼 보였다.
먼지가 쌓인 것만 뺀다면.
사이클롭스가 재촉했다.
“그 다음은?”
총을 만들 재료를 생각해 냈다.
물론 탄환도.
건일이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쏟아냈다.
“대량의 철, 구리, 아연, 백금, 그리고 목면, 황산, 질산…….”
사이클롭스는 말을 듣고 있다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거, 더럽게 많이 필요하군.”
사이클롭스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건일이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말했다.
“모두 주인님을 위해서입니다. 주인님을 재밌게 하기 위해서, 조금은 수고를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이클롭스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천장에 매달려 있는 와이번들을 향해 소리쳤다.
“와이번들아! 이리로 내려오너라!”
와이번들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천장에서 내려왔다.
놈들은 고분고분히 사이클롭스의 앞에 서서 지시를 기다렸다.
사이클롭스가 건일에게 물었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게 무엇이냐.”
건일이 답했다.
“금속류입니다.”
“알겠다. 와이번들아. 금속류를 가져오너라.”
와이번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높게 울부짖곤, 동굴 밖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건일은 와이번들이 나가는 방향을 통해 동굴 출구를 알아냈다.
그것을 본 사이클롭스가 폭소를 터뜨렸다.
“인간 놈…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것이냐.”
건일의 마음이 간파당한 탓에 그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버렸다.
사이클롭스는 크게 웃다가, 건일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건일이 버둥거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이클롭스는 그대로 건일을 들고 동굴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출구에 도착한 건일이 숨을 들이켰다.
그가 있는 곳은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도구를 갖추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미리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건일은 저 멀리 멀어지고 있는 와이번들을 바라봤다.
저곳에 아마 광산이 있는 것 같다.
사이클롭스는 이제 건일을 도로 동굴 안으로 데리고 왔다.
놈은 건일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했다.
“일해라, 인간!”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우선 대장간으로 향했다.
생각 외로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철을 녹일 수 있는 화로부터 담금질을 할 수 있는 물을 받을 시내, 그리고 여러 가지 공구가 갖춰져 있었다.
다만 공구 같은 경우엔 건일이 쓰기엔 조금 짧았다.
건일보다 훨씬 작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구 같았다.
이걸 쓰려면 요령이 조금 필요할 듯 보였다.
사이클롭스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백금은 저기 있다.”
놈이 가리킨 방향은 사이클롭스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위치해 있었다.
건일이 들어서자 건일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금뿐만 아니라, 각종 금, 은 같은 귀금속으로 된 장식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던 탓이었다.
건일은 잠시 동안 그 보물들을 지켜보다, 우선 백금괴 하나를 집어 들어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한참 후, 와이번들이 동굴로 돌아왔다.
놈들은 그 거대한 덩치를 이용해 어마어마한 양의 철을 가지고 돌아왔다.
정제된 철로 보이는 것이, 인간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했다.
이 세계에도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했다.
와이번들이 동굴 한 가운데에 그 철들을 쏟아내 놓자 사이클롭스가 말했다.
“자. 철을 구해왔다. 일하거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
이대로만 간다면 건일은 주인님이란 자의 노리개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이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와이번은 이제 다른 재료들을 구하러 떠났다.
건일은 희망을 걸고 팔을 걷어붙여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대장간에 들어서서 화로에 불을 당긴다.
불이 켜지자, 풀무질을 하며 품에서 총기 설계도를 꺼냈다.
이게 건일을 살릴 유일한 희망이었다.
미국 워싱턴.
펜타곤.
미국 국방부 앞에서 한건일이 멈춰 섰다.
그러자 그를 호위하는 경호원들도 움찔하고 제자리에 섰다.
건일은 웃는 얼굴로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화 한 통화만 할게요.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요.”
그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경호원들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일은 재킷 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부적 삼아 갖고 다니는 그의 첫 저격총 설계도 뭉치와 그 옆에 있는 핸드폰이 만져졌다.
그중 핸드폰을 꺼내 국제전화를 걸었다.
한국에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얼마간 통화음이 흐른 뒤에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아, 어머니.”
어머니는 약간 놀란 목소리로 숨을 들이켰다가 천천히 물었다.
― 갑자기 웬일이니. 안 하던 전화를 다 하고.
“어…….”
건일은 다음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숨을 멈췄다.
지난 날, 그가 살아왔던 일들이 휙휙 지나갔다.
건일에게나 어머니에게나 썩 좋은 기억들은 아니었다.
