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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멘션 워커 2권 (6화)
조이는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후에는 자신의 양팔을 어루만지고 두 다리를 만졌다.
얼굴과 팔, 다리가 제대로 붙어 있다는 걸 확인한 후에 조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바로 그 직후,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에 직면했다.
말숨 님이 주신 비약은 이 전 부활을 끝으로 다 써버렸다. 그러나 모든 비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귀와 눈을 도려내기는커녕 놈의 코트에 흠집 하나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 바로 전 번에는 열 통의 비약을 한꺼번에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놈에게 손끝 하나도 대지 못했다.
“으… 으으… 으으, 어… 어… 어쩌지…….”
턱이 다물어지지 않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 자리에 나뒹굴고 말았다.
땅을 기는 애벌레처럼 비참한 모습으로나마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이제는 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 아, 안 돼… 오지 마! 오지 마!!”
조이는 눈을 감고 양팔을 휘둘렀다. 눈을 뜨면 그놈의 모습이 보일 것만 같아서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미친놈마냥 양팔을 마구 휘둘렀다.
피융―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들리고 조이의 미간에 석궁 화살이 정통으로 꽃혔다.
석궁을 맞는 순간 보지 않았음에도 조이는 알 수 있었다. 이 석궁… 스물 몇 번째의 부활 후 자신이 들고 나갔던 그 석궁이다.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프라이팬 위의 버터처럼 녹아버리는 맹독이 묻은 그 화살 말이다.
“어으… 어으응…….”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혀가 녹아버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조이의 신체는 녹아 내렸다.
조이가 한을 만난 이후로 예순 하고도 아홉 번째 맞이하는 죽음이었다.
조이는 양팔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떨림은 멎지 않았다.
눈꺼풀은 계속해서 떴다 감겼다를 반복하고, 이빨은 위아래로 부딪치며 딱딱 소리를 낸다. 눈도, 팔도, 다리도 전부 자신에게 달려 있으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왜 이러는 걸까, 도대체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조이는 자신의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자신의 아흔 아홉 개의 목숨이 전부 사라지고, 자신의 존재가 완전하게 소멸하고 말 거라는 냉정한 현실을 맞닥뜨리는 공포. 천하의 ‘흉조 조이’가 공포를 느낀다고? 자신을 체포하러 온 수백의 성기사를 앞에 두고도, 자신의 처형 장면을 목격하러 온 수 없이 많은 군중들을 앞에 두고도 죽음의 예술을 이해 못하는 어리석은 군중들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조롱하던 그 흉조 조이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아흐흐흑…….”
조이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터져 나오는 눈물과 콧물이 조이가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죽을 수 없는 일이다. 아직 썰어보지 못한 육체가 너무나도 많다.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 저놈과 거래를 하자. 어차피 저놈의 목적은 이 시련을 통과하는데 있지 자신을 죽이는 데 있지는 않을 터. 저놈 앞에 가서 일주일간 놈을 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자.
놈은 의심이 많은 성격이니 자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자물쇠와 열쇠를 주면 된다. 안에서 잠그는 열쇠는 허용되지 않지만 바깥에서 잠그는 열쇠는 있으니 놈에게 자물쇠를 주고 나를 방 안에다 가두라고 하자.
그러면 놈도 안심할 테고,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
“하아… 하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지자 조이의 호흡은 다시 한 번 가빠졌다. 서둘러야 한다. 이제 남은 목숨은 기껏해야 스무 개 정도. 서둘러서 놈과의 거래를 성사시켜야 한다.
조이는 구겨졌던 셔츠 자락을 펴고 풀어헤쳤던 보타이를 다시 맸다. 협상을 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단정한 차림인 경우가 유리할 테니.
조이는 숨을 크게 내쉬고 방문을 열고 나섰다. 놈을 찾아야 한다.
꿀꺽꿀꺽.
한은 잔에 가득 따라놓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이 거지 같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점이 딱 하나 있다면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 나오는 맥주뿐이었다.
맥주를 마시고 식탁 위에 놓인 적당한 음식 몇 가지를 씹어 삼켜서 허기를 채운 한은 다시 한 번 복도로 나섰다. 이제 아홉 번 정도만 더 하면 이 지루한 게임도 끝이 날 것이다.
시계를 보니 게임이 시작된 지 대략 60시간 정도가 경과된 시점이다. 요 몇 번 동안 조이가 죽기 전에 짓는 표정을 보니 자신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놈은 쓰레기, 쓰레기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다.
