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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멘션 워커 2권 (4화)
“물론 저도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저 또한 저 스스로를 지키려 노력할 테니, 저를 죽이려 드는 한 씨와는 칼을 맞대고 싸우게 되겠죠. 결국 한 씨와 저는 일주일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거죠. 하하, 간단하죠?”
“미친 새끼.”
“이런, 저한테 하시는 말씀인가요?”
“너와 말숨, 둘 모두에게 하는 말이야. 미친 새끼들.”
한의 입에서 드디어 격한 감정이 터져 나왔다.
“하하, 한 씨가 화를 내시는 건 이해가 갑니다. 저는 무려 아흔아홉 개의 목숨이 있는데 한 씨에게는 겨우 하나의 목숨이 전부일 테니 불공평한 규칙의 게임이기는 하죠.”
“날 이해하는 척 하려 들지 마. 역겨우니까. 내가 화가 난 건 이따위 상황을 시련이랍시고 만들어 놓은 말숨이라는 놈의 되먹지 못함 때문이지, 불공평함 때문이 아니야. “
한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난 너 같은 인간 백정이 아니야.”
“이런, 이런. 빨리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너무 서두르시면 곤란해요. 자, 앉으세요. 일단 게임 룰은 끝까지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이는 한에게 다시 자리에 앉으라는 손동작을 했고, 우선 규칙을 들으라는 놈의 말은 사실이었기에 한은 다시 의자에 앉아야만 했다.
“기본 룰은 설명을 드렸으니, 세부 사항을 설명해 드려야겠죠. 일단 게임이 펼쳐질 무대는 이 방과 복도, 그리고 복도에 있는 모든 방입니다. 이 소리 들리시나요?”
철컥철컥.
조이는 손뼉을 쳤고, 직후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지금 시점을 기점으로 복도에 있는 모든 방의 자물쇠가 열렸답니다. 그 말인즉슨 한 씨와 저, 둘 모두 모든 방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숨을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게임이 시작되면 저는 한 씨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답니다.”
“…….”
“이 길고 긴 복도와 수많은 방을 무대로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르는 상대방을 찾아 헤매는 이 스릴이 일품이랍니다. 하하, 물론 저와는 달리 한 님의 목숨은 하나. 딱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니 조심하셔야 하겠지만요.”
조이는 즐거워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배를 잡고 킬킬거렸다.
“그딴 역겨운 스릴 따위 내 알 바 아니지만, 네 설명을 듣고 나니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아.”
한은 양손을 모아 얼굴을 쓰다듬었다. 더 이상 저놈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답이 없는 미친놈이라는 것 말야. 당신은 이 상황이 즐겁나 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설마 한 님은 이 상황이 즐겁지 않으신가요?”
조이는 이런 질문을 하는 한이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을 바라보았다.
“너랑 나는 지금부터 서로 죽고 죽여야 한다는 거잖아? 죽고 죽이는 게 그렇게 즐겁나?”
“설마 한 님은 죽고 죽이는 게 즐겁지 않다고 말하시는 건가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조이를 바라보며, 한은 다른 질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신, 이 게임을 몇 번째나 하고 있는 거지?”
“하하, 사실 1층을 거쳐서 오는 분을 맞이하는 건 처음입니다. 대부분은 지옥문을 통해 오신 분들이죠.”
“지옥문?”
“아, 모르고 계셨구나. 이 곳에 오는 분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지죠.”
조이는 한에게 손을 뻗어 엄지와 중지를 곧추 세웠다.
“첫째, 시련의 탑 일 층을 통과하고 오시는 경우, 그러니까 이를테면 한 님 같은 경우를 말하는 거겠죠. 저는 꽤나 오랜 시간 이 곳을 지키고 있었지만, 이 방법을 통해서 온 분을 목격한건 한 님이 처음입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말숨의 유산이 담긴 흑색 탑을 최초로 발견한 게 한이었느니, 최초로 도달한 사람도 한이 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둘째, 말숨 님에게 벌을 받아서 오는 경우. 사실 이게 대부분의 경우에 해당하죠.”
“말숨에게 벌을 받은 자가 이곳에 온다고?”
한으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이 공간이 그런 용도로도 사용되다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시련의 공간이 아니라 단죄의 공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네, 삿되게 어둠의 이름을 사칭한 자, 말숨의 권위를 사칭한 자, 그 중에서도 말숨의 이름을 내걸고 죄 없는 이들의 목숨을 유린한 자는 이곳에 와서 저에게 심판을 받게 되죠.”
“당신이 죄인을 심판한다는 말이야?”
