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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23화)
9. 밤과 낮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2)
“응? 응. 깜깜하고 별도 있고 달도 있고.”
소희는 내가 왜 묻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는 여전히 태양은 내 머리 위에 있었고 주위는 환하다 못해 눈이 부셨던 것이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시계를 보아도 별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꾸 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어 당황한 나머지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있었다.
“무슨 일이야?”
내 상태가 이상해 보였는지 윤환이가 다가오며 물었다. 윤환이의 물음에 번뜩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그리고 윤환이를 데리고 소희로부터 조금 떨어진 후 조용히 물었다.
“지금이 낮이냐? 밤이냐?”
“무슨 소리야?”
윤환이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묻는다는 듯이 버럭 말했다.
“낮이야? 밤이야?”
나는 심각하게 다시 물었다.
“야! 이렇게 환한데 낮이지 밤이겠냐?”
나의 조용한 물음에 윤환이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식으로 버럭 대답했다.
“응? 무슨 소리야?”
우리의 말을 듣고 멀리서 기철이가 폴짝폴짝 뛰어 오며 말했다. 나는 기철이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지금이 낮이냐? 밤이냐?”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는 것은 기철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 밤이지, 낮이야?”
기철이의 애매한 대답에 나는 다시 물었다.
“너가 보기에 지금이 밤이냐?”
그러자 기철이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듯이 답했다.
“밤이지.”
“도대체 뭘 봐서 밤이라는 거냐?”
윤환이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야! 그럼 이렇게 컴컴한데 밤이지 낮이냐. 저기 멀리 두둥실 떠있는 달은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냐. 아무리 달 밝은 밤 대낮처럼 환하다고 해도 밤은 밤이지. 너는 눈구멍이 옹이 구멍이냐? 빤히 밤인데 왜 낮이라고 우기고 난리야∼∼?”
기철이가 당당하게 동쪽 하늘 어딘가를 가리키며 윤환이게게 대들듯이 말했다. 너무도 강력하게 밤이라고 주장하니 장난으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새 우리들의 논란은 주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나는 밤인데 너는 낮이냐?’
‘나는 낮인데 너는 밤이냐?’
같은 논란이 이어지며 혼란이 증폭되고 있었다. 갑자기 불안이 몰려왔다. 지금이 밤이라면 안 그래도 이상스럽게 조용한 산속에서 우리들의 소란은 위험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만!”
나는 조용히 힘을 실어 단호하게 명령하듯 말했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말했다.
“쓸데없는 토론을 하는 데 힘쓰지 말고 힘이 남았을 때 더 이동하자.”
내가 일어서려고 하니 멀리 앉아 있던 이름 모를 여자아이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야! 너무하는 거 아냐? 우린 반나절이나 걷기만 했다구. 그런데 더 걷자구? 난 못해!”
그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웅성거림이 번져갔다.
그 중에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반나절? 나는 한 시간도 안 걸은 것 같은데?”
혼란스러움이 모두를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무엇으로 지금 상황을 판단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상황을 정리해야 함에도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얘들아, 조용!”
단호하고 조용한 음색이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멍한 머리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 반 실장 가영이었다.
“너희들이 혼란스러운 거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 이럴 때가 아니잖아? 일단 쉴 곳을 찾아야지! 여기는 잔디도 많지 않고 경사도 심해서 푹 쉬기에 좋지 않아. 조금만 더 이동해 보자. 우리 더한 일도 잘 이겨 냈잖아. 조금만 더 힘내자.”
가영이는 누가 봐도 타고난 실장 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나를 비난하듯 하며 절대 못 걷겠다는 그 여자아이조차도 가영이의 말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갈 거지?”
가영이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당찬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끙끙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자각이 들었다. 아무리 중요한 문제라도 살아남은 자만이 그 문제의 답을 알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가영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역시 여자 아이들은 체력이 부족한지 서로를 기대며 힘들게 걷고 있었다. 나 역시도 소희를 부축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소희 옆으로 가영이가 조용히 다가왔다. 왠지 가영이는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좀처럼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별수 없이 내가 먼저 질문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뭘 말해야 될지 몰라 한참을 생각한 후 지금 나에게 가장 의문이 되는 질문을 던졌다.
“너는 지금이 낮이야, 밤이야?”
가영이가 조용하게 속삭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밤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낮이야.”
질문을 생각한다면 뜬금없는 답이었으나 달리 생각하면 내 진정한 의문의 근본적인 답에는 더 가까운 답이었다.
