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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맞다, 그리고 론이요. 론도 좀 어려웠던 게, 저는 규모가 큰 무리를 이끄는 리더로서의 능력은 ‘모든 일을 전지전능 해치우는 능력’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을 다루는 능력’, 그리고 ‘그들의 능력을 모아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원하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도 리더로서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능력을 묘사하기가 저한테는 역부족이었다는 거?
“네 밑의 애들이 저렇게 능력 있는데 론 너는 황제라면서 얼굴마담이냐? 뭐 하냐?” 이게 연재 때 독자님들 반응이셨어요. (왜 이러셔 미모도 능력이여! 하고 외치는 컵 한 마리) 그런 애들 끌어다 쓰는 게 론의 능력인데요. 속으로 중얼중얼하면서도 뭘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몰라서 연재할 때 좀 많이 헤맸습니다. 수정도 많이 하긴 했는데, 끝내 설득은 잘 되지 않았던 걸로…….
B : 그런 반응들 때문에 속상하셨겠어요. 반면에 신나서 쓰신 캐릭터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T : 개인적으로 신나서 썼던 인물은 참견 많은 수다쟁이 킴 리키비키루. 운트 위비도 좋았고요. 무겁고 피폐한 곳에 적절한 균형을 맞춰 주고 숨통을 터 준 캐릭터들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 주변에 있으면 좀 골치도 아프지만 웃을 일도 많을 거 같아요.
B : 그런데 이 <천년의 제국>을 거실에서 쓰셨다는 후기를 봤는데 정말인가요……?!

[씬이 나오는 순간만 기다리며 정말 열심히? 온몸을 던져 없는 눈치를 발휘해 가며 썼습니다. 이걸 거실의 공용 컴퓨터에서 몰래몰래 썼다는 사실! - <천년의 제국>, 컵의 뒷담화]

T : 네, 맞습니다!
B : 당시에는 피가 얼어붙을 듯했어도 지나고 나니 재미있는 상황이 있으셨겠죠. 사생활 공개가 안 되는 선에서 살짝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T : 지금 생각하니 컵 한 마리는 그때 에로신이 너무 심하게 강림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로……. 진짜 용감했네요, 생각해 보면.(웃음)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에로신 강림기죠. 제가 쓸 수 있는 건 거실 공용 컴퓨터였고, 일하면 뒤에서 다 보였는데도 썼어요!
사람 있을 때는 머릿속으로 상상력 발동해서 다음 회차 내용 만들어 내고, 집에 사람 없을 때 정말 미친 듯이 두다다다 달렸습니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크으.(눈물)
근데 나중엔 한계가 와서 그냥 알바 한다고 했어요. 상황을 재연해 보자면 이래요.

#언니 : 무슨 알바? 너 여기서 알바하다 들키면 강제 출국인데?
컵 : 괜찮아 언니. 한국에서 편집 교정 일 받은 거라 상관없어.
언니 : 장르가 뭐야?
컵 : SF. 마감이니까 나 건드리지 마.
밀덕 우주덕 조카 : 우와아아! 이모가 SF 교정을 봐? 나도 보여 줘!
컵 : (개식겁)안 돼애애! 저리가아아! 꺼져어어!

T : 그랬다고 합니다. 휴……. 다행히 제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니까 더 이상 참견하거나 건드리지는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
그리고 말이 씨가 됐는지 정말 <천년의 제국>을 출간하게 됐어요.(웃음) 전 ‘알바비(?)’를 받아서 그동안 제가 긁고 찍고 휠을 날려 먹었던 언니 자동차 수리비를 한꺼번에 갚았습니다.
B : 알바비라면 알바비겠네요.(폭소) 임기응변이 대단하셨어요.
T : 네, 그렇죠. 에로신과 비엘신이 보우하사 무사히 책이 나오게 된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B : 또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들어왔어요. 론과 시오가 21세기 현대물의 주인공이라면 둘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는 어떻게 부여하시겠어요?
T : (당황) 네? ……늬에에?
좀 어렵네요. 굳이 치환을 해 보자면? 수는 종교계 최고 지위에 있는, 존경받는 지도자 수. 아니면 관록 있고 존경받는 학자 출신 정치가 수?
