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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멘션 워커 1권 (11화)


한의 말을 들은 제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에에? 쌍두 보아 뱀이라구요? 그 끔찍한 괴물이 여기에 있다는 말이에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는 듯이 제인이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한의 말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건 비단 제인만이 아니었다.
“으으∼!!”
하워드 역시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하워드의 양손에는 하워드의 무기인 두 자루 단봉이 들려 있었다.
제인과 하워드, 이 둘은 그렇게 많지 않은 나이에 B랭크에 오른, 제법 실력도 재능도 인정받은 헌터였다. 그런 두 사람을 몸서리치게 할 만큼 쌍두 보아 뱀은 무서운 괴물이었다.
쌍두 보아 뱀이 여타의 회색 구역의 마물과는 달리 마나를 다루거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회색 구역 마물의 최상단에 군림할 수 있는 데에는, 그 압도적인 신체 스펙이 있었다.
쌍두 보아 뱀은 일단 그 크기에서 여타의 마물들을 압도했다. 길이가 십여 미터, 몸통의 지름은 거의 2미터에 다다랐으며, 그 커다란 주둥이에는 다른 뱀들과는 달리 독은 없었지만 독 이상으로 끔찍한 산성액이 흘렀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하워드, 제인과 달리 클리프는 침착한 반응을 보였다.
“이보게, 내가 알기로는 쌍두 보아 뱀은 주로 습지나 정글에서 서식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 잠자는 자의 협곡은 풀숲이 우거져 있기는 해도 정글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네, 그런데 저기 저 흔적이 쌍두 보아 뱀이라고?”
클리프의 반론에 한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쌍두 보아 뱀이 주로 서식하는 건 습지나 정글이 맞습니다. 하지만 주로 정글에서 서식한다는 건 정글이 아닌 다른지역에서도 서식이 가능은 하다는 소리지요. 더군다나 이곳 잠자는 자의 협곡은 원체 풀숲이 무성하고 비가 자주 오는 터라 쌍두 보아 뱀이 충분히 서식 가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이 나이프를 빼들어 휘둘렀다. 그리고 잠시 후 휘어진 채로 매달려 있던 나뭇가지가 갈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한은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여기 반대 방향으로 엇갈려서 휘어진 가지들 보이시죠. 쌍두 보아 뱀은 먹이를 먹은 후 소화액의 분비를 위해 청동 호랑개 나무의 청동액을 빨아 먹습니다. 나뭇가지가 엇갈려 휘어진 건 나란히 달린 두개의 머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청동액을 빨아먹는 과정에서 생기는 흔적이지요.”
“흐음…….”
클리프는 청동 호랑개 나무를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우리들은 쌍두 보아 뱀의 생태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게 많지 않다네. 자네는 쌍두 보아 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자네가 하는 말이 맞겠지.”
여기까지 말하고 클리프는, 아니 한을 제외한 전원은 한을 바라봤다. 한이 쌍두 보아 뱀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나이프를 빼들었고, 가방에서 푸른색 가루가 담긴 유리병과 자그마한 검은색 솥, 그리고 토치를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땅에 떨어진 청동 호랑개 나뭇가지를 세게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대장간에서 모루를 두드리는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
그러기를 얼마간, 나뭇가지는 이내 잘게 다져졌고, 진득한 청동액이 그 모습을 보였다.
한은 잘 다져진 나뭇가지를 솥에 담은 후, 주위에 있는 나뭇가지를 토치로 그을려 불을 붙이고는 솥을 불 위에 올렸다. 한이 모닥불 근처에 손을 댄 후 주문을 외우자 불길의 열기가 한 층 더 높아지며 푸른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러다 솥 안에 든 청동액이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하자, 한은 유리병 안에 있던 푸른색 가루를 솥에 뿌렸다. 세차게 끓어오르던 청동액은 푸른 가루를 뿌리자마자 식어갔고, 푸른 가루가 섞인 청동액이 김을 내뿜기를 멈추자 한은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자, 이 용액을 팔이나 다리 부분에 조금씩 펴 바르세요. 직접 피부 위에 바를 필요는 없으니 장갑이나 신발위로 바르셔도 됩니다.”
