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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게 선빈 삼촌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사실 캐나다에 돌아가서도 종종 생각이 나곤 했다. 환하게 웃던 얼굴과, 운전대를 잡고 있던 커다란 손. 그리고 그 옆에서 떨려 하던 나.
그때, 선빈 삼촌이 따라 불렀던 노래가 뭐였는지 알기 위해 잘하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의 한국 유학생들에게 물었다. 선빈 삼촌과는 달리, 내가 부르는 노래는 가사도 음정도 뭐 하나 제대로 맞는 게 없어 한참이나 걸려서 알아냈다. 그 이후, 가끔 그 노래를 들었고 그때마다 그 삼촌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한동안은 선빈 삼촌이 너무 멋지게 느껴져서 캐나다로 돌아가서도 종종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그 뜨거움을 담담한 추억으로 바꿔 놓고 있었다. 그래도 막연하게 다 지나가 버린 추억만은 아니었다. 종종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는 순간, 그들의 어깨를 선빈 삼촌과 비교하며 혼자 아쉬워하곤 했으니까. 그리고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눈치 없는 남자들을 대할 때, 선빈 삼촌의 배려심이 떠올라 피식 웃곤 했다.
6년 전, 내 마음을 떨리게 했던 삼촌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잔잔해졌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갑자기 움직이려고 한다. 이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너무 슬펐는데. 그랬는데.



2
M.Bin


“다시 한번 일어나 봐.”
내 말에 꼬맹이가 일어서려고 했지만 오른쪽 발목에 힘을 주지 못하는 듯했다. 제대로 삐었군.
“꼬맹아, 네가 그냥 모르는 여자라면 나랑 부딪쳐서 그런 거니 부축 정도 그런데 너는 김태준 조카니까 남들 보기 조금 우습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도와줘야 될 것 같아.”
이 남자가 무슨 소리를 하나 멀뚱거리며 쳐다보는 꼬맹이에게 등을 내밀었다.
“업혀.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이 나도 좀 쪽팔리니까.”
꼬맹이도 꽤나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내 등에 업히며 목을 끌어안았다.
굳이 태준이 핑계를 대 가며 이 꼬맹이를 업긴 했지만, 내 양심이 말하고 있었다. 나라는 놈은 단순히 김태준 조카라는 이유로 이 꼬맹이에게 등을 내밀지 않았다. 6년 전, 어딘가 모르게 내가 손을 내밀어 줘야만 할 것 같았던 그 보호 본능이, 다시 나를 자극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꼬맹이 옆에 있던 각진 직사각형 모양의 검은 가방과, 핸드백을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원래 그런 걸 크게 신경 써 가며 살아온 인생은 아닌지라 상관없었다.
“무겁죠?”
“응, 많이 무겁네.”
장난이었다. 누가 봐도 이 꼬맹이는 수육 세 접시는 더 먹이고 싶을 정도로 말랐다. 그러고 보니 6년 전에도 볼살만 통통했을 뿐 꽤 야윈 체격이었던 것 같다.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태준이 나를 발견했다. 옆에는 태준의 매니저이자 준석이의 동생인 현석이도 서 있었다. 그리고 친척쯤 될 법한 사람들도 우리를 쳐다봤다. 흔한 상황은 아니지. 그때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있던 꼬맹이가 고개를 드는 느낌이 들었고, 태준의 놀라움은 더 커진 듯했다.
“아빈이 아니야? 뭐지 이 상황은?”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다, 뭐가 뭔지, 내가 왜 수육 잘 먹던 꼬맹이를 업고 있는지. 자, 꼬맹아, 일단 저 의자 위에 앉혀 줄게. 아니다. 가족들 쉬는 방이 어디야?”
“권선빈, 네가 원래 친절하지 않은 건 알지만, 설명은 좀 해.”
이 상황을 딱 봐도 감을 못 잡는 김태준이 더 이상했다. 굳이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인 건가? 네 조카가 두 발로 걸을 수 있으면, 내가 왜 얘를 업고 있겠냐?
“삼촌, 나 요 앞에서 넘어져서 다리를 삐었어. 그래서 선빈 삼촌이 나 업고 온 거야.”
그제야 태준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도 남아 있었다.
“방이 어디냐고! 얘 발목 이렇게 둘 거야? 내가 환자 눈앞에 두고 모른 척할 정도로 싹수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아, 그래. 저쪽 방으로 가. 아마 저기가 사람이 없을 거야.”