공은 능력은 출중하지만 출신 때문에 꿈이 원천 봉쇄되고 결국 집단 증오범죄단체의 중심으로 성장하는, 국적 없는 중국 교포 2세 공? 그 정도 되지 않을까요?
론의 설정을 보자면 사회 테두리 내에서 좌절한 개인이 아닌, 출생부터 소외된 이방인이면서 기존 집단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진지하게 여쭤 보는 건데, 이게 인기 있을까요? 해피엔딩 각이 나올까요?
B : 음, 또 멘탈 탈곡기가 돌아가겠지만 좋을 것 같은데요! 물론 해피엔딩은…….(암전)
T : 그르지 마여, 담당자님……. 사실 현실 대한민국은 SF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 슬픈 패럴렐은 없었던 걸로.(땀)
B : (미련) ……네에. 아까 <천년의 제국>이 몹시 길어서 편집 당시에 고생하셨다고 잠깐 얘기하셨죠. 워낙 장편이다 보니, 완결 후에 기분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편집자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분량이 긴 원고는 그만큼 퇴고 및 교정 과정에서 작가와 편집자 양쪽의 피를 다 말립니다.
출간 후 한동안 글자라고는 문자 메시지도 읽기 싫을 정도로 질리지 않으셨나요? 사실 저도 이 일을 시작한 후로는 집에 가서 문서창을 켜면 헛구역질이 나거든요.
T : 어휴, 담당자님도 부작용이 만만찮네요. 하긴 저도 예전에 다른 작가님들도 토 나올 때까지 교정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저도 교정 작업으로 진땀을 뺐지만 진짜 편집하신 분도, 교정하신 분도 많이 고생하셨을 거예요.
문자 메시지를 못 볼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책 나온 건 한 몇 년 동안 못 보긴 했어요(웃음) 그런데 재미있는 게요. 몇 년 있다가 다 잊어버리고 한번 보니까요…….
어머나, 세상에. 제 취향이 한가득인 거예요!(폭소) 뭐, 뭐지 내 취향에 꼭 맞춰진 듯한 이 글은!! 진짜 완전 재미있었습니다!!!
B : (폭소) 새로운 자급자족의 방법이네요!
T : 네, 바로 이것이 자급자족의 진정한 가치! 다만 놀라운 망각력이 좀 필요합니다.
B : 앞으로도 자급자족을 좀 자주 부탁드립니다.(꾸벅) 그런데 그렇게 고생해서 출간을 하셨음에도 완결 후 아쉬우셨던 부분이 있으시겠죠? 예를 들어 꼭 넣었어야 했는데, 꼭 뺐어야 하는데 싶었던 장면이나 캐릭터 뒷이야기 같은 거요.
T : 아쉬운 건 항상 있죠. 지금 보면 이상하고 모자란 구멍도 많이 보이고요. 고치고 싶은 부분도 물론 있지만 그냥 박제된 거려니 하고 잊고 살아요.
뒷이야기라고 할 만한 건…… 실은 시오닌과 로닌의 이야기? 그 부분은 떡밥을 회수 안 하고 그냥 덮은 케이스였어요. 아이네도 들어가고 알파 손자도 나오는 그 이야기. 굉장한 집착공과 감금물이 좀 상상이 됐는데…… 아, 그 전에 근친물이겠네요.(웃음)
외전 쓸 때만 해도 두 사람 이야기도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결국은 별로 당기지 않았어요. 그냥 천년의 제국은 주연끼리의 이야기만으로, 기승전결의 흐름을 맞춰서 본편 안에서 온전하게 끝내는 게 가장 좋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이야기는 독자분들 상상에 맡기고 그냥 덮기로 했어요. 대신 전혀 다른 장르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죠.
B : 그게 <샤인>이군요! 쉬시는 동안 구상하셨을 텐데요. 구상하시는 틈틈이 <천년의 제국> 독자 반응도 살펴보고 그러셨나요?
T : 그럼요. 연재 때든 책이 나온 후든 제일 고마운 게 독자님들 피드백인 걸요.
연재가 좋은 건 실시간 반응을 볼 수 있고, 가끔 리댓으로 수다도 떨 수 있는 거예요. 물론 그런 걸 안 좋아하시는 독자분도 계셔요. 하지만 저는 피드백들이 워낙 고마웠기 때문에 나름의 방식으로 감사를 표현했던 것이니 조금만 봐 주세요(꾸벅).