“네, 제가 말숨의 이름으로 심판합니다. 그게 제 임무인 셈이죠.”
“망나니 인간 백정이 죄인을 심판한다고? 개가 웃을 일이군.”
한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조이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가실 줄을 몰랐다.
“그런데 말이죠. 이곳으로 오는 죄인이 백 년 전부터 통 보이지가 않더군요. 덕분에 지난 백 년간은 그야말로 지루해서 죽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답니다.”
백 년 간 죄인이 오지 않았다고?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더가 모든 신들의 권능을 흡수하고 봉인된 게 정확히 백 년 전.
권능이 사라진 신이 심판의 철퇴를 내릴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죄인의 영혼이 이곳으로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님이 백 년만에 이곳에 오셨으니 제가 기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조이의 눈가에 불길한 열정이 가득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한은 왜 그렇게 조이의 기분이 좋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놈에게 있어서 한은 백 년만에 나타난,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채워줄 장난감이었을 테니 저리 기뻐 날뛰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그래도 어째서 명색이 신인 말숨이 당신 같은 쓰레기에게 이런 임무를 준 거지? 말숨 주위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그리도 없었나?”
그간의 대화를 통해 한이 조이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 조이가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미치광이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말숨은 이런 미치광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죄인을 심판하는 임무를 맡긴 걸까.
“설마 그럴 리가요. 말숨 님께서 죄인을 심판하는 그런 엄중한 임무를 아무나에게 맡기셨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이래 뵈도 보통 사람이 아니랍니다. 혹시 흉조라고 들어 보셨나요?”
조이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는 표정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
조이의 질문에 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이의 정체가 흉성이라면 그나마 납득이 간다. 이놈이 대체 왜 이렇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인건지.
흉조, 한이 오래 전에 읽은 책에서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신들의 권능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와는 달리 신들이 꿈꾸는 세상, 아스가르드에는 신들의 권능이 살아 숨 쉰다.
그리고 모든 일에 빛과 어둠이 있듯이, 기적을 현실로 만드는 신의 권능이 있다면 악몽을 현실로 만드는 저주도 있기 마련, 그 모든 악몽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형태를 가진 채 실현된 악몽을 일컫는 명칭이 ‘흉조’였다.
“악행이 거듭되고 그 악행에 대한 원성이 드높아 악명이 사람들 사이에서 참이라고 믿어지면 허구일 뿐인 악몽은 실체가 되지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건 좋은 꿈만이 아닙니다. 악몽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는 아스가르드는 참 공평한 세상인 셈이지요.”
마치 달관한 철학자라도 되는 마냥 공평을 운운하는 조이를 보며, 한은 솟구치는 혐오감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털어 놔. 너는 어떤 악몽이었지?”
이 질문을 해주기를 기다린 걸까, 조이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자부심이 비쳤다.
“저는 그냥 그저 그런 악몽의 사자일 뿐입니다. 살아 생전에는 그냥 평범한 연쇄 살인마 였죠.”
“평범한 연쇄 살인마?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뭐, 그냥 아이 수십 명, 여자 수십 명, 청년 수십 명, 노인 수십 명 정도를 지하실에 가둬 놓고 썰면서 논 것뿐이에요. 아, 말하고 나니까 연령대 별로 괜히 나눴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모든 연령대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름난 마법사나 영웅이 정의의 이름을 내걸고 저지른 악행에 비하면 약소한 수준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제가 뭐라도 되는 양 떠들고 다닌 덕분에 교수대에 목이 매달린 이후에도 이렇게 부활할 수 있었고, 제가 가진 악몽으로서의 흉악함을 높이 산 말숨 님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했지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조이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자부심이 드러났고, 그런 조이를 보고 있으려니 한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조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조이로부터 느껴지는 거부감의 정체는 피 냄새였다. 재미삼아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쓰레기들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구역질나는 피비린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당신, 후회하거나 한 적은 없어? 살아생전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죽어서도 영원히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거잖아.”
“하하하, 제법 재미있는 농담이었습니다, 한 님. 그렇게 안 봤는데 유머감각이 상당하신 분인가 보군요.”
조이는 손뼉까지 치면서 낄낄거렸다. 한의 질문이 어지간히도 우스웠는지, 그 말투는 정중했지만 한을 바라보는 조이의 눈빛은 경멸에 가득 차 있었다.
“대체 제가 왜 후회해야 하죠? 영원히, 영원히 쉬지 않고 공포에 몸부림치는 사람을 보며 그들을 썰어 댈 수 있는데.”
“이제 설명은 다 끝난 건가? 그럼 이제 그 게임이라는 걸 시작해도 되는 거지?”