태준이 앞장서서 빈방으로 안내했다. 가족들의 짐이 몇 가지 널려 있어서 어수선했지만 충분히 넓은 공간이었다. 등에서 내려놓은 꼬맹이를 태준이 부축해서 바닥에 앉혔다.
“나 차에 가서 침 좀 가지고 올게. 이 근처에 약국이 하나쯤은 있겠지?”
“내가 가?”
“됐어. 네가 뭐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내가 다녀오는 게 더 빨라. 애들은 어디 있어?”
“서빙하지. 이제 좀 빠지긴 했는데 무지 바빴어.”
“그렇군, 일단 다녀올게.”
무엇인가 묻고 싶어 하는 꼬맹이를 놔두고 밖으로 나왔다. 아마 저 꼬맹이가 궁금해하는 것들은 태준이 다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차에서 침 케이스를 꺼내고 근처에 보이는 약국으로 가 스프레이 파스를 하나 샀다. 장례식장에서 전공을 살릴 줄은 몰랐는데.
조금 전 그 방으로 돌아가니 태준을 비롯해 몇 명의 중년 아주머니들이 꼬맹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미 상황에 대한 설명은 다 끝난 듯했다.
“아, 태준이 친구 선빈이? 한의사라고 했나?”
그중에 한 분이 말을 걸었다.
“네.”
“그렇구나. 아빈아, 천천히 오지 그랬어.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근데 이번에도 아빠는 못 오셔?”
“지금 오고 계세요. 내일 도착하실 거 같아요.”
“시간 맞춰 올 수나 있으려나…….”
갑자기 속에서 욱하는 마음이 생겼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꼬맹이에게 달라진 건 크게 없는 것일까? 이 꼬맹이는 왜 이런 상황을 여전히 피하지 못하고 있을까. 하긴, 나도 6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이 상황이 매우 못마땅하고 어서 정리해 버리고 싶다.
“나가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집중을 좀 해야 해서요. 빈방에 남녀 둘만 남겨 놓으면 남들 보기도 좀 그럴 테니, 김태준 너는 여기 있고.”
스스로 생각해도 좀 주제넘는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뜻 보니 꼬맹이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지나갔다. 됐다 그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또 내가 좀 개념 없어 보였다고 해도, 이 정도의 반응이면 만족스러웠다. 너도 내가 억지로 정리한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구나?
어쨌건 곧바로 빈방에 우리 세 사람만이 남았다.
“자, 꼬맹아. 우리 잠시 밖에 나갈 테니까 이 스타킹 좀 벗어. 이 위에 놓을까도 생각해 봤는데 별로 좋은 방법 같지는 않아.”
잠시 태준과 밖으로 나왔다.
“너 침 같은 거 놓을 줄 알기는 해?”
하긴 김태준은 나에게 약을 몇 번 지어 먹은 적은 있지만, 내가 침을 놓는 걸 본 적은 없었다.
“야매야. 완전히 야매. 지금이라도 조카가 걱정되면 어서 데리고 튀어.”
같이 한 번 피식 웃고는 방으로 다시 들어가니 맨다리의 꼬맹이가 앉아 있었다.
“꼬맹이 손목 이리 좀 줘 봐.”
꼬맹이는 망설임 없이 바로 손목을 내밀었다. 양쪽 맥을 짚어 보니 마른 체격과는 다르게 의외로 꽤 건강한 20대 여자였다. 전체적으로 좋은 맥이었다.
“너 생리통 같은 거 없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내 앞의 두 사람이 당황했다.
“왜? 내가 뭐 실수했어? 생리통 모르는 사람 여기에 있어?”
“아 진짜, 미친놈. 다리 고친다는 놈이 갑자기 왜 생리통이야?”
김태준이 피식 웃으며 나를 흘겨봤다.
“없어요, 그런 거.”
그나마 침착하게 대답하는 꼬맹이 덕분에 상황은 다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래, 그런 거 같네, 그게 좋은 거야. 누워 봐. 손에 몇 대, 다리에 몇 대 놓을 건데 크게 아픈 자리는 아니야. 침 맞아 봤어?”
“아니요.”
“유감이네. 내가 못 미덥게 생겼겠지만, 한번 믿어 봐. 나름 침은 괜찮게 놓는 편이니까.”
방 안에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고, 나는 내 일을 했다. 크게 아프지 않더라도 움찔거릴 법도 한데, 이 꼬맹이는 전혀 미동도 없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침 좀 맞아 본 70대 할머니들처럼.
“자, 일단 이렇게 20분만 있어. 다시 올게. 얘 뭔가 더 필요한 게 생길 수도 있으니까 태준이 네가 옆에 있어 줘.”