지금도, 겁나서 자주는 못 가는데 제가 이용하는 사이트의 리뷰는 가끔씩 보러 가요. 리뷰 하나씩 읽어 보면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중얼중얼 인사드릴 때도 있고, 맞아요, 정말 개쉐키죠 하고 같이 돌 던지고 욕하기도 하고 독자뉘이임! 아님미다아아! 그래도 잘생겼으니 용서해 주세요!!! 하고 모니터를 붙잡고 왕왕대기도 합니다.
……아, 이렇게 말하니 좀 이상해 보이는데요. 제가 평소엔 저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평소엔 좀 멀쩡함.
B : 네, 그런 걸로…….
T : 사람 말 좀 믿어 주세여…….


3. 테암컵, 그리고 <샤인>
B : 쉬시는 동안 떠올리신 작품이 여럿 있으셨을 텐데요. 그중 <샤인>을 쓰기로 결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T : 에로신 강림!
B : 아, 아니 그거 말고욧!
T : (웃음)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아주 가까운 친척 중 한 분이 외국 분이신데, 그분이 피라미드나 스톤헨지 환상열석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일로 생각하는 것이 한국에서 월마트가 폭망하고 철수한 일이에요. 정말 전혀 이해 못 하셔요.
B : 아, 그렇죠. 근데 정말 지금 생각해 봐도 유통업체의 춘추 전국시대!
T : 네, 맞아요. 까르푸도 한국 시장에서 못 버티고 나갔죠. 그분은 아직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미스터리’라고 말하곤 해요.
저 역시 그 당시 한국 유통업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던 건가 궁금했어요.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와 기업들 간의 맹렬 난투극이 있었을 것만 같았어요. 잘만 다루면 다이내믹한 기업 사냥물이 나오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잘만 다루면.
B : 잘 다루셨어요!
T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눈물)
아, 그리고 샤인을 쓸 즈음이던가? 제프리 삭스 교수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그러고 보니 기형이가 입학한 학교의 교수님이십니다!)
당시 교수님은 UN에서 추진하던 아프리카 개발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던 중이었어요. 아프리카의 극빈 마을들을 여러 곳 선정해서 교육 환경과 식수, 의료 인프라를 제공하고, 그 지역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건!
그 프로젝트의 모델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는 거예요!
그 프로젝트의 모델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는 거예요!!!
교수님은 이렇게 단기간에 극빈국에서 크게 성장한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는 없었다고 설명을 하셨는데, 그걸 듣고 있는데 있잖아요, 세상에 막 어깨가 으쓱하고, 콧바람이 풍풍 나오고, 갑자기 빨간 옷을 입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면서 한밤중에 친구들과 거리를 달리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애국심에 불타오르던 2002년의 광년이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죠.
게다가 그 당시 정말 오랜만에 낙관적인 경제 예측이 쏟아지고 있었거든요.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셨던 분 이야기 들어 보면 세계 경제는 이제 역동적으로 되살아날 것만 같았고, 경제 전망 같은 거 읽어 보면 길고 지루하던 불황은 이제 끝난 것만 같았고, 돈은 마구마구 펑펑 흘러 다닐 것만 같았고!
오오 그럼 대한민국도 다시 불경기 터널을 지나 호황기로 재진입하는 것인가! 드디어 우리에게 황금기가 다시 도래하는 것인가! 우리는 그럼 진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애국심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제 낙관론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비엘뽕‧에로뽕과, 떡대중년꽃수의 확고한 취향이 합쳐지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것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B : 그랬군요. 음, 테암컵 작가가 유통업계 종사자거나 관련 전공자라서 이런 글을 쓴 거냐는 질문도 있었거든요.
T : 유통업 종사자는 아니에요.(웃음) 다만 주변에 물어볼 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지인 찬스를 적극 이용했습니다. 저는 정말 사람 얼굴을 너무 못 외우고 못 알아봐서 장사했다간 말아먹습니다.
B : 앗, 저도요! 길에서 엄마랑 마주쳤었거든요. 엄마가 “너 여기서 뭐 하니?” 하셨는데 처음 보는 아줌마가 왜 날 아는 척하지? 라고 당황했던 기억이……. 저희 엄마에겐 비☆밀★
T : 아니, 세상에. 담당자님!(폭소) 다음에 따로 만나서 신세 한탄이나 해요.
