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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24화)
10. 나에 대하여(2)
“그게 나쁘냐?”
그러자 역시나 전혀 다른 답이 들려왔다.
“상황에 따라선.”
“뭐?”
내가 되물었다.
“나쁘지, 매우…….”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가영이도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물가에서 하루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하루인지 아닌지는 나는 잘 알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언제 잠이든 것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또 꿈을 꾸었다.
세상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꿈속이 동굴 속처럼 깜깜하다니 좀 이상했다.
‘여기가 어디지?’
하고 생각했다.
순간,
‘너는 어디?’
마치 커다란 홀에서 울리는 듯 내 목소리가 울렸다.
그 물음에 답하듯 생각했다.
‘나는 어디 있지?’
내가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주변에서 소리가 들렸다.
“카아아악∼∼∼ 내 아기∼∼∼∼ 내 아기∼∼∼∼ 푸식∼ 화르르르∼∼”
세상을 진동시킬 듯한 울림은 분명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뭔가 거대하고 육중한 것이 작은 공간에서 날뛰는 듯한. 그로 인해 그 공간은 무너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며 커다랗고 빨간 벽이 보였다.
“이 녀석도 아닌가?”
내 목소리인 듯하기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한 목소리가 울리고는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오듯 세상이 밝아졌다. 여기가 어딘지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오른쪽에 있는 내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놀라 몸을 일으키려고 하니 내 밑에 기철이가 깔리듯이 누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기철이는 곤히 자고 있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아직도 꿈속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꿈속에서 공기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쉬고 있는 물가였다.
내 오른쪽 옆으로는 소희와 그 옆으로 가영이가 있었고, 왼쪽으로는 기철이가 있었다. 분명히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 소희와 가영이는 멀리 떨어져서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둘이 내 옆으로 와 있었다. 여자애들은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될 것 같아 넘겨준 넓은 타월을 덮고 있었는데 둘이 덮기에는 짧다보니 끄트머리 사이로 발이 삐죽 나와 있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가영이의 발쪽에 있는 상처들에 눈길이 머물렀다. 최근에 생긴 상처들인지 아직 딱지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바람을 타고 조금 흘러가듯 옆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다른 반 학생들과 재수 없는 학생회장 그리고…… 여신, 아니 나휘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휘에게 조금 다가갔다. 순간 마치 인력이 작용하듯 훅하고 나휘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빨려 들어가듯 들어간 그곳은 내가 있는 숲이었다. 그런데 좀 달랐다. 커다란 나무들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 널린 것이 나무라 나무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점은 나무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었다.
왠지 나무 위쪽으로는 문 같은 것도 달린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나무 위에 집이 지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무가 집인지 집이 나무인지 애매할 정도로, 좋게 말하면 자연 친화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야생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사람의 손때가 묻어나고 있었다. 뭔가 아기자기한 느낌의 장식물도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다가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떠올려야 하는데 생각나지 않는 갑갑한 느낌처럼 어딘가 꽉 막힌 듯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뭘까?”
난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었다.
괴롭게 머리를 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나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괴롭게 머리를 쥐어뜯다가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나서는 혼자서 더 괴로워해야 했다.
꿈속에서 생각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 마을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토록 찾던 이 이상한 세상에서의 안전한 곳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꼭 꿈은 꿈인 줄 알면서도 그 안에만 들어가면 현실이 인식이 어려웠다. 마치 파편을 주어 모으듯 현실의 단편적인 것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꿈속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주범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안전한 곳이 있다는 것만 보아서 어쩌겠냐는 것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아야 하는 것을…….’
안타깝게 머리만 쥐어뜯어야 했다. 생존과 관련된 일이므로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데 그 꿈을 꾸면 꼭 알아봐야 하는 것인데도 막상 꿈을 꾸면 마구 헤매다가만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그 꿈을 꾸면 이번에는 제대로 임무 완수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을 청하려고 노력했다.
“꼬르르륵∼∼”
“꼬르르륵∼∼”
그러나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왼쪽에서부터 울리는 엄청난 소리 때문이었다. 기철이는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배에 닿는 땅이 울릴 정도의 소음이었다. 나는 그냥 벌떡 일어나 버렸다. 그리고 기철이를 째려봐 주었다.
“으으응∼∼∼”
뭔가 낌새를 느꼈는지 기철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침인가?”
기철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꼬르르륵∼∼”
여전히 기철이의 배에서는 엄청난 소리가 울려대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나도 배가 고파지는 것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오후였던 것이다. 기철이를 시작으로 한 명씩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걱정꺼리도 하나 둘씩 표면으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가 바로,
“배고프다.”
기철이는 드디어 100번째를 채우며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얼마나 들었는지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다.
“그러게.”
