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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멘션 워커 1권 (10화)


한이 발생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그러니까 피어스가 일행을 이탈해야 하는 사태가 생각보다 빨리 발생했다.
원정대가 여섯 번째 습격을 받은 그 날 저녁, 원정대는 아우터 존 곳곳에 마련된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베이스캠프란 여타의 아우터 존과는 다르게 수호석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으로, 차원 문에 의한 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식량 및 각종 편의 시설이 완비된 헌터들의 쉼터를 일컫는 장소였다.
거제도 원정대가 찾은 베이스캠프도 그 중에 하나였고, 베이스캠프에서 식사를 마친 원정대가 모처럼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피어스와 한두 사람은 작전실에 모여서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여기서 원정대를 두 팀으로 나눠야 할 것 같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네가 그 중 한 팀의 지휘를 맡아줬으면 하네.”
회의실에서 피어스의 입에서 예상 밖의 발언이 나오는 바람에 한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피터가 정찰을 하고 왔는데, 원래 우리가 지날 예정이었던 ‘뒤덮인 숲’이 최근에 발생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상태라고 하네.”
피어스가 레이저 포인터로 허공에 떠오른 입체 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뒤덮힌 숲을 포기한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첫째, 뒤덮힌 숲을 우회해서 가시나무 강을 건너거나…….”
“그렇게 되면 너무 긴 여정이 되겠군요.”
피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숲을 우회하는 것만 해도 일주일은 우습게 걸릴 텐데, 숲을 우회한 후에 가시나무 강까지 건너면 일주일로 계획했던 여정이 보름을 넘어 한 달에 가깝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결국 하나. 잠자는 자의 계곡을 통과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거지.”
“잠자는 자의 협곡이라…….”
한은 손을 들어 올려 미간을 움켜잡았다. 잠자는 자의 협곡은 한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통과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지역이었다.
회색 구역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출몰하는 마물의 수와 종류는 백색 구역과 황색 구역 사이 정도에 불과했고, 중간중간에 쉼터도 준비된, 그야말로 무난하고 순탄한 루트.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상당히 미묘했다.
“저를 포함한다면 원정대원은 모두 열 명. 다섯 명씩 나누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한으로서는 원치 않는 방향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잠자는 자의 협곡에 일곱 명 이상이 모이면 협곡의 주인이 눈을 뜬다.
일곱 개의 머리와 일곱 개의 꼬리를 가진 거대한 도마뱀 길로모스.
길로모스가 무슨 원리로 여섯 명과 일곱 명의 차이를 구분하는 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잠자는 자의 협곡에서 반경 10㎞안에 일곱 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거대한 독 도마뱀 길로모스가 눈을 뜬다는 것이다.
눈을 뜬 길로모스는 꽤나 성가신 존재였다. 물론 원정대의 전력을 감안하면 길로모스는 해치울 수 없는 몬스터는 아니다. 하지만 길로모스는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 자신이 품고 있는 독을 사방에 흩뿌리며 죽는다.
길로모스의 시체에서 나오는 독기로 대지와 산천은 온통 오염되고, 그 일대는 누구도 지나갈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된다.
잠자는 자의 협곡을 죽음의 땅으로 만든 경위서를 제출하고 추후에 있을 정화 작업에 동원되느니 애초에 일행을 가르는 편이 비교할 수 없이 현명한 방법이다.
“나는 1팀을 이끌고 이쪽에 있는 2번 길을 따라서 이동할 생각이라네. 자네가 2팀과 함께 저쪽 6번 혹은 8번 길을 따라 움직인다면 협곡을 통과할 때까지 1팀과 2팀이 서로에게 접근하게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네. 어떤가, 자네가 2팀을 맡아줄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게 해야겠지요.”
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자신을 둘러싼 헌터들의 반감은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잠자는 자의 협곡은 회색 구역으로 분류된 고난이도 위험지역이고, 일행을 두 팀으로 나눈다면 일행 중에 가장 강한 두 사람인 한과 피어스를 각각 나누어서 배치하는게 당연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헌터 양반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지.”
한은 원정대원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피어스와 피터를 제외한 모든 원정대원들은 자신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자신에 대해서 가장 큰 반감을 드러내는 인물을 꼽자면…….
‘역시 그 첸이라는 양반일 테고 말이야.’
큼지막한 코와 각진 턱. 금실, 은실로 수놓아진 중국식 무복 아래 자리 잡은 딴딴하다 못해 터질 듯한 근육과 커다란 쌍 도끼. 부리부리한 눈망울의 중국계 헌터 홍 첸을 생각하니 한은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왠지 자신의 팀에 홍 첸이 속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건가…….’
다음날 아침, 원정대는 두 개의 팀으로 나눠서 각각 출발을 앞두고 있고, 한의 뒤편에는 첸이 그 남성미 넘치는 근육을 뽐내며 서 있었다.
“젠장, 팀을 나눠도 하필…….”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은 본격적인 출발을 시작했다.
“자, 1팀이 먼저 출발한 지 30분이 지났으니 저희도 슬슬 출발을 해볼까요.”
먼저 출발한 1팀과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30분의 시간차를 두고 출발하기로 합의를 본 원정대 2팀은 잠자는 자의 협곡으로 본격적인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눈 것 같은데. 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서로 인사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는가.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지. 클리프라고 하네.”