제가 웃긴 게요. 제가 사람 이름도 못 외우고, 얼굴도 못 외우고, 길도 잘 잃는데요. 로마시대 황제 풀 네임 여덟 개는 한 번 듣고 바로 외워지고 그래요. 그런데 로마 황제 풀 네임 여뎗 개를 대체 어디에 쓰나요? 이렇게 쓸데없을 수가!
B : 글자에는 강하나 이미지에는 약한, 전형적인 문과시군요. 괜찮습니다. 텍스트에 강하셔서 이렇게 대서사에 강한 작가가 되셨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작품들의 분량이 어마어마해요.
T : 네, 길었죠.(본인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한숨)
B : 심지어 <샤인>은 전자책으로 10권 분량으로, 전작에 이어 또다시 장편이었습니다(썼다 하면 장편!) 이 역시 전작처럼 짜임새가 견고한 작품이었는데요. 이 정도로 서사가 강한 작품은 순수문학 쪽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역시 대서사엔 테암컵!)
서사가 강한 작품을 쓰시려면 미리 플롯을 탄탄히 짜 두셨겠지요. 그런데 막상 글을 쓰다 보면 계획처럼 진행되기가 어렵잖아요. 가장 골치 아팠던 점을 꼽자면요?
T : 담당자님,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게 아니냐고 왜 솔직하게 묻지를 못하십니까!(폭소)
샤인은 지인하고, 나도 짧게 쓸 수 있어. 내기해 볼까! 하고 시작한 작품으로, 결과는 모두 아시다시피 장편병 환자 인증으로 끝난…….
B : 아니, 그런 부질없는 내기를 하시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T : 음, 플롯 얘기가 나왔으니까 그 얘기부터 할까요? 우선 글을 쓰기 전에는 목차를 잡아요. 줄거리랑 목차, 그리고 엔딩 장면 정도까지는 뽑아 놓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새로 생각해서 넣는 내용도 많고 캐릭터가 혼자서 막 튀기도 해요. 테마와 흐름에 맞으면 잘 살려서 쓰고, 테마와 흐름에 안 맞으면 나중에 읽고 다 쳐 냅니다.
그래프를 크게 그려요. 대충 목차랑 클라이막스 같은 거 구도를 잡아요. 그 후에 어떤 에피소드들이 나올지, 그런 걸 그래프에 써 놓고 시작하는 거죠.
B : 어떤 그래프인가요? 아, 너무 영업 비밀을 캐묻는 걸까요?
T : 비밀이랄 것도 없어요. 어차피 연재 달릴 때 다 실토했는걸요.
곡선 그래프를 크게 그려요. 클라이맥스 부분이 볼륨이 커다란 그래프요. 그 공간에 에피 개요나 흐름, 대사 장면 분위기 배경 같은 걸 다닥다닥 써 놔요.
그리고 끼워 쓰는 파일 노트를 옆에 놓고 챕터 하나 한 장씩 제목 적어 두고 에피나 대사 그런 걸 더 자세하게 써 두고, 생각날 때마다 추가해 나가고, 설정 노트는 옆에 따로 적어 두고 시작해요. 진행하면서 부분부분 계속 보충하면서 쓰는데 책이 나올 때쯤 되면 책상 근처가 말도 못 할 정도로 엉망입니다. 서낭당처럼 종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정신 하나도 없어요.
B : 오, 한번 공개를……!
T : 그 돼지우리를 보여 드릴 순 없어요! 그리고 저는 일코 중이라 책상 사진을 공개하면 매우 위험해요.(웃음)
어쨌든 플롯은 이렇게 짜 두고 시작하는데요. 가장 골치 아팠던 건 플롯이라기보다 사실 체력이었어요. 감정 소진이 많은 구간은 읽는 것도 힘들지만 쓰는 것도 굉장히 힘들거든요.
B : 그럴 때 혹시 돌파하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T : 그럴 땐 말이죠, (갑자기 진리의 에로뽕 떡대중년꽃수 파워를 외치는 컵 한 마리) 은혜의 탄수화물과 카페인으로 돌파합니다. 슬프지만 제 정체는 인간의 탈을 쓴 카페인 장아찌인 걸로…….