평소보다 집중을 하기도 했지만 침이 들어가는 느낌이 괜찮아서 나도 마음이 가벼웠다.
“고마워요 삼촌.”
꼬맹이가 누워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밝은 곳에서 봐도, 꽤 예쁜 얼굴이었다. 자꾸 꼬맹이에게 눈이 갔다. 아, 젠장. 여기는 상갓집이고 저 꼬맹이는 김태준의 조카인데, 왜 흐릿한 6년 전의 감정까지 스멀스멀 기어올라 나와서 꼬맹이를 더 알고 싶어지게 하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분명히 그때의 감정은 어린 동생에게 가지는 감정, 그런 것과 비슷했는데 그 감정이 예쁜 얼굴과 합작을 하니 감당이 안 되기 시작했다. 물론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고마우면, 조금 있다 같이 수육에 소주나 마시든가. 준석이랑 명훈이도 깜짝 놀라겠어. 꼬맹이의 환골탈태라…….”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꼬맹이도 따라 웃었다.

문상을 하고 준석과 명훈을 만났다. 이미 차차 문상객이 빠지기 시작한 시간이라 곧바로 둘러 앉아 잔을 채웠다.
“바쁜 거 다 지나가고 나니 왔구먼? 아까 다 왔다던 놈이 왜 이제야 나타나?”
“그렇게 됐어.”
“그래서, 할 만해?”
“뭐 어찌어찌 버텨야지. 명훈이 너는 좀 어떠냐?”
“레지던트 3년 차한테 그런 질문이 의미가 있냐?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것도 기적이야.”
“그래도 너네는 딸린 식구는 없잖아.”
역시, 만나면 뻔한 레퍼토리가 돌고 돈다. 경쟁하듯이 누가 더 힘든가를 놓고 떠드는 것은 어찌 보면 이 녀석들 앞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아, 나 수육이 봤어.”
내 말에 조건 반사처럼 두 녀석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진짜? 안 그래도 아까 생각나서 태준이한테 물어보니 곧 올 거라고 하던데. 어디 있어?”
“곧 와. 그런데, 아마 못 알아볼 거야. 나도 못 알아봤거든.”
“그래? 왜 어떻게 변했기에?”
“좀 있다가 한번 봐.”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에 꼬맹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곧 다시 보게 되겠지만 어쩐지 조금 더 빨리 보고 싶어졌다. 착한 눈으로 사람을 올려다보던 그 표정이 이상하게 마음을 움직였다.
20분이 언제 지나가나?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때, 태준의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모두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매번 고마워.”
“아니에요. 당연히 와야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너희는 참 내 아들 같아.”
“저도 어머님이 우리 엄마 같아요.”
우리 중 그나마 싹싹한 준석이가 어머니의 팔짱을 끼며 답지 않게 애교를 부렸다. 명훈이와 나는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준석이를 노려봤다.
“태준이, 여전히 힘들어하니?”
2년 전, 태준이 매니저 승수 형의 교통사고를 말씀하시는 듯했다.
“많이 괜찮아졌어요. 사실 그게 보통 일은 아니었잖아요.”
어머니께서 알고 계시는 것보다 더 많은 어두운 이야기들이 있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충분히 태준이를 걱정하고 계셨다.
“내 아들이지만, 쟤가 정말 괜찮은가 싶어. 웃고는 있는데, 어딘가 모르게 참 외로워 보이고.”
“괜찮을 거예요. 어떻게 여자라도 좀 붙여 줄까요? 김태준이 다른 생각 못 하게.”
“어디 착하고 좋은 아가씨라도 있어?”
“에이, 사실 태준이는 모든 여자들이 다 사랑하는데 굳이 저희가 나설 필요 있겠어요? 여기 유명훈이랑 권선빈이 문제죠. 특히 성격 까칠한 권선빈이 제일 큰 문제고.”
준석이가 내 앞에서 나를 대놓고 디스하는 데도 공격할 의지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지금 나에겐 언제 20분이 지나가는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 잠깐만 저기 좀 다녀올게.”
“어디?”
“수육이 데리러.”
나는 가벼운 걸음으로 꼬맹이에게 되돌아갔다.



W.Bin


권선빈.
그 사람은 변한 게 전혀 없었다. 헤어스타일만 조금 변했을 뿐, 6년 동안 내가 기억해 왔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그리고 백화점만큼이나 컸던 어깨도 여전했다.
“설마…… 너 그 수육이야?”