― 한 님, 한 님, 부탁드립니다.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조이를 찾아서 복도를 걷고 있는 한의 귓가에 조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향 장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 사방에서 조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처음에 한을 맞이할 때의 느긋한 목소리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다급한 목소리였는데, 한으로서는 무척 만족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 제안을,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신다면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절대로 한 님의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한 님은 그냥 남은 시간동안 편하게 쉬시면 시련을 통과하는 겁니다. 저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자물쇠를 드리겠습니다. 안쪽에서 잠그는 자물쇠는 허용되지 않지만, 방 바깥에서 방 안의 사람을 가둬둘 때는 사용할 수 있는 자물쇠 입니다. 한 님, 제발 저를 한 번만 믿어주세요.
조이의 목소리는 다급한 수준을 넘어 절박함의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제 제안을 받아들여 주신다면 앞으로 있는 3층, 4층, 5층에 대한 정보와 함께 아래층의 시련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아래층에 대한 정보와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이 담긴 조이의 목소리를 듣고 한은 고민에 빠졌다.
‘음… 어쩌면 혹시…….’
한은 바로 옆에 있는 복도의 방문을 걷어찼다.
“……!!”
방문 너머로는 공포로 새파랗게 질린 표정의 조이가 있었다.
역시 왠지 방금 전의 그 방송에서 조이가 자신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다음 방문을 열어 봤더니 찾아 헤매던 조이가 그곳에 있었다.
이걸로 여덟 번 남았다.
“한 님, 제 제안을… 부디… 부디 자비를… 아니 제안을 들어보시면…….”
극도로 치달은 공포로 인해 횡설수설하는 조이를 보며 한은 얼마 전에 읽었던 조이의 일기장 298페이지를 떠올렸다. 분명히 그곳에 기록되어 있었다. 음향 기구를 이용해 공포심을 극대화하며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한 님, 자비를… 제발 용서를… 아악∼!!”
무릎을 꿇고 울고 불며 자비를 구걸하던 조이의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일으켜 세운 한은 음향 장치 위에 조이를 그대로 펼쳐 놓았다.
그리고 스피커 대용으로 쓰이는 증폭 마법이 걸린 수정구를 들어 조이의 양 무릎에 내리 찍었다.
으지직.
얼추 짐작해도 상당한 무게가 나가는 수정구에 한의 악력이 더해지니 수정구는 웬만한 워 해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수정구가 조이의 가녀린 무릎 뼈를 그대로 직격했으니 조이의 무릎이 성할 리가 없었다.
“아악!!”
무릎의 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수정구를 통해 증폭되며 방에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한은 수정구를 하나 더 들어서 조이의 입에 쑤셔 넣었다.
“읍, 으읍… 으으읍!!”
조이의 억눌린 비명이 수정구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조이의 입을 틀어막은 한은 조금 전 조이의 무릎 뼈를 박살냈던 수정구를 다시 들어 이번에는 조이의 갈비뼈를 내려찍기 시작했다.
“윽… 으읍! 으으… 으윽… 으읍윽!!”
수정구로 입을 막고 있음에도 조이의 비명은 방에 구석구석 울려퍼졌다. 그 처절하다 못해 비통한 비명소리가 조이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한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하던 작업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었다. 한은 조이의 핏발이 선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조이의 일기장에는 분명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특히 갈비뼈를 박살내면서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는 인간의 눈동자를 마주보는 건 최고 중에 최고였어. 증폭 마법이 걸린 수정구로 인간의 갈비뼈를 부수면 그 인간은 자기 갈비뼈가 부러지는 그 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면서 죽어가게 되거든. 비명이라도 마음껏 지르면 좀 편하겠지만, 내가 입을 막아놓은 탓에 비명도 마음대로 못 지르지. 킥킥킥. 그 절망감과 무력감이 어우러진 핏발이 선 눈동자. 절대 잊지 못할 거야.’
한은 조이의 일기장에 적힌 구절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다.
애석하게도 한은 조이와는 달리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며 죽일 수 있는가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했다. 그래서 한은 조이에게 되도록 많은 고통을 줄 방안을 고안하기 보다는 조이가 고안한 방법들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다.