B : 떡대수를 사랑하는 마음과 카페인으로 돌파하신 거군요. 사실 <샤인>, <천년의 제국> 둘 다 떡대수에 중년수였죠. <샤인>에서는 190cm를 넘는 키에 검도를 통해 다져진 단단한 체격을 가진 연희가 등장합니다. <천년의 제국>에서도 180cm를 넘는 키에, 발달한 가슴 근육 때문에 공 캐릭터인 론이 여자인 줄 알았다며 놀리기도 한 시오가 등장하고요. 떡대수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어어, 선생님. 여기 여자 출입금지 지역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에! 저기 웬 미친년이 산발하고 손을 흔들고 있는데요? 이야…… 웃통까지 벗고. 그림 좋다!”
……중략……
고개를 돌린 론은 시오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 일꾼인가? 미안미안. 그나저나 김샜는걸. 위에서 보니 젖이 커 보여서 딱 여자인 줄 알았거든.”
시오는 머리가 하얗게 되는 느낌에 멀거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지 퍼뜩 들어오지 않았다.
……뭐……가 커 보인다고? - <천년의 제국>中]

[호진은 눈을 가늘게 한 채 집중해서 덩치 큰 사내를 바라보았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이마 위로 젖은 머리카락이 굽슬굽슬 내려와 있었다. 높으면서도 두툼한 콧날과 길고 미끈하게 빠진 인중, 입술 선, 굵은 턱 선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단정하게 앉은 거대한 사내는 그림처럼 정지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얼굴에 맺힌 땀방울이 반짝거린다. 숨이 막힌다. 짙은 눈썹, 붉은 입술, 윤기를 머금고 반짝이는 저 입술. 저 사람은 섹스를 할 때 저 입술을 어찌 벌리고, 저 눈을 어떻게 찡그리며, 저 굵은 목소리로 어떻게 신음할까. <샤인>中]


B : 떡대 중년수는 사랑이죠!
T : 떡대수! 크흡, 중년수! 엄청 좋아합니다!(오열) 호호할배 노년수도 다 커버할 수 있습니다! 완전 좋아합니다! 없어서 못 봅니다(대성통곡)
저는 사실 글쟁이로서는 글이 두 개밖에 없는 유령 모드에 가깝지만 독자로서는 돈 아까워하지 않는 독자입니다. 심지어 할인이나 쿠폰조차 기다리지 않고 질러 대는 헤비 유저입니다. (독자 모드가 훨씬 강력한 컵 한 마리ㅠㅠ) 열혈 비엘 독자모드로 두 손 부여잡고 부탁드리는데, 작가님들 떡대수 중년수 좀 많이 써 주세요. 두 질씩 세 질씩 유통사마다 가서 지르겠습니다! 정말 너무 없어요.
왜 다들 떡대와 중년수의 치명적인 매력을 모르십니까! 떡대도 아방할 수 있고! 중년도 꽃중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제발 작가님들, 중년수!! 중년수!! 샤인의 연희도 잘 보면 중년이지만 나름 천상수 나름 아방수 나름 귀염수 나름 꽃수 아니던가요?
B : 네, 사실 꽃다운 외모에, 타고난 수에, 순진한 면까지 있죠.
T : 그쵸? 물론 연재 때 독자님들이 뜯어말려서 천상수 꽃수 키워드는 못 넣었지만 충분히 예쁘고 좋은 떡대중년수입니다. 크흡. 그 괴리의 짜릿함과 어여쁜 배덕감을 어쩔 것입니까, 아이고.(눈물)
존잘님들, 떡대중년꽃수 좀 써 주세요. 저는 울트라떡대중년꽃수 외길로 벌써 3백만 자도 넘게 썼단 말입니다. 이 정도면 비엘민국에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충분히 수행하고도 남은 것 아닌가요? 이젠 다른 작가님들이 쓰신 것들도 많이많이 보고 싶단 말입니다.
B : (찌잉) 그 간절한 마음이 많은 분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끝내주는 중년수가 있는데 말야, 싶은 작가님들은 꼭 B&M에 투고를!(막간 홍보) 음, 키워드 질문 어게인입니다.
<샤인> 독자들 반응에서 불호 키워드가 많아서 읽기 망설여진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멸치공에 충격 받았다는 독자분들도 몇몇 있었고요. 테암컵 작가님께서는 그러한 독자들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그리고 BL작가로서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캐릭터 특징이 있으신지요?
