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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드 오브 쉐도우 1권(19화)
7. 가장 중요한 것(3)


“크득 크득 크득∼∼”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일부가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괴물 측의 포위 모양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약 100여 마리가 넘게 있었는데 그 중에서 20여 마리의 무리가 갈라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녀석들보다 등치도 크고 얼굴도 비교적 험악하게 생긴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은 기철이와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천천히 왼쪽으로 돌아.”
기철이를 내 등 뒤로 세우고 나무를 중심으로 천천히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나무를 등에 두었던 이유였다. 놈들은 포위를 하기 전까지 집단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포위만 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등 뒤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기 때문에 우리를 충분히 보호해줄 터였다.
내가 왼쪽으로 돌기 시작하자 놈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역시나 위협을 하기 위해서인지 오른쪽 정면에 있는 녀석이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위협에 넘어갈 생각이었다면 이런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 터였다.
안면을 향해 나무 방망이를 휘둘렀다.
“깡!”
“헉!”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음성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까지 상대한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힘이 얼마나 센지 단 한 번 쳤을 뿐인데 팔목이 시큰거렸다.
다행히도 잘 맞았는지 퍽 소리가 났다.
그러나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바로 앞으로 떨어졌다. 가까이에 떨어졌으므로 검은색 동공이 풀려 있는 것이 바로 보였다. 즉사한 것은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떨어졌으므로 다른 녀석들이 이 시체를 노리고 달려들다가 혹시나 우리까지 말려들기라도 하면 꽤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긴장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쓰러져 있는 동료를 슬쩍 바라만 볼 뿐 정작 달려들지 않았다.
이상했다.
분명 이 시체를 차지하려고 한 명이 덤벼들고 다른 녀석들이 밑으로 2중 공격을 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날아오른 공격자를 처리하는 동시에 다음 제물을 준비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야 녀석들이 동료를 먹어 치우는 시간 동안 포위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아주 미묘하게 예상에서 어긋나고 있었다.
조금 더 왼쪽으로 이동하자 바로 앞의 한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래도 처음의 것 때문에 조금 더 긴장해서 휘둘렸더니 팔목의 부담이 덜했다. 그러나 역시 힘이 부족한지 충분히 날아가지 못하고 밑으로 툭 떨어졌다.
순간 오른쪽에서 섬뜩한 기운이 다가왔다. 너무 섬뜩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고개를 살짝 튼 순간 하얗고 폭신한 무엇인가가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크학!”
고개를 왼쪽으로 휙 돌리자 가볍게 착지한 괴물이 으르렁거리며 왼쪽 길목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녀석들의 사정거리는 다섯 보 정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녀석은 거의 열 보 넘는 거리를 뛰어넘었다.
분명 달랐다.
겉모습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점프력이나 절제력, 행동력 등 모든 면에서 확실히 뛰어났다.
‘…….’
내가 이쪽에서 녀석들을 상대하며 고전하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서는 이제 전세가 바뀐 듯 기세가 다른 함성소리가 들렸다. 괴물들과 맞서는 소리도 멀리서 들었던,
‘퍽, 퍽.’
의 소리가 아니라,
‘깡, 깡.’
하는 제대로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어떤 상태인지 둘러볼 겨를조차 없었다.
왼쪽 길목에 딱 버티고 선 녀석 때문에 거의 포위 직전까지 몰린 것이다.
오른쪽으로 돌려고 했지만 왼쪽으로 돌때 이미 오른쪽을 내 준 터라 오른쪽은 녀석들이 대부분 점령되어 그럴 수가 없었다. 완전히 포위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빠져나갈 구멍도 없었다.
갑자기 어릴 적 할아버지와 자주 두었던 장기판이 떠올랐다.
참고로 나는 할아버지와 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늘 곁에만 가면 고추 따 먹는다고 놀려대기 일쑤기 때문에 곁에 가는 것조차 꺼려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엄마는 사이가 벌어져만 가는 할아버지와 나를 붙여놓기 위해 할아버지와 장기를 두면 한판 당 100원씩 주시기로 했었다.
그렇게 용돈벌이 장기를 두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이 장기는 사람의 인생사와 비슷하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어디에서 누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느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보다 더 중요하다.’
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드리죠!”
왜냐하면 당시 장기의 판세를 보자면 할아버지는 장기에서의 강력한 무기인 차와, 포를 다 잃은 상태였고 나는 두 개의 다 살아남아 있었다. 장기에서는 거의 2개의 차와, 포의 연합공격이 강력하기 때문에 거의 이긴 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나의 패배였다.
결국 장기도 왕 하나만 잡으면 끝나는 싸움이었다.
아무리 차와 포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어도 미묘한 위치에 있는 졸(한 칸씩만 이동할 수 있는 가장 약한 패) 한 개 보다도 못했던 것이다.
왠지 그때가 떠올랐다.
졸 하나에 꽉 막혀서 앞뒤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왕의 기분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을 살려도 나 하나 죽으면 끝나는 게임이 바로 인생 아닌가!’
게임 판 안에선 나 자신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 그것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왼쪽에 선 녀석을 째려보았다. 그놈이 좀 공격이라도 해주기만 하면 쳐내고 다시 이동하면 되겠지만 작정을 한 것인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든지 공격할 뜻이 있다는 듯 뛰어 오를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오른쪽의 괴물들은 천천히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좁혀 들여오는 포위망에 밀려 뒤로 한발 물러섰다.