그 말에 처음으로 장단을 맞춰주듯 대꾸한 것은 가영이었다. 언제부터 마음이 맞았는지 가영이와 붙어다니던 소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에 이어질 것 같았던 릴레이 맞장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나 역시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가영이가 벌떡 일어났다.
“얘들아!”
모두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지친 듯이 앉아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가영이에게 향했다.
“우리 이렇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야. 배고프지 않니? 우선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린 식량이 필요해.”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학생회장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가영이를 뒤로 밀치고는 그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말 잘해주었다, 2학년 3반 실장. 그렇다, 식량을 구해야 한다. 그러니, 자! 가지고 있는 모든 식량을 앞으로 내놓도록.”
학생회장이 잘난 척하며 말하자 모두가 학생회장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아이들이 괴물에게 헐레벌떡 도망치느라 가지고 있던 배낭도 모두 버리고 왔을 뿐만 아니라 배낭이 있었다 하더라도 나처럼 중간에 다 먹어 치웠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먹을 것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영이도 똑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가영이는 학생회장이 했던 것과 똑같이 학생회장을 뒤로 밀치고 한발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모두 흩어져 식량을 찾도록 하자.”
그 말에 모든 아이들이 납득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멀리 가지 말도록 해. 길을 잃으면 찾으러 가줄 사람이 없어. 시계가 말을 듣지 않으니 시간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없어. 그러니 태양이 머리 위로 올 때까지 식량을 찾아보고 없으면 그냥 돌아오도록 해.”
뒤에서 학생회장이 또 나서서 말하려고 하는 것을 가영이가 야무지게 뒤로 밀치며 말을 이었다.
“찾아온 사람과 찾지 못하는 사람 모두 똑같이 식량을 나누어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거 알지! 혼자 살자고 다 먹어치우는 이기심은 우리 모두를 죽일 거야. 우리 다 같이 살아남자. 그리고 꼭 우리의 세계로 모두 같이 돌아가자.”
가영이가 다짐시키듯 마지막말을 끝냈다.
“오∼!”
모두에게 동의의 외침이 들렸다.
“잊지 마! 해가 하늘의 중간, 머리 바로 위에 뜨게 되면 반드시 돌아와 해.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대책을 논의하자.”
“응∼!”
모두들 동의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때였다.
“이미 해가 하늘에 위에 떠있는데 무슨 소리야?”
윤환이었다. 그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몇몇의 아이들이 보였다.
그러자 가영이가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해가 머리 위에 떠있는 듯 보이는 사람?”
모두에게 물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물음에 동의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이라는 표시었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나도 다른 사람이 손을 드는 것을 보고는 안심하며 손을 들었다. 그 안에는 역시나 윤환이도 들어 있었다.
50여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10명 정도의 아이들만 손을 들었다. 손 든 아이들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다수 아이들의 눈빛이 느껴졌다.
나는 얼른 그 10명 사람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전에 가영이가 설명했듯이 눈에 띄게 다친 곳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대다수의 아이들이 상처를 입었지만 전혀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 학생회장이 당당히 들어 있는 것에는 그럴 거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부끄러움도 없이 손을 들고 있는 학생회장을 째려봐 주었다.
내가 험악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내 쪽을 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리고는 슬그머니 손을 내리며 윤환이 곁으로 얼른 도망가 버렸다.
가로 막을 사람이 없어져서인지 가영이가 술술 말을 이었다.
“해가 머리 위에 계속 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과 조를 짜서 움직이도록 해.”
다른 설명 없이 너무나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돌아서는 가영이를 바라보며 모든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알아서 조를 짜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잘잘한 것을 신경 쓰기에는 배고픔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너무 컸다.
윤환이와 학생회장은 나휘와 짝을 할 생각인 듯 나휘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그 뒤를 다른 추종자들이 뒤쫓고 있었다.
나휘는 다리가 나은 건지 다른 사람들이 쫓아오건 말건 다른 여자 친구들과 팔랑 팔랑 경쾌한 걸음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흩어지자 나는 맨 처음 물가를 돌아다니며 먹을 만한 것을 찾았다. 산 위 상류 쪽이라서 그런지 물은 깊지 않았다. 물속으로 들어가 돌을 뒤지기도 하고 빤히 물 안을 바라보기도 했다.
역시나 이 이상한 세계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물속에 물고기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역시 이세계는 물속도 다르구나!’
고 감탄하고 끝낼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장 물속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산산이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는 기댈 것도 없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잎이 넓은 나무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하고 넓은 잎사귀를 조금 씹어보았다가 얼굴을 구기며 뱉어야 했다. 잎사귀는 너무 떫고 썼고 질겼다.
어쩔 수 없이 무리를 떠나 조금 더 먼 곳으로 식량을 찾아보기로 했다. 조금 걸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