T : (눈동자 데굴데굴, 고개 절레절레=>전혀 예상 못함)
그냥, ‘그래 세상에 온갖 공이 많은데 멸치조루공 저질체력공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래도 이 바닥, 취향 존중의 세계 아니던가!’ 하고 끄덕끄덕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블루오션 공? 기형이가 나중에 씩씩하고 힘 세지면 다 용서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려서!! 맨날 공들만 안달하란 법이 있나요? 수가 좀 정력이 마이 셀 수도 있고, 거시기가 좀 거시기하게 클 수도 있고, 공 대신 수가 안달복달 벽을 긁을 수도 있는 거죠! 어쨌든 아무라도 벽을 긁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나봐요…….(쓸쓸)
B : 사실 굉장히 보기 드문 설정이었죠. 물론 현실에서는 빈번하지만요.
T : 그렇죠.
음. 양보할 수 없는 캐릭터 특징으로는, 이건 그러니까, 글쟁이 모드가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독자 7’의 소설 속 캐릭터에 대한 견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상하게 저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을 때, 완벽하고 정의롭고 멋진 캐릭터에 그렇게 정이 가지 않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은 완벽하지 않고, 성격도 결함이 좀 있고, 허술한 구석들을 갖고 있어요. 실수들도 하고, 무식하기도 하고, 가끔 불법적인 일도 저지르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런 부분에서 ‘아, 이 사람이 살아 있구나, 인간적이구나’ 하고 느끼거든요. 그런 캐릭터에 더 정이 가요.
그래서 그랬는지, 제가 쓴 애들도 좀 그런 구석이 있죠.(한숨 푹) 이게 아마 제 마이너 성향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론이나 호진이는 당연 못된 놈이고, 시오 헤이브가 한 짓도 무기 팔아먹기 위해 전쟁 일으키던 미국 정치가들만큼이나 사악해요. 윤연희도 마찬가지죠. 오죽하면 작가가 악덕 사장 키워드를 집어넣고 같이 돌을 던지겠어요? 희마트 1호점 지으면서 한 짓은 아무리 합법적이고 죄가 없다 해도 협잡질이고, 욕먹어 싸죠.
사실 저희 집도 재개발 때 비슷한 일 겪어 봤거든요. 물론 저희 어마마마는 밀당 안 하시고 얌전하게 도장 찍어 주셨더라고요. 그런데 옆집에서 알박기 했다가 개발주가 손 털고 나가서 다 개피봤단 얘기는 들었어요.(눈물)
어쨌든 그런 고약한 취향 덕인지, 저는 불완전한 캐릭터가 다른 불완전한 캐릭터를 만나 그 부분이 부딪치고 깨지면서 변화하는 종류의 책들을 좋아해요.
B : 아, 그렇죠. 그런 면이 또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와 공감을 주기도 하고요.
T : 네네. 물론 오해로 인한 갈등이 결말에서 확 하고 풀리면서 카타르시스 짜잔, 해피엔딩~ 그러는 것도 쫄깃한 맛이 있죠!
하지만 저는 캐릭터의 불완전한 부분이 환경, 가치관 차이, 우연이나 불가항력의 사건들과 엮여서 갈등이 누적되고, 그것이 긴 시간과 결합하면서 캐릭터의 진정한 변화를 끌어내는 스타일의 소설이 더 취향인 것 같아요. 대부분 무거운 장편들이긴 하죠^^
B : 맞아요. 작가님 소설 읽을 때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캐릭터가 변화해 가는 과정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것들을 담아내기 위해선 대서사가 필연적으로 필요하겠네요!
T : 어, 제 글로 그런 얘기하는 건 너무 창피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까 독자의 의견으로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 말씀드렸고요.
소설 취향을 말하면, 단편보다 장편, 특히 대하소설 류를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부딪치고 변해 가는 과정, 완성돼 가는 과정이 보이는 게 좋아요. 현실에서 많은 사람은 그런 과정을 통해 망가지고 붕괴하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불완전한 것을 채워 가며 서서히 완성되어 가기도 하잖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들은 그렇게 완성형으로 변화하는 인간들이에요. 그런 모습은, 뭐랄까 몇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가슴 벅차고 뿌듯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고통’과 ‘사랑’—많은 사람과 다양한 형태로 연결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B : 그렇군요. 사실 이렇게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샤인>에는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캐릭터관이 아주 잘 녹아 있었어요. 그 증거로 불호 키워드가 있는데도 ‘작가님의 필력이 멱살 잡고 끌고 갔다’는 평도 많았고요.