한은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정신 나간 소리도 한 두 번이지, 구역질나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뇌가 썩어가는 느낌이 들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잠깐만요. 아직 설명이 조금 더 남았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게임의 룰은 공평하지가 않아요. 저한테는 무려 아흔 아홉 개의 목숨이 있는데 한 님이 가진 목숨은 겨우 하나잖아요. 그래서 한 님을 위한 몇 가지 장치가 있습니다.”
한은 당장이라도 등에 매어진 나이프로 손이 갈 것 같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어쨌거나 조이는 말숨의 시련을 주관하는 자, 남은 설명이 있다면 들어두어야 한다.
“첫째, 식사는 무한으로 제공됩니다. 잠도 자지 않는 저를 상대로 일주일을 꼬박 지새우려면 보통 힘드신 게 아닐 텐데 식사마저 제공해 드리지 않으면 너무 죄송하잖아요. 저기 저 테이블에 있는 모든 요리는 한 님께서 다 비우는 즉시 원 상태로 채워질 겁니다. 그러니 혹시 입에 맞는 음식이 있으시거든 아무런 걱정 없이 먹고 마시면 됩니다.”
조이는 손가락을 두 개째 곧추세우고는 좌우로 흔들었다.
“둘째, 한 님께서 요구하는 아이템 한 가지를 드립니다. 검, 창, 방패, 독약, 함정, 수면제 등등, 한 님께서 이곳에서 일주일을 버티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그 물건 한 가지를 제공해 드립니다. 아, 물론 일주일간 절대로 깨지지 않는 갑옷을 달라거나, 결코 열리지 않는 자물쇠를 달라든가 하는 식으로 시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요구 사항은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조건을 달고 어떤 제한 사항을 붙이냐에 따라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가능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죠.”
게임을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조이의 얼굴에서는 참을 수 없는 흥분의 기색이 묻어나왔다.
조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은 백 년 만에 찾아온 장난감. 장난감을 둔 조이의 눈동자에서는 감출 수 없는 희열이 반짝였다.
“내가 달라고 하는 물건이 당신의 수중에 있다면 무조건 줘야 하는 건가?”
“당연하죠. 없는 물건도 만들어 드리는 판국에 제 수중에 있는 거면 당연히 드립니다. 결정 하셨나요?”
조이의 질문에 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신 일기장.”
“물론 저도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저 또한 저 스스로를 지키려 노력할 테니, 저를 죽이려 드는 한 씨와는 칼을 맞대고 싸우게 되겠죠. 결국 한 씨와 저는 일주일간 서로를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거죠. 하하, 간단하죠?”
“미친 새끼.”
“이런, 저한테 하시는 말씀인가요?”
“너와 말숨, 둘 모두에게 하는 말이야. 미친 새끼들.”
한의 입에서 드디어 격한 감정이 터져 나왔다.
“하하, 한 씨가 화를 내시는 건 이해가 갑니다. 저는 무려 아흔아홉 개의 목숨이 있는데 한 씨에게는 겨우 하나의 목숨이 전부일 테니 불공평한 규칙의 게임이기는 하죠.”
“날 이해하는 척 하려 들지 마. 역겨우니까. 내가 화가 난 건 이따위 상황을 시련이랍시고 만들어 놓은 말숨이라는 놈의 되먹지 못함 때문이지, 불공평함 때문이 아니야. “
한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난 너 같은 인간 백정이 아니야.”
“이런, 이런. 빨리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너무 서두르시면 곤란해요. 자, 앉으세요. 일단 게임 룰은 끝까지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이는 한에게 다시 자리에 앉으라는 손동작을 했고, 우선 규칙을 들으라는 놈의 말은 사실이었기에 한은 다시 의자에 앉아야만 했다.
“기본 룰은 설명을 드렸으니, 세부 사항을 설명해 드려야겠죠. 일단 게임이 펼쳐질 무대는 이 방과 복도, 그리고 복도에 있는 모든 방입니다. 이 소리 들리시나요?”
철컥철컥.
조이는 손뼉을 쳤고, 직후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지금 시점을 기점으로 복도에 있는 모든 방의 자물쇠가 열렸답니다. 그 말인즉슨 한 씨와 저, 둘 모두 모든 방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숨을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게임이 시작되면 저는 한 씨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답니다.”
“…….”
“이 길고 긴 복도와 수많은 방을 무대로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르는 상대방을 찾아 헤매는 이 스릴이 일품이랍니다. 하하, 물론 저와는 달리 한 님의 목숨은 하나. 딱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니 조심하셔야 하겠지만요.”