얼굴에 저절로 쓴 웃음이 배어 나왔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 이번에 계약 따내면 한국으로 돌아갈게요. 그럼 돈 많이 벌게 되니까… 이제 어머니 고생 안 하셔도 돼요. 둘이 편하게 살아요.”
그 말에 어머니가 소녀처럼 웃더니 말했다.
― 이 녀석이 철들었네.
“네. 끊을게요.”
건일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인간관계, 동료 관계 같은 것들.
되찾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나 이번 거래만 끝내면 시간이 많아진다.
건일은 거래를 끝내고 천천히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는 천천히 경호원들과 함께 펜타곤을 들어갔다. 그의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무기 시연장이었다. 건일이 시연장 옆 관람대로 들어갔다.
관람대는 물론이거니와 시연장에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상석에 앉아 있는 국방부 장관.
가슴팍에 박혀 있는 약장이 눈에 띈다.
그 휘하로 해서 무기개발과에 속해 있는 사람들, 야전 사령관, 기타 등등 꽤나 굵직한 인사들이 관람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건일은 이곳에서 그가 만든 무기를 시연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섰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이 건일을 쫓고 있었지만 긴장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흥분감이 그의 몸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세계에 인정받았다는 생각,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홀어머니를 혼자 한국에 놔두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이번 계약으로 그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레일건은 무시무시하도록 효율적인 무기입니다. 기존 무기 체계에 비해 탄환이 싸고, 훨씬 더 위력적이죠. 그러나 이 레일건은 사람이 들 수 있는 크기로 소형화할 수 없다는 게 정론이었습니다.”
여기서 건일이 잠시 말을 끊었다.
건일은 사람들을 훑어봤다.
“그러나 오늘. 저는 그 정론을 깨보려고 합니다.”
건일이 손을 튕겼다.
관람대 너머 시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일의 부하가 사람이 들 수 있는 크기의 레일건을 들고 나타났다.
관람대에 있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건일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영업 기밀인 티타늄 합금을 통해 소형 전지의 충전율을 높이고, 마찬가지로 티타늄 합금을 이용해 총신의 강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켰습니다. 열전도율은 낮추고요.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건일이 부하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부
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레일건을 견착한 후, 목표를 겨누었다.
목표는 방탄복을 씌운 돼지고기.
부하가 방아쇠를 당기자,
타앙.
굉음과 함께 레일건에서 탄도가 발사돼 목표를 맞췄다.
그리고 마하 7을 넘는 탄환에 맞은 돼지고기는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오오……!!”
실험실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건일은 눈을 감고 이 카타르시스를 즐겼다.
드디어 세계가 건일을 인정해줬다.
실험실의 환희가 가라앉자, 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시연은 여기까지입니다. 계약하실 분 빠르게 연락 바랍니다. 그럼 무기 시연은 이 정도만 보여드리고, 잠시 쉬었다 가죠.”
건일은 화장실로 향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꽤 좋은 가격에 입찰될 듯 보였다.
건일은 세면대에서 세수를 한 번 하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무척이나 날카로운 눈매를 가져 웃는 게 어색한 얼굴이 거울에 있었다.
그는 괜시리 눈매를 만지작거렸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전사로 근무를 하다가 총기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수많은 총을 분해하고, 조립하고, 부품을 만드느라 열을 올렸다.
그리고 지금 세계 최초로 개인용 레일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씁쓸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건일은 괜히 안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방금 전 통화 때 보지 못한 문자가 와 있는 걸 깨달았다.
그의 동료에게서 온 문자였다. 별생각 없이 문자를 읽는다.
[레일리 암즈가 당신을 노리고 있어. 오늘 시연장에 가지 마.]
별 시덥지도 않은 문자였다.
아마 질투 때문에 이럴 것이다.
건일이 쓴 웃음을 지었다.
‘연구실에서 그게 잘난 척으로 보였으려나…….’
집중하면 다른 모든 상황을 무시하게 된다.
그게 건일의 버릇이었다.
그 탓에 인간관계를 제대로 쌓지 못했다.
건일이 잃은 것 중 하나였다.
어머니한테 미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제 계약을 마치고 여유가 생기면 슬슬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칠 생각이었다.
다시 거울을 바라보고, 억지로 웃어보였다.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여전히 웃음이 낯설다.
어색한 웃음은 이내 쓴웃음이 되어버렸다.
건일은 한숨을 내쉬고 화장실 출입구로 몸을 돌렸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건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건일은 계약 때문에 왔겠거니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계약에 관해선 일단 관람대로 돌아간 뒤에…….”