그리고 한 역시 가방에서 장갑과 머플러를 꺼내 용액을 바른 후 몸에 둘렀다.
“으...이게 뭔데요?”
제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청동액과 정체 모를 푸른색 가루가 섞인 액체를 옷에 바른다는 게 영 찝찝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쌍두 보아 뱀은 시신경이 거의 퇴화된 상태입니다. 즉, 눈으로는 먹이를 찾지 못한다는 말이죠. 따라서 쌍두 보아 뱀이 사냥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건 후각입니다.”
한은 솥에 담긴 용액을 자그마한 유리병에 담아 일행에게 건넸다.
“그런데 방금 전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청동 호랑개 나무의 수액과 쌍두 보아 뱀의 소화액은 그 성분이나 냄새가 거의 같습니다. 거기에 약간의 가열을 하고 복합제를 가미하면 쌍두 보아 뱀의 소화액과 완전히 같은 냄새가 나지요.”
“호오, 그 얘기인즉슨 이 용액을 몸에 바르면”
클리프가 유리병을 받아들며 말했다.
“쌍두 보아 뱀은 우리를 먹이가 아니라 소화가 끝난 잔해 정도로 여기게 된다는 거군요?”
하워드가 대답을 하고는 서둘러 용액을 장갑과 신발에 발랐는데, 쌍두 보아 뱀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가운 기색이었다.
“으으, 냄새나는 건 싫은데.”
제인도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군말 없이 용액을 옷에 발랐다.
“끄응…….”
첸도 마지못한 표정으로 용액을 몸에 발랐다.
“자,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는 쌍두 보아 뱀의 습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서둘러서 쌍두 보아 뱀의 영역을 이탈하도록 하죠.”
일행이 용액을 몸에 바르는 동안 한은 솥과 기타 기구들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그들이 서너 시간여를 더 걸었을 때, 묵묵히 걷던 하워드가 손가락을 들어 한곳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어어! 저기 좀 보세요.”
숲 건너편에 절반쯤은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진 사슴과 여우, 늑대 등의 잔해가 쌓여 있었다. 한쪽 다리가 없거나 아니면 상반신이 없거나 그 종류는 다양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전부 다 절반쯤은 녹아내려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라는 점이었다.
“쌍두 보아 뱀은 먹이를 한꺼번에 전부 섭취하지 않고 절반쯤만 소화를 시켰다가 다시 뱉어내고는 합니다. 저 숲이 쌍두 보아 뱀의 식량 저장고인 모양이군요.”
덤덤하게 말하는 한에 비해서 하워드와 제인은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물론 두 사람도 B랭크의 헌터. 설령 쌍두 보아 뱀이 습격을 해왔다 해도 쉽사리 먹이가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쯤 녹아내린 끔찍한 잔해 더미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장, 그렇게 안 봤는데 솜씨가 제법이시네요. 헤에, 내가 싸움 잘하는 헌터들은 많이 봤지만 대장처럼 똑똑한 헌터는 처음 봐요.”
제인이 한의 옆으로 와서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별말씀을. 그저 우연히 주워들었던 게 쓸모가 있었을 뿐입니다.”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저도 대장처럼 마물의 생태에 해박한 헌터는 처음 봐요. 헤헤, 대장, 앞으로 대장만 믿고 가겠습니다.”
하워드도 한을 치켜세웠다. 한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지만, 제인과 하워드가 한을 부르는 호칭은 어느새 대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흥!”
그때 그 들의 등 뒤에서 첸의 콧방귀 소리가 들렸다. 하워드와 제인이 한을 인정하는 게 영 못마땅한지 첸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이봐요. 클리프 영감님. 지금 같은 상황을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클리프는 대답대신 인상을 찌푸리며 첸을 바라봤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듯한 눈빛이었으나, 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걸 보고 바로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았다는 겁니다. 으하하!”
첸의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으나, 첸과 같이 웃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허, 이 친구가.”