한 올도 남김없이 깔끔하니 벗어 넘긴 회색 머리칼과 윤기가 흐르는 구레나룻이 붉은 빛 고글과 잘 어울리는 장년의 헌터, 클리프가 한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류 한이라고 합니다. 잠자는 자의 협곡을 통과할 때까지 2팀의 리더를 맡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은 클리프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한의 기억이 맞다면 클리프 역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을 터, 그런데 어찌 되었든 한 팀이 된 이상, 먼저 와서 손을 내미는 걸 보면 클리프라는 헌터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자, 저기 저 친구는 하워드, 그 옆에 서있는 아리따운 아가씨는 제인, 그리고 저기 저 딴딴해 보이는 친구의 이름은 첸이라고 하네. 자자, 모두들 인사 정도는 하고 가자고. 응?”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헌터들을 한군데로 불러 모으며 클리프가 손뼉을 쳤다.
가장 연장자인 클리프가 이렇게 나오는 마당에 다른 헌터들도 마냥 뚱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수많은 없었는지 쭈뼛거리며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하워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금발에 벽안을 지닌 백인 청년이었다. 한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큰 키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앳된 얼굴의 하워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인이라고 해요. 붉은 채찍 제인이라고 하면 도나우 강 근처에서는 알아주는 이름이니까 여자라고 우습게 보는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 흥.”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와 콧등의 주근깨가 퍽이나 말괄량이 같은 인상을 주는 제인은 자신이 다루는 무기인 채찍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첸이외다.”
마지막 인물이자 한이 주목하고 있던 요주의 인물 첸의 발언을 끝으로 간략한 자기소개를 끝마친 2팀. 한은 다시 출발 신호를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자, 이제 자기소개는 끝난 것 같으니 슬슬 출발해 볼까요? 제가 최선두에 설 테니 클리프 씨가 최후방을 맡아주시고…….”
“잠깐, 거 너무한 것 아니요?”
그때 첸이 한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고 들어왔다. 한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묻어나는 목소리와 태도였다.
“댁은 우리 랭크며 실적이며 대충은 알고 있을 것 아니오. 그런데 우리는 댁이 랭크가 뭔지, 어떤 작전을 했는지 도통 모르는데, 이 상황에서 그냥 출발하라고? 댁이 리더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조금 불공평한 거 아닌가?”
위압감을 주기 위함인지 연신 눈을 부라리는 첸을 보고 한은 웃음이 나오려는걸 꾹 참았다. 자신의 예상에서 단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반응을 보이는 첸의 행동이 우스웠던 탓이다.
‘일단 한 번.’
한은 마음속으로 카운터를 하나 세고 첸을 바라봤다.
“첸 씨의 발언도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나, 제 랭크며 실적은 일단은 대외비라서 말이죠. 여러분들에게 지금 가르쳐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럼 우리더러 생판 모르는 사람을 리더로 믿고 위험지역에 들어가라는 말이오? 이야, 이거 피어스 씨도 너무하네. 우리는 다 나가 죽으라는 거야 뭐야!”
자리에 없는 피어스를 욕하는 듯하지만, 한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법한 노골적인 불평이었다. 하지만 한은 일단 참기로 했다.
“여러분들이 저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는 것쯤은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첸 씨가 말한 것처럼 저를 여러분의 리더로 지명한건 피어스 씨입니다. 저는 믿지 못하더라도 피어스 씨를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한은 이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출발을 알렸다.
“자, 출발합시다. 선두는 제가, 후방은 클리프 씨가 담당할 겁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는 듯한 한의 단호한 태도에 첸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첸도 차마 대놓고 항명을 할 수는 없었는지 한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에이, 이거 아무래도 재수 옴 붙은 것 같은데.”
끝까지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는 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은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똥오줌 못 가리는 미친개를 혼내 줄 시간은 아직 충분하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잠깐만요.”
최선두에 서서 묵묵히 산길을 걷던 한이 오른쪽 손을 들어 올렸다.
일행의 이동을 중단시킨 한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가가 기묘한 각도로 가지를 휘어뜨린 채 늘어선 나무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이 양팔을 써도 다 감싸 안을 수 없을 법한 굵직한 아름다리 나무의 가지가 한쪽으로 쏠려서 휘어 있었다.
휘어진 나무는 청동 호랑개 나무.
수액 대신에 청동이 흐르는 걸로 유명한 나무로, 나무 주제에 웬만한 금속보다 단단함을 자랑하는 청동 호랑개 나무의 가지가 돌돌 말려 있었다.
청동 호랑개 나무를 주식으로 삼는 원숭이들은 가지를 구부릴 완력이 없고, 가지를 구부릴 정도의 완력을 보유한 네발짐승들은 지상으로부터 3m 높이에 있는 청동 호랑개 나무의 가지를 둘둘 말아야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왜 그런가? 무슨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일행의 최후방에 있던 클리프가 다가와 물었다. 한은 대답 대신에 손가락을 들어 휘어진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아니, 뭐야 저거? 저 딴딴한 나무가 왜 저렇게 휘어 있는 거야?”
“어머, 세상에. 폭풍에 나뭇가지가 휜 것도 아니고, 저게 뭐지?”
한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헌터들이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떠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한마디씩 하기만 할 뿐, 그 누구도 나뭇가지를 휘게 만든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쌍두 보아 뱀.”
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