그렇게 수정구가 내리쳐 지기를 십여 분. 조이의 비명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움푹 파여서 함몰된 가슴팍과 핏발이 선 채 까뒤집혀진 눈동자.
조이는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제안’이라는 두 글자를 한에게 외쳤다. 조이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신을 이대로 용서해 주면 아래층에 관한 정보와 도구를 주겠다는 조이의 제안은 처음부터 한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게임이 시작된 이후 한에게 있어서 고려 사항은 오직 하나였다. 조이의 일기장에 쓰여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 아흔 여덟 개를 골라 조이에게 똑같이 갚아주는 것.
그것 말고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조이의 시체가 연기가 되어 사라진 걸 확인한 한은 조이의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이제 남은 목숨은 여덟 개. 아직 써보지 않은 방법에 어떤 것들이 남았지?
조이는 머리를 양 무릎 사이에 처박은 채 양 손으로 귀를 막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 안 들려, 헤헤… 아무것도… 안 들려…….’
조이의 입가에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멈출 줄 모르는 눈물 콧물은 입술 위에 모여서 홍수를 이뤘다.
지금의 조이의 상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성’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아흔 아홉 번째, 마지막 부활을 한 조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 줄을 놓아버리는 선택을 했다. 죽음의 공포를 막아줄 수 있다면 자존심 따위는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이 조이의 앞에 나타났다. 한의 손에는 굵은 밧줄이 하나 들려 있었다.
“헤에… 안 보이지롱, 헤에… 난 너… 안 보인다.”
조이는 귀를 막고 있던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죽음의 공포를 막아보겠다는 절실한 노력이 느껴지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조이의 몸부림은 ‘죽음의 공포’를 막아줄 수는 있을지언정 조이에게 다가올 ‘죽음’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
조이의 모습을 잠시간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던 한은 등을 돌렸고, 그대로 방문을 나섰다.
“헤에… 안 보인다… 안… 보인다.”
한이 방을 나갔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조이는 여전히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뭔가 육중한 물체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들린다. 전부… 안… 들린다.”
이지는 상실했을지라도, 복도에서 들리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낀 조이는 다시 귀를 틀어막았다.
이윽고 한이 다시 조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소리의 정체가 뭔지도 드러났다.
‘아이언 메이든.’
조이는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후에는 자신의 양팔을 어루만지고 두 다리를 만졌다.
얼굴과 팔, 다리가 제대로 붙어 있다는 걸 확인한 후에 조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바로 그 직후,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에 직면했다.
말숨 님이 주신 비약은 이 전 부활을 끝으로 다 써버렸다. 그러나 모든 비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귀와 눈을 도려내기는커녕 놈의 코트에 흠집 하나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 바로 전 번에는 열 통의 비약을 한꺼번에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놈에게 손끝 하나도 대지 못했다.
“으… 으으… 으으, 어… 어… 어쩌지…….”
턱이 다물어지지 않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 자리에 나뒹굴고 말았다.
땅을 기는 애벌레처럼 비참한 모습으로나마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이제는 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 아, 안 돼… 오지 마! 오지 마!!”
조이는 눈을 감고 양팔을 휘둘렀다. 눈을 뜨면 그놈의 모습이 보일 것만 같아서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미친놈마냥 양팔을 마구 휘둘렀다.
피융―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들리고 조이의 미간에 석궁 화살이 정통으로 꽃혔다.
석궁을 맞는 순간 보지 않았음에도 조이는 알 수 있었다. 이 석궁… 스물 몇 번째의 부활 후 자신이 들고 나갔던 그 석궁이다.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프라이팬 위의 버터처럼 녹아버리는 맹독이 묻은 그 화살 말이다.
“어으… 어으응…….”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혀가 녹아버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조이의 신체는 녹아 내렸다.
조이가 한을 만난 이후로 예순 하고도 아홉 번째 맞이하는 죽음이었다.
조이는 양팔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떨림은 멎지 않았다.
눈꺼풀은 계속해서 떴다 감겼다를 반복하고, 이빨은 위아래로 부딪치며 딱딱 소리를 낸다. 눈도, 팔도, 다리도 전부 자신에게 달려 있으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왜 이러는 걸까, 도대체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조이는 자신의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자신의 아흔 아홉 개의 목숨이 전부 사라지고, 자신의 존재가 완전하게 소멸하고 말 거라는 냉정한 현실을 맞닥뜨리는 공포. 천하의 ‘흉조 조이’가 공포를 느낀다고? 자신을 체포하러 온 수백의 성기사를 앞에 두고도, 자신의 처형 장면을 목격하러 온 수 없이 많은 군중들을 앞에 두고도 죽음의 예술을 이해 못하는 어리석은 군중들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조롱하던 그 흉조 조이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아흐흐흑…….”
