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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20화)
7. 가장 중요한 것(4)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자세를 낮췄다. 순간 무엇인가가 머리 뒤에서 앞으로 휙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휘리릭 날렸다.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한방이었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나를 향해 날아오르던 녀석이 저 멀리 나가 떨어져 있었다. 기철이가 나를 공격하던 녀석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헤헤.”
기철이가 나를 보며 자랑스러운 듯 웃었다.
고맙다고 할까 하다가 꾹 참았다. 어떤 칭찬이든 했다 하면 그 다음에 올 반응이 두려운 녀석이었다.
내가 오히려 무서운 얼굴로 그냥 바라만 보자 무안한 듯 자기 바로 앞에 날아오는 세 마리를(두 마리는 얽혀 있었다) 연거푸 쳐냈다.
뭔가 화풀이 같은 방망이질이었다.
그 방망이질을 바라보며 다시 마음속에 새기는 기철 대응법 2.
‘칭찬금지, 칭찬금지.’
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속으로 반복해서 읊었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마음껏 날뛰는 기철이를 옆에 두고 나는 어떠한 대응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원래 생각 없이 쳐내는 기철이는 살상력이 확실히 떨어졌지만 한 방 한 방 힘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방어면으로는 훌륭했다.
반대로 나의 공격 방법은 급소를 노려 한방에 끝내는 방법을 취했다.
그래야만 했다.
어설프게 쳤다가 어쭙잖게 가까운 곳에 떨어져 내려 반격이라도 들어오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지금처럼 혼전에서는 비효율적이었다.
대책 없이 여기저기서 날아오기 때문에 급소 자체를 노리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목표물을 제대로 노리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고 그런 나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철이가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며 활약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철이를 본받기에는 능력이 따라가 주질 않았다. 내 힘의 정도가 지나치게 약했다. 괴물들의 힘이 얼마나 센지 한 대만 잘못 때려도 그 반동으로 손목뼈가 나갈 것만 같았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로 이리 저리로 피하듯 보내다 보니 어느새 착실히 포위망이 구축되어 가고 있었다. 놈들도 몇몇이 당하는 동안 이성을 되찾았는지 처음보다 실수가 확실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들 둘러싸듯 점차 앞으로 전진 배치되고 있었다.
어느새 나와 기철이의 자리도 역전되어 있었다.
내가 뒤쪽 기철이는 앞쪽으로 옮겨가 있었다.
힘도 힘이었지만 소희를 업고 있는 탓에 움직임이 둔한 나는 아무래도 대응 속도가 늦었던 것이다. 그것을 메우려 기철이가 자꾸만 앞으로 나서다 보니 전세 역전이었다.
뒤쪽에 서서 바라보니 앞에 있을 때보다 정신이 없었다. 일단 기철에게 시야가 막혀서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뭔가 보일 듯하면 이미 날아오른 괴물들이었다.
물론 뒤쪽에 몰려 있는 탓에 자세를 잡아 친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겨우 몸을 피하는 것이 다였다. 그러다 보니 전투가 한도 끝도 없었다.
그때였다.
발밑으로 한기가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몸을 휙 틀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정말 잠깐이었다.
하얀 물체가 내 등 뒤에 있는 나무에 깊은 이빨자국을 내고 사라졌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손이 발목을 쓰다듬으며 정말 붙어 있는지 확인할 정도였다.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노려지는 먹잇감이 되어 있다는 것을 한 번에 실감하게 되는 공격이었다.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 동시에 발밑을 주의해야 했다.
위로 날아오는 것들은 무시했다.
그리고 위로 무엇인가가 지나가는 듯 보이면 얼른 발밑을 방어해야 했다.
내가 기철이에게 지시한 그것이었다.
막상 내가 그 위치에 놓이니 그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작전이었는지 깨달았다. 녀석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냉철하고 빨랐다.
과연 앞에서 덤벙덤벙 생각 없이 날뛰고 있는 녀석이 이 자리에 서있다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결론은 뻔했다. 아마 첫 번째에서 당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라고 만만한 건 아니었다.
첫 번째 공격으로 끝나지 않고 곧이어 2타, 3타가 날아들었다. 말 그대로 날아들어 왔다.
멀리서 볼 때에는 빠르게 기어 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기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놈들은 마치 밑으로 넓이 뛰기를 하듯 낮게 점프하여 쇄도해 들어왔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공격이었다.
기어들어 온다면 발을 딛을 때만이라도 절제된 동작 때문에 눈에 보이겠지만 말 그대로 낮게 점프하는 경우에는 연결동작 없이 곧바로 눈앞에 닥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빠져 나갈 때도 낮은 점프로 빠져나간다.