“무슨 소리야?”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모은 정보와 어느 정도의 추론을 덧붙이면 상처를 일정 이상 입은 사람에겐 밤이 오고 낮도 와.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른다는 이야기야. 그러나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은 항상 오후, 오후 하더군. 물론 시간의 흐름도 정상적으로 느끼지 못해. 마치 시간의 블랙홀에 갇힌 것처럼 말이야. 나 역시 그런 상태를 겪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알아. 너 역시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지? 모두 시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착각이지. 물론 단순히 인식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물리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착각보다는 더 실용적이지만 말이지.”
나는 생각지도 못한 구체적인 설명에 깜짝 놀랐다. 다음 질문을 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오히려 가영이 쪽에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 너는 모르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풀어놨으니, 이제 너는 알고 있고 나는 모르는 것을 말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당당하게 요구하는 가영이에게 압도되어 물었다.
“뭘?”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우리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알고 있어?”
그 말을 묻는 가영이의 얼굴은 조금 찡그리고 있었다.
평소 가영이란 인물을 단지 ‘실장’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다 사적인 교류는 전혀 없었던 나에게 그 찡그리는 표정의 의미를 알 방법은 없었다.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오히려 가영이의 물음에 되물었다.
솔직히 두 가지 물음에 제대로 답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영이의 자신감이 내가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응. 적어도 네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네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사람은 왜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을 테니까. 나아가 도착점을 알고 있다면 출발점, 즉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설명도 해줄 수도 있을 거란 추측을 한 것뿐이야.”
나는 똑똑 떨어지는 가영이의 설명을 들으며 잠시나마,
‘내가 알고 있나.’
하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아니 가영이의 기대에 부응해 설명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내가 가려고 하는 것은 그냥 꿈에서 본 것을 가지고 봉사 문고리 잡는다는 식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고 여기에 온 이유는 정말 내가 간절히 알고 싶은 바였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한 후 대답했다.
“미안, 나도 잘 몰라.”
솔직하게 사과했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설명으로 혼란에 빠트리느니 차라리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나을 듯했다. 영리한 가영이라면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진짜야?”
가영이가 다짐하듯 물었다.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나도 별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긴 하지.”
가영이가 뭔가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휴∼∼∼”
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오는 한숨의 이유를 알고 싶어 물었다.
“아니, 그냥. 만약 너가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고 있다면 죽여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
가영이는 충격적인 내용에 비해 담담하게 말했다.
“뭐?”
그 태도의 갭도 갭이었지만 내용의 극단성에 놀라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몰아넣은 이유가 또는 원인이 너라면 너를 없애면 우리는 우리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거든.”
“아니, 그건 이해하는데. 왜 그게 나라고 생각했는데?”
“너 좀 다르잖아. 다른 사람하고.”
“뭐가?”
“…….”
내 질문에 가영이가 곰곰이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그 침묵이 더 두렵게 느껴졌다.
“뭐가 다른데?”
그때였다.
“야! 물소리다!”
“와!”
“와!”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드디어 물이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10. 나에 대하여(1)
누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이곳이 목적지인 것을 눈치챘다.
‘헉!’
물가에 도착한 것을 기뻐할 새도 없이 가영이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너 여기에 물이 있을 거란 걸 알고 온 거야?”
조금 날카로운 어조의 질문이었다.
“뭐, 어느 정도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해 하며 말했다.
“어떻게?”
가영이가 살벌하게 따지듯 물었다.
“얘들아∼∼ 싸우지 말고, 응?”
소희가 우리의 중간에 서서 처연하게 말했다. 너무 지쳐 보이는데도 우리가 싸우는 것을 안타깝게 말리고 있는 것이 보여 가영이도 차마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주변에 좋은 자리를 잡고 소희를 눕혔다.
멀리 있는 기철이를 손짓으로 부르자 기철이가 물가에서 깡총깡총 뛰며 물장구치며 놀고 있다가 쪼르르 달려 왔다.
“왜?”
“배낭에서 자리 좀 꺼내자.”
“응.”
기철이는 배낭을 통째로 나에게 건네줬다.
‘지금까지 배낭 잘 지켰지?’
라는 태도로 으쓱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무시해 주고는 배낭 안에 물통을 모조리 꺼내 기철이에게 주며 말했다.
“물 좀 받아줄래?”
“옛썰.”
기철이는 또 오버하는 태도로 경례를 붙이더니 쪼르르 물가로 달려갔다.
“그 배낭 너 거였어?”
가영이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응.”
너무도 날카로운 눈빛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흐응∼∼”
무엇을 알았다는 뜻인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물었다.
“왜?”
“너 좀 달라.”
아까와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그런데 왠지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 것처럼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멀리서 기철이가,
“대자앙! 물통 다 채워?”
라는 뻔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냥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좋은지,
‘헤헤.’
거리며 열심히 물통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말을 했던 사람을 떠올랐다.
기철이었다.
그런데 왠지 그때랑은 의미나 분위기가 너무도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똑같은 질문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