조이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터져 나오는 눈물과 콧물이 조이가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죽을 수 없는 일이다. 아직 썰어보지 못한 육체가 너무나도 많다.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 저놈과 거래를 하자. 어차피 저놈의 목적은 이 시련을 통과하는데 있지 자신을 죽이는 데 있지는 않을 터. 저놈 앞에 가서 일주일간 놈을 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자.
놈은 의심이 많은 성격이니 자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자물쇠와 열쇠를 주면 된다. 안에서 잠그는 열쇠는 허용되지 않지만 바깥에서 잠그는 열쇠는 있으니 놈에게 자물쇠를 주고 나를 방 안에다 가두라고 하자.
그러면 놈도 안심할 테고,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
“하아… 하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지자 조이의 호흡은 다시 한 번 가빠졌다. 서둘러야 한다. 이제 남은 목숨은 기껏해야 스무 개 정도. 서둘러서 놈과의 거래를 성사시켜야 한다.
조이는 구겨졌던 셔츠 자락을 펴고 풀어헤쳤던 보타이를 다시 맸다. 협상을 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단정한 차림인 경우가 유리할 테니.
조이는 숨을 크게 내쉬고 방문을 열고 나섰다. 놈을 찾아야 한다.
꿀꺽꿀꺽.
한은 잔에 가득 따라놓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이 거지 같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점이 딱 하나 있다면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 나오는 맥주뿐이었다.
맥주를 마시고 식탁 위에 놓인 적당한 음식 몇 가지를 씹어 삼켜서 허기를 채운 한은 다시 한 번 복도로 나섰다. 이제 아홉 번 정도만 더 하면 이 지루한 게임도 끝이 날 것이다.
시계를 보니 게임이 시작된 지 대략 60시간 정도가 경과된 시점이다. 요 몇 번 동안 조이가 죽기 전에 짓는 표정을 보니 자신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놈은 쓰레기, 쓰레기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다.
― 한 님, 한 님, 부탁드립니다.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조이를 찾아서 복도를 걷고 있는 한의 귓가에 조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향 장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 사방에서 조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처음에 한을 맞이할 때의 느긋한 목소리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다급한 목소리였는데, 한으로서는 무척 만족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 제안을,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신다면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절대로 한 님의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한 님은 그냥 남은 시간동안 편하게 쉬시면 시련을 통과하는 겁니다. 저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자물쇠를 드리겠습니다. 안쪽에서 잠그는 자물쇠는 허용되지 않지만, 방 바깥에서 방 안의 사람을 가둬둘 때는 사용할 수 있는 자물쇠 입니다. 한 님, 제발 저를 한 번만 믿어주세요.
조이의 목소리는 다급한 수준을 넘어 절박함의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제 제안을 받아들여 주신다면 앞으로 있는 3층, 4층, 5층에 대한 정보와 함께 아래층의 시련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아래층에 대한 정보와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이 담긴 조이의 목소리를 듣고 한은 고민에 빠졌다.
‘음… 어쩌면 혹시…….’
한은 바로 옆에 있는 복도의 방문을 걷어찼다.
“……!!”
방문 너머로는 공포로 새파랗게 질린 표정의 조이가 있었다.
역시 왠지 방금 전의 그 방송에서 조이가 자신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다음 방문을 열어 봤더니 찾아 헤매던 조이가 그곳에 있었다.
이걸로 여덟 번 남았다.
“한 님, 제 제안을… 부디… 부디 자비를… 아니 제안을 들어보시면…….”
극도로 치달은 공포로 인해 횡설수설하는 조이를 보며 한은 얼마 전에 읽었던 조이의 일기장 298페이지를 떠올렸다. 분명히 그곳에 기록되어 있었다. 음향 기구를 이용해 공포심을 극대화하며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한 님, 자비를… 제발 용서를… 아악∼!!”
무릎을 꿇고 울고 불며 자비를 구걸하던 조이의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일으켜 세운 한은 음향 장치 위에 조이를 그대로 펼쳐 놓았다.