“아야!”
기철이 소리였다. 내가 물러서다가 바로 뒤에 있는 기철이의 발을 밟아 버린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내 말대로 나무에 딱 붙어 있는 기철이가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때도 없었다. 큰 나무가 독이 될 줄 몰랐다. 등 뒤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나무는 오히려 퇴로를 차단하고 있는 방해물이 되었던 것이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괴물이 튀어 올랐다. 역시 상상했던 것보다 더 빨라진 공격이었다.
나는 포위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느꼈지만 사실 그들의 점프력을 생각했을 때 포위가 완성된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힘껏 쳐내려고 마음먹었지만 자세를 잡으려고 생각했을 때 바로 그 뒤에 있던 괴물이 뛰어올랐다.
첫 번째를 쳐내고 나면 꼼짝없이 두 번째에 당하게 생겼다. 그렇다고 첫 번째를 걸러 내면 두 번째를 쳐내도 그 첫 번째가 왼쪽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놈, 두 놈 왼쪽으로 보내게 된다면 이제는 왼쪽, 오른쪽, 양방향 공격이 될 터였다. 다행히 아직은 거리가 멀어서 밑으로 오는 공격은 없지만 양 방향 공격에 밑으로 들어오는 공격까지 가세가 되면 이제 게임은 끝이었다.
그때였다.
날아오는 첫 번째 괴물에 대해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뭔가 앞에서 휙 스치고 지나가는 갈색이 보였다.
나무 막대기였다.
그 막대기는 첫 번째 괴물의 안면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괴물은 저 멀리 날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엄청난 힘이었다.
생각할 틈이 없었다.
두 번째 날아오는 녀석은 내가 쳐냈다.
역시 바로 앞에서 털썩 떨어져 내렸다.
아무리 힘을 다해 쳐내도 바로 앞까지 밖에 날릴 수 없었던 괴물을 너무도 쉽게 멀리 날아가게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그 막대기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추측할 것도 없이 기철이었다.
포위된 사람이래야 나와 기철, 그리고 내 등 뒤에 어느새 기절한 건지 잠이 든 건지 모를 소희뿐이었던 것이다.
“헤헤. 잘했지? 대단하지? 대단해 해도 돼.”
기철이는 나보다 멀리 보낸 것이 자랑스러운지 으쓱거리며 말했다.
“잘했어! 대단해!”
내가 솔직하게 칭찬해 주자 어쩔 줄 몰라 하며 좋아했다.
온몸을 꼬면서 방망이를 돌리면서 혼자서 별 쇼를 다 했다.
그러다,
‘휭∼∼∼∼∼! 털썩!’
저 멀리 날아가는 기철이의 막대기.
내가 칭찬해 준 것을 너무 좋아하면서 막대기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그만 막대기를 놓쳐 버린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생명줄과 같은 것을 장난으로 날려 버리다니.’
절대로 이 녀석에게는 칭찬을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너!”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터트렸다.
“으앙! 미안! 우앙!”
기철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가서 주워 와.”
손가락으로 방망이를 가리키며 사납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무섭게 이야기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있는 작은 괴물이 날아오르려다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기철이가 덤벙덤벙 뛰어가서 방망이를 냉큼 집어 올렸다.
그리고는,
“헤헤.”
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막상 기철이가 복귀하자 그제야 나는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나 내가 터무니없는 지시를 했는지 알아차렸다.
나무 막대기는 괴물이 있는 두 뼘도 안 되는 곳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부터 네 걸음이나 걸어 나가야 했고 그 주변에는 10마리에 가까운 작은 괴물이 포진해 있었다.
너무도 돌발 상황이었던 것일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괴물들도 이상했지만 시킨다고 갔다 온 기철이도 상상을 넘어서는 녀석이었다. 정말 기철이가 무사히 돌아 온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나지만 기철이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거나 두려움 자체가 없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어느 쪽이든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크르르릉∼∼!”
기철이가 제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정신이 들었다는 듯이 괴물들이 일제히 사납게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그 후론 더 이상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 예상하는 것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무엇이 계산대로였고 아니었는지 자체가 구분하기 힘들어져 버렸다.
‘자신들이 얼마나 어이없는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던 것일까?’
괴물들은 약이 제대로 올라서 작전이고 뭐고 없어져 버렸다. 그리곤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팀플레이를 하면서 동시에 공격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뭔가 규칙성이 무너지면서 공격 성공률이 형편없이 떨어졌던 것이다.
흥분한 녀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뛰어오르자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부딪치며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떤 녀석들은 두 녀석이 동시에 날아올랐다가 둘이 부딪혀서 떨어지기도 하고 정면으로 날아오는 녀석을 측면으로 날아오르는 녀석이 머리로 받아 날려 버리기도 했다.
이유인즉 한번 뛰어오르면 공중에서 방향과 속도 조절이 힘들어지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유리해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나로선 예측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 대응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오른쪽에서 날아오는가 했더니 정면에서 두 녀석이 동시에 날아왔다.
오른쪽에 기철이가 있었기 때문에 정면의 두 녀석을 쳐내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정면 두 녀석이 서로 부딪치면서 어이없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안심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새 정면에서 다른 괴물 녀석이 날아오고 있었다.
앞의 두 녀석의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에 눈길을 뺏긴 나머지 그 바로 뒤에서 뛰어오르는 다른 녀석을 놓친 것이었다.
꼼짝 없이 당할 상황이었다.
‘정말 죽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