그러나 양복을 입은 남자는 협상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건일이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남자는 품에서 소음기가 끼워진 권총을 꺼내더니, 건일의 심장을 쏘았다.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
건일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다.
건일은 몸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몸을 통제할 수가 없다.
‘왜?’
건일이 생각했다.
이제 겨우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자 했는데……!
이렇게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아……!’
건일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몸 끝자락에서 점점 감각이 사라져만 갔다.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날 살려…….’
그리고.
의식이…….
끊어졌다.
‘…아.’
생각이 되는 걸 보니 죽진 않은 모양이다.
아니, 통증이 없는 걸 보니 죽은 건가.
아마 천국이거나 그런 거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눈을 감고 있어서란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건일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뭔가 환한 빛이 비추는 곳이라거나…….
“으엉……?”
그러나 눈을 뜨자 보인 건 예상을 뒤엎은 것이었다.
“사, 사람……??”
건일은 단어를 내뱉고 딸꾹질을 쏟아냈다.
단순히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대략 3m 크기의 키를 가진, 외눈박이 거인이었다.
그리고 그 외눈박이 거인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깨어나길 기다린 것처럼.
혹시 이것이 꿈이 아닐까, 하고 볼을 꼬집어봤다.
그러나 분명히 감각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면 여기가 천국이고, 저 외눈박이 거인이 천사일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 무렵에,
외눈박이 거인이 입을 열었다.
“이쪽 세계에 넘어온 걸 환영한다, 다른 세계의 인간이여.”
[001화 : 이계 진입]
“말했다?!”
무슨 말인지 보다, 저 외눈박이 거인이 말을 한 것이 더 놀라웠다.
진짜로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외눈박이 거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말했다.
“내 말이 제대로 들리는 모양이군. 하긴, 주인님이 널 살리기 위해…….”
외눈박이 거인이 말을 쏟아냈지만, 건일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건일은 기겁을 하며 외눈박이 거인의 반대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외눈박이 거인이 크게 호통을 쳤다.
“거기 서지 못해!!”
사자후에 가까운 고성에 건일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천장 쪽에서 날개 길이가 5m는 되어 보이는 익룡 비스무리한 괴물 네 마리가 내려왔다.
익룡을 닮은 그 괴물들은 금방이라도 건일을 집어삼킬 듯이 기다란 주둥이를 벌렸다.
외눈박이 거인들이 다시 한 번 일갈했다.
“와이번들! 그 녀석은 주인님의 장난감이다! 건드리면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그 소리에 와이번이라 불린 괴물들은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한 번 천장으로 올라갔다.
놈들은 마치 박쥐처럼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맛있는 먹잇감을 보는 눈빛으로 건일을 바라봤다.
건일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벌벌 떨면서 외눈박이 거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그나마 얘기가 통하는 건, 저 외눈박이 거인밖에 없는 듯했다.
외눈박이 거인이 입을 열었다.
“좋아, 인간이여.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를 테니 내가 설명을 해주겠다.”
그래도 상식이 통하는 녀석인 듯 했다.
건일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눈박이 거인의 얘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외눈박이 거인이 우선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사이클롭스. 사이클롭스 님이라고 불러라. 네놈의 이름은 나중에 주인님이 지어주실 거다.”
“전 이름이 있는데요.”
불쑥, 건일도 모르게 딴지를 걸고 말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온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사이클롭스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건일을 쏘아보다, 침을 뱉듯 말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그 주둥아리부터 어떻게 해보거라.”
건일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래. 그럼 네놈이 어떻게 여기로 소환됐는지가 궁금하겠지.”
사이클롭스의 말에 건일은 이것저것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랐다.
화장실에서 분명히 심장 언저리를 총에 맞았는데…….
그는 황급히 자신의 가슴팍을 문질러 봤다.
총에 맞은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이클롭스가 말했다.
“가슴에 난 구멍은 주인님께서 메워주셨다. 꽤 지독한 상처여서 주인님께서 직접 자신의 살 일부를 떼어주시기까지 했지. 그 덕에 네 놈은 장난감 주제에 모든 언어를 통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됐어. 영광으로 알아라.”
건일이 장난감이란 말에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저 와이번들을 쫓아낼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나저나 주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살을 떼어주다니.
세포 이식을 했단 소리 같다.
그런데 건일의 몸엔 거부 반응이 없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이클롭스가 말을 이었다.
