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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멘션 워커 2권 (7화)


한이 복도를 지나서 조이가 있는 방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고문 기구, 아이언 메이든이었다.
조이의 일기를 다 읽은 후, 한은 조이의 마지막은 반드시 아이언 메이든으로 하겠다고 정했다.
‘아이언 메이든에 딸을 집어넣고 몸을 묶어. 그 다음에 뚜껑 쪽에 추를 달아 그 추를 묶은 끈을 아버지의 입에 물리는 거야. 지옥에 떨어진 죄인 주제에 아비입네, 딸입네 하면서 꼴값을 떠는 게 보기 싫었거든. 킥킥.’
조이의 일기장에는 대화라도 나누는 것처럼 독백체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다음에는 그걸 지켜보면 되는 거야. 아비란 놈은 어떻게든 뚜껑이 닫히는 걸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끈을 물고, 딸은 이것 좀 풀어달라고 몸부림을 치는 거지. 킥킥킥.’
한은 조이를 그대로 집어 들어서 아이언 메이든의 안쪽에 집어넣고 그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꽁꽁 묶어 놓았다.
이 과정에서 조이의 거센 반항이 있었으나, 한이 팔꿈치를 반대 방향으로 꺾어놓자 곧 잦아들었다.
작업이 끝난 후 조이는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입과 혀가 전부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근데 그 아비라는 놈이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그 어마어마한 무게의 추를 매달은 끈을 계속 물고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 킥킥, 결국은 뚜껑은 닫힐 수밖에 없는 거고 아비라는 놈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닫힌 뚜껑 너머로 새어나오는 딸의 피를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거든. 그 표정, 그 멍청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말이야. 세상에 그것보다 재미있는 광경이 또 없거든.’
한은 방 안에 있는 모든 무기, 도구, 가구 등을 싹 다 끌어 모아 침대 시트로 묶었다.
얼핏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짐은 직접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상당한 무게가 나갔다. 정확한 무게를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사실은 사람의 입으로는 그리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은 그 짐을 아이언 메이든의 뚜껑과 연결하였다. 그러고는 밧줄로 연결한 짐을 천장에 달아놓은 강철 기둥 너머로 던졌다.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이 끈을 조이의 입에 물려주기만 하면 된다.
‘다음에 또 해보고 싶지만, 이 방법은 최소 두 명의 인원이 필요한데 이 지옥에 두 명이 한꺼번에 오는 일이 영 드물다 보니 자주 할 수 없다는 게 이 방법의 유일한 흠이랄까. 킥킥.’
아이언 메이든을 이용해 부녀를 유린한 조이의 일기는 여기까지였다.
“조이, 너는 틀렸어. 이 방법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거든. 내가 지금부터 너를 이용해서 직접 보여줄 테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봐.”
“읍, 으읍… 으으읍!!”
한이 뭘 하려고 하는지 알아챈 조이가 비명을 지르며 입을 벌리기를 거부했다.
퍽!
한은 조이의 명치를 나이프 손잡이로 내려쳤다.
“컥… 으읍, 으으읍!”
갑작스러운 일격에 조이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고, 한은 그 틈에 조이에게 끈을 물렸다.
“읍… 으읍… 으으읍!!”
조이가 눈동자를 바들거리며 한을 올려다봤다.
극도의 압박감에 실핏줄이 터져 핏물을 죽죽 쏟아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조이의 눈동자를 마주보는 것은 더없이 불쾌한 일이었고, 그래서 한은 그 자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한은 미련 없이 방문을 나서 복도로 향했다. 간절한 조이의 외침이 한의 뒤를 망령처럼 뒤따랐지만, 어차피 그것도 잠시, 한이 복도를 절반쯤 지났을 무렵에는 들릴락 말락 하더니 석조 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석조 문을 열고 조이와 처음 만난 방으로 돌아온 한은 테이블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후우∼”
피곤했다. 칠십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아흔 아홉 번의 피를 보았다.
근래에 느껴본 적 없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한은 눈을 감았다.
