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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25화)
10. 나에 대하여(3)


“배고프다.”
“배고프다.”
두 사람의 하모니가 내 뒤쪽에서 반복해 들렸다. 기철이와 가영이었다.
가영이는 아까 아이들 앞에서 똑떨어지게 말했던 모습을 어디다가 두고 왔는지 기철이와 똑같은 포즈로 축 늘어져 걸어가면서 ‘배고프다’는 하모니를 만들며 내고 있었다.
왠지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이 똑같은 모습으로 음률을 같이 맞춰가며 내 뒤를 쫓고 있자 좀 귀엽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뭐냐?”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민망스러워져서 조금 퉁명스런 어조로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
“뭐가?”
어느새 동질화 되어버린 두 사람이 똑같이 대답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똑같은 말을 똑같은 상황에 똑같이 말하는데도 어쩜 그렇게 어조가 정반대로 다르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너희들은 식량 안 찾을 거냐?”
“찾고 있는데.”
가영이가 답했다.
“나두.”
기철이가 가영이의 답에 동의했다.
“찾을 거면 좀 떨어져서 찾아. 그래야 찾을 확률도 범위도 늘어나고…….”
내가 말을 이으려고 하자,
“안 돼.”
둘이 똑같이 대답했다. 너무 똑같이 대답하니까 둘도 서로를 바라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큭큭큭.”
먼저 기철이가 나를 보며 답했다.
“내가 대장을 보좌해줘야지. 대장은 시간 모르잖아?”
어느새 대장 소리에 면역이 생겼는지 딴죽 걸어줄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럼 너는?”
내가 가영이를 향해 말했다.
“너는 내 관찰 대상이라고 말했지 않았냐?”
가영이가 미심적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뭐?”
너무도 뜻밖의 답에 나는 가영이에게 되물었다.
“그냥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 너는 내 관찰 범위에서 벗어나면 안 돼! 알았어?”
마치 어린 아이를 가르치려는 듯 말했다. 그때 말했던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말했던 것에 연장선상인 듯했다. 그래서 물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알면 됐어!”
가영이가 당연하듯 말했다.
“도대체 뭐가 다른데?”
나는 뭔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뚱뚱한 사람한테 뚱뚱하다고 말하면 욕이 된다. 반대로 빼빼한 것이 콤플렉스인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해주면 좋아할 것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평범한 것이 전부인 나에게 특히나 요즘 따라 평범한 것에 대한 회의가 생기려는 이때에 특별하다고 이야기해주니 뭔가 정말 특별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특히나 가영이처럼 똑똑한 아이가 그렇게 이야기해 주면 더욱 그랬다.
“바로 그걸 발견하기 위한 관찰이야!”
그 말을 듣고 괜히 서운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았어.”
소희가 건강하게 걸어 다니게 된 뒤로부터 다시 내 몫이 된 배낭을 고쳐 메며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면 됐어!”
가영이는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며 발밑에 있는 작은 식물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대로 서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 가영이에게 말했다.
“나를 관찰하는 걸 허락해 주는 대신 조건이 있어.”
일부러 사무적인 어조로 들리게끔 말했다.
“그래. 내가 들어줄 수 있는 합리적인 것이면 당연히 들어주지.”
가영이는 내 말투의 의미를 알았는지 내 앞으로 다가와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어느새 똑똑하고 야무진 가영이로 돌아와 있었다. 가영이의 그런 모습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언하듯 말했다.
“응. 들어줄 수 있고 당연히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지.”
“그래?”
가영이가 말했다.
“그래.”
그 말에 답했다.
“뭔데?”
“먼저 약속해줘.”
“뭘?”
“내가 하는 요구를 수락해 주겠다고.”
“뭐?”
가영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약속해 주지 않으면 나도 허락할 수 없어.”
“네가 허락 안하면 내가 관찰 못할까 봐?”
가영이가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응, 못할 거야!”
단언하듯 말했다.
“왜?”
가영이는 말하면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비웃음은 아니었지만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가영이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자신감은 스스로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똑똑함을 스스로 잘 이용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자타 공인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타인 중의 하나인 나로서는 가영이의 자신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정중하게 답했다.
“내가 여기서 너를 따돌리려고 작정하고 도망치면 과연 네가 나를 쫓아올 수 있을까?”
“뭐?”
가영이는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여기 나쁜 놈을 발견했다.’
와 같은 눈빛을 가득 담아 나를 비난하듯 바라보았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 눈빛에 뜨끔해하며 말했다.
“알았어. 못 쫓아간다는 것은 인정하지.”
비난받을 것을 각오했지만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는 가영이를 바라보며 장난처럼 말했다.
“그렇지?”
그러자 여전히 나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가영이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 약속할게. 그런데 그 조건이란 게 뭔데?”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뭐야?”
내 새끼손가락을 바라보며 가영이가 물었다.
그 말에,
“뭐긴.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기 몰라?”
왜 이런 당연한 것도 모르냐는 듯이 말했다.
“요즘엔 애들도 이렇게 약속 안하거든? 이런 짓 안 해도 약속 지켜. 난!”