아, 정말 부끄럽게도 선빈 삼촌 역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참 이상한 인연이었다. 두 번의 만남 모두 장례식장에서만 보게 되는. 그래서일까?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선빈 삼촌도, 이 공간도 어쩐지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6년 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제대로 삔 것 같은데. 많이 아파?”
고개를 끄덕이자 내 발목을 한 번 만져 보는 손길이 참 다정했다.
“그런데 지나가다 길에서 봤다면, 너 정말 못 알아봤겠어. 이번에도 외국에서 온 거야?”
“오늘 외국에서 돌아온 건 맞긴 해요. 출장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최근 2년간 한국에 있었어요.”
“그런데 왜 연락 한 번 안 했어? 태준이 통해서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삼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차고 있는 시계가 비싸 보였고, 신고 있는 구두도 좋아 보였다. 혹 비싼 것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선빈 삼촌이 하고 있는 것들이라 마냥 좋아 보였을 수도 있다. 아니다, 6년 전에도 저 삼촌은 어딘가 모르게 고급스러운 이미지였다. 학생이 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니고.
“안 되겠다. 업혀.”
아프긴 했지만, 이런 전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선빈 삼촌 말대로, 내가 태준 삼촌의 조카여서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 같았다. 넓은 등을 쳐다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수줍어졌고, 그것과는 또 다른 웃음이 나왔다. 아,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라를 잃은 듯 울었는데 이게 무슨 변덕이람. 그리고 처음으로 김태준이라는 사람이 내 핏줄인 것의 혜택을 보는 듯해서, 속으로 크게 한 번 외쳤다. 김태준 최고!
“무겁죠?”
“응, 무겁네.”
이 정도 체격의 사람에게 나 정도는 그리 무겁지 않을 것 같은데. 장난인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흘긋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부끄러웠지만 우리의 목적지가 조금 더 멀리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역시나 태준 삼촌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우리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런 태준 삼촌의 반응에도 선빈 삼촌은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결국 내가 입을 열었다.
“오다가 다리를 삐었어.”
그제야 태준 삼촌이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그런 태준 삼촌과 반대로 이젠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내려 줬어도 됐을 텐데. 선빈 삼촌은 왜 굳이 방을 찾았을까?
“나 차에 가서 침 좀 가지고 올게.”
응? 침? 그게 무슨 말이지? 궁금증만 남긴 채, 곧바로 선빈 삼촌이 나가 버렸다.
“선빈 삼촌이 왜 침을 가지러 가?”
“네가 발목을 다쳤으니까.”
태준 삼촌의 대답으로도 어딘가 부족했다. 삼촌의 집단은 전체적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에 취미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선빈이 한의사인 거 몰랐어? 6년 전에 좀 친해진 거 아니었어? 당연히 아는 줄 알았지.”
“뭐? 한의사였어?”
“응. 한의대 나와서 국가고시 패스했으니 한의사 맞아. 지금 한의원에서 일하고 있고.”
공부를 잘했다는 건 대충 예상했지만, 어쩐지 한의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그냥 의사면 모를까. 6년 전, 전공을 물었을 때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아서 뭔가 곤란한 것 같아 더 묻지 않았었다.
“아빈이 왔어?”
하아……. 한국에서 근무를 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나름 피해 가며 살아왔던 친척들이 또 나를 굳이 찾아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언제나 나에 대해,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참 많았다. 지금은 내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니 받아들여야만 하나? 태준 삼촌이 내 눈치를 슬쩍 봤다. 다행이었다. 아마 친척들이 도가 넘는 질문을 하면, 태준 삼촌이 선을 그어 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태준 삼촌보다 더 빨리 나선 건, 금방 돌아온 선빈 삼촌이었다.
“좀 나가 주시는 게 어떨까요? 치료를 하려면 조용한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어른들이 듣기에는 참 기분이 상할 법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얼마나 따뜻하게 다가왔는지. 그러고 보니 선빈 삼촌은 6년 전에도 처음 봤던 나에게 그런 식으로 배려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내가 종종 궁금했던 사람이, 내 마음속에서 더 크게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물론 선빈 삼촌은 방금 자기가 한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상황은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참 이상한 날이었다. 일어나야 할 일들이 조금 더 빨리 진행되는 기분이 드는…….
오른쪽 발목을 여기저기 짚어 보던 선빈 삼촌은 망설임 없이 몇 군데에 침을 놨다. 아플 수도 있다고 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조금 더 놔 줘도 될 것 같은데. 내 마음과는 다르게 삼촌은 20분 뒤에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어서 20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