그러다 한이 눈을 다시 떴을 때는 시공간이 붕괴하고 있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조이의 치아가 삶을 유지하기를 마침내 포기한 것이다. 마침내 조이의 아흔 아홉 개의 목숨이 모두 끝난 것이다. 추악하기 그지없는 아흔아홉 개의 삶의 불꽃은 한에게 지울 수 없는 불쾌함만을 남긴 채 모두 타 버렸다.
이 층의 시련은 종료되었다. 시련의 주인, ‘흉조 조이’가 가진 목숨을 모두 잃는 형태로 말이다.
한은 품속에서 조이의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장은 이내 연기가 되어 사라져 갔다.
말숨의 권능이 지상에서 사라졌으니 말숨의 지옥을 관장하는 광대도 사라지는 게 마땅한 일. 진즉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이 백 년 늦게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몸에 밴 조이의 피 냄새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소태를 삼킨 것처럼 입맛이 쓰디썼다.
한은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한을 둘러쌓고 있던 시공간이 붕괴되었고, 한의 모습은 한 줄기 빛이 되어 시공간 너머로 사라졌다.

한은 눈을 떴다.
시련의 공간을 벗어나 눈을 뜬 한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마법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 층과 같은 풍경이 보였다. 바닥의 마법진, 석조 기둥, 그리고 제단.
다만 일 층과 차이점이 있다면 일 층의 신전이 어마어마하게 커다랬던 반면에 이 층은 평범한 크기의 신전이었다는 점이다. 그 크기를 제외한다면 일 층의 신전과 완벽하게 닮아 있는 이 층이었다. 또한…….
와락.
한이 시련을 통과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진이 한을 격하게 맞이해 준다는 점에서도 이 층은 일 층과 닮아 있었다.
“나 왔어, 진.”
“응, 수고했어요.”
시련을 겪고 온 건 한일 텐데, 무슨 일인지 진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진은 팔에 힘을 줘서 한을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한이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잘 알고 있는 진으로서는 한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아무 말도 안하는 거야?”
“…….”
진은 대답 대신 한을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한의 코트에서는 옅은 피비린내가 흘러 나왔다.
“다행이네. 조금 못된 짓을 하고 와서 진한테 야단맞을 줄 알고 걱정 많이 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한다니.”
한은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는 진의 팔을 슬쩍 풀었다. 그리고 코트를 벗어 허공에 휘둘렀다.
조이에 관한 기억은 이미 소멸된 공간에 전부 버리고 왔음에도, 아직도 코트에 조이의 피비린내가 묻어 있는 것만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진, 혹시 말이야. 예전에 신의 자리에 있을 때 말숨이랑 친했어?”
“아뇨. 말했잖아요, 말숨은 엄청 까다로운 성격이었다고.”
“다행이네.”
한은 다시 코트를 걸쳤다. 아직 피비린내가 완전히 가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혹시 예전의 자리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말숨이랑은 친하게 지내지 마. 완전 미친놈 같으니까.”
일 층의 시련을 마치고 돌아온 한이 그래도 말숨을 대할 때 최소한의 존중을 가지고 있던데 비해, 이 층의 시련을 마친 후 말숨을 대하는 한의 태도는 노골적으로 불경스러웠다.
“일 층에서는 사람의 트라우마를 쿡쿡 찌르더니, 이 층에서는 저런 사이코패스를 시련의 시험관이라고 가져다 놔? 이게 단순 미치광이지 어딜 봐서 신이라는 거야?”
한은 장갑을 다시 한 번 조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곳에 와서 파괴의 권능을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 만약 눈앞에 말숨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한 방 먹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쿡, 알았어요. 이제 말숨을 만나게 되더라도 인사도 안할게요. 그럼 되는 거죠?”
‘내가 그런 버릇없는 소리하면 안 된다고 했죠?’라는 진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한은 의외의 반응을 보여주는 진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진, 혹시 어디 아파? 아니면 나 없는 동안에 뭐 잘못 먹은 거라도 있어?”
한으로서는 진의 격한 반응을 예상하고 한 행동이었는데, 진은 한이 예상했던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이마를 짚은 한의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나는 한을 믿으니까.”
“진, 진짜 어디 아프지? 어디야, 대체 어디가 아픈 건데?”