T : ……에로신의 계시를 받고 쓴 소설에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제가 너무 민망하구요……. 진짜 창피하구요. 음, 제 글에 그건 있는 것 같아요. 막장 파워!!! 원래 막장 파워가 좀 대단하죠.(웃음)
B : 막장……. 저 지금 갑자기 연희가 호진을 향해 김치 싸대기를 날리는 장면을 상상해 버렸어요.
T : 헉, 김치 싸대기! 저 그 장면 보면서 저런 거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솔깃합니다. 김치 싸대기 나오는 비엘이요.
B : 써 주세요! 단편으로라도!
T : (폭소) 아, 담당자늬이임! 조신하게 일코하며 숨어 살고 있는 사람한테 자꾸 뽐뿌 넣으시면 아니 되십니다!
아무튼 제 글을 재미있게 봐 주셨다고 하니 그저 반갑고 감사드릴 뿐입니다. 제 망글 읽으시고 불호 키워드 대신 새로운 취향 개척하게 되신 거라면 더더욱 감사하고, 영광이죠. 떡대수나 아재공수의 세계에 발을 들이밀게 되신 거라면 제가 맨발로 플래카드 들고 나가서 환영하겠습니다!
플래카드에 ‘울트라헤비급떡대수, 공보다도대물수, 밤마다벽긁는정력수, 밤이두렵공, 저질체력공, 주식숫자횡행기업물, 중년아재미인공, 중년떡대나름꽃수, 속옷취향거시기했수, 모질이아리따운베어수’ 같은 게 적혀 있으면 그게 저인 줄 아시면 됩니다.
환영합니다! 쬐끔 외롭지만 자유롭고 신나고 가슴 설레는 울트라 마이너의 세계!
B : 그럼 저는 아마 그 문구들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겠군요. 작가님께 멱살 잡힌 채 발을 들이고 말았어요.
T : 네, 그러니까 작가님들 포섭 좀 해 보세요, 제발! 다시 말했지만 저는 이미 3백만 자를 썼다고요!
B : 떡대수 계의 대주주님이시네요.
T : 네, 진짜 대주주라니까요.
B : 아, 그러고 보니 이런 질문이 들어왔었어요. 경제를 알지 못하고, 주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도 <샤인>의 주주총회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수성가한 주인공 연희가 세운, 자식 같은 회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순간이었지요. 이 장면을 묘사하려고 준비 많이 하셨을 듯한데, 실제로 주식을 좀 만지시는가요? (만지작만지작)
T : (오열) 사실 저희 집 가훈이 ‘주식하지 마라’입니다. 아바마마께서 오래 전에 주식하다 폭망하셨쎄여…….
B : 아……. 그런데도 주식 쪽으로 아주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았는데요.
T : 네. 그래도 경제신문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구독해서 보고 있습니다. 경제 전망이나 다보스 리포트 같은 것도 해마다 시켜서 읽고 있고요. 그런데 이런 노력이 돈으로 전혀 연결이 안 되는 게 문제죠. 어차피 저에겐 기업물과 돈지랄물이란 SF와 마찬가지로 판타지입니다. 슬픈 얘기였습니다.(퀭)
B : 음, 굉장히 현실적인 답변이네요. 그렇죠, 판타지죠……. 제가 슬픈 얘기를 꺼냈으니 그럼 또 슬픔에 대한 질문을 드려 볼까 해요!
대서사에는 희노애락이 다 들어가기 마련이죠. 그중 ‘애’에 대해 작가님께 여쭤 보고 싶어요. <샤인>에는 불현듯 감성을 찌르고 들어오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읽다가 울고 말았다는 독자님들의 평도 여럿 보였고요, 편집자 역시 교정을 보다 말고 훌쩍거려서 주위 직원들을 당황시키고 말았었는데요. 쓰시는 작가님은 쓰시면서 어떠셨는지요? (콧잔등이 시큰거리셨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