클리프는 첸을 만류했고, 하워드는 고개를 내저었으며, 제인은 눈쌀을 찌푸리며 첸을 바라봤다. 출발 전에 첸이 한을 도발했을 당시와는 확연하게 바뀐 분위기였고, 그 사실이 첸을 더욱더 화나게 만들었다.
“어이쿠, 왜 그렇십니까? 영감님,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이제는 노골적으로 한을 도발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첸의 행동이었고, 한과 하워드를 제외한 세 사람의 표정에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자,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쌍두 보아 뱀이 토해놓은 잔해를 보니 놈이 생각보다 크기도 크고 활동 구역도 더 넓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용액을 발랐다고 해도 놈의 영역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게 없으니 서둘러서 이 자리를 벗어나도록 하죠.”
첸의 무례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는 건 오직 한 명, 한뿐이었다.
“쳇.”
한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흥미를 잃은 첸은 그제야 한을 도발하는 것을 멈췄고, 일행은 잰걸음으로 쌍두 보아 뱀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리고 첸의 도발이 멈춘 그 직후, 한은 아무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카운트를 헤아렸다.
‘이걸로 두 번’

“자네, 왜 그러나?”
“뭘 말입니까?”
“한 대장한테 왜 이렇게 툴툴거리느냐 그 말일세.”
“툴툴거리다니요? 영감님 말씀은 내가 저 친구한테 괜한 시비라도 걸고 있다는 소리입니까?”
“괜한 시비가 아니면? 지금 자네가 하는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나?”
원정대 2팀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클리프는 한을 조용히 끌고 나와 한에 대한 불손한 태도를 지적했다. 그러나 첸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영감님, 설마 벌써 룽 아저씨를 잊으신 겁니까? 그 양반 두 다리가 왜 그 꼴이 됐는지 벌써 잊었어요?”
“어허, 이 친구가. 지금은 룽 그 친구 때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나.”
여전히 첸을 다그치고는 있었지만 ‘룽’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클리프의 말투는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룽 웬. 랭크는 C랭크에 불과했지만 한 자루 사슬낫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 매섭다고 알려진 장년의 헌터였다. 하지만 룽 웬은 5년 전 작전을 나갔다가 두 다리를 잃었고, 그 이 후 헌터를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룽 이 두 다리를 잃은 원인은 그 당시 원정대의 대장을 맡고 있던 초보 헌터의 미숙함에 있었다. 그 초보 헌터는 원정 내내 부정확한 지시와 어리석은 결정으로 원정대원을 위험에 빠뜨렸고, 결국 대장의 명백하게 어리석은 결정으로 룽은 두 다리를 잃게 되고 말았다.
룽을 삼촌처럼 따르던 첸은 그 상황에 분노했고, 몇몇 헌터와 함께 어째서 그 미숙한 초보 헌터가 원정대의 대장을 맡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들이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 초보 헌터는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한마디로 원정대의 지휘를 맡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원정대의 대장을 맡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명문 헌터 길드의 후계자 자리에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추후 길드 마스터 자리를 이어받는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경력을 쌓아주는 용도로 원정대는 이용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설상가상으로 그 헌터의 랭크가 위조되었다는 사실 또한 밝혀지게 되었다.
결국 룽은 길드간의 더러운 뒷거래에 희생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첸은 격렬하게 분노했다.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져 결국 수호위원회 위원장인 라무스가 직접 나서서 사건의 주모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첸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와 불신은 아직 아물지 않았다.
“첸, 이 답답한 친구야. 그 때 그 놈은 경험이라고는 없는 애송이였지만, 한 대장은 자네도 봐서 알겠지만 그런 맹탕은커녕 유능한 헌터가 아닌가? 자네는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고 있을 건가?”
“쳇, 영감님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안 믿습니다. 그깟 쌍두 보아 뱀. 운이 좋았던 건지 어떻게 알아. 나한테 대장 대접을 받으려면 그깟 걸로 어림도 없습니다. 영감님, 그만 가보겠습니다. 한 번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요. 내가 그 친구를 어떻게 손봐주나.”
첸은 두 눈을 부라리며 일행들 곁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클리프는 고개를 내저을 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