한은 진의 이마를 짚거나 양 뺨을 감싸는 둥 부산을 떨었다.
“에이, 정말.”
모처럼 조성한 훈훈한 분위기가 한의 너스레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진이 팔짱을 끼고 진을 째려봤다.
“내가 한을 믿는다는 게 그렇게 불만이에요?”
“아니, 불만은 아닌데… 왜 그렇잖아.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아냐, 아무것도.”
아직 그렁그렁한 눈물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진의 눈초리는 다시 매서워졌고, 그걸 목격한 한은 딴전을 피웠다.
“한이 나를 믿고 있는 것처럼…….”
진이 손을 뻗어 한의 손을 감싼 채 자신의 가슴팍에 가져다 대었다.
“나는 한을 믿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진의 가슴에 닿은 오른손에서 진의 손이 주는 따스한 온기와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그러니까, 힘내요.”
진이 한에게 주는 따스한, 그리고 헌신적인 믿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은 답했다.
“이럴 때만 믿는다고 하지 말고 평소에도 믿어주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평소에도 믿음이 가게 행동하면 되잖아.”
“평소에도 나만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래.”
한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점멸하고 있는 마법진을 향해 걸어갔다.
“자, 갑시다. 다음은 삼 층. 가 보자고.”
“조금 쉬었다 가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아니. 괜찮아. 오히려 다음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나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릴 지경이야.”
한은 마법진 위에 발을 올려놓은 채 진을 재촉했다.
“진, 빨리빨리. 시간 없어.”
“정말. 이럴 때 보면 완전 애라니까.”
진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한을 따라 마법진 위로 발을 올렸고, 주문을 외웠다.
진이 영창을 마치자 마법진이 빛을 발했고, 한과 진은 세 번째 차원 이동을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차원 이동에 성공한 직후, 한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진은 한의 옆에 있지 않았다.
진 대신 한의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어둠이라면 이미 일 층에서 질릴 만큼 겪어 본 바가 있었기에 한은 당황하지 않고 평소처럼 행동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삼 층의 어둠과 일 층의 어둠은 같지 않았다.
“이번에는 끈끈이 놀이냐.”
삼 층의 어둠과 일 층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어둠 자체에 있었다.
일 층의 어둠이 한의 주위를 막연히 부유하는 망령 같은 어둠이었다면, 삼 층의 어둠은 한을 저 깊은 곳에 있는 심연으로 끌어들이려 드는 탐욕스러운 원령과도 같았다.
“어쩐지, 왜 하필 이런 자세로 시작하나 했지.”
삼 층으로 전송된 직후, 한은 사지를 쭉 펴고 바닥에 큰대자로 널브러져 있었다.
이런 편한 자세로 시련을 맞게 해주다니, 말숨이 조금은 참회를 한 걸까 하는 기대를 잠깐 한 적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괜한 기대였던 모양이다.
큰대자로 시련을 맞이하게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한을 눕힘으로써 어둠으로 휘감을 수 있는 한의 신체 면적을 최대한 늘리고자 한 것이다.
“흐으으읍!!”
한은 안간힘을 써봤으나, 한을 휘어감은 어둠은 한을 놓아주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이 발버둥을 칠수록 더욱더 그 힘을 더해가며 한을 옭아매었다.
한은 허세를 부리는 걸 싫어했지만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 봐도 자신의 근력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꼼짝도 할 수 없다면, 애초에 이 어둠은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말일 터.
“진작에 그렇게 얘기를 하시지.”
한은 확신했다. 말숨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련의 도전자가 인간으로서의 능력이 아닌 그 이상의 힘을 보여주기를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질문이라면 한은 백 점짜리 답을 내놓을 자신이 있었다.
한은 쭈욱 뻗었던 손가락을 오므렸다. 손끝에서 머물던 파멸의 권능이 온 몸을 타고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파동이 정점에 다다른 순간, 한은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마냥 옴짝달싹 할 수 없었지만 상황이 변했고, 한을 옭아매던 어둠은 실타래처럼 가볍게 끊어졌다.
“쉽게는 안 보내준다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