결국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하얀 잔상뿐이었다. 그런데다 나는 뒤에 소희까지 업고 있었다. 움직임이 둔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피하려고 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피할 장소를 골라놓고 기다린다는 것이 맞을 지경이었다. 그러니 소희가 없었더라도 그 잔상 보고 연속으로 피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연속 3타를 나는 무사히 피했다.
그것은 기철이의 존재 때문이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녀석 덕분에 행동반경이 예측불허라 괴물들조차도 타이밍을 잡기 힘들었던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녀석의 등 뒤에 딱 붙어서 발만 집중해서 보았다. 그리고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조절하며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그렇게 몇 번인가의 공격을 피하고 발밑에 하얀 잔상이 지나간 직후였다.
왠지 정면에서 찬바람이 얼굴을 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정면을 주시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인영이 보이지 않았다. 나를 지켜주던 기철이의 등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기철이의 예측불허 행동반경은 괴물에게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고개를 들어 기철이를 찾았다.
그런데…….
기철이는…….
“……!”
벌써 두 걸음이나 왼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을 느꼈다.
앞과 오른쪽이 텅 비어 있었다.
괴물들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괴물들이 나를 보며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날아오른 세 개의 그림자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끝이었다.
‘사람이란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
여기 와서 몇 번이나 겪은 고비 고비.
그럴 때마다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늘 냉정하게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
그런 생각뿐이었다.
손에 든 방망이를 그저 꼭 쥐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살려고 발버둥 쳤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에게?’
머릿속에서 울리는 내 목소리인 듯 아닌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
몸을 움츠렸다.
최대한 움츠리며 뒷걸음질로 나무쪽으로 붙었다. 등을 땅에 닿을 정도로 밑으로 내리자 바닥에 누군가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지키지 못한 또 하나의 생명이 될 사람이었다.
미안함은 없었다.
난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따라 갈 테니까.
나는 방어하듯 손을 머리 위로 교차시켰다.
방망이가 이마에 닿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을 기다렸다.
…….
기다릴 것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오래 기다렸다.
좀 민망해질 만큼.
손을 내리고 전방을 주시했다.
수십 개의 파란색이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춤보다는 훨씬 어색하고 경직된 움직임이었겠지만 밑에서 바라보는 아니 내 눈에 비친 그 모습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보다 감동적인 율동은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넋이 나간 듯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짊어지고 있던 소희를 내려놓았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괴물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몰리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짊어지고 싸울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얼른 손에 쥐어진 갈색 방망이를 고쳐 쥐었다. 가벼워진 등 때문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감동의 공연 한 장면에 끼어들고 있을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8. 너 나 그리고(1)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멈춰서 보니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 한 놈을 해치웠던 것이었다. 내 바로 앞에 떨어진 놈의 검은 눈동자가 풀려 있는 것이 보였다. 지그시 밟아주었다.
“와! 와! 아아아아!”
환호성이 터졌다.
승리자의 외침이었다.
살아남은 것이다.
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
피비린내와 괴물들의 시체에서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 냄새마저도 상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환호성 속에서 찬바람이 들어오듯 정신이 확 들었다.
‘살아남았다.’
그랬다는 것,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앞으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그칠 수 없다는 것, 또 다른 위협들과 싸움의 시작을 뜻했다.
“조용∼∼”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의 환호성이 일시에 멈췄다.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기쁨에 가득 찼으나 동시에 두려움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크게 소리 내는 것을 자제하도록 해.”
무엇인가 부연설명을 덧붙이기 위해 숨을 들이쉬었다. 사람들 앞에서 무엇인가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했기 때문에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내가 말하는 것을 저지했다.
“아! 괜찮아. 지금부터는 내가 말할 테니까.”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수고했다, 제군. 너희들의 활약으로 우리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맙다.”
능수능란하게 말을 꺼내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일단 돌아보고 나니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학생회장이었다.
“야! 우리 대장이 말하고 있잖아. 어디서 너 같은 게 말을 끊고 난리야?”
기철이가 학생회장에게 다가서며 사납게 말했다. 옆에서 기철이의 대장이란 소리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둘만 있을 때는 그냥 민망한 호칭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있는 데서 말하니 낯 뜨거워 질 정도로 부끄러운 호칭이었던 것이다. 호칭은 빼고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상황에서는 딴지를 걸 수가 없었다.
결국 나중에 조용히 말해 주자며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너는 뭐냐?”
기철이의 말에 기철이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학생회장이 내려보는 시선으로 비웃듯 말했다.
“나? 지나가는 나그네.”
기철이는 학생회장의 내려보는 시선에 대항하여 까치발을 딛고 턱을 위로 치켜든 상태로 억지로 내려 보는 시선을 만들며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나름 진지한 태도였겠지만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