“주인님께선, 이 세계를 무척이나 심심해 하셨다. 그래서 이 세계엔 없는 지식을 얻기 위해 네놈을 소환하신 거다. 아주 훌륭한 장난감이지.”
다시 한 번 장난감 얘기가 나왔다.
확인해야만 했다.
건일이 조심스레 물었다.
“장난감… 이라뇨?”
“아앙??”
사이클롭스가 아주 가벼운 농처럼 되물었다.
그 말에 건일이 얼어붙어 버렸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살기 때문이었다.
건일은 특전사 시절, 멧돼지와 홀로 마주쳤던 기억이 났다.
거기에 한 만 배 정도를 곱하면 지금 느낌과 비슷할 것 같았다.
건일은 마른 침을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 그 주인님이란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에요. 돌려보내 주세요.”
그러자 사이클롭스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건일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를 받아버렸다.
건일은 엄청난 통증에 머리를 감싸 쥐고 쓰러졌다.
사이클롭스가 일갈했다.
“까불지 마라, 인간. 사람이라니! 주인님이 대체 어떤 분인지 알고 떠드는 게냐!”
그 살기에 사지가 저려왔다.
건일은 이를 깨물었다.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놈이 지껄여 댔다.
“주인님은 위대한 드래곤이시다! 젊은 나이에 거의 모든 마법을 통달하셔서 세상사에 흥미를 잃어버리신 분이란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니!”
놈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낸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건일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란 것이었다.
사이클롭스가 이토록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라니.
“널 소환한 직후에 다른 레어에 일이 생겨 가신 게 아쉽구나! 네놈이 주인님의 위대한 모습을 봐야 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 그 주인이라는 존재가 이곳에 없다는 것이었다.
말하는 것을 보니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놓을 것 같았다.
그러다 불쑥 사이클롭스가 중얼거렸다.
“난 돌아갈 방법을 모른다. 다만, 주인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널 대신할 만한 재밌는 장난감을 만든다면, 주인님께서 생각을 바꾸실 수도 있지.”
사이클롭스의 말에 건일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사이클롭스가 살기를 조금 거두고 말했다.
“주인님을 재밌게 해줄 수 있다면, 네놈이 돌아갈 방법을 찾아달라 청하마.”
건일은 사이클롭스의 눈을 살폈다.
방법을 모른다는 말이 진짠지 가짠지 모르겠다.
하지만 되돌려 보내주겠다는 말이 거짓말인 건 알 수 있었다.
그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저 괴물의 입장에서 건일은 한낱 주인님이란 존재의 장난감일 뿐.
건일 입장에서도 사온 장난감을 순순히 반품하진 않을 것이었다.
건일이 고개를 숙였다.
참다못한 사이클롭스가 입을 열었다.
“이봐, 인간. 이렇게 재미없게 굴면 죽여 버린다? 장난감이 쓸모없으면 폐기 처분해야지.”
이제야 확실히 실감이 났다.
건일은 고개를 숙인 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로 끌려온 것도 더럽게 말이 안 되고 불합리한데, 또 죽을 수는 없다.
머리를 굴려라, 머리를 굴려라.
어떻게든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아니,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재밌게만 하는 건 그저 연명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퍼뜩, 좋은 수가 떠올랐다.
그는 그의 안주머니를 만지작댔다.
박살난 핸드폰과 종이 뭉치가 느껴졌다.
건일이 고개를 치켜들고 사이클롭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다.
“총이라고… 아십니까?”
“호오. 이계의 물건인가.”
사이클롭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도박이 먹혀들었다.
놈은 꽤나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총이라고? 그게 뭔데?”
건일은 최대한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그가 무기 시연회를 위해 피나도록 연습한 덕분이었다.
“제 세계에 있는 재미난 물건입니다. 설명 대신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이클롭스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보여줘? 어떻게?”
“재료를 모아다 주시면 총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뭐?”
사이클롭스가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놈으로선 이런 부탁이 처음인 듯 보였다.
“감히 인간 나부랭이 주제에, 주인님의 시종인 내게 재료를 모아다 달라?”
여기서 쫄아선 안 된다. 도박을 할 땐 강하게 밀어붙여야만 했다.
건일이 히죽 웃어 보였다.
“어차피 총을 만들 수 없는 저는 죽는걸요. 거, 마지막에 도박 한 번 해보자, 해서 말하는 겁니다.”
잃을 게 없는 건 건일 쪽.
그렇기에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다행히 건일의 생각대로 일이 흘러갔다.