내 말에 다시 어이없다는 얼굴로 돌아 온 가영이가 이렇게 유치한 짓은 못한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한의학적으로 새끼손가락에는 심장에 해당하는 경락이 흐르고 있거든. 그러니 마음이 연결되는 심장에 해당하는 새끼손가락을 걸어 서로 마음에 새겨야 마음 혹은 영혼이 통하는 것이고 이 굳은 연결이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거야. 유치한 행위가 아니라고.”
내 장황한 설명을 듣고 있던 가영이가 어이없는 표정 그대로 웃으며 말했다.
“누가 그러든?”
“우리 할아버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가영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답했다.
“그래 어르신들 말은 잘 들어야지.”
가영이가 뜻밖에 선선히 답하며 내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며 딱딱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너를 관찰하는 대신 거는 조건을 들어준다고 약속한다.”
그 말을 듣고 손가락을 풀지 않는 상태로 말했다.
“너가 나를 관찰한 것에 대하여 즉시 나에게 알려 주기.”
즉시를 강조하며 말했다.
“뭐?”
가영이는 깜짝 놀라며 손가락을 풀려고 했다. 나는 풀려는 새끼손가락을 꽉 쥐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약속해줘.”
다짐시키려는 듯 말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나 자신을 알고 싶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영이라면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나의 본질을 알아 내 줄 것이라고 믿는 면도 있었다.
이 이상 한 세상에 와서 조금씩 변하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랬기에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웃기지마.”
가영이가 버럭 화를 냈다.
“너는 나에게 약속했는데?”
손에 걸린 새끼손가락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거야 너가 합리적인, 당연히 들어줘야 하는 조건이라고 말했으니까 그렇지.”
“내가 말한 조건이 왜 합리적이지 않는데?”
잘 모르겠다는 뜻으로 순진하게 답했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거든.”
가영이는 그런 나의 태도가 더 열 받는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러니까 어떤 면이?”
“너는 관찰자가 피관찰자에게 관찰지를 보여주며 관찰하는 거 봤니?”
“왜 못 보여주는데?”
“당연히 관찰자에게 영향을 줄 테니까.”
“이미 관찰자는 관찰 받는 걸 알고 있는데?”
가영이는 흥분한 마음을 달래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본래의 담담한 말투로 돌아가 말을 이었다.
“그래, 그건 나의 과실이라고 인정하지. 솔직히 말하면 넌 내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내가 널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에게 숨긴다는 것 자체가 양심에 찔려서 말했어. 하지만 그것과 이건 다르지.”
“뭐가 다른데?”
나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만약 네가 내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는 걸 알고 나를 제거 하려 들거나 아니면 상황 자체를 숨기려고 한다면 내 목적에 한참 벗어나는 거거든.”
저번에도 그랬지만 ‘살인’같은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가영이의 말에 조금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나도 약속하지. 너에게는 어떠한 것도 숨기지 않고, 나에 대하여 이상한 것을 발견해도 너를 제거하지 않는다.”
내가 다짐하듯 손가락을 걸지 않은 왼손을 선서하듯 들고 말했다.
“그걸 어떻게 믿냐?”
“그러니까 약속하잖아!”
“…….”
여전히 의심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가영이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따지자면 너 역시 나에게 솔직히 다 이야기한다고 나 역시 믿을 수 없는 거잖아?”
“그렇긴 하군.”
가영이가 납득하며 말했다.
“봐, 쌤쌤이지?”
내가 웃으며 말하자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며 다시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아니, 내가 훨씬 불리해.”
“그러니까 뭐가?”
이번에는 좀 짜증을 냈다. 그것을 의식하듯 가영이가 조금 움츠러들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한다고.”
얼굴이 빨개졌다. 가영이 같은 똑 부러지는 타입도 쑥스러워지면 얼굴을 붉히는.
‘이런 면도 있구나.’
하고 느꼈다. 하지만 솔직히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어딨어?”
내가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 있잖아, 여기.”
나는 가영이의 말이 점점 우스워졌다.
“너 천성적으로 거짓말 못한다며?”
“그렇지!”
“그런데 아까 나한테 약속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냐?”
“뭐?”
“그건 거짓말이었어?”
“뭐∼∼∼∼?”
“자! 그럼 이미 약속은 성립한 거네. 너는 나를 관찰하는 대신에 너의 관찰 결과를 즉시즉시 나에게 이야기 해준다. 약속.”
내가 또 다시 즉시를 강조하면서 가영이와 묶여 있는 새끼손가락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그리고 멍하게 있는 가영이의 엄지손가락을 가져다가 꾹 찍으며,
“도장.”
이라고 외치며 약속의 성립을 선언했다.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린 가영이는 새끼손가락을 바라보며 ‘어이상실’이라는 표정을 적난하게 펼치며 나를 향해 말했다.
“이야∼∼! 하나 발견. 너 진짜 사기꾼 뺨친다.”
“좋아. 그렇게 하는 거야. 잘하는구만 뭐!”
나는 만족스러운 듯 끄덕이며 되받아쳐줬다.
“…….”
할 말을 잃은 가영이를 내버려두고 다시 식량을 찾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너희들은 힘도 좋다. 나는 배고파 죽을힘도 없고만 그렇게 말할 힘도 있고…….”
기철이가 투덜대며 힘없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