그리고 스피커 대용으로 쓰이는 증폭 마법이 걸린 수정구를 들어 조이의 양 무릎에 내리 찍었다.
으지직.
얼추 짐작해도 상당한 무게가 나가는 수정구에 한의 악력이 더해지니 수정구는 웬만한 워 해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수정구가 조이의 가녀린 무릎 뼈를 그대로 직격했으니 조이의 무릎이 성할 리가 없었다.
“아악!!”
무릎의 뼈가 박살나는 소리가 수정구를 통해 증폭되며 방에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한은 수정구를 하나 더 들어서 조이의 입에 쑤셔 넣었다.
“읍, 으읍… 으으읍!!”
조이의 억눌린 비명이 수정구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조이의 입을 틀어막은 한은 조금 전 조이의 무릎 뼈를 박살냈던 수정구를 다시 들어 이번에는 조이의 갈비뼈를 내려찍기 시작했다.
“윽… 으읍! 으으… 으윽… 으읍윽!!”
수정구로 입을 막고 있음에도 조이의 비명은 방에 구석구석 울려퍼졌다. 그 처절하다 못해 비통한 비명소리가 조이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한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하던 작업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었다. 한은 조이의 핏발이 선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조이의 일기장에는 분명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특히 갈비뼈를 박살내면서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는 인간의 눈동자를 마주보는 건 최고 중에 최고였어. 증폭 마법이 걸린 수정구로 인간의 갈비뼈를 부수면 그 인간은 자기 갈비뼈가 부러지는 그 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면서 죽어가게 되거든. 비명이라도 마음껏 지르면 좀 편하겠지만, 내가 입을 막아놓은 탓에 비명도 마음대로 못 지르지. 킥킥킥. 그 절망감과 무력감이 어우러진 핏발이 선 눈동자. 절대 잊지 못할 거야.’
한은 조이의 일기장에 적힌 구절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다.
애석하게도 한은 조이와는 달리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더 많은 고통을 주며 죽일 수 있는가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했다. 그래서 한은 조이에게 되도록 많은 고통을 줄 방안을 고안하기 보다는 조이가 고안한 방법들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다.
그렇게 수정구가 내리쳐 지기를 십여 분. 조이의 비명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움푹 파여서 함몰된 가슴팍과 핏발이 선 채 까뒤집혀진 눈동자.
조이는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제안’이라는 두 글자를 한에게 외쳤다. 조이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신을 이대로 용서해 주면 아래층에 관한 정보와 도구를 주겠다는 조이의 제안은 처음부터 한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게임이 시작된 이후 한에게 있어서 고려 사항은 오직 하나였다. 조이의 일기장에 쓰여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 아흔 여덟 개를 골라 조이에게 똑같이 갚아주는 것.
그것 말고는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조이의 시체가 연기가 되어 사라진 걸 확인한 한은 조이의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이제 남은 목숨은 여덟 개. 아직 써보지 않은 방법에 어떤 것들이 남았지?
조이는 머리를 양 무릎 사이에 처박은 채 양 손으로 귀를 막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 안 들려, 헤헤… 아무것도… 안 들려…….’
조이의 입가에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멈출 줄 모르는 눈물 콧물은 입술 위에 모여서 홍수를 이뤘다.
지금의 조이의 상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성’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아흔 아홉 번째, 마지막 부활을 한 조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 줄을 놓아버리는 선택을 했다. 죽음의 공포를 막아줄 수 있다면 자존심 따위는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이 조이의 앞에 나타났다. 한의 손에는 굵은 밧줄이 하나 들려 있었다.
“헤에… 안 보이지롱, 헤에… 난 너… 안 보인다.”
조이는 귀를 막고 있던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죽음의 공포를 막아보겠다는 절실한 노력이 느껴지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조이의 몸부림은 ‘죽음의 공포’를 막아줄 수는 있을지언정 조이에게 다가올 ‘죽음’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
조이의 모습을 잠시간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던 한은 등을 돌렸고, 그대로 방문을 나섰다.
“헤에… 안 보인다… 안… 보인다.”
한이 방을 나갔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조이는 여전히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뭔가 육중한 물체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들린다. 전부… 안… 들린다.”
이지는 상실했을지라도, 복도에서 들리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낀 조이는 다시 귀를 틀어막았다.
이윽고 한이 다시 조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소리의 정체가 뭔지도 드러났다.
‘아이언 메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