조이는 즐거워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배를 잡고 킬킬거렸다.
“그딴 역겨운 스릴 따위 내 알 바 아니지만, 네 설명을 듣고 나니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아.”
한은 양손을 모아 얼굴을 쓰다듬었다. 더 이상 저놈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답이 없는 미친놈이라는 것 말야. 당신은 이 상황이 즐겁나 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설마 한 님은 이 상황이 즐겁지 않으신가요?”
조이는 이런 질문을 하는 한이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을 바라보았다.
“너랑 나는 지금부터 서로 죽고 죽여야 한다는 거잖아? 죽고 죽이는 게 그렇게 즐겁나?”
“설마 한 님은 죽고 죽이는 게 즐겁지 않다고 말하시는 건가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조이를 바라보며, 한은 다른 질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신, 이 게임을 몇 번째나 하고 있는 거지?”
“하하, 사실 1층을 거쳐서 오는 분을 맞이하는 건 처음입니다. 대부분은 지옥문을 통해 오신 분들이죠.”
“지옥문?”
“아, 모르고 계셨구나. 이 곳에 오는 분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지죠.”
조이는 한에게 손을 뻗어 엄지와 중지를 곧추 세웠다.
“첫째, 시련의 탑 일 층을 통과하고 오시는 경우, 그러니까 이를테면 한 님 같은 경우를 말하는 거겠죠. 저는 꽤나 오랜 시간 이 곳을 지키고 있었지만, 이 방법을 통해서 온 분을 목격한건 한 님이 처음입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말숨의 유산이 담긴 흑색 탑을 최초로 발견한 게 한이었느니, 최초로 도달한 사람도 한이 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둘째, 말숨 님에게 벌을 받아서 오는 경우. 사실 이게 대부분의 경우에 해당하죠.”
“말숨에게 벌을 받은 자가 이곳에 온다고?”
한으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이 공간이 그런 용도로도 사용되다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시련의 공간이 아니라 단죄의 공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네, 삿되게 어둠의 이름을 사칭한 자, 말숨의 권위를 사칭한 자, 그 중에서도 말숨의 이름을 내걸고 죄 없는 이들의 목숨을 유린한 자는 이곳에 와서 저에게 심판을 받게 되죠.”
“당신이 죄인을 심판한다는 말이야?”
“네, 제가 말숨의 이름으로 심판합니다. 그게 제 임무인 셈이죠.”
“망나니 인간 백정이 죄인을 심판한다고? 개가 웃을 일이군.”
한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조이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가실 줄을 몰랐다.
“그런데 말이죠. 이곳으로 오는 죄인이 백 년 전부터 통 보이지가 않더군요. 덕분에 지난 백 년간은 그야말로 지루해서 죽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답니다.”
백 년 간 죄인이 오지 않았다고?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더가 모든 신들의 권능을 흡수하고 봉인된 게 정확히 백 년 전.
권능이 사라진 신이 심판의 철퇴를 내릴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죄인의 영혼이 이곳으로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님이 백 년만에 이곳에 오셨으니 제가 기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조이의 눈가에 불길한 열정이 가득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한은 왜 그렇게 조이의 기분이 좋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놈에게 있어서 한은 백 년만에 나타난,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채워줄 장난감이었을 테니 저리 기뻐 날뛰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그래도 어째서 명색이 신인 말숨이 당신 같은 쓰레기에게 이런 임무를 준 거지? 말숨 주위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그리도 없었나?”
그간의 대화를 통해 한이 조이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 조이가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미치광이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말숨은 이런 미치광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죄인을 심판하는 임무를 맡긴 걸까.
“설마 그럴 리가요. 말숨 님께서 죄인을 심판하는 그런 엄중한 임무를 아무나에게 맡기셨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이래 뵈도 보통 사람이 아니랍니다. 혹시 흉조라고 들어 보셨나요?”
조이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는 표정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
조이의 질문에 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이의 정체가 흉성이라면 그나마 납득이 간다. 이놈이 대체 왜 이렇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인건지.
흉조, 한이 오래 전에 읽은 책에서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신들의 권능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와는 달리 신들이 꿈꾸는 세상, 아스가르드에는 신들의 권능이 살아 숨 쉰다.
그리고 모든 일에 빛과 어둠이 있듯이, 기적을 현실로 만드는 신의 권능이 있다면 악몽을 현실로 만드는 저주도 있기 마련, 그 모든 악몽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형태를 가진 채 실현된 악몽을 일컫는 명칭이 ‘흉조’였다.