그 말에, 사이클롭스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웃음을 멈추고 호탕하게 소리쳤다.
“좋다, 인간 주제에 발칙하군! 필요한 물건들을 말해봐라!”
첫 번째 도박이 통했다.
건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주 잠깐 사이에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고 곧장 내뱉었다.
“첫 번째로, 대장간이 필요합니다.”
대장간은 이런 동굴이 아니라 바깥에 있을 것이다.
건일은 그곳에서 기회를 노릴 참이었다.
하지만 건일의 예상과는 달리 사이클롭스가 동굴 한 쪽 구석을 가리켰다.
“대장간은 저기 있다. 주인님께서 젊었을 적에 드워프 몇몇을 불러다 만든 대장간이지.”
건일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동굴 안에 대장간이 있다니, 그의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대장간이 밖에 있다는 조건은 부차적인 것이다.
제일 필요한 건 대장간이었다.
건일이 힐끗, 대장간을 바라봤다.
잠깐 봤는데도 대장간은 생각 이상으로 장비가 잘 갖춰진 것처럼 보였다.
먼지가 쌓인 것만 뺀다면.
사이클롭스가 재촉했다.
“그 다음은?”
총을 만들 재료를 생각해 냈다.
물론 탄환도.
건일이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쏟아냈다.
“대량의 철, 구리, 아연, 백금, 그리고 목면, 황산, 질산…….”
사이클롭스는 말을 듣고 있다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거, 더럽게 많이 필요하군.”
사이클롭스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건일이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말했다.
“모두 주인님을 위해서입니다. 주인님을 재밌게 하기 위해서, 조금은 수고를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이클롭스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천장에 매달려 있는 와이번들을 향해 소리쳤다.
“와이번들아! 이리로 내려오너라!”
와이번들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천장에서 내려왔다.
놈들은 고분고분히 사이클롭스의 앞에 서서 지시를 기다렸다.
사이클롭스가 건일에게 물었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게 무엇이냐.”
건일이 답했다.
“금속류입니다.”
“알겠다. 와이번들아. 금속류를 가져오너라.”
와이번들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높게 울부짖곤, 동굴 밖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건일은 와이번들이 나가는 방향을 통해 동굴 출구를 알아냈다.
그것을 본 사이클롭스가 폭소를 터뜨렸다.
“인간 놈…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것이냐.”
건일의 마음이 간파당한 탓에 그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버렸다.
사이클롭스는 크게 웃다가, 건일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건일이 버둥거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이클롭스는 그대로 건일을 들고 동굴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출구에 도착한 건일이 숨을 들이켰다.
그가 있는 곳은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도구를 갖추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미리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건일은 저 멀리 멀어지고 있는 와이번들을 바라봤다.
저곳에 아마 광산이 있는 것 같다.
사이클롭스는 이제 건일을 도로 동굴 안으로 데리고 왔다.
놈은 건일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말했다.
“일해라, 인간!”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우선 대장간으로 향했다.
생각 외로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철을 녹일 수 있는 화로부터 담금질을 할 수 있는 물을 받을 시내, 그리고 여러 가지 공구가 갖춰져 있었다.
다만 공구 같은 경우엔 건일이 쓰기엔 조금 짧았다.
건일보다 훨씬 작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구 같았다.
이걸 쓰려면 요령이 조금 필요할 듯 보였다.
사이클롭스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백금은 저기 있다.”
놈이 가리킨 방향은 사이클롭스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위치해 있었다.
건일이 들어서자 건일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금뿐만 아니라, 각종 금, 은 같은 귀금속으로 된 장식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던 탓이었다.
건일은 잠시 동안 그 보물들을 지켜보다, 우선 백금괴 하나를 집어 들어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한참 후, 와이번들이 동굴로 돌아왔다.
놈들은 그 거대한 덩치를 이용해 어마어마한 양의 철을 가지고 돌아왔다.
정제된 철로 보이는 것이, 인간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했다.
이 세계에도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했다.
와이번들이 동굴 한 가운데에 그 철들을 쏟아내 놓자 사이클롭스가 말했다.
“자. 철을 구해왔다. 일하거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
이대로만 간다면 건일은 주인님이란 자의 노리개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이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와이번은 이제 다른 재료들을 구하러 떠났다.
건일은 희망을 걸고 팔을 걷어붙여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대장간에 들어서서 화로에 불을 당긴다.
불이 켜지자, 풀무질을 하며 품에서 총기 설계도를 꺼냈다.
이게 건일을 살릴 유일한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