“악행이 거듭되고 그 악행에 대한 원성이 드높아 악명이 사람들 사이에서 참이라고 믿어지면 허구일 뿐인 악몽은 실체가 되지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건 좋은 꿈만이 아닙니다. 악몽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는 아스가르드는 참 공평한 세상인 셈이지요.”
마치 달관한 철학자라도 되는 마냥 공평을 운운하는 조이를 보며, 한은 솟구치는 혐오감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털어 놔. 너는 어떤 악몽이었지?”
이 질문을 해주기를 기다린 걸까, 조이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자부심이 비쳤다.
“저는 그냥 그저 그런 악몽의 사자일 뿐입니다. 살아 생전에는 그냥 평범한 연쇄 살인마 였죠.”
“평범한 연쇄 살인마?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뭐, 그냥 아이 수십 명, 여자 수십 명, 청년 수십 명, 노인 수십 명 정도를 지하실에 가둬 놓고 썰면서 논 것뿐이에요. 아, 말하고 나니까 연령대 별로 괜히 나눴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모든 연령대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름난 마법사나 영웅이 정의의 이름을 내걸고 저지른 악행에 비하면 약소한 수준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제가 뭐라도 되는 양 떠들고 다닌 덕분에 교수대에 목이 매달린 이후에도 이렇게 부활할 수 있었고, 제가 가진 악몽으로서의 흉악함을 높이 산 말숨 님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했지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조이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자부심이 드러났고, 그런 조이를 보고 있으려니 한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조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조이로부터 느껴지는 거부감의 정체는 피 냄새였다. 재미삼아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쓰레기들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구역질나는 피비린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당신, 후회하거나 한 적은 없어? 살아생전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죽어서도 영원히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거잖아.”
“하하하, 제법 재미있는 농담이었습니다, 한 님. 그렇게 안 봤는데 유머감각이 상당하신 분인가 보군요.”
조이는 손뼉까지 치면서 낄낄거렸다. 한의 질문이 어지간히도 우스웠는지, 그 말투는 정중했지만 한을 바라보는 조이의 눈빛은 경멸에 가득 차 있었다.
“대체 제가 왜 후회해야 하죠? 영원히, 영원히 쉬지 않고 공포에 몸부림치는 사람을 보며 그들을 썰어 댈 수 있는데.”
“이제 설명은 다 끝난 건가? 그럼 이제 그 게임이라는 걸 시작해도 되는 거지?”
한은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정신 나간 소리도 한 두 번이지, 구역질나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뇌가 썩어가는 느낌이 들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잠깐만요. 아직 설명이 조금 더 남았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게임의 룰은 공평하지가 않아요. 저한테는 무려 아흔 아홉 개의 목숨이 있는데 한 님이 가진 목숨은 겨우 하나잖아요. 그래서 한 님을 위한 몇 가지 장치가 있습니다.”
한은 당장이라도 등에 매어진 나이프로 손이 갈 것 같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어쨌거나 조이는 말숨의 시련을 주관하는 자, 남은 설명이 있다면 들어두어야 한다.
“첫째, 식사는 무한으로 제공됩니다. 잠도 자지 않는 저를 상대로 일주일을 꼬박 지새우려면 보통 힘드신 게 아닐 텐데 식사마저 제공해 드리지 않으면 너무 죄송하잖아요. 저기 저 테이블에 있는 모든 요리는 한 님께서 다 비우는 즉시 원 상태로 채워질 겁니다. 그러니 혹시 입에 맞는 음식이 있으시거든 아무런 걱정 없이 먹고 마시면 됩니다.”
조이는 손가락을 두 개째 곧추세우고는 좌우로 흔들었다.
“둘째, 한 님께서 요구하는 아이템 한 가지를 드립니다. 검, 창, 방패, 독약, 함정, 수면제 등등, 한 님께서 이곳에서 일주일을 버티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그 물건 한 가지를 제공해 드립니다. 아, 물론 일주일간 절대로 깨지지 않는 갑옷을 달라거나, 결코 열리지 않는 자물쇠를 달라든가 하는 식으로 시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요구 사항은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조건을 달고 어떤 제한 사항을 붙이냐에 따라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가능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죠.”
게임을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조이의 얼굴에서는 참을 수 없는 흥분의 기색이 묻어나왔다.
조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은 백 년 만에 찾아온 장난감. 장난감을 둔 조이의 눈동자에서는 감출 수 없는 희열이 반짝였다.
“내가 달라고 하는 물건이 당신의 수중에 있다면 무조건 줘야 하는 건가?”
“당연하죠. 없는 물건도 만들어 드리는 판국에 제 수중에 있는 거면 당연히 드립니다. 결정 하셨나요?”